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로스와 구조주의201002101 강병찬1. 구조주의의 시대적 배경구조주의가 처음 시작된 분야는 언어, 기호학의 분야였다. 그 대표격은 프라하학파의 소쉬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가 19세기 후반 정도였으며, 문화인류학의 영역에서 레비스트로스가 구조주의를 구체화시킨 것이 20세기 초반에서 중반 정도다. 이런 구조주의는 1960년대 쯤 와서 갑작스럽게 프랑스의 학문적 주류로 등장하게 되고, 그것이 전유럽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1960년 당시는 프랑스에 있어서 드골의 집권기였으며, 그의 독재자 정신이 전성기를 맞고 있는 시대였다. 이때 우익 보수진영이 득세하고 있었으며 전유럽에서 학생시위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신좌익은 이러한 사태에 속수무책이였고 그들을 대신해서 학생, 지식인, 예술가, 노동자 등들이 68년 5월에 혁명을 주도했다. 이는 민주주의의에 대한 의혹이였으며 동시에 사회주의에 대한 절망의 표현이었다. 마르크시즘이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여실히 드러났고, 현실은 역사주의의 오류를 명백하게 지적해주었다.이 때는 프랑스 뿐 아니라 전유럽의 사회적 격동기였으며 이러한 사회적 배경은 새로운 철학을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등장한 사조가 구조주의였다. 표면적 갈등 이면의 구조적 모순의 존재, 역사주의와 정통 마르크시즘을 대체할 새로운 학문의 필요성, 실존주의적 사고의 한계 등이 사회과학으로서의 구조주의를 전면에 부각시킨 것이다.이때는 프랑스를 위시한 전유럽의 사회적 격동기였으며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새로운 인식론과 새로운 철학을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새로이 등장한 사조가 바로 구조주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즉, 구조적 요인에 대한 인간적 능력의 한계, 표면적 갈등 이면의 구조적 모순의 존재, 역사주의와 정통 마르크시즘을 대체할 새로운 학문의 긴요성, 실존주의적 사고의 한계 등을 지적하며 사회과학으로서의 구조주의가 전면에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2. 구조주의란 무엇인가?(1) 정 의구조주의란 구성요소를 극소 답사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는 민족학적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36년에 처음으로 인류학적 논문을 발표했다. 1938년에는 브라질 정부의 후원아래 브라질 내륙지방의 원주민 사회 조사단의 일원으로 참가하였다. 이때, 조사한 네 원주민 부족에 관한 민족지가 바로 ‘슬픈 열대’의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다.제 2차 세계대전 발발 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여 뉴욕의 신사회조사연구원에서 8년간의 연구생활을 하게 된다. 이 기간 중에 그는 미국의 유명한 인류학자들인 로위, 보아스, 크로버, 린튼 드과 치교로 많은 이론적 영향을 받는다. 특히 저명한 구조주의 언어학자였던 아콥슨과 만나 구조언어학의 방법론을 습득하였다.프랑스 해방 뒤 그는 프랑스로 돌아와 인류학 박물관의 부장관직을 맡게 된다. 1949년에 레비스트로스는 ‘친족의 기본구조’를 출간하여 구조주의 방법을 결혼 및 친족체계에 적용했다. 1950년에는 파리 대학 고등 연구원의 원시 종교와의 연구교수로 취임하여 단기간의 아시아 지역을 여행한 것 이외에는 직접 현지조사는 실시하지 않고 주로 연구와 저술활동을 시작했다. 이 기간 중 그의 주요한 업적으로는 ‘인종의 역사’ (1952), ‘슬픈 열대’ (1955), ‘구조인류학’ (1958) 등이 있다.1959년에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 사회인류학 연구실이 특별히 레비스트로스를 위해 개설되었는데, 그 곳에서 그는 사회인류학을 강의하면서 그의 구조주의 방법을 두 번째로 적용하기위해 신화학의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1962년의 ‘야생의 사고’는 원주민들도 오늘의 현대인과 다름없는 분류 등 논리적 사고를 한다는 주장으로 문화의 상대성원리에 학문적 기초를 제공했다. 그리고 레비스트로스의 다음에 나타날 방대한 저서인 ‘사회학’의 사상적 기초가 된다.1964년부터 1971년에 걸쳐 레비스트로스는 ‘날것과 익힌 것’부터 ‘벌거벗은 인간’ 까지 ‘신화학’을 출판하였다. 1973년에는 프랑스의 문인, 학자의 최고 영예인 ‘아카데미 프란세즈’ 회원이 되었다.(2) 그에게 는 지질학,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를 세 스승으로 여기고, 루소 철학에 마음을 간직하면서 나름대로 주관을 가지게 되었지만 아직 뚜렷한 이론과 방법론을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뉴욕 망명 시절 알게 된 구조주의 언어학자 야콥슨을 사귀면서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이 추구하던 학문적 방향이 바로 구조주의라는 것을 깨달았다. 야콥슨이 열두 살이나 더 나이가 많았지만 두 사람 사이는 격이 없었고, 막역한 우정이 끝까지 이어졌다. 또한 현대 서구 사상에 미친 두 사람의 영향도 어마어마하다. 두 사람이 전파시켜 나간 구조주의의 파장은 현대 사상의 패러다임에서 가장 큰 사건으로 일컬어지고 있다.뉴욕에서 야콥슨과 만나 지적 교류를 나누며 레비스트로스는 야콥슨이 언어에 대해서 말하는 구조적 원칙들이 결혼 규칙을 비롯한 친족체계, 나아가 사회의 삶 전반에 대해 자신이 그때까지 어렴풋이 느끼던 것과 맞먹는다고 믿었다.그는 야콥슨과의 사귐에서 얻은 음운론의 혁명적인 연구방법을 얻었고, 이것을 자신의 이론에 적용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 방법이란 다음과 같다.1. “음운론은 의식적인 언어현상의 연구로부터 무의식적인 하부구조로 옮겨간다”음운을 구별하는 것은 무의식적인 활동이며 따라서 음운론의 연구대상은 의식적 현상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하부구조다. 마찬가지로 레비스트로스 역시 친족관계나 신화 등에 대해 무의식의 차원에서 연구한다.2. “각각의 항을 하나의 독립된 실체로 연구하는 것을 거부하며 항과 항의 ‘관계’를 분석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소쉬르와 마찬가지로 기호들의 가치는 ‘차이’에서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김’이라는 기호는 ‘길’ 또는 ‘긴’과의 관계, 구체적으로 ‘ㅁ’, ‘ㄹ’, ‘ㄴ’의 각각은 서로의 차이에서 음가를 얻고 가치를 얻는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개개의 기호나 요소가 아니라 이들의 관계이다.3. “음운론은 체계의 개념을 도입한다”음소들은 체계를 이루며, 결국 음운론이란 음소들의 체계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 체계의 개념은 ‘구조’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4. “음운의 흐름은 분리된 사건의 연속들로 구성되는 것으로 미리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에 부응하여, 우리 인간은 인위적 사물(모든 종류의 가공품)을 만들거나 의례를 고안하거나 과거의 역사를 쓸 때, 자연에 대한 이해를 모방하게 된다. 즉 자연적 산물들이 구분되고 정리된다고 여기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문화적 산물들은 구분되고 정리된다.신호등을 예로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해 보겠다. 보라색에서 푸른색을 거쳐 녹색, 황색, 적색에 이르는 색깔의 스펙트럼은 자연속에서는 하나의 연속된 흐름이다. 이 흐름 속에서는 녹색이 황색, 혹은 황색이 적색으로 바뀌는 자연적인 지점은 없다. 우리가 어떤 색깔을 적색, 황색, 녹색 등으로 인식하는 심적 지각은 다양한 빛의 성질에 대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광도에 따라 명암이 결정되고 장단에 따라 빛의 파장이 결정되는 것이다. 파장은 적외선에서 자외선으로 이동함에 따라 짧아지는 반면 기온은 그 이동 방향에 따라 떨어진다.이와 같은 하나의 연속되는 흐름인 색채의 스펙트럼을 우리 인간의 두뇌가 분절하는 것이다. 그래서 녹색, 황색, 적색 등을 완전히 ‘다른’ 색깔로 인식한다. 두뇌의 정돈 메커니즘은 너무나 정밀해서 색맹이 아닌 한, 녹색이 적색의 ‘대칭’이며, 흑색이 백색의 대칭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본다.우리의 문화권에서는 이러한 대칭을 일찍부터 가르치며 그래서 우리는 적색을 (+)로 녹색을 (-)로 이해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이런 대립을 다른 경우에도 널리 쓰는데, 적색은 늘 똑같은 가치(위험의 신호)를 부여받는다. 그래서 뜨거운 물, 전류가 흐르는 전선, 부기장부의 적자, 도로나 철도 건널목의 정지신호에는 모두 적색이 쓰인다.건널목이나 도로의 교통신호 체계에서 ‘녹색’은 가시오 이고 ‘적색’은 ‘멈추시오’이다. 그러나 그 중간에 해당하는 신호를 하나 더 만들려고 한다면, 우리는 ‘황색’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황색이 빛의 스펙트럼상 ‘녹색’과 ‘적색’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기 때그리고 자연인지 사회인지 구별해줄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자연이 끝나고 문화가 시작되는 곳이 과연 어디냐는 것이다. 그는 『친족관계의 기본구조』의 첫 번째 장에서 이 자연과 문화에 대한 주제를 다룬다. 그는 규칙이 문화 쪽에 해당되는 특징이며 보편성이 모든 인간이 자연적 존재로써 가지는 특징이라고 보았다. 규칙은 특수적이며 상대적이고, 보편성은 자연발생적이며 절대적이다.그런데 근친상간 금지라는 규칙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보편성을 가진다. 규칙과 보편성이라는 두 요소를 모두 결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회적 집단에서 예외없이 발견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근친상간 금지라는 법칙은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연결해주는 셈이다. 즉, 이 법칙은 문화의 출발점인 동시에 문화의 기초가 된다.근친상간이란 금지인 동시에 허용이다. 일정한 범위 내에서의 성적 결합을 금지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결혼이란 제도를 통해 이 범위 외에서의 성적 결합을 허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근친상간을 금지하지는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특정한 방식의 결합을 허용하는 것도 아닌 동물과, 인간이 구별되는 부분이다.이렇게 결혼을 매개로 인간 관계가 이루어질 때, 레비스트로스는 이런 관계에는 분명 어떠한 보편적인 특징이 있을거라고 보았다. 그는 결혼이란 근친혼 금지라는 기반 위에 여자의 교환으로 맺는 인간의 관계라고 정의했다. 다시 말해, 두 개의 집단이 서로 여자를 주고받음을 통해 친족관계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친족 관계는 사회구조의 기초가 되며, 사회구조란 이런 친족 관계와 비슷한 것이라고 보았다.그는 친족관계의 기본구조를 아버지, 어머니, 자식, 외삼촌이라는 네 항으로 보았다.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여기서 ①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 ②는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 ③은 어머니와 외삼촌의 관계, ④는 외삼촌과 조카의 관계를 나타낸다. 레비스트로스는 두 개의 상이한 부족의 친족관계를 조사했는데, 그 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