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나보코프와 그의 소설 Vladimir Nabokov1899년 4월 23일 러시아의 성 페테르부르크에서 부유한 귀족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나비 채집에 열중하였고 사랑에 빠져 시를 짓는 순수한 청년으로 자란 그는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1919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모든 것을 잃고 가족과 함께 독일로 망명했다.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불문학과 러시아 문학을 공부한 후, 베를린과 파리에서 거주하면서 시린Sirin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1940년 나치를 피해 다시 미국으로 이민해야 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시인, 소설가, 비평가, 번역가로서 활동하며 웨슬리, 스탠퍼드, 코넬 그리고 하버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다가 1955년 『롤리타』의 기념비적인 성공으로 교수직을 그만두고 글쓰기에만 전념한다.는 중년의 주인공 험버트가 자신의 의붓딸 롤리타에게 느끼는 특별한 감정,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은밀한 기쁨을 누리는 절망적인 사랑을 묘사한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1955년 파리에서의 첫 출간 당시 '포르노 소설이다, 아니다'라는 등의 스캔들을 불러일으키며, 외설성 시비로 미국 내 반입 금지 조치까지 취해지는 등 난항을 겪었다.그러나 이 작품은 '롤리타 신드롬'이란 신조어까지 낳고 출간 삼 주 만에 십만 부가 팔려나가는 등 미국에서 이래로 최고의 성공을 거두었다. 현재까지 롤리타는 1천5백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로 기록되고 있으며 수십 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어린 소녀를 향한 성적 동경'의 한 상징으로 자리잡았다.빼어난 산문가인 나보코프의 매혹적이면서도 난해한 문장들은 이런 기이한 사랑을 노골적이고 추한 변태성욕으로서가 아니라 마치 잡히지 않는 나비를 찾아다니는 듯한 세심하고 몽환적인 아름다운 사랑으로 그리고 있다. 는 모더니즘의 도덕적 진지함에서 코믹한 탈출을 시도한 현대적 감각의 소설이다. 또한 단순한 사랑 이야기 이상으로 잃어버린 시절에의 환상, 되돌릴 수 없는 지난 시간에 대한 그리움 같은 인간의 보편적인 아픔을 그리고 있다.는 뉴욕타임스 북리뷰가 선정한 76권의 20세기 명작에 토마스 만의 , 마르케스의 과 나란히 선정되었고, 미국의 유명 출판사인 랜덤 하우스가 선정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영문 소설로서 제임스 조이스의 , , 피츠제럴드의 등과 함께 선정되기도 했다.영화 롤리타 감상문'애칭은 '로' 키는 145cm 양말은 한쪽만 신었고 별명은 '롤라', 슬랙스를 입었고학교에선 ‘돌리’호적상이름은 '돌로레스'하지만 언제나 내 품에서 '롤리타'였죠내 인생의 빛,내 자극의 불꽃,나의 죄악,나의 영혼 ‘롤리타.'로리타 콤플렉스라는 말의 어원이 이 소설과 영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러나 로리콤이라는 부정적인 말 때문인지, 영화의 처음 시작은 어색하고 불쾌할 뿐이었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 될수록, 그 어떤 영화를 볼 때보다 영화 속에 몰입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영화 내용의 반전 아닌 반전 때문이었다. 내가 영화를 예측하면 할수록, 스토리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내가 영화를 따라잡으려고 하면, 영화 속 주인공들은 그 만큼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처음에는 미성숙한 아이 ‘돌로레스’를 마음에 품고, 욕정하는 햄버트에게 죄를 물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영화가 전개 될수록, 햄버트가 약자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사랑하는 햄버트를 유혹하고, 즐겼으며 마치 노예처럼 부려먹는 어린 돌로레스가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게 되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주인공들을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는 내 자신이 더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내용과 캐릭터들, 나는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는 감정과 이미지들을 느끼기에도 벅찼다.또 중간 중간 드러나는 장면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햄버트만 보면 원수를 보듯이 짖어대는 개들은 햄버트의 죄악을 꾸짖는 것 같았고, 항상 몸매가 드러나는 짧은 옷과 빨간 루즈, 빨간 매니큐어, 그리고 치아교정기, 풍선껌 등은 돌로레스의 섹시하고 성적인 모습들과 더불어 아직은 미숙한 어린 그녀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특히 영화에서 퀼티는 주연 못지않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선 마지막 죽는 순간 전까지, 퀼티는 어둠 속에 가려지거나, 커튼 뒤에 서있는 등,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것은 어린 소녀들에 대한, 롤리타에 대한 욕정과 탐욕이 가득한 퀼티의 속성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또 햄버트가 롤리타와 자신을 위한 복수로 퀼티를 죽일 때, 롤리타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장면은 최고조에 달했다. 역시 어둠 속의 저택에서 나타난 퀼티는 햄버트의 총에 맞고도 피아노를 연주하고, 자신의 침대까지 기어가 눕는 등, 쉽게 죽지 않았다. 그것은 퀼티, 즉 햄버트의 어두운 내면이 그만큼 죽이기 힘들고, 사라지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였을까? 결국 햄버트는 자신의 분신처럼 느껴졌던 퀼티를 죽임으로써 롤리타에 대한 욕정과 집착을 접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롤리타의 순수하고 밝았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끝없는 애정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