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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학도 관점에서의 박물관 답사 레포트 보고서 (고리자루칼에 관하여)
    1. 조사 유물의 명칭- 고리자루칼(환두대도)2. 조사유물의 개요- 보물 제776호인 고리자루칼(환두대도)는 손잡이 끝에 둥근 고리 장식이 달린 큰 칼이다. 칼날이 양측에 나 있는 것을 검이라 하는데 반해, 도는 칼날이 한 쪽에만 나 있는 것을 말하며 도중에서도 손잡이의 끝장식이 둥근 테를 이룬 큰 칼을 환두대도라고 한다. 환두대도에는 환두의 형태에 따라 그냥 둥근 테로만 된 민고리자루큰칼, 테 안에 3개의 잎 모양 장식이 들어 있는 세잎고리자루큰칼, 테 안에 용이나 봉황의 장식이 들어 있는 용봉장식고리자루큰칼, 테가 3개의 작은 고리를 잇댄 모양으로 된 세고리자루큰칼 등이 있다. 소환두대도는 원삼국시대 이래 출토되며 가장 예가 많으나, 장식성이 뛰어난 삼엽, 삼루, 봉용문 환두대도는 5세기 중엽 이후에 출토되며 고분에 매납될 때는 그 소유자의 신분을 상징하는 보기로서 사용되었다. 삼엽문 환두대도는 가야나 신라의 양 지역에서 출토되나, 삼루 환두대도는 신라, 용봉문 환두대도는 가야의 지배자들이 주로 소유하고 있었다. 백제의 무령왕릉에서도 가야와는 형식이 다른 단룡의 용봉문 환두대도가 출토된 바 있다. 민고리자루칼은 고리만 있을 뿐 아무런 장식도 없는 것으로 가야지역의 큰 무덤에 가장 널리 부장되었다. 세잎고리자루칼은 둥근 고리 안에 세 갈래의 풀꽃모양 장식이 있는 것으로 고구려의 무덤에서도 나오고 있다. 세고리자루칼은 세 개의 작은고리가 산봉우리모양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으로 거의 대부분이 신라문화권지역에서 나왔다. 가장 화려한 용봉무늬고리자루큰칼은 고리 안에 용과 봉황의 머리를 장식하거나 손잡이에 용무늬를 새기는 칼로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백제 무령왕릉, 옥전 M3호 무덤에서 나온 것이 유명하다.3. 조사유물을 선택하게 된 이유 및 동기- 우선 수많은 유적들 중에서 어떤 문화재가 가장 나의 전공과 적합한지를 최우선적으로고려했지만 생각만큼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나름대로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았더니 부산에서는 금속과 관련된 것은 무형문화재가 가장 많았고 이는 된 문화재가 어떤 것이 있는지를 종합해서 검토 해본 결과 집에서도 가깝고 금속과 관련된 철기 문화재도 많았기 때문에 복천박물관이 최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복천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철기 관련 문화재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던 중 ‘고리자루칼’이라는 문화재가 사진을 통해 봤을 때는 오래된 세월에 비해서 꽤 화려해보였으며 특히 손잡이의 끝장식이 상당히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그리하여 고리자루칼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로 결정했다.4. 조사방법론(전반적인 내용으로 서술 : 예를 들면 현장조사 과정, 문헌조사 방법, 자료의 수집 방법 등등)- 현장조사로써 처음에 계획했던 것은 10월, 11월에 걸쳐서 한 번씩 두 차례에 걸쳐서 박물관에 가기로 했으며 지난 10월 29일, 중간보고서를 작성하기 전에 학교를 마치고 박물관으로 갔다. 어릴 적에 가본 적은 있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처음 가 보았다. 그 때와는 느낌이 확연히 달랐고 박물관과 근처에 고분군까지 포함하면 생각보다 박물관이 넓었다. 10월에 간 것은 고리자루칼이 사진으로 본 것과 실제로 본 모습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고리자루칼에 대한 박물관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고 11월에는 주중이 아니라 주말에 시간을 내서 박물관에 한번 더 갔다가 주변 고분이나 야외전시장을 가보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11월에는 가지를 못했다. 그리고 부족하다고 생각된 것들은 학교 도서관에서 고리자루칼과 관련된 책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고리자루칼이 발견된 무덤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가 대부분이거나 고리자루칼에 대한 매우 간략한 설명과 사진 몇 장만 있었기 때문에 문헌조사로는 다소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고리자루칼에 대한 설명은 어쩔 수 없이 최대한 인터넷을 활용을 하기로 했으며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던 중에 고리자루칼이 복천박물관뿐만 아니라 국립김해박물관을 비롯해서 다른 박물관에도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과 함께 많이 전시되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어 조사 계획을 복천박물관 뿐만 아니라 국립김해 덩어리였다. 그러나 X선 투과촬영을 통해 고리 부분의 봉황장식과 섬세한 은상감 문양이 드러났다. 이를 통해 부장자의 신분을 추측할 수 있었고 상감기법과 문양의 종류는 미술사학적 자료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고리자루칼을 만드는 과정은 크게 철광석 채취 -> 쇠부리 작업(쇳물 뽑아내기) -> 주조(틀에 부어 만들기) -> 단조(두드려 만들기) -> 연마의 순서로 진행되었으며 그 외에 칼자루같은 경우에는 장식을 더하기 위해 금실과 금판으로 꾸몄지만 일반 병사들이 사용하던 소환두대도는 가죽끈등을 감아 사용했고 칼자루싸개 같은 경우에는 사어피(상어피)로 싸서 가죽끈으로 감는 작업으로 고리자루칼을 꾸민 경우도 있었다.복천박물관에 있는 고리자루칼이 아닌 다른 지역의 칼들은 어떤 형태로 발굴된 상태인지 상당히 궁금해졌다. 그래서 좀 더 찾아 본 결과 국립김해박물관에도 고리자루칼을 전시해놓았는데, 김해 양동리고분에서 출토된 철제의 환두대도 같은 경우에는 공격용무기의 일종으로 현재 쇠부분만 남아 있고 길이는 대략 90㎝이내이며 칼날은 복천동에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양쪽 면에 형성된 검과는 달리 한쪽 면에만 세워져 있다. 칼등은 칼끝에서부터 거의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고 칼자루 끝의 고리는 둥글게 말아서 손잡이부와 연결된 모습이며 고리 안에는 5,6세기대의 삼엽문, 용봉문 등은 장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대도는 상위계층의 부장품으로 해석이 가능하며 크기가 다양한 것으로 보아 신분, 사용 대상물에 따라 제각각 활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그리고 함안 도항리의 도항리 마갑총에서 출토된 대도도 있는데 금입사 고리자루칼이라고도 부르며 마갑총은 말갑옷이 출토되었다고 이름 붙여진 것으로 4세기 말을 전후한 시기에 조영된 목곽묘이다. 이 고분의 주피장자가 사용한 것으로 여겨지며 길이 89,7㎝, 너비 4㎝의 크기를 갖고 있다. 대도의 손잡이고리는 사각의 형상에 한 면을 둥글게 처리하였고 톱니문이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손잡이 역시 장식이 화려한데 4개의 고리가 천 옥전고분군 M3호분에서 출토된 대도로서 손잡이 고리에 용과 봉황무늬가 장식된 최고 신분자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옥전고분군에서 대표적인 수장급 무덤 대도의 길이는 82.6m이고 용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손잡이 위, 아래부와 고리, 칼집의 표현들은 당대 최고 신분자의 상징적인 위세품으로 평가된다. 비교적 최근 것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확실히 다른 고리자루칼과는 다르게 특유의 색과 부식도의 상태가 상대적으로 상당히 양호하다.마지막으로 조사 하는 중 상당히 인상깊은 칼을 발견했는데, 명칭은 글자새긴고리자루칼이며 1919년 창녕 교동고분군 11호분에서 출토된 대도이다. 대도는 길이 85㎝이고 금으로 새겨진 명문은 '상부선인 귀 도'上部先人 貴 刀)로 판독되었다. 판독문의 上部는 고구려, 백제의 부명(部名)에 보이며 先人은 고구려 14관등명 중 하위인 13번째 관등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 명문은 상부 출신의 선인이라는 관등을 가진 기술자가 만든 칼로 해석되고 있지만 제작 집단의 성격과 관련하여 상부에 사는 옛사람의 귀한 칼이라고도 해석되고 있다. 이 칼을 통해서 6세기대의 삼국시대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명문자료로서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추가적으로 고리자루에 대해서 좀 더 상세히 알아보자면 삼국시대의 무기(고리자루칼) 칼손잡이의 머리부분이 고리모양을 이루는 고리자루칼[環頭刀]은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전투용 및 의장용 무기이다. 처음에는 착장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위세품(威勢品)적인 성격이 강했으나 삼국간의 정복전쟁이 격화되는 5세기 이래로 실전용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보통 고리안의 장식무늬를 가지고 그 종류가 구분된다. 고리 안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민고리자루칼[素環頭刀], 고리 안에 잎사귀 3개를 장식한 세잎무늬고리자루칼[三葉文環頭刀], 반원형(C자형) 고리 3개를 연결시킨 세겹고리자루칼[三累環頭刀], 용이나 봉황 무늬를 하나 혹은 한쌍으로 장식한 용무늬고리자루칼[龍文環頭刀], 봉황무늬고리자루칼[鳳凰文環頭刀], 그리고 용과 봉황 무늬를 함께 장식한 용봉뿐만 아니라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적 위엄구, 혹은 정치적 결속의 상여물로 이용되기도 하였는데 특히 고리자루큰칼의 재질과 자루끝에 투조(透彫)된 다양한 무늬는 사용 계층이나 지역적인 차이를 반영하고 있어 당시 사회의 구조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세잎무늬고리자루칼은 칼자루 끝 고리의 모양이 세잎 모양의 장식을 이루는 칼이다. 세잎무늬[三葉文]는 보통 인동무늬[忍冬文, Palmette]의 변형된 형태로 이해되며 불교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세잎무늬 그 자체는 고리부위[環頭]의 호선무늬와 칼 몸 슴베[莖]의 결합에서 생겼다고 볼 수 있다.4~7세기의 용무늬고리자루칼 용무늬는 봉황무늬와 함께 고대사회에서 가장 신성시된 문양으로 주로 왕족과 같은 최고지배계층의 장식무늬로 사용되었다. 또한 칼자루가 금이나 금동 혹은 은으로 장식된 것이 많아 실전용이라기보다 권위를 나타내는 의장용으로도 많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세겹고리자루칼은 반원형(‘C’자형)의 고리 3개를 칼자루 끝에 삼각모양으로 연결시켜 놓은 칼이다. 세 겹 고리의 빈 공간은 세잎무늬를 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5세기에 들어와 재질과 형식이 다양해지면서 용봉무늬와 함께 등장한 것으로 보이며 경주지역의 신라고분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다.금동 민고리자루칼은 칼자루 끝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원형·타원형·방형·상원하방형 등의 고리가 달려 있는 칼을 말한다. 원삼국시대 후반부터 철제로 된 민고리자루칼이 등장하기 시작하여 삼국시대에 들어와 실전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이 가운데 상원하방형(上圓下方形)은 둥근고리[圓環]와 네모난고리[方環]가 결합한 형태로 각각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것은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로부터 내려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여기서 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이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뜻이다. 고대 중국의 수학 및 천문학 문헌인 『주비산경(周?算經)』에서, “모난 것은 땅에 속하며, 둥근 것은 하늘
    인문/어학| 2016.06.02| 7페이지| 2,000원| 조회(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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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굴절접사와 파생접사의 차이점
    굴절접사와 파생접사의 차이점1. 굴절은 동일한 어휘소를 나타내므로 범주 및 자질을 변화시키지 않지만 파생은 이러한 속성을 변화시켜 새로운 어휘소를 생성한다.예를 들어 굴절형인 shoot-s, shoot-ing, shot등은 모두 같은 어휘소 SHOOT를 나타내지만, 어기인 friend와 파생어인 friend-ly는 통사 범주가 변화된 별개의 어휘소이다. 한편 파생이 항상 통사 범주만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어서 파생에 의하여 변하게 되는 범주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제시되어 있다.★ 굴절a. 동일 어휘소를 갖는 어휘 형태이다.b. 폐쇄된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형태가 한정되어 있다.c. 동일 어휘소를 가진 다른 형태로 교체될 수 있는 형태가 많다.d. 문장 내에서 다른 단어로 교체되기 힘들다.e. 통사 현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f. 파생 접사보다 뒤에 첨가된다.g. 의미적 속성이 규칙적이다.h.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높다.I. 한 어간에 하나만 첨가 될 수 있다.j. 어간에 첨가되어서 문법적 기능을 나타낸다.k. 동사 want에 과거형어미 ed가 첨가되어 wanted가 되어도 동사, 즉 품사변화 없음.l. 어간과의 관계가 규칙적.m. 불규칙을 제외하고 모든 명사에 s가 붙어서 복수형, 모든 동사에 ed가 붙어서 과거형.★ 파생a. 새로운 어휘소를 생성한다.b. 개방된 체계를 가지고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c. 동일 어휘소를 나타내는 다른 형태로 교체되기 어렵다.d. 문장 내에서 다른 단어로 바꾸어 쓸 수 있다.e. 통사 현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f. 굴절 접사보다 먼저 첨가된다.g. 의미적 속성이 불규칙하다.h.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낮다.I. 한 어근에 여러개가 첨가 될 수 있다.j. 어기에 첨가되어 새로운 단어를 파생시키는 요소로서 그 수가 방대하다.k. 어기와의 관계가 임의적이다.l. happy에 파생접사 ness가 첨가되면 happiness라는 새로운 명사형 단어 형성.m. fail에는 -ure가 붙어서 failure, friend에는 -ship이 붙어서 friendship이라는 명사가 된다.2. 굴절과 파생은 각각 어기의 상이한 속성과 연관을 가진다.이 기준은 굴절과 파생의 접사가 첨가될 때 참조해야 하는 어기의 속성을 가리킨다, 즉 Scalise에 의하면 굴절은 어기의 가산성; 즉[count]의 정보만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파생은 어기의 선택 자질, 추상성 등의 정보를 모두 필요로 한다.3. 굴절은 폐쇄된 체계로 종류가 유한하지만 파생은 개방된 체계를 가지고 있어 다양한 형태를 가진다.이는 굴절의 종류는 한정되어 있는데 비하여 파생 형태는 훨씬 종류가 많다는 점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언어에서 명사의 수를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은 단수와 복수 두 가지뿐이고 특수한 경우에 양수를 쓰는 정도이다, 그러나 명사 파생어를 만드는 방법은 이보다 훨씬 종류가 많고 필요에 따라 새로운 파생형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아래에 제시된 것은불어의 명사 파생형이 다양한 접사를 사용할 수 있음을 보인다.동작: -tion, -isation, -age, -issagem ?ement, -ture행위자: -eur, -ateur, -euse, -atrice, -oir4. 굴절은 동일 어휘소 내에서 다른 형태로 교체될 수 있으나 문장 내에서 교체될 수 없다, 그러나 파생은 이와 정반대의 속성을 보인다.이 기준은 교체 가능성에 대한 것인데 영어의 bang-s, cover-s, kick-s와 bang-ed, cover-ed, kick-ed,등의 굴절형은 모두 접미사-s와 ?ed를 가지고 있지만 문맥에 관계없는 독립적인 환경에서는 접사를 바꾸어 써도 각각 같은 어휘소 BANG; COVER, KICK등을 나타낸다. 그러나 문장 안에서는 반대로 굴절형 어미 ?ing가 ?ed, -s등의 다른 굴절 형태와 바꾸어 쓰일 수 없다. 이와는 반대로 파생어인 friendly와 같은 파생형은 독립적인 환경에서는 동일 어휘소를 나타내는 다른 형태를 취하기 어렵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문장 내에서 friendly는 다른 어휘로 쉽게 바꿀 수 있다.5. 굴절은 통사 현상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나 파생은 그렇지 않다.이 기준은 굴절이 통사적 관계를 나타내는 기능을 하는 것과 연관된 기준이다, 즉 일치 관계나 지배 관계 등의 통사적 현상이 굴절 형태를 결정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사적 현상은 파생 형태를 결정할 수는 없다.6. 굴절은 어기의 문법적 속성을 바꾸지만 파생은 개념적 의미를 바꾼다.이 기준은 기준 6뿐 아니라 기준 1과도 연관된 것으로 통사적인 요인에 의해 지배되는 굴절은 당연히 어기의 문법적 의미를 바꾼다, 그러나 새로운 어휘소를 생성하는 파생은 어기의 개념 자체를 바꾸어 새로운 말을 만들어낸다. 즉, 복수형 굴절 어미를 첨가하는 ‘Noun-pl’ 형태를 갖는 경우는 하나 이상의 명사만을 뜻하게 된다. 그러나 명사에서 다른 명사를 파생하는 영어의 ‘child-hood’같은 경우는 어기의 개념적 의미가 완전히 바뀌어 새 단어가 파생된 예이다. 물론 어떤 굴절 형태는 문법적 속성만을 바꾼 것으로 보기 힘든 예도 있다.영어: nuta nuts ‘crazy’이태리어: dirigire ‘to direct’ a dirigibile ‘capable of being directed’ 또는 ‘air vehicle’네덜란드어: tafel ‘table’a tafelen ‘tables’ 또는 ‘the tables of the law’그러나 이러한 예들은 모두 통시적으로 굳어진 관용적 표현들로 실제적인 예외 현상으로 보기는 힘들다.7. 굴절은 파생보다 주변적이다.8. 굴절은 의미적 속성이 규칙적이나 파생은 불규칙한 경우가 많다.의미적 속성의 일관성에 관한 것으로 굴절 접사는 항상 일정한 의미 관계를 나타내지만 파생 접사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영어의 복수 접미사 ?s는 항상 꼭 같은 의미 관계를 나타낸다. 그러나 transmit에서는 transmission은 ‘전파’의 의미가 아니라 자동차의 특정 기계 부품을 나타낼 뿐이다.a. sing-s kick-s love-s =>Verb +the third person singular. Presentb. permit a permission = cat of permittingtransmit a transmission ≠act of transmitting9. 굴절은 파생에 비해 생산성이 높고 ,파생은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다.
    인문/어학| 2013.05.18| 5페이지| 1,500원| 조회(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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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양한 관점에서의 The Crucible에 관한 해석
    마녀사냥Witch-hunt : 하나의 정치적 신조를 절대화하여 이단자를 유죄로 만드는 현상.마녀사냥은 15세기 초부터 산발적으로 시작되어 16세기 말~17세기가 전성기였다. 당시 유럽 사회는 악마적 마법의 존재, 곧 마법의 집회와 밀교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초기에는 희생자의 수도 적었고, 종교재판소가 마녀사냥을 전담하였지만 세속법정이 마녀사냥을 주관하게 되면서 광기에 휩싸이게 되었다.이교도를 박해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종교재판은 악마의 주장을 따르고 다른 사람과 사회를 파괴한다는 마법사와 마녀를 처단하기 위한 지배수단으로 바뀌게 되었다. 17세기 말 마녀사냥의 중심지였던 북프랑스 지방에서는 3백여 명이 기소되어 절반 정도가 처형되었다. 마녀사냥은 극적이고 교훈적인 효과 덕분에 금방 번졌고,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시켰다.악마와 마법 그리고 마녀가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신념은 지배계급과 당시의 지식인인 신부와 법관들이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이었다. 마녀사냥의 주된 공격대상은 과부 즉 여성이었다.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여성이란 원죄로 각인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악마의 심부름꾼이라는 생각이 사람들에게 있었고, 여성의 육체 자체가 두려움을 자아낸 것이다. 마녀사냥이 그리스도교 이외의 어떤 사상과 움직임도 용납할 수 없었던 중세사회에서 대다수 민중들의 체제에 대한 불만과 저항을 마녀라는 이름의 희생양을 통해 대리 해소하는 동시에 마녀를 따돌린 '우리 사회'는 안전하다는 만족감과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하나의 사회적 배제·통합기제로 사용되었던 것이다.마녀사냥의 배경마녀사냥의 물결은 15세기 이후 이교도의 침입과 종교개혁으로 분열되었던 종교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법과 마녀는 그 시대가 겪었던 종교적 번민에서 탈출하는 비상구였던 동시에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종교적 배경과 함께 마녀사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중세사회의 혼란이었다.마녀사냥은 개인적·집단적으로 농촌사회가 분열되고 개인들의 관계가 파국에 이르렀을 때 나타나곤 하였다~1748년에 1,849명이 소추되어 1,160명이 사형에 처해졌다. 나노수 지방에서는 1629년부터 4년간 2,255명이 마녀로 소추되었고, 뷔르튄겐 지방에서는 1633년 이후 3년간 11명이 처형되었다.튜링겐 숲에 인접한 게오르겐탈이라는 인구 4천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에서 1652~1700년에 64회의 마녀재판이 실시되었다. 반베르크 승정령에서는 1627년 이후 4년간 화형당한 마녀가 285명이었고, 그 이후 30년에 걸쳐 이 재판소에 계류된 마녀재판은 900건을 넘었다. 이 승정령의 인구는 겨우 10만 명을 넘지 않았다.뷰르스부르크 승정령에서는 1623~1631년에 화형당한 마녀가 900명에 달하였다. 1627년부터 이후 연간 29회의 재판에서 화형당한 157명의 희생자를 보면 잡다한 연령과 계급, 직업의 사람들이 혼재해 있었다. 시의회의원, 고급관리의 부인, 시의회의원의 처자, 그 지방의 가장 아름다운 자매, 8, 9, 12세의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후루다에 살고 있는 바루다세르 후스라는 마녀재판관은 19년간 700명의 마녀를 화형시켰는데, 자신의 일생동안 1천 명을 처형하기를 소원하였다고 한다. 로트링겐에 살고 있던 니콜라스 레미라는 사람도 재직 15년간 화형시킨 마녀가 900명에 달한다고 하였다.청교도윤리와 마녀사냥영화와 관련된 배경극심했던 유럽본토 마녀사냥의 홍역이 끝나갈 무렵 시작된 미국의 마녀사냥. 정확히 말하자면 그 당시 그곳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형성되기 이전의 유럽의 한 식민지 형태로 존재하는 곳이었다. 이곳에 영국에서 박해받던 청교도들이 대거 이주하게 되었고 그들은 이곳에서 진정한 청교도의 삶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청교도적 삶은 유럽에서 이주해온 1세대에게서도 잘 구현될 수 없었으며 2세대 3세대에서는 거의 초기에 그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형태의 청교도적 삶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또한 초기에 지나칠 정도로 청교도교리에 집착하다보니 그에 따른 폐단도 심각하게 발생하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미국의 뒤늦은 마녀사냥마법의 실재를 믿게 되었고 더욱더 중요하게는 마법을 행하는 사람을 악마의 동반자로, 즉 사악한 이교도로 간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태도 변화는 마녀사냥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발생에 상당히 중요한 배경 중 하나로 작용한다.2. 법체계의 변화중세 말, 마법과 마녀에 대한 관념이 변화한 기독교를 중심으로 무성해진 마녀에 대한 담론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하여 국가의 법정이 마법과 마녀에 대한 법이 제정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와 동시에 마녀재판은 국가의 법정으로 넘어가기 시작하였다.심문 중심의 재판방식으로의 변화가 진행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방식의 정착으로 고소된 사람의 유죄여부는 신의 시험이 아닌 인간재판관의 심문에 의해서 판명되며 설사 그 사람의 유죄가 판명되지 않더라도 고소인이 손해나 처별을 받을 염려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재판방식의 변화는 고소는 보다 자유롭게, 유죄판결은 보다 용이하게 만들어주었고 마녀사냥은 이러한 토대위에서 발생하고 보다 가속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또한 고문제도도 적극 도입되면서 ‘만일 고문이 없었다면 그와 같은 대규모 마녀사냥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마녀사냥에 있어서 고문의 역할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고문에 대한 여러 가지 제한도 무시된 채 적용된 극심하고 잔인한 고문은 대규모 마녀사냥의 발생과 전개에 여러 측면에서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첫째, 고문과정에서 나오는 자백을 통하여 마법에 대한 여러 가지 관념이 형성, 누적, 보급되었으며 둘째, 마녀가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의 수를 증가시켰고 마지막으로 고문과정에서 행해진, 공범자에 대한 추궁은 마녀사냥 자체를 대규모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3. 사회적 변화마녀사냥이 발생, 전개된 시기는 유럽이 인구의 격증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생활 수준의 전반적인 하락, 흑사병을 비롯한 각종 전염병과 기근의 주기적인 발생, 근대국가의 출현, 자본주의의 성장, 농민반란과 내전, 전례없는 규모의 국가간 분쟁, 그리고 중세 기독교신앙의 표(joseph r. mccarthy)'의 이름에서 나온 말이다.1950년 2월 매카시 의원은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폭탄적인 연설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냉전이 심각해지던 당시 미국은 경제 침체기에 있었고, 동독과 중국의 공산화와 소련의 원자탄 실험 성공 등 공산세력의 급격한 팽창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이 때문에 매카시의 주장은 미국 국민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매카시 선풍은 1938년 하원에 설치된 '비(非)미활동위원회'를 중심으로 펼쳐졌는데, 반대파 정치인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공격하는 것은 물론,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과 트루먼 대통령의 `페어딜' 등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진보주의 정책까지 공산주의와 연계시켜 심판대에 올렸다.매카시 여파는 또 예술계와 언론계에까지 미치면서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를 낳았다. 할리우드 영화계와 방송계의 작가·감독·연예인 가운데 수십명이 공산주의자라는 멍에를 쓰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일자리를 잃었다.당시 국무장관 덜레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매카시즘의 공포에 떨었고, 그 때문에 미국의 외교정책이 필요 이상으로 경색된 반공노선을 걷게 되었다. 유력한 정치가나 지식인들도 매카시즘에 두려움을 느끼고 그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였다.그러나 매카시는 상원 외교관계위원회의 조사를 받으면서도 그가 말한 공산주의자가 누구인지 전혀 밝혀내지 못했다.결국 매카시는 50년대 중반부터 긴장완화 분위기가 세계적인 추세로 번지면서 미국 안팎 지성인들로부터 격렬한 비난에 시달리다, 공무원과 육군장교를 공산주의자로 고발한 사건을 계기로 54년 12월 상원의 결의에 따라 국내치안분과위원장직에서 해임됐다.매카시즘은 현대판 마녀사냥이라고 할 수 있다.마녀사냥의 유래와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면, 마녀사냥은 15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및 북아메리카 일대에 행해졌던 마녀나 마법행위에 대한 추궁과 재판, 형벌을 말한다. 마녀사냥의 물결은 이교도의 침입과 종교개혁으로 분열된 종교적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종 희생되었다. 이러한 민간인의 희생은 미국의 국교인 기독교의 정신과도 대립된다. 여기서 우리가 본 영화 과 관련지을 수 있다. 영화에서 보았듯, 재판을 보는 재판관과 소녀들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이용해서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괴롭혔다. 이것은 기독교 사상과 크게 차이가 있다. 그 뿐 아니라 테러를 지원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강력한 외교적 압박을 계속해 나가고 이른바 ‘악의 축’으로 여겼다. 이렇게 몰아가기 식의 정치는 마녀사냥과도 연관지을 수 있다.한국인 역사마녀사냥을 한국역사에 비추어 본다면, 대표적인 사례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들수있습니다.광주민주화운동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독재정권이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경제성장에 집착하여 민주화 운동에 대한 극심한 탄압을 하였고 그것에 맞서서대항한 많은 광주 시민들과 청년들이 학살 당한 역사적 사건입니다.다들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를 보셨나요?그 영화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내용인데이 영화와 마녀사냥 영화 비교를 해 본다면광주사건과 마녀재판은 모두 권력자들에 의해 진실에 대항한무고한 사람들이 희생하고 학살 당한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광주민주화운동에서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정의와 진실을 외치며대항했지만 결국 권력자 집단들의 독재로 죄없는 죽음을 당하고마녀재판에서도 집단들의 절대적 신조를 내세워 권력자들 아래에서 각각의 개인들이 무차별한 탄압을 당하고 인권마저 탄압을 당합니다.기독교적 상징프록터 대사꽃을 꺾지 겨울같아,어떤게 하느님의 뜻인지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님하느님은 누구를 편애하는 분이 아니니까요.넌 스물이 되기전에 감옥에 갈 것이다.안 돼 이미 끝난 일이야난 너에게 희망을 준적이 없어어린 것 이제 그만 잊어라 더 이상 널 찾진 않을 게다날 잘 알잖아애비, 널 각별히 생각한 적은 있다 하지만 다시 널 찾는다면 내손을 자를 거다우린 손도 안닿았어.엘리자베스 얘기를 꺼내지마채찍을 자초하는구나 동네는 부패했습니다 명심하셔야될겁니다목사님은 지각있는분이라고 들절
    인문/어학| 2011.04.21| 11페이지| 2,000원| 조회(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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