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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의 동북아 정책
    러시아의 동북아 정책1860. 제2차 중·영 전쟁(Arrow호 사건)의 결과 북경조약 체결(이 조약을 중개한 댓가로 청으로부터 연해주 획득1860. 블라디보스톡 군항 신설1861. 3. 13. 대한해협으로 진출을 기도하여 일본의 대마도 일부 점령1861. 9. 19. 대마도 일부를 점령했던 러시아 함대, 일본과 영국의 강력 항의로 철수1866. 이른바 영흥만 조차 기도1866. 영·러 서로의 견제 사이에 기타 열강의 한반도 침투[병인양요(1866), 제너럴 셔먼호(1866), 신미양요(1871), 남연군묘 도굴 사건(1866)]1877-1889. 블라디보스톡 요새화1884. 조·러 통상 조약 체결1891. 시베리아 횡단 철도 착공1895. 삼국간섭으로 일본의 요동반도점령을 굴복시킴1896. 러·청 동맹 조약(전쟁 시 러시아가 청국의 항구 자유로이 이용한다는 조약의 내용)1896. 고종의 아관파천압록강 삼림 채벌권 획득1898. 3. 여순·대련(淸)을 조차1989. 4. 로젠)-니시) 협상(러시아는 일본에게 조선에 대한 상공업상의 우위를 인정, 일본은 러시아의 여순· 대련 항만의 조차를 묵인)1900. 의화단의 난을 계기로 본격적인 만주 점령마산포 토지 매수1901. 1. 러시아는 일본의 만주 침략 억제를 위한 ‘한국 중립화안’을 제안하지만 거절됨1901. 2. 27. 람스도르프)-양유) 협약 체결.(동청철도) 개통 시까지 청국군의 만주 주둔 금지. 주둔시에는 러시아와 협정)1901. 7. 25. 재차 ‘한국 중립안’을 제안, 이미 일본은 영국과의 동맹교섭으로 거절 함(동의 시 조선에게 행정·재정고문 및 경찰총감 파견권까지 인정해주겠다는 내용)1902. 1. 30. 영·일 동맹 체결(일본에게 조선에 대한 ‘상업상·공업상·정치상’의 이익 인정, 대신 만주에서 러시아에 대한 대응을 일본에게 전담)러시아의 고립과 일본의 대러개전1903년 8월 12일 일본의 가쓰라 내각은 구리노 공사를 시켜 람스도르프에게 6개조의 대러협상 기초안을 제기했다. 이후 5개월에 걸쳐 계속된 이른바 개전외교는 시작과 동시에 그 결과를 예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먼저 영일동맹은 개전 시 프랑스의 대러 지원의 길을 봉쇄했고, 루즈벨트는 함대의 유럽 순항(1903. 4~7)을 통해 프랑스의 대러 지원의 길을 재차 분명하게 가로막았다. 그리고 루즈벨트의 영불협상 지원은 독일의 전쟁 개입까지 함께 막아버렸다. 이 때문에 프랑스와 독일은 개전과 동시에 중립을 견지할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러시아는 복합적 술수로 주도되는 독일의 이중외교로 인한 대러 지원을 애당초 불신하게 됩니다. 일본이 개전을 서두른 것은 바로 이런 정황에서의 일이었습니다.또 결정적으로 개전을 약 1개월 앞둔 1904년 1월 12일, 개전 시 일본에 ‘엄정중립’이 아니라 ‘호의적 중립’을 지키겠다는 약속까지 했던 것입니다.일본이 전쟁으로 돌입하기로 결정하고 러시아 정부에 최후통첩을 발한 것은 이 이후의 일입니다.(1904. 1. 16) 이 같은 미국의 호의는 개전을 앞두고 있던 일본에게 결정적으로 힘을 실어주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루즈벨트는 개전과 동시에 독·불 양국에 대해 ‘러·불·독 3국이 지난날처럼 대일적대를 위해 연합을 꾀한다면 미국은 즉각 일본 편을 들어 두 나라에 대항,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던 것입니다.그러나 러시아를 위기로 이끈 최대 원인은 이 같은 국제적 고립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보다 결정적 원인은 전제군주제의 모순과 그 통제력 결여 등 러시아 내부에도 있었다. 황제 니콜라이 2세는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각료 상호간의 경쟁을 부추겼던 것이다. 각료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 황제에게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개별적으로 보고하는 체제였다. 따라서 자신를 과시하기 위해 서로 헐뜯기 경쟁이 벌어졌던 것이다.심지어는 여순회의) 때에도 황제의 뜻이 그곳에 재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동아시아 정책 수행을 맡은 3개 기관 가운데 외상은 무력했으며, 감독 기관이던 동아시아특별위원회도 그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이들 기관 사이에 유기적 상호 연락도 없었고 통일된 의견도 없어 구조상 아무런 방침도 세울 수 없게 되어 있었다.더욱이 당시 러시아 정황은 이미 혁명 전야였다. 농노제가 존속되는 가운데 진행된 갑작스런 산업화가 혼란을 가중시켜 바야흐로 ‘피의 일요일’)이라는 혁명이 예견되던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파국에 직면한 처지에서 황제는 국제 정황에 대한 정보도, 일본의 군사력에 대한 올바른 정보도 보고받지 못했던 것이다.따라서 일본이 러시아에 전쟁을 걸어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일본이 맹렬하게 개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귀뜸에 대해 차르는 ‘전쟁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짐이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한 정도였다(1903. 12)일본쯤은 전쟁이 아니라 위압만으로도 굴복시킬 수 있다고 믿을 정도로 황제는 오만에 사로잡혀 있었다. 1904년 구리노 공사의 알현을 받은 자리에서 차르는 ‘러시아는 대국이다.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고 한 정도였다. 그야말로 물정을 모르는 오만과 착각의 극치였다. 러시아가 전쟁으로 떠밀린 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의 일이었다.전쟁의 추이와 포츠머스 조약러일전쟁은 1904년 2월 10일 정식으로 선전포고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의 인천상륙과 여순항 기습으로 전쟁은 이미 2월 8일에 발발하게 됩니다.일본의 작전은 러시아가 본국으로부터 병력을 지원을 받기 전에 한반도와 만주를 단숨에 점령해버리는 것이었고 이와 달리 러시아는 지구전(持久戰)으로 대응한다는 전략이었습니다.따라서 일본은 러시아군이 만주에 집결해 한반도에서는 싸우려들지 않는 틈을 이용, 재빨리 한반도를 강제 점령하게 됩니다.1904년 2월 23일 한국에 대한 일본의 ‘한일의정서’)강압과 8월 22일의 ‘제1차 한일협약’)강압이 바로 그것입니다.그럼에도 미국은 처음부터 이를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내부적으로 이미 일본에게 한국 보호권을 인정해주었음이 들어납니다. 이전에 전쟁 전에도 미국의 했던 행동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본래 루즈벨트는 러·일 가운데 어느 한쪽의 압도적 우세가 없는 대립의 지속이 만주 독점을 막는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여겨왔다. 이런 대립 상태가 일본의 시선을 북쪽에 고착시킴으로써 필리핀에 대한 야욕을 품을 수 없게 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그러나 그의 예상은 빗나가게 됩니다. 겨우 개전 4개월 만에 일본이 압승을 거둠으로써 남만주에서 미국의 견제 대상은 이제 러시아가 아니라 일본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루즈벨트가 강화 알선에 열의를 갖게 된 계기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루즈벨트의 본래의 계획은 러시아에게 만주에 대한 정치적 지배를 인정해주려고 했고 일본에게는 한국 지배를 허용하여 러·일을 만·한 국경에서 대치시키려는 계획이었습니다.그러나 이 계획이 차질을 빚자, 미국은 러·일의 대결 무대를 만주로 옮겨 세력균형을 유지하기로 방침을 바꾸게 되는데 이는 미국이 일본의 남만주까지의 진출을 용인한다는 결정이었습니다. 따라서 개전과 동시에 일본의 점령 아래 들어간 한국은 거론할 필요도 없이 일본의 영향력 아래들게 되는 것입니다.그렇지만 육전은 여순 함락(1905. 1. 1)과 봉천(목단)회전(1905. 3. 10)이 해전은 일본이 러시아의 발트함대(발틱함대)를 격파함으로써(1905. 5. 27~28) 아예 전쟁 자체를 사실상 마무리 짓게 되는 변수가 발생하게 됩니다.일본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루즈벨트는 강화 주선을 서두르게 되어 필리핀 초대 총독을 역임한 육군 장관 태프트(William Howard Taft)로 하여금 필리핀으로 향하는 길에 일본을 방문, 가쓰라 수상과 회담을 하게 했다.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당시 미국은 한국의 보호권을 이미 일본에게 넘겨주기로 내정한 상태였다. 이를 영국보다 한걸음 먼저 일본에 인정해주자는 것이고, 그 대신 일본으로부터 필리핀 침략 야욕이 없다는 확약을 받아두자는 것이었다. 태프트-가쓰라 비밀협약(1905. 7. 27)은 동아시아에서의 세력범위 분할을 위한 제국주의적 협정과 다름이 없었다.미국은 당장 일본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은 아니지만 장차에는 일본과의 마찰이 예견되어 안전조치만은 강구해돌 필요성을 느꼈고 일본도 미국이 한국 문제에 개입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당시 캘리포니아 이민 문제 등으로 미·일 사이의 감정이 악화되어 미국의 의향을 확인해둘 필요는 있었다.즉, 미국은 한반도에 개입할 의도가 없다는 것이고, 일본은 필리핀에 영토적 야심이 없다는 것이었다.강화회의는 8월 10일 보스턴 북방 50마일에 자리한 군항 포츠머스에서 열렸다. 러시아도 일본도 더 이상은 전쟁을 계속할 수 없는 상태여서 미국의 중재와 압력이 먹혀들었던 것이다. 러시아는 혁명 전야의 극심한 내부 혼란을 겪고 있었고, 일본 역시 철도 수송 능력의 증감으로 증원군의 추가 투입으로 전쟁의 장기전과 재정 바닥이라는 이유로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해나갈 여력이 없었다.9월 5일 조인된 강화조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본의 한국 보호권에 대해 러시아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러·일 양군은 만주에서 철병한다.? 장춘-여순 사이의 철도 및 러시아의 관동주 조차지를 일본에 양도한다.? 북위 50도 이남 사할린을 일본에 양도한다.? 연해주 연안 어업권을 일본에 허여한다.일본은 한푼의 배상금도 받지 못하고, 이미 자국군이 점령한 사할린도 북위 50도 이북을 러시아에게 되돌려주는 선에서 회의를 매듭지었지만 그들의 지상 과제였던 한국 보호문제만은 만족스럽게 해결해내게 됩니다.
    인문/어학| 2011.11.16| 5페이지| 1,500원| 조회(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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