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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패치 아담스` 감상 레포트
    REPORT영화 '패치 아담스'를 보고 나서..- 치료레크리에이션의 대부 -과목명:인생과 여가담 당:교수님제출일:년 월 일학 번:성 명:패치아담스라는 영화를 수업시간에 처음 보게 되었는데, 강의실에서 볼 때는 아무생각 없이 그냥 웃으며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과제를 하기위하여 방에 들어와 영화를 한번 더 보았는데, 전공수업에서도 공부했던 치료레크리에이션이 이런 것 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더욱 더 감동적으로 볼 수 있었다. 누군가 내게 당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영화가 무엇이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패치아담스’라고 말할 것이다. 그만큼 패치아담스는 나에게 있어 특별한 영화였고, 내 가슴을 오래도록 따뜻하게 한 걸작이었다. 특히나 남들과 조금은 다른 유년시절을 보낸 나였기에 패치아담스는 나에게 더 특별하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나는 어린시절에 크게 아픈 적이 한번 있다. 유치원에 다니던 6살 시절의 그 때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병원은 어린 나에게 언제나 낯설고 힘든 공간이었지만, 친구같았던 의사선생님들과 누나처럼 잘 보살펴준 간호사들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처럼 나는 누구보다 환자의 고충을 이해하고 그런 상황에서의 의료진들의 따뜻한 배려심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영화 속의 패치아담스는 마치 천사와도 같았다. 어린 환자들을 위해 광대가 되기도 하고, 할머니 환자의 치료를 위해 말도 안 되는 소원을 들어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패치아담스라는 인물이 실존인물이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기 충분했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타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타인을 위한 숭고한 삶을 사는 패치아담스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적어볼까 한다.1969년 헌터아담스는 자살을 하려다 실패하고 삶의 목적과 의욕을 완전히 잃은 채로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그의 얼굴표정에서는 어떠한의욕도 찾을 수 없었으며, 그는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의 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정신병원에서 그는 세상을 새롭게 출발한 영감을 얻는다. 그의 정신병원 룸메이트와 같이 생활하며, 그의 병을 고쳐주는 것이 의학의 힘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따뜻한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헌터아담스는 이제부터 본인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다의 의미를 가진 ‘패치’라는 별명을 사용하며 패치아담스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스스로 의사를 찾아가 퇴원하겠노라고 선포하고, 사회에서 자신이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내야겠다는 의욕에 넘친다.정신병원을 나온 패치아담스는 환자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치유하는 진정한 의사가 되리라 마음먹고 마침내 2년 후 버지니아 의과대학에 입학한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여서 안 그래도 눈에 띄는 학생이었지만 무엇보다도 패치는 엄청난 괴짜였다. 지나가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미소를 유발하기도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3시간동안 통화를 하기도 하며, 전혀 관련 없는 축산업자들의 모임에 우연히 참여해 그들과 어울리며 왁자지껄 어울리기도 한다. 이처럼 패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냄새 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패치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학칙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3학년이 되어야만 환자를 만나고 치유할 수 있다는 규칙이었다. 의사를 꿈꾸는 대부분의 의대생들은 이 규칙을 그대로 순응했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환자를 돕고 싶어 안달이 난 패치에게 이 규정은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든 것이었고, 환자를 만나기 위해 기다려야 할 2년이란 시간은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었다. 때문에 패치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고지식한 학과장 몰래 환자들을 만날 방법을 찾고, 이러한 선행에 동참할 동료들을 찾는다. 세상의 끝에서 자살을 꿈꿨던 한 남자가 이젠 자신이 있어야 할 곳과 해야 할 일들을 드디어 찾게 된 것이다.고지식하고, 권위적인 학과장은 혁신적이고, 자신의 신념이 강한 패치를 대놓고 싫어한다. 심지어 성적이 좋은 패치가 컨닝을 했다고 의심하기도 하며, 그에게 더 이상 광대 짓을 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때문에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패치는 항상 티 나지 않는 방법으로 환자를 돕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패치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캐린을 이 숭고한 봉사에 끌여 들이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캐린은 단지 성공을 위해 의사가 되려는 여자였고, 미모 또한 뛰어나 나이 많고 괴짜인 패치에겐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패치가 학과성적에서 뛰어난 성적을 유지하자 그에게 조금씩 호감을 보이기 시작하고, 어느 날 패치와의 대화에서 그의 진솔함을 느껴 그 의 봉사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봉사의 핵심은 환자를 친구처럼 대하며, 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었다. 어린 환자들을 위해 광대가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며, 난폭한 환자들의 비위를 맞추며 그들의 심적 안정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또 이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연로한 환자들의 소박한 꿈들을 이루어 주며 그들에게 큰 감동을 주기도 한다. 패치와 그 친구들에겐 환자들이 치유의 대상이 아닌 그들과 같은 인격체이며 더 나아가 마음을 공유하는 친구였던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생각은 환자를 병명으로 분류하는 학과장의 생각과 정반대의 것이었다. 특히 회진을 돌며 병명으로 환자를 분류하고, 설명하는 교수에게 ‘이 환자의 이름은 무엇이죠?’라고 묻는 패치의 질문은 환자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려는 그의 배려심이 묻어 나있는 감동적인 대사였다.하지만 패치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과장 왈콧은 마음에 들지 않는 헌터를 퇴학시키려고 까지 하며 그에게 경고를 한다. 결국 패치는 자신만의 꿈을 실현할 공간을 찾게 되고 정신병원에서 친분을 쌓았던 부자 멘델슨으로부터 낡은 집을 하나 임대받고 그 집을 꾸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치료공간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그 작업에는 그의 친구 캐린과 트루먼이 동참한다. 비록 의사자격증은 아직 없지만 사람들을 치료할 만한 충분한 의학적 지식이 있는 세 명의 의대생들이 무료 의료봉사를 시작한 것이다. 갈 곳 없고 돈이 없는 사람들과 환자들에게 이들의 무료진료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몸은 고단하지만 패치와 친구들에게도 이 공간은 너무나도 보람차고 행복한 공간이었다. 이렇게 이들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고, 패치와 캐린도 본격적으로 연인관계로 발전하며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런 선행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큰 비극이 찾아오게 된다. 우울증 환자를 위해 환자의 집을 방문했던 캐린이 그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결국 큰 선행을 베풀고도 환자에게 배신당한 패치는 인간에게 큰 환멸을 느끼고 다시금 패닉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다시금 자살을 위해 절벽을 찾아 신을 향한 원망을 내뱉는다.하지만 이렇게 세상의 마지막에 선 패치에게 한 마리의 나비가 날아든다. 그리고 나비를 보며 다시금 생명의 존엄함을 깨달은 패치는 그가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을 위해 다시한번 모든 것을 쏟아 붓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리고 다시 마음의 상처를 입은 환자들을 치유하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왈콧 학장은 마침내 눈에 가시같던 패치에게 의사면허증 없이 진료를 했다는 이유로 퇴학을 통지한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패치는 위원회를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무사히 의대를 졸업하고 자신의 꿈을 펼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의 엔딩과 함께 나오는 “그후 12년간 패치는 의료 행위를 계속했고, 1만 5천 이상의 환자에게 무료 치료는 물론, 어떤 의료 사고도 일으킨 적 없다. 패치는 버지니아 서부에 105 평방미터의 땅을 구입, 현재 게준트하이트 병원을 건설 중에 있다. 현재까지 1천여 명에 이르는 의사들이 그와 합류하기 위해 대기 중에 있다.” 라는 내용의 자막은 한 사람의 봉사정신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변화시켜 줄 수 있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패치아담스’라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치료레크리에이션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환자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인 것 같았다. 전공수업에도 치료레크리에이션이 있지만 아직 수강하지 않아서 그 쪽 분야에는 문외한이었지만 이번 계기를 통해 치료레크리에이션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던 기회였다.일단 치료레크리에이션의 정의는 레크리에이션을 통하여 치료하는 것이고, 이것에 대한 목적은 서비스가 주어지는 클라이언트의 기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또한 심리, 정신, 신체, 정서적인 장애와 관련된 문제들을 완화시킴에 관심을 둔 치료, 한 마디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치료라고 할 수 있다.
    예체능| 2013.04.18| 5페이지| 1,000원| 조회(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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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학생운동선수들의 현황실태 및 개선방안
    REPORT과목명:스포츠와 현대사회담 당:교수님제출일:2012년 04월 06일학 번:성 명:Ⅰ. 서론(1) 학생운동선수· 학생운동선수란?(2) 체육교육· 체육교육의 정의Ⅱ. 본론(1) 학생운동선수의 학습권1. 학생운동선수의 학습권 문제· 우리나라 학교운동부의 현실, 고등학교 1학년학생선수 절반이 최하위 10% 성적· ‘운동기계’를 찍어내는 공장과 같은 학교2. 학생운동선수의 학습권 이상향· 공부하며 운동하는 사격운동 학생선수들의 변화· 수업듣는 재미에 빠진 축구부라고?(2) 외국의 학생운동선수 학습권1. 외국의 사례· 미국 학생운동선수들 학점 2.0 이하면 출전금지· 공부 못하면 운동도 그만둬야 하는 일본Ⅲ. 결론1. 해결방안 및 해결책· 법적, 사회적, 제도적 해결책Ⅳ. 제언Ⅴ. 참고문헌Ⅰ. 서론(1) 학생운동선수1. 학생운동선수란?· 일반적으로 초·중학교 때부터 운동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으며 중ㆍ고등학교 운 동부를 통해 선수로 진출한다. 전문대학이나 4년제 대학교에서 체육학, 사회체 육학 등 체육 관련 학과에 진학하여 전문적인 교육을 받으면 유리하다.강인한 체력이 요구되며, 끊임없는 훈련 과정 속에 자기를 통제하고 심리적 평 정을 유지할 수 있는 정신력과 순간적인 상황 판단력이 필요하다. 개인이 아닌 여러 명이 한 팀을 이뤄 활동하는 경우 동료 간의 단결과 협동심이 요구되며 원 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2) 체육교육1. 체육교육의 정의· 신체활동의 잠재적 가치를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하는 교육의 한 분야.생물적·본능적 욕구의 표현인 신체활동을 사회적 가치를 갖출 수 있는 표현적 행 위로 다듬어 나가는 역할을 한다. 전통적으로, 체육은 지육(知育)·덕육(德育)과 함 께 교육의 중요한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다. 체육은 유희에서 시작하여 각종 운동 경기·체조 등을 실행하지만, 체육에 관한 지식을 교수하는 것도 실행에 못지않게 중요하다.윌리엄스(J.F. Williams)는 체육을 신체의 교육과 신체운동을 통한 교육이라 정의 하였다. 신체의 교육은 신체 운동하는 아이가 공부에 신경 쓰지 않도록 무한한 배려(?)를 해준다. 운동선수로 살아남기 위해서다. 그럼 살아남지 못한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운동으로 살아남지 못할 아이들의 살 길 찾아주다가 다 같이 죽는 수가 있다.’ 라고 대부분의 관계자들이 생각할 것이다. 학부모나 선수 본인은 앞길이 막힐까봐, 학교의 감독과 코치는 성적이 안 나와 직장에서 잘릴까봐, 국민들은 자칫 국제대회 성적이 예전만 못할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면 상대적으로 운동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한 고등학교의 야구부는 아침 9시 반에 운동을 시작해서 한 시간의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오후 5시 반까지 훈련한다. 저녁을 먹고 한 시간 동안 야간 훈련을 한다. 대략 하루 여덟 시간 운동이다. 이보다 더 한 학교도 있을 것이다. 정말 이렇게 운동하면 더 효율적이냐고 묻자 딱 잘라 아니라고 대답한다. 다들 하기 싫고 왜 하는지 이해도 못하는 운동을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 혹자는 ‘프로는 하기 싫을 때 해야 하는 것’ 이라며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를 정의했다. 그 기준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없다.‘우리 딸이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을 시간에 스핀을 한 바퀴 더 돌고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대학에 갈 텐데….’‘우리 아들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름을 외울 시간에 방망이를 한번이라도 더 휘둘러야 안타를 치고 스카우트 눈에 들어서 프로에 갈 텐데….’이것이 운동을 시키는 모든 부모의 생각이다. 대학 특기생 입시요강에 전국대회 4강 이상, 우승 등의 조건이 있어 어떻게든 그에 해당하는 성과를 내야한다. 경기 수는 적고 학생은 많은 아마추어 리그에서 스카우트의 눈에 최대한 많이 노출되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운동을 즐기면서 하지 못하고 ‘나에겐 이 길밖에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 보니 선수 본인도 주변 사람들도 언제나 초조하다. 공부 따위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그렇다면 학교 운동부에서 뛰는 학생들이 모 52명의 선수와 감독 포함 3명의 지도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967년 창단 후 3년 동안의 정비를 거쳐, 1970년에는 전국춘계중고등학교 축구연맹전에서 최초로 준우승을 거머쥐었고, 19070~80년대에는 10여 회에 걸쳐 전국대회에 우승하며 이름을 높였죠. 이때가 안양중학교의 최고의 전성기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교장으로 부임한 2006년 9월부터는 운동부에 대한 경영방침을 밝히고, 지도자들에게 지도 방향에 대한 협조를 구한 후 정비가 잘 되어 2008년 United Premier Cup (전국대회)에서 3등을, 7월에 도지사기에서는 우승을 차지하며, 18년 만에 우승기를 되돌려 받기도 했습니다. 올해에는 제45회 한국춘계중등축구연맹전에서 막강한 팀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해, 10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이라는 성격을 거뒀습니다.Q 부임 후 운동부에 대한 새로운 경영방침을 제안하셨다고 하셨는데요, 무엇인지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제가 제안한 경영방침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선수들이 모든 정규수업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었죠. 학교라는 교육의 장은 ‘선수 학생’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학생 선수’가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정규수업을 먼저 듣게 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Q 그렇다면 안양중학교에서는 교장선생님 부임 전에 운동만 했었나요?전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시합을 앞두고 특별훈련, 오전수업만 받는 등 수업을 등한시 하는 경우였습니다. 이러한 환경을 제도적으로 없애고, 학생을 위한 운영을 하고 싶다고 입장 표명했죠. 지도자들이 흔쾌히 수락했기에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시작은 3~4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친 2007년부터였습니다. 2007년도 겨울방학을 앞두고 운동부 학부모 총회 때 경영방침을 이야기했는데요, 우승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중학교 과정에 알맞은 훈련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며, 기초 기술과 체력을 길러 고등학교 혹은 그 이상에서 꽃 피우는 것이 목표라고 이야기 했죠. 이와 함께 우리 학교는 우승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모로서 추후에 아이가 잘해서 축구를 계속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여러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아이들의 운동량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짧은 시간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의 차이가 있다고 보는데요, 그런 면에서 안양중학교의 축구 프로그램은 효율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Q 희구가 정규수업을 하면서 달라진 면이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초등학교 때는 축구를 하느라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안양중학교에 진학해서 스스로 공부를 하려고 하고, 집에 올 때도 책을 가지고 왔길래 살짝 들여다보니 공부한 흔적이 많이 보이더군요. 시험을 보고 난 후에는 성적이 많이 올랐다고 자랑하는 모습을 보면, 부모 입장에서 매우 기분이 좋죠. 운동하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초등학교 역시 합숙을 많이 하다 보니, 축구부 아이들과는 잘 어울리지만, 반 아이들과는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봐왔습니다. 하지만, 안양중학교에서는 일반 학생들과도 어울리는 모습을 많이 보고 있는데요, 과거에 비해 친화력이 많이 늘어났다고 말 할 수 있겠네요.Q 학교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요?현재도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이 축구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 부분 감사드리며, 아이들이 힘들게 운동하면서도 열심히 공부 하려고 하는데, 앞으로도 많은 격려와 관심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포츠둥지(2) 외국의 학생운동선수 학습권1. 외국의 사례⑴ 미국 학생운동선수들 학점 2.0 이하면 출전금지⑵ 공부 못하면 운동도 그만둬야 하는 일본※ 미국 학생운동선수들 학점 2.0 이하면 출전금지미국 대학스포츠 최우선 과제는 ‘학업’미국 대학스포츠는 전적으로 NCAA(미국대학스포츠위원회?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의 통제를 받는다. 학업 증진뿐만 아니라 부상 방지, 보험, 약물 테스트, 스카우트 등 대학 운동선수들을 위한 종합시스템을 갖췄다. 운동선수들이 수업구화를 신고 자신의 자녀들이 속해 있는 3개 반을 차례로 돌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선수를 해 본 적도 없고 정식으로 코치수업을 받은 적도 없죠. 시에서 개설한 코치스쿨에서 공부한 걸 갖고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운동도 되고, 정말 재미있어요." 한국 교포인 에이미 리(39)씨도 둘째 아들 브랜든을 위해 축구교실에 왔다. 그녀는 "미국에서는 스포츠 활동을 소홀히 해서는 견뎌낼 수가 없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클럽스포츠를 통해 친구를 사귀고, 부모들도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에 적응하게 되죠. 또 아이들과 함께 운동하면서 생활체육을 즐기는 효과도 있어요. 한국 엄마들은 아이들 공부가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데, 물론 공부도 중요하지만 여기 학교에서는 스포츠 활동 경력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공부 못하면 운동도 그만둬야 하는 일본야구의 천국인 일본은, 70년 전인 1932년 문부성 훈령을 통해 '학생 야구 통제령'을 제정했다. 학생선수의 학력 저하를 막기 위해, 소학교는 전국대회 금지, 경기는 반드시 휴일에 열 것 등을 지시한 것이다. 이 내용은 이후 폐지됐지만, 지금도 일본 학교 스포츠의 기준이 되고 있다. 운동선수도 일정한 지적 능력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학교운동부는 자발적인 동호회...학습권 철저히 보장일본 요코하마에 자리 잡은 게이오고등학교. 오후 3시가 되자 막 영어 수업을 끝낸 우에다 마코토 교사가 '인조이 베이스볼(enjoy baseball)'이라고 적힌 점퍼로 옷을 갈아입었다. 영어교사인 그는 오후가 되면 야구부 감독으로 변신한다. 오후 2시 50분까지 각자 자신의 반에서 수업을 듣던 야구부원들도 일제히 옷을 갈아입고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야구부원들은 오후 7시30분까지 공을 던지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게이오고에서 야구부원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봄에 부 가입서만 내면 누구나 될 수 있다. 단 학업성적이 떨어져 유급을 하게 되면 더 이상 운동도 할 수 없다. 게이오고등학교는 2,100명의 학생 가운데 70% 가량인 1,400여.
    예체능| 2013.04.18| 24페이지| 2,000원| 조회(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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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페이스 메이커` 감상 레포트(줄거리 및 우리나라 사회현상에 빗대어 묘사)
    REPORT영화 - 페이스메이커를 보고 난 후..'내가 잘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과목명:스포츠와 현대사회담 당:교수님제출일:년 월 일학 번:성 명:영화 ‘페이스 메이커’ 과제물2012. 4. 2.본 영화는 한때 유망한 선수였지만 치명적인 신체적 약점과 환경 때문에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야 했던 마라토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서 달리는 존재인 주인공 만호는 갈등을 겪으며 자신의 꿈과 희망을 찾아갑니다. 영화 감상 후 다음 사항에 답하시기 바랍니다.Ⅰ. 영화에 대한 상세한 줄거리 및 본인의 소감 (줄거리 분량은 A4 한페이지 정도, 소감은 분량 제한 없음)Ⅱ. 아래 사항에 답하시오.1. 주인공 만호의 인생에 있어서 ‘달리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2. 만호에게 인생의 짐과 꿈은 무엇이며,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게 되는가?3. 만호의 삶에 긍정적 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친 인물들은 누구이며, 이들은 각각 어떠한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는가?4. 페이스 메이커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어떠한가?5. 당신 인생에 있어서의 ‘상처’와 ‘꿈’은 무엇이며, 꿈과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현재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6. 영화 속의 화두였던 질문, 당신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 것인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 것인가?7. 본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대사는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8. 영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스포츠 사회현상과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쓰시오.Ⅲ. 마라톤에 관한 이해 (자료검색 및 참고문헌 ‘출처’ 명시 할 것)Ⅰ-1. 영화에 대한 상세한 줄거리김명민이 연기한 만호는 유년기부터 동생 성호와 함께 불우한 가정형편으로 힘들게 살고 있는 아이였지만, 오래달리기에는 남과 달리 소질이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마라톤 선수로 활동할 시절 안성기가 연기한 박성일 감독에게 재능을 인정받던 만호는 한쪽 다리가 조금 짧다는 신체적 장애를 알게 된다. 계속 운동을 하게 되면 평생 달릴 수 없다는 판어떻게 보면 그의 인생과 달리기는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달리기, 마라톤에는 희노애락이 모두 담겨져 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1등을 했을 때의 행복감과 페이스조절을 잘못해서 오버페이스로 레이스를 중단해야만 했을 때의 자괴감, 억울함. 그리고 42.195km를 완주했을 때의 성취감과 자기만족이 만호가 순수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달리기를 했을 때의 행복감과 성호의 학업을 지원해주며 얻은 대리만족, 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 페이스메이커를 해야만 하는 현실의 자괴감과 억울함. 마지막 런던올림픽에서 자신의 임무인 페이스메이커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본인의 레이스를 하며 얻은 자기만족과 성취감이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2. 만호에게 인생의 짐과 꿈은 무엇이며,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게 되는가?영화의 엔딩부분에서는 동생 성호 때문에 본인이 좋아하는 일(마라톤 완주)을 하지만 만호에게 있어서 인생의 짐은 개인적으로 성호라고 생각을 한다. 만호입장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동생에게 본인이 모든 희생을 하며 동생으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동생이라는 존재 때문에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 아닌 잘 하는 일을 하게 된다. 동생이 없었다면 만호는 본인의 소질과 능력을 앞세워서 민윤기와 같은 우리나라 마라톤계의 영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며 성호가 야속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만호와 같은 상황이라면? 이라는 상상을 해보았는데, 나 또한 마찬가지로 만호와 같이 행동 할 것 같다는 결론이 나면서 나도 똑같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만호의 인생에 있어서 꿈은 본인이 주체가 되고 주인공인 레이스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영화에서 비춰지는 만호의 모습에서도 만호는 본인이 페이스메이커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분명 그도 윤기와 같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을 것이고 여러 유명 스포츠회사의 스폰서를 얻고 싶어 할 것이며, 1등을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같다"라는 대사가 내 마음속 깊은 어느 곳을 찌릿하게 만들어 주었다.만호가 자신이 잘하는 것이 아닌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는 시점이기도 하고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통쾌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이 장면을 보며 나 또한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야 나중에 결과가 어떻든 후회를 하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그리고, 한 가지 더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만호의 저 대사 뒤에 나온 종수의 대사였다."나.. 너 등 보면서 달리는 거 늘 미안했었거든? 그래! 이제 너가 내 등보면서 달려라"라는 대목인데, 친구로써의 진심어린 응원과 남자들끼리의 피보다 진한 우정이 느껴졌다.이 대사를 들으며 내 주변에도 저런말을 해 줄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몇이나 될까?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8. 영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스포츠 사회현상과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쓰시오.가장 대표적으로 어떠한 희생이 따라도 1등이면 용서되는 성적지상주의가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 스포츠를 살펴보면 외국과는 다르게 이러한 성적지상주의 스포츠 사회현상이 심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성적지상주의가 심해지면서 긍정적인 효과로는 선수들이 훈련할 때의 집중력 향상과 1등을 하고 싶어 하는 동기부여로 인하여 경기를 할 때, 끈기 있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 있다.하지만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동계스포츠의 효자종목인 쇼트트랙을 들 수가 있다. 쇼트트랙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 보다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더 어렵다고 소문이 난 종목이다. 그렇기에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세계대회에 출전하게 되면 결승전에서 항상 우리 선수들끼리 만나게 된다. 이 때, 우리 선수들끼리는 팀플레이를 통하여 경쟁자보다는 동료로써의 개념으로 다른 나라의 경쟁자들의 견제를 피해 우리만의 레이스를 해야 하는데, 마지막 순간에 본인의 욕심으로 인하여 우리 선수들끼리 충돌을 하여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경우를 몇 번 본적이 있 중흥을 위한 노력에 힘써 1984년 3월 제55회 동아마라톤대회에서 1·2위를 한 이홍열·채홍락이 각각 2시간 14분 59초, 2시간 15분 16초를 기록하면서 마침내 문흥주가 수립한 한국 기록을 돌파하였다. 또한 1986년 3월 제37회 동아마라톤대회에서는 유재성이 2시간 14분 6초로 다시 한국 신기록을 수립하여 10년간 정체되었던 한국 마라톤에 중흥의 역할을 하였다.그러나 유재성의 기록은 1985년 포르투갈의 로페스(Carlos Lopez)가 기록한 2시간 7분 12초에 비하면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기록갱신에 많은 노력이 필요한 실정이었다.1987년 제58회 동아마라톤대회에서 이종희가 2시간 12분 21초로 한국 기록을 세우며 세계기록과의 격차를 줄여 나갔다. 이어 김완기가 1990년 동아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11분 34초로, 1991년에는 2시간 11분 2초로 두 번의 한국 최고기록을 세우며 한국 마라톤의 희망과 용기를 주기 시작하였다.그 뒤에 황영조(黃永祚)가 1992년 벳부 오이타 국제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8분 47초로 우승하며 한국 최고기록을 수립하였다. 황영조는 2시간 10분 이내의 기록갱신자로 1억 원의 포상금을 받고 세계적인 선수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1992년 바로셀로나올림픽대회에서 황영조는 2시간 13분 29초로 일본의 모리시다와 치열한 선두 다툼을 하면서 메인스타디움에 1위로 골인하였다. 우리 나라는 손기정 이후 다시 한번 올림픽우승의 영광을 얻게되며 황영조는 ‘마라톤 영웅’이라는 호칭도 붙게 되었다.김재룡은 이 대회에서 2시간 15분 1초로 10위를 하였다. 그리고 김재룡은 1993년 보스톤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9분 43초로 2위를 하여, 1950년 함기용이래 처음으로 이 대회에서 입상하였다.1994년 김완기가 2시간 8분 34초로 한국최고기록을 수립하자, 황영조는 1994년 보스톤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8분 9초로 5위를 하면서 또 한 번의 한국기록을 수립하게 되었다. 그 뒤에 1996년 황영조는 히로시마아시아대회에서도 금메달을 자선기금을 모금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내 관광명소 홍보행사와 다양한 이벤트를 잘 조화시키고 있으며, 모든 시민들이 참여하는 축제분위기 속에서 대회가 치른다.◎ 로테르담마라톤대회네덜란드 로테르담마라톤재단이 주관하는 국제마라톤대회.국가네덜란드주최로테르담마라톤재단시작연도1981년 5월대회주기매년대회기간4월참가규모1만 명 이상1981년 5월 창설한 마라톤대회로, 로테르담마라톤재단이 주관하며 미국의 보스턴·뉴욕마라톤대회, 영국의 런던마라톤대회와 함께 세계 4대 대회로 꼽힌다. 역사가 짧으나 세계기록을 양산하면서 권위 있는 대회로 발전하였다.네덜란드 자위트홀란트주(州) 로테르담에서 매년 4월 개최하며 코스가 최고표고차 20m 정도로 평탄하고 기온이 섭씨 10도로 유지되어 좋은 기록이 많이 나온다.1988년 에티오피아의 벨라이네 딘사모(Belayneh Densamo)가 당시 세계기록(2시간 6분 50초)을 수립하는 등 역대 세계10위 기록 가운데 4개가 작성되었다. 1998년에는 여자부에서 케냐의 테글라 로루페(Tegla Loroupe)가 세계최고기록을 세웠고 한국의 이봉주(李鳳柱)는 당시 한국 최고기록(2시간 7분 44초)을 수립하였다.제1회 대회에는 겨우 200명이 참가하였으나 현재 매년 1만여 명 이상이 참가하는 대규모대회가 되었고, 참가자의 국적과 직업별로 순위를 매기는 것이 특징이다. 인구 60만 명에 관광·무역 위주의 크지 않은 항구도시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2000년 대회에는 1만 2500명의 선수 가운데 9000명이 완주하였으며 2000명의 요원이 경기를 운영하였다.◎ 뉴욕마라톤대회1970년 시작된 세계 4대 국제 마라톤 대회의 하나.국가미국주최시기 및 기간매 해 11월 첫 번째 일요일개최장소미국 뉴욕시작연도1970년행사내용국제우정달리기1970년 미국의 ‘뉴욕로드러너스클럽(NRRC)’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1980년대 초반 조깅의 활성화에 힘입어 대회규모가 커지면서 1990년대 들어서는 추첨을 통해 참가자를 선별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게 되었.
    예체능| 2013.04.18| 27페이지| 2,500원| 조회(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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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퍼펙트게임` 감상 레포트 평가A+최고예요
    REPORT영화 퍼펙트게임을 보고나서(나를 한번 되돌아보는 기회..)과목명:스포츠와 현대사회담 당:조 한 글 교수님제출일:2012년 05월 31일사회체육학부학 번:성 명:영화 ‘퍼팩트 게임’ 과제물2012. 5. 21.본 영화는 1980년대 프로야구 역사의 전설적인 존재였던 최동원과 선동열의 맞대결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불안과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불꽃같이 치열했던 그들의 승부 외에 경기 외적인 무게가 더해져 감동의 드라마를 선사합니다. 영화 감상 후 다음 사항에 답하시기 바랍니다.Ⅰ. 영화에 대한 상세한 줄거리 및 본인의 소감 (줄거리 분량은 A4 한페이지 정도, 소감은 분량 제한 없음)Ⅱ. 아래 사항에 답하시오.1. 당신이 생각하는 승리의 의미는 무엇인가?2. 최동원과 선동렬 각자의 꿈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3. 당신 인생에 영향을 끼친 스승님이 있다면 어떠한 가르침을 받았는가?4. 최동원이 스승님에게 받아 평생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은 ‘일구일생 일구일사(一球一生, 一球一死)’ 였다. 당신 삶의 좌우명은 무엇인가?5. 본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대사는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6. 스포츠의 바람직한 윤리강령인 스포츠맨쉽에 대한 조사 및 스포츠맨쉽으로 우리에게 큰 귀감이 되었던 국 ? 내외적 사례를 조사하고, 그를 통한 교훈이 있다면 무엇인지 적으세요.7. 자유롭게 한 가지 문제를 내보시고, 그에 대한 답을 적어주세요.8. 영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스포츠의 사회적 현상에 대하여 구조기능주의 혹은 비판주의적 관점에서 서술하세요. (심도 깊게 자료 조사. 모든 현상이 다 같은 관점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님)* 참고한 각 자료의 출처를 반드시명시하세요.◎ 선동열과 최동원 인물탐구레포트를 쓰기에 앞서 선동열감독(이하 선동열)과 故 최동원선수(이하 최동원)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였다. 본인은 1989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영화한편을 보고 선동열과 최동원에 대하여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웠고, 체육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써 우리나라 프로야구사에 빠은 208⅔이닝을 던지며 2.89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최동원은 데뷔 2년째인 1984년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27승13패 방어율 2.40의 좋은 성적을 올렸고 롯데를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삼성 라이온즈는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 당시 최강 전력의 팀이었다. 삼성 김영덕 감독은 시리즈를 앞두고 “롯데 에이스 최동원이 정규 시즌에서 우리와 붙어 재미를 보지 못했다”며 자신감을 보이자 롯데 강병철 감독은 “1, 3, 5, 7차전에 최동원을 투입해 4승3패로 이기겠다”고 응수했다. 최동원은 강병철 감독에게 “1, 3, 5, 7차전 등판, 이거 너무 무리 아닙니꺼?” 하고 말씀 드렸다. 강 감독은 미안한 표정과 함께 “동원아, 우야노 여기까지 왔는데”라고 답했고 최동원은 “알았심더. 한번 해보입시더”라며 결의를 다졌다. 최동원은 “당시 삼성은 10번 싸우면 1번 정도 이길 수 있는 강한 상대였다. 그러나 승패는 경기가 끝나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열심히 던지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마침내 시리즈가 시작됐고 최동원은 1차전과 3차전에서 각각 9이닝 7안타 완봉승(롯데 4-0 삼성), 9이닝 6안타 2실점으로 완투승(롯데 3-2 삼성)을 기록했다. 5차전에서는 8이닝 6안타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롯데가 2-3으로 졌다. 최동원은 이 경기에서도 완투했다. 강감독은 6차전 5회에 최동원을 구원 투수로 기용해 6-1로 승리하며 시리즈를 최종전으로 끌고 갔다. 7차전을 앞두고 롯데 선수들이 더그아웃에 모였다. 최동원은 “객관적으로 열세였던 전력에서 3승3패로 맞선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니 7차전을 보너스 경기라고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뛰자고 서로를 격려했다”고 기억했다. 마운드에 오른 최동원도 가벼운 마음으로 공을 뿌렸다. 경기 초반 4점을 내줬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8회초 롯데 공격에서 유두열이 6차전까지의 부진(17타수 1안타)을 말끔히 씻어 내는 3점포를 쏘아 올렸고 경기는 6-4로 뒤집혔다.8회말과 9회말만 막으면 된다는 생 대회였다. 최강 쿠바가 불참하면서 개최국으로서 우승이 목표였지만, 중하위권으로 분류된 이탈리아와 첫 경기에서 1-2로 역전패해 출발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엔 선동열 투수가 있었다. 미국과의 2차전에 선발로 나와 15개의 삼진을 뽑아내며 산발 5피안타 1실점으로 호투해 2-1 승리를 이끌었다. 자유중국전에서도 8삼진 무실점으로 6-0 완봉승으로 역투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일본과 결승전. 난적 미국과 자유중국 승리의 선봉이었던 선동열이 다시 선발로 나섰다. 선동열이 2회 2실점한 뒤 일본 스즈키에 타선이 1안타로 고전하면서 7회까지 뒤졌지만 8회 기적 같은 드라마가 연출됐다. 김재박의 개구리 점프 스퀴즈번트와 한대화의 역전 결승 3점포로 5-2, 역전극이 펼쳐졌다.이미 대학무대에서 국제적인 선수로 능력을 인정받자, 그의 시선은 해외를 바라보고 있었다. 82년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병역문제도 해결된 터였다. 하지만, 해외로 가려는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고, 모두 그를 어떻게 하면 붙잡아 팀 전력으로 활용할 것인가가 야구계의 뜨거운 화두였다. 이게 결국 1985년 선동열 파동으로 알려진 입단 사건의 발단이 됐다. 대한야구협회와 한국야구위원회가 펴낸 는 이 문제를 ‘선동열의 양다리 작전’으로 표현하고 있다. 선 감독의 얘기다. “82년 세계선수권 우승 뒤 군 문제가 해결돼 해외로 가려고 했지만, 학교 등의 반대에 부닥쳐 무산됐어요. 결국 졸업 뒤 실업에 가면 5년 종사 뒤 해외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한국화장품에 입단해 시범경기까지 뛰었어요. 당시 한국화장품 회장이 대한야구협회의 임광재 회장이었던 점도 작용했죠. 하지만, 해태 팬들의 성화가 심해져 집에서 해태 입단을 독촉하게 됐어요. 결국 한국화장품을 포기하고, 해태로 들어가게 됐어요. 이 일로 전반기를 뛸 수 없는 징계를 받게 됐죠.”프로야구의 출범으로 인기와 재정에서 타격을 본 대한야구협회가 아마등록선수가 프로선수에 등록할 수 없다고 무효소송을 제기하면서 비롯된 사건이었다. 결국 전반기를 근신한 19며 특종을 만들었고, 그것은 정치에도 악용이 되는데 부산을 연고로 둔 롯데와 광주를 연고로 둔 해태의 지역감정을 정치에 이용한다.최동원과 선동열의 맞대결을 끊임없이 부각시키는 언론과 국민들에 의하여 두 선수 모두 스트레스를 받으며 생활하지만 마침내 선동열은 최동원과의 맞대결에 출전시켜달라며 감독에게 제의를 한다. 하지만 감독은 선동열에게는 독기와 끈기가 부족하다며 거부한다.그 후, 해태 소속의 2군 포수출신의 박만수의 2군선수로써의 애환과 1군선수로 올라가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감수성을 자극시킨다.영화 초반부터 계속 이어진 언론들의 자극적인 질문에 결국 최동원은 스포츠신문 기자로 출연한 최정원에게 "내는 죽도록 던집니다. 한 물 갔던, 두 물 갔던 끝날 때 까지 던집니다, 내한테는 그기 야굽니다!"라며 폭발하게 된다.최동원은 롯데 4번타자인 김용철과의 갈등이 고조되지만 롯데 강현수의 아버지이자 최동원과 김용철의 고교시절 감독의 장례식에 가서 다시한번 마음을 다 잡는 계기가 되었다.선동열과 최동원의 맞대결이 확정이 되면서, 선동열은 감독이 지적했던 독기와 끈기를 되새기며 연습에 몰두했고 고교시절부터 전력피칭을 하며 어깨에 무리가 간 최동원은 재활을 하며 맞대결을 준비한다. 롯데와 해태, 1승 1패의 팽팽함 속에 두 선수의 맞대결이 시작된다. 두 선수 모두 본인들이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역투를 하였지만 결국 9회 초 해태 2군선수였던 박만수의 동점 홈런으로 연장전에 돌입하게 된다.9회까지의 전력피칭으로 선동열은 손가락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지만 본드로 찢어진 손가락을 붙이며 본인이 마지막까지 던지기 위해 노력을 하였고 최동원 또한 어깨부상이 악화되었지만 끝까지 던지기위해 파스를 뿌리고 고통을 이 악물고 참았다. 연장전에 돌입한 후, 해태선수들과 롯데선수들은 최동원과 선동열을 위하여 경기를 하자고 단합을 하며 몸을 날리는 허슬플레이가 난무하였다. 결국 15회 4시간 56분의 경기가 2대2 무승부로 끝나게 되었고 경기가 끝난 뒤, 양 팀 선수들은 물론이고 하여 선수보호 측면이나 스포츠과학이 많이 발달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1. 당신이 생각하는 승리의 의미는 무엇인가?본인이 생각하는 승리의 의미는 누군가를 이기는 것이 모든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내가 생각하는 승리란 어떠한 일을 하고나서 뿌듯함과 만족감을 느꼈을 때가 진정한 승리라고 생각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무섭고 강한 상대는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데,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일을 해결한 후에 얻는 뿌듯함과 만족감이야말로 승리인 것 같다.2. 최동원과 선동렬 각자의 꿈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최동원의 꿈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도 보면 나오지만 최동원은 지독한 연습벌레이다. 그리고 여기자의 도발 섞인 질문을 받았을 때 흥분하며 이기든 지든, 한물갔던 두물갔던 끝까지 본인이 던진다며 최동원의 야구철학을 보여줬다. 이러한 장면들은 보면 최동원의 꿈은 대한민국 최고 투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선동열의 꿈은 본인의 우상이었던 최동원을 뛰어넘는 것이다. 천부적인 재능은 타고났지만 최동원만큼의 오기와 독기, 끈기가 부족하다는 평을 들었던 선동열은 천부적인 재능에 마침내 독기와 끈기까지 더해져서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 반열에 올랐다.3. 당신 인생에 영향을 끼친 스승님이 있다면 어떠한 가르침을 받았는가?본인에게는 인생의 멘토가 두 분이 계시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박천덕 선생님과 군대에 있을 때 직접 모셨던 이승재 육군소장 장군님이시다.먼저 박천덕 선생님께는 많이 맞았던 기억이 난다. 사춘기 시절 철없는 행동을 많이 하였는데, 그 때마다 선생님께서는 매로 다스렸던 기억이 가장 많이 난다. 그 당시에는 단순히 무서운 선생님이었지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면서도 유일하게 연락을 하고 있는 선생님이시다. 또한, 체육선생님이셨는데 선생님과의 많은 대화를 통하여 중학교 2학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꿈을 가지고 체육을 전공하는 대학생
    예체능| 2013.04.18| 16페이지| 1,000원| 조회(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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