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을 재구성하고 그 의의를 논하라.2. 1의 연장선상에서 중세 보편실재론과 유명론을 설명하고 그 의의를 논하라.1.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을 재구성하고 그 의의를 논하라.플라톤은 일상적인 지식과 감각을 불신하고 영원 이념과 사유에 대한 탐구를 추구했다. 대화를 통해 공통의 노력을 통한 보편타당성을 발견하고자 했으며, 개별자로부터 보편자로 나아가는 이데아Idea의 존재를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이데아는 동굴 밖의 참된 세상이며 현실은 감각을 통해 보여주는 환영일 뿐이다.“동굴이 하나 있다고 상상하라. 갇힌 자들은 사슬에 묶인 채 안쪽 깊숙이 있는 벽면을 마주하고 있다. 이들은 평생 거기에 묶여 있었으며, 이들의 머리는 동굴의 벽면 말고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도록 고정되어 있었다. 그들 뒤로 불이 있으며, 불 과 그들의 등 사이에 길이 하나 있다. 길을 따라 다양한 사람들이 걸어 지나가면서 그림자를 동굴의 벽면에 드리운다. 몇몇은 동물의 모형을 운반하면서 그림자를 만든다. 동굴 안의 갇힌 자들은 언제나 그림자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들은 그림자들을 실재라고 믿는다. 이것들보다 나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결코 진짜 사람들을 보고 있지 않다.”이것이 동굴의 비유이다. 그는 일상생활을 한낱 감옥이라 생각했으며, 인간은 벽을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사슬에 묶여 그림자로만 비치는 현세를 바라본다고 했다. 그는 영혼의 이념에 해당하는 불멸의 원형을 영원 본질이라 했으며 바로 세계정신과 같은 것이라고 상정한다. 그렇기에 현 세계에 있는 사물들은 모두 이데아 세계의 그림자일 뿐이며, 우리가 감각하는 모든 사물이 이데아의 모사 일뿐이라고 했다. 플라톤은 육체에 독립적인 영혼을 인정하며, 또 영혼이 이데아를 인식한다고 본다. 그러나 육체에 갇힌 영혼은 이데아를 잘 볼 수 없다. 때문에 이데아를 인식하는 것은 육체의 껍질에 현혹되지 않고, 영혼에 본래 각인되어 있는 이데아를 상기하 내재되어있고 그것을 ‘실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만약 책상을 말하자면, 질료는 각기 다르지만 용도가 갖기 때문에 그것은 책상이 된다. 플라톤에 따르면 이데아적 책상은 완벽한 하나만이 존재하지만, 책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그것은 책상이 될 수 없다. 같은 물질이지만 어떠한 구성으로 만들어지냐에 따라 그 사물의 형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 사물이 동일한 근거 아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존재하는 대로 다른 사물이 된다. 또한 이데아란 사물들이 필요 없이 이중화된 것이므로 사물은 있는 그대로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이데아는 사물들 안에 있지 않으므로 사물의 본질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한 이데아는 동적인 것이 아닌 정적인 것이며, 이로써 무한 후퇴만이 발생한다.그러자 플라톤은 개별적 사물들은 독자적 실재가 아니며 개별적 사물들 역시 이데아를 통해서야 실체로서 존재하며, 그 속에 모두 이데아가 나타나 있다고 반박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반박하면서도 이후, 제일실체로서 종적인 것인 보편자의 존재론적 우위를 주장했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도 개별자가 강조될 때 보편자는 우선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 논법과 같은 경우를 보아도, ‘삼단논법은 사상의 결합이다. 이 결합에서는 어떤 것이 주장되면 반드시 주장된 것으로서 어떤 다른 것이 따르게 마련’이 된다. 이는 근본적으로 보면 플라톤의 변증법에서 나온 것이다. 왜냐하면 삼단논법에서는 마지막 개념이 중간개념에서, 그리고 중간개념은 첫째 개념에서 도출되도록 되어 있는데, 플라톤의 변증법에서도 역시 하위의 에이도스는 상위의 에이도스에 내포되어 있고, 하위의 에이도스는 상위의 에이도스에서 생겨 나오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변증법에서는 그리고 보다 높은 이데아가 그 하위의 어떤 개별적인 것들로부터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보다 높은 이데아는 개별적인 것에서 이끌려져 나오지 않고 오히려 개별적인 것이 보다 높은 이데아에서 이끌려 나온다.아리스을 통하여 정립된 기독교 교리는 스콜라 신학자에 의해 발전되었다. 스콜라의 교사들에 의해 발전된 신학 내지 기독교 철학을 스콜라 철학이라 하며, 크게 세 시대로 나뉘어진다. 전기는 9세기부터 13세기정도로 에리우게나, 안셀무스, 로스케릴누스, 아벨라르 등이, 전성기를 맞이한 중기는 13세기부터 14세기까지 토마스 아퀴나스, 알베르투스 마뉴스에 의해, 그 이후 중세 말까지는 둔스 스코투스와 윌리엄 오캄 등으로 득세하였다. 스콜라 철학은 지성을 추구하는 신앙으로 “신학은 학문의 왕이며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말처럼 모든 것을 신학 아래에 놓았다.2. 1의 연장선상에서 중세 보편실재론과 유명론을 설명하고 그 의의를 논하라.보편논쟁이 한창이던 시기는 철학사적으로 스콜라철학 시대였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 사상을 받아들여 교부철학을 완성했다면, 이슬람 세력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유입시켜 두 위대한 철학자의 논쟁이 스콜라 철학자 사이에서 다시 재현되었다. 그러므로 보편논쟁의 시작은 종교적인 측면에서 신앙보다는 이성을 강조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유입과 그 영향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보편논쟁은 스콜라 철학의 핵심적 논쟁인 만큼 스콜라 철학 시대의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시기는 플라톤 사상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 시기로, 플라톤 사상의 특징이 나타나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은 논리학에서 주목만을 받을 뿐이었다. 이 시기의 견해를 보편실재론이라 부르며 두 번째 시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 아래에 놓인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비신학적 지식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지만 독립적 탐구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한 그 이후의 철학과 신학에 관심을 갖은 온건 실재론이었다. 세 번째 시기에 이르면 스콜라 철학은 해체에 이르고 토마스 아퀴나스와 둔스 스코투스의 논쟁이 벌어진다. 이들의 논쟁은 실재적인 개별 존재에 높아진 의미를 부여하였고 결국 실재로서의 보편 개념에 대한 부인이 뒤따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 아래 있던 두 번째 시기는 모두 실재론의 시기였다.가, 그것의 내부에 있는 가? 그의 정식화는 보편개념은 정신에서 비물질적으로, 사물 내에서는 구체적으로 존재한다고 하였으며 개별자 안에 존재하나 정신에서는 별개로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하였다. 사유의 질서가 존재의 질서와 완전히 일치한다는 극화된 실재론도 있다.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관념은 정신 밖의 실체와 대응하며 반영하므로 보편자는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이며, 유나 종은 실재 안에 존재하고 개체는 보편자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유명론자인 로스켈리누스는 “신이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성부?성자?성신의 결합이라서 신은 하나가 아니라 세 명”이라고 주장했다. 로셀리누스는 어떤 유의 추상 보편자는 하나의 사물과 대응되어서는 안 되며, 개체만이 자연 내 존재하며 보편 개념을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이 개체를 결정한 후 주장한 것이므로 보편자는 실재성이 없는 말이거나 명사에 불과하다 했다. 이에 안셀무스는 로셀리누스의 삼신론에 반대하며 각각 위격은 신이지만 유일한 신이라는 점에서 삼위일체를 주장하였다. 오캄은 인식에는 감각적 직관 혹은 내적 반성적 직관이외에는 필요하지 않으므로 사물에 내재된 자연적 형상과 인간의 능동적 이성을 상정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우리의 인식이 추상작용을 통해 일반 관념이나 표상을 형성한다고 하지만 일반 관념은 정신의 대상으로서 실재성을 지닐 뿐 실재 사물에는 인정되지 않는다. 만약 보편자가 실재한다면 창조에 앞서 신의 마음 속 보편개념으로 존재했을 것이고 그것은 곧 신의 의지를 속박하는 결과가 되어 신의 자유로운 창조와 모순되는 것으로 보았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온건 실재론을 정식화하면서 존재를 본질과 실존의 유비적 합으로 이해했다. 실제적 존재는 실존과 본질의 두 필연적, 내적 구성 원리의 합으로 본질 그 자체는 보편도 개별도 아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존재를 실존에서 배제시키고 본질의 측면으로만 파악한 관념론자와 개별자의 자기 동일성이라는 추상 개별자 개념에 빠진 유명론자 모두를 비판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보편자가 이데아로 텔레스에 따르면 보편개념은 질료와 함께 사물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편 개념의 차이는 있지만, 보편 개념이 실재한다는 인식에 있어서 둘의 생각은 일치한다. 스콜라 철학의 초중반 시기에는 두 철학자가 실재론이라는 커다란 틀로서 철학 사상을 발전시키지만 후기에는 유명론이 등장해 주관주의에 입각한 인식을 주장한다.반면 유명론은 보편 개념을 부정하며, 보편이 사물보다 앞설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렇기에 유명론은 “보편은 명칭이고 - 보편은 사물 다음에 존재한다.” 즉 보편 개념은 사물에 앞서서도 또 사물 안에 존재하지 않고 그 자체는 단지 인식 주관에만 존재하는 사고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윌리엄 오캄은 유명론을 내세운 대표적 철학자로, 정신을 벗어나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일반적 진리나 사상은 없다 주장하였다. 그는 보편자란 사물에 대한 관찰의 결과로서 정신이 발달시킨 공통적 특성을 지닌 주관적 사상일 뿐이며, 인간이 만들어낸 명칭이라 생각했다. 유명론자들은 보편보다 개별적 사물이 감각에 의해 체험되어 정신이 인식할 수 있다고 했다. 유명론은 기독교 교리가 이성 인식에 전적으로 통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유명론의 이런 경향은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으로 발전하여 세속적 학문과 교회 철학의 분리를 낳았다. 오캄은 “보편 개념은 기호다. 이 기호에 상응하는 실재는 없다. 사물에 앞서가는 보편자는 신의 정신 속에도 없다”고 말했다. 모든 지식은 경험에서 나온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신에 대한 경험이 존재하지 않기에 신에 대한 고유한 지식 역시 불가능하며 따라서 믿음도 불합리하다고 보았다. 신학을 합리적 이성으로부터 떼어내고, 철학과 신학을 분리시켰다. 신학적 원리에 따라 철학을 통해 신의 섭리를 이해시켜야 한다는 스콜라 철학을 해체시키고 철학과 신학을 분할하고자 했다.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근거하는 유명론은 실제 존재하는 것은 개개의 물체에 각각으로 존재하며 본질적인 것은 오직 이름만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가 각각 사물에 내제되어 실재 존재한다.
POST-THEORYContemporary Film Studies and the Vicissitudes of Grand Theory 현대 영화 연구와 거대 이론의 변화David Bordwell 데이비드 보드웰우리가 영화 이론이라 부르는 것들은 약 3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미국에서 문학이나 철학 전공의 젊은 교수들 혹은 영화광에 의해서 연구되었다. 영미권 연구는 사회적 현상을 반영하는 틀에서 영화를 다루었고, 이후 캐나다, 영국 그리고 유럽까지 퍼져나가 많은 책들이 출판되었다. 하나의 분야가 된 영화 이론은 여러 학파의 사상과 광범위한 문제를 끌고 왔다. 저자는 미국에서 발전된 영화 이론에 대해 몇 가지 개념으로 개략하고자 한다. 지난 25년 동안 가장 영향력 있는 것이라 생각되는 주체이론과 문화는 모두 사회, 역사, 언어, 정신학으로 짜여있어, 영화를 논의한다는 데 있어 거대 이론이다. 이 에세이는 기호학, 정신분석학, 서사분석과 페미니즘의 출현으로 보는 1970년대의 표준화된 논의를 할 것이다. 1980년대 말,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다중문화 그리고 이를테면 게이, 레즈비언, 퀴어 연구, 소수 연구라 할 수 있는 정치적인 것이 생겨났다. 위와 같은 학문의 출현은 언급한 주체 위치 이론과 문화주의에 대해 여러 접근을 가능케 한다. 이렇게 넓어진 관점은 그들 각각의 뉘앙스나 구체적 일부를 잃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개념적 밀접 관계의 흔적과 다양한 접근 방식에서 연결 될 것이다.1970년대 아카데미 영화 연구는 협소했고 평판이 좋지 않은 곳이었으며, 영화 연구는 여전히 ‘전통적’ 이론가들의 영역이다. 가장 우세한 개념적 구조는 작가주의이다. 에 젊은 비평가들이 개인적 영화 표현 미학에 대해 논쟁했으며, 유럽과 할리우드에서 1950년대 동안 작가감독들이 자극을 주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작가주의 감독의 독창성은 독보적이었다. 이전의 소비에트 이론처럼, 그것은 영화의 이론과 비평, 역사학 등의 외형을 바꿔놓았다. 그러나 넓은 관점에서 작가주의 이자 이론은 이전의 작가주의자들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시대의 방법론 제시하였으며, 철학과 현대 문학을 전공하는 프랑스 학생들에게 어디서든 영화가 논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런던의 영화 연구소의 비평가 그룹은 ‘구조주의적 작가주의’를 만들어 냈다. 루키노 비스콘티, 돈 시겔, 존 포드, 하워드 혹스의 작품에서의 이분법적 저항을 주장하였다. 아마도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갖는 것은 의식이나 신화의 동속으로 영화를 다루는 구조주의자들의 해석 모델이다. 레비 스트로우스를 따르면 신화는 상징적 관점에서 삶과 죽음 사이와 같은 사회적 삶의 모순을 해석하는 기능을 한다. 영화는 아카데미 비판의 주제가 될 수 있는 이분법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상상적 해결을 제시한다. 이를테면, 토마스 스캐츠는 문학적 대립 요소를 재생시키는 사회적 의식인 할리우드 장르가 미신과 같다고 주장한다. 강조점은 할리우드 영화제작자들이 남자/여자, 개인/공동체, 일/놀이, 질서/무질서와 같이 대립되는 주제의 중요점을 서사적 해결을 하게끔 위치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립요소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재적 특색이 생겨난다. 논쟁적으로 서사구조를 연출하기 위한 이항적 접근은 ‘영화-구조주의’의 가장 지속적인 방법론이 되었다.영화 연구 : 1975-1995알튀세적 맑시즘, 라깡의 정신분석학, 메츠의 기호학, 영어권 영화 아카데미 사이의 서사분석들이 영국의 저널 그리고 영국 영화 연구소의 출판물이 발행되었다. 이러한 활동은 바르트, 자크 라깡, 자끄 데리다, 미쉘 푸코는 일반적으로 앵글로 아메리카의 지식적 확장에 부합되었다. 새로운 영화 이론은 영화의 사회적, 정신적 기능은 무엇인가와 같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영화이론가들은 사회적 조직과 정신적 활동의 기본적 가설에 대한 영화의 개념을 세운다. 이러한 가설은 언어와 사회적 활동에서의 주체의 개념에 자리를 잡는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이론화를 통해 주체는 개인적 사람이 아니게 되며, 오히려 타자와 다른 주체들의 관계에 의해 정의된다. 주체성은식, 무의식적 작용 과정으로서 관객과 연관지어 간주되었다. 이러한 서로 간의 영향은 어느 정도는 다양한 방법들을 확대시켰다. 이를테면 스티븐 히스가 말하는 영화는 상상계처럼 시각을 통해 정체성을 제공받는 욕망을 이끌며, 메츠에 의하면 영화적 코드가 절시증적 충동을 지시하고 초월적인 지각 주체로서 관람자 자신이 카메라와 동일시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로라 멀비에 의하면 전통적 영화는 관음증, 페티시즘, 나르시시즘을 통해 절시증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는 상이한 ‘장치이론’으로 알려진 것도 있다. 영화는 라깡이 거울단계라 말했던 영역으로 유아적 감각으로의 퇴행을 일으킨다. 이 단계는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에 대해 그녀 혹은 그가 인식을 시작할 때, 혹은 오히려 착각을 할 때 유아 발달에 일어나는 상징적 시기이다. 이러한 다양한 방식으로, 지배적 영화는 영화적 코드와 발화되는 행위를 통해 소위 만족감을 제공받음으로써 욕망을 즐기며 느끼도록 보여진다. 대부분의 이론가들은 이데올로기적 목적이 만족되는 과정이라 믿는다. 영화적 기술을 통해, 서사 구조를 통해, 발화되는 과정을 통해, 재현되는 특별한 것들을 통해 영화는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형성에 의해 정의되는 주체 위치를 구성한다. 이것들은 1970년대 중반, 주체위치 이론의 대략적 개론으로 보인다. 1970년과 1980년을 통틀어 영화 아카데미에서는 다양한 시기와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이러한 이론들을 적용하였다. 반면 어떤 현대 영화 학자들은 주체위치를 새로운 경향의 완패로 놓고 1980년 기간동안 붕괴시켰다. 이를테면 영화이론가들은 선인식에 의한 재인식을 통해 주체가 구성하는 것을 반대했다. 오직 개인은 재현된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주체와 같이 그 자체를 지각할 수 있다. 영화 이론가들은 좀처럼 이 분야의 주체위치 이론에 대해 캐묻지 못해왔다. 그 대상들은 실체적인 것과 멀리 있었다. 이미 결정된 주체성은 이데올로기적 재현의 틀에 ‘대리자’에 어떠한 여유도 없다고 종종 언급되어졌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결정되어랑크푸르트학파의 문화주의라 말할 수도 있고, 이러한 전통의 작가들은 상업화, 시장관계, 모더니티와 관련된 주장을 했다.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적 경험 안에 변화를 주장한다. 이러한 경향은 벤야민, 크라카우어, 하버마스, 오스카 넥트의 영향을 받았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초국가적 자본에 의해 특정지어지며 경험의 분열을 가져온다고 주장하였고, 대중 미디어의 수용성에 포커스를 맞춘다. 문화연구에서는 문화는 서로 다른 계급간의 투쟁과 논쟁의 지점이라 말한다. 다시 말해, ‘문화는 계급, 젠더, 인종 그리고 다른 불공평한 형태가 자연스럽게 여겨지고 이것들과 경제적, 정치적 불공평한 연관성의 형태를 재현하는 것’이다. 또한 문화는 또한 다양한 소수 그룹의 삶과 그들의 저항 사상과 의미를 말한다. 문화연구, 포스트모더니즘,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화주의는 모두 지식과 행동의 기초 설명이 되는 주체이론 연구와 대척점에 서 있다. 대부분의 문화주의자의 시점에서는 대중들의 주체성은 재현에 의해 완전히 구성되지 않으며, 고정된 주체 위치에 자리 잡지도 않고 주체 위치 이론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자유롭다. 문화주의자들은 사회적 실천 역시 역사적 관점에서 이해된다고 보았지만, ‘작은 역사들’인 지배문화에 투쟁했던 하위 문하의 특정 담론과 실천에 대해 탐구한다. 실제로 문화연구자들은 저항적 읽기의 관념을 중요하게 여기고, 텍스트의 다양한 의미보다 오히려 수용자 사이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저항적 읽기를 하는 수용자들은 광고나 다양한 문화가 섞여있는 담론들을 읽어내며 그 자체로 역사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미국에서 문화주의자들은 데리다의 문화적 포스트구조주의와 후기 바르트에 의해 주체위치이론이 공격당할 때 등장했다. 페미니즘,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 그룹, 이교적 좌파, 포스트 모더니스트 미학 그리고 다문화 운동에 의해 이러한 경향은 강력해졌고, 문화주의자들은 앵글로 아메리카 지적 그룹의 중심적 힘이 되었다.그 무엇이 문화주의자들의 경향을 가능케하며 그렇게 빨리 동화되었는가? 주체라낼 수 없는 경향을 불러일으키고, 반대로 문화주의는 적어도 다양한 관점에서의 대중성을 띈다. 그들은 알려진 대로 영화와 TV쇼를 공부함으로써, 불이익 대신 정치적 투쟁에 기여했다. 1980년대 중반 주체위치이론은 이론적 반복성에 의해 무의미해졌다. 문화주의의 성공은 주체위치이론가들의 것보다 좀 더 열려있으며, 분산되어 있고 선형적이지 않는 데에 있다. 그러한 실천이 민감한 인간의 실천, 남성과 여성의 과거를 통한 활동과 같이 인간 활동의 공통된 형식이라 했다. 이러한 호흡은 문화이론이 거대이론으로서 동의되는 연구의 커다란 차원 뿐 아니라 동시에 비평, 이론가 혹은 미시역사, 생산 연구를 통한 물질적 범위의 역사에 해당한다. 문화이론자들은 그들의 프로젝트라 할 수 있는, 특히 위계적 요인을 발견하는 식으로 인종, 계급, 젠더를 이용하거나 기능적 설명에 대한 제정적 원리에 조용히 적응하는 식의 한계가 있다. 아직도 그러한 이유로 현대 영화연구는 문화주의가 어떤 시대든 사실적으로 대중을 연구하고 거기에서 무언가를 찾는다는 식에서 다원론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의 중심에서 벗어난 주제나 안티 헤게모니 저항 혹은 모더니티의 쇼크 등은 주목된다.연속성 : 학설적 가정문화주의와 주체 위치 이론 사이에서 연속성을 찾아보자. 위에서 아래로의 확신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서 그들의 의견을 변형시킨 학파가 있다. 지지자들의 바람대로 지적인 경향이 공통분모로 공유된 가정들과 행동적 실천에 호소하는 것이다. 너무 많은 저서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소쉬르, 레비 스트로스, 의 바르트 등 여러 구조주의자들 여전히 문화주의자들의 읽기를 요구한다. 게다가 어떤 작가들은 1970년대 이론과 그것이 종합되어있는 문화주의자들의 경향 사이를 잇고자 한다. 이러한 영향들은 보통 라깡의 정신분석학이나 메츠의 기호학에 의한 중심 요소가 되는 중요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학문의 연속성과 실천이 있다.1. 인간적 실천과 제조는 모두 사회적으로 구성되어진 의미화된 측면이다. 주체위치이론가들은 사회적 구조다.
:: 구조로서 역사와 연애를 말하는 방법간단히 말해, 허우샤오시엔의 는 1910년, 60년, 2000년대를 아우르는 남녀간 사랑이야기이다. 세 시대 모두 서기와 장첸이 동일하게 등장하며, 만나서 사랑하거나 헤어지는 과정을 드러낸다. 동일한 남녀가 이렇게 세 번이나 다른 형태로 등장한다면, 그것에는 이유가 붙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것도 ‘왜’보다는 ‘어떻게’라는 변형에 중점을 둬야한다. 시대를 달리했을 때, 그들이 위치하고 있는 지점이 얼마나 다른지 보기 위해서다. 세 쌍의 연인은 극중에서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지만, 그 시대 청춘들의 문화와 감수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말하자면 그들은 당구장에서, 유곽에서, 클럽에서 만나는 과정에서 그 시대의 지표를 가시화한다. 이렇게 영화가 배경을 중심으로 인물의 동선을 따르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측가능하다. 허우샤오시엔은 그 누구보다 공간의 깊이와 미장센을 잘 이해하고 있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이는 프레임이 겹쳐지는 미장아빔 공간을 롱테이크로 지긋이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에서 나타난다. 그렇기에 공간은 단지 플롯이 이루어지는 배경이 아니라, 시대이자 역사성이 된다.는 역사와 연애라는 줄기를 하나로 엮으면서, 그 실패의 과정과 결말의 이미지를 포착해낸다. 요동치는 역사 속에 들어서기 위해 인간은 그 조건을 충족하는가, 그렇지 않은 가에 따라 행복해질 수도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 감독은 대만 역사의 순간들을 탁월하게 잡아내면서 그 시점들을 연결시키는 작업을 했다. 그것도 청춘영화가 시작하는 시점을 시작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가, 결국 역사의 실패와 암울함에 대해 점점 절망에 빠진다. 영화로 돌아가자면, 일본의 제국주의 시대부터 미국의 신식문화, 현대의 디지털 문화를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공간을 파고 든 것이다. 이 배경들이 명시하는 바는 명확하다. 산업적 측면의 변화와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식민지배와 같이 특정 시대 혹은 세계사적 정치와 경제가 침투한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들을 연애 혹은 청춘으로 묶었을 때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세대의 상호교차 범위까지 언급할 조건이 주어진다. 이를테면 의 ‘연애몽’과 ‘청춘몽’과 같이 젊은 세대들이 동시대를 대표하는 소비 주체로 나타나 스스로를 과시로서의 이미지로 만들거나, ‘자유몽’처럼 계급 혹은 세대의 상호 충돌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감독은 실체가 보이지 않는 역사가 개인의 삶에 흘러들며 작용함을 돌출시키지 않고 미묘한 방식의 만남과 헤어짐을 택한다. 그렇게 역사 속에서 인물들이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떠남을 반복하면서 생긴 흔적들은 고스란히 그들의 연애, 즉 대만의 역사를 돌이키게 만든다.감독은 분명 역사가 철저히 분리된 구획으로 존재한다기보다 서로 젖어들면서 공존한다는 시각을 갖으며 만남과 이별을 그려냈다. 그런데 영화는 10년대가 아닌 60년대로 시작한 뒤, 다시 10년대로 돌아간 후 2000년대로 훌쩍 넘어 버린다. 왜 이러한 구조가 생겼는가. 이런 구조의 연결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 만남, 이별, 만남과 이별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서사적 리듬 때문이라는 바도 있고, 세 에피소드의 구조가 허우샤오시엔의 (1983)과 (1998) 그리고 (2001)의 총체적 궤적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나는 여기서 청춘영화로서의 가 있다 했을 때, 세 에피소드가 관객에게 무리하지 않고 역사와 연애를 이해하는 방법을 구조로 말하고 있다고 본다. 우선 동북아시아 지역으로 청춘영화의 등장 시기를 보자. 일본이 1950~60년대 시기 ‘태양족’ 영화로, 홍콩 역시 동일 시대 그레이스 창 주연의 뮤지컬작품으로 등장한다. 이와 비슷하게 한국은 1960년대 초 중반, 주로 신성일 주연의 반항하는 청춘들에 대한 영화들이 등장하였다. 에서 60년대 에피소드인 ‘연애몽’은 이렇게 동북아의 청춘영화의 등장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그렇기에 배경이 되는 1966년의 가오슝의 낡은 당구장은 일종의 식민 지배나 전쟁 이후에서야 가능한 근대로의 이행 과정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세계의 정치적, 경제적 변화 속에서 젊은 세대는 새로운 소비재로,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며 점유하거나 그 영역 자체를 생성한다. 그것이 당구장이나 군대라는 장소든 팝이라는 문화든, 그 세대만이 빠르게 받아들이고 소비한다.식민 체제로서의 억압의 시간은 다시 자본주의라는 욕망의 시간으로 흐른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은 영화 속 첸의 사랑 혹은 슈메이의 근무지처럼 반복해서 나타나나 변주된다. 이를테면 첸이 사랑한 하루코의 대상이 슈메이로 바뀌었을 때 동일한 상황의 반복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는 미리 멈춰버린 조건들에 머무르지 않고, 신양, 지하이, 허베이로 이어지는 여정으로 슈메이와의 만남을 이루며 절정을 달한다. 슈메이를 찾아 여러 도시를 헤매는 동안 관객은 지명이 적힌 표지판을 보게 된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시작되고 일자리를 찾아 먼 길을 떠나는 식의 반복은, ‘연애몽’에서 나타나는 시대의 얼굴이다. 바로 여기서 첸이 경험하는 지난한 고행의 시간들은 삭막한 시대에 도달하기 어려운, 그래서 운명과 같은 만남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듯, 올드팝이 스크린에 흐르면서 소비문화는 가시화된다. 는 청춘들의 낭만을 첫 에피소드에 발화하며 영화 전체를 자연스레 연애사로 읽히게끔 연결한다. 아마도 ‘자유몽’이 첫 에피소드에 있었다면, 그 성격 자체가 분명하지 못했을 것이다. ‘연애몽’에서 반복되며 등장하는 근대적 순간들, 특히 당구장의 모습은 마치 그레이스 창 주연의 의 근대적 공간을 표현한 시간성과 유사하다. 물론 촬영기법과 편집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지만, 긴 시간동안 젊은 세대의 소비와 노동 시간을 드러내는 것은, 언급했던 영화적 구조와도 관련지어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는 40분가량을 항공사와 직원들의 노동과정에 맞춰져 있다. 이는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서기 위해 투여되어야 하는 청춘들의 노동 혹은 유사 행위 시간이 필수적인 것처럼 나타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시간이 모두 충족되고 나서야 인물들은 근대의 신체로서 서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 논의에 따르면, ‘연애몽’ 역시 그들이 사랑이 확인되기 까지는, 지속적인 당구장에서의 소비와 노동이 필요하고, 또 그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신체가 되어야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1960년대를 풍미한 급속화된 도시화 물결에 떠밀린 연인들은, 그 낯선 도시들을 거쳐 마주친 뒤에야 ‘사랑의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다.두 번째 에피소드인 ‘자유몽’은 그제야 일본의 식민지 속 대만을 그려내며 역사 속 불가능한 자유를 이야기한다. 마치 ‘연애몽’에서 그려낸 꿈같은 희망의 가능성에 대해 반대하듯이 말이다. 영화는 1911년 다다오쳉의 유곽만을 공간으로 드러낸 채, 혁명가 지식인인 창과 그의 연인인 기녀로 역사를 끌어들인다. 창은 민족적 투사로 대만의 독립을 꿈꾸며 양선생과 혁명을 이루려고 하지만 결국 실패하는 인물이다. 그러한 실패는 이미 이 영화가 무성영화를 택했을 때부터 전제되어 있다. 허우샤오시엔은 ‘자유몽’을 무성영화 형식으로 촬영한 이유로 당시 언어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차라리 없애버렸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무성’이란 불가능한 자유에 대한 암묵적 기반이 되고, 이상적인 자유와 불완전한 현실 사이의 괴리가 된다. 폐쇄적인 유곽은 20세기 초 자유를 잃은 대만의 풍경으로 대체되고, 그 곳에서의 비생산적인 활동들은 단지 그림이 된다. 그렇기에 창이 양선생과 활동하는 생산적 과정이 드러나지 않고 텍스트가 되어버리는 상황은 비극적인 암시를 한다. 혁명을 이룰 조건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인물은 다음 세대로의 도약을 할 수 없다. 그것이 ‘연애몽’에서 젊은 세대가 이룩했던 것과는 다른 조건충족의 결과인 것이다. 결국 청조의 멸망과 최초 중국 공화제를 가져온 무창봉기는 엘리트 지식인으로서의 무참한 패배와 무능력한 시대반영을 보여주고, 그에 반대하는 샷(이미지)은 사랑에 좌절한 여성이 드러난다. 국가의 독립을 꿈꾸는 창의 거울로는, 자신의 신분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꿈꾸는 여성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거울이미지는 식민지 대만 상황에서 혁명과 사랑이 양립할 수 없는 조건의 결과가 된다.
:: , - 미국의 점령전과 후의 일상성 차이.영화가 제작국가의 시대상과 이데올로기를 흡수하듯 반영하는 매체라 할 때 영화 속 일상성은 중요해진다. 특히 전쟁과 같은 국가적 동원이 있을 시에는 산업적?상업적 영향력 뿐 아니라 대중적 측면에서도 막강한 침체기와 그에 따른 영향력이 남는다. 그렇기에 전쟁기간 동안 영화 산업은 침체되거나 불모지가 되고, 필름에는 전후의 잔재들이 떠돈다. 이를테면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같이 전후의 폐해를 담으면서 저항하는 몸부림이 있는가 하면, 국가 기관 아래 검열을 받으며 동원되는 종속적 매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앞으로 살펴볼 키노시타 케이스케의 두 작품인 와 은 각각 1951년과 1953년 제작되었다. 즉 일본이 패전한 이후 제작된 영화들이다. 이 작품들의 흥미로운 점은 2년의 차이를 두고 만들어졌으나, 두 영화가 담고 있는 일본의 시대상과 인물들은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둘 간의 가장 큰 차이는 전쟁 동원령이 떨어졌을 때와 그 이후라는 시대적 배경이다. 자연스레 전시 체제에서의 이데올로기와 패전 이후 미국 점령하의 일본은 다를 것이다. 언급했듯이 전쟁은 커다란 일상성의 변화를 일으키고, 그렇기에 서사의 고르지 못한 결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이라는 거대 상징이 각 시기에서 어떠한 차이를 보이며 일본을 점령하고 있는지 변화를 살펴보겠다.1945년부터 1952년을 주로 미국 점령하의 일본 영화로 본다. 당시는 패전 후의 영화와 점령하의 검열, 전쟁 책임 문제에 따른 담론이 형성되었을 때이다. 그러나 는 무거운 시대상이 아니라, 일본의 최초 컬러 영화라는 타이틀 아래 발랄한 분위기를 띈 작은 소동극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기노시타감독은 미군 점령기의 일본을 이 영화의 배경으로 담고 있지만, 도쿄가 아닌 지방을 택한다. 영화는 평화로운 농촌에서 아버지와 자녀가 한가로이 농사일을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도쿄로 가출한 막내 딸 오킨은 릴리 카르멘이라는 가명으로 도쿄에서 스트립쇼를 하고 있지만, 어린 시절 소에 머리를 밟히고 약간 모자란 캐릭터이다. 고향에 내려온 카르멘은 확연히 미국의 문물로 치장한 외형을 보이며, 전근대적 농촌의 배경과 부딪히며 웃음을 유발시킨다. 백치인 그녀는 스트립쇼를 일본의 문화적 예술을 부흥시키는 것이라 여기면서 마을을 뒤집어 놓는데, 영화는 이를 코믹하게 뒤틀린 근대화로 시각화한다. 백치 여성 뿐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근대화와 서구화자체가 어딘지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전쟁의 징후로 보이는 미국의 점령은 아직 이 마을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스트리퍼 여성의 신체는 전근대적 풍경 속에서, 자연과 다른 이질적인 것으로 보인다.문명화된 신체는 언제나 마을 사람들의 입담화와 눈요기가 될 뿐이다. 카르멘과 마야가 고향을 타자화하면서 관광지처럼 만들며 경계를 긋기도 하지만, 두 여성을 보는 마을 자체는 폭력적인 시선으로 가득하다. 여성들이 운동회에서 거의 벌거벗긴 상태로 내쫓기는 장면이 그런 예다. 후반부 두 여성의 스트립쇼는 그 자체의 저속함과 남성들의 일방적 시선으로 폭력성이 여성의 신체에 그대로 투영된다. 스트립쇼의 수익금이 마을의 공동체로 돌아온다는 것은 첫째, 여성의 조롱과 매춘이 암묵적으로 허용된 것이라는 점 둘째, 계급 간의 갈등 사이에 있는 오르간이 그제야 되돌아왔다는 점에서 위험한 발상이다. 결국 여성의 문명화된 신체는 마을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떠나가야 할 대상이며, 비웃음과 오락거리를 산출하는 생산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카르멘은 아버지마저도 부끄럽게 여기는 수치스런 여성이며, 자신의 신체가 어떻게 이용당해 수익금을 생성했는지 알지 못하는 피착취자로 남게 된다.카르멘의 귀향이 전근대적 풍경 속 근대화의 모습을 희화화 한 것이라면, 마을 사람들의 갈등 내러티브 중심에 있는 운동회는 패전 이후 일본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후지산처럼 마을 어디에서든 보이는 아사마산은 천황과 같은 존재이다. 학교 운동회가 열리는 배경에 아사마산은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앞에서 오르간에 맞춰 규율화된 신체를 움직인다. 어린이와 어른이 하나가 되어 율동을 보이고, 이라는 마을을 위한 장중한 곡이 수시로 영화 속에 등장한다. 아사마산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든 사람들은 자랑스러워할 주체를 아사마산으로 놓고 상대방을 이해시킨다. 이를테면 다구치가 직접 작곡한 곡이나 스트립쇼를 하는 카르멘마저도, 아사마산도 분명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라며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대사 다음에는 인물의 숏을 잡듯 아사마산을 보여줌으로써, 이 마을의 중심을 확고히 한다. 영화 속 내내 등장하는 아이들의 운동하는 모습은, 건강한 신체에 대한 열망과 국가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통제하려는 생체 권력을 보여준다. 이는 구시대적 삶의 습속을 깨트리고 근대적인 삶의 습속을 몸에 각인시키는 작업이다. 카르멘의 신체와는 달리 국가를 위해 ‘문명화된’ 신체가 체조나 운동회를 통해 국가 위식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전후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추진체로의 신체는 확실히 카르멘과 같은 서구화된 외양이 아니다. 이 마을 자체가 일본이라는 한 국가를 표상하듯, 그들은 마을에 대한 애국심을 고양시키기 위해 노래를 듣고 굳건한 조직성을 드러낸다. 동시에 모든 문화적 생산과정을 일본의 업적 앞에 도달시키려고 한다.은 전쟁이 끝난 8년 후를 배경으로, 국가의 분란과 정치적 혼란을 담은 신문의 헤드라인으로 시작한다. 2차 세계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는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나, 일본은 진주만 공습을 가한 후 미국의 원자 폭탄에 의해 완전히 폐허가 된다. 2백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40%의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75%의 공장이 파괴되는 등 모든 기반 시설이 사라진다. 패전한 일본은 지역 경제가 한동안 정지되고 반사능의 직접 피해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국가 내 재생력을 잃은 상태였다. 일본은 미국과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을 통해, 전후 처리 방안과 평화 정책에 관한 조율까지 해야 하는 상태여서 더욱 국가적 위상은 침전되었다. 이 조약으로 인해 일본은 자국의 군대를 갖지 못했고 식민지를 모두 반환한 뒤 미국에게 점령당한다. 일본의 천왕이라는 상징이 인간의 지위로 격하되었고,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의 주체에서 미국의 신식민주의를 받는 단계가 된다. 실제로 이러한 가혹한 혼란 속에서 엄청난 범죄들이 일어났고 내전이 끊임없이 벌어져 일본은 불안한 상태가 된다. 영화는 그러한 일본의 세대변천을 하루코라는 어머니, 그리고 그의 자녀인 우타코와 세이치를 통해 비극적으로 보여준다.영화는 현재와 과거의 플래쉬백으로 이루어져 있어, 패전 당시와 직후의 상황을 그린다. 하루코는 전쟁직후 아이들을 살리고자 암시장에 쌀을 내다 팔고, 이후 게이샤 요정에서 잡일을 도맡는다. 그러나 그녀의 자식들은 암시장에 개입된 그녀가 부끄럽고, 술집에서 웃음을 파는 엄마를 거부한다. 세이치는 결국 자발적으로 입양이 되고, 유타코는 유부남과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하루코가 할 수 있는 일은 빠르게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져 죽음을 택하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전 세대를 대표하는 유타코는 자녀들에게 언제나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공부에 신경을 쓰라 말하며, 자신은 온 몸으로 희생한 것이다. 결국 그녀의 희생에 돌아온 결과는 그녀를 향한 화살이었다. 의대 아들의 입양과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꾸리는 딸의 배반뿐이기 때문이다.세이치가 하루코를 의도적으로 피하면서 ‘우린 엄마와 같지 않다. 우린 다른 세상을 살 것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의 결말을 암시한다. 하루코의 희생으로 지성인이 된 세이치는 그녀를 무시하거나 피하며, 새로운 부모가 될 사람들과의 접촉을 한다. 그러면서 당연하다는 듯이 미래를 위해 자신을 놓아달라고 말한다. 우타코의 경우는 더 흥미롭다. 그녀는 이미 가정을 가진 영어 선생님을 좋아하면서, 계락을 통해 결국 이혼까지 이르도록 한다. 다음 세대를 맡는 우타코는 이혼가정을 스스로 택하면서 새로운 가족관계에 속하려 한다. 세이치가 다른 가족의 입양자가 된다면, 우타코는 재혼가정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하루코가 인생 자체를 피폐하게 만들면서 돈을 벌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의 자녀들은 더욱 악독한 미래를 구상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니 세이치가 입양된 집에 찾아가 더 이상 어머니라 부르지 말라고 말했을 때, 그녀의 죽음은 예견된 것이다. 하루코는 자신의 인생을 모두 어머니라는 명목 아래 바쳤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쟁 이전의 가족은 산산이 쪼개져 서로 다른 전형의 가족을 이룬다. 세이치는 근대화 문물이 가득한 부유한 가정을 택했고, 하루코는 영어를 할 수 있는 한 남자를 택한다. 그러한 세대 변화 사이에서 하루코는 곧 오게 될 기차들 사이에서 자신을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사 로즐러전1 REVIEW: ‘제조기계’ 미디어를 비판하라.미디어는 달콤한 웃음으로 우리의 의식을 마비시킨다. 마사 로즐러, 그녀는 미디어가 대중의 일상적 의식을 마비시킨다고 본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들은 미디어 구조주의에 따른 이데올로기 비평에 다름없어 보인다. 특히, (1977)에 간접적으로 등장하거나 (1985)는 미디어의 허위사실에 대한 기재와 반발을 보여준다.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그녀는 여성의 몸을 나누어 분해시킨 무대를 보여준다. 미디어의 정보를 기준으로 평가된 여성은 프로이트가 말한 어머니로서의 여성 혹은 창녀로서의 여성과 같이 ‘단순히 정해진 여성에 대한 인식’으로 끝나버린다. 마치 드라마의 순정녀와 악녀로 나누는 종소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은 거리의 일상적 이미지의 나열인 ‘낙서’를 보여주며, 미디어에 대항할 수 있는 하나의 운동이라 말한다. 길거리문화는 쓰레기처럼 싸구려취급을 당하지만, 실제 그것들은 ‘합법적’공문을 읽는 것처럼 해방의 목소리 같다. 마사 로즐러는 이 작품에서 미디어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진실로 낙서로서의 미디어를 내세운다. 고발장이라 할 수 있는 ‘비밀 아닌 비밀들’을 실제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 은 가장 조직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85년 쿠바미사일위기를 NBC에서 어떻게 다루고 있는 가를 주안점으로 선택한 뒤, 미디어가 들려주고 보여주는 정보가 모두 사실이 아님을 분해시켜 고발한다. 여느 미디어든 대중의 알권리를 위해 존재하지만 동시에 각 이해관계에서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갖는다. 그러나 휘둘려야 하지 말아야 할 ‘편집’된 정치적 기능은 대중을 기만하는 사인이다. 이 작품에서 마사 로즐러는 완성된 문장과 나레이션을 끊어 단어와 문장의 의미파악을 분리시킨다. 본래의 의미규정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강조하는 강렬한 선택이다. ‘진실을 가장 나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허위사실이다.’라는 마지막 문장처럼 그녀는 미디어의 거짓된 얼굴을 고발한다. 마사 로즐러는 그녀의 작품 내에서 항상 일상에 비친 미디어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이 형식적인 반발이든 우화적인 표현이든 간에 분명히 우리의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확실하다. 더 이상 미디어라는 달콤한 제조기계에 우리의 치수를 맡길 수는 없지 않는가, 그녀는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