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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버마스의 이론과 시민사회
    Ⅰ / 서론“국가의 주인은 누구인가?” 시대에 따라 그 대답은 달랐으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국민주권의 사상이 보편화되어 있다. 이것은 다른 말로 민주주의가 이 시대의 보편적인 가치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무엇이 민주주의인가?’ 에 대한 논의는 지금까지 명확한 대답 찾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한 결정이라는 형식적인 정치형태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지 아니하면 “민주주의는 그것이 가지는 특정한 가치 지향이 있는 것인가?” 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에 관련해서도, “훌륭한 대표를 뽑아 그들에게 위임을 하는 방식으로 의사를 결정해야 한다.” 는 생각과 반대로 “개개의 국민이 주권을 가진 주체로서 의사를 결정해야 한다.” 의 민주주의의 실현의 방법에 있어서도 확실한 통설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 이 중 특히 후자의 논의가 표면으로 들어나게 된 것이 최근의 탄핵과 관련된 촛불 시위였다. 국민의 대표자인 대의기관과 국민의 대다수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민주주의는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문제는, 탄핵사건이 일단락 된 현재에 있어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는 헌법학이나 정치학, 사회학의 영역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었으나 아직 명백히 어느 쪽이 옳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나마 법학의 차원에서 살펴보자면, 현재 우리 헌법재판소는 우리의 헌법은 대의원리를 근본으로 직접민주주의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있다고 판시하고 있으며, 이에 따르면 국민 다수의 주장보다는 대의기관에 의한 결정에 따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대의원리가 우리 헌법상에서 기본이념으로 보장되고 있다하여도 ‘국민의 의사’가 어디에 있는가를 쫓지 못한 대의기관의 결정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어울린다 하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대의기관의 결정은 국민의 의사를 두루 살펴보고 이를 근거로 하여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지, 선거를 통한 위임이라는 이름하에 독단과 독선으로 국가의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어나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체제와 이념을 세우면서 여기에 정치적 경제적 해방의 기능을 부여함과 동시에, 소가족 중심의 가정을 이루며 거기에 ‘심리적 해방의 장소’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독립된 경제적 활동 주체이자 자율적인 시민임을 자각함으로써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을 차별화되는 공간으로 인식하였다는 것이다. 즉, 모든 사회적인 연관에서 탈피하여 순수 인간성의 영역에 속하는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사적 영역이 이루어지고, 이러한 인간성의 개념에 사적 자율성, 부부간의 사랑의 공동체, 교양의 이념이 종합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사적영역에서 독립적인 인간임을 자각했기에 모든 시민은 신분계층적인 위계가 있는 것이 아닌 평등한 존재라는 생각이 가능했고, 이것이 의사소통을 통한 합리성 추구를 통해 의견을 나누는 공론이 형성될 수 있는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출판과 저널을 통해 표출되면서 공론으로 반영된다. 이상을 정리하면, 18세기 말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분화와 함께 사적영역에서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중시하는 공중이 탄생하였으며, 이 공중이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통해 시민사회가 국가와 같은 공적영역에 대한 비판과 제어를 담당하는 공론영역의 시작이었다고 하겠다.2) 후기 산업사회에서의 공론영역의 쇠퇴그러나 하버마스는 19세기가 되면서 ① 사회와 국가가 서로 침투하고, ② 민주주의가 대중적, 형식적으로 발전하면서 ③ 공론영역이 그 비판적 기능을 상실하고 ‘재봉건화’된다고 말한다. 이 19세기의 현상을 사적영역(㉡)에 있어서의 변화를 통해 살펴보면, 사회적 영역과 친밀성 영역이 양극화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는 사적영역으로 생각되던 경제영역과 가정이 서로 상반되게 발전한다고 할 수 있는데, 다시 적으면 자본주의 하에서의 사적영역의 노동의 제공은 점점 공적인 부분으로 흡수 되어버리고 뒤에 남은 가정은 공적영역을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너무 멀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하게 되면서 개개인의 경제활동은 거대기업에 예속될 수밖에 없었던제)에 영향을 미치는 ⓓ가 약화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하버마스의 논의를 계속 이어가면, 경제 영역에 의해 생활세계가 잠식되어가는 (ⓑ)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다. 가정에서 생산기능이 상실되고 소비중심으로 변질됨에 따라 가정은 그 속이 비어버리고, 그 속은 광고와 선전으로 가득 찬다. 이로서 더 이상 비판적인 문예의 수용영역으로서의 공중이 아닌, 소비만을 핵심으로 하는 공중으로 변질되게 됨으로써 18세기에 형성되었던 공론영역은 그 기반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한편, 국가에 의한 생활세계의 잠식(ⓐ), 즉 생활세계의 정치적 역량의 감소에 대해 하버마스는 ‘경제적 부분에 대한 국가간섭의 증대’와 ‘기술주의의식’을 이야기한다. 전자의 경우는, 후기산업사회가 가지는 경제영역의 문제점(ex.계급 갈등)이 생활세계의 공론영역에서가 아닌 국가행정 체제를 통해 처리되고, 때문에 해결의 흐름이 정치적 영역을 경유해서 단계적으로 사회 문화 영역으로 이어지게 되며, 이는 적극적인 주체로서 생활세계가 아닌 국가의 정치활동에 의해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생활세계가 됨을 의미한다. 때문에 그동안 정치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변화의 원동력이 되었던 공론영역은 국가의 활동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되면서, 비정치적인 것으로 변하게 된다. 다시 말해 ‘시장적 문제에 대한 국가주도의 완화의 사이클’은 ‘공론영역의 쇠퇴’라는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이와는 달리 후자인 기술주의는, 의식적인 부분에 관한 것이다. 기술주의의식의 확산에 대해 하버마스는 “현대 산업사회의 특징은 과학과 기술이 국가, 경제, 생활세계에 대해 가지는 상호의존성이 점점 증가함으로써, 도구적 합리성(목적적 기능주의적 합리성)이 비도구적 합리성 영역인(의사소통적 합리성의 영역인)을 대체하면서, 이 도구적 합리성이 생활세계와 공론영역으로 점점 더 확장되어 나가는데 있다”고 분석한다. 즉,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통해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보다, 기능주의적 합리성을 통해(예를 들면, 목적달성을 위해 합리적으로 조직화된 국가기 새롭게 이념과 가치가 생겨난 것과는 달리,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체계에 의해 도입된 가치들을 국민들이 수용하는 단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비판을 통한 생활세계가 적극적으로 형성되기에는 무리였으며, 이는 곧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인 공론영역의 형성을 통한 시민의 참여가 결여될 수 밖에 없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국민들의 욕구가 분출되어 공론화된 몇몇의 사건이 있기는 하였으나 이는 하버마스가 말하는 생활세계에서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거친 공론영역의 형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단계에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신탁통치에 대한 찬반의 분열이다.1941년 12월 16일부터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영-소 3국의 외상회의에서 조선에 대해 미국, 영국, 중국, 소련의 4국에 의한 신탁통치를 하는데 잠정적인 합의를 이룬다. 많은 국민은 일제의 악제 하에서 독립한 시점에서 다시금 타국의 신탁통치 하에 들어간다는 것은, 과거의 치욕을 다시금 겪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였으며, 이는 위 신탁통치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게 한다. 그러나 좌익공산세력에서 찬탁을 들고 나오면서, 정국은 찬탁과 반탁의 대립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여기서 우리가 신탁통치의 시비를 가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신탁통치에 대한 찬반의, 이른바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이 바로 우리의 관심대상이다. 당시 널리 퍼진 이야기는 “소련이 신탁통치의 안을 들고 나왔으며, 소련의 사주를 받은 공산주의자들이 찬탁을 통해 조선을 다시금 외세에 팔아넘기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보도한 것은 동아일보였는데, 동아일보의 이 기사와는 정반대로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신탁통치를 먼저 제안한 것은 미국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일보에서 이러한 기사를 쓴 배경은, 동아일보가 한민당의 기관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데 있다. 즉, 한민당은 신탁통치에 대해 일단 반대입장을 보이면서 그 지지기반을 다지는 동시에, 자신들의 배후에 있는 미국에 대한 이미지를 올림으로써, 당의운동은 이념적인 문제로 옮겨감에 따라, 그 변화를 이루어내는 데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내기는 어려웠었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대학의 공론을 바탕으로 변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 한정되어 있었다. 군부의 힘에 의한 통치 하에서, 그것을 비판하는 공론이 평화적으로 체계에 수용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었으며, 결국에는 그 공론을 바탕으로 운동 및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을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여론을 움직이는 것이 필요했는데, 4.19 같은 둘 사이의 일치는 쉽게 일어나지 않았었다. 이상을 통해 공론영역으로서 대학공간이 가지는 한계는 다음의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대학 공간의 의사소통의 작용은 그것이 생활세계 전체 단위의 공론을 대변하지는 못했으며, 둘째는 공론의 반영이 폭력적인 투쟁의 방법에 한정되어 있었기에 이를 위해선 시민사회의 호응이 불가결한 요소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론영역으로서 대학이 보여준 그 가능성과 노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80년 이후 시민사회의 역동적인 움직임의 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87년 6월 항쟁에서는 대학이 거의 유일한 공론영역이었던 것과는 4.19와는 판이하게 다른 스펙트럼을 보인다. 80년대부터 성장하기 시작한 시민사회의 여러 단체들은 더 이상 체계에 의해 종속되고 통제되는 곳이 아니었다. 대학 역시 대학의 의사들을 표출하며 사회의 여러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리고 87년 6월의 항쟁의 전후에 있었던 직선제 개헌과 관련된 사회 전반의 의사소통은, 마침내 생활세계의 의견을 표출하는 공론영역이 점차 형성되고 있었음을 상징한다. 당시 언론 등은 여전히 체계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체계에 의한 여론의 조작은 이미 광범위하게 형성된 공론영역에서의 의사소통의 뿌리마저 뽑을 수는 없었다. 즉, 80년 대 이후 체계에 의해 잠식당하고 통제되던 생활세계의 많은 부분이 체계의 통제에서 탈출해가기 위한 노력을 하였으며, 그러한 노력의 결과 생활세계는 체계의 종속이나 조작을 받지 않는 공론영역을해진다.
    사회과학| 2010.04.27| 13페이지| 2,000원| 조회(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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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 민주화운동 연구
    기억되어야만 하는 5 ? 18공동연구자: 김영식, 김우성, 심형준, 이원길1. 물음: 다양한 이름80년 5월 18일부터 광주에서 열흘간 진행된 사건을 규정하는 다양한 말들이 존재한다. ‘광주사태’에서 ‘광주시민의거’, ‘광주학살’, ‘5 ? 18민주화 운동’, ‘5 ? 18민중항쟁’ 그리고 ‘광주민중혁명’에 이르기까지 5 ? 18을 규정하는 시각은 다양(최정운: 28)하다. 이것은 우리가 80년 오월의 광주에 대해서 ‘명확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자체에 하나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5 ? 18이라는 것이 실제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그렇고 그것이 한국 역사의 진행 상황에서 재조명되는 상황을 보더라도 복합적인 기억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5 ? 18을 이야기하고,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져 왔지만, 기실 묘한 침묵의 언어) 또는 권력 담론(최정운: 63-88, 100-109) 안에서의 왜곡이 녹아있는 복잡한 이야기이다. 바로 이러한 점은 이 보고서가 보이고자 하는 하나의 목표이기도 하다.여기에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이러한 규정들에서 거리를 두기 위해 ‘5 ? 18’(최정운: 28)이라는 표현으로 그 사건을 지칭하고자 한다. 왜 이렇게 다양한 말들이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 각각의 규정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런 다양한 시각들을 고려한 연후에 이 ‘5 ? 18’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답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논의를 진행시키기 위해서이다. 물론 이러한 표현의 선택에 의해서 기계적으로 어떤 중립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중립성에 대한 의지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 최소한 그러한 시도 안에서 건전한 입장 정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이 논의를 진행시키기에 앞서서 5 ? 18의 전말이 어떠한지 살펴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논의 구도상 간략하게 제시될 것이다. 그리고 5 ? 18은 신군부의 5 ? 17 쿠테타(12 ? 12는 군부 내 ‘쿠테타’이고 실제로 신군부 총격, 도청을 마지막 기점으로 완전 진압.3. 5 ? 18과 전두환전두환이라는 개인과 5 ? 18이라는 사건을 접하게 될 때, 우리는 2가지 방법으로의 관계 짓기가 가능하다. 그 하나는 전두환이 5 ? 18이라는 무대에 역할을 담당하는 배우로서 행동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5 ? 18이라는 사건이 전두환에게 끼친 영향을 살펴보는 것이다. 연극에 있어 하나의 인물이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대사를 할지는 대본에 적혀있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는 어떤 사건에 있어 개인이 어떤 행동을 하는데 대본이 존재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역사를 소급하여 그 개인이 어떤 행동과 생각을 했는지를 살펴보는 데는 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모든 자료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많은 자료들이 소실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5 ? 18을 살펴보는 것도 마찬가지라 하겠다. 특히 전두환을 대표하는 신군부와 관련된 많은 자료들이 고의로 은폐, 소실, 훼손 되어 있기에) 그 어려움은 더욱 크다. 그러나 남아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하여, 그나마 둘의 관계를 살펴보려 한다. 이것이 가지는 문제점은, 고의로 은폐한, 어쩌면 뒤에 감추어져 있을지 모르는 더 큰 논의를 배제한 채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논의가 수박 겉핥기에 그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객관적인 자료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5 ? 18과 전두환의 관계가 도출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전제 하에 논의를 진행한다.정치적 배경 - 신군부의 등장과 구조적 폭력의 심화신군부는 보안 사령관 전두환이 부마항쟁 직후에 발생한 10.26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합동수사 본부장이 되는 것을 시점으로 점차 한국 정치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박정희의 비호 하에 은밀하게 성장한 하나회가 주축이 된 신군부는 박정희 암살이후 권력 공백기를 틈타 주도권 쟁탈전에 돌입하였다. 박정희식 무단통치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던 군수뇌부(정승화를 중심으로 한)와는 달리 군사권위주의 통치의 중단 없는 지속을 꿈꿔 왔던 전두환, 노태우 등 육사 11남대가 다른 지역에 비해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남대에서 5 ? 18의 불씨가 시작된 이유로 드는 것이 「우리의 교육지표」사건)과 그 과정에서 인정받은 총학생회장 박관현이라는 존재이다. 박관현의 리더십은 특출한 것이어서, 그 당시 전남대의 횃불 시위를 살펴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민주학원의 새벽기관차 박관현의 카리스마는 김대중씨와 같은 역량 있는 대중 정치인 수준으로 승화되어 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라고 소개하며, 그의 리더십을 인정하고 있다. 이상을 살펴보았을 때, 5 ? 18이 신군부가 굳이 광주를 골라잡아 그들을 배제시켰다기보다는, 전남대의 특이한 제반사정들이 5.17조치에도 불구하고 빠르고 신속하게 재결속하여 시위를 계속할 수 있는 배경이 되어 주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어지는 군부의 반응은 이른바 ‘음모설’이 제기될 정도로 비정상적인 것이 사실이다.5 ? 18에서의 군사적 개입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는 학생들의 시위에 대항하여 5.17 조치가 있기 전 이미 공수부대를 대상으로 충정훈련)이라는 것을 실시한다. 그리고 5.16 조치와 함께 서울과 광주의 대학 일대에 이들을 파견하여, 시위를 사전에 차단하려 한다. 그러나 광주 지역의 학생운동은 막지 못했고, 이에 공수부대가 파병된다. 오후 4시경, 공수부대의 진압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 이유로 드는 것들이 ‘부마사태 때 파견된 부대라서 그렇다. 충정훈련의 결과이다. 약을 복용했었다. 명령이 그렇게 내려진 것이다.’ 등이나 그 이유를 명확히 할 수는 없다. 어쨌든 공수부대의 과잉진압은 시민들도 시위에 가담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였으며, 결국은 공수부대를 광주에서 후퇴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에 따라 군부는 주위를 봉쇄하는 동시에 25-27일에 걸쳐 진압(상무충정작전)을 실시하였으며, 5 ? 18은 그 종말을 고하게 된다.언론보도5 ? 18과 관련하여 살펴보아야 할 것이 바로 그 간의 언론보도의 문제이다. 이 당시 5 ? 18 들은 항쟁지도부나 시민들은 미국에 의해 이 상황이 종결될 것이라 환호했던 것이다(김영택: 281). 이런 점은 광주 시민들이 미국이 계엄군과 광주 시민들을 중계해 주고, 또 5.18의 종결에 도움을 줄 것―“4.19혁명”시와 같이―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강하게 보여준다.초기에 미국은, 그들의 진심이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한국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 왔다. 신군부의 5.12일 임시 국무회의 소집 후, ‘북괴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정보 보고에 대해 미국정부는 즉각 부인하고 나섰다. 또, 미국무성은 13일 성명을 통해서도 같은 태도를 보였다. 이 같은 미국측의 부인은 북한침공설을 내세워 민주화일정을 변경하거나 취소하려는 신군부의 의도를 간파하고 이를 사전에 견제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되지만 미국은 그 뒤에도 계속해서 한국측의 북한위협설을 부인했다(김영택: 266).그러나 후에 미국의 태도는 변화한다. 21일 주한 미국대사 글라이스틴의 ‘미국은 광주사태에 심각하게 관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해 미국으로서는 사태에 개입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 점(김영택: 281), 22일부터 시작되는 미국정부의 5.18에 대한 한국 군부의 태도 공식 지지(김영택: 147)등의 미국의 입장 변화가 있었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다.미국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제기된 것은 5.18 직후부터였다. 5.18에 대한 군부의 유혈 진압을 미국 정부가 묵인 (나아가 지원) 했다는 사실에 대한 충격적인 인식은 한국인들에게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오랫동안 사라졌던 미국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부활시킨다(문부식: 49). 이런 인식의 변화는 1980년 12월의 광주 미문화원 방화, 1982년 3월 부산 미문화원 방화, 1985년 5월 서울 미문화원 점거 농성 등으로 나타난다. 그 외에도 1982년 11월 광주 미문화원의 화염병 투척 사건, 1983년 9월 대구 미문화원 폭발물 사건, 1985년 8월 을 지지했다는 의혹을 가지게 한다. 이런 점을 보면 미국의 성명서는 그들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작성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으며, 이런 성명서는 반미감정을 없애는 데 충분하지 않았다.이런 제반 상황에 비추어보았을 때, 미국은 방조, 그 중 적극적 방조행위를 한 책임이 있다. “미국은 12.12사태와 광주항쟁을 미연에 방지, 저지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오히려 지원하고 방조했습니다. 미국문화원을 방화한 것은 반공만 내세우면 민주주의도 팽개쳐버리는 어떤 정권이라도 지지해 온 미국에 대한 국민적 경고입니다.”라는 문부식의 말도 여기서 일면 정당성을 가진다. 특히 위컴 주한 미국사령관은 추후 전두환과의 회담을 가진다. 향간에 글라이스틴 대사는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원했고, 위컴 대장은 안보를 확실히 할 수 있는 군부정권을 원했으며, 결국은 위컴 대장이 승리한 것이라는 소문이 떠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이렇게 볼 수만도 없는 것이, 장기간 독재로 인한 이란의 반미경험으로 미국에서도 다른 지역에 대한 민주화를 이룰 필요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우리나라의 민주정권을 수립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는 광주항쟁에서 손을 뺀 채, 멀찌감치 지켜보면서 반미감정의 시발점이 될 지도 모르는 사건을 억제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왜 하지 않았는가 하는 물음은 좀 더 조사가 필요하다.5. 5 ? 18을 둘러싼 담론들인간은 자신의 감각 안에서 인식할 수밖에 없으며, 인식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직접 체험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법이다. 이런 대표적인 예가 아무래도 ‘기억과 관계된 것’이다. 그것은 필히 언어 안으로 들어와야 하며, 기억하는 사람의 인식체계 ? 방식에 의존하게 된다. 더욱 ‘기억’이라는 활동이 의지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인식활동에는 그 주체의 의도가 개입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기억하는 활동은 억압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 이상은 (이기적인 인간
    사회과학| 2010.04.27| 15페이지| 2,000원| 조회(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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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올드보이
    영화 올드보이(Old Boy)와 신화Ⅰ. 들어가며...현대 신화를 이야기한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신화를 색다르게 개념화 한다. 그에 따르면, 신화는 기존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신에 대한 이야기, 창조에 대한 이야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신화에서 보이는 신화언어의 표현양식인 신화의 의미작용에 주목하여 한없이 재해석될 수 있는 신화언어의 형태적 특성에 주목하여 신화를 정의했다. 기표와 기의가 합쳐져 기호가 되는 언어의 기호학적 형태는 신화에서도 발견되나, 신화의 그것은 단순한 언어의 기호학적 형태와는 달리, 일차적으로 한 번 의미작용(기표 + 기의 = 기호)의 결과 탄생한 ‘기호’를 다시금 기표로 삼아 거기에 기의가 부여된 이차 기호학 체계라는 것이다. 즉, 이 부분에서 바르트는 신화학을 형태학적인 부분에서 기호학의 일부로 파악했다. 이와 동시에 바르트는 다시금 부여되는 의미(기표의식)에 주목한다. 신화언어는 빠롤(parole)이므로 모든 신화 재료(기호)들은 기표의식(une conscience signi- fiante)을 전제하여 신화를 그 재료와는 무관하게 논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기표의식에 해당하는 것이 역사 속에서의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바르트에 있어서 신화학은 역사학으로서의 관념학(lideology)이었다. 따라서 바르트에 시각에 있어서 신화의 재료가 되는 신화 기표 자체는 1차적 단계에서는 풍부한 의미를 가지나, 신화학의 영역에서는 비어있는 따라서 기표의식에 의한 보충을 요구하는 그런 존재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바르트의 신화에 대한 정의는, 현대 신화를 바라봄에 있어 신화의 범주를 크게 확대시킴과 동시에, 신화라 불릴 수 있는 빠롤이 되기 위해서는 그 신화 기표가 기표의식의 역사성에 의한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으로부터 기표의식의 파악에 대한 관심을 수반한다. 따라서 연구의 주제인 올드보이(Old Boy)를 신화학으로서 파악하는 것 또한 바르트가 했던 것과 같이 영화 올드보이에 접목된 기표의식을 찾아가가는 영웅 오대수, 시련과 고통을 견디고 그는 ‘괴물(Monster)’로 탄생한다. 그러나 이우진을 향한 그의 복수는, 오이디푸스가 부친의 살해와 어머니와의 근친상간에 무너져버렸듯이 미도와의 근친상간이라는 모티브에 의해 무너져버린다. 영화 올드보이를 영웅 신화라는 주제에 맞추어 내용을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scene A. 영웅이기 전에 주어진 시련경찰서에서 횡포를 부리는 오대수는 친구의 도움으로 밖으로 나온 후, 집으로 전화를 한다. 그리고 화면이 전화박스를 비켜가는 짧은 찰라, 오대수는 화면에서 그 모습을 감춘다. 그는 납치된 것이다. (그날은 오대수의 딸 생일이다) 납치된 오대수는 좁은 방안에 감금된다. 누가 왜 자신을 감금했는지 오대수는 알지 못한다. 그렇게 한해가 지났을 무렵, 오대수는 TV에서 자신이 부인 살해의 누명을 뒤집어 쓴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세상에서 고립된 오대수는 ‘개미환각’을 보고 절규를 한다. 그리고 거울이 깨진 상태에서 오대수가 질질 끌려나오는 장면과 깨진 거울 옆의 자화상이 나온다. ▶ 이 부분은 영웅의 탄생에 배경으로 갈려있는 시련에 해당한다고 본다. 영웅탄생 전의 시련은 많은 신화들에서 시련을 받는 자가 영웅이 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낳는다. 신화에서 이러한 시련은 부모 없음이나 기능의 장애 등으로 나타나나, 올드보이에서의 시련은 세상으로부터의 완벽한 고립과 고독감이다. 영화에서 미도가 말하듯이 외로운 사람들은 개미환각을 본다. 오대수가 독방에 갇히고 TV와 친해지기를 1년, TV에서는 자신의 아내의 죽음과 그 살인의 누명을 자신이 지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는 순간, 오대수는 세상과의 완벽한 단절과 고독감에 절규를 하는 것이다. 부인을 살해한 자라는 것은 도덕적인 면에서 세상으로부터의 단절의 중요한 모티브이다. 한편, 그가 세상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은 그동안의 자신이 부정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개미환각과 절규는 거울이 깨지고 오대수가 쓰러지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깨진 거울 옆에는 앵소르의 그림이 걸려있다. 나는 울 것이다.” 이 말과 함께, 절대적인 고독을 씹으며 오대수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뒤로 하고 걷는다. 떠돌던 오대수는 지중해라는 횟집 앞에서 누군가로부터 돈과 폰을 선물 받는다. 지중해에서 오대수는 미도(강혜정 역: 지중해 사이에서 만난 아름다운 섬을 말하는 것 같다)를 만나고(미도도 개미 환각을 보는 외로운 존재이다), 이우진과의 통화 끝에 살아있는 문어를 씹어 먹다가 쓰러진다. 미도와 알게 된 오대수는 절대악으로 등장하는 이우진을 향한 복수를 시작한다. 자신을 감금한 곳을 찾아가 그 곳의 보스 박철우의 이를 모두 뽑아버린다. 그리고 조직의 아해들과 싸우고 등에 칼이 박힌 상태로 오대수는 그곳을 빠져나온다. 오대수의 복수는 이와 같이 순수한 폭력 그 자체이다. “그 녀석의 모든 것을 내가 씹어먹을테다.” 극단적인 폭력성과 잔인성이지만, 그의 복수 방법은 오히려 순수하기까지 하다. 사실적인 면이 아닌 신화로 본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우진의 복수의 방법과 비교해보면 극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상처를 입고 돌아오는 길에서 건널목에서 쓰러진 오대수는 이우진의 도움을 받아 택시를 탄다. 박철우에 대한 복수 역시 이우진의 계산 안에 있었던 것인가? 이우진과 오대수의 첫 번째 만남, 그 후 오대수는 자기 집 바로 건너에 이우진이 있음을 알고 그곳으로 향한다. 복수를 눈앞에 둔 순간, “나는 누굴까요, 왜 가두었을까요?” 라는 이우진의 물음에 오대수는 복수의 마음을 덮는다. 아니, 다시 말하면 그가 뒤에 벌일지 모르는 행동에 대한 두려움보다 이유에 대한 궁금함이 더 앞섰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유에 대한 의문, 그것을 알아가는 것으로 복수의 방향이 전환된다. 이유만 알아내면 그 스스로가 죽어주겠다고 했으므로. 그러나 오대수가 이렇게 이우진과 갈등을 연출하고 있을 때, 미도의 집에는 박철우가 쳐들어와 있는 상태이다. 박철우에 의해 포박당한 오대수는 자신의 이가 뽑힐 위기에 처해진다. 그러나 웃음과 함께 칼을 준비하며 영웅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려고 하나, 이 대화의 단절은 고독을 의미한다. 그 고독을 택하면서까지 오대수는 근친상간의 사실을 밝히기를 거부한 것이기에. 그리고 최후에 떠나는 이우진으로부터 심장을 멈추게 하는 스위치를 손에 넣은 오대수, 그것은 미도와 자신의 성행위를 녹음한 테이프를 켜는 스위치였다. 복수의 마음으로 그 스위치를 누르자 그 복수의 칼날은 스스로를 찔러버린다. 미도와의 정사 소리를 들으며 오대수라는 영웅은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우진 역시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누나를 놓친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제 그가 말한 것과 같이 오대수를 놓아진 상황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고독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영웅과 절대악은 둘 모두 최후를 마지한다. 스스로에게 쏜 복수의 화살을 자신들이 맞으면서 말이다. ▶ 결국 오대수는 이우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복수는 성공했다. 물론 자신도 파멸을 맞이하였지만 말이다. 미완의 영웅은 근친상간이라는 비도덕성에 의해 완전히 무너져 버린다. 마치 오이디푸스가 어머니와의 근친상간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였듯이.영웅 신화로서 올드보이는 위의 4단계로서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과정은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오이디푸스가 영웅이 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허나, 오이디푸스가 근친상간에 의해 무너졌듯이 올드보이에서의 오대수도 미완의 영웅성과 근친상간에 의해 파멸을 맞이한다.3. 이유에 대한 궁금증과 대상에 대한 호기심 - 판도라의 상자“내가 ‘누구’인지 ‘왜’ 그랬는지, 내가 죽으면 알 수 없잖아요?”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멱살을 잡힌 상태에서 하는 대사이다. 오대수는 15년간 이를 갈며 다짐했던 복수의 그 순간에 이우진의 ‘왜’라는 의문의 제기에 복수를 후로 기약한다. 올드보이는 전체적으로 ‘왜’라는 물음의 연쇄로 이어져있다. 오대수가 복수를 하면서 가지는 의문, ‘넌 누구냐, 왜 나를 가두었느냐?’ 이우진이 다시금 던지는 질문, ‘왜 당신을 풀어줬을까?’ 이우진이 던지는 이 질문에 오대수가 대답을 못할 때 둘의 사이에서는러나 그는 이우진이 내민 ‘돈’에 그 복수심을 묻어버린다. 박철우에게 있어서는 돈이 복수나 자신의 몸보다 중요하다. 건물을 사기 위해 자신의 손을 잘라버린 것은 보통의 관념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허공을 바라보다가 이우진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은 박철우, 그에게 있어서 돈은 무엇이었는가? 복수의 마음마저, 자신의 신체마저 마땅히 버릴 수 있는 돈에 대한 집착. 그것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극단적인 물질 중시 풍토가 반영되면서 복수의 구도에 왜곡을 가져왔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복수의 왜곡은 ‘돈 > 복수나 신체적 가치’ 라는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오대수가 미완의 영웅으로 남는 동기를 제공한다. 아트레우스가의 비극이 복수를 대대로 반복하는 것처럼 올드보이는 복수의 이름에 내용이 진행된다. 그러나 오대수의 복수는 순수의 폭력이었던 반면, 올드보이 전반의 흐름은 그것과는 약간 다른 복수의 흐름과 변수들이 깔려져 있었다.5. 대화의 단절 - 죽음에코와 나르시스의 신화에서 대화의 단절이 둘을 죽음으로 이끌어가듯, 올드보이에서도 이러한 단절은 또 하나의 테마이다. 영화의 가장 첫 시작은 옥상에서 누군가를 오대수가 손으로 잡고 있는 장면이다. “누구세요?” “내 이름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것이 어떤 장면인지를 알 수 있다. 감금된 방에서 옥상위에 풀려졌을 때 오대수는 옥상에서 떨어지려는 누군가를 잡아챈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오대수는 듣지 않는다. “아저씨 제 이야기, 아저씨...” 그렇게 대화의 상대를 원했던 그 남자는 옥상 위에서 떨어져 죽음을 선택한다. ‘웃어라 세상이 모두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혼자만 울 것이다.’ 영화 속의 세 주인공은 모두 외롭다. 세상과의 단절, 과거와의 단절로 몬스터가 되어버린 오대수, 지중해에서 일상적인 일은 하지만 세상에 홀로 버려져버렸던 미도, 누나가 죽은 뒤 완벽한 고독에 사는 이우진. 오대수와 미도는 모두 개미환각을 본다. “제가 아는 진정으로 외로운 자이다.
    예체능| 2010.04.27| 11페이지| 2,000원| 조회(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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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장과 사랑
    성장과 사랑의 관계에서 본『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目 次 --------------------------------Ⅰ. 들어가며Ⅱ. 성장 (Bildung)기존 학자(학파)들의 논의와 그에 대한 비판ㆍㆍㆍ 1. 인간의 성장ㆍㆍㆍ 2. 주관적인 측면에서의 성장ㆍㆍㆍ 3. 대상을 통한 자기보기ㆍㆍㆍ 4. 바닥에 얇게 깔려있는 양탄자ㆍㆍㆍ 5. 성장의 역치 값Ⅲ. 사랑 (Love)ㆍㆍㆍ 1. 사랑을 한다는 것ㆍㆍㆍ 2. 오늘날 사랑의 모습 1 - 성과 동떨어져 있는 사랑ㆍㆍㆍ 3. 오늘날 사랑의 모습 2 - 낭만적 사랑ㆍㆍㆍ 4. 그 외 오늘날 사랑의 모습- 동성애와 근친상간의 금지, Gender의 학습Ⅳ.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의 성장과 사랑ㆍㆍㆍ 1. 분석의 방법 제시와 빌헬름과 6人의 여인 소개ㆍㆍㆍ 2. 사랑의 전개와 빌헬름의 변화(성장)ㆍㆍㆍ 3. 빌헬름의 성장과 상대방에 대한 인식 변화ㆍㆍㆍ 3.1. 필리네ㆍㆍㆍ 3.2. 테레제ㆍㆍㆍ 4. 『수업시대』의 사랑에 깔려있는 양탄자ㆍㆍㆍ 4.1. 순결한 여성과 타락한 여성의 구분ㆍㆍㆍ 4.2. 근친상간은 허용되지 않는다ㆍㆍㆍ 4.3. 연애와 결혼은 별개인가?ㆍㆍㆍ 4.4. 교양의 형성으로서의 사랑과 결혼ㆍㆍㆍ 5. 사랑과 성장의 관점에서의 『수업시대』ㆍㆍㆍ 5.1. 벨헬름은 큐피트인가?ㆍㆍㆍ 5.2. 사랑의 측면에서 빌헬름의 성장은 완결되지 못했다Ⅴ. 나가며--------------------------------------------Ⅰ. 들어가며“아이들은 모두 어른이 된다. 단 한명만 빼고.” 매튜 배리의 『피터 팬』은 어른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무서운 동화이다. 네버랜드에서 피터 팬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그는 영원한 어린이로서 꿈과 모험을 즐긴다. 이런 피터 팬을 동경하며 어른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어린이의 세계에 머무르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피터 팬 신드롬의 주인공들이 그들이다. 70년 미국의 불경기에 등장한 피터 팬 신드롬은 사회에 나가는 것을 회피하고 만화영화 ‘체험’을 통해 계속된 흐름인 삶을 인식하고 그것을 ‘이해’, ‘추체험’하며 자신과 삶, 대상을 끊임없이 연관 짓는다. 이를 통해 ‘대상’은 ‘나’와 소통을 한다.성장은 변화를 전제로 한다. 그것은 기존의 나와 다른 새로운 나의 탄생이다. 그것은 얼굴 표피에 주름이 하나 더 생긴다거나 흰머리가 하나 느는 것과 같은 변화를 말하지 않는다. 탄생은 정신적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체험과 이해, 추체험을 통한 ‘외부 대상과 나 사이의 소통’은 특정 시점에서 자기의 변화를 가져온다. 보통 체험과 이해는 객관화된 외부의 상황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받아들임은 자아 위에 덧붙여지는 것이며, 자아의 두터운 막을 뚫고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떤 역치 값을 넘어서는 체험을 하는 순간 그것은 기존의 자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자아를 자극, 변화시킨다. 바로 이 특정 시점에서의 ‘나의 변화’가 바로 ‘성장’이다. 이 특정 시점은 삶의 전환점 같은 유난히 특별한 시점이 아니다. 그것은 삶에서 지속적으로 작용한다. 영화 『쉰들러리스트Schindler'S List』(1993)에서 주인공 쉰들러의 변화를 생각해보자. 돈을 벌기 위해 군인들에게 접근하는 장면에서의 쉰들러와 쉰들러리스트를 작성하는 순간의 쉰들러는 다른 성격의 사람이다. 그가 변화를 겪는 과정을 살펴보면 하나하나의 여러 사건들이 그에게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침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사건들 사이에서 그가 보이는 반응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기존의 자기를 기초로 그 사건들을 해석하고 또 대응한다. 그러나 조금씩 누적되는 변화는 결국엔 그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 시킨다. 쉰들러의 변화는 붉은 옷을 입은 소녀의 죽음을 통해 절정으로 치닫고 급물살을 타지만, 그것은 한 순간에 힘입어 달성되지 않았다. 유태인을 돕기 시작한 쉰들러도 여러 체험 속에서 변화의 도상에 있다. 이와 같이 성장은 통과제의와 같은 특정 기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장은 일반적,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 주관적인 것이다. 우인간상’이나 ‘바람직한 성장의 결과’와 같은 것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일정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성장의 멈춤은 주관적인 측면에서의 성장에서도 언급의 필요성이 있다. 그것은 성장의 역치 값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 위에 놓인 우리는 계속된 대상과의 상호소통의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 소통이 필연적으로 자아의 변화를 낳지는 않는다. 많은 경우 그 경험들은 자아와 다른 방에 저장된다.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쉰들러와 달리 영화 『피아니스트Pianist』(2002)에서의 스필만은 나치의 학대를 겪는 중에도 ‘저항’이라는 코드에서는 자아의 변화를 겪지 않는다. 이것은 스필만이 학살의 대상이 된 유태인이었고 그 체험의 정도는 쉰들러에 비해 극적이었음에 비추어보았을 때 의문으로 다가온다. 피아니스트에서 스필만의 적은 변화의 이유는 유태인 폭동을 기획하고 있던 신문 인쇄공을 통해 제시된다. “예술가는 예술가로서의 특성이 있다. 저항을 하는 것은 당신에게 맞지 않다.” 스필만은 결정적인 거사의 순간에도 밖으로 몸을 피한다. 학살의 순간에도 그를 지탱하는 것은 피아노에 대한 열정이었으며, 어떠한 체험도 그의 열정을 전복시키고 그를 저항의 전선에 내몰지 못했다. 이것은 성장의 역치 값으로 설명될 수 있다. 자아의 변화에 요구되는 높은 역치 값에 상응하는 체험이 없었기에, 스필만은 학살의 경험에서도 피아노만을 생각했던 것이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도 박민규가 마지막 삼미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을 선언하는 것은 그의 자아의 변화를 위한 높은 역치 값에 해당하는 체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그의 선언은 성장의 정체나 과거로의 회기가 아닌, 또 다른 성장이다. 이와 같이 모든 체험과 이해가 자아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우리의 성장이 단계적으로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미 살폈듯이 주관적인 측면에서 성장은 특정한 단계적 분류에 의해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지금까지 성장에 대해 살펴보았다. 성장은 단순한 육체의 이성과의 관계에서의 사랑에 앞서, 하나님ㅡ남자로서 가정된ㅡ과 아담과의 사랑이 있었다. 이것은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생식은 아내에게서 쾌락은 소년에게서’라는 인식이 있었듯이 동성애가 보편화되었다. 물론 위의 역사적 경험이 동성애를 ‘바람직한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실제로 이들 성적 소수자의 사랑에 대해 우리 사회는 닫혀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파네스의 인간의 제3의 성에 대한 분석)은 동성애의 바람직함의 문제를 떠나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이성애가 서로의 반쪽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성애 역시 자신의 반쪽을 찾아 해매는 ‘사랑’임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를 사랑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는, 소수에 대한 다수의 거부뿐만 아니라 에이즈(AIDS)로 대변되는 동성 간의 성에 대한 부정이 큰 몫을 차지한다. 이런 점에서 동성애 역시 금기적인 성의 모습이 사랑의 부정으로 이어진 사례이다. 어찌되었든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사랑에 동성애에 대한 부정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음은 틀림없다.근친과의 사랑은 동성애보다 더 오랜 시간 금기로서 자리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 중 아트레우스가의 비극은 근친간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호프만의 『악마의 묘약』의 ‘늙은 화가의 양피지’(Hoffmann, 2002: 357)에서 밝혀지는 프란체스코 가문의 비극 역시 근친과의 관계에서 유래한다. 또 뒤에서 살펴볼 『수업시대』에서도 근친상간은 비극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자매와의 결혼을 허용하고 있는 고귀한 민족들이 없었단 말입니까?”(Goethe, 1999: 2편 382)라는 하프 타인의 노인의 말처럼 근친간의 사랑이나 결혼이 이루어졌던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동성(同姓)간의 만남을 꺼리듯, 우리의 사랑에서도 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근친이라는 요소는 하나의 금기가 되고 있다.우리는 한편으로 사랑의 관계에서 성차Gender를 학습한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항대립적Binary부호는 사실상 그 둘 사이의 중간적인 위치을 한 뒤로, 그리고 사랑과 더불어 그에게 가장 큰 기쁨과 희망을 주었던 다른 것조차도, 즉 시인과 배우로서의 그의 재능조차도 심술궂고 비판적인 눈으로 모든 면에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1: 120-121)그가 어떠한 심리적인 흐름을 통해 예술, 시인과 배우로서의 모든 것을 공격하는지는 위의 인용에서 살펴볼 수 있으므로, 그것을 굳이 적지는 않겠다. 마리아네와의 이별에 자신의 변화로 대처한다. 예술적인 삶에서의 자신을 부정한 후 새로운 가치, 상인으로서의 삶으로 전환한다. 그러나 빌헬름은 그의 친구 베르너Werner와 달리 상인의 삶에서 즐거움을 발견하지는 못한다. 때문에 그가 언제든지 다시금 연극의 삶과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두고 있었다. 그 계기가 되는 것이 필리네이다. 필리네를 만난 것은 빌헬름이 상인의 의무를 띠고 여행을 하던 중 한 여관에 다다랐을 때였다. 필리네는 연극적 요소와 함께 빌헬름 앞에 나타난다.) 그녀 역시 실패한 극단의 배우이기도 했다.“그(註: 빌헬름)가 광장에 있는 어떤 여관에서 말을 내렸을 때 그 집안 분위기가 매우 흥겨웠다. 적어도 매우 활기가 도는 분위기였다. ... 줄타기 광대들, 공중 곡예사들, 그리고 손재주 요술쟁이들로 구성되어 있는 곡예단 일행이 처자들과 함께 투숙해 있었는데, 그들은 공연을 준비하느라고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 광장 측면에 있는 한 다른 여관의 창문이 열리고 늘씬한 몸매의 여자 하나(註: 필리네)가 나타났다.” (1: 138)필리네와의 관계에서 우리의 친구 빌헬름은 다시금 연극의 세계에 빠져든다. 배 위에서 역할극을 하고, 연극공연을 보러 다닌다. 심지어는 사람들을 모아 연극단을 조직하고 성에서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내기도 한다. 그러나 마리아네 때와는 달리 연극이 곧 필리네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때의 연극은 빌헬름의 교양 형성의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필리네와의 관계는 라이르테스와의 삼각관계에서 더 이상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백작부인을 만난 이후로
    인문/어학| 2010.04.27| 29페이지| 3,000원| 조회(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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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법총칙-유동적무효
    유동적 무효의 분석- 유동적 무효의 사례와 확정적 무효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1. 문제의 소재민법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전제로 하는 사법으로서, 헌법 제119조 제1항의 경제질서에서 도출되는 사적자치의 원칙을 기본 이념으로 한다. 이 원칙은 주로 개인들의 의사가 법률행위라는 수단에 녹아들어 달성되기에, 사적자치의 원칙은 법률행위의 자유 또는 계약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민법이 개개인의 내심의 의사가 발현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법률행위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모든 법률행위가 완벽한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법률행위의 불완전한 부분을 보완하여 표의자가 의도한 바를 밝혀내기 위해, 법률행위에는 법률행위의 해석이 함께 한다.그러나 법률행위의 해석을 통해서도 법률행위의 모습이 갖추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성립요건의 결여). 또는 법률행위의 모습은 갖추었으나 그 법률행위에 흠결이 존재하는 경우도 존재한다(유효요건의 결여). 전자의 경우는 법률행위는 불성립한 것이 되어 그 존재자체가 없는 것이나, 후자의 경우는 일단 법률행위는 성립한 것으로 보고 다만 민법은 무효와 취소의 효과를 부여하여 법률행위의 효력의 발생을 저지하거나 저지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 중 무효는, 취소가 표의자의 의사가 개입되어 법률효과의 발생여부가 결정되는 것과 달리, 법률행위는 원칙적으로 행위 후 표의자의 의사에 관계없이 효력은 발생하지 않는다는데 특징이 있다.유효요건의 결여에 무효의 효과를 부여할지, 취소의 효과를 부여할지는 입법정책의 결과이다. 헌데 무효의 효과를 부여하고 있는 법률행위에서 결여된 요건이 법률행위의 흠결에 본질적인 부분이 아닌 경미한 것일 경우까지 일률적으로 그 효과를 부인하는 것은, 민법이 전제하고 있는 사적자치라는 대원칙에 어긋날 여지가 있다. 즉, 무효의 법률행위에 있어 그 무효의 사유가 사후의 조치로 회복가능한 것일 때에는 법률행위의 효력의 발생을 허용하는 것이 사적자치의 요청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유동적 무효’이다. 행위는 본인의 추인이 있으면 유효(제117조1항)하다는 무권대리행위의 추인, 후견인이 대리행위 또는 동의를 함에도 후견법원의 인가를 받아야 유효하도록 규정(제1821조, 제1822조)하고 있는 경우를 유동적 무효로 해석하고 있다. 유동적 무효는 이현수)에 따르면 “사법과 공법에 있어서 사인간의 법률행위에 그 법률행위를 유효하게 할 또 하나의 요건으로서 제3자 또는 관청의 인가를 필요로 할 때 그 인가가 있기까지의 법률행위의 효력이 유동적인 상태”를 말한다고 정의된다. 그에 반해 김준호)는 “현재는 무효이나 추후 허가(또는 추인)에 의해 소급하여 유효한 것으로 될 수 있는 것”을 유동적 무효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정지조건부 법률행위, 즉 법률행위의 성립은 있으나 그 효과의 발생이 추후 조건의 성취에 달려있는 경우를 유동적 무효로 볼 수 있는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제3자나 관청의 인가를 통해 추후 유효를 인정하는 경우와 정지조건부 법률행위에서 조건의 달성의 경우, 법률행위의 성립 이후 일정한 요건의 충족에 의해 그 법률행위가 유효의 상태로 변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전자(이현수)의 정의에 따르면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그러한 효과를 낳는 정지조건부 법률행위는 법률에 의해 부과되는 ‘인가’를 요건으로 하는 유동적 무효와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정지조건부 법률행위를 유동적 무효에 포함하지 않을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생각건대, 정지조건부 법률행위는 당사자의 합의하에 일정한 조건의 성취에 의해 법률행위의 효과가 발생시키려는 의사에 기한 것이다. 이 의사에 기해 법률행위의 성립 후 조건이 성취되기까지 법률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나, 엄밀히 말해 이것은 민법이 정하고 있는 무효의 상태는 아니라 할 것이다. 즉, 민법이 규정하는 무효는 법률행위에 흠결이 있어 그 효력의 발생을 저지하려는 것이므로 법률행위 자체에 조건이 포함되어 유동적 무효와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고 하여 법률행위의 조건에 기한 이 상태를 무효라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현상적으로 동일한 사례로 미성년자의 행위(민법 제5조, 제6조, 제8조)의 취소와 추인(제143조), 무권대리행위의 추인(제130조이하)을 검토해보도록 한다. 그리고 민법상의 사례는 아니나 유동적 무효의 이론이 형성된 국토이용관리법상의 토지거래허가제 판례를 장을 바꾸어(3.) 살펴보고자 한다.2.2.2. 미성년자의 행위의 취소와 추인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독일 민법은 행위무능력자가 한 법률행위는 무효이나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으면 유효(BGB제108조)로 해석한다. 그러나 우리 민법은 이와 달리 제5조 제2항에서 무능력자의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없는 미성년자의 행위는 취소할 수 있는 것으로 하고 있으며, 후에 이를 추인(제137조)하여 유효한 법률행위로 확정지을 수 있는 것으로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이 경우 이를 독일의 무능력자의 행위와 같이 유동적 무효로 해석할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살피건대 취소할 수 있는 법률행위는 취소의 의사표시가 있을 경우 법률행위시로 소급하여 무효인 것으로 볼 뿐(제141조), 취소의 의사표시가 있기 전까지의 법률행위가 무효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경우는 취소의 의사표시가 있기 전까지는 유효한 법률행위로 인식되다가 취소에 의해 무효로 전환되는 경우로서 이것은 오히려 유동적 유효(schwebende Wirksamkeit)의 상태에 있다. 해제조건부 법률행위가 유동적 유효에 해당할 수 없음은 정지조건부 법률행위와 유동적 무효의 관계에서 살펴본 것과 같다. 문제는 제6조와 제8조의 경우 처분을 허락하지 않은 재산을 처분하였거나 허락을 얻지 않은 영업을 하여 그 법률행위가 무효가 된 경우, 후에 법정대리인의 추인에 의해 그 법률행위가 유효로 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유동적 무효의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물음에 있다. 생각건대 유동적 무효는 무효인 법률행위가 법률이 예정하고 있던 ‘인가’적인 요소가 충족되어 더 이상 무효로 취급할 필요가 없을 때 그 법률행위를 유효하게 해주는 것이므로, 본디 법률행위에서 그러한 인가의 여지가 법률상 존재하지 고서 했을 경우 새로운 법률행위로 본다고 적고 있듯이 이것이 모든 무효행위의 흠결의 치유를 전제하고 있지 않음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이것은 무효행위의 추인이 당사자의 의사에 의해 소급적으로 유효한 법률행위로 된다고 해석하여도 마찬가지이다.2.2.3. 무권대리행위의 추인민법 제130조에서는 대리권이 없는 자가 본인을 대리하는 행위임을 현명하고 행한 대리행위를 본인이 사후에 추인함으로써 그 효력이 본인에게 발생하게 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즉, 대리권 없는 자가 타인의 대리인으로서 행한 법률행위는 본인이 추인하기 전까지는 무효이나, 본인이 이를 추인하면 법률행위 성립시에 소급(제133조)하여 그 효력이 발생함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조항은 유동적 무효에 해당한다. 여기서의 추인은 법률행위의 흠결 부분을 미리 예상하고 이것이 본인의 추인의 의사표시에 의해 보완됨으로써 유효한 법률행위로 될 수 있음을 법률이 미리 예정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가 택한 유동적 무효의 정의에서 ‘제3자의 인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무효행위의 추인(제139조)과 무권대리행위의 추인(제130조)이 같은 추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유동적 무효의 ‘인가’에 해당하는 반면 다른 하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서, ‘인가’란 무엇이며 같은 추인을 다르게 해석하는 기준이 무엇인가가 의문으로 제기되기에 이른다.인가는 허가와 비교되어 이야기된다. 공법에서 허가가 법령에 의하여 일반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행위를 특정의 경우에 특정인에 대하여 해제하는 행정처분인 반면, 인가는 제3자의 법률행위를 보충하여 그 법률상 효력을 완성시켜 주는 행정행위로 설명된다. 이 둘의 근본적인 차이는 허가나 인가를 해주는 행정관청이 실질적 판단의 재량권이 있는가에 있다. 허가의 경우가 재량권의 범위 안에서 허가의 가부를 결정할 수 있는 반면, 인가의 경우는 형식적 요건이 갖추어지면 행정관청은 인가를 해줄 의무가 있다. 이것이 유동적 무효에 있어서 허가가 아닌 ‘인가’를 요하는 이유이다. 즉, 형식만 갖관리법 관련 대법원 판례【판결요지】 - 대법원 1991.12.24. 선고 90다12243 전원합의체 판결가. 국토이용관리법상의 규제구역 내의 토지에 대하여 허가받을 것을 전제로 체결한 거래계약의 효력은 유동적 무효이며, 이 경우 허가 후에 새로이 거래계약을 체결할 필요는 없다.나. 같은 법 제21조의3 제1항 소정의 “허가”의 법적 성질은 ‘인가’에 해당한다.다. 규제구역 내의 토지에 대하여 거래계약이 체결된 경우 쌍방 당사자는 공동으로 관할관청의 허가를 신청할 의무가 있으며 허가신청절차에 협력하지 않는 상대방에 대하여 그 협력의무의 이행을 소송으로써 구할 이익이 있다.라. 규제구역 내의 토지에 대하여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공동허가신청절차에 협력하지 아니하는 상대방에게 토지거래허가신청절차의 이행 및 허가가 있을 것을 조건으로 소유권이전등기절차의 이행을 명한 원심판결 중 허가를 조건으로 소유권이전등기절차의 이행을 명한 부분은 유동적 무효의 상태에 있는 법률관계에 대한 판단으로 허용될 수 없다.마. 위 매매계약은 그 허가를 받기까지 매수인의 대금지급이 없었음을 이유로 매도인이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 즉, 유동적 무효 상태이므로 이것이 유효임을 전제로 한 채무불이행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우리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유동적 무효의 이론은 토지거래허가제(국토이용관리법상)를 중심으로 형성되어있다. 위의 판결요지에서도 파악할 수 있듯이 유동적 무효의 상태에 있는 법률관계는 그 유동적 무효를 해소해 줄 인가적 행위가 없는 이상 무효의 상태에 머무를 뿐이다. 따라서 이것이 유효임을 전제로 한 판단이나 주장은 인정되지 아니한다(라. 마.). 그리고 이미 살펴보았듯이 유동적 무효에 있어 사후에 보충되어야 하는 것이 ‘인가’임이 중요하다는 것은 위 판결요지의 나. 항목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실제로 위 판례의 보충의견 중에서는 제21조의3 제1항의 “허가”의 의미를 ‘토지 등의 거래계약’의 성립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그 거래계약의 효력을 완성시키는 인가적 성질을 갖는 것이 아니라
    법학| 2010.04.27| 6페이지| 1,000원| 조회(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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