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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가 내 생활에 미치는 영향페이스북, 트위터 등 다양한 SNS의 등장 이후로 우리의 생활은 많이 바뀐 것 같다. 기존의 싸이월드와는 다르게 불특정 다수와 생각과 사진을 실시간으로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발전이 더 빨랐던 것 같다. 이에 스마트폰의 보급이 이의 발전을 가속화 한 것 같다.나로 예를 들자면 스마트폰이 없었던 때부터 페이스북을 시작했지만 남들처럼 실시간의 생각과 일을 공유할 수 없어서 그 전의 싸이월드의 이용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스마트폰 구입 후부터는 그런 것들이 가능해져서 스스로 진정으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이용자가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런 장점에 비해 단점이 너무나도 큰 것 같다. 실시간 소식을 나눌 수 있다는 이유로 심하게는 일분에 한번씩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사람들과 만날 때도 그 사람에 집중하지 않고 페이스북으로 남에게 한눈 팔고 수업이 좀 지루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페이스북에 접속하고…. 스스로가 한심하단 생각이 들어 페이스북 어플을 지운 적도 있었다. 주커버그가 단순히 여자친구를 꼬시기 위해 만들었던 온라인 세상이고 그냥 내 삶의 일부였어야 했는데 내가 페북에 뭔가 종속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서 결심한 것이 페이스북에 종속되는 삶을 살지 말자 라고 결심했다. 내가 먼저 있고 페이스북이 있는 것이지, 페이스북이 있고 내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이런 현상은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 그리고 많은 SNS이용자들에게 쉽게 일어나는 것 같다. 최근 제일기획에서 만든 맥심의 광고는 이렇다. ‘하루라도 스마트폰을 놓고 살지 못하는 현대인들. 맥심 한 잔 하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이 카피가 SNS에 빠진 사람들을 특정하게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마트폰과 SNS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이런 SNS이용자들을 어느 정도 비판하는 내용을 담는다고 생각한다. 또 어느 기사 타이틀은 이렇다. ‘SNS 중독남의 결심, ‘SNS하면 뺨치는 여자’ 고용’… 기사의 내용은 하루에 6시간, 일주일에 30시간을 SNS를 하며 시간을 방지한다고 판단을 내린 미국남성이 그 중독 해결방법으로 ‘빰 때리는 여자’를 고용한 것이다. 그리고 뺨 맞는 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이에 네티즌들의 주요 반응은 그의 노력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또한 네티즌의 반응에 공감한다. 오죽했으면 뺨 때리는 여자를 고용했을까 이지만 다들 그렇게 해서라도 생각 없이 접속하게 되는 SNS의 이용을 멈추고 싶었던 것이다. 정말 웃지 않을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또 다른 SNS에 관한 나의 생각은 불특정 다수에게도 펼칠 수 있었던 나의 생각들이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다 펼칠 수 없다는 것이다. 좋아요[Like] 하나만으로 쉽사리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유가 된다는 점에서 소위 입 조심을 안 할 수가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한번 생각하게 됨으로써 자기 통제가 되는 것 같다. 최근 이슈되는 사건들은 동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SNS에서 제일 먼저 접하게 되는 만큼 그 실시간의 속도가 정말 따르고 겉잡을 수 없는 것 같다.SNS의 한 이용자로서 이에 끌려 다니기 보다는 그 서비스를 똑똑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SNS가 내 생활에 미치는 영향# 세상이 스마트해지는 사이, 친구의 전화번호를 잊어 버렸습니다. 손바닥 안의 세상에 눈을 빼앗기더니, 생각마저 빼앗겨 버린 건 아닐까요? 커피를 마시는 동안 생각해봅니다. 내 생각이라는 녀석은 잘 지내고 있는지. 그래도 다행입니다.
선별적 복지& 보편적 복지경제정책론1. 보편적복지 VS 선별적복지선별주의와 보편주의의 원리는 복지서비스 제공 기준에 관한 가치들이다. 곧, 이들은 사회 복지 정책 활동으로부터 제공되는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자격 및 범위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오늘날 사회보장에 있어서 보편적용의 원칙(무차별 평등의 원칙)을 어느 나라에서나 채택하고 있다. 헌법은 사회복지의 대상은「모든 국민」이라고 한다.사회복지 급여에서 선별주의와 보편주의 논쟁이 처음 일어난 것은 영국의 학교급식에서이다. 학교급식을 저소득층 자녀들에게만 무료로 급식한데서 무료급식 아동들의 낙인의식이 문제로 제기된 것이다. 그래서 모든 학생들에게 무료급식을 시행하였다. 대상자의 선별문제는 엘리자베스 빈민법에서 최초로 일어났다. 즉, 근로능력이 있는 자와 근로 무능력자를 차별적으로 처우한 것이다. 보편주의는 복지재정의 운용에 있어서 효율성과 효과성을 따질 때 대안으로 선별주의를 내세운다. 선별주의는 피보호자의 인권과 낙인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이와 같이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는 서로 상반되는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1) 선별주의의 전통과 사상선별주의는 전통적으로 공적부조제도의 대상을 규정하는 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산조사에 의해서 사회복지 대상자를 일정한 범위 내에 제한하려는 할당원칙이다. 이러한 제한적인 할당원리는 구호 대상자의 수를 가능한 제한하려는 구빈법의 전통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즉, 구빈법 시대에는 대상자를 제한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궁핍 정도에 대한 조사’를 행하였고 그 후에는 ‘자산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궁핍조사’에 의해 궁핍한 것으로 판명된 사람은 노역장에 수용하고 영세 취업장에서 노동을 강제하였다. 이는 구호 신청자를 제한하려는 시도인 동시에 노역장과 영세취업 노동자의 고통을 참아낼 수 있는 사람만이 구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시도였다.즉, 선별주의란 사회 복지 서비스가 개인적 욕구(individual need)에 근거를 두고 제공되며 대상자의 선정요건을 엄격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반면 수급자 결정을 위한 자산조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어 운영효율성이 떨어지고, 서비스 제공받는 사람을 자산조사를 실시하여 선별함으로서 사회복지 대상자로 하여금 “열등낙인감”(stigma)과 “사회적 짐(burden)”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등 사회적 평등이념에 위배되는 부작용이 나타나며 또한 급여 대상자에서 제외된 차상위계층에 대한 문제도 심각하게 고려할 점이다.(3) 보편주의의 전통과 사상1960년대 영국에서는 노인과 아동의 빈곤이 커다란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가족수당제도의 개정을 둘러싼 논의 가운데서 선별주의를 지지할 것인가, 보편주의적인 제도개혁을 선택할 것인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보편주의는 자산조사를 폐지하고, 소득보장과 복지서비스를 그것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만 기초해서 할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즉, 보편주의란 하나의 사회적 권리로서 전 국민에게 사회 복지 서비스가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상이며 자산조사를 거치지 않고 요구(need)가 있으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복지 서비스 제공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복리와 사회질서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기초로서 기본적으로 인정되는 사회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공급을 강화하거나 보장하는 제도적인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이 대표적인 보편주의로 나타난다.(4) 보편주의의 특징보편주의는 국가가 평등하게 모든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으로서 복지이념 또는 복지서비스 제공방법에 관한 제도주의 모형은 보편주의에 입각하고 있다. 보편주의의 장점은 이러한 선별주의의 단점을 보완하여 사회적 문제를 예방하고자 하는 측면이 강하다. 궁핍을 미연에 방지해 주며 인권에 대한 침해를 받지 않고 하나의 사회적 권리로서 서비스를 제공받기 때문에 수치감이나 낙인감을 심어주지 않는다는 큰 장점이 있다. 따라서 인간 존엄성의 보장이라는 사회적 효과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행정 및 시행 절차가 간단하고 복지 적으로 '보편적 복지'는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동일한 혜택을 주는 개념이다. 반면 선별적 복지는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국가가 정한 일정한 규범에 만족하는 사람들에게 선택적으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기본권적은 측면을 강조한다. 즉, 복지를 포괄적인 개념에서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삶의 질에 대해 보장하는 것으로 본다. 반면 선별적인 복지는 선별적이고 제한적인 지원을 강조해 시혜적은 성격이 강하다.보편적 복지는 사회구성원의 성별, 연령, 인종, 계급, 경제적 능력의 정도와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선택적 복지는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있어 일정한 기준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국민에게 사회보장제도를 적용하는 경우 일정한 자산조사를 걸쳐 수급여부를 결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와 같은 경우를 선별적 복지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이와 같은 선별적복지의 만연화는 사회구성원들이 복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통로를 차단하고 국가중심의 복지를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시민을 양산하는 원인이 된다. 특히 자본주의경제시스템 하에서의 복지제도는 선별주의적 복지의 성격이 강하다.2. 선별적 복지의 국가들(1) 영국의 자유주의형 사회투자 정책신케인즈주의에 입각해 ‘대안적 경제전략’과 복지 분야에서는 전통적인 ‘과세, 사회지출 증대’ 공약을 내세웠던 노동당의 연이은 선거패배에 신 케인즈 주의적 패러다임을 포기하고 신자유주의적 패러다임을 대폭 수용하여 공급중시 사회주의로 돌아섰다. 공급중시 사회주의는 신자유주의처럼 수요측면이 아니라 공급측면을 중시하지만 그 목표와 방법은 다른 ‘제3의 길’의 정책 패러다임이다. 공급ㅂ중시 사회주의는 생산요소의 원활한 흐름증대, 품질의 제고, 투입요소의 이용률 향상을 통한 생산의 효율성 증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영국 경제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이를 위해 노동당은 자본과 인력이라는 공급측면의 가장 미래의 시민, 노동자로 우선적 관심대상이며 성인의 사회적 시민권은 노동의무에 상응해 주어짐으로 봤다. 미래지향적이며 평등의 증진을 위한 소득재분배보다는 사회적 포섭의 증진을 위한 기회 재분배가 특징이며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의 통합, 그러나 후자의 명백한 우위를 보이며 표적 화된, 때로는 자산조사를 동반한 프로그램의 선호가 특징이다.(2) 덴마크의 사회민주주의형 사회투자 정책1973년 오일쇼크이후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고 마이너스 성장과 만성 재정적자를 경험하였다. 실업률은 공공부문의 적극적인 고용흡수에도 불구하고 최고치로 치솟았다. 이로 인해 보수당 정부가 들어서고 보수당 정부는 통화주의와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안정화 조치를 취했다. 사민당 정부 하에서 행해졌던 평가절하 정책의 폐기를 선언하고, 덴마크 크로네를 독일 마르크화에 연계시키는 연계환율정책을 시행하였다. 이러한 경화정책과 더불어 자본시장을 자유화하고 복지지출 등의 삭감을 통해 재정적자를 축소하며, 물가연동임금제를 폐지하였다. 이러한 안정화조치는 노사정의 사회적 협의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위기조치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시행이 되었다. 이로 인해 노조의 반대는 격렬하였고, 대규모 파업과 데모로 불만을 표하였다. 야당인 사민당은 노조와 함께 보수당 정부의 안정화조치에 대해 반사회적이며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한 처사라며 반대의사를 명확하게 표하였다.사민당은 1993년 재집권후 경제정책 기조를 크게 변화시키지는 않고 더 좋은 미래를 향한 신 진로라는 모토 하에 두 가지 중요한 개혁에 나섰다. 하나는 조세개혁이고 하나는 노동시장개혁이다. 조세개혁은 개인소득세를 낮추는 대신, 유류와 담배, 사치재 등의 소비에 과세를 높이는 녹색세를 도입하고, 각종 조세감면과 소득공제 혜택을 축소하여 전체적으로 재정수입의 규모는 유지하는 방향이었다. 그리고 노동시장개혁은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되 노동을 촉진하고 개개인의 근로능력을 높여 실질적으로 자유경쟁시장에서 고용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 졌다. 이는 소위 황지역의 모든 주민(60세 미만인 930명)* 60세부터는 노령연금을 이미 받고 있음.? 지급 금액 : 매달 N$ 100(한화로 1만 4~5천원 정도)? 지급 방식 : 우체국 예금 계좌로 송금(처음 6개월은 직접 지급)? 기간 : 2008년 1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24개월? 비고 : 21세 미만은 돌봄제공자에게 지급(2) 브라질브라질의 경우 2010년 ‘시민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기본소득 제도의 전국적 시행을 앞두고 있다. 관련법은 2004년에 최종적으로 통과되었으나 그 시행에 이르기까지 난관이 많았던 셈이다. 브라질의 경우 전국적 수준에서 최초로 이 기본소득 제도가 실시된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의 시행이 급작스럽게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브라질은 지금까지 볼사파밀리아(Bolsa Familia)라 불리는 소득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해왔다. 브라질에서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고 있는 가구는 모두 1130만 가구에 이른다.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된 지난 2003년 당시 혜택을 받았던 것이 350만 가구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놀랄만한 성과다. 이 볼사파밀리아 프로그램이 대략 브라질 인구 1억9030만 명의 4분의1에 해당하는 4500만 명을 끌어안음으로써 브라질의 평등지수인 지니계수는 2002년 0.58에서 2007년 0.55로 개선되었다.기본소득의 강력한 지지자인 브라질 노동자당 상원의원 수플리시가 기초한 시민기본소득 관련 입법안이 브라질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승인을 받은 것은 지난 2002년 12월이었다. 이듬해인 2003년 12월에는 이 법안이 브라질 하원에서도 승인되었고, 2004년 1월 8일에는 룰라 대통령이 이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효력을 갖게 되었다. 이로써 브라질은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을 제도화하는 법률을 의회에서 통과시킨 국가가 되었다.이 시민기본소득은 처음에는 2005년부터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부터 단계적으로 혜택을 줄 계획이었다. 법에 따르면, 행정부가 이 지급 액수를 정하고 전체 인구가 혜택을 받을 때까지의문이다.
중화학공업 육성을기본으로 한1970년대 한국경제의 발전목차1.머릿말2.중화학공업 육성의 배경3.중화학공업 육성계획4.산업구조의 변화5.70년대 무역구조6.투자환경7.노동시장8.재벌육성9.Oil shok10. 중화학공업에 대한 평가11.맺음말12.참고서적1. 머릿말동아시아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60-70년대 동아시아 개발도상국의 눈부신 발전은 세계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단기간에 걸친 고도성장의 전형을 보여준다. 특히 1952년 한국전쟁 후 세계 경제의 자유무역 기조 속에 동반 편승해 60년 정부주도 수출전략으로 높은 성장률을 보인 한국은 70년대 변화된 대외환경에 적응하고자 강력한 정부주도하에 당시로서는 가히 모험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중화학공업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경제개발5계년계획과 함께 병행된 중화학공업화는 우리경제의 고도화에 기여한바가 크나 실행과정에서발생한 구조적 문제점등으로 인하여 80년대초 극심한 한국경제의 불황을 야기하였고 이로인하여 당시 정책에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았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다면 산업구조의 급진적이고 획기적인 변혁의 원동력은 무었이었으며 어떻게 하여 경공업 위주의 산업구조에서 중화학공업화의 기반을 닦는데 그렇게 단기간내에 이룩할수 있었던 내 외부적 요인은 무었인가에대해 궁금하지 않을수 없다. 또한 여기서 어떻한 구조적 모순점들이 어떤요인에 의해 나타났는지에 그 전개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한다.2. 중화학공업육성의 배경62년 경제개발계획이 실시된 후 한국경제는 수출 주도형의 공업화 과정을 거치며 이자 및 정부 주도에 의한 성장을 거듭했다. 한국의 가공무역형 경공업화 성장전략은 국제자본 시장의 호황으로 인한 외자도입의 용이성, 저렴한 1차상품의 가격, 월남 파병으로 인한 특수 그리고 선진 경제국들 간의 치열한 생산재 수출경쟁등과 더불어 한국 내의 값싼 노동력 그리고 정부의 각종 수출 지원책이 함께 이루어낸 성과라고 할 것이다.그러나 이 유리하게만 보이던 국제 경제 여건은 70년대에 들어 변화되기 시작했다.1950 선정하였다. 이것을 주도업종이라고 불렀는데 철강공업, 비 철금속공업, 조선공업, 기계공업, 전자공업, 화학공업의 6개 업종을 주도업종이라고 하였다. 둘째, 1973년부터 1981년까지 9년간 구체적 연차계획을 수립토록 하였다. 셋째, 중화학공업 업종은 단위공장별로 품질 . 가격면에서 처음부터 국제경쟁력을 갖추어 나가게끔 규모의 경제를 고려하여 계획하도록 하였다. 넷째, 공업발전에 있어서 노동집약공업에서 기술을 가미한 기술집약 두뇌공업으로 전환하도록 하였다. 형태에서는 원자재와 중간재를 도입하여 가공하 던 제품만의 가공조립형태로부터 원자재생산에서 제품조립에 이르기까지 모두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향상시켜 공업의 구조적 기반을 튼튼히 하도록 계획하였다. 다섯째, 기술인과 기술을 획기적으로 양성하도록 하였다. 여섯째, 국토종합개발계획에 근거를 두고 산업기지를 설정하도록 하였다. 중화학공업은 대규모의 장치산업이므로 넓은 대지가 필요하며 전후방 관련효과가 크므로 한 곳에 집중시켜 단지화 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공업지역은 성격상 부합되는 업종끼리 구분 하여 집중화하여야만 업종상호간의 경제성 상승효과 및 투자 절감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정부지원제도를 확립한다. 등이다.이를 시행하기 위하여 정부 1973년 5월에 대통령령으로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가 설치되고 중화학공업에 대한 종합계획과 부문별 추진계획 및 지원계획의 수립을 담당한게 된다. 이는 철강, 화학, 비철금속, 기계, 조선, 전자등 6대전략업종을 선정하고 이 업종들을 중심으로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였으며 이를 위한 입지계획, 업종별 기지설정이 마련되었다. 이 6대 전략업종에 대한 투자계획규모는 1973년-1981년간 총 2조 9,800여원으로 그 기간동안의 제조업 투자의 63.9%에 이르는 규모이다. 또한 1976년에는 기계공업 육성 5개년 계획과 더불어 기계류 국산화 지원방침 등과 같은 다각적인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이 이루어졌다.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책은 특혜적 재정정책, 금융정책, 조세정책의 간접.1%(제조업=31.8%)로 급증했고 사회 간접 자본 및 기타 서비스는 48.8%로 약간의 증가를 보이고 있다.이러한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는 산업별 성장률의 격차에도 뚜렷이 나타나 있다.1962~1978년간에 걸쳐서 GNP의 연평균성장률은 9.3%이다. 그런데 산업별 성장률을 보면 농림 수산업의 성장률은 3.4%에 불과하다. 반면에 광공업의 성장률은 17.3%(제조업 18.3%)로 매우 높다. 사회 간접 자본 및 기타 서비스의 성장률은 10.2%이다. 사회 간접 자본 및 기타 서비스에서는 전기?가스 및 수도사업 19.5%, 운수창고 및 통신업 18.3%, 그리고 건설업 16.8% 등의 순서로 성장률이 높다.다른 한편 공업 구조에 있어서도 급격한 변화를 찾아볼 수 있다. 중화학 공업 비율을 보면 생산액 기중 1975년 불변 가격으로 1962년에는 26.9%였던 것이 1978년에는 55.0%로 되었다. 따라서 중화학공업의 비율은 같은 기간에 2배 이상으로 증가했으며, 경공업의 비율을 10%나 앞서게 되었다.산업구조의 양적측면에 정부의 지원과 함께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연근해에 설럽된 대규모의 공단이었다. 이 시기에 설립된 주요 공업단지들을 보면 창원에 기계공업단지, 울산에 석유정제공업단지, 포항에 철강공업단지, 여천에 화학공업단지 울산에 기계공업단지와 조선공업단지, 그리고 구미에 전자공업단지가 설립 되었다. 비록 동남쪽해안 주변에 집중적으로 설정 되었으나, 이는 우리나라의 무역구조가 대부분 미국과 일본에 큰 비중을 두었고 서해안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커서 큰 항만의 건설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것이다.5. 70년대 무역구조중화학공업화가 시작되면서 한국의 무역정책은 60년대의 수출주도형으로부터 한시적으로 수입대체로 전환하였다. 중화학업종이 뿌리내리도록 수입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일부 부품수입품에 대한 관세면제를 폐지함과 동시에 국내중화학업체로부터 국산구매를 강화시켜나갔다. 그리고 주요 산업설비에대한 국산화 비율 요건을 강화하는 한편 국산자재를 구매하장인 미국과 일본에 편중되어있다는사실이다. 수입에 있어서 1971년에 양국비중이 68.5%, 1977년에 58.9%로 수준으로 62년 78.1%에 비해 감소하였으나 이와 같은 높은 수입편중양상은 양국의 정치적, 외교적, 또는 경제적 여건 변화에 따라서 우리나라의 수입이 크게 영향을 받게되는 결과를 낳았다.수출에 있어서도 1970년 75.6%, 1976년 55.7%를 기록하여 수입구조와 대동소이함을 알수있다.70년대들어 제1차 석유파동 다음해인 74년에 우리나라 무역수지적자는 29억9000만 달라에 달했으며. 75년에는 21억 9000만 달라를 기록한후 2차 석유파동 직후인 1979년에는 52억8000만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무역적자를 나타내었다.이와 함께 정부주도하에 저금리, 저임금, 지원금, 환율인상등 모든수단을 동원한 정부의 출혈수출도 문제였다. 수출을 늘리기위해 만은 부품과 소재를 수입해와야하는데, 선진국 공업제품의 가격인상분을 완전히 수출제품에 전가할 수 없을때에는 외부의 인플레이션을 국내로 전가하게 되어 한국 인플레이션의 체질저하를 야기했다.우리나라의 국제 수지에 있어서 경상 수지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적자를 외자 도입에 의해서 보충하고 있다. 그래서 1978년에 이르기까지 외자 도입 액은 합계 133억 8153만 달러에 이르고 있다. 적자액은 1970년에 이르기까지는 증가해왔으며, 그 이후에는 증감이 반복되고 있다.6. 투자환경관치금융에 의한 중화학사업에 대한 특혜금융과 세제상 우대초위는 재벌들의 참여를 유인하는데 효과적이었다. 이에 재벌들은 수익성보다는 정부의 특혜적금융과 새로운 유인제도에서 예상되는 단기적 이득을 목적으로 투자러쉬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결과 중화학공업에 대한 상대적 투자비중도 급격히 늘어났다. 70년대 전반까지 전체 제조업투자에서 57%가 중화학이 차지하였으나 70년대후반에는 다시 64%로 확대되었다. 같은 기간중 경공업 투자비중은 43%에서 36%로 감소되었다. 제조업투자 가운데서 설비투자만을 분리하여보면 19정책은 재벌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다. 큰 규모의 설비와 투자가 필요한 중화학 공업의 특성 때문에 개발은 재벌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종속적 자본 축적 방식을 철저히 따랐던 현대, 삼성, 럭키, 대우 등 4대 재벌은 빠르게 자본 축적을 이룰 수 있었다. 더욱이 재벌들은 재벌내의 회사들이 서로 자본을 빌려주는 상호출자로 모든 업종에 ‘문어발 식’으로 침투했다.수출금융혜택과 사중금리의 절반정도인 7-9%의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 것, 그리고 ‘5?29 특별조치’와 같은 사채 시장을 양성화하여 투자신탁?신용협동조합 등 제 2금융권을 만드는 등의 수출과 중화학 공업화를 위한 정부의 여러 가지 정책들은 부실기업을 인수하고 기업을 적극적으로 합병하는 등의 재벌의 몸집을 키우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기업의 생존 여부와 정부의 정책은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정경유착과 기업의 부조리가 사회에서 만연하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중화학의 추진기간 동안 대기업은 대량생산 체제를 도입하고 수출지향적 공업화를 통해 대량수출제로 나아가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일부 업종에서 대기업은 중간재의 수입대채를 통해 국제하구조하에서 벗어나는 분업구조를 창출하기도 하였다. 대기업의 계열사 수가 대폭 증가하여 “재벌”로 변신한 것도 70년대에 이루어진 현상이다. 재벌들은 새로운 기업을 설립하거나 타기업을 인수함으로써 계열기업을 증가시켰다. 예컨대 1970~79년 사이 10대 재벌들은 신규계열사 설립 72개, 중소기업 및 민영화, 공기업 인수 등 85개사를 인수하였으며 24개사는 체 정리를 실시하였다. 1970년에 126개에 불과하였던 30대 재벌의 계열기업수가 1979년에는 429개로 증가하였다. 이와같이 재벌들의 계열기업 수가 급격히 확대된 배경에는 70년대 중반의 중동건설 붐, 제 2금융권 진출 확대 등도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경재력집중화현상고용점유율출하액점유율*************977198219875대집단9.18.49다.
신 고전학파경제학사목 차Ⅰ. 서론Ⅱ. 본론1. 신고전학파1) 신고전학파란?2)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 1842~1924)의 이론(1)사회적 배경(2)A.Marshall 의 ‘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Economics)"2.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영국 1883~1946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 사회적 배경2) 케인즈의 경제학3) 신고전학파에 대한 비판3. 제도학파(institutional school)1) 시대적 배경2) 이론 및 특성3) 신고전학파에 대한 비판Ⅱ. 결론Ⅰ. 서론경제학의 일반적인 정의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 항상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자원의 희소성)에 직면하여, 그 제한된 수단을 가장 유효하게 활용하고자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인적 및 물적 자원이 어떻게 배분되고 소득이 어떻게 처리되는가를 관찰함으로써 이들에 관한 일반적인 법칙을 구명하며, 그 자원의 배분과정에서 야기되는 경제적 · 사회적 문제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자 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경제학을 연구하는 목적이 첫째, 어떤 경제현상에 대한 진상을 구명하여 그것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자 하는 것이고, 둘째, 적극적으로 경제사회의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를 옳은 방향으로 유도하자는 실천적 동기에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그 사회의 통념과 양식에 비추어가치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 경제학은 시대적 배경에 의해 받아들여지며 비판받게 되는 것이다.경제학은 15C부터 중상주의 · 중농주의를 거치면서 자본주의와 함께 탄생하여 발전하였다. 그리고 18C 말엽부터 영국에서 중상주의 정책에 반대하여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나옴으로써 경제학은 하나의 학파로써 인정받게 된다. 그 후, 많은 학파들이 대두 되었지만, 그 학파 중, 주류 경제학 중의 하나인 신고전학파의 의미는 더욱 깊다고 할 수 있다. 신고전학파는 1870년대에 등장하여 오늘날의 미시경제학 테두리를 확립하는 등의 업한 것이 아니지만, 한계혁명 후 미시적 가격이론 중심의 종래의 근대 경제학이 불가역적(不可逆的)인 시간요소나 불확실성을 무시 내지 경시하고, 원자론의 입장에 서서 소비자 주권을 절대시하며, 경제생활의 역사적 ?사회적 성격을 무시 내지 경시하고 있는 측면 등이 비판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처럼 신고전학파는 매우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 의미 내용은 단일의 것을 상정할 것이 아니라 전후관계에서 미루어 판단되어야 한다.2)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 1842~1924)의 이론(1)사회적 배경마샬이 그의 경제학을 형성하던 시기의 영국은 역사적 상황이나 원리 면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싸. 사회주의는 진전이 거의 없었으나, 영국 자본주의는 세계 도처를 지배하면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즉 19C전반에 산업혁명의 과정이 일단락되어 생산력이 증대, 자본축적의 비약적 발전이 있었고, 영국 공업은 ‘세계의 공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생산기술, 금융, 상업의 새 제도도 급속도로 발달하여 봉건적인 처신은 일단락되고 신흥 산업자본가 계급이 지주 계급을 완전히 억누르게 되었다. 또한 노동조합이 성장하여 근무시간을 단축시키고, 임금을 인상시켜나갔다. 빅토리아 시대의 낙관주의가 당시 영국사회의 사조를 물들이고 있었다. 과거의 경제학 원리들은 그 이후에 나타났던 변화된 제도를 설명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마샬은 그가 언급하는 시대는 과거와는 다르다고 인식하였다. 경제문제는 매년 더 복잡해진다. 따라서 경제문제를 매년 여러 다른 관점에서, 그리고 여서 다른 연관선상에서 공부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적실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마샬은 “옛 원리를 새로운 작업으로 보완하고, 우리 시대의 새로운 문제를 참조하여 현대적 의미로”(Marshall 1890 서문) 나타내고자 의도하였다.(2) A.Marshall 의 ‘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Economics)"추론과정에서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가정된 전제로부터 연역적 추리를 거쳐 결론에 도달하였(p.348). 따라서 가기는 균형의 목표지점으로 남아있다. 마샬에 있어서 수요와 공급은 경제의 모든 부분에서 작용한다.주어진 조건 아래서의 수요·공급 분석은 단기 균형을 결정하는데 사용된다. 이 밖에도 aktif은 기업이 고정된 자본을 새로운 공장과 기계로 확장하는 장기 분석에도 관심을 가졌다. 균형의 문제에서 생산과 관련하여 시간이라는 요소가 들어간다. 시장기에는 공급량은 절대적으로 고정되어 있다. 이 기간에는 생간 능력의 변화가 없으며, 시장에서 일시적 균형에 도달한다. 단기에는 공급은 생산비용의 영향을 받는데, 이는 곧 가변비용을 증가시킴으로써 공급량을 증가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장기에는 모든 비용, 즉, 가변비용과 고정비용이 수요의 변화에 완전히 조절될 수 있다(p.330, p.376~377). 기간이 단기 또는 장기라는 것은 시간의 길이에 따는 것이 아니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정도에 따른 것이다.② 수요 측면 분석a. 수요 곡선마샬은 수요 곡선을 다른 모든 요소를 불변으로 한 채 상품의 수요량과 수요 가격 간의 관계로 나타냈다. “판매될 양이 많을수록 구매자를 찾기 위해서는 제시될 가격은 낮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가격이 하락하면 수요량은 증가하며,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량은 감소한다.”(p.99) 그러나 aktif은 다른 요소들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다른 요소는 구매자의 기호 및 소득과 다른 상품의 가격 등이 포함된다.b. 소비자 잉여마샬은 소비자 잉여를 “소비자가 그 상품을 얻기 위해 기꺼이 지불하고자 하는 가격이 실제로 지불하는 가격을 초과하는 부분” (p.124)이라고 정의하였다. 소비자잉여는 소비자가 그 상품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 그의 후생 수준의 손실을 측정한다.c. 수요의 가격 탄력성마샬은 수요의 탄력성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도입하였다. “어떤 시장에서 주어진 가격의 하락에 대하여 수요량의 증가가 많고 적음에 따라, 또한 가격의 상승에 대하여 수요량의 감소가 많고 적음에 따라 수요의 탄력서(또승)하고 임금은 하락(상승)한다.다른 분배 몫은 자본의 보수인 이자이다. 자본의 한계생산이 자본의 수요 스케줄을 나타내며, 자본의 가격은 이자율로서 나타난다. 자본의 공급의 저축에 의해 결정 되며, 저축은 주로 이자율에 의해 결정된다. 저축의 주된 동기는 미래의 더 큰 보답을 얻기 위해 현재의 소비를 연기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사이다. 마샬은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사용한 ‘절제(abstinence)’라는 말 대신 ‘기다림(waiting)라는 말을 사용하였다.지금까지 마샬의 ‘경제원론’을 가지고 신고전학파의 이론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럼 도대체 신고전학파의 어떤 부분에서 다른 학파들이나 경제학자들에게 비판을 받는가? 그것은 신고전학파의 가정부분이다.3.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영국 1883~1946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사회적 배경세계의 자본주의 경제는 제1차 세계대전을 전환점으로 하여 자유자본주의에서 독점자본주의로 전환되었다. 자유자본주의하에서는 소비자와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의하여 실현되는 균형상태는 대체로 완전고용 상태에 접근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자유자본주의하에서도 반드시 완전고용이 유지되었던 것은 아니고, 불완전고용을 수반하는 불황도 존재하였으나, 이 불황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경기순환의 한 국면에 불과하였으며, 3~4년 내에는 경제의 자기 조절적 기능에 의하여 다시 회복과정을 거쳐 번영으로 복귀하는 일시적 ?비정상적인 특수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점단계로 접어든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자본주의하에서는 대량의 실업이 만성화하면서 산업계 ?금융계 전반에 걸친 대공황을 초래하여 경제사회 전체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특히 1929년 미국의 월가에서의 주가의 폭락으로 발생한 만성적 불황은 공황을 수반하면서 전 세계에 파급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케인스가 말한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사태가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자기 조절적 기능을 상실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렇라 좌우되며, 고용수준과 소득수준을 결정한다. 이와 같이 고용수준과 소득수준은 소비와 투자에 의하여 결정되지만, 소비는 비교적 안정적이기 때문에 고용과 소득의 수준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투자이다. 종래의 고전학파 경제학에서는 불완전고용을 초래하게 되는 유효수요의 부족이라는 사태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공급은 자기 자신의 수요를 창출 한다'는 '세의 법칙'을 전제로 해왔기 때문이다. 공급이 바로 그만한 크기의 수요를 창출한다면 수요의 부족이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이로 인한 불완전고용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케인스에 의하면 세이의 법칙은 현실경제사회에서 타당성을 가지는 법칙이 아니다. 수요와 공급이 언제나 일치하기 위해서는 저축과 투자가 언제나 일치해야 하는데, 저축과 투자는 담당자와 동기가 서로 다르므로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이러한 점에서 케인스는 고전학파의 경제이론을 반박하여, 영(零)과 완전고용 사이에 무수히 존재할 수 있는 고용의 균형상태 중의 하나에 불과한 완전고용만을 유일의 균형상태로 가정하는 고전학파 경제학은 하나의 '특수이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고, 완전고용과 함께 불완전고용까지를 가정하고 있는 자신의 경제학이야말로 '일반이론'이라고 강조하였으며, 완전고용을 위해서는 조세정책 ?화폐정책 ?금융정책 ?재정정책 등을 통한 정부당국의 인위적 간섭에 의해 유효수요를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케인스의 일반이론은 주로 1930년대의 자본주의 경제의 병폐인 불완전고용, 즉 불황을 주로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데서, '불황의 경제학'이라고 평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의 주축을 이루는 유효수요 이론은 불완전고용뿐만 아니라, 완전고용하의 경제 분석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고, 또 인플레이션 분석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케인스가 자신의 이론을 '일반이론'이라고 부른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일반이론》은 경제이론 면에서 케인스 혁명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나라의 경제정책에 이론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