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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게놈프로젝트 (HGP)
    인간게놈 프로젝트 (HGP)목차 1. HGP 의정의 2. HGP 의 과거와 현재 1) 과거 2) 현재 3. HGP 의 긍정적인 측면 1) 인간개체 복제 술의 발달로 인한 불임해결 2) 인간배아복제를 이용한 유전자 연구 3) 미분자 의학의 획기적 발전으로 의약개발의 신기원 이룩 4. HGP 의 부정적인 측면 1) 유전자 조작 및 재조합의 문제 2) 생식과 관련된 신기술의 문제 3) 인간복제의 문제 5. 마무리1. HGP 의 정의 인체의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 게놈 (genome) 을 해독해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고 유전자 배열을 분석하는 연구 작업이다 . 게놈이란 한 생명체 혹은 한 조직에 있는 유전자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 ' 생물의 설계도 ' 또는 ' 생명의 책 ' 이라 불린다 . 현재 전 세계에서 많은 미생물 , 병원균 , 해양생물 , 가축 , 실험동물 등에 대한 게놈 프로젝트가 실시되고 있다 .2. HGP 의 과거와 현재 과거 이 프로젝트는 1990 년에 미국 에너지 부와 보건 부 에서 발족시켰으며 15 년 안에 완료되기로 계획되었다 . 실제로는 예정보다 2 년 정도 빠른 2000 년에 게놈의 기본 드래프트가 완성되었다 .2. HGP 의 과거와 현재 과거 ( 이어서 ) 과학자들은 게놈지도를 통해 질병 유전자를 알면 해당 유전자의 기능을 억제하거나 교체해서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했다 .2. HGP 의 과거와 현재 현황 기대와 달리 아직까지 인류는 질병을 정복하지 못하고 있다 . 비용 대비 미미한 효과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도 생겼다 . 하지만 현재 염기서열 분석 속도가 증가하면서 비용이 크게 줄고있다 .2. HGP 의 과거와 현재 현황 ( 이어서 ) 이러한 기술의 발달로 초고속 , 초정밀 , 저비용으로 읽어내고 이를 표준 유전체와 비교함으로써 유전자 변이를 찾아내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3. HGP 의 긍정적 측면 1. 인간개체 복제 술의 발달로 인한 불임해결 성세포 ( 정자 ) 에 문제가 있던 부부들이 체세포핵이식술을 이용하면 정자가 없이도 수정이 가능하게 된다 . 자궁에 이식하기 전에 수정란을 검사하여 결함이 있는 것을 걸러내거나 혹은 그 유전자만을 교정하여 원하는 건강한 아기를 얻을 수 있다 .3. HGP 의 긍정적 측면 2. 인간배아복제를 이용한 유전자 연구 환자 자신의 세포를 역 분화시켜 사용할 수 있으므로 면역학적 거부반응의 문제나 배아 세포를 사용하는 데 대한 윤리적인 문제를 줄일 수 있다 . 손상된 장기나 신체 부분을 세포 하나로부터 재생시킬 수 있다는 기대도 할 수 있다 .3. HGP 의 긍정적 측면 3. 미분자 의학의 획기적 발전으로 의약개발 인간유전자지도의 완성과 더불어 약물 유전체학의 연구진전은 약물반응의 개인차를 유발하는 유전적 기전 정보를 파헤치고 있다 . 게놈 정보를 이용하여 유전자 또는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지는 단백질을 약제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3. HGP 의 긍정적 측면 3. 미분자 의학의 획기적 발전으로 의약개발 ( 이어서 ) 약물유전학적 연구가 이상적인 개인별 맞춤약물요법을 지향함에 있어 , 신약개발 단계부터 약물 유전체학을 접목시키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 환자의 DNA 를 추출하여 분석하고 환자의 후천적 특성 정보와 접목하여 그 환자에 최적의 약물 · 용량 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3. HGP 의 긍정적 측면 3. 미분자 의학의 획기적 발전으로 의약개발 ( 이어서 ) 질병 유전자에 관한 데이터확보를 통해 유전자 이상으로 생기는 수많은 난치병이 정복될 수 있다 . 어떠한 질병이 걸리게 될 것인지 예측할 수 있음으로 인해 질병의 발생 가능성을 현저하게 억제할 수 있다 .4. HGP 의 부정적 측면 1. 유전자 조작 및 재조합의 문제 유전자재조합은 돌연변이 생물체의 발생 등 환경 및 생태학적 재앙을 야기시키는 윤리적 문제를 수반한다 . 생명공학의 역기능과 부작용은 근본적으로 생명 질서에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4. HGP 의 부정적 측면 2. 생식과 관련된 신기술의 문제 의료계의 일반적인 윤리적 불감증과 불성실로 인하여 정자제공자의 악성 질환의 감염을 검사하지 않고 동일한 사람의 정자를 수많은 여인들에게 수정시키는 일이 발생한다 . 동일한 정자 판매자의 직계 후손들간에 혼인할 수 있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4. HGP 의 부정적 측면 3. 인간복제의 문제 인간은 남녀 두 사람의 상호의존에 의하여 출산되는 것인데 한 사람의 체세포로부터 많은 복제 인간이 태어난다면 근본적인 인간의 상호의존성은 파괴된다 .4. HGP 의 부정적 측면 3. 인간복제의 문제 ( 이어서 ) 복제술은 인간의 유일성과 대치 불가능성을 파괴한다 . 따라서 복제인 간은 상품으로 전락될 수 있다 . ‘ 누구를 복제할 것인가 ’ 를 사람이 그 때 그 때 임의로 결정할 수 있게 되면 정체성이 상실되고 만다 .5. 마무리 맺음말 게놈프로젝트는 아직도 한참 진행 중인 단계에 있다 . 그리고 양날의 칼처럼 희망적인 미래와 부정적인 미래 또한 가지고 있다 .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생명과학의 발전에 따르는 인간 존엄성의 문제를 반드시 조율해나가는 것이 필요 할 것이다 .{nameOfApplication=Show}
    의/약학| 2013.05.14| 17페이지| 1,000원| 조회(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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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역사- 춘추오패
    춘추시대의 오패를 통해보는 춘추시대의 양상I.서론II.본론1.춘추전국시대의 개막과 오패의 등장2.춘추오패1)제 환공2)진 문공3)초 장왕4)오 왕 합려와 부차5)월 왕 구천III.결론I.서론주나라 말기, 주왕조는 그 세력이 서서히 약화되던 중 결국 유왕(幽王)시기에 융족의 침입을 받아 수도인 호경이 함락되게 된다. 이에 주 평왕이 왕위에 올라 낙양으로 천도를 하게 되는데 바로 이점부터를 춘추시대의 개막이라고 한다. 춘추시대에는 주나라의 왕실의 권위는 더욱 땅에 떨어지게 되고 제후국들에 대한 통제력도 상실하게 된다. 이를 기회 삼아 각지의 제후들은 노골적으로 독자적인 정치군사적 활동을 전개하며 상호 대립항쟁을 하기 시작한다. 힘이센 제국은 무력으로 약한제국을 병합했다.이러한 춘추시대에는 오패가 존재하는데 [순자]의 [왕제편]에는 제 환공, 진 문공, 초 장왕, 오왕 합려, 월왕 구천을 오패로 들고 있고, [한 대]의 [백호통]은 제 환공, 진 문공, 진 목공, 송 양공 오왕부차를 오패로 들고 있다. 이렇게 기록마다 인물이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그 수는 5인으로 정해져있다. 이는 후에 전국시대에 유행했던 오행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는 순자의 ‘왕제편’에 나오는 오패에 따라 알아보겠다.II.본론1.오패의 등장[사기]의 12제후 표를 보면, 춘추초기에 크게 활약했던 국가로 노(魯),제(薺),진(晋),진(秦),초(楚),송(宋),위(衛),진(陳),채(蔡),조(曹),정(鄭),연(燕),오(吳)의 13국이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제일 먼저 두각을 나타냈던 것은 정국이었다. 정은 무공(武恭)때 주왕실의 부흥에 힘썼으며, 또 주왕실의 동천때에는 진(晉)과 더불어 동주(東周)를 건설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정은 국력이 계속 발전하자 주왕실의 영지를 침입하고, 태산의 제산을 폐지하며, 영지를 임의로 타국과 교환하는 등 주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무시하기 시작했다.이러한 주왕실과 정간의 긴장관계는 주왕실이 정의 영지를 통제하기 어렵게 바꾸려 하는 과정에서 폭팔연합군이 패배했을 뿐 아니라 환왕이 부상이 당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다. 이 때문에 주왕실의 권위는 더욱 떨어지게 된다. 이 후 중원의 패권은 정에 의해 주도되는 듯 했지만 장공(壯公) 이후 후계쟁탈이 일어나 여기에 송(宋),노(魯)등의 제후국이 개입하면서 쇠퇴하게 된다.주왕실의 권위 하락과 정이 가지고 있던 중원의 패권이 다른 제후국들 사이에 공동화 되어버린 상황은 새로운 힘을 가진 지도국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사실 주왕실의 동천 이후 백 여년동안은 대규모 충돌이나 전쟁은 없었지만 이 기간중에도 각국에서는 서주 말기 이후 진행되어 오던 영토확장과 국력을 신장하기 위한 작업이 계속 되고 있었다. 그러면서 마침내 거대한 영토와 강력한 무력을 소유한 대국이 출현하여 이미 쇠약해진 주왕실을 대신하여 국제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중원을 재패하려했는데, 이것이 바로 패자(覇者)가 출현했다.2.춘추오패춘추시대의 주왕실은 이미 소국으로 전락하여 제후국들을 제어할 능력이 없었다. 때문에 특정대국이 존왕양이를 주창하고 주왕을 대신하여 제후들을 규합하는 식으로 국제정치의 질서를 유지하려 했다. 존왕양이를 기치로 내걸었다는 것은 전국시대의 전란기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패자’들은 늘어나는 주변 이적·만이들의 침입을 격퇴하여 중국을 보호하려고 했기 때문에 ‘패(覇)’는 ‘감독자’또는 ‘보호자’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이때 패자들은 주변 제후들을 모아 회맹을 열어서 ‘패자’로써 인정받았다. 춘추시대에 활약했던 ‘패주’는 소위 춘추오패라하여 5인의 패주를 열거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패자가 꼭 5명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고 그 기간동안 있었던 패자들 가운데 가장 강력했던 5명을 꼽아 춘추오패로 정한 것이다.제의 환공, 진의 문공, 초의 장왕, 오의 합려와 부차, 월의 구천이 바로 그들이다.(1)제 환공춘추시대 최초의 패자는 ‘제(齊) 환공’이었다. 제(齊)나라는 원래 주나라의 무왕을 보좌하며 주왕조 개국에 큰 공을 세웠던 강족(姜簇) 출신의 강태공 ‘여를 가진 동방의 제후국이었다. 제는 분봉 이후 임치(臨淄)주변의 동이·내이들을 흡수하고 동화시켜서 영토를 크게 확대하였다.14대 양공(襄公)때에는 국력도 크게 신장하고, 산동반도 전체를 석권하면서 동방의 대국이 되었다. 양공 사후에는 왕위계승 문제로 내분이 일어나면서 국력이 일시적으로 쇠약해지는 듯 했으나 ‘환공’이 이를 수습하고 즉위하게 되었다. 제 환공이 국력을 수습할 수 있었던 큰 계기가 된 것은 바로 관중(管仲)의 재능을 인정하여 그에게 국정의 개혁을 일임한 것이다. 관중은 행정제도의 개편, 군사조직의 개혁, 농업·공업·상업과 해외무역 장려등의 개혁정책을 추진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이를통해 제나라는 춘추시대 최초로 부국강병을 이룩하였고 동방의 강국이 되었다. 제 환공은 10여차례의 회맹(會盟)을 개최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규구회맹’이다. 이 회맹에서 제 환공은 중원 제후국 사이의 질서유지와 우의를 돈독히 하기위해 몇가지 사항을 결정했는데, 그 내용은 불효자의 처벌, 현인·노인에 대한 존경, 첩을 처로 승격시키지 않기, 타국의 곡물 수입을 방해하지 않기 등 윤리적·도덕적 문제와 각국의 정치 및 국제관계에 걸친 문제 등이었다. 즉, 규구회맹은 주나라 때의 봉건적 질서와 윤리도덕 범위 내에서 제후국들 간에 평화유지와 친목도모를 목표로 한 것이다. 또 늘어나는 주변 이적·만이들의 침탈로부터 중국세계를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이에 대해 후에 공자는 제 환공을 높이 칭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나라는 환공과 관중의 사후에 내란이 발발하게 되고, 또 송,위,주 등의 침입을 받으면서 제 환공이 이룩한 위업과 함께 사라지고 만다.(2)진 문공제 환공의 패업을 이어받은 인물은 진(晉)나라의 ‘문공’ 이었다. 진나라는 원래 주나라의 성왕이 당숙(唐叔)을 당(唐)에 분봉한 제후국이었다. 헌공(獻公)때에 발전하기 시작하여 도성을 새로 축조하고 군사제도를 개혁하여 2군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그리고 주변의 곽,경,괵,우를 병합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이를 통해 문공으로 즉위하면서 다시 국력을 회복했다. 진 문공은 내정 개혁에 착수하여 공신들의 자손들을 우선 등용했으며, 사졸들에게는 토지를 지급하여 그들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 줌으로써 안심하고 전쟁에 종사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결과 진나라는 국력이 크게 신장되었는데, 이때 주왕실에 내분이 발생하고 북방족이 다시 침입을하자 진 문공은 내란을 진정시키고 정(鄭)으로 도피했던 주나라의 양왕을 복귀시켰다. 주 양왕은 이에대한 보답으로 진 문공에게 황하와 소수(小水)사이에 위치한 땅을 하사한다. 이 소수 유역의 확보로 진은 수도에서 중원에 직접 이를 수 있는 교통로를 확보하게 되었으며, 이후 진 문공의 패업 달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한편, 당시의 국제정세를 보면 초나라가 다시 북상을 하려고 하면서 약소국을 굴복시키고 다시 송나라를 압박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송나라는 진 문공에게 구원을 청했고, 진 문공 역시 망명시절에 송나라의 보호를 받은 것에대해 은혜를 갚는 것 과 동시에 이 기회를 이용하여 초나라를 굴복시켜 패업을 달성하려 했다.그의 바람대로 진 문공은 초나라를 대파했고, 천토(賤土)에서 동맹제후와 회맹을 열었다. 이 회맹에는 주왕도 초청되었으므로 진 문공은 포로 및 전리품을 주왕에게 헌상했고, 진 문공은 중원의 패주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진나라는 진 문공의 사후에도 비록 문공 때만큼 적극적인 대외정책은 아니었지만 중원의 패자로서 남방의 초와 대립했다.(3)초 장왕제 환공과 진 문공에게 북상을 제압당한 초나라는 북진정책을 일시 중지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또 초나라의 국력은 여전히 강성했으므로 남방의 대국으로 의연히 존재했다. 그리고 마침내 초나라는 진 문공 사후 진의 대외정책이 소극적으로 변하자 다시 북진정책을 시작한다. 초 목왕의 뒤를 이은 초 장왕은 내정을 개혁하여 국력을 더욱 정비했다.이러한 과정에서 진은 위신을 잃어 갔고, 중원 내에서 초의 세력은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정(鄭), 진(陳), 송(宋), 노(魯)등의 중원 약소국까지 모두 초 장왕에게 복속하적 질서를 회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주 왕실은 이미 중원세계의 정신적 구심점의 가치를 상실했었고, 또 초나라는 중원출신이 아닌 남만출신이였기에 주 왕실을 중심으로 하는 봉건질서의 회복과 유지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초 장왕은 패업을 달성하긴 했어도 근본적으로 진(晉)을 동요 시킬 수가 없었다. 그 결과 두 나라 사이에 는 수시로 전쟁이 발생했으며 이 때문에 중원의 다른 약소국까지 피해를 입게 된다. 그래서 평화회의가 이루어지게 되고 이를 통해 한때 중원에 평화가 유지되는 듯 했으나 10여년 후 초나라가 맹약을 파기하면서 다시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이 때 진나라는은 북방의 패주였으나 이를 방관만 하고 개입하지 않았으므로 초나라의 중원 제패가 가능한 듯 했다. 하지만 초나라의의 배후에 있었던 남방에서 오(吳)?월(越)이 차례로 북상하여 공격을 해오면서 초나라의 중원제패는 실패하게 된다.(4)오왕 합려와 부차 그리고 월왕 구천6세기 중반 중원에서 진나라와 초나라가 계속 전쟁을 하는 동안 지금의 강남 지방에서 두 개의 새로운 세력이 힘을 다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오나라이었다. 그리고 점차 힘이 강해지자 마침내 초의 변경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오나라의 합려는 초나라에서 망명해 온 오원(吳員)을 기용하여 국정을 쇄신하고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다.위에서 말했듯이 당시 진나라와 초나라는 서로 대립관계에 있었다. 이에 진나라는 오나라에 신공무신(申公巫臣, 초나라에서 진나라로 망명)을 보내서 중원의 병법과 전차기동법을 가르쳐 주면서 오나라에게 초를 배후에서 공격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오왕 합려는 초나라를 기습공격했다. 그리고 당시 초나라는 중원 경영에 몰두하여 모든 병력을 북방에 집결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오군은 초군을 쉽게 격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초나라의 수도 영(?)까지 함락시키기에 이른다. 하지만 당시 오나라는 군중에 분란이 있었고, 또 월(越)나라가 침입해 왔기 때문에 본국으로 철수를 해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나라는 이후에 계속해 된다.
    인문/어학| 2013.05.14| 5페이지| 1,000원| 조회(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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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과학과사상[나의 정치성향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나는 진보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힌다.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에는 언제나 갈등이 발생한다. 모든 사람이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진보와 보수 두 이념으로 나뉘면서 갈등이 이루어진다. 보수의 사전적인 정의는 ‘오랜 습관이나 제도, 방법 등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지켜 나가려는 것’을 말한다. 과거로부터 계승된 전통과 도덕을 존중하고 보존해 나가려는 태도를 가리키는 용어다. 보수적인 사람들이란 통상적으로 과거를 존중하고 현재 존재하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보면 된다. 반면 진보는 ‘사물이 차츰차츰 나아지는 것’을 뜻한다. 사회가 향상될 것으로 믿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보수가 현재 존재하는 질서를 존중하는 편이라면, 진보는 새로운 체제나 질서를 모색하는 쪽이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보수와 진보는 이처럼 쉽게 구분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보수와 진보의 의미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개별 사안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정치에서 정책을 추진할 때 진보와 보수의 의미는 미묘하게 달라진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보수와 진보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조금 더 오래된 역사는 한국의 보수 우파 혹은 우익의 뿌리와 역사는 1945년 한반도 신탁통치에 대한 반대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의 일본 식민통치 지배 하에서도 조선 사회에서 보수우익의 사상적 형태를 찾아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좌익과 우익의 개념에서의 보수우익은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통해 드러나기 시작하였고 지금도 갈려 있다. 모스크바 3상회의가 1945년 12월 27일 한반도에 대하여 최고 5년 기한의 4개국 신탁통치 결정을 발표하자, 국내 좌익과 우익은 찬성과 반대로 맞섰다. 우익은 절대 반대였고 좌익은 지지였다. 처음 공산당은 12월 30일 '反파쇼공동투쟁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반대 투쟁에 나섰다. 좌익은 친일파를 민족반역자로 규정하고 민족자체로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반탁운동은 '민족해방'을 위한 것이고 '자주독립'이 될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모스크바 3상회의의 신탁통치 결의는 우익과 좌익의 노선을 선명히 갈라놓았다. 이런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현대 사회에 이르러 한국에서 진보 정당 불모지 한국 사회에 진보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오랜 꿈을 간직해 온 이들은 제도권 정당을 거부하고 진보당 건설에 나섰다. 이우재ㆍ김낙중ㆍ장기표ㆍ이재오ㆍ안영근ㆍ김문수 등은 1990년 민중당을 결성했다. 그러나 정당 득표율 1.5퍼센트라는 초라한 성적을 받은 뒤 지리멸렬해졌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민주화 이후 활발해진 노동운동을 배경으로 한 세력과 민족해방파의 결합으로 2000년 민주노동당이 결성됐다. 언론노동조합 운동을 주도했던 권영길, 전노협이라는 노동운동의 주력부대를 이끌던 단병호,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의 핵심 노회찬, 서울노동운동연합의 보스였던 심상정이 의회에 진입하는 새로운 역사가 쓰였다.민주화로 재야의 공간이 사실상 사라지면서 진보 인사들이 대거 시민운동으로 진입했다. 1990년대 ‘시민 단체의 대폭발’ 시대가 온 것이다. 1989년 서경석 목사가 주도한 경제정의실천시민운동연합(경실련)은 시민 단체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최열 주도의 환경운동연합이 1993년 4월 출범, 진보적 시민운동의 신호탄을 울렸다. 이어 1994년 9월에는 박원순ㆍ김기식ㆍ이태호 등이 자유주의적인 경실련을 대신할 ‘진보적 시민운동’을 표방하며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참여연대)를 결성, 대표적 시민운동 조직으로 키웠다.진보와 보수에 대해 조금 더 확실한 정의를 찾던 중 ‘민주주의와 진보정당’이란 책을 알게 되었다. 이 책속에서 진보의 개념은 이렇게 설명 되어있다. 《진보란 첫째 역사의식 수준에서의 진보로서 열등한 상태에서 바람직한 상태로 꾸준히 개선되어지는 법칙을 말한다. 둘째로 이데올로기의 수준에서 기존체제의 유지 혹은 보존을 추구하는 보수의 반대개념으로서 기존체제의 개혁과 변화를 추구하는 는 것이다.사실 내가 진보성향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어쩌면 계급적인 이유가 큰 것 같다. 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서민’이다. 서민에게 좋은 정책을 펴는 것이 나한테도 좋기 때문에 ‘진보성향’ 정당의 정책이 더 와 닿는 것이다. 소수의 부자들이 보기엔 당연히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 되는 보수정당의 정책이 긍정적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엔 부자들보다 서민들이 많다. 잘사는 소수의 부자들만이 잘살고 빈부격차는 갈수록 커져 서민들은 계속 그들에게 뒤처지는 사회는 과연 어떠할까? 분명히 부작용이 많을 것이다. 소수의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 계속 이루어진다면 빈부격차가 커지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극단적이긴 예이긴 하지만- 가난한 서민들이 자신들과 같은 삶을 대물림하기 싫어서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고 그 모든 결과는 부자들의 자식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부자의 자식이 농사를 짓고, 공장에서 일을 하고, 서비스업을 하게 되는 사회가 올 수도 있는 것이다.현재 우리 국민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TV와 신문에 거론되는 정치인들에 대해 믿을 가지고 있을까? 나 역시도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와 대다수의 국민보다는 소수의 국민을 위한 정책이 이루어 질 때면 점점 믿음은 사라지고 무기력함만 느끼게 된다. 이렇듯 현재 우리는 기존의 제도권 정치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는 대중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 국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국민들의 희생을 밑바탕으로 일부 지배 계급만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집단이 정치 집단이라는 것이 일반 대중의 생각일 것이다. 보수정당은 선거 때만 되면 집권욕에 사로 잡혀 지역, 학연 등에 의한 줄서기 정치와 철새 정치, 부패 정치로 일관하였다. 이러한 기존 보수 정당의 부정과 부패, 지역감정 등으로 점철된 보수 정당의 정치를 지켜보며 유권자들은 정치적 허무주의와 냉소주의에 빠져 정치에 대한 환멸, 냉소를 보내고 있다. 이제 기존 보수 정치를 청산하고 대중을 위한 정치가 우리 사회에서 실시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흐름이 뚜렷이 는 좋지만 사실상 요즘에 과거와 달리 댐은 인력이 아닌 기계로 만든다. 굳이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홍수도 강원도를 제외하고는 2003년, 2005년에 있던 태풍이후로는 일어난 적이 없다. 또 우리나라는 식량 자급율이 22%밖에 되지 않는데, 이에 댐까지 건설한다면 주위에 농가들의 용수 획득을 방해하여 큰 피해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리고 생태계가 오염 되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벌써 멸종 희귀종 동물이 3종이나 발견 되었다니 안타까움이 이로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4대강 사업 6대 건설사들이 담합의혹을 받으면서 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들을 보았을 때 4대강 사업이 국비의 낭비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몇 조원에 달하는 이 금액을 서민들을 위해 썼다면 가난한 학생들이 급식을 급여를 못 받게 되는 일도 없을 것이고 더 많은 국민이 당연한 권리인 복지 혜택을 받았을 것이다. 과연 4대강 사업을 해서 이익을 보는 것이 국민일까? 아니면 소수 건설업체들일까? 지난 용산참사의 사건을 보았을 때도 그렇다. 1년 전에 철거를 통보하고, 조합이 보상금을 제시 했지만, 그 금액으로는 다른 곳에서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또 1년 동안 다른 곳으로 이주를 준비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돈을 더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적어도 이전에 살던 것만큼이라도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이였다. 하지만 주민들은 주민들의 요구사항은 모두 무시 한 채 심지어 깡패 같은 용역업체를 고용하기까지 했다. 그냥 어서 빨리 재개발을 해서 이익을 보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일본은 한 경우를 예를 들면, 재개발이 꼬박 10여년이 걸려서 주민들을 설득하고 하나둘씩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면서 이루어 졌다고 한다. 또 정부가 ‘너네끼리 알아서 해결해라~’ 라는 식의 태도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눈,귀를 닫고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모습과 아주 상반되는 모습이다.그리고 복지에 관해서도 서구의 경우를때문에 경제를 살려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인간의 자연권은 아주 불안정하고 보장받지 못한다고 하여 국가가 성립되었다는 사회 계약설에 미루어 볼 때, 이런 성장위주의 정책은 완전히 국가의 본래 의미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권에 대해서 잠깐 설명해 보면, 미국 독립선언문에서는 ‘우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조물주에 의하여 일정한 불가양의 권리가 부여되었으며, 그 가운데에는 생명 ·자유 및 행복의 추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자명(自明)의 진리로 믿는다’라고 한 것이 그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프랑스 인권선언 전문(前文)에서는 ‘누구라도 침범할 수 없는 자연적인 인권’, 제1조에서는 ‘사람은 나면서부터 자유이며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제2조에서는 ‘모든 정치적 조직의 목적은 인권의 옹호에 있으며, 인권은 자유 ·재산 ·안전 및 압제에 대한 반항의 권리를 보유하는 데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국가의 기본 역할은 아주 기본적으로 ‘인간의 자연권 보호’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성장위주의 빈부격차만 일으키는 현재의 정책으로는 절대 이를 이룰 수 없다. 나라가 경제적으로 잘 살아야 국민이 행복해 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아니, 행복해지는 국민이 있겠다. 소수의 부자 국민. 얼마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나라 1위로 뽑힌 중남미의 코스타리카를 보면 실업률이 10%이하이며, 국민의 85%가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을 했다. 진정한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느꼈으면 좋겠다.또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 간에서 가장 빼 놓을 수없는 문제는 바로 ‘북한’에 관한 것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6ㆍ25전쟁을 치렀고 이후 체제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남과 북은 질시와 반목을 거듭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권에 반대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이유로 처벌받아야 할 만큼 반북의식이 확고했다. 북한과 연계됐음을 암시하거나 좌익사상을 갖고 있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색깔론은 진보세력과 민주세력의 발목을 잡는데 효과적이었이다.
    사회과학| 2010.08.24| 7페이지| 1,500원| 조회(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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