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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익스피어의 태풍 속 제국주의
    세익스피어(Shakespeare)의 《태풍 (The Tempest)》식민지와 지배국가의 관점에서 해석.처음《템페스트》)를 읽었을 때 마법과 정령이 나와서 마치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별 내용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 감상의 주제를 잡기 위해 다시 읽어 가던 중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보였습니다. 바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그리고 작품 속의 상황이 모두 한국과 일본 간에 있었었던 식민지와 지배국 사이의 관계, 상황과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템페스트》 속에서 감상한 식민지와 지배국의 모습을 쓰고자 합니다.각각의 인물이 상징하는 역할과 그 관계를 설명하자면, 프로스페로는 식민지를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로스페로는 과거 밀런을 설명하는 1막 2장에서 “우리 공국은 공국 중 뜸이었고 으뜸가는 공작이었던 프로스페로는 권세는 물론이오, 학문에 있어서도 비길 자가 없을 만큼 떨쳤지…….”라는 대사를 통해 과거 흥(興)했던 국가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문에만 열중하여 국사를 멀리하고 정치를 동생인 앤토니에게 맡겨 결국에 공국의 지휘권을 빼앗기게 되는데 여기서 제가 주목하는 것은 프로스페로의 작위를 찬탈한 것이 동생이라는 점입니다. 형과 동생의 관계에서 과거 흥(興)했던 우리나라와 문화적으로 뒤쳐졌던 일본을 상징한다고 보고 또 프로스페로와 앤토니를 각각의 국가로 본다면 형제라는 것을 통해 같은 인종임을 상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식민지와 지배국의 상황을 한국과 일본에 적용한다면 프로스페로는 한국을 앤토니는 일본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템페스트》는 침략국에게 나라를 빼앗긴 국민이 타국에서 무력을 기르고 지원국의 도움을 받아 국가를 되찾는 이야기가 됩니다.여기서 무력과 지원국은 각각 마법과 이리엘이 됩니다. 이리엘을 지원국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프로스페로와는 독립 된 인격체이면서 프로스페로를 도움으로써 ‘자유’라는 이익을 창출해 내기 때문입니다. 이리엘은 원래 마녀 시코락스에게 잡혀 있었으므로 자유가 없었고 프로스페로와의 약속을 통해 일을 도와주고 자유를 얻게 되므로 일종의 계약을 통한 지원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습은 과거 식민지였던 한국을 되찾기 위해 만주등지에서 무력을 기르고 미국의 도움을 받아 독립하여 단독정부를 수립한 상황과 유사합니다.저는 이외에 인물들인 알렌조, 드링큐울로, 스테파노, 세배스티언, 에이드리언, 프랜시스코는 모두 앤토니와 한 패인 침략국의 상징으로 보는데 다만 곤자알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곤자알로는 프로스페로를 호송할 때 친절을 베풀고 3막 3장에서 마법에 의해 환상을 본 일행을 보며 “크나큰 죄가 한참 후에 발효하는 독약처럼 이제야 양심을 가책하기 시작하는가 보다…….”라는 대사를 합니다. 이는 곧 곤자알로가 프로스페로에게 측은함과 양심을 가책을 느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저는 곤자알로가 침략국가의 국민들 중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반대 했던 소수의 국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곤자알로의 모든 발언은 일행에게 조소와 빈정거림을 당하기 일쑤여서 당시 상당 수 지배국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봅니다.캘로밴에게서는 매국노의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그 이유는 프로스페로의 하인이면서 프로스페로를 배신하기 때문입니다. 캘리밴에게 프로스페로는 언어를 가르치고 그들과 생활전반을 함께한다는 점에서 조국의 역할을 하고, 캘리밴은 프로스페로라는 국가의 국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캘리밴의 입장에서는 프로스페로나 앤토니 일행이나 침략국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위의 이유로 프로스페로가 좀 더 조국의 이미지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후에 드링큐울로와 스테파노에게 붙어 주인을 제거하고 적극적인 하인이 되어 현재보다 나은 생활을 보장 받으려던 모습에서 조국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매국노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프로스페로: 이제는 때가 왔어. 지금의 이 시각이 네게 명하여 귀를 열라고 하니 자 순순히 잘 들어보아라.(그는 바윗돌을 의자삼아 앉는다. 미랜더는 그 곁에 앉는다)너 기억하니? 이 동굴에 오기 전의 일을. 아마 기억하지 못할 게다. 그때 너는 만 세 살도 채 못됐으니까.미랜더: 아니에요.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요.프로스페로: 뭘 통해서 말이니? 어떤 집이나, 사람으로? 그럼, 뭐든지 좋으니 네 기억에 남아 있는 걸 얘기해 보렴.미랜더: 까마득하지만…… 그리고 꿈만같고, 기억이 분명치는 않지만……여자가 너덧명 제곁에 있지 안았던가요?프로스페로: 그랬다. 더 많았지만, 아가, 하지만 그 일이 네 기억에 남아 있다니 참 신통하구나. 그럼 컴컴한 지난날의 심연(深淵) 속에서, 이밖에 또 떠오르는 것은 없니?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도 기억할 것같다만.미랜더: 하지만 그건 생각나지 않아요.프로스페로: 그런데, 그 계약 조건 말인데. 나와 숙적(宿敵)인 그 나폴리 왕은 내 아우의 청을 듣고, 일정한 신하의 예와, 액수는 알 수 없으나 일정한 조공을 받는 대신, 즉시 나와 나의 처자를 공국으로부터 소탕하고 아름다운 밀런 공국을 그 모든 영예와 더불어 내 아우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반역심을 가진 군사가 동원되고, 미리 정해놓은 어느 날 방중에 앤토니는 밀런의 성문을 열고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하수인(下手人)들을 시켜 나와 너를 성 밖으로 추방했다.미랜더: (눈물을 흘리면서)아, 가엾어. 그때 어떻게 울었는지 생각이 안 나니까, 지금 다시 울어보겠어요. 정말 눈물을 흐르게 하는 얘기예요.
    인문/어학| 2012.05.18| 2페이지| 1,000원| 조회(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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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로에 대하여
    目次1. 武臣亂(武臣執權)1-1. 武臣亂 發生의 原因 - 文武의 差別1-2. 武臣亂의 發生.2. 李仁老.2-1 生涯.2-2. 時代的 背景.3. 李仁老의 文學.3-1. 文學의 獨自性 및 그 作法과 形式3-2. 用事와 鍊琢3-3. 儒佛?仙 三敎의 思想性4. 破閑集.4-1. 破閑集의 著作動機.4-2. 破閑의 意味.4-3. 破閑集의 內容과 意義4-4. 破閑集 本文4-5. 破閑集의 限界5. 李仁老와 李奎報.5-1. 李奎報와 李仁老의 문체배경5-2. 李仁老의 用事5-3. 李奎報의 新意6. 마무리.1. 무신란(무신집권)1-1. 무신란 발생의 원인 - 文武의 차별고려를 건국한 태조와 무훈공신들은 문인이 아닌 무장 출신들이었다, 그러므로 개국 초기에는 문무에 대한 차별의식이 표면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광종 9년 새로운 관리 선발방식인 과거제가 도입?시행되면서 문?무 양반의 구별이 생겨나게 되었다. 과거제의 실시는 유교사상이 정치이념으로 기능하였음을 의미하며 이는 문치주의의 핵심인 것이다. 과거시험의 과목에 있어서도 무과는 거의 실시된 적이 없었다. 즉 무반은 국가의 공식적인 관리임용시험을 치르지 않고서도 양반의 대열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관직의 품계에 있어서도 문관은 1품 재상직까지 승진의 기회가 있었으나 무관의 최고관직은 3품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상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당시 고려사회가 유교적 질서아래 문을 숭상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한다. 유교적 질서 아래 귀족들이 실질적으로 정치를 주도하고 문반의 최고관직을 독점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무반은 정치적?사회적으로 문반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등하게 인식되었던 것이다. 고려사회의 우문정책에 따른 문?무차별의 구체적인 사례들은 다음의 기록들이 참고된다.이제부터 서울과 지방의 문관 5품, 무관 4품 이상 관리들의 질병에 대해 해당 부서에 자세히 적어 보고하면 시어의 상약, 직장, 대의, 의정 등의 의원을 보내 약을 가지고 가서 치료하도록 할 것이다. 성종세가 8년 2월갑진일에 명령을 내려 문관종)을 새로 세우는 등 최고 권력을 누렸다.최충헌을 계승한 그 아들 최우는 30년간(집권시기 1219~1249) 집권하면서 자신의 독자적 권력 기구를 더욱 강화시켰다. 교정도감과 도방의 기능을 더욱 강화시켰을 뿐 아니라, 새로이 정방과 서방(書房), 그리고 삼별초를 조직함으로써 개인 권력을 절대화시켰다.정방은 최우가 자기 저택에 설치한 인사 행정 기구로 모든 관리들의 인사 문제가 이곳에서 결정되었고, 서방 역시 최우의 저택에 3교대로 숙직하던 문인 조직으로 최우가 정치적인 자문 기관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삼별초는 국가의 공식적인 군사 기구로 설치한 것이었으나, 최우의 독재권을 위하여 개인적으로 자유로이 사용하여 도방과 함께 최우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최우는 독자적으로 문(정방, 서방), 무(도방, 삼별초) 양대 기구를 거느림으로써 왕과 다름없는 지위를 누리는 전형적인 무신정치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위세를 떨치던 최씨 정권도 최항(집권시기 1249~1257)을 거쳐 최의(집권시기 1257~1258)가 유경, 김준 등에 의해 죽임을 당함으로써, 끝내 무너지게 되었다.무신정치는 그 후에도 김준, 임연, 임유무로 이어졌으나, 당시의 왕인 원종(재위 1259~1274)과 문신들이 몽고와 결탁하여 임유무를 제거함으로써, 100년에 걸친 무신 정치는 막을 내렸고(1270), 다시 왕정이 복고될 수 있었다.2. 李仁老.2-1 생애우리가 한 작가의 문학세계를 이해하는데 있어, 먼저 그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살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다음은 李仁老에 대한 고려사 열전)의 기록이다.이인로의 자는 미수(眉?)이고 이전 이름은 득옥(得玉)인데 평장사 이오의 증손이다. 어려서부터 총명 영리하여 글을 잘 짓고 초서와 예서에 능하였다. 정중부(鄭仲夫)의 난에 머리를 깎고 승려로 되어 난을 피하였다가 평정된 뒤에 속인으로 돌아(還俗)왔다. 명종 10년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계양관기(桂陽管記)로 임명되었다가 직사관으로 승직되었다. 그는 전후 사한직에 재직한 하에서 자기 개성을 상실한 문인들의 패배의식이 글의 내용보다는 기교만을 중시하는 풍토를 조성하게 되었고, 이런 풍토에 대한 비판의식이 싹터서 마침내 창작에 관한 이론과 작품에 대한 비평 역량을 성장시키기에 이르렀으며 또한 죽림고회를 중심으로 한 시인들에 의해 기교주의를 반대하는 건강한 창작 자세와 문학론이 활발하게 제기되었다. 그 중 李仁老는 문인들이 대접받지 못하는 암울한 현실, 여기에서 문학의 개성을 인정하면서 자신을 창작 주체자로 자각하여 破閑集을 창작한 것으로 여겨진다.이상의 시대적 배경을 모태로 우리나라에 시화를 통한 최초의 비평 破閑集이 탄생하게 되었으며 破閑集의 출현은 문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李仁老 개인의 내적 욕구와 그동안 축적된 문단 내부의 비평적 역량이라는 외부적 토양을 바탕으로 발아, 개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3. 李仁老의 문학.3-1. 문학의 독자성 및 그 작법과 형식李仁老는 破閑集에서 다음과 같이 문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천하의 일들 중에서 귀천이나 빈부로 그 높고 낮음을 정할 수 없는 것은 오직 문장뿐이다. 대개 문장을 만드는 것은 마치 해와 달이 하늘에 걸려 있고 구름과 안개가 대허(大虛) 안에서 모이고 흩어지는 것 같아서, 눈이 있는 사람이면 보지 않을 수 없고 가릴 수도 없는 것이다.그런 이유로 베옷을 입은 선비라도 족히 무지개와 같은 빛을 드리울 수 있는 것이다. 조맹(趙孟))의 귀함이야 그 세력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집안을 넉넉하게 하는 데 부족함이 있을까마는, 문장에 있어서는 칭찬할 수 없는 것이다.이로 말미암아 이르건대, 문장은 스스로 일정한 가치를 가지고 부(富)로써도 덜지 못하는 것이다).李仁老가 문학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었는지를 쉬이 알 수 있게 해주는 글이다. 인용에서처럼 그는 문장의 가치는 지위의 높낮음과 그 명성, 혹은 부(富)와 같은 어떤 사람의 현실적인 성취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여겼다. 이는 인용문의 바로 다음 글인 破閑集 하권 23조고 李仁老의 작품 가운데 그 자신이 주장한 바를 온전히 이룬 것들이 있는지는 듣고 읽는 이에 따라 맞고 틀림의 여부가 다를 수 있을 것이다.다음으로는 연탁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먼저 破閑集의 한 글귀를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사람의 재주란 그릇의 모나고 둥근 것과 같이 겸비할 수 없다. 천하의 기이한 경치나 이상한 구경거리와 같이 마음과 눈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은 대단히 많지만 실로 재주가 뜻을 따르지 못하니, 마치 노마(駑馬))가 연(燕)과 월(越) 나라 간의 천리길)에 나선 것처럼 채찍질을 아무리 해도 멀리 갈 수는 없는 것이다.그러므로 옛날 사람들은 비록 뛰어난 재주가 있어도 감히 경거망동하게 손을 놀리지 않고 반드시 갈고닦는 공(鍊琢之功)을 더한 후에라야 무지개처럼 천고(千古)에 빛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순계(旬季))마다 단련하고 아침 저녁으로 음풍(吟諷)하며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고심해도 한 자를 창조하기가 매우 어렵고, 한 해 걸려서야 겨우 세 편 정도 써지는 것이다.고퇴(敲推)를 생각하다가 경윤(京尹)의 행차를 범하기도 하고), 태수생(太瘦生))이 되느니 반과산(飯顆山))에 가느니 하기도 하고, ......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소(蘇)와 황(黃))에 이르면 고사를 인용하는 것이 더욱 정교하고 기상이 출중하여, 시구를 다듬는 재주가 소릉(少陵))과 견줄 수 있다).두보의 시를 비평하면서 연탁, 즉 문장의 갈고 닦음의 중요성을 강조한 글이다. 원래 李仁老는 “문장은 천성(天性)의 소산이다)”라고 하면서도 위의 글 첫머리에서 보이는 것처럼 사람이 타고나는 재능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 문명을 천고에 빛내기 위해서는 문장을 다듬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작문에 있어서의 이러한 그의 생각은 破閑集의 다른 글들에서도 종종 나타나곤 한다. 위의 인용문에서는 고사를 인용하는 용사에 한정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어떤 수법을 사용하여 시를 짓더라도 이 연탁지공(鍊琢之功)이 중요함을 역설하였다고 하겠다.3-3모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한가하다고 할 수 있으며, 한가함을 온전하게 해야 그것을 깨뜨릴 수도 있다고 했다. 마음을 가다듬어야 순수한 문학을 할 수 있고,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야 한가함을 깨뜨리고 진출할 만하다는 주장이 숨어있다.4-3. 파한집의 내용과 의의먼저 제가의 글 가운데서 유명한 시구를 뽑아 수록하고는 다시 자신이 당시의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주고받은 시일화, 문담, 기사, 자작 작품 등까지 보태어 수록한 우리나라 시화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 시대를 초월해서 옛 선비들의 문학관 ? 생활관의 철학을 엿볼 수 있어 당시 지성인들의 생활상과 우정, 시와 술에 관한 일화 ? 풍속 등을 함께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전래의 민속과 문물제도, 설화 ? 민요에 대한 것 등 다양한 내용이 수필 형태로 서술되어 있다. 특히 명승고적에 대한 이야기, 경주의 옛 풍습, 서경의 갖가지 풍물, 개경의 궁정 ? 사찰, 기타 풍물이 적혀 있어 고려사 연구에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그리고 시학의 근본 문제에서 작시법(作詩法) 혹은 구체적인 작품평에 이르기까지 두루 제시되어 있다. 동시에 수필적인 잡록도 여러 항목에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파한집』은 역사자료로써 이용가치가 있다.4-4. 파한집 본문.(1) 청학동지리산 혹은 두류(頭留)라고도 하니 북의 백두산에서부터 일어나서 꽃봉오리 같은 봉우리와 골짜기가 그치지 않고 이어져서 대방군(帶方郡))에 이르러, 수천리를 서리고 얽혀서 산 주위를 둘러싼 것이 10여 주(州)나 되니 순월(旬月)이 걸려야 그 경계를 다 볼 수 있다. 옛 노인이 서로 전하여 이르기를 ‘그 사이에 청학동(靑鶴洞)이 있는데 길이 매우 좁아서 사람이 통행하되 기어서 몇 리를 가면 트인 지경을 얻게 된다. 사방이 모두 좋은 밭과 기름진 땅으로 뿌리고 심을 만하며 푸른 학이 그 가운데 깃들여 살므로 청학동이라 부르게 된 것이니 대개 옛적에 속세를 등진 사람이 살던 곳이므로 허물어진 담과 구덩이가 아직도 가시덤불에 싸인 빈터에 남아있다’ 하였다.얼마 전에,
    인문/어학| 2012.05.18| 19페이지| 1,000원| 조회(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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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문의 문장형식 정리
    1. 한문의 문장형식.1) 한문의 문장구조중국어는 한국어와는 다른 고립어이며 그 문장구조는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다.먼저 한문은 문장성분에 문법소가 결합되지 않고 의미소만으로 이루어진 문장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春來花開 라는 문장을 우리말로 해석한다면 봄은 오고 꽃은 핀다, 봄은 왔고, 꽃은 피었다, 봄이 오면 , 꽃이 필 것이다, 봄이 와서, 꽃이 피었다. 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해석이 이처럼 다양한 이유는 우리말의 문법소에 해당하는 조사와 어미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문을 한국어로 해석할 때는 문맥이나 상황에 따라 적당한 조사와 어미를 넣어 해석해야한다. 이런 점을 봤을 때 한문이 문법소를 제외하고 의미소만으로 성립할 수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문의 이런 문장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있는데 어순을 바꾸면 똑같은 의미를 전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어는 문법적 구실을 알려주는 문법소가 있기 때문에 어순을 달리해도 그 기능이 동일하고 쉽게 알 수 있지만 한문의 문법적 구실은 어순에 따라 정해진다. 我是少年(나는 소년이다.)라는 문장에서 설명어에 해당하는 是를 중심으로 앞에는 주어인 我가, 뒤에는 설명어가 요구하는 성분이 위치하게 된다. 따라서 같은 글자의 조합이라해도 한문은 그 어순에 따라 각 글자가 갖는 문법적 구실이 달라지므로 같은 의미를 전달하기 어려운 것이다. 두 번째는 문장성분에 문법소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문장이다. 일반적으로 한문의 문장 형식은 설명어의 종류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설명어 앞에는 주어, 뒤에는 설명어가 요구하는 성분이라는 어순이 지켜진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설명어가 차례 바꿈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어 ?賢哉回也라는 문장을 보면 일반적인 한문의 형식과는 차례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일반적인 문장구조로 바꾸면 ?回賢哉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 같이 쓸 수 있는 것은 哉가 종결사로서 한국어의 문법소처럼 문법소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서 哉는 ‘-구나/도다!’의 뜻으로 해석된다. 이런 점을 보아 한문도 문법소를 사용할 경우에는 본래 자리를 벗어나도 됨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특수한 낱말이 문장성분으로 쓰인 문장이 있다. 예를 들어 ?其處無人은 ‘그 곳에 사람이 없다’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는 문법소 없이 이루어지는 문장형식의 어순과는 달라 틀린 문장처럼 보일 수 있다. 어순에 맞추자면 2?人無其處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재로 쓰이는 한문에서는 ?의 형태가 주로 쓰이는데 한문에서는 의문사가 목적어나 객어로 쓰일 때는 설명어와 차례가 바뀌고, 재귀대명사 自가 목적어나 객어로 쓰일 때에는 설명어와 차례가 바뀌며 특수형용사 無나 특수동사 有 와 같은 단어가 설명어로 쓰이면 주어가 설명어 뒤에 놓이게 된다는 한문의 관용적인 차례가 있다. 이런 이유에서 ?과 같은 문장이 틀린 문장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2). 한문의 문장형식2.1. 문장성분에 문법소가 결합되지 않고 이루어진 문장.한문의 문장 형식은 원칙적으로 여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문장의 제1형식: S(주어)+P(설명어)ㄱ. 水流, 春來,花開 ㄴ. 山高, 水深 ㄷ. 我少年, 此絶景1형식의 설명어로 사용되는 품사는 완전자동사, 형용사, 명사이다. 1형식에서 주의해야할 점은 특수용언이 아닌 일반용언을 有, 無와 같은 특수용언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문장의 제2형식: S+P+C(보어)ㄱ.我是少年 ㄴ.孔子爲聖人 ㄷ. 其人非君子 ㄹ. 乞人爲大貴2형식의 설명어 자리에는 지정사와 불완전 자동사 이 둘이 놓일 수 있다. ㄱ,ㄴ,ㄷ 은 설명어가 지정사이며 ㄹ은 설명어가 불완전 자동사이다. 그러나 지정사가 설명어로 쓰일 때는 이것을 중이고 주어와 보어만으로 문장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我少年과 我是少年은 해석했을 때 모두 ‘나는 소년이다’가 되는데 我少年은 是가 줄어지고 少年이 설명어로 바뀌면서 ‘이다’를 Ø 형태소로 품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두 형식의 광계에 대하여 명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한문의 명사형에 대해서도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설명이 가능하다.문장의 제3형식: S+P+O₁(목적어)我學漢文, 聖人知道, 其人飮酒, 兄讀書 弟習字3형식은 완전타동사가 그 설명어가 된다 이 것은 영어의 3형식의 짜임과 차이가 없다.문장의 제4형식: S+P+O₂(객어)我登山, 兄在庭上, 先生來釜山, 其死重泰山4형식은 1형식에 객어가 덧붙어서 된것인데 여기서 유의할 것은 객어와 목적어의 차이이다. 이들이 문장에서 쓰일 때 목적어는 타동사와 통합되고 객어는 자동사와 통합된다.문장의 5형식: S+P+O₁+O₂ㄱ. 我觀花校庭 ㄴ. 其人飮酒堂上 ㄷ. 我與一書於汝 ㄹ. 先生敎學問於弟子5형식은 동사의 성질에 따라서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ㄱ,ㄴ과 같이 설명어가 완전 타동사인 경우와 ㄷ,ㄹ과 같이 설명어가 수여동사인 경우이다. 그 중 ㄷ,ㄹ과 같은 문장은 통어 형식이 S+P+O₁+O₂보다는 S+P+O₂+O₁의 형식으로 훨씬 많이 쓰이고 있어 독해에 유의해야한다. S+P+O₂+O₁의 문장에서 설명어는 수여동사가 된다. 한문은 문법소가 없이 쓰인 경우의 문장성분은 목적어가 객어 뒤에 놓이고 문법소가 결합되어 있는 문장은 목적어가 객어 앞에 놓이게 된다.문장의 6형식: S+P+O₁+C韓國人稱李舜臣名將, 先生曰其少年神童, 我謂菊花之君子, 吾爲其人天才한문의 6형식은 영어의 5형식과 견주어진다. 설명어는 불완전타동사가 되고 이 동사는 뒤에 목적어와 보어를 가진다. 6형식의 O₁+C는 원래 S+P가 변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어로 해석할 때는 O₁을 먼저 옮기고 C를 뒤에 옮겨야 올바른 해석이 된다. 6형식에 사용되는 설명어는 주로 ‘말하다’는 뜻을 가진 말들인 曰, 謂, 爲, 言, 云, 道, 號, 稱가 있다. 6형식에는 반드시 유의해야할 형태가 있는데 예를 들어 傳愛謂之仁에서 얼핏 봤을 때 傳愛를 주어로 불완전타동사 謂를 설명어로 之를 목적어 仁을 보어로 보기 쉽다. 그러나 이 문장은 원래 (S)稱傳愛之仁이라는 6형식인데 주어가 생략되고 그 자리에 주어를 대신해 목적어가 자리 잡고 다시 비어진 목적어자리에 원래 목적어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문법소 之가 들어간 것이다. 이런 문장을 대할 때는 謂가 불완전 타동사라는 것과 목적어 차례 바꿈에 있어 목적어가 주제어로서 주어의 자리에 있게 되면 그 자리에 之가 놓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다.2.2 문장성분이 문법소와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문장문법소가 결합된 문장형식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한문의 조사에 대해 알아야한다. 한문의 조사에는 전치사, 후치사, 종결사 이렇게 3가지가 있다.전치사는 객어의 앞에 놓여서 설명어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나타내는 품사로 크게 둘로 나누어 본래전치사와 전성전치사가 있다. 문장에서 쓰일 때는 본래전치사+체언으로 된 객어는 설명어 뒤에 놓이고 전성전치사+체언으로 된 객어는 설명어 앞에 놓인다. 주요 전치사로는 於, 乎, 于(본래전치사) 와 以, 自, 由, 從, 爲, 與(전성전치사) 등이 있고 이것들은 우리말의 -에, -에서, -에게, -와/과,-보다, -을/를, -부터와 같은 의미들을 가지고 있다. 한문의 전치사는 체언 앞에 놓인다.후치사는 명사나 대명사의 뒤에 붙어서 그 의미를 강조하거나 뜻을 보태어 주는 품사이다. 주요한 후치사에는 之, 以, 者, 也, 乎와 是, 於등이 있다. 이것들은 우리말의 -의, -이/가, -은/는, -을/를, -아/야, -에서, -을, -에의 뜻을 가진다.종결사는 문장의 맨 뒤에 붙는 품사로 也, 已, 乎, 與, 而已, 爾, 哉, 耳, 夫, 否, 未들이 있는데 둘 이상 겹쳐져서 쓰이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맨 뒷 종결사만이 의미를 가지게 된다.다음으로 문장성분에 문법소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문장형식을 보면,1.전치사를 사용하여 이루어진 문장.1)S+O₂+Pㄱ) 食稻於汝安乎 ㄴ) 吾自慶州來 ㄷ) 其人從橋下出 ㄹ) 王子以五月五日生ㄱ´) 食稻汝安乎 ㄴ´) 吾來慶州 ㄷ´) 其人出橋下 ㄹ´) 王子生五月五日위의 예문 ㄱ,ㄴ,ㄷ,ㄹ은 모두 문장의 4형식에 객어와 설명어의 자리가 바뀌어서 생겨난 문장이다 그리고 ㄱ´,ㄴ´,ㄷ´,ㄹ´은 위의 문장이 올바른 문장형식으로 바꾼 문장이다. 이렇게 위치를 변경할 수 있는 것은 전치사가 각각 체언의 앞에 붙어서 문법소의 역할을 해 위치와 관계없이 객어의 성분의 부여해주기 때문이다.2)S+O₂+P+O₁ㄱ) 吾爲先生言此事 ㄱ´) 吾言此事先生밑줄 친 문장성분은 객어로 ㄱ에는 한문의 문장 5형식에서 객어가 설명어의 앞으로 나와서 이루어진 형태이고 ㄱ´는 차례가 바뀌지 않은 문장 형식으로 바뀐 문장이다. 여기서 爲는 ‘-와’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인문/어학| 2012.05.18| 4페이지| 1,000원| 조회(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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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을 쫒는 아이들과 계급사회
    문예사조론 기말 보고서《연을 쫒는 아이》)와 계급사회-현대의 계급사회-내가 처음《연을 쫒는 아이》를 읽게 된 곳은 군대이다. 대부분의 군인들이 그렇듯이 당시에 나는 지루함을 물리치기 위함과 아프가니스탄소설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증을 느끼면서 이 책에 손을 댔다. 지금 생각해 보건데 아마 두 번째 이유보다는 첫 번째 이유인 지루함을 물리치기 위함이 더 컸던 것 같다. 비서구권의 책은 물론이고 서구권이나 우리나라 소설조차도 특별히 관심 없었던 내게《연을 쫒는 아이》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종교이야기나 전쟁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라는 당초 나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 소설은 내게 새로운 시각을 주었다. 내가 이번 보고서를 위해 이 책을 다시 읽기 전 내 머릿속에 《연을 쫒는 아이》는 “널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라는 하산의 대사로 정리 되어 있었다. 계급 사회에 몸담고 있던 나에게 하산의 충성심(忠誠心)과 복종심(僕從心)은 매우 매혹적(魅惑的)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밑에 있던 분대원들에게 강제로 이 책을 읽히고 “하산처럼 복종하라.”고 강요했던 일도 있었다. 그만큼 나는 이 책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평소에 계급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내게 하산이라는 존재가 보여줬던 모습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고 내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읽어 본 《연을 쫒는 아이》에서 그 때는 보지 못한 다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인공 아미르의 성장과정과 하산을 지켜주지 못한 죄의식, 뼈 속까지 아프가니스탄인 이었던 바바의 삶 등 군(軍) 생활 당시에는 중요한 요소인 줄 모르고 있었던 요소들이 재발견 되면서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나는 처음에《연을 쫒는 아이》를 접했을 때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아프가니스탄의 계급사회 모습에 대한 이야기와 과거에는 계급사회였지만 현재에는 아닌 우리나라의 사회를 말하려 한다. 내가 이 주제로 쓰려고 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간단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계급사회에 대한 관심이 있었이다. 이 소설이 주목받는 무수한 이유 중 하나도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을 잘 반영해 냈다는 점이라는 것도 내가 이 소설을 선택한 이유였기 때문에 나는 이 소설에 서술된 정보를 적극 반영할 것이다. 소설 전반에 걸쳐 하자라인)을 핍박(逼迫)하는 파쉬툰인의 모습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하자라인이 파쉬툰인과 종교대립으로 충돌하고 파쉬툰인에게 대항한 대가로 하자라인들은 무수한 희생을 치러야 했음이 소설 속에서 언급된다.) 수니파 파쉬툰인들이 시아파 하자라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주인공 아미르가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이 “시아파는 자기들을 순교자로 내세우는 일을 잘한단다.”라고 하는 말에서 미루어 볼 수 있다. 파쉬툰인은 삶 속에서 끊임없이 하자라인을 압박한다. 그들 개개인을 ‘쥐를 잡아먹는 납작코 당나귀’라고 놀리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이는 하자라인들이 무굴의 후예이며 그들에 특유의 납작코를 욕하는 것이다. 또 하자라인에 관한 정보는 그들의 교과서에 실리지 않고 어른과 아이 구분 없이 모두가 모욕을 당하며 살아간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자카드)의 미덕, 하드이) 순례의 의무를 학교에서 가르치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아프가니스탄에서 종교가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주인공인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를 통해 종교가 제약하는 삶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언급한다. 29p에서 주인공 아미르가 아버지 바바에게 이슬람교가 금지하는 음주와 돼지고기 먹는 일을 하는 것이 죄냐는 질문했는데 이에 바바는 “……이 세상에는 단하나의 죄밖에 없다. 단하나의 죄 말이다. 그것은 도둑질이다. 다른 죄들은 도둑질의 변형일 뿐이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율법 선생에 대해 “그 인간들은 염주알만 굴리면서 자기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말로 쓰인 책을 암송하지. 아프가니스탄이 그자들의 손에 들어가면 큰일이다”라고 말해 종교의 무의미성을 말했다. 나는 이 장면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이슬람교에 대한 믿음이 약해진 작가의식이 반영된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한편 《연을 쫒는 아이》를 접하면 계급사회의 모습이 나타나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나는 앞서 아프가니스탄이 군주제에서 대통령수반의 공화국이 되었음을 언급했다.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공화국으로 전환(悛換)이 계급적인 사회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나는 두 가지 문제점에 의해 계급사회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첫째로 군주제에서 공화국으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업시간에도 들었지만 역사는 이어지는 것이므로 다른 시대가 도래(到來)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이전의 관습과 제도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프간 사람들이 관습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소설 속에도 나오는 말이다. 오랫동안 하자라인들을 하인으로 부리고 천대하던 관습은 그들이 군주제 아래에서 살았던 때나 공화국에서 살았을 때나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고 변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 분명하다. 둘째로 처음부터 아프간의 계급제도의 배경이 태생적(胎生的)인 신분보다는 종교적 입장 차이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슬람의 소수파인 시아파는 수니파와의 충돌에서 졌고 박해를 당해서 그에 의해 계급제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군주제가 공화제로 바뀐 것은 그 사회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주인공 아미르와 그와 나이가 비슷한 하인 하산은 함께 자란다. 그런데 아미르가 처음 뱉은 말이 자신의 아버지를 부르는 “바바”였던 반면에 하산이 처음 뱉은 말은 “아미르”였다)는 점에서 그들의 계층이 불러올 문제점이 발생했음을 시사(示唆) 한다. 이것은 아미르와 하산이 같이 자랐고 한 집에서 먹고 자고 같이 놀아도 결국은 다르며 바라보는 곳이 다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내 생각은 책 속에서도 나오는데 38p에서 아미르는 하산을 친구라 생각해본 적이 없으며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와 하산의 아버지 알리 역시 가족처럼 생각했으나 친구라 여긴 때가 없음을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그러나 그것이 성공한 후에도 아미르는 결코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사실 하산의 강간사건이 있기 전부터 아미르는 하산에게 일종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학교를 다녀 교육을 받아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은 아미르였지만 그의 아버지 바바는 늘 하인인 하산을 사랑했으며 하산은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재주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최후에 밝혀지지만 하산은 아미르의 숨겨진 이복동생이었기 때문에 바바가 하산에게 많은 관심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아미르는 그에게 모든 것을 바친 하산을 떠나보내는 방법을 취해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려 했다. 아미르의 모함으로 알리와 하산은 바바의 집을 떠나게 되었고 이후에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바바와 아미르도 아프가니스탄을 등지고 미국으로 떠나 살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바바는 죽고 바바의 친구였던 라힘 칸으로부터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아미르가 죄의식에서 벗어나고 속죄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하산을 찾지만 그는 탈레반의 총에 죽고 그의 아들인 소랍을 입양해 키우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크게 보아 이 소설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한 소년의 성장과정을 잘 묘사해 낸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계급제도의 모습이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처음에 언급했듯이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신분의 자유를 비롯한 모든 자유를 보장받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그렇게 교육받고 있다. 누구든 열심히 하면 더 높은 자리로 향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고 우리는 교육받는다. 조선이 사라지면서 신분제는 사라졌다고 배운다. 그러나 나는 이 교육이 위선(僞善)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시대와 《연을 쫒는 아이》속의 아프가니스탄은 보이는 신분제가 있고 지금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신분제 속에 속박(束縛)당하고 있을 뿐이다. 오직 그것만이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십여 년간에 교육 속에 도덕과 윤리를 배운다. 그 가르침은 우리판으로 더 나은 삶을 영위(英偉)하길 바라는 것은 잘 못 된 것이 아니다. 어쩌면 본능에 가까운 일이다. 상위계급으로 향하길 원하는 본능이다. 문제는 그 능력이 안 됨에도 불구하고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경제적 여건이 안 되는 부모가 아이를 사립초등학교에 들여보내기 위해 도둑질을 하다가 잡힌 사건이 소개된다. 부모는 경찰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무엇이 죄송한 일인가? 주제에 맞지 않는 환경을 탐내는 것이 죄송한 일인가? 사립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과 그 부모들은 상위계급을 이루고 파벌(派閥)을 형성한다. 그것이 그들이 사립초등학교에 보내는 이유이다. 초등학교의 상황이 이런데 그 후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는 더 이상 말할 가치도 없다. 상위계급은 그들대로 학연(學緣), 지연(地緣), 혈연(血緣)을 내세워 파벌을 형성하고 자신들 보다 하위계급의 사람들을 지배하고 자신들의 위치를 고수(固守)하며 차이(差異)를 차별화(差別化)하는 작업을 한다. 하위계급은 이런 현실 속에 상위계급에게 순종하면서 지쳐가고 그들을 비난하고 헐뜯는다. 이것이 현재사회의 계급제도이다. 이 모습이《연을 쫒는 아이》속에 계급사회와 다른 점은 하위계급이 상위계급을 헐뜯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다르지 않다. 오히려 헐뜯기 때문에 더욱 강력한 지배를 받는다. 하위계급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계급의 속박(束縛)에서 절망하면서도 끊임없이 상위계급으로 오르기 위한 발버둥을 멈추지 못한다. 이 모습은 마치 올무에 걸린 야생동물과 같다. 발버둥 칠수록 올무는 더욱 압박할 것이고 결국 죽을 것이다. 야생동물이 발버둥치는 이유는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야생동물의 희망은 무지(無知)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어째서 발버둥 치는가? 아이러니(irony)하게도 우리의 발버둥은 앎에서 비롯된다. 교육계의 교육과 정·제계인사들의 성공담들은 우리에게 희망을 부여한다. ‘열심히 하고 인내하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 그것이 그들다.
    인문/어학| 2012.05.18| 6페이지| 1,000원| 조회(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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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민귀족과 양반전 비교
    몰리에르의《서민귀족》과 박지원의《양반전》비교읽기지배계급의 잃어버린 본질몰리에르의《서민귀족》)과 박지원의《양반전》)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에 일찍이 듣기는 했으나 읽어보질 못해서 이번 기회를 통해 읽어 보게 되었다. 예전에 수업에서 배울 때는 그 내용을 몰랐기에 양반이나 귀족의 허세나 그 신분을 사고자하는 이들의 우매함을 고발하는 작품인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읽고 보니 작가들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과연 그것뿐인지 의심스러웠다. 그에 따라 나는 이 두 작품에는 표면적인 주제와 이면에 숨겨진 주제가 있다는 가정 하에 다시 읽었다. 두 번째 읽고서 내가 내린 결론은 작가들이 잃어버린 본질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나는 작가들이 말하고자한 잃어버린 본질에 대해 두 작품을 중심으로 글을 쓰고자 한다.《서민귀족》과《양반전》에는 모두 동일한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들이 있다. 전형적인 귀족의 모습을 보이는 도랑트와 양반의 모습을 보여주는 정선(旌善)의 양반, 많은 부(富)를 손에 쥐고 높은 신분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주르댕과 정선의 부자, 학식은 부족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에 눈을 뜬 주르댕의 부인과 정선양반의 아내가 대표적인 두 작품의 동일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들이 일으키는 사건을 통해 독자는 쉽게 작가가 노리고자한 표면적인 주제를 눈치 챌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작가들이 이면에서 진짜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 이 주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양반전》을 먼저 보면 정선의 양반이 군량을 꾸어먹은 것 때문에 크게 곤욕을 치르게 되고 부자가 그를 곤욕에서 구해주고 양반의 신분을 사는데 그것을 보증하는 증서를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첫 번째 ‘건륭(乾隆)……것이다.’로 끝나는 증서에서는 선비가 가져야할 마음가짐과 행동규약만 잔뜩 적혀있다. 그 증거를 본 부자는 “양반이 겨우 이것뿐입니까. 내가 듣기에 양반은 신선과 같다던데 겨우 이것뿐이라면 너무 무미하니 원컨대 고쳐서 좋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해서 다시 증거를 만들게 된다. “하늘이……못한다.”로 끝나는 증서는 하늘이 만든 인간의 종류를 넷으로 나누어 그중에 선비가 가장 귀하며 선비가 취할 수 있는 온갖 이익이 나열되어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첫 번째 증서가 지배층의 본질이었으며 두 번째 증서가 본질을 잃어버린 당시의 지배층들 모습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두 번째 증서에 상당양의 이익이 나열 되어있음에도 증거가 반쯤 되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당시 지배층의 횡포가 심했음을 짐작 할 수 있었다. 나는 지배층이 가져야할 바른 정신과 행동을 무미한 것이라고 말하며 멀리하고 사욕을 채우기 바빴던 지배층을 고발하는 것으로 그들이 가져야할 본질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품 속에서 부자는 두 번째 증서의 내용을 듣고 있다가 “그만두시오. 그만두시오. 맹랑하도다. 장차 나를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이시오?”라고 말해 본질을 잃어버린 지배층을 도둑놈에 비유한 것이다.《서민귀족》에서도 역시 이런 것을 볼 수 있다. 주르댕은 돈이 많은 부자로서 자신의 신분이 낮음을 부끄러워하고 귀족처럼 보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한다. 그는 집에 여러 분야의 선생님들을 고용하여 다양한 학문을 배우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정작 학문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음악을 듣기에 앞서 귀족 같은 옷차림에 집착하며 무용과 춤을 “당신들이 만든 우스꽝스런 짓거리…….”라고 표현하는 장면을 통해 그가 귀족의 본질 보다는 그 겉모습만을 동경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이런 겉모습의 동경은 양재사가 옷을 가져오는 장면에서 점점 구체화된다. 옷의 장식인 꽃을 거꾸로 붙여두고 발에 맞지 않는 비단양말과 구두를 질타하자 양재사는 “귀족들은 다 그렇게 하는데요.”라는 말을 하고 주르댕은 그것을 수긍하는 것이다. 주르댕은 무엇인가 일이 시작하기 전에 대부분 “귀족들도 그렇게 하고 있소?”라는 물음으로 그의 귀족과 닮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다. 이런 귀족의 겉모습만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모습을 이용하여 결국 도랑트 백작은 돈을 빌리고 클레옹트는 뤼실과 결혼할 수 있었다. 주르댕이 생각하는 귀족의 모습은 2막 5장에서 드러나는데 그는 ‘나리’라고 부르는 견습공에게 “‘나리!’ 귀족 차림을 하니까 귀족이 되는군. 계속 상놈 차림만 하고 있으면 ‘나리’라고 부르지도 않을 거야. 자. ‘나리’라고 부른대가다.”라고 말해 귀족은 차림이 전부라는 그의 생각이 나타난다. 나는 이러한 부분에서 주르댕이 귀족다움을 잃어버리고 오직 부(富)로써 귀족다움을 표출하는 당시의 귀족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그것을 질타하기 위해 우스꽝스럽게 그려냈다고 생각했다.《서민귀족》에서는 귀족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 이외에도 학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주르댕을 가르치기 위해 많은 선생들이 등장하는 1막에서부터 2막 4장까지 선생들의 행동과 말에서 당시 학문의 위치를 미루어 볼 수 있다. 1막에서 음악선생은 무용선생과의 대화에서 “……주르댕 씨가 귀족이나 신사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으니 우리에게는 꽤 괜찮은 돈벌이지요…….”라고 말해 당시의 무용이나 음악이 돈 많은 서민들이 가진 귀족에 대한 환상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음을 알 수 있다. 뒤이어 음악선생은“사실 그분은 우리가 보여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돈은 잘 주시지요. 무엇보다도 우리의 예술이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그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함으로 예술이 더 이상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돈을 벌기위한 경제적 수단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무용선생은 명예를 위해 무용을 한다고 말했으나 나는 이 역시 아름다움이 아닌 명예를 위한 예술로 본질에서 벗어난 상업적 예술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선생들은 주르댕이 예술과 학문을 무시하는 발언을 해도 모두 수긍하며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럼에도 잠시 후에 등장하는 검술과 철학 선생들이 등장하면서 모든 학문끼리는 충돌하고 서로 헐뜯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각각의 선생들은 무용, 음악, 검술, 철학을 대표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들이 서로 충돌하는 모습으로 작가는 그 가치가 하락과 본질을 잃어버린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고 느꼈다. 선생들과 주르댕의 만남과 주르댕의 반응은 곧 여러 분야의 예술과 학문을 바라보는 돈 많은 서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주르댕은 학문과 예술의 본질을 추구하기 보다는 그 것이 주는 우아함과 귀족스러움을 추구하는데 이 모습은 철학 선생과의 만남에서 극대화된다. 철학 선생은 주르댕에게 세 가지 정신작용 공부와 도덕학, 그리고 물리학을 차례대로 말하며 배우길 권하지만 주르댕은 각각 따분하고 화는 낼 때 내야하며 시끄럽고 정신사납다는 이유로 배우길 거부한다. 이 말은 곧 당시 서민들이 학문을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엔 철자법을 배우는 것으로 하는데 이는 당시 서민들에게 학문이란 철자만 알면 그만인 것쯤으로 인식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모든 주르댕의 발언과 그에 수긍하는 선생들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본질을 잃어버리고 존재하는 귀족과 학문, 예술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고 그것을 비판하고 고발하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고 생각한다.
    인문/어학| 2012.05.18| 2페이지| 1,000원| 조회(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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