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두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달의 입장에서 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시장경제는 떼어낼래야 뗄 수 없는, 그러나 서로 적대적인 공생관계에 있다. 사례를 통해서 보자면, 민주주의는 시장자본주의가 주를 이루는 국가에서만 지속되어 왔다. 또한, 비(非)시장 경제가 이끄는 국가에서는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이러한 관계가 지속되는 이유는 시장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일련의 특징들이 민주주의 제도의 유지에 우호적인 조건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비 시장 경제의 어떤 기본적인 특징들은 민주주의 전망을 훼손시킨다. 시장은 소유자, 경영자, 노동자, 그리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개인은 스스로 의사를 결정할 수 있었으며, 장기적으로 볼 때, 대체로 경제성장을 이끌어 왔다. 극심한 빈곤의 가능성을 제거하고 생활수준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킴으로써, 사회·정치적 갈등의 감소에 도움을 주었다. 이것은 경제적 갈등이 발생할 때의 해결법의 변화로도 알 수 있는데, 자원의 양이 늘어남에 의해 당사자들은 제공된 자원으로 서로가 만족할 만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게 되었다. 달에 의하면, 시장자본주의는 거대한 규모의 사적인 소유자들인 중간층을 양산하는데, 이들은 의례교육, 자율성, 개인적 자유, 사적 소유권, 법률, 그리고 정치에의 참여 등을 추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중간층이 야기하는 사회·정치적 결과 또한 민주주의에 유리하다. 민주주의는 시장자본주의 경제를 지닌 국가들에서만 존재해 왔지만, 시장자본주의는 비민주적 국가에서도 존재해 왔다. 일부 국가들―특히 대만과 한국―에서 경제성장과 시장경제가 차례로 동반되어 나타났으며, 이것은 민주화를 일으키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권위주의 지도자들은 국가의 경제 발전을 위한 정책을 고수하여 왔던 것이지만, 그 결과는 민주주의의 발전, 즉 자기 자신들을 파멸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달은, 시장자본주의와 경제성장은 민주주의에 우호적이며―장기적으로는 반대일 가능성도 존재하지만―실제로 비민주적 통치에는 철저히 비우호적이라고 주장한다.달은 시장자본주의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볼 것을 권했는데, 흥미롭게도 시장자본주의는 민주적 관점에서 접근할 시 시기에 따라 상반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는 각각 서로를 수정하고 제한하는 지속적인 갈등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이유로는 첫째, 시장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제도는 넓은 범위에 걸쳐 정부의 개입과 규제를 스스로 요구하게 된다. 시장경제는 완전히 자율적으로 규제 되지 않으며 규제될 수도 없는 것이다. 둘째, 정부의 개입과 규제가 없으면, 시장경제는 불가피하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 그리고 피해를 입었거나 피해를 입게 될 사람들은 정부의 개입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불만을 지닌 시민들이 정부가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성공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물론 많은 조건들―반대자들의 상대적인 정치적 위력을 포함하여―에 달려 있다. 그렇지만 달은, 역사적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규제되지 않은 시장에 의해서 만들어지거나 혹은 이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해악은 시민들에게 손해를 입힐지도 모를 결과들을 미리 변화시키기 위하여 정부의 개입을 유도해 왔다고 서술한다. 달은 해로운 효과를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강한 규제와 개입 없이는 시장자본주의 경제가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시장자본주의가 불가피하게 불평등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평등한 국가라 하더라도 정치적 자원을 배분하는 데 있어서 불평등을 발생시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로써 다두제(polyarchy)의 민주적 잠재성을 제한하게 되는데, 그로 볼 때 시장자본주의는 다두제의 수준에까지 이르는 발전까지는 크게 우호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평등을 거스르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다두제의 수준을 벗어나는 민주주의의 발전에는 비우호적일 수 있는 것이다. 초기의 시장자본주의는 권위주의 통치체제를 용해시킬 수 있는 강력한 체제이다. 그러나 일단 사회와 정치가 시장자본주의에 의하여 전환되고 민주주의 제도가 실현되기 시작하면, 사회 전체는 근본적으로 변하게 된다. 시장자본주의가 대량으로 생산해 내는 자원들은 불평등을 야기하고, 그것은 시민들 사이에서 심각한 정치적 불평등을 생산해 내기 시작한다.달이 논한 것처럼, 나 또한 자유주의와 시장자본주의는 묶여있는 관계라고 본다. 자유와 평등은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N극과 S극이라고 볼 수는 없다. 완벽한 자유는 평등 속에서 실현이 가능하며, 평등 그 자체도 자유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유럽 역사를 예로 들어 본다면, 프랑스 혁명 때 부르주아 계층은(중간층) 사유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자유주의를 획득하여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확립시켰다. 그러나 이 체제는 근로자들의 자유를 보장해 주지는 않았으며, 근로자들에게 자유라는 권리를 보장해 준 것은 민주주의였다. 데모크라시가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와, 근대자본가가 지향한 자유주의와는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근로자는 민주주의로 인해 해방되었고, 속박되었던 사람들이 자유를 얻게 되었다. 즉, 평등으로 자유를 쟁취했다. 완벽한 자유는 평등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사례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핵심 요건은 ‘다수의 지배’이다. 근대적인 대의민주주의의 형식이든,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이든 다수가 지배하는 국가가 아니라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19세기 전반까지의 영국은 당연히 민주주의 국가는 아니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헌정적 자유주의 국가였음 에는 틀림이 없다. 이렇게 발달된 헌정적 자유주의는 점차 민주주의를 불러왔으며, 이 사례는 영국은 헌정적 자유주의(자기 자신을 공평한 룰에 의해 통제할 수 있는 권력, 사법권의 독립, 자본주의시장 경제가 민주주의(다수의 지배)보다 앞서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민주주의 그 자체가 인민들에게 자신들이 국가를 스스로 지배한다는 만족감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애정을 주고, 권력에 안정성과 정당성이란 측면을 부여할 수 있다고 할 때, 즉, 정치의 질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민주주의가 왕정이나 과두정에 비해 훌륭하다고 평가될 수 있는 원천은 '민주주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시장체제(자유주의)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그 속에서 개개인의 이익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함께 시행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시장체제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가정하에서 민주주의는 왕정, 과두정과는 달리 당연히 해당 국가의 경제발전 수준과 극히 밀접한 연관을 지닐 수 밖에 없다.참고문헌Dahl, R. (1971) Polyarchy: Participation and Opposition.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