500자 이내 자기소개서1. 성장과정‘그림이 마냥 좋은 아이’평범한 가족울타리 속에서 자라왔습니다. 어릴 적, 저의 유일한 낙은 여느 또래와 같이 만화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만화의 기발한 상상력이 저의 손끝까지 움직이게 했던 것은 초등학교 때였습니다. 반 아이들이 빌려 온 만화책을 연습장에 통째로 그려 놀라움을 산적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던 부모님께서는 많은 걱정을 하셨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을 그만두게 하시진 않으셨고, 대신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사물을 그리라고 권장하셨습니다. 부모님의 지원에 보답하기 위해 사생대회에 나가 상을 탄 것이 그 당시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주변은 항상 그림의 소재였기 때문에 관찰하는 습관도 저절로 익혔습니다. 그러나 미술대학으로 가기엔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방황하던 중 도서관에서 가우디의 자서전에 나오는 파밀리아 성당을 보았습니다. 그때부터 공학과 예술의 경계 사이를 넘나드는 건축에 매료되었고 건축에 대한 열정을 쏟아 부었습니다.2. 성격 및 생활신조‘한번 물면 놓질 않는 Bulldog’친구들이 저에게 붙여준 별명입니다. 제가 집념을 가지고 임하는 목표는 절대로 포기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학 시절, 저의 건축적 역량을 시험하기 위해 공모전에 참가하였고, 탈락이란 쓰라린 첫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 후 관심이 가는 공모전에는 어김없이 참가하였고, 팀원들과 함께 뜬눈 지새며 작업을 하였습니다. 때론 완벽함을 추구하는 저의 성격 탓에 팀원들의 걱정을 산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는 깊은 대화를 통해 조율하고자 노력하였고, 그 결과 총 5개의 수상경력이라는 뿌듯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배움은 곧 기회가 된다.’건축설계전문가를 꿈꾸면서도 활용프로그램을 다루는 실력이 남들보다 다소 부진하였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관련책자를 독학하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결국은 동기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실력까지 도달하였고, 이를 계기로 농과대학에서 진행하는 새만금 조성사업 조감도 작성의 기회까지 얻었습니다.3. 지원동기‘장소가치(價値)를 만들 줄 아는 현대인(現代人)’오늘도 대한민국 곳곳에는 소위 ‘허가방’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습니다. 주위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만의 특색만 뽐내는 건물들은 기품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은 시간이 지나도 매력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0000(회사이름) 작품들의 절제된 디자인과 친환경적 마인드는 건축물이 들어서 장소를 더욱 빛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학업을 바탕삼아 0000(회사이름) 만의 건축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방법을 배우고자 합니다.4. 입사 후 포부경쟁력 있는 건축디자인은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들이 퇴적되어 나온 결과물들이며, 바로 이런 차별화된 디자인들이 0000(회사이름)의 브랜드가치를 높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단순히 브랜드 이미지를 파는 타사와 달리 0000(회사이름)는 점점 변화하는 소비자 욕구를 반영하는 삶의 공간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신입사원이 된다면 적극적인 행동으로 직원분들하고도 원활한 사교성으로 다가갈 것이며 포기를 모르고 끊임없이 도전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저의 장점을 발휘하여 현상설계에서 있어서 이익창출에 일조하겠습니다. 저는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온힘을 다 할 것이고, 20년 후에는 프로젝트를 이끄는 소장이 되어, 수많은 후배 직원들에게 배우고 익힌 기술들을 가르쳐 주면서 저보다 뛰어난 인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5. 전공 관련 활동사항
1. 지원사유“ 나의 끊임없는 도전은 현재진행중... ”저는 항상 도전하는 삶을 꿈꾸며 살아왔습니다. 대학시절, 건축설계를 5년 동안 배우면서 많은 도전을 해왔고, 무엇보다도 공모전이란 경쟁의 틀 속에서 수상을 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 결과, 5개의 다양한 수상경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졸업당시, 제가 지녀야 할 전문적인 지식에 대한 부족함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취업준비를 위해 서울에 상경하였고, 수많은 진로고민 끝에 인간의 삶을 위한 공간이 아닌, 인간이 필요로 하는 자원에 대한 공간을 창조하는 플랜트산업에 대하여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플랜트산업의 선두주자라고 할 만큼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진보하는 미래에서 플랜트산업은 국가 간의 커다란 경쟁도구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 역시 플랜트산업현장에 뛰어들고자 하는 도전자로서, 플랜트 전문인력 양성사업 제 15기 교육생에 지원하고자 합니다.2. 전문과정 선택사유“ 플랜트분야의 체계적인 교육을 통한 지식습득 ”일반 건축/토목과는 달리, 플랜트분야의 건축/토목을 하기위해서는 상당한 준비과정과 전문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에 앞서 저에게는 체계적인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학전공과 관련된 건축/토목분야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교육수강에 대한 기회를 얻는다면 수료를 성공적으로 마치겠습니다. 수료이후에는 정부에서 시행하는 해외인턴사업에 지원하여 풍부한 경험과 글로벌마인드를 키우고, 앞으로 플랜트산업에서 토목/건축분야의 성실한 일원이 되겠습니다.3. 본 교육과정에 대한 기대“ 교육과 취업을 동시에 하는, 일거양득(一擧兩得) ”
Gallery Ibidem1) 설계 개요-대지위치: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헤이리마을 1652-94 -지역/지구: 준도시지역 -용도: 근린생활시설 -대지면적: 474.00m2(143.39평) -건축면적: 163.22m2 -연면적: 480.61m2 -건폐율: 34.43% -용적률: 71.58%-규모: 지하1층, 지상3층 -구조: 철근 콘크리트조 -외부마감:노출콘크리트(벽), THK24투명복층유리, THK12강화유리, 원목 FLOORING(바닥)-내부마감: 노출콘크리트(벽, 천정), 콘크리트 폴리싱(바닥), 셔먼우드(벽,천정)2) 건축가 김헌은 누구인가?195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미시건대학교 대학원 건축과를 졸업하고 건축학 석사(M.Arch)를 받았다. 건축사사무소 에이브라함 카두신 어소시에이츠 등에서 근무했다. 상하이 주재 미영사관의 기본설계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그 밖에 문화, 상업, 복학부거, 도시계획 관련 프로젝트 등에 관여했다. 그리고 2005년까지 경희데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현재는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GSAK)의 겸임교수로 있다.3) i·bi·dem〔, , │, 〕〔L=in the same place〕 ad. 같은 장소에, 같은 책[페이지, 절, 장]에 ★ 보통 ib(id). 꼴로 인용문·각주(脚註) 등에 씀.경기도 파주 지역에 자리한 ‘헤이리’는 다양한 문화가 한 공간에서 소통한다. 15만평에 달하는 공간에 작가, 미술인, 영화인, 건축인, 음악인 등 370여명의 예술인들이 모여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등의 문화예술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과 이벤트도 늘 준비되어 있어 찾는 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오는 2006년에는 수십 개의 전시관들이 문을 열 것이고 연극, 영화, 사진, 건축, 도예, 회화, 조각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모아진다고 한다.헤이리라는 마을은 예술에 대한 담론이 오고가는 만큼 새롭게 지어지는 건축에 대한 관심 또한 높다. 건축가들의 실험정신이 대거 반영돼 도시구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론과 이러한 마을 구성을 정부의 지원 없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건축적, 공간적 기획을 어휘로 접근헤이리는 최근까지도 건축프로그램에 따라 속속 건축축물이 들어서고 있는데, 이비뎀도 그중 하나이다.이비뎀(ibidem)이란 라틴어로 ‘바로 같은 곳에(at the same place)’라는 뜻을 갖는다. 건축가 김헌이 헤이리 마을 내에 있는 주거공간과 식음공간을 겸한 전시공간을 건축하면서 생각했던 어휘이다. 다의적이고 관계와 현상에 주목하는 단어는 그의 건축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초로 제공된다. 그는 건축이 장소에 무심코 가해질지도 모를 흠을 되도록 줄이고 제한된 표정과 언어들을 헤아리기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이비뎀이라는 어휘를 이용해 풀어냈다. 주거와 전시, 식음 이 세 가지 행위가 한 장소에 공존함으로 빚어지는 마찰을 감추기 보다는 드러내는 것으로 공간 기획의 초점을 맞추었다.틈을 형성하는 외부공간이비뎀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이중성과 자아 분열을 내포한다. 한 면은 모호하면서도 매시브한 공간의 육중함을 자아내고 반대면은 틈으로 공간을 드러낸다. 건축가 김헌은 “건축은 운명처럼 표피와 속살을 갖기에 외부로부터 다양한 깊이와 형상으로 패인, 또는 도려내어진 공간들의 생성을 전제한다”라고 말한다.그의 사유 전개의 편의상 붙여진 공동(空洞, meta-hollow) 이라는 이름의 공간은 그가 해왔던 작업들의 변이된 모습으로 진화해 오고 있다. 이 공간은 이비뎀에도 녹아져 있다. 공간의 깊이를 주는 패인, 또는 도려내여진 공간은 이비뎀의 프로그램 사이에 삽입된 로지아(loggia)식 데크공간, 선큰 공간, 중간레벨과 주거의 투영 공간, 진입부의 데크 브리지 등이 이와 같은 장치이다. 이 장치는 육중한 매스에 틈을 형성하여 틀을 벗어나거나 깨뜨린다.김헌의 건축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과감히 벗어버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기능을 버리고, 닫아야 할 곳을 열고, 그렇지 않아야 할 곳을 막으며, 끊임없이 간섭하고 교차하여 내부인지 외부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공간을 만들어버리는 연출은 예상치 못한 해프닝과 의미를 이끌어낸다.그가 만들어 낸 이 틈들은 외부와의 경계면, 또는 프로그램 공간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거리가 필요하다. 다소 이질적인 세 프로그램 간의 조화를 적절하게 연결해줄 수 있는 것은 그 것을 연결해줄 또 다른 장치이기 보다는 그 곳을 비워둠에서 오는 연결방식을 취했다.다양한 단면의 흐름을 보여주다약간의 경사지에 가로로 길게 세워진 이비뎀은 한 개 층 정도의 차이를 두고 앞면과 뒷면을 가진다. 네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지하 1층에는 카페와 전시공간, 1층에는 지하층부터 이어진 카페와 전시공간 그리고 투영공간, 2층에는 갤러리와 로지아 형식의 외부공간, 3층에는 건축주가 주말 주택으로 사용할 주거공간으로 구성된다.전체 구조 중에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전시를 위한 공간과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공간들은 다른 높이와 형태로 서로 다른 네 개의 층을 통한 단면흐름을 갖는다.건축가가 말하는 장소의 격과 거리의 격을 이 부분에서 살펴 볼 수 있다. 가치를 인정하는 장소의 격은 그 장소와 그 공간이 가진 고유의 가치이며 본연의 정체성이다. 그리고 또 다른 격은 서로 간의 거리이다. 고유 프로그램이 가진 성질을 해치지 않으며 거리를 두는 것이 각 공간을 메우는 덩어리와 그 사이를 두는 틈을 도려내어 공간을 형상화해 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성질이 다른 공간을 따로 떨어트려 놓으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는 완충공간으로는 외부 데크와 선큰공간, 로지아 형식의 외부 공간이다.내부는 외부에서 보이는 단면의 흐름이 그대로 이어져 공간을 복잡하고도 다단하게 느껴지게 한다. 각각의 내부공간은 외부공간과의 연결짓기를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다. 각각의 방식으로 외부와의 연결을 짓는 모습은 과히 놀랍기까지 하다. 활짝 열어둘 곳과 살짝 열어둘 곳을 구분하고 외부 공간의 쓰임새는 내부에서의 틈새로 작용한다. 이 틈새를 활용한 동선은 움직임을 활발하게 만든다. 갤러리는 유리벽에 콘크리트 벽을 켜로 놓아 직접적인 광선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며 카페는 펼쳐진 외부공간을 감상 할 수 있도록 열어놓았다. 그리고 3층의 주거공간은 투영공간을 통해 감춰진 외부공간을 느낄 수 있도록 해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면서도 외부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구성했다.공간의 격 사이에서 느껴지는 거리의 격본래 격(格)조가 높아 보이거나 격(格)이 있는 사람들은 격(隔)을 두게 된다. 이비뎀은 편하고 늘어지는 공간이기 보다는 긴장되고 곧추 세워지는 공간이다. 외부 파사드에서 느껴지는 예각의 느낌에서부터 내부에서의 쉴 틈을 주지 않는 공간 구성까지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느낌을 함께 갖추고 있다.건축가가 말하는 격(格)이란 과묵한 정서와 고요한 시선, 낮은 음성의 서사이다. 이비뎀이 세 가지의 성격을 가진 공간에서 각기 발생하는 격이 자연스럽게 규정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건축가는 이러한 공간의 안팎에 스며들어갈 길을 고루 터주는 일을 하는 것이며 집주인의 격이 배어들 외관 이미지나 물질, 형상의 움직임을 빠트리지 않고 묶어내는 과정을 더하는 것이다. 그리고 건축가가 말하는 또 다른 격(隔)이란 대상들 간의 거리이다. 우선 절대적인 거리를 살펴보면, 도시를 멀리하고 싶지만 도시의 문화적 혜택은 가까이 하려는 심리를 대변하는 공간적이고 물질적인 장치들이 이 건축에 포함된다. 이질적인 세 프로그램을 같이 묶어 내고자 이들 사이에 두터운 틈의 삽입으로 외부와의 경계면을 격-자연(隔-自然: 작가가 편의상 지어낸 언어)이란 장치들이 삽입되었다. 이는 거듭 반복되지만 최하층의 데크와 선큰 공간, 중간레벨과 주거의 투영공간, 진입부의 데크 브리지, 2층의 일종의 로지아(loggia) 형식의 외부 공간 등의 장치에서 공감할 수 있다.출처_ 공간파일4)도면1 Guest room 2 Room 3 Living room 4 Kichen / Dining 5 terrace 6 Exihibition room 7 Exterior exihibition place 8 Cafe 9 Parking 10 Hall 11 Bathroom 12 PoolUV HOUSE1)설계개요-대지위치: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통일동산내 헤이리아트벨리 -대지면적: 490.67m2 -건축면적: 214.49m2 -연면적: 552.45m2 -건폐율: 43.71% - 용적률: 87.93% -규모: 지하1층, 지상3층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주차대수: 3대 -외부마감: 콘크리트 블록 치장쌓기2)건축가 민규암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MIT 건축 대학원에서 설계 전문과정을 마쳤다. 첫 건축 작품 '한호재'로 건축문화대상, 건축가협회상, 동아시아 건축가협회 아카시아 건축상 등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현재 토마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면서 건축 활동과 더불어 단국대학교 겸임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건축사협회의 국제위원으로서 APEC 건축 위원회등 각종 국제건축회의의 한국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민족혼의 화가’ 내고(乃古) 박생광씨의 작품 분석박생광 [ 朴生光 ]동양화가. 호 : 내고(乃古) 활동분야 : 예술 출생지 : 경남 진주 주요수상 : 중앙미술대상(1981) 주요작품 :《월벽》(1958) 《무당》(1981) 《무속》(1983) 내용 호 내고(乃古). 경남 진주 출생. 진주농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23년 교토[京都]시립회화전문학교(현 교토예술대학)에 입학하여 전통적인 일본화기법을 배웠다. 조선미술전람회, 일본미술원전 등에 출품하여 인정을 받았으며, 8 ·15광복 후 귀국하여 1968~1975년 홍익대학 동양화과에 출강하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은 한때 채색기법이 일본적이라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진채기법에 의한 채색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본격적인 재평가작업이 이루어졌다. 실제로 그의 작품의 진가는 말년에 이르러 인정받기 시작하였고, 1981년에는 중앙미술대상을 받았다. 1982년 인도 성지를 순례, 뉴델리 인도미술협회에 작품을 출품하였으며, 1984년에는 미술회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1985년에는 파리 그랑팔레 르 살롱전에 특별 초대되었다. 작품으로 《월벽》(1958) 《무당》(1981) 《무속》(1983) 등이 있다지난 8월4일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그는 이국(異國)의 정신·물질문화가 정통인양판을 치던 때, 내 나라의 전통 문화와 역사를 화두로 잡고 화업에 정진했던'민족혼의 화가’다.말년 10년간 화업이 만개한 그는 수묵화가 주류였던 시기'무녀', '토함산 일출', '시왕도' 등을 통해 고구려벽화와 고려불화, 단청, 민화,무속화로 이어지던 우리 민족의 화려한 색감인 오방색을 작품 속에 재현하고,토속적이고 역사적인 소재로 민족혼을 담았다. 그의 만년 걸작인 '명성황후’나'전봉준’은 이같은 그의 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경남 진주태생인 박생광은 1920년(17세)에 일본유학을 떠나그림을 시작하게 된다. 그때부터 해방될 때까지 그는 일본에서 거주하면서작품활동을 하였다. 해방과 더불어 귀국한 당시의 한만났던서경보 스님과의 여행을 마친 후 다시 일주일 정도의 불란서 여행을 다녀오게 되는데,귀국하여 술회하기를 "남은 생명의 등불을 초연한 자연으로서전신(傅神)의 경지로 살아갈수 있을 것 같다"고 되뇌이었다 한다.박생광은 그 후 줄곧 도붕의 기슭에서 온종일 작업에 몰두하였고1984년 4월에 도자기를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약 두 달간에 걸쳐세 번째로 일본에 체류한 후 귀국하였다.이어 한국화단에 열기를 불어넣기에 충분했던 미술회관에서의 개인전을 개최하고,그 해 여름에는 또 다시 보름여에 걸쳐 타이페이고궁박물원을 인상적으로 관람하고 돌아왔다. 그러던 그는1984년 7월. 81세에 이르러서 후두암이라는 한정성 사형선고를 받았다.하지만 그는 조금도 병에 굴하지 않고 더욱더 청아한 정신자세로삶의 세계를 초월하는 입신의 경지에서 의욕적이고도 초인적으로 작품을 제작하였다.그러던 중 1984년 10월에 파리에서의 한국미술특별전 준비차 내한 했던욜란서의 토트리브 미협회장 을 만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85 르 살롱전'의 특별초대작가로 초대되었다.당시 박생광에게 감명한 토트리브 는 그에게 샤갈과의 상봉을 주선해 주기로약속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1985년 3월에 샤갈의 부고(訃곰)에매우 낙담하기도 하였는데, 그해 7월에 박생광도 82세의 긴 생을 마치고영연(翡端畿)하였다나이를 거슬러간 나그네 화인70대 후반에 불화, 무속화 등의 토속이미지들을 단청의 강렬한 빛깔로 재해석한 채색화풍을 창안한 화인 박생광은 ‘인생역전’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거장이다. 오랜 일본유학과 현지 화단활동 탓에 70년대까지 왜색풍 화가라는 혹평 속에 잊혀지는 듯 했던 그는 말년 단청의 강렬한 오방색을 절묘한 바림으로 융화시킨 특유의 화법으로 극적인 자기변신에 성공한다. 81년 서울 백상기념관의 개인전과 타계한 해 열린 85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 르 살롱의 특별초대전을 통해 단숨에 한국화단의 큰 별로 재기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76년 작 같은 것은 반추상 구도의 작품이다. 특히 70년대 일본체류 시절 채색을 절제 살아가는 것을 올바른 삶이라 믿어왔다. 이는 한국미술의 바탕을 흐르는 자연주의 형성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미술품은 요란하지 않고 부드러우며 때로 적막하여 주위환경이나 자연과 훌륭하게 융합 조화를 이루어 낸다.또한 짙푸른 가을 하늘과 삼면이 바다인 반도적인 기후, 맑은 태양빛은 우리 선조들이 즐겨 쓰는 쪽빛과 백색의 원천적인 근거로 볼 수 있으며, 투명한 순연(純然)의 색채를 즐겨 사용하는 원인에서 천연의 자연적인 조건을 빼놓을 수 없다. 한편 무속사상, 도교사상과 관련하여 자연과 관련된 조형적 반영의 대표적인 것으로 중국의 음양오행설이 수용되어 소재나 색채에서 구체적인 형상과 의미를 내포하는 표현이 이루어졌다. 그것은 오행(五行)에 근원을 두고 있는 오방색(五方色)으로써 고구려 고분 벽화의 「四神圖」에서 채색화의 시원으로 발견되었으며, 이는 이후 각 신분과 용도에 맞게 설정된 복식, 공예품, 왕궁과 사찰에서의 단청을 비롯한 전반적인 색채의식을 형성하는 근간이 되었다. 또한 고려시대의 불화로 이어지면서 보다 세련된 감각으로 발전되었으며, 조선조에 이르러서도 궁중장식화, 단청, 민화 무속화 등을 통해 계승되어지고 있다.이렇듯 한민족 색채관의 사상적 배경에는 크게 두가지 상반된 구조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탈채색(脫彩色) 금채색(禁彩色)사상 즉 백색과 남색으로 대표할 수 있는 한민족 고유의 선호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적인 미술품이나 사찰에서 볼 수 있듯이 화려하고 원색적인 색을 사용하여 주술적인 목적과 색에 의미와 상징성을 부여한 음양오행사상이라고 하겠다. 또 여기에 민간층의 신앙적 바탕이 되어 온 무교적인 사상이 한민족의 색채관에 영향을 주게 된다.2) 오방색을 중심으로 한 색채의식전통미술의 뚜렷한 특징의 하나로서, 진채의 미라고 할 수 있는 전통채색은 건물의 단청을 비롯하여 흉배(胸背), 노리개 등속의 몸치장과도 색감이 일치한다. 그처럼 오랜 전통을 지닌 색조는 남(藍),주(朱),황(黃),백(白),흑(黑)을 기본색를 상생상극(常生相剋)이라 한다.색채에 대한 이러한 해석방법은 동양사상에서 색채에 대한 감각적 측면은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으로 당시 사람들의 생활은 색채에 항상 감각적으로 쾌, 불쾌를 판단하기 전에 어떤 의미를 선행시켰던 것이다.남(南)은 오행중 목으로서 떠오르는 동방에 해당되고 만물이 생성하는 봄의 색인 까닭에 창조, 생명, 신생을 상징하며, 벽사기복의 색으로 즐겨 사용되었다.적(赤)은 오행중 화에 해당되며 만물이 무성한 남방에 해당되고 태양, 불, 피 등과 같이 생성과 창조, 정열과, 애정, 적극성을 나타내며, 가장 강력한 벽사의 색으로 쓰여졌다.흑(黑)은 오행중 수(水)로서 북방을 나타내고 음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인간의 지혜를 관장한다.백(白)은 오행중 금을 나타내며 서방에 해당되는 것으로 결백과 진실, 삶과 낮, 순결 등을 뜻하며 우리민족이 흰옷을 즐겨 입은 원인이기도 하다황(黃)은 오행중 토에 해당되며 오방색의 중심 색으로써 우주중심에 해당되므로 가장 고귀한 색으로 인식되어 임금만이 황색옷을 입을 수가 있었다.이와 같은 한민족의 색채관은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종교적 계절적 방위적인 것을 전개했으며 나아가 우주관적인 철학이 형성되었다.3) 한국전통미술을 통해 본 오방색우리 나라의 채색화는 삼국시대부터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 당시의 그림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로서 대부분 중국의 집안지역과 북한에 위치해 있다.초기 고분벽화의 대표적인 예는 안악삼호분(安岳三號墳)을 들 수 있는데 묘주 생전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묘주와 부인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묘주 부인의 초상」에서 하녀의 옷을 백-적-황의 순서로 채색함으로써 고대의 설채법을 보이고 있다. 적색과 황색 등의 색채는 명도가 높지 않아 후기의 선명한 색조와 대조를 보인다.5세기 중기 고분의 대표적인 통구의 무용총은 무용도 수렵도 등이 그려져 있는데 돌로 쌓은 벽에 회를 바르고 주, 암적, 황, 황토, 녹, 청록 등 다양한 색채로 밝색법은 고려불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대변해준다.조선조 민화는 민화만이 갖는 표현방식을 지니고 있는데 그 특성은 대체로 유형(類型)의 형성과 진채(眞彩)의 미(美)로 요약된다. 유형의 형성은 민화가 실생활에 활에 밀착되어 있었던 바 생활미술임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그림의 내용과 형식은 생활목적과 직결되어 있었다. 쓰임새에 따라 그림의 주제와 형식을 선택하고 민화는 그에 적응하는 상징을 부여해 왔다고 할 수 있다.민화의 대부분이 선명한 색채와 위트가 풍부한, 매우 명랑한 표현을 기호하였다. 그것은 삶의 장을 즐겁고 풍부하게 지내기 위한, 간결하고 좁은 방에 눈의 즐거움을 불러일으키는 최대의 효과를 낳은 것이다. 특히 민화의 색채구성은 강렬한 원색들간의 대비효과와 색면의 평면성을 강조함으로써 장식효과를 높인다 .이것은 형태감과 다른 색채 자신의 독립성, 상징성, 생명감에의 발휘이다.한국 민화에는 꽃, 나무, 새, 짐승을 그린 화조그림이 절대적으로 많은데 옛부터 꽃은 인생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서 존귀하게 여겼으며, 오리는 영원히 끊기지 않는 깊은 인연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서 매우 가까이 해 왔었다. 화조의 그림은 민화 가운데에서도 가장 색채가 풍요롭고 화려한 그림으로 화려한 병풍은 주로 부인방이나 신혼부부의 방에 사용되었다.그외 산수화, 어류화, 풍속화, 수렵도, 문자도, 문방도, 사신수도, 작호도, 신상도, 샤아머니즘화, 십장생도, 지도화, 판화, 호피도 등 생활 공간과 불가분의 관계속에서 그려졌다. 민화의 맥락을 더듬어 가면 그 소재나 내용, 양식이 기본적으로는 벽화가 발전 변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벽화에서 장벽화로, 그리고 병풍 그림으로 변모한 것이며, 사회의 발달과 함께 그림의 소재나 종류가 늘어나고 양식도 다양화됨에 따라 유형화 된 것이다. 민화가 문인화풍의 정통화보다 훨씬 색채가 풍부한 것도 생활공간의 벽화양식에서 온 장식화이기 때문이다.색료는 주로 풀뿌리나 잎의 즙, 또는 광물이나 흙에서 채취했으며 남 주 홍 황 녹 청 흑 백색 등이 쓰인다. 특히 작하였다.
ANDO TADAO1. 기하학적 건축구조(Geometry)건축물 자체에 있어서 완벽한 기하학을 구사하고 있다. 대부분의 그의 건축작품을 보면 거의 누구나가 그가 완벽에 가까운 기하학을 구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같은 그의 건축관은 유럽에서 치열하게 탐구했던 근대건축의 아버지 르 꼬르뷔제의 작품에서 보이는 것과 유사하고, 그래서 그는 전통적인 근대건축의 어휘를 오늘날에도 이어가는 건 축가로 회자되는 것이다.2. 자연환경과의 조화(nature)건축물에 자연 요소를 투입함으로써 자연과 건축물을 조화롭게 만든다. 이때 사용하는 자연이란 인위적인 자연, 즉 물을 이용한 연못과 나무를 이용한 마당 그리고 유리를 이용한 빛을 뜻한다. 그의 건축작품에는 늘 물, 바람, 나무, 그리고 하늘의 공허함 등이 어떤 모습으로든 건축과 결합하고 있다. 이 같은 그의 건축관은 건축물의 명칭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어 물의 교회, 물위의 박물관 등으로 묘사되곤 한다.3. 노출콘크리트와 유리의 사용(substance)진솔한 건축 재료인 콘크리트와 유리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정신이다. 1992년 세빌리아 박람회의 4층짜리 목조건축물인 일본관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그의 작품이 노출 콘크리트와 유리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물, 빛, 콘크리트, 벽안도 건축의 최종목적은 인간의 생활공간을 조금이라도 개선해 내려는 것으로 그가 보는 건축의 본질은 단순한 형태의 조직이 아니라 공간의 구축이다. 이것을 위해 기본적 토대가 되는 것이 대지와의 갈등에서 대지가 지닌 고유의 논리를 끌어내어 표출시키는 것이다. 그는 건축의 시작을 부지와의 갈등에서 보고 부지는 자연이 지닌 고유의 논리로 판단한다. 그는 부지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건축이 그것에 호응하기를 희망한다.안도의 건축 속에 나타나는 ‘물’은 인위적으로 단속된 고인 물이라기보다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속성을 담고 있다. 안도는 이를 ‘흐르듯 흐르지 않는’ 이라고 표현한다. 안도의 물은 영역성도 포함하고 건축물의 독자성을 확보해주는 역할도 한다. 좀 더 쉽게 얘기하자면 일본의 성 외곽에 있는 물은 건축물과 주변과의 대립적 양상이 두드러지는데 반하여 안도의 물은 건축물과 주변 상황과의 관계가 대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안도는 주로 얕은 물을 사용하고 조용히 흐르는 물을 구현시키며 건축적으로는 목적 공간에 도달하기 전의 과정적 부분으로 단속하는 역학을 한다._ 코시노 하우스 ,Ashiya/ japan , 1979~81/ 1983~84자연스런 소나무 숲과 대조적인 방형의 노출 콘크리트의 만남이다. 마치 자연을 깨지 않고 그 안에 용해될 것처럼 낮게 땅을 파고 들었다. 길게 늘어진 방들과 아래로 바닥까지 내려진 거실의 창은 너무나 일본적이다. 그리고 오사카시의 중심부에는 전쟁의 피해로부터 면한 목조건물이 몇 군데 남아 있다. 이 주택의 원래 건물은 이러한 성격을 지닌 것의 하나로서 연속되어 있는 3채 중에서 한 가운데에 위치한 것 이였다. 이 주택의 주제는 나란히 앉은 두 개의 건물에 서로 대립되는 내용으로 대응케 하는 것이다. 즉 침실로 구성된 긴 박스와 거실, 식당, 주방으로 구성된 또 하나의 박스는 숲으로 연결되는 회랑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며 서로의 역할에 의지하고 있다.2층에 있는 현관을 통하여 아래로 내려가는 일반적인 주거 동선의 역순으로 구성된 이 주택의 하이라이트는 현관 계단을 내려와 접하는 거실에 있다. 또한 벽과 천장사이에 길게 찢어진 천창을 통하여 벽을 타고 스며드는 빛은 콘크리트로 마감된 벽체의 질감을 하나하나 읽으며 바닥으로 내려앉고, 텅 빈 공간에 빛의 벽을 의지하고 앉은 백색의 소파는 빛의 건축가 안도가 연출한 이 공간의 마무리 구실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