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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리다의 해체철학과 가족생태학 : 서양철학사를 중심으로
    데리다의 해체철학과 가족생태학Ⅰ. 들어가는 말1. ‘할머니 가설’2. 가족제도의 전환기Ⅱ.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전환기의 가족에 대한 문제의식1. 데리다의 해체철학1-1.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1-2. 합리론과 경험론1-3. 칸트1-4. 현대의 철학2. 데리다의 해체2-1. 데리다와 가족Ⅲ. 대안으로서의 가족생태학1. 해체철학과 가족생태학2. 대안으로서의 가족생태학Ⅳ. 맺는 말참고문헌Ⅰ. 들어가는 말1. ‘할머니 가설’사람과 침팬지 같은 영장류는 유전자 상으로 98% 이상 일치한다. 그런데 인간은 다른 영장류보다 훨씬 장수한다. 이에 대해 최근 미국 유타대 문화인류학과 크리스텐 호크스(Kristen Hawkes) 교수는 “할머니가 인간을 더 장수하게 만들었다”는 ‘할머니 가설(Grandmother Theory)’을 내놓았다. 할머니 가설은 수유기가 끝나 이유기에 들어가면 스스로 먹이를 찾아야 하는 유인원과 달리 인류로 진화한 종의 할머니가 손자와 손녀들의 이유식을 책임지면서 그들의 딸이 더 많은 아이를 갖게 했다는데서 출발한다. U NEWS CENTER, 「Grandmas Made Humans Live Longer : Computer Simulation: Chimp Lifespan Evolves into Human Longevity」, 2014. 10. 24손자손녀 돌보기를 통해 당시로서는 드문 '할머니가 될 정도로 긴 수명을 누린' 여성들은 자신의 장수 유전자를 더 많은 후손들에게 넘겨주는 역할을 했고 이는 결국 인간으로 진화한 영장류의 수명을 길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할머니 가설에 따르면 인간여성은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진화하면서 그들의 가임기보다 수십 년을 더 살게 됐다. 이 시뮬레이션 연구결과 침팬지는 어른이 된 후 25년을 더 살았지만, 지난 6만 년 전부터 2만4천 년 전 사이에 할머니가 손자손녀를 돌봐준 인간은 진화를 하면서 수명이 49년이나 더 늘어났다.2. 가족제도의 전환기가족제도의 변화는 인간 사회에 연속성을 인정하고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관점을 기준으로 존재에 대해서 정의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피스트가 이 부류에 해당한다.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서 소피스트를 궤변론자라고 설명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만물의 기준은 자신이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궤변이 가능했다. 주장(가설)의 참거짓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데, 존재 자체가 관점에 따라 다르게 정의된다면 참거짓도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상대주의적 태도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지향되는 바이지만, 학문의 기초를 닦아야 하는 고대에서는 극복해야 될 대상으로 여겨졌다. 학문의 기능은 보편적인 설명을 제시하는 것인데, 극단적인 상대주의 하에서는 보편적인 설명이란 있을 수 없고, 저마다의 설명과 정의가 난립하게 된다. 이것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점은 다른 사람과 생각을 공유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생각을 공유할 수 없으면, 학문의 기본적인 요소인 비판과 논증이 불가능해진다. 이래서는 학문이라고 부를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둘째는, 파르메니데스처럼 존재와 무(無)를 철저하게 구별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모든 대립항 중에서 그 어떤 공통점도 가지지 않는 것이 바로 ‘있음’과 ‘없음’이다. 이 둘을 엄격하게 구분하면, 존재는 완전한 하나이며,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현상계는 허구의 세계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최화,『박홍규의 철학』,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1.(3) 소크라테스의 결론 ;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소크라테스-플라톤이 생각하기에 존재하는 것들은 파르메니데스가 말하는 것과는 달리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며, 현상계에 존재하는 감각적인 요소 및 운동과 시간 등 상대적인 요소들은 우리의 감각 앞에 명백히 존재하는데 이를 부인해버리는 것을 학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프로타고라스가 말하는 것처럼 무작정 연속적이고 상대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느정도 자기동일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소크라테스-플라톤의 철학은 파르메니데스가칸트(Kant, Immanuel)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백종현 역, 아카넷, 2007.(1)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 대상에서 인식주체로“데이비드 흄에 의해 합리주의의 독단적 꿈으로부터 깨어나게 되었지만, 흄의 결론을 따를 수는 없다.”합리론의 형이상학은 흄에 의해 철저히 논파 당한다. 자료(data)에 기초하지 않은 형이상학은 자체 독단에 빠지는 한편, 수많은 형이상학적 담론이 성립할 수 있지만, 그 독단적인 성격 때문에 그중 무엇이 참인지 가릴 수 없다. 이래서는 형이상학이 ‘제 1 철학’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그러나 경험론은 회의주의에 빠지게 된다. 자료에 기초해서 앎을 획득한들 그 지식이 대상 자체가 아닌 대상이 주는 인상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그 대상자체에 대해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앎을 담보할 자아나 신의 존재자체도 경험론 스스로가 무너뜨렸다.칸트는 경험론(흄의 철학)이 회의주의로 귀결되는 이유는 인식을 대상 자체에 맞추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인간인 이상 우리는 대상자체(물자체 ; ding an sich, thing itself)를 파악할 수 없고, 오직 인간의 색안경에 따라서 대상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우리 인식에는 선천적인 형식(A priori form. 예 : 시공간, 오성)이 있기 때문에, 대상을 인식에 맞춘다면 확실한 앎이 가능하다고 한다. 선천적인(필연적인) 대상을 찾는 것으로부터 인간 인식의 선천적인 형식에 주목하는 것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한다.(2) 선천적 종합판단의 가능성 이용호, 「순수이성에서 나온 인식과 형이상학의 가능성」, 2013.분석판단은 주어의 개념 속에 술어의 내용이 속해 있는 명제(예 : 총각은 미혼의 남성이다.)를 의미하며, 우리의 경험을 배제하고, 오직 인간의 '직관적인(혹은 이성으로서의)' 능력으로써 가능한 판단이다. 분석판단은 어떠한 '경험'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주어를 계속 반복하는 결과를 낳으므로 그 주어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전달해 주지 않는다.이에 반해 종합판 있어서 ‘현전’으로서의 존재에 대한 결정들로 이루어져 왔다. 근본적인 것, 원칙들 또는 중심에 관련된 모든 용어들은 언제나 현전-초월성, 의식이나 양심, 신, 인간(자아) 등-이라는 불변적인 것을 지시해 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광래, 『해체주의란 무엇인가』,교보문고, 1989.데리다의 해체철학이 해체하고자 했던 것은 그가 서구 철학의 중요 개념으로 생각했던 ‘현전(presence)’ 프랑스어 사전에서는 면전(面前), 목전(目前)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현전의 국어사전의 정의도 눈앞을 의미한다.이라는 개념이다. 데리다는 이에 대비하여 ‘차연(differance, 차이와 지연)’개념을 내세운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제논의 역설 가운데 하나인 ‘나는 화살’을 화살이 날아가고 있다고 가정할 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화살은 어느 점을 지날 것이다. 한 순간 동안이라면 화살은 어떤 한 점에 머물러 있을 것이고, 그 다음 순간에도 화살은 어느 점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화살은 항상 머물러 있으므로 사실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다.예로 들어보자. 제논의 역설은 파르메니데스가 속한 엘레아 학파에서 다(多)와 운동을 부정하기 위한 귀류법적 어떤 명제가 참임을 증명하려 할 때 그 명제의 결론을 부정함으로써 가정(假定) 또는 공리(公理) 등이 모순됨을 보여 간접적으로 그 결론이 성립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이다.논증이다. 파르메니데스에 대해서는 본고의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부분에서 설명한 바 있다.엘레아 학파의 기본 전제가 되는 논리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는 없지 않은 것이다’라며 유(有)와 무(無)의 대립(Peras)으로 존재를 설명하였다. 그는 유와 무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에서 유로의 전환인 생성과 유에서 무로의 전환인 소멸도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생성소멸이 없으므로 운동하지 않는다. 운동이란 원점인 A에서 소멸되고 다른 장소인 B에서 생성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다르다’는 곧 ‘아니러한 관념이 하나의 ‘사과’라는 복합 관념이 되는 것은 관념의 연합의 원리에 의한다고 한다. 관념의 연합의 원리는 (1) 인과관계, (2) 근접성, (3) 유사성이다.그런데 이처럼 각각의 관념들이 개별적인 우리의 인식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면, 보편적인 앎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의 지식이 대상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부터 얻은 지각의 결과에 불과하다면 우리 모두는 각각 다른 관념을 가질 수밖에 없고 보편적 지식이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흄이 회의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이다. 우리는 그 무엇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철학자들이 고민하는 이 문제는 플라톤이 제기한 문제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는 말도 나온다. 본고의 소크라테스-플라톤 부분에서 ‘연속성’과 ‘자기동일성’이라는 말을 사용한 바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은 실제로는 대상들의 경계가 불분명한 연속적인 세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 세계에서 대상들 간의 경계를 파악하고 구분해낸다. ‘자기동일성’이란 바로 연속적인 대상들 간의 경계를 규명해내고 있는 인간의 인지작용을 말하는 것이다.플라톤이 이 문제를 제기한 이후로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를 보다 자세히 규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기동일성’을 규명하기 위해 플라톤 이후의 철학자들은 ‘현전’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이제 서양철학은 물론 우리의 사고에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현전이란 바로 ‘사과’라는 이름을 갖는 ‘실제 사과’들이 존재하는 방식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를 말한다. 즉, ‘사과’라는 글자를 봤을 때 우리 뇌리에 떠오르는 ‘심상’, ‘이미지’, ‘생각’들 중에 항구적이고 불변하는 것이 있다고 여기는 태도이다.인간은 이 항구적이고 불변하는 것들을 ‘이데아’, ‘형상’, ‘물자체’, ‘실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환원주의나 기계론 등의 형이상학적 사고에서 이러한 불변하는 개념들을 필요로 한 것은 플라톤의 현.
    철학| 2015.04.08| 20페이지| 6,000원| 조회(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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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눌과 원효의 사상(시험답안용)
    원효 사상의 핵심은 一味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모든 경전과 교파를 통합하고자 한 것과 관계가 있다. 특히 원효는 기존의 유식과 중관사상을 통합하여 一心사상을 구축했다. 원효의 一心 사상에 의하면 心도 근본 識인 alaya 識으로부터 나왔다. 그런데 이 心이 망집을 일으켜 生과 滅이 있게 된다. 이러한 生滅門은 자아에 대한 識, 즉 無明(manas)에 휩싸인 不覺에 의해 生滅이 생기게 된다.生滅에 속해있는 어떤 존재가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깨달음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것이 始覺이다. 이러한 始覺을 계기로 無自性이라는 究竟覺 즉, 궁극적 깨달음을 얻게되고 眞如門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眞如門에 이르게 되면 不覺의 生滅門이 곧 眞如門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해, 번뇌하는 마음도 깨닫는 마음도 모두 한 마음(一心)이며, 不覺과 始覺도 결국엔 本覺이라는 것이다.결국 生滅門과 眞如門은 不離된 것이며, 모든 중생의 마음은 대지혜광명인 本覺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alaya는 그 여여한 본성을 간직한 채 마음에 있으며 이로부터 不覺에서 始覺이, 始覺에서 究竟覺이 가능한 것이다.원효는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無碍를 실천했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평화와 통일을 지향했다. 원효의 사상은 不覺의 세계에서, 즉 불평등의 세계에서 왕권 강화에 일조하며 고대종교의 역할을 했던 불교 자체에 이러한 불평등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효는 바로 이것을 실천한 것이며, 이는 당시 시대적 요청에 대한 답변이 되었다.지눌의 사상은 그의 저서인 권수정혜결사문이라는 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는 정혜를 닦는 것을 권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定慧란 무엇일까.定은 선정과 명상으로 마음공부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격동과 고통이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라면, 마음을 닦는 것으로 그 평정심을 회복할 수 있다. 회광반조란 바로 외부로 향한 관심을 자기 내부의 眞心에 비춘다는 것이다.이 眞心을 찾는 것은 本覺, 根本智가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결국 고통받고 번민하는 중생인 내가 곧 부처임을 깨닫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부처님’을 깨닫는 것이 회관반조이며 지눌은 바로 이것에서부터 불교적 삶이 시작된다고 보았다.한편, 깨달음이란 이전의 의심, 번뇌 등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는 본래 있던 깨달음이 자기 자리를 찾은 것으로 어떤 점차적 과정이 아니라 하나의 비약에 가깝다. 이렇듯 깨달음은 어느 순간 한꺼번에 이루어진다. (頓悟)그러나 깨달음은 도달점이 아니라 하나의 출발점이다. 즉, 불교적 삶은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생명의 탄생은 그자체로 완전하지만, 이로부터 성장해 나가듯, 수양이 필요하다. 뿐만아니라 세상에는 오랜 습관들이 있다. 깨달음 이후에도 이러한 것들이 남을 수 있는데, 이를 제거하기 위해서도 수양과 분별지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慧가 필요한 것이다. 비약적인 깨달음에 비하여 수양은 점진적이고 또한 꾸준하게 요구된다.(漸修)
    인문/어학| 2014.04.23| 2페이지| 1,000원| 조회(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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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눌의 생애와 사상
    1. 지눌의 생애지눌(知訥, 1158~1210)은 한국의 대표적 고승이자 철학자이다. 그는 중국의 선법을 수용하면서도 철저하게 자기화하여 ‘보조선’(지눌선)의 가풍을 열었다. 지눌이 확립한 선교 즉 선법과 화엄 화회의 가풍은 이후 한국불교의 전통이 되었다. 지눌은 사법계설 중심의 법장 화엄을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보살 십지 수행에 기초한 통현 화엄을 원용하였다. 그리하여 선법과 화엄의 실천적 종합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지눌은 수도 개성의 서쪽인 황해도 서흥(瑞興, 洞州)에서 태어났다. 법명은 ‘지눌’이고 자호는 ‘목우자’(牧牛子)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이 많았다. 온갖 약을 썼으나 효험이 없었다. 부친이 부처님께 “병을 낫게 해 주시면 아들을 출가시켜 부처님을 섬기도록 하겠다”고 서원을 세웠다, 그러자 병이 곧 나았다. 지눌은 9살 때에 출가하였다. 구족계를 받은 뒤에는 불교를 배우면서도 일정한 스승을 두지 않았다.24세(1182)에 선과에 합격하였다, 그 뒤 남쪽으로 유행하다가 창평(昌平) 청원사(淸源/原寺)에 이르러 주석하였다. 어느 날 우연히 『육조단경』을 보다가 “진여자성이 생각을 일으키므로 육근이 비록 보고 듣고 깨닫고 앎이 있더라도 모든 경계에 물들지 아니하며 항상 자재하느니라.”라는 구절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이후 그는 명예와 이익을 싫어하고 항상 깊은 산중에 숨어 고통을 무릅쓰고 정진하였다. 도를 닦으면서 그는 갑작스런 위급에도 구도 정신을 버리지 않았다.28세(1185)에 하가산(下柯山, 鶴駕山) 보문사에 주석하면서 장자의 『화엄경합론』을 보다가 거듭 믿는 마음을 일으켰다. 『화엄경론』의 오묘한 이치를 찾아내고 깊이 숨어 있는 난해한 뜻을 드러내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평생의 사상적 화두였던 ‘선교 일원’(禪敎一元)의 진경을 열었다. 지견이 점점 밝아져 늘 마음을 원돈관문(圓頓觀門)에 두었다. 때마침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선배 수좌 득재(得才)가 함께 정진하자며 팔공산 거조사(居祖寺)로 간절히 초청했다. 그곳에서 여러 해 동안 하며 밤낮으로 부지런히 정진하였다.41세(1198)가 되던 해 봄에 몇 사람의 도반들과 함께 삼의(三衣) 일발(一鉢)만 가지고 지리산을 찾아가 상무주암(上無住庵)에 은거하였다. 거기서 지눌은 ‘모든 외연(外緣)을 물리치고 오로지 내관(來觀)에만 전념’하였다. 어느 날 지눌은 대혜종고의 책을 보다가 다음 구절이 눈에 띄었다. “선은 고요한 곳에 있지 않고, 또한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않으며, 날마다 객관과 상응하는 곳에도 있지 않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에도 있지않다. 그러나 고요한 곳, 일상인연이 따르는 곳,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을 여의지 않고 참구(參究)하여야만 한다. 눈이 열리기만 하면 선은 그대와 함께 있는 것이다.” 이 순간 그는 뜻이 딱 들어맞아 칠통같은 어둠을 떨쳐버리고 깨달았다. 마치 원수와 멀리한 것과 같이 막혔던 가슴이 후련해졌다.43세(1200)에 송광산 길상사로 옮겨서 11년간 대중을 지도하였다. 불도의 담론(道談), 참선 수행(修禪), 안거(安居), 두타(頭陀) 등을 할 때는 언제나 율장에 의거하였다. 사방으로부터 그의 고매한 명성을 듣고 수많은 대중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명예와 벼슬과 처자를 버리고 머리를 깎고 수행자가 되어 함께 오기도 하였다. 입사 수도하겠다는 왕공과 사서들도 수백 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선사는 수도에만 전념하였다. 사람들의 칭찬과 비방에는 전혀 마음을 쓰지 않았다. 오직 그는 자비와 인욕으로 후배를 제접할 뿐이었다.대중들에게는 늘 『금강경』을 준거로 삼도록 권했다. 교의를 풀이할 때는 『육조단경』으로 했다. 주장을 펼 때는 통현장자의 『화엄론』으로 했다. 이들을 보좌할 때는 『대혜어록』으로 했다. 지눌의 몸가짐은 언제나 엄숙하였다. 소의 걸음에 범의 눈길을 지녔다. 안거 때에는 근엄하여 몸가짐에 해이함이 없었다. 대중 운력 때에도 늘 앞서 모범을 보였다. 거조사에서 정혜사(定慧社)를 세우고 『권수정혜결사문』을 지었다. 그리고 그는 고려 중기 ‘치선’(癡禪)과 ‘광혜’(狂慧)로 치닫는 선교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온.53세(1210) 봄에 어머니의 천도를 위해 수십일 동안 법회를 열었다. 입적 직전 지눌은 “이 눈은 조사의 눈이 아니고, 이 코도 조사의 코가 아니며, 이 입은 어머니가 낳아주신 입이 아니고, 이 혀도 어머니가 낳아준 혀가 아니다”고 했다.” 또 “선법의 영험이 불가사의함을 오늘 이 자리에서 대중에게 설파코자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좌우를 돌아보고 손으로 육환장을 만지면서 “산승의 목숨(命根)이 모든 사람들의 손에 있으니, 모든 사람들에게 일임한다” 라고 하였다. 곧바로 육환장을 가로로 잡고 거꾸로 끌었다. 마지막으로 어떤 수좌가 물었다. “옛날 유마거사가 비야리성에서 ’병을 보인 것’(示疾)과 오늘 조계산에서 목우자가 ‘병이 난 것’‘(作病)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지눌은 주장자를 몇 번 내리치고 말하였다. “천 가지 만 가지가 모두 이 속에 있느니라.” 그리고는 주장자를 잡고 법상에 걸터앉아 부동자세로 고요히 입적하였다. 3월 27일이었다. 지눌의 저작에는 『권수정혜결사문』, 『진심직설』, 『수심결』, 『원돈성불론』, 『간화결의론』,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등이 있다. 진각 혜심(慧諶)이 그의 법을 이었으며, 지눌의 가풍을 이은 조계총림의 선사 효봉(曉峰 元明, 1888~1966)은 지눌의 인품과 학덕을 흠모하여 자신의 법명을 ‘학눌’(學訥)이라 붙였다.2. 지눌의 사상1) 선과 교학 사이의 갈등학술적 성격을 가지면서 교단권위를 중심으로 유지되어 온 교종에 대한 비판과 민중적 신앙으로 자리잡고 있던 정토신앙 사이에 새로이 형성된 것이 선종이다. 교종이 경전의 이해와 이의 실천을 중요한 수행법으로 삼고 있다. 이에 선종은 불립문자(不立文字 : 진리란 말이나 문자로 표현될 수 없다),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의 진정한 가르침은 마음을 통해서 전해진다), 직지인심(直指人心 : 개인적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난 마음가짐), 견성성불(見性成佛 : 본래의 마음을 발견할 때 부처가 된다.) 등 네 표어에 집약적으로 나타나있듯이 주관적 수행법을 강조율의 구속을 받지 않으려 했다. 그리하여 선종 불교는 上求菩提 下化衆生(홀로 있을 때는 깨달음을 구하고, 더불어 이웃을 돕는다)이란 부처의 가르침에 충실하면서도, 불교를 세속 민중들의 신앙과 연결지음으로써 불교의 대중화의 또 다른 전기가 되었다.이러한 선종과 교종은 서로 대립하였고, 이를 통합하려는 많은 노력이 있었다. 그중 의천은 선종과 교종을 통합하여 천태종을 만들었다. 천태종은 교종을 주로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천의 통합 운동은 불완전한 것이어서 그가 죽은 뒤 교종과 선종은 다시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그러다 무신정변 이후, 불교계에서는 선종이 부흥하게 되었다. 선종 승려들은 불교계를 정화하려고 했다. 고려 전기까지는 왕실과 문신 귀족들이 교종을 지지한 데 비해, 무신 정권에서는 선종 계통의 불교를 후원했다.지눌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불교계를 정화하며 선종과 교종을 통합하려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권수정혜결사문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2) 정혜쌍수지눌의 사상은 그의 저서인 권수정혜결사문의 뜻은 정혜를 닦는 것을 권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정혜(定慧)란 무엇일까.정(定)은 선정과 명상으로 마음공부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격동과 고통이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라면, 마음을 닦는 것으로 그 평정심을 회복할 수 있다. 회광반조란 바로 외부로 향한 관심을 자기 내부의 진심(眞心)에 비춘다는 것이다. 이 진심(眞心)을 찾는 것은 본각(本覺), 근본각(根本智)이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결국 고통받고 번민하는 중생인 내가 곧 부처임을 깨닫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부처님’을 깨닫는 것이 회광반조이며 지눌은 바로 이것에서부터 불교적 삶이 시작된다고 보았다.한편, 깨달음이란 이전의 의심, 번뇌 등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는 본래 있던 깨달음이 자기 자리를 찾은 것으로 어떤 점차적 과정이 아니라 하나의 비약에 가깝다. 이렇듯 깨달음은 어느 순간 한꺼번에 이루어진다. (頓悟)그러나 깨달음은 도달점이 아니라 하나의 출발점이다. 즉, 세상에는 오랜 습관들이 있다. 깨달음 이후에도 이러한 것들이 남을 수 있는데, 이를 제거하기 위해서도 수양과 분별지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혜(慧)가 필요한 것이다. 비약적인 깨달음에 비하여 수양은 점진적이고 또한 꾸준하게 요구된다.(漸修)이처럼 지눌은 정(定)과 혜(慧) 모두를 강조했으며, 이 둘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체와 용의 관계라고 말한다. 이 둘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정혜쌍수 공부이다. 또한 지눌은 진심(眞心)의 본체에는 두 가지 쓰임(用) 이 있다고 말하는데, 바로 자성본용(自性本用)과 수연응용(隨緣應用)이 그것이다. 이 둘은 각각 그자체의 정혜와 관계속의 정혜를, 체와 용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지눌은 선불교의 선사로서 선교일치를 주장했다. 즉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통합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깨달음과 수양을 모두 강조한 그의 사상은, 불교수행자로 하여금 자신의 깨달음을 지나치게 높이 생각하여 자만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실제적인 목적도 있었다.3) 돈오점수 : 통합의 수행 방법지눌은 승려들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서 예불 독경과 함께 참선과 노동에 힘쓰자고 했다. 또한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통합하여 조계종을 개창했다. 조계종에서는 불교 수행의 두 요소인 참선과 지혜를 아울러 닦을 것을 강조했다. 즉 '정혜쌍수(定慧雙修)'를 내세웠던 것이다. 다음은 지눌이 남긴 법어이다. "정(定)은 본체이고 혜(慧)는 작용이다. 작용은 본체를 바탕으로 해서 있게 되므로 혜가 정을 떠나지 않고, 본체는 작용을 가져오게 하므로 정은 혜를 떠나지 않는다. 정은 곧 혜인 까닭에 허공처럼 텅 비어 고요하면서도 항상 거울처럼 맑아 영묘하게 알고, 혜는 곧 정이므로 영묘하게 알면서도 허공처럼 고요하다."그리고 지눌은 수행 방법으로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제시했습니다. 돈오는 인간의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임을 깨닫는 것이다. 깨달은 뒤에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바로 점수이다. 깨달음과 더불어 꾸준한 수행으로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지눌은 정혜쌍
    인문/어학| 2014.04.23| 5페이지| 1,000원| 조회(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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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수이성에서 나온 인식과 형이상학의 가능성 : 칸트의 두 저서 순수이성비판과 프롤레고메나를 중심으로
    순수 이성에서 나온 인식과 형이상학의 가능성: 칸트의 두 저서 순수이성비판과 프롤레고메나를 중심으로들어가는 말1. 선천적 종합판단의 가능성2. 순수이성과 인간의 인식3. 형이상학의 가능성들어가는 말플라톤의 '이데아(Idea)론'을 비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형상론(혹은 목적론)'을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목적론을 기초로 하여 기독교적 색채를 덧입힌 것이 '중세철학(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이다. 하지만 근대에 접어들면서 몇몇 철학자들이 목적론을 전면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형이상학 체계를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합리론(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이다. 또한 이러한 합리론에 맞서서 '경험'을 중시한 철학을 '경험론(베이컨, 로크, 버클리, 흄)'이라 부른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합리론과 경험론의 뒤를 이은 철학자가 바로 이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이다.초기 칸트는 이성적 원리에 기초한 '라이프니츠-볼프'의 합리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지만 후에 로크와 흄의 경험론을 수용하면서 (상당히 큰) 사상적 변화를 겪는다. 특히 칸트는 기존(합리론)의 형이상학을 비판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새로운 형이상학을 건립하기 위해 먼저 인간의 이성이 가진 한계를 탐구한다. 결국 칸트는 '독단'에 빠진 합리론과 '회의'의 성격을 띠는 경험론을 종합하려 노력하기에 이른다.여기에서 잠시 합리론과 경험론이 가지는 각각의 한계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합리론자들에게는 '(인간의) 이성적 판단'이 절대적이다. 이성은 마치 수학과도 같아서 이성을 통해 증명된 것이 수학만큼이나 정확하다는 것이 합리론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이에 따라 합리론은 이성적 추론을 무기로 '(데카르트의) 사유', '(스피노자의) 신',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와 같은 형이상학적 실체를 발견하기를 원했고, 많은 합리론자들이 서로 다른 답변(철학)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결국 합리론은 이성에 의한 지각만을 믿는 독단론에 불과했기에, 경험론의 거센 비판을 받은 것이다.가되는 명제를 의미한다. 때문에 종합판단은 주어와 술어의 종합을 위한 특수한 '경험'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종합판단은 그 경험의 범위 내에서만 타당할 뿐, 보편적이지 않으며 필연적이지도 않다. 결국 종합판단은 주어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첨가해주지만 '보편성'이나 '필연성'을 결여하고 있기에, '객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이 시점에서 칸트는 경험에 근거를 두지 않은 채, '보편성'과 '필연성'을 모두 포함하는 종합판단이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가진다. 즉 종합판단은 주어 개념과 술어 개념을 종합하기 위한 근거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때 그 근거의 성질에 따라 종합판단의 성질도 달라진다. 다시 말해, 근거가 경험이 아닌 다른 무엇이라면, 그 종합판단은 보편성과 필연성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당시 칸트는 뉴턴의 자연 과학에 심취해 있었다. 마침 뉴턴은 '사과가 떨어진다'는 단순한 자연 현상의 관찰을 반복함으로써 '만유인력'이라는 보편적인 과학법칙을 발견해 낸다. 즉 단순한 경험으로부터 (수학, 기하학의 형태를 가진) 보편적 형태가 산출된 것이다. 이에 칸트는 경험에 근거하지 않는 종합판단, 즉 필연성과 보편성 모두를 지닌 종합판단을 인간의 선천적 인식구조에 의거하여 정당화한다. 또한 경험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경험(우리의 인식)을 바탕으로 하되, 그 자체로 선천적이어서 보편성과 필연성을 지닌 판단은 없는가라는 문제를 해명하고자 한다. 이로부터 칸트의 선천적 종합판단이 등장하게 된다.칸트에 의하면, 수학적 명제는 경험을 근거로 하지 않는 선천적 판단이면서 동시에 종합판단이다. 특히 이것이 종합판단인 이유는 우리의 인식능력인 '셈'하는 작용, 즉 감성(직관)을 통해 새로운 어떤 것이 첨가되기 때문이다. 즉 수학적 명제도 칸트에게 있어서는 '감성'없이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여기에서 칸트는 위의 논의를 더 명확히 하기 위해, '7 + 5 = 12'라는 명제를 제시한다. 사실 전통적인 철학의 관점에서, 이 명제는 '경험'없이 인간의 '지성'으로써 얻어지는 선감성, 순수오성)'를 알아보도록 하자.우선적으로 칸트의 '감성'은 특히 인간의 감성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인간적'이라는 형용사를 감성 앞에 붙여서 빈번하게 사용된다. 이 인간의 감성은 신(神)의 감성이 아니기 때문에 유한한 속성을 지니고 있고, 따라서 주어지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무엇인가 외부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주어지는 것을 우리의 감성이 받아들인 그대로의 것을 칸트는 '질료(material)'라고 한다. 하지만 이때의 질료는 우리의 인식이 성립되기 이전에 이미 있는 것이다. 즉 인식이 성립되기 이전이므로 인식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대상이 무엇인지는 인식이 성립된 후에라야 알 수 있다. (물자체 - Ding an sigh)칸트가 이것을 질료라고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질료란 원래 그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장차 어떠한 것으로도 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외부로부터 주어진 그대로의 질료는 그 자체로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이제부터 인식으로 만들어질 단순한 '소재'에 불과하다. 칸트는 이것을 '잡다'하다고 한다. 잡다하다는 것은 질서가 없는 동시에 정돈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요, 아직 지식으로 되기 이전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이때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것으로서 이해한다는 것, 즉 인간이 이해하는 지식으로 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잡다한 질료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질서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말하고, 우리가 주어지는 질료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 잡다한 질료에 질서를 주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지식으로 만듦을 의미한다. 따라서 감성이 인간의 수동적인 수용능력을 의미한다고 해서 그것은 바깥에 이미 있는 대상을 그저 그대로 반영하고 모사하는 것이 아니다. 감성에는 주어지는 잡다한 질료를 지식으로 정리하는 능동적인 기능도 있는 것이다. 칸트는 이 기능을 '형식(form)'이라고 부른다. 결국 칸트에게 있어개념들을 모으고 여러 기준(혹은 범주)에 의해 구별하게 된다. 또한 오성은 자신에 의해 구별된 개념들을 일정한 '관계성'으로 연결시키는데, 이 연결의 산물이 '판단'이다. 결국 앞서 언급했던 아기의 입장에서 볼 때, '불은 뜨겁다', '불은 빨갛다'라는 인식부터 '불은 뜨거우니 만지지 말아야겠구나'란 인식까지가 모두 판단인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방식으로 정립되는 '현상'과 '자연법칙'까지를 인식하는 것이 인간의 '오성'이자, '지성'이요, 인간 인식의 한계이다.그 다음 과제가 바로 감성과 오성의 본질을 발견하는 것이다. 칸트의 입장에 따르면, 인식은 형식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에,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형식은 질서를 부여하는 기능을 하므로, 그 형식은 이미 우리의 머릿속에 있어야 한다. 즉 형식은 선천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그러면 인간 감성의 선험적 형식은 무엇인가? 칸트에 따르면, 이것은 시간과 공간이다. 시간이나 공간은 인간의 주관(앞서 언급했듯이 감성도 주관 작용의 일부이므로)이 선천적으로 구비하고 있는 선험적 형식인 것이다.일반적으로 우리는 시간을 가령 무한한 과거로부터 현재 이 시점을 거쳐 무한한 미래로 흘러가는 것으로 간주하며, 우리의 일생은 그 속의 일부를 차지할 따름이라고 생각한다. 공간도 마찬가지로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내가 죽은 후에도 있는 것, 따라서 나의 생사(生死)나 인식여부와는 아무 관계도 없이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칸트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은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인간 주관의 형식이다. 즉 그것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질료에 질서를 주어서 참된 지식을 형성하는 선험적 형식인 셈이다.칸트는 시간과 공간이 선천적이라는 것과 또 개념이 아니라 '순수 직관'이라는 사실을 하나하나 증명하고 있는데, 그 중 한 가지를 여기에서 언급해 보겠다.감성에 주어지는 질료가 그 형식과 결합하여 이루어진 결과, 즉 감성이 가지는 지식을 칸트는 '직관'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감성적 지식, 즉 지각이다지 않는 것이다. 결국 공간은 모든 감각, 즉 외적 직관의 근처에 존재하여야 할 표상인 것이다. 또한 칸트는 어떠한 대상을 생각할 수는 없으며, 이로부터 공간은 일체의 외적 대상의 근저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선천적 제약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공간은 경험에서 추상되지 않는 선천적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이와는 달리, 또한 우리는 내감(innerer Sinn)에 의해서 마음의 내적 상태를 모두 시간 속에 있는 것으로 표상한다. 이때의 시간은 결코 경험으로부터 추상된 경험적 개념이 아니다. 왜냐하면 시간의 표상이 선천적으로 그 근저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각에서의 일체의 시간한정(예를 들어, 어떠한 대상이 다른 대상과 동시에 존재하거나 계기하는)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시간에서 대상(혹은 현상)을 제거하여 볼 수는 있지만, 그 대상에서 시간을 제거할 수는 없다. 즉 시간은 일체의 직관의 기초에 있는 선천적이며 필연적인 표상이다.그렇다면 시간과 공간 사이에 등급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칸트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의 차이는 존재한다. 공간상의 외감은 시간상의 내감에 종속된다. 왜냐하면 시간적인 것은 공간적으로 무조건 직관되지 않지만, 공간적인 모든 것은 시간적으로 직관되기 때문이다. 시간의 우위는 사고 속에까지 파고든다. '시간의 표상은 지각의 기초가 된다'는 칸트의 명제는 이미 하나의 시간적 범주인 셈이다.시간은 모든 현상 일반의 선천적인 형식의 조건이다. 공간은 모든 외적 직관의 선천적인 형식이므로 선천적 조건은 외적 대상에만 제한된다. 이와 반대로 모든 표상은 그것이 외적 대상을 대상으로 가지든, 안 가지든, 그 자신이 심성의 규정으로서 내적 상태에 속하고, 이 내적 상태는 내적 직관의 형식적 조건에 속한다. 따라서 내적 상태는 시간에 속하므로, 시간은 모든 현상 일반의 선험적 조건이며, 또한 내적 현상의 직접적인 조건이 되므로, 간접적으로는 외적 현상의 조건이기도 하다.따라서 모든 외적 현상은 공간 속에 있고, 또 공간의 관계하다.
    철학| 2014.04.23| 12페이지| 3,000원| 조회(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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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자누스(Nicolaus Cusanus : 1401-1464)의 사상-쿠자누스는 르네상스로 이행되는 시기의 추기경·주교였다. 동방정교회와 카톨릭의 통합 노력을 했는데, 이는 ‘신이 하나라면 모시는 방식도 하나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인간과 신의 관계를 수학적(자연과학적) 무한개념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인간 또한 무한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완곡한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었다.1. 사상적 배경-기독교, 플라톤주의, 자연과학, 수학-신비주의, 엑카르트-중세 말의 주의주의(신의 의지 중심, 신의 의지는 파악하기 어렵고 합리적이지 않다.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다. 신앙 강조, 신비주의에도 어느정도 포함)와 주지주의(신은 이성적이다. 인간과 세계도 이성적이다. 신의 뜻을 파악할 수 있다.)의 대립에서 주의주의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신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 스스로 자연의 비밀을 알고자하는 노력이 나타나게 되었다.=>이러한 분위기에서 시작된 근세는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으로 시작되었다.2. 부정신학과 ‘무지의 지(docta ignorantia)'쿠자누스에 따르면, 인간의 지는 근본적으로 불완전하고 엄밀히는 무지에 가깝다. 인간이 무엇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어떤 다른 것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 비교는 반드시 일종의 동일성을 전제해야만 한다. 그러나 완벽한 동일성은 인간의 관점에서는 파악될 수 없다.) 완전하면서도 정확한 인식이란 인간에게는 있을 수 없으며, 인식이란 무한한 과정이며 일종의 추측(Mutmabungen)에 불과하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그 이상 더 정확하게 될 수 없을 만큼 정확한 것이 없고, 또 그 이상 더 곧을 수 없을 만큼 곧은 것이 없고, 그 이상 더 참될 수 없을 만큼 참된 것이 없다.”이러한 관점에서 신에 대한 인식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신은 무한자이며, 우리는 무한한 것에 대해서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무한자 자체에 대해서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한하다는 것’에 대한 앎은 가능하다. 즉, 무한의 개념에 대한 착상은 가능하다. 따라서 무한자로서의 신 자체를 인식할 수는 없지만 신의 흔적은 추적할 수 있다.이런 맥락에서 인간의 무지는 ‘무지의 지’ 혹은 ‘학식있는(박학한) 무지’ 이다.)3. 대립의 일치)하나가 인식론적, 존재론적 근거이며, 모든 것은 일자로부터 그 존재의미를 부여받고 또 이를 통해 인식이 가능하다. 하나이자 무한자로서의 신 속에는 모든 것이 통일을 이루고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는 구별과 차이가 존재하지 않으며 모순과 대립이 해소된다.) “신은 절대적인 최대치이자 하나로서 절대적으로 차이와 간격을, 매개가 없는 그런 모순적인 것과 같은 것들을 능가하면서 단일하게 존재한다. 이 절대적인 최대치이자 하나는 모든 것으로 존재하는 바로 그것으로서 모든 것들에 내재하는 절대적인 원리이자 목적이며 존재를 가리킨다.” “신은 태양 안에 있는 태양도 달 안에 있는 달도 아니고 다수성 및 차이 없이 태양이자 달인 바로 그것이다.”쿠자누스에 따를 때, 신은 가능한 최대치이자 동시에 최소치로서 신에게는 더 큰 것도 또 더 작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한편으로 이 세계에서 가장 크다거나 가장 작다거나 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 신 속에서는 최대치(절재적 큼)와 최소치(절대적 작음)가 일치하며, 양자의 대립이 해소된다. 이런 의미에서 쿠자누스는 신은, “최대치가 그 자신 안에 최소치를 갖는 모습으로 존재하듯이, 그처럼 모든 신은 대립하는 것을 무한을 통해 온전히 극복”하며, “최소치와 대립하지 않는 최대치는 필연적으로 모든 것의 가장 적합한 척도”이다 “무한한 크기의 본질은 모든 본질들의 가장 적합하고 정확한 척도”이다. “유한한 선은 나눌 수 있고, 무한한 선은 나눌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최대치와 최소치가 일치하는 무한한 선은 부분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이러한 신 속에서의 대립의 일치는 신의 무한성에 근거한다. 쿠자누스는 이를 수학적으로 설명한다. (수학적인) 무한 속에서는 대립과 차이가 해소된다. 가령, 삼각형의 한 변이 무한히 확장되면 무한한 직선이 되고 이 직선 속에는 삼각형이 함축되어 있다. 무한한 원에서는 곡선과 직선이 일치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지구의 표면?)세계가 신의 전개 내지 창조라고 볼 경우 세계가 신으로부터 유래하는 한, 세계의 모든 것은 신 속에서 통일성을 이룸과 동시에 대립성이 해소된다.4. 세계와 인간)무한자로서의 신은 능력에 어떠한 한계도 존재하지 않아야 하므로 논리상 무한한, 완전한 세계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럴 경우 세계는 제2의 신이 되므로 신과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사실상 두 개의 신을 전제하는 것으로서 하나로서의 신관에 위배된다.이의 유일한 해결책은 일단 신은 -어떤 계획 하에- 불완전한, 유한한 세계를 창조하되 이 세계 안에 완전자인 신과 같은 존재가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존재가 세계에 무한한 완전성을 부여하도록 한다. 이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무한한 신이 육화되어 유한한 세계의 일부가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는 “유한한 무한성”의 의미를 지닌다.무한에 대한 관념을 지니는 인간의 무한한 창조 정신은 신의 무한성의 상징이다.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해 신적인 것을 자신 안에서 발견하고 완전한 인간으로 나아간다. 그런 한 인간은 비유적인 의미에서 ‘제2의 신의 자격’을 지닌다. 인간은 신의 뜻이 구현된 이 세계를 인식하는 자로서 고유한 존재의미를 지닌다. 이를 토대로 세계에 의존하기 보다는 세계를 스스로 형성해 나가고자 한다. 즉, 이 세계를 기호와 상징을 통해 새로이 개념화해 파악한다는 점에서 이는 제2의 창조행위에 비견된다. 신이 사물의 실재를 창출한다면, 인간은 관념적 질서를 창출한다. 신에게는 ‘실재적 능력’이 인간에게는 ‘비유적 능력’이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쿠자누스는 “인간은 제2의 신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은 신이되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신은 아니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인간이다. 그러므로 신은 인간적이다. … 인간의 영역 그 자체는 그 인간적 가능성에 있어서 신과 우주 세계를 감싼다.”
    인문/어학| 2013.05.01| 3페이지| 1,500원| 조회(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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