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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서론? 도시 형태에 영향을 미치는 구성요인? 도시공간 패턴의 세가지 측면? 대전시의 생성과 성장? 대전의 공간 패턴 (물리적?환경적 측면)? 자연?환경적 요인? 인문?사회적 요인? 물리적 요인- 중심 시가지의 형성과 변화- 중심 시가지의 가로망 변화? 서론도시의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그 도시가 발전해온 과정을 추적하는 연구는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도시는 또한 그 지역적 특성에 따라 각각의 배경과 성격을 지니며, 발전되어온 양상에 따라 도시의 크기, 성격, 인간의 행태 등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 도시들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따라서 대전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도시생성과 발전과정, 공간적 특색, 사회적 영향 등을 파악하여 대전의 도시 공간 패턴이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지 분석하고 지금의 도시를 형성하였는지 검토해보겠다.? 도시 형태에 영향을 미치는 구성요인도시내 형태에 영향을 미치는 구성요인은 물리적 요인과 인문적 요인으로 대별할 수 있다. 물리적 요인은 거시적 차원에서 자연환경, 가로체계형태, 스카이라인 등이 있으며, 미시적 차원에서 건축물, 도로, 가구(block), 필지 등을 들 수 있다. 인문적 요인은 기능 및 구조적 차원에서 지가, 밀도(건축밀도, 인구밀도), 계층, 토지이용패턴 등이 있으며, 제도적 차원으로 도시계획관련된제도, 개발사업 및 정책 등을 들 수 있다.? 도시 공간 패턴의 세가지 측면규범적?문화적 측면은 종교나 관습, 전통적 원리를 중심으로 계획된 패턴으로서 풍수(지리), 방위(신앙), 음양오행 등 동양적, 원리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측면이다. 기능적?조직적 측면은 기능, 용도 등을 강조하여 계획된 도시 공간 패턴으로 공간 기능과 토지이용, 계획적 공간 구성 등 서구적, 합리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다. 마지막으로 물리적?환경적 측면은 물적 계획, 자연환경 등의 영향을 받은 도시 공간 패턴으로 물리적 도시계획, 자연환경을 고려한 도시 공간의 구성적, 형태적 자치를 중심으로 하 1905년 경부선 철도의 대전역 개통으로 시작되어, 이후 100여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나라의 6대 도시중 하나로 성장하였으며, 정부청사 등 서울의 중앙행정기능이 대전으로 이동함에 따라 국토 중심부의 핵으로서 그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그러나 중심시가지의 경우 신시가지인 둔산지역 형성에 따른 기능의 변화로 도시형성 이후 행정?상업을 담당하고대전시 도시성장 연혁있던 기반이 약화되었고, 도심공동화 현상과 함께 쇠퇴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이 구도심부 지역을 상업중심지역으로써 그 발전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실정이다.대전은 일제강점기 철도가 부설되므로써 신도시가 형성된 후 급속하게 확장을 거듭하여 왔으며 행정구역의 확대뿐만 아니라 각종 도시개발사업의 추진을 통하여 도시기반시설의 확충과 토지이용의 고도화 등으로 도시 성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또한 대전시는 자연상태의 촌락에서 철도역 개설에 의하여 소도읍이 형성되고, 도청 이전으로 중소도시로 규모가 확대되었으며 이후 광역시 승격에 따라 현재의 대도시로 발전하였다. 도시공간구조는 전 시기중 중소도시 규모일때의 전체통합도와 국부통합도가 가장 높으나 시역 면적이 6배 이상 커지고 공간수도 9배 이상 확충된 광역화 이후에는 꾸준한 공간수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국부통합도는 10% 정도 감소하며 전체통합도는 거의 절반수준으로 낮아진 후 각각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도시의 평면적 확대에 따라 중심지가 갖는 공간적 통합성, 중심성이 약화되는 경향을 전반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소규모 도시의 강한 중심성과 대비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대전의 공간 패턴? 자연?환경적 요인대전은 차령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위치한 분지지형으로 동?서?남쪽에 산지가 현저히 발달해있다.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이고 중앙부가 골판을 이룬 지형을 분지라고 하는데, 한강?낙동강?금강 등 우리나라의 주요 하천 연변에는 이들 하천과 그 지류에 의해 내륙분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들 분지는 예부터 우리나라 지방고을의 중심지가 되어왔으 발달하고, 이 충적지와 대전을 둘러싸고 있는 산지 사이에서는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가 발달하고 있는데, 이것은 대전의 농경, 거주, 산업활동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지형이 된다.평탄한 지형이 충적지였던 대전천 주변은 도시가 형성되고 발전하기에 적합한 지형적 요인을 갖추고 있었다.? 인문?사회적 요인대전의 조선시대 자연취락 모습대전지방은 씨족중심의 취락이 발달한 곳으로서, 조선시대 후기까지 취락의 형태로 조성되어 있었으나, 대전천 주변의 넓은 평야는 잦은 범람으로 인해 취락조성에는 부적합하였다. 1932년 발간된 ?충청남도발전사?에 따르면, “원래 대전에 일본인이 이주해온 것은 1904년 당시 철도공사 관계자들이 들어온 것이 처음이며, 그때에는 오늘날 온성을 극하는 원동거리는 잡초가 무성한 들판으로 한국인 거주자도 겨우 수십호가 있음에 불과하였고 현재 백원이상을 부르는 시가지도 그저 1,2전으로 매매되었을 정도이며 1904년 말 일본인의 거주자수는 겨우 188인이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일본인들에게 도시조성에 있어서 유리한 조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즉, 특별히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없었으므로 일본인에 의한 신흥도시로서의 도시계획을 추진하기에 큰 저항 없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그러나 이러한 지형적?인문적 배경보다 도시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지배의 수단으로써 부설한 경부선과 호남선의 개통이었다. 일본이 1898년 한국정부와 경부철도합동조약을 체결하고 1년여에 걸친 1,2차 답사를 통해 대전이 경부선 노선 상에 위치하게 되어, 1904년 대전역이 완공되었으며, 1905년 1월에 개통되었다. 이러한 경부선부설공사 및 개통과 고종 32,33년에 단행된 지방제도개편으로 인해 대전은 대량의 인구유입이 이루어졌다. 특히 일본인들의 증가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경부선 철도부설공사 관계자 88명이 1904년경 거주하면서부터 시작되어 일본인들은 1905년 11월 거류민회를 조직하고 인두세와 호별세를 부과하여 거류지 행정비용1911년 7월 11일 대전-연산간 39.9km, 1914년 1월 11일 목포까지 총 293.6km가 완공 개통되었다. 이것은 도시형성의 기틀을 마련한 계기가 되었으며, 호남선의 개통은 남북방향에서 동서방향으로 도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축을 형성시킨 중대한 사회적 계기였던 것이다.? 물리적 요인대전의 각 시기별 건축물의 입지를 살펴본 결과, 조선시대 후기까지 삼성동과 원동 일부지역의 자연촌락은 일제강점기 경부선의 부설과 함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정동, 중동, 원동, 인동, 은행동은 대부분 행정?상업지역으로, 선화동과 대흥동은 주거?교육지역으로 삼성동은 주?공 혼용지역으로행정구역 확장도발전해나갔다. 삼성2동의 경우 1970년대 산업단지가 대화동에 건설되어 공업지역에서 주거지역으로 변화해 나갔다.일제강점기 1912년 점차 동서방향으로 주거지역 및 상업지역이 확대되었으며, 1914년 개통된 호남선 주위에는 군사시설이 들어섰다. 1932년 충청남도 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함에 따라 대전역에서 도청에 이르는 직선대로 주변에 상가가 형성되고, 본격적으로 선화동과 대화동에 이르기까지 주거지역이 확장되었다. 해방이후에는 주거지는 점차 토지구획정리사업과 함께 외곽지역으로 확산되고 중심시가지는 상업지역으로 변모해나갔다.대전 중심시가지는 우암로?명정로?대흥로?삼성로?중앙로?대종로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가로는 그 가로변에 입지한 중요 건축물의 기능에 따라 성격을 달리한다. 중앙로?대종로는 일제강점기 금융시설 및 상가 문화시설이 중점적으로 입지하여 도시성장을 주도하였으며, 상업가로로써 그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로?인효로는 일제강점기 초기 관공서와 금융기관이 집중적으로 들어서 행정의 중심도로였으나 도청이전과 함께 그 기능이 서서히 쇠퇴하고, 재래시장과 상가들이 자리잡음으로써 상업가로로 그 성격이 변모하였다. 명정로는 1930년대 행정의 중심도로였으나 현재 그 기능을 잃고 성격변화를 모색중이다. 중심시가지는 1980년대 후반까지 대전의 실질적인 중심부로서 행정?업무?금융?상업의 중심본인 거류민회에 의해 대전역 주변으로 신시가지가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대전시가지는 철저하게 일본인을 위한 것이었다. 개발지를 미리 알아 이를 전혀 모르는 한인지주에게 땅을 헐값으로 구입한 후 상가를 형성하여 장사를 하거나 임대를 하면서 경제적인 부를 형성하였던 것이다.시가지의 발달은 1905년 3월 일본인에 의해 공주군수의 허가를 얻어 대전시장에서 대전역까지 도로를 신설하면서 시작되었다. 또한 시가화에 있어서 중요시되었지만 도로의 역기능 즉 국방상 이유 때문에 조선시대까지 더디게 이루어졌던 도로개수작업은 일제에 의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대전면으로 지정된 인동?정동?중동?원동은 전형적인 격자형으로 계획되었고 대전면을 제외한 부분은 전답의 형태로 거의 시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대동천의 자유곡류가 확실히 드러나고 있어 그 일대의 잦은 범람을 추측할 수 잇다. 치수공사가 이루어지기 이전의 소제호의 모습과 ‘섬’형태로 단절되어있는 현 은행동, 선화동 일대를 확인할 수 있다.1960년 목척교1910년 목척교1930년 중앙로인구의 증가와 도로의 개설, 각종 기관과 단체들의 설치로 인하여 1910년 이전 작은 촌락에 불과하던 이 지역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으로 대전시가지가 형성되기 시작한 1910년경부터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기 전 1920년대의 시가지는 대전천 동부에 집중되어 있었다. 대전역 앞 부근인 원동,중동,정동 지역에 일본인 상가가 번창하여 일본식 시가를 이루었는데 이러한 시가는 1912년 동부지역과 서부지역을 연결하는 목척교가 가설되자 대전천을 지나 은행동과 선화동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대전천 제방공사를 착공하고 대전천을 매립하여 대지화 하였으며, 대지화 하였으며, 1913년 공주-대전간 도로가 개통되어 타지역에서의 물류의 유통도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일본인은 대전에서 정미, 제사, 피혁 등 국내 농축산업을 원료로 하고 한국인의 저임금을 이용할 수 있는 경공업을 발달시켰다. 이와 관련된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