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시?공간과 주체의 형성; 규율에 대하여2009-10309 강푸름-발표자: 철학학회 (동행) 세미나-일시 : 2009년 5월 21일 19:30~-장소: 서울대학교 M동 인류학 실습실*: 이진경, 박태호,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8시 30분이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씻고 밥을 먹는다. 어떤 옷을 입을까 잠깐 고민하다 적당히 한 벌 고른다. 공들여서 머리에 힘주고 나오니 9시 35분. 아차, 조금 늦었다. 빨리 뛰어가야겠다. 지옥철을 헤치고 버스를 타고 강의실에 도착하니 10시 25분. 오늘 하루도 이렇게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시작된다.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서 정해진 공간에서 수업을 듣는 것. '지금, 여기'라는 제약 속에서 존재하는 우리에게 이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그러나 과거 사람들도 이처럼 '몇 시 몇 분'에 맞춰서 생활했을까 생각해보면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간?공간관념은 언제, 어떻게, 왜 생겨났을까?■ '역사적 선험성'으로서의 시간과 공간칸트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경험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며 경험 이전에 존재하는 조건이며 직관형식"이다. 비록 상대성이론과 리만 기하학으로 절대시간이나 절대공간의 개념은 무너졌지만, 즉 시간과 공간도 경험되는 것이고 학습이나 강제를 통해 획득되는 것이지만, 다른 모든 경험을 틀 지우고 다른 모든 행위가 그 위에서 펼쳐지는 기초임에는 분명하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행위와 사고의 선험적 조건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우리는 '역사적 선험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인 시간?공간개념근대 과학의 특징은 '계산가능성'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그리고 자연현상을 계산 가능한 어떤 척도로 환원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갈릴레이는 시계적인 시간개념(t)를 도입했고, 데카르트는 대수적인 수로 환원될 수 있는 공간개념을 도입했으며, 뉴턴은 미분 개념을 창안해 모든 운동을 통분할 수 있는 순간시간(dt)을 통해 모든 운동을 시간의 함수로 표현할 기초를 마련했다.■ 근대적 시간-기계와 공간-기계근대적 시간-기계)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발달하면서 부터이다. 자본가들은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고 일정 시간동안 일을 시킬 권리(노동력)를 사며 이를 최대한 가동하려 한다. 그리고 이제는 노동행위가 아닌, 시계 바늘로 측정되는 추상적이고 동질적인 양, 즉 노동시간이 가치로 정의된다. 이로써 '시계적 시간'이 사람들의 활동을 특정 방식으로 절단하고 채취하는 '기계'로 작동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근대적 시간-기계'는 테일러주의를 통해 완성된다. 근대적 시간-기계는 선분화되어 동질적인 단위로 분할될 수 있으며, 사람들의 행동을 특정 방식으로 강제하여 절단하고 채취한다(사람들이 시계적 시간을 기준으로 행동하게 한다). 근대적 시간-기계는 시간표, 시계, 징벌을 통해 자본주의적 배치를 이룬다. 그리고 근대적 시간-기계는 작업시간 이외의 일상생활까지 분절하고 통제하게 된다. 이로써 근대인의 삶 전반을 규정하는 근대인의 "내적인 존재형식"이 된다. 요약하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발달하며,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시계적 시간'개념을 강제했고, 이것이 삶의 전반에 퍼지게 된 것이다.근대적 공간-기계는 구획화를 특징으로 한다. 공간-기계에는 공장-기계, 학교-기계, 집-기계 등이 있다. 공장-기계는 노동자들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공간을 특정 방식으로 분할하고 구획한 것이다. 학교-기계 또한 수준별, 나이별 학급이라는 분할방식으로 학생들을 감독, 훈육, 통제하는 것이다. 집-기계는 외부와 단절된 폐쇄적 공간으로 가족을 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처럼 공간-기계는 구획화를 통해 공간을 나누고 나누어진 공간은 그 내부에서는 동질화되지만 그 외부와는 불연속적인 것으로 이질화된다.근대적 시간-기계와 공간-기계는 사람들의 활동과 행위를 통제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성립되었다. 그러나 분절방식은 상이한데, 근대적 시간-기계의 분절방식은 '선분화'로, 시간은 추상적이고 동질적인 것으로 분할되며, 시간은 어떤 행위와도 대응할 수 있어 '일반성'을 획득한다. 반면 근대적 공간-기계의 분절방식은 '구획화'로, 공간은 서로 이질적인 것으로 분화되고 그에 상응하는 양식화된 행위가 정해져 '일반성'을 얻지 못한다. 즉, 시간의 선분화가 일반성을 갖는 부분들로 분할하는 것이라면, 공간의 구획화는 특수성을 갖는 부분들로 분할하는 것이다.)■ 근대적 생활양식을 넘어서근대적 생활양식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삶의 양식을 지배하고 있는 근대적 시간-기계와 공간-기계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근대적 공간-기계와 시간-기계를 자본주의적 배치가 아닌, 다른 종류의 배치를 형성하는 요소로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근대적 삶의 양식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근대적 시간과 공간의 탄생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발전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통제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통제가 현대인의 삶에도 작용하고 있을까? 작용하고 있다면 이러한 통제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노력해야 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이미 많은 부분이 시?공간에 통제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익숙하기에 우리는 통제가 가해오는 힘을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통제를 자각하고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자각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제 없이는 우리 사회가 질서 있게 유지되지 못한다. 따라서 이러한 통제를 자각하더라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편, 통제의 거부를 주장하는 맑스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생산양식이 변한다면 이러한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맑스의 이론은 이미 붕괴된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볼 수 있듯이 자본주의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생산체제라는 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나는 생각 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인식과 판단의 근거를 '나'라는 고정된 주체로 보고 있다. 주체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분리되어있는 독자적인 존재인 것이다. 홉스는 주체의 개념을 사회적 주체)와 정치적 주체)로 양분한 다음 이것의 존재 확실성을 주장한다. 이와 같이 근대 철학에서 말하는 주체는 상황적 요인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불변적인 실체이다. 하지만 맑스와 니체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주체는 고정된 실체를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진다. 다시 말하자면, 주체는 사회적인 구조 속에서 결정되고 변화하는 가변적인 존재인 것이다.?주체 생산의 원리주체 생산의 입장에서는 주체가 사회적인 구조의 맥락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주체는 창조의 산물이다. 주체 생산의 원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먼저 인식 대상을 무의식적 표상체계로 포섭함으로써 주체의 구성을 설명하는 원리이다. 표상 체계는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과 같은 의미 작용을 특정한 범위 안으로 제한하는 구조적 힘이다. 이러한 표상체계는 잠재의식에 내재한다. 특정한 가치에 의해서 표상이 조작되면 그에 따라 우리의 사고와 행동 방식 역시 통제된다.다음은 신체에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주체를 생산하는 원리이다. 이 원리는 주체의 형성이 의미작용의 관계가 아닌 권력 관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감옥이 권력 관계에서 도태된 자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하나의 공간적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이 원리는 타의가 아닌 자기에 의한 자기 통제를 통해 시대적 요구에 적합한 주체를 개인 스스로 형성해 나아가도록 한다.?근대적 주체의 합리화근대사회는 합리성의 지배를 받고 있다. 베버에 의하면 합리성은 계산가능성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합리성은 왜 근대적 주체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이에 맞추어 근대사회를 재단하는 것일까? 이는 근대 사회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된다. 근대성은 민주주의와 시장주의와 같은 새로운 사회 체계의 등장을 알렸다. 민주주의와 시장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회는 질서를 요구하고, 이는 개인을 향한 통제가 불가피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암시한다. 따라서 근대 사회는 개인을 통제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자유의지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지배 없는 지배, 권력 없는 통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외부 권력에 의한 지배가 아닌 개인 스스로 능동적인 자기 지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는 개인이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의 주체가 형성하는 과정에 간접적으로 관여한다. 개개인의 행동은 물론 사고까지 측정이 가능하도록 합리화하는 것은 바로 이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행위를 어느 정도 예측 할 수 있는 상황이라야 자기 자신을 능동적으로 통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지배와 압력을 개인 내부에서 스스로 인정하도록 합리화하는 메커니즘은 근대적 주체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한국교회의 길을 묻다-강연자: 홍인식 목사-일시: 2009년 3월 10일 19시 30분~-장소: 대건빌딩 801호일상화되는 갈등의 증폭과 사회적 신뢰의 붕괴 속에서 얼마 전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신앙을 떠나 그 분이 삶으로 보여주신 사랑과 나눔,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야말로 우리들 모두의 생명이자 에너지였기 때문이다. 종교의 사회적 책임과 신앙인들의 향기가 잊혀져가는 시대. 종교가 자기 독선에 사로잡히고 신앙이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변질되어 가는 현실 속에서이 강연을 통해 종교와 신앙인의 참모습과 변화의 방향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1. 강연자강연자인 홍인식 목사는 남미에서 오랜 목사 생활을 하셨으며 현재 강남 삼성동 현대 교회 목사를 맡고 있다. 목사님은 파라과이의 대학에서 경영학과를 졸업하셨다. 경영학을 공부하신 목사라니 신기하고 더 관심이 갔지만 한편으로는, 내 무의식 속에 특정직업과 특정학과를 연결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이후 사회주의 경향을 띤 해방신학을 공부하시고 대형교회 목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편리함이 종교의 타락을 부르며 종교인의 사명과도 멀어진다.’ 는 생각과 함께 사회주의를 체험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그간의 명예와 욕심을 버리고 쿠바의 신학대학교수로 재직하게 되었다.독재정권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 목사님은 쿠바에서의 생활을 ‘멈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라고 묘사했다. 과거로 돌아간 느낌, 시간이 멈춘 느낌을 받았다고 하셨다. 시간이 멈춘 느낌. 처음에는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그런데 매일 같은 생활이 반복되고 또 아직 개발도상국인 나라에서의 물건의 수준을 보면서 시간이 멈춘 느낌이었다는 목사님의 설명에 조금은 느낌이 왔다. 항상 바쁘게 사는 한국 사회의 요즘 사람들도 종종 여유를 가지고 ‘멈춤’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 쿠바의 지도자인 피델 카스트로가 엄청난 웅변가라서 그가 하는 웅변을 듣고 있자면 자기도 모르게 빠지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들으면서 북한이 생각났다. 최근에 들어서는 북한의 소위 주체사상이 약해지고 있지만 한 때는 김일성이라는 지도자가 신격화되어 북한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또 목사님은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경험을 했다고 하셨다. 예를 들어 물건이 귀한 쿠바에서 달걀을 양손에 한 알 씩 사 들고 올 때의 기쁨 같은 것이다. 행복은 정말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다. 쿠바나 개발도상국의 사람들보다 훨씬 풍요롭게 살면서도 행복하다고 느끼는 한국인은 얼마나 될까? 소위 한국 최고의 대학이라고 하는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표정을 보면 이들이 그리 행복한 것 같지는 않다. 나도 앞으로는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찾고 또 그 행복을 나눠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목사님은 쿠바 생활을 통해 의문이 생겼다고 하셨다.“과연 기도만 하면 되는가?”쿠바에서의 신앙은 매우 간절하고 삶을 건 것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쿠바인들의 삶에 도움이 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신앙을 믿지 않을뿐더러 잘은 모르지만 신앙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신이라는 종교라는 조금은 막연할 수 있는 것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살아가는데 정신적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2. 한국 사회가 바라본 한국교회의 위기1) 수적 감소 (오히려 타종교 신봉자는 늘어남)2) 신뢰도 감소3) 지도자들의 도덕적 해이4) 사회적 영향력 감소5) 기득권 세력으로의 편입6) 현상유지와 이기적 집단의 모습7) 위기 대처 능력 문제3. 한국 사회의 목회적 현실1) 이분법적 사고- 신앙과 삶의 분리 (유리 현상)2) 성공 지향적 구조-기업경영식 (목사-교인=CEO-Client)-인기목사>진실된(?)목사 →교인들에게도 책임 있음.3)진리 독점 구조-배타성, 독선적 모습-비타협적 순교 강요4. 무엇이 문제인가1) 기독교 지도자들의 측면에서-구도자 의식 부재-자아정체성의 혼란-신학과 목회현장의 불연속성2) 교인-참여부재와 방관-이익추구5. 희망은 없는가?1) “남은자 의식”으로 패배주의 극복2) 예수 정신 회복(덜어냄의 삶: 목사님은 자신의 삶을 덜어냄으로써 특히 강남에서 목사를 하고 계시 는 요즘에는 강남 부자들이 변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3) 겸손, 낮춤, 포용, 타협
“과학 기술” 시대의 인문학-일시:2009년 3월 17일-김영식 교수 (동양사학과 교수)오늘날에는 인문학과 과학은 흔히 서로 상반되고 대립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 이과로 이분화 하여 거의 격리하여 수업한다. 그러나 인문학과 과학의 본질상, 반드시 두 가지가 상반되거나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역사상으로도 두 가지가 분리되지 않았고 오히려 함께 연구되었다. 예를 들면, 주희 나 이황, 이이 또 뉴턴, 보일, 데카르트 등의 학자들은 철학, 역사, 신학, 자연과학 등에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인간과 세계의 여러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오늘날은 과학기술이 고도로 전문화되고 또한 인문학과 그 용어가 전문화 되는 등 서로 간의 유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인문학에 속하는 사람이 과학기술에 대해 무지한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적 추세이나 특히 우리나라에서 심하다. 전통시대의 동서양에서는 자연세계와 과학적 지식에 대한 탐구가 심화된 인문적 추구로 여겨졌다.‘인문학’ ‘과학기술’ 이들 사이의 분리는 서양의 과학혁명기에 시작되었다. 과학이 점차 전문화되면서 일반 지식인들로부터 유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일반 지식인들은 여전히 과학 지식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과학과 일반 지식인들과 과학의 유리 상태가 심화, 고착화되었다. 인문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고전과 교양 위주 교육의 도덕적 우위를 내세웠고,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지적인 우위와 실용적 가치를 주장했다. 이에 따라 일반지식인들은 점점 과학지식을 전문 과학기술자들에게만 맡기고 자신들의 관심대상으로부터 제외시킨 채 무시해 버렸다.동서양 전통시대의 모습은 ‘인문학의 위기’) 를 겪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과학기술은 이제 우리 사회의 일부가 되어 현대인의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인문학자들은 과학기술을 제외시키고 연구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인문학은 과학기술을 반대하고 회피하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을 포용하고 이해해야 한다.‘인문학’은 어떤 목적과 성격을 지니는 학문인가? 인가의 삶에 대해서 다루는 학문이라면 생물학과 경제학과 같은 학문도 인문학인가? ‘과학적’이 아닌 분야인가? 이렇듯 인문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하기 힘들어진 것이 ‘인문학적 위기’의 중요한 측면이다. 오늘날 인문학은 소극적으로 정의되고 있다. 분야들이 전문화되어 분리되면서 남은 영역들이 ‘인문학’으로 분류되고 이마저도 점점 빠져나가면서 인문학은 ‘결핍’의 증세를 보이고 있다.그렇지만 인문학과 과학기술이 항상 격리되어 온 것은 아니다. 인문학은 과학기술이 만들어내는 폐해를 지적함으로써 이에 대한 해결에 기여해왔다. 과학기술 또한 스스로의 발전을 거듭하면서 과학기술의 오류를 찾아내기도 하고, 과학과 인간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에 기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기술과 인문학이 서로에 저항하거나 외면할 수는 없다. 이 두 가지를 연결하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주어진 과제이다. 그러나 남이 해주기만을 기다렸다가 주어진 해결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수동적이다. 우리나라 인문학계에서는 새로운 대상에 대해 새로운 방법론을 사용하자는 시도, 기본은 지키되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 추구하기 등과 같은 해결방안이 제시되고 있다.두 가지가 분리되지 않았던 전통시대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비현실적이며 불가능하다. 설령 돌아간다고 해도, 그 상황에서 두 가지의 연결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틀을 모색해야 한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단순한 만남을 넘어서는 수준의 연결이 필요하다. 먼저, 과학기술을 쉽고 재밌게 해 주는 작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작업에도 한계는 있겠지만 과학기술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인문학자가 그 어려운 내용의 전문가가 되어 경쟁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인문학자든 과학기술자든 자신의 영역을 지키되 언제든 만나서 필요한 것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인문학이 과학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특이한 일이 아니다. 당연히 인문학의 일부여야 함에도 배제시켜 온 것을 포함시키는 것일 뿐이다.그러나 이 둘을 연결시킬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고립된 지식이나 단어, 물체만을 그냥 가져다 쓰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엔트로피’ ‘양자’ 와 같은 인문학에서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과학기술 용어들을 가져다 써서 대부분 오용하고 있다.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차라리 이해하기가 비교적 쉬운 부분의 지식을 보다 깊게 이해하고 자신의 사고 속에서 용해시켜야 한다. 또 우리는 ‘통섭’ 과 같은 용어를 쓰면서 두 학문을 연결 짓기도 한다. 이 같은 방식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층위이다. 따라서 이 둘을 대칭적으로 통합,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단순한 만남의 성격을 넘어서야 한다.
탈북자 문제의 기본 인식과 우리의 대응사회과학대학 사회과학계열2009-10309 강푸름1. 서론1.1 북한 식량난과 북한 난민의 발생1.2 북한 난민의 심각한 인권침해2. 본론2.1 재외 탈북자의 실태와 북한정부의 대응2.1.1 재외 탈북자의 현황 및 발생원인2.1.2 재외 탈북자의 체류 유형2.1.3 재외 탈북자에 대한 북한 정부의 처벌2.2 탈북사태의 갈등과 협력2.2.1 중국의 입장2.2.2 통일전략으로써의 탈북자문제3. 결론1. 서론1.1 북한 식량난과 북한 난민)의 발생북한은 에너지와 원자재의 공급을 사회주의 국가와의 교역에 의존해 왔다. 그런데 1990년대 초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권이 해체되면서 에너지의 공급에 차질이 생기고 북한의 경제는 치명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다. 에너지의 위기는 북한의 전 산업을 마비시켰다. 연쇄적인 산업의 마비로 식량생산이 감소된 데다가 구소련과 중국 등 외국으로부터 싼값에 들여오거나 외상으로 들여오던 곡물이 국제가격으로의 거래 및 경화결제가 요구되면서 곡물 수입이 대폭 축소되는 바람에 북한의 식량위기는 급속히 확산되었다.그 결과 북한의 중앙 배급 시스템에 의한 식량 공급이 큰 차질을 빚게 되는데, 「북한 식량난민 1,694명 면담조사 결과보고서-북한 식량난의 실태」)에 의하면 조사대상자의 64%이상이 1994년도에 이미 배급이 끊어졌다고 증언함으로써 북한의 식량배급 시스템이 큰 홍수 피해가 있었던 1995년 이전에 이미 심각한 붕괴상태에 접어들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북한 내를 유랑하면서 연명하던 주민들 중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최후의 선택으로 조·중 국경을 넘는다. 중국 연변을 중심으로 한 동북3성 지역에는 약 180만 명 정도의 조선족이 살고 있어서 북한 주민들이 중국에 와서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식량난이 장기화되면서 몇 차례 도움을 준 조선족도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안 된다. 그래서 그 이후로 중국에 넘어가는 북한 난민들 중 스스로 일을 해서 돈을 벌거나 중국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뿐만 아니라 북한 난민들은 중국에서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인권침해를 당하고도 어디에도 호소하지도 못한 채 열악한 조건 속에서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중국의 공안은 수시로 북한 난민들에 대한 수색을 벌여 난민들을 체포하여 북한으로 강제송환 시키고 있으며, 이를 넘겨받은 북한 당국은 북한 난민들에 대한 가혹한 취조와 엄힌 처벌을 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북한 난민들의 규모와 분포, 생활 상황 및 이들에 대한 갖가지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통일 문제와 관련시켜 이해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이 글을 통해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2. 본론2.1 재외 탈북자의 실태와 북한정부의 대응2.1.1 재외 탈북자의 현황 및 발생원인1990년 이후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이나 러시아 등 제 3국에 불법 체류하고 있는 탈북자들은 상당수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나, 불안정한 신분상 공개적으로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규모 등 정확한 실태파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탈북자의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다. 이제까지 정확한 공식집계의 발표도 별로 없거니와 간혹 추정 통계치를 내놓아도 그 신빙성을 믿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현장의 상황을 토대로 한 추정이 주로 발표되어 왔으며, 정부 관계자와 민간단체 실무자의 추정치 간에 상당한 편차가 있어온 것도 사실이다.) 1990년대 말 전체 탈북자에 대한 규모를 추산하는 과정에서주로 중국지역의 탈북자 규모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었으며, 중국에서 국경이동 북한주민을 지원하는 민간단체 활동가 및 관련 연구자들은 중국 내 탈북자들의 수를 약 10만~40만 명으로 추정하였다.)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탈북자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상황실태조사의 일환으로 연구한 보고서에 따르면 탈북의 직접 원인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여전히 식량문제를 포함한 생존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원에 라는 응답이 크게 늘어나고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라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는 최근 북한의 식량난이 과거 1990년대 말에 비해 나아진 것이 이유라고 여겨진다.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북한주민들에게 북한 외부에 북한보다 나은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탈북동기의 주요 동기에 대한 절반에 가까운 응답이‘보다 나은 삶을 위해’라는 것은 넓게 보면 북한의 경제난과 이와 관련한 생존의 어려움이 주요 탈북동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정치적 억압 때문에’라는 응답이 20%나 되는 것을 볼 때 북한 내 인권상황이 주민의 생존에 얼마나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2.1.2 재외 탈북자의 체류 유형재외탈북자의 체류 유형은 크게 친척의존형, 구직형, 구혼·동거형, 인신매매형(매춘 및 강제노동) 등으로 다양해져왔다. 탈북사태가 1990년대 중반부터 십여 년에 걸쳐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중국 내 국경이동 북한주민들의 체류실태에도 상당한 변화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탈북자들은 중국에 친척이 있을 경우 친척의 도움을 받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 대부분의 친척들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였으나 시간이 경과하고 북한의 식량난이 장기화되자 중국 내 친척들도 이들을 감당하기가 버거워졌을 것이다. 따라서 친척을 찾아가더라도 친척의 소개를 받아 일자리를 얻고 돈을 버는 탈북자들이 늘어나게 되었을 것이다.한편 북한의 식량난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중국에 친척이 없더라도 생존을 위해 무작정 국경을 넘는 북한 주민들이 늘어났을 것이다. 이들은 국경을 넘어 이들의 상황에 동정적인 중국 조선족들의 도움을 받거나 그들의 집에서 일을 해주고 약간의 돈을 받았을 것이다.‘좋은벗들’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1998년 말~1999년 초 국경을 넘은 북한주민 중 여성의 비율이 75.5%로 매우 높았다. 이들 중 51.9%는 중국남성과 동거형태로 생활하고 있었다. 식량난이 장기화되면서 북한여성 중 중국에 시집을 가거나 팔 탈북주민의 중국체류가 장기화되면서 이들의 체류형태도 변화하게 되었다. 초기와는 달리 탈북주민들은 친척이나 조선족들 집에서 기거하는 비율보다 현지인 가정에서 생활하는 비율이 높아지게 되었다. 탈북주민들이 현지어를 익히고 취업하는 등 중국 내에서 적응할 경우 셋집을 얻어 기거하는 경우들까지 생겨났다. 한편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탈북여성이 중국체류중인 한국남성과 동거하다가 국내로 입국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는 운이 좋은 경우이고 북한 여성은 일부는 인신매매되고 있고 이 사례는 늘어나는 추세이다. 중국내 탈북자의 75%를 차지하는 여성들은 현지 남성들과의 동거를 통하여 은신처를 확보하는 것이 일반적 삶의 방식이지만, 자신들의 불법적 신분 때문에 인신매매를 통한 심각한 성적 착취와 억압 속에서도 저항 없이 이를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2.1.3 재외 탈북자에 대한 북한 정부의 처벌현재 북한의 정치체제는 우리식 사회주의 노선에 따른 확고한 국가이념에 의해 움직이는 군사체제이다.) 남북분단과 정권수립 이후부터 현재까지 북한주민 중 일부가 자유와 빵 등을 얻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탈북을 시도해왔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식량난과 경제난이 심해지자 북한주민들은 집단으로 탈북을 시도하여 탈북자의 수가 크게 증가하고 신분 또한 다양해졌다. 그런데 탈북을 했다가도 중국 공안 등에 잡혀 북한으로 강제 송환될 경우 이들의 처벌은 어떠할까?원래는 탈북시도행위에 대해 가장 나쁜 반역으로 보아 강하게 처벌했으나 강제로 송환된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고조되면서 북한당국은 강제 송환자에 대한 처벌은 완화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1995년 이전에는 송환된 탈북주민들은 정치범으로 간주하여 정치범수용소에 특별관리하고, 가족들을 통제구역으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1993년부터는 탈북자를 공개처형하는 등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였고 탈북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해서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상에 반대했다는 죄목으로 전원 정치범수용소로 수용하였다.1995년 경제난으로 사회질서가 이완되면서 국경이동 북한주민에 대한 처벌도 현저히 약화되었다 또한 북한 주민의 인권침해 실태가 국제사회에 부각되면서 탈북자에 대한 처벌이 보다 은밀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송환된 탈북자들을 보위부에서 수감하고 취급하는데 조사를 통해 밀수 및 단순월경자는 인민보안성이 취조하도록 하여 도집결소에서 강제노동을 시키고 한국인, 교회, 외국인과 관련이 있는 탈북자는 ‘보위부대상’으로 분류되어 조사를 받다가 관리소나 교화소로 넘겨진다. 이와 같이 일반적인 도강행위에 대한 처벌을 약화된 반면 한국행을 시도하다가 적발된 경우에는 이전과 같이 정치범으로 처벌하고 있다.2.2 탈북사태의 갈등과 협력2.2.1 중국의 입장중국은 중국내 불법으로 체류하는 탈북자들을 검거하고 이들을 북한에 강제 송환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 내에 불법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계속해서 수색하고 있으며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북한에 보내고 있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난민에 관한 문제는 1951년 난민협약 제 33조 1항에 따라 강제송환금지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으며 이 원칙은 비호신청 접수국이 난민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박해의 위험이 있는 국가나 지역으로 귀환 내지 강제송환을 금지시키는 규정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중국은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간주하지 않고 있다. 단지 경제적 어려움으로 북한을 이탈하여 중국에 체류하고 있는 불법체류자로만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탈북자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할 것인지 단순한 경제적 이유로 볼 것인지에 관한 문제이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은 과거의 혈맹이라는 관계와 오늘날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잡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 발전을 추구해야 하는 대국으로써 또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국가로써 무조건 북한을 포용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동맹에 상응하는 중국과 북한의 동맹을 고려할 때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무시하여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다.
소프트 파워를 활용한 통일이 필요하다1. 서론1.1 오늘날의 남북관계북한은 지난 4월 15일 개성공단 토지임대료와 임금 세금 등 기존 계약들의 무효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자신들이 새로 제시할 조건을 남측이 무조건 받아들일 의사가 없다면 공단에서 철수해도 좋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 정부는 북한이 개성공단과 관련한 법규 및 기존 계약의 무효를 갑작스럽게 선언한 데 대해 무책임한 조치라고 비난하고 북한의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남북관계의 청신호였던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등 최근 남북관계가 빠르게 경색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떨어져 가고 있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사는 한국의 현대인들에게 통일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구시대적 이념에 집착하는 기성세대의 편집증적 행태로 비춰지기 십상이다. 우리 시대에 통일은 꼭 필요한 것인가? 왜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경제적으로 부담이 큰 통일을 자꾸 끄집어내는가. 분단과 통일문제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은 점차 약해지고 있으며, 특히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통일에 대한 관심은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가 2008년에 실시한 통일의식조사 자료에 따르면 51.6%가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25%는 “필요하지 않다”, 23.4%는 “그저 그렇다” 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의식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통일을 서두르기보다 여건이 성숙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이 70.6%를 차지하며 “대가를 치르더라도 가능한 빨리 통일”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10.6%에 불과하다. 20대의 경우에는 20%가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했으며, 45.4%는 “통일이 남한에 도움(이익)이 안 된다”, 그리고 72.5%는 “통일이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처럼 전쟁을 겪은 세대가 대부분 사라져감에 따라 오늘날에는 국민들이 통일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부담스럽게 여기는 추세이다. 심지어 요즘 젊은이들은 군대를 가는 것을 통해 겨우 분단의 상황 슬픔이나 통일의 필요성을 아예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분단의 상태가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그러나 현재 남북한이 정전상태이며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한, 북한의 변화에 대한 대비책을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한다. 혹자는 왜 하필 남북관계가 이렇게 좋지 않은 때에 통일을 운운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경색과 더불어 북한의 정권교체로 인한 불안정성은 언제라도 북한 정국이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 비정상적 상황이 일상이 되어버린 북한의 현실을 볼 때 이제는 통일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통일을 말할수록 통일은 멀어 진다’는 ‘회피론’과 통일비용의 사회적 경제적 부담을 우려한 ‘부담론’ 등으로 인해 ‘통일 공포증’이 확산되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반적 개념의 위기관리 방안에 더해 2009년 현재의 북한 및 주변 상황을 감안한 현실적 통일 과정에 대한 논의이다.1.2 통일의 당위성현행 헌법 제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은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라고 정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최고의 법인 헌법에도 언급되어 있는 ‘통일’의 필요성은 무엇일까?통일을 이루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각종 이익 등이 통일이 필요한 이유로 꼽히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한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 라는 이유를 말한다. 이것은 민족주의 이념이 내재된 발언이다. 반면 오늘날, 미래를 위해 민족주의는 극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민족주의의 속성이나 현실적 기능을 둘러싼 대립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서구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민족주의를 비판해왔다. 그렇다면 21세기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한 개념인가? 이 개념의 유효성에 따라 통일의 당위성이 정해질 것이다.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민족주의란 민족에 기반을 둔 국가의 형성을 지상목표로 하고 이것을 창건(創建) ·유지 ·확대하려고 하는 민족의 정신 상태나 정책원리 한편 한반도에는 적대적 분단체제가 아직은 엄존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민족문제의 평화로운 해결은 21세기 한국의 최대 과제이며 이것은 다른 사회와는 달리 독특한 형태의 민족적 사고, 민족적 정책, 민족주의적 태도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한국만의 특수한 민족주의가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민족주의가 “우리 민족끼리”로 치달아 매우 위험한 경우에 이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민족주의의 위험성을 충분히 자각하면서 현재의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데 민족주의를 유효하게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한국민족주의는 자신을 통제하고 성찰할 상위의 가치로써 평화를 설정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1.3 새로운 통일방안의 필요성현재 한국정부의 공식적 통일론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다. 1989년에 발표되어 1994년에 일부 수정된 이 방안은 남북관계가 화해협력단계로부터 남북연합단계를 거쳐 최종적인 통일국가단계로 이행하는 3단계 점진적 이행론에 근거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항상 논란이 있었지만 이 통일방안에 대해서는 모두가 큰 논쟁 없이 받아들여 왔다. 그런데 이 통일방안에서 ‘1단계와 2단계의 차이가 무엇인가’, ‘1단계는 굳이 단계로 한정될 것이 아니라 통일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닌가’ 등과 같은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와, 지난 20년간의 한반도의 변화를 반영하여 새로운 통일방안의 모색이 불가피하다.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하고 두 정부가 60년 이상 지속됨으로써 각자의 국가성이 강화됐고, 남북 간 경제력과 시민사회역량 등 격차가 커지면서 남북의 이질화도 점차 심화되고 있다. 또 21세기의 한국은 다문화 가정이 급증하고 10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거주하는 나라가 된 만큼 전통적인 단일민족국가를 상정한 기존의 통일방안에서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열린 네트워크형 통일론으로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이렇듯 남북한 각국의 국가성 강화와 오랜 분단으로 인한 이질성 심화, 세계화 추세 등에 따라 지난 20년간 남북한 사회에 므로 통일 방안 또한 지난 20년의 경험을 반영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2. 본론2.1 남북관계의 성격북한을 다루는 데 있어서 항상 이견이 많다. 도대체 남북한 관계의 본질은 무엇일까? ‘관계’란 당사자 사이의 행위방식이 반복적으로 유형화되어 규범이나 원칙 등으로 안정화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어떠한 관계라고 하면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어 예측이 가능하다. 그런데 남북관계의 성격은 일반적인 관계가 가지는 성격보다 복잡한 것 같다.북한 관련 연구자들은 남북관계의 성격을 크게 적대적 관계, 민족적 특수관계, 인접 국가관계 이렇게 세 가지로 규정한다. 먼저 적대적 관계는 정부에서 국방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써 언제든지 전쟁의 상대자가 될 수 있는 관계이다. 흥미로운 것은 남북관계가 단순히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경쟁과 함께 ‘적대적 의존’상태라는 것이다. 남한과 북한은 서로를 적대시하여 분명히 등을 대고 있지만 또 서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분리와 연결이라는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 민족적 특수관계는 통일부의 입장인데 남한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이 한 민족의 관계라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했던 민족주의가 내재된 관점이기도 한데, 남북한은 특수한 민족관계를 내세워 공조 및 협조를 시도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외교부가 국가관계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가가 기본 단위인 유엔에 동시 가입을 한 것이 대표적인 예로써 남북한이 교류할 때 대부분 일반화된 국제관계적 절차를 거친다. 남북관계는 이러한 세 가지 성격이 중첩되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독특한 관계가 형성된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분단이라는 슬픈 현실이 존재한다. 이러한 남북관계의 성격을 알고 잘 조정해서 남한과 북한을 통일로 이끌 수 있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2.2 기존의 통일방안남한과 북한 측에서 각각 여러 사람들이 공감하는 통일 방안을 마련하여 따르려고 노력했다. 기존의 통일방안은 크게 남쪽에서 주장하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 북쪽에서 주장하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로 방안은 민족공동체의 회복 발전이라는 통일 개념 하에 자유 민주주의를 통일철학으로 자주, 평화, 민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완전한 통일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북한에 대해 동반자적 관계를 인정하며 남북 간 교류를 통한 화해협력의 구축을 바탕으로 남북연합에서 통일국가를 완성하는 3단계 점진적 이행론에 근거한다. 한편 북한은 전한반도의 공산화라는 통일 개념 하에 주체사상을 통일철학으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바탕으로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의 연방 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과도체제 없이 바로 연방제를 실시하며 교류와 협력은 연방제 실시 이후로 미루자는 급진적이고 일괄타결식의 접근자세이다.남한과 북한이 주장하는 방안은 각각 연합제와 연방제로 연결된다. 그러나 북한이 주장하는 방안을 잘 살펴보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인데 이는 실질적으로 남한이 주장하는 연합제와 크게 차이가 없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명확하게 제도적인 차이점을 대조하기 위해 이론으로 분류되는 연합제, 연방제, 흡수통일, 그리고 무력통일을 기존의 통일방안의 방법으로 설명하겠다.연합제란 참여 당사국이 국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서로 협력하는 협의체 기구를 말한다. 국제적으로는 독립국가연합(CIS), 유럽연합(EU), 아세안(ASEAN)과 같은 기구들이 연합제 방식으로 협의체를 구성·운영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연합제 기구에 속한 회원국들은 외교와 군사권 등 중요한 국가부문에서 각국의 독립성을 보유한다. 연합국가는 수뇌회의와 같은 상징적이고 형식적인 연합기구를 구성하여 운영한다.한편 연방제는 연합제보다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강화된 형태의 체제 결합을 의미한다. 연합제에서 중앙기구는 단지 형식적인 수단에 불과하지만 연방제 하에서는 중앙에서 국가의 중요한 여러 부문을 통제한다. 중앙의 통제수준이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연방제로 규정하느냐 하는 문제는 학자마다 다르게 주장하고 있으나, 연방제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외교권과 군사권을 중앙정부가 통제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