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09.16? 명량대첩?1597년 9월17일 전남 울둘목. 일본의 정예함선 133척이 바다를 덮었다. 예비함대 70척도 뒤를 따랐다. 조선 수군의 세력은 불과 13척. 누가 봐도 결과가 뻔한 싸움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100척 이상의 일본 배를 침몰시킨 조선의 압승. 한산대첩과 더불어 사상 최고의 해전으로 꼽히는 명량대첩의 개요다.?명량해전은 정유재란의 흐름을 뒤바꿨다. 10만명의 병력이 배를 타고 서해를 북상해 한양을 친다는 일본의 수륙병진책이 수포로 돌아갔다. 한양을 200여리 앞둔 직산과 보은까지 올라왔던 일본군이 남쪽으로 총퇴각한 것도 명량해전 패전 직후다.?조선 수군의 승전요인은 명장 이순신의 존재. 빠르고 급변하는 울둘목의 해류를 이용할 줄 아는 지략과 불굴의 의지, 경영자적 마인드가 승리를 낳았다.?경영인으로서 이순신 장군의 면모는 곳곳에서 빛난다. 직할부대만 통상 1만7,000여명. 피난민까지 수만명을 먹여 살리며 전투에 임했다. 충무공이 영국의 넬슨이나 일본의 도고 등 명제독들보다 몇 단계 위라는 점도 직접 함선을 건조하고 군량미를 조달하며 싸웠기 때문이다.?명량해전으로부터 10개월 뒤에 주력선인 판옥선은 85척으로 불어난다. 생산에서도 뛰어난 실적을 거뒀다는 증좌다. 당시 함선 건조비용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요즘 복원되는 거북선 건조비가 척당 22억~40억원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않은 '규모의 경제'를 운영했음을 엿볼 수 있다. 부상병과 피난민을 동원해 경작했다는 둔전(屯田)을 일구고 선박통행세를 거둬 군비에 충당했다. 탁월한 재정운영이 통산 23전23승이라는 불멸의 전적을 낳은 셈이다.?명량대첩 409주년. 경제가 어렵고 나라가 시끄럽다. 충무공 정신이 필요한 때다. '애국과 헌신, 치밀한 경영.'?/서울경제???명량대첩[ 鳴梁大捷 ]1597년(선조 30)에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명량에서 일본수군을 대파한 해전(→ 임진왜란).??1597년 일본군이 2번째 조선에 침입해 정유재란이 일어났는데, 일본군의 재침략이 있기 직전인 그으로 진입하자, 이순신은 명량으로 들어서면서 일자진(一字陣)을 형성해 적을 향해 돌진하면서 현자(玄字)·지자(地字)의 총통(銃筒)을 쏘았다. 그리고 이순신은 거제현령 안위(安衛)와 중군(中軍) 김응함(金應?) 등을 독려해 적진으로 돌진시켰는데, 적선 3척의 일본군이 안위의 배에 올라 격전이 벌어졌고, 이순신은 총통을 쏘아 3척을 불질렀다. 군사력은 일본이 압도적으로 우세했지만 이순신은 후퇴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며, 마침 북서류하던 해류가 점차 남동류로 바뀌어 상대적으로 조선군에게 유리해졌다. 이때 안골포해전에서 투항했던 왜인 준사(俊沙)가 적선을 내려다보고 일본의 수군장수 구루시마[來島通總]를 가리켜주자, 이순신은 그를 끌어올린 뒤 목을 베어 높이 매달았다. 이에 일본수군이 분노해 일제히 덤벼들자 이순신은 총통과 불화살을 쏘아대며 방향이 바뀌는 조류를 이용해 공격함으로써 일본 병선 31척을 격파했고, 일본수군은 달아나버렸다. 이 해전은 12척의 배로 10배 이상의 적을 크게 이긴 싸움으로 정유재란의 대세를 바꾸고, 이후 일본수군은 서해로의 진출을 포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임진왜란명량 대첩 개요1 이순신은 백의종군을 하며 권율밑에서 지내고 있었다.2 이순신을 대신해 삼도수군절도사를 맡게 된 원균은 섣불리 전투에 나선다.3 결국 원균은 기습을 당하고, 칠천량에서 아군군함을 한척도 못살리고 원균역시 전사한다.4 조정은 급하게 이순신을 삼도수군절도사로 임명한다.5 그러나 군함이 없다는 것을 알고, 조정은 육군으로 편제하기를 요구한다.6 그러던 찰나, 이순신은 배설이라는 장수를 통해 12척의 군함을 찾게 된다. ※ (배설은 당시 수군장수였으며, 칠천량 해전이 일어나기 5일전 12척의 자신의 함대를 가지고 탈영, 숨어 지내있었음)7 결국 이순신은 건조중이던 군함 한척을 마저 건조하여 13척의 전력을 보유하게 된다.8 1597년 9월 16일 13척의 이순신함대와 330여척의 일본군이 전투를 하게 된다.명량해전(명량대첩)에 대한 고찰-1전쟁사명량해전의명량해전(명량대첩)에 올라올 것입니다. 이것이 신이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비록 전선의 수가 적지만, 미진한 신(微臣)이 죽지 않았으므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自壬辰至于五六年間。賊不敢直突於兩湖者。以舟師之扼其路也。今臣戰船尙有十二。出死力拒戰。則猶可爲也。今若全廢舟師。則是賊之所以爲幸。而由湖右達於漢水。此臣之所恐也。戰船雖寡。微臣不死。則賊不敢侮我矣。이충무공전서. 제9권. 부록1. 행록(조카인 정랑(正郞) 이분(李芬)이 지음)이순신은 수군 폐지를 단호하게 반대하고 전장에 섰다. 그는 전라도 지역을 돌며 무기와 군사를 수습해서 숫자는 적어도 위력있는 함대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문제는 숫적열세에 대한 군사들의 공포심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8월 28일과 9월 7일 조선수군을 탐지하던 일본군의 공격을 격퇴했다. 국지전에서 몇 차례 승리를 거둔 것이었다.이와 동시에 이순신은 군사들이 가진 공포심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9월 7일에 벽파진에 접근한 일본군을 먼 바다까지 추격했다가 돌아온 뒤 이순신은 야간기습을 예상하고 여기에 대비하도록 명령하여 적의 공격을 저지하는 통찰력을 발휘해 장병들의 신뢰도를 높였다. 동시에 같은 날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면 군법이 따를 것이다'고 강조하여 명령에 대한 복종을 받기도 했다. 또한 중앙절인 9월 9일에 제주도에서 잡아온 소를 잡아 병사들에게 먹여 사기를 높였다.?그리고?이순신은 아군과 적의 상황을 판단하고 전장을 선택한다. 그 전장은 바로 명량-현재 해남과 진도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이었다. 물살이 빠르게 흐르면서-최소 9노트에서 최대 11노트까지도 빠르게 흐른다-소용돌이치는?곳이다. 명량(鳴梁)-순우리말로 울돌목-이라는 지명도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 물살이 내는 소리가 크게 나는 것이 물살이 우는 것 같다는 데서 나왔다. 현재는 이곳에 진도대교가 들어서고 진도와 해남 해안 일부에 간척사업이 이루어지면서 물살이 조금 약해졌다고 하지만 위에서 내려다 보면 여전히 명량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는 해류가 흐른다. 이순신은 왜 이런 곳을 전장으로에 있는 산성에 의거하여 일본군을 저지하는 전술-수성전으로 나갔거나 아니면 좁은 계곡을 택해서 이곳을 막는 병목작전으로 나갔을 것이다.?그러나 바다는 육지와는 다르다. 바다에서는?배 밑으로 해류가 흐르고 이것의 영향이 크다. 육지에서와는 달리 바다에서는 해협이 좁아질수록 물살이 빨라지고 적과 아군 모두 배를 운신하기 힘들어진다. 그 중에서도 명량은 무동력선이 전선이던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결코 좋은 곳은 아니었다.그럼에도 이순신이 이곳을 전장으로 고른 이유를 단적으로 말하자면,?이순신이 짤 작전이 그렇게 많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아군의 전력-병력 수를 포함한 수치-이 열세일 때 적과 정면충돌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병법의 상식이다. 그러나 일본군과의 교전을 피하면 일본군이 서해를 통과해서 한강으로 진격하는 것을?막을 방법이 별로 없었다. 유격전을 펼 수도 있지 않냐고 하겠지만, 유격전의 전제조건에는 강한 자생력-보급이 차단되어도 군대가 전투력을 보존할 수 있는 능력-과 적보다 우수한 기동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동력에 있어서?조선수군의 주력전함인 판옥선은 일본군선보다 느리면 느렸지, 절대 그보다?빠른 배가 아니었다. 자생력에 있어서도 조선군의 주력무기인 화포를 사용하기 위해서?지속적인?화약보급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다.결국은?어떻게든 일본군과 맞서서 이를 저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기 위한 최적의 선택은 험한 동시에 교통의 요지인 지점을 봉쇄한다는-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육지에서 중요 길목에 위치한 험지에?산성을 구축하고 적을 막는 것과 같은 전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다에서는 그런 장소가 명량해협이긴 하지만, 바다에서 육지의 산성과 같은 요새가 가능할까?이에 대한 답은 조선수군이 보유한 전함에 있었다. 바로 조선수군의 주력 전함인 판옥선이었다.-조선수군의 주력전함 판옥선의 모습. 판옥선은 선체가 튼튼하고 뱃전이 높아서 해전에서 하나의 성과 같은 역할을 했다. (사진 출처: 『New Vanguard. Fightin)을 설치하고 주위에는 방패(防牌)를 설치하며 용부(用夫)는 1백여 명이나 되어 엄연히 하나의 작은 성보(城堡)를 이룹니다.백사집 5권. 차자(箚子)편경자년(1600년)에 도체찰사로써 전라도에서 올린 차자(庚子, 以都體察使, 在全羅道箚)여기서 이항복이 말하고 있듯이, 판옥선은 승선 인원이 많은데다 배가 크고 높아서 '하나의 성보'-다시 말하자면 그 자체로써 하나의?수상요새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반면에 일본수군의 주력전함은 세키부네(關船)이다.주(2) 이 배는 선체가 가늘고 빠르지만, 문제는 선체가 판옥선에 비해 낮다는 것. 이러한 높이의 차이는 조선군에게 위에서 아래의 적을 공격하게 하는 이점을 제공하는 동시에 일본수군이 도선해서 백병전을 펴기 어렵게 만드는 방패이기도 했다.주(3)-세키부네(關船). 임진왜란 당시 일본수군의 주력전함이었다. 선체가 가늘어서 속도는 빨랐지만 조선의 판옥선에 비해 작았고, 이는 조선군과의 전력차이를 불렀다. 승선인원은 40명의 노꾼과 20여명의 조총수를 포함해서 70~100명 정도였다. (사진 출처: 『New Vanguard. Fighting Ships of The Far East(2)-Japan And Korea[AD 612-1639 begin_of_the_skype_highlighting??????????????612-1639??????end_of_the_skype_highlighting]』. Stephen Turnbull. Osprey Publishing. 2003)배가 큰 조선군이 하나의?성과 같은?판옥선을 중심으로 명량의 물목을 지키고 있으면 일본군은 이를 쉽게 통과할 수 없다. 더욱이 밑에 물살이 빠른 속도로 흐르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배를 붙여서 백병전을 펴기도 힘들다. 따라서 조선군이 물살이 역류일 때와 잠시 멈출 때 '판옥선이라는 요새'에 의거해 버티고, 순류가 흐를 때 친다면 조선군에게 승산이 있었다. 이순신이 9월 13일 일기에 '꿈이 이상했다. 임진년에 크게 승리할 때의 꿈과 거의 같았다'(난중일기 초고.다.
독일의 음식 문화독일에는 "사람은 빵만 먹고 살 수 없다. 반드시 소시지와 햄이 있어야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독일속담이 우스갯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 말만큼 독일의 음식문화를 잘 함축한 것도 없다.독일사람들에게 소시지와 햄은 빼놓을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음식이다. 대부분의 독일가정 식탁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른다. 그래서 독일에는 소시지와 햄의 종류가 상당히 많다. 우리가 독일 소시지의 대명사쯤으로 알고 있는 순대와 같이 굵고 기다란 모양에서부터 새끼손가락 굵기의 것까지 각양각색이다. 또 케첩과 카레가루로 구운 것에서부터 고기가 아닌 간을 이용해 만든 것에 이르기까지, 독일에서 만나게 되는 소시지와 햄의 영역은 크기와 모양, 만드는 재료, 먹는 방법 등이 무궁무진하다.어떤 음식이든 본고장의 맛을 능가할 만한 것은 없겠지만, 특히 독일에서 맛보는 소시지와 햄은 특별하다. 어떤 것을 먹든 육질 본래의 쫀득쫀득함을 느낄 수 있어 개인적으로 입에 맞는 것을 만나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것은 재료의 원맛을 중시하는 독일 음식문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햄이나 소시지의 끈기를 내기 위해서 낮은 급의 고기를 섞는다든가 화학조미료나 착색제 방부제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독일의 음식이라면 소시지와 햄, 감자나 거친 호밀빵과 맥주가 떠오른다. 물론 독일에 그런 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즉석 스파게티와 피자를 파는 이탈리아식당은 우리나라 동네 중국음식점만큼이나 인기가 높고, 미국식 패스트푸드점 맥도날드는 물론 두꺼운 빵에 구운 양고기와 야채를 끼운 터키식 패스트푸드점도 많다.하지만 음식문화 그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아직도 가정에 오르는 메뉴를 보면 삶은 감자나 거친 호밀빵과 소시지나 햄, 그리고 맥주와 "자우어크라우트"(잘게 썰어 식초에 절인 양배추)가 전부라 해도 지나침이 없기 때문이다. 독일사람들은 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이 그러하듯 먹는 것 또한 단순, 소박하다. 음식을 차릴 때도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른 그릇에 담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접시 하나에 모든 종류의 음식을 다 담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는다. 가능한 하나의 접시를 사용하는 것은 설거지를 하면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줄이겠다는 깊은 뜻에서다. 남기는 음식 없이 정갈하게 접시를 비우는 습성도 음식물쓰레기를 되도록 없애려는 환경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독일의 민중 축제(카니발)그리스도교 축제독일은 전통적으로 기독교적 역사를 지닌 국가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축제는 대부분 기독교적 행사로 이루어져 있지요. 그들은 기독교적인 행사로 1년을 꼬박 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코너에서는 독일의 기독교적 축제에는 무엇이 있으며 어떤 일을 하는 날인지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합니다. 축제들은 날짜 순으로 열거를 해놨습니다. 이 문서를 작성하기까지는 많은 책과 자료들의 도움이 있었는데요, 맨 밑에 표시를 해놨으니 보다 전문적인 자료를 원하시는 분들은 그 책들을 참고하세요.1. 사육제 (Karneval!!)카니발은 기독교 문화에서 비롯되었고 특히 예수의 수난과 부활 시기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여러 가지 방법과 방식으로 설명되어지는데, 먼저 카니발이란 말은 예수가 태어나기도 전인 로마 시대부터 있었던 말이라고 합니다. 말뜻 그대로라면 라틴어의 'Carne=고기'와 'val=격리'이니, '고기와의 작별'인 셈이지요. 아마도 로마시대부터 일정 기간 종교적인 이유로 고기를 먹지 않는 의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전통이 기독교로 이어져, 중세기부터 예수가 못박혀 죽은 다음 사흘 뒤 부활했다는 수난기간, 곧 부활절을 정점으로 40일 전부터 고기를 먹지 않고 근신하게 되는데 이처럼 금욕 기간에 들어가기 전에 실컷 고기도 먹고 양껏 마셔 두자는 의미의 주지육림의 대파티가 바로 카니발인 것입니다.또 다른 뜻으로 이 단어는 'Carrus navalis'에서 파생되었다고도 합니다. 그 구전은 봄과 다작을 상징하는 여신들에 의해 대기와 육지 그리고 물을 건너 이동되었는데, 그 단어로 인해서 다양한 카니발 행진에서 바퀴 달린 배와 바퀴 달린 수레로써 나타납니다. 카니발은 매년 11월 11일 11시 11분에 준비가 시작되어 다음해 2월 중순 혹은 3월 초의 월요일(장미의 월요일, Rosenmontag이라 함)에 정점을 맞이합니다. 사육제는 봄을 맞이하는 기쁨을 위한 게르만 민족의 행사가 기독교와 연결되어진 것입니다.이 축제를 남부독일에서berdonnerstag 또는 Weiberfastnacht)'이라 하여 하루 종일 완벽한 여인 천하가 됩니다. 여인네들이 대낮부터 마음껏 술을 마시고 거리를 떼지어 다니며 가위로 남근의 상징인 남자들의 넥타이를 보는 대로 자릅니다. 만약 한 남자가 자신의 넥타이를 잘렸다면 그 남자는 자신의 넥타이를 자른 그 여인에게 키스를 해주어야 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키스뿐 아니라 그 여인에게 멋진 저녁식사를 대접해야 하는 새로운 전통이 생겼습니다.여인들의 목요일이 되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 가장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백화점엔 아예 카니발 분장용품 코너가 해마다 특설되기도 하지요. 이 날엔 여인들은 지배권을 넘겨받고 남자들을 위협합니다. 이러한 행사는 남부독일 전역에서 행해집니다. Elsa 지방에서는 이 날 오로지 여인들과 소녀들만이 경제권을 쥐게 되는데, 만약 남자가 여자의 허락도 없이 대담하게 집에 들어오게 되면 여인들은 그들의 모자를 빼앗습니다. 이러한 풍습은 오래된 다작의 관습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남자보다 자연에 더 가까운 여인들로 자연의 모든 성장력은 표현되고, 믿음이 따라 젊고 아름답고 생기있는 여성은 자연의 재생산력을 촉진한다는 것이죠. 역사사대이전 시기에 처녀들은 그래서 경작지위로 쟁기를 끌었고 젊은이들은 암말을 끌고 실개천을 지나갔다고 합니다.(2) Rosenmontag(장미의 월요일)장미의 월요일은 거대한 카니발 행진의 한 날입니다. 이 날에는 사람들은 집 창문을 열어놓음으로써 천사가 천상의 성찬에서 무엇인가를 가지고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고 믿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은 집안의 방문 앞에서 긴장과 흥분을 안은 채 천사들이 날개를 스쳐 다시 날아가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그렇게 조용히 서 있었다고 합니다. 천사들이 돌아가고 난 후, 가족들은 식탁주위에 앉아 식사를 합니다.카니발에서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여인들의 목요일' 나흘 뒤인 '장미의 월요일'입니다. 라인 지방에서는 이 날엔 마인츠로부터 뒤셀도르프에 이다고 합니다.2. Palmsonntag이 일요일엔 'Karwoche(부활전의 전 주)'가 시작됩니다. 축성(Palmweihe)으로부터 이 일요일 카톨릭 미사가 시작된다. 축성은 환호의 반복을 의미하는데, 그 환호는 그리스도가 도시로 들어섰을 때, 예루살렘에서 메아리 쳤었습니다.3. KarwocheKarwoche, 즉 부활전의 전 주는 Palmsonntag에 시작되어 karsamstag에 끝이 납니다. 여기에 대한 명칭은 여러 가지 근원이 있는데, 첫 번째로는 'Große Woche(큰 주)'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 죽음 후 400년경에 그곳에서 일어났던 비밀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명칭은 로마교회언어로 사용되어졌고, 오늘날 아직까지 통례적입니다.두 번째로는 'Stille Woche(적막한 부)또는 Heilige Woche(성스러운 주)'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고통과 그의 죽음을 통해서 인간의 죄를 사하고자 했기 때문에 명칭되어졌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인간들에 의해서 밀고 되었기 때문이지요.세 번째로는 'Klagewoche, Reuewoche(참회의 주)또는 Trauerwoche(슬픈 주)'입니다. Trauer는 고지독일어로 Chara또는 Kara로 불렸기 때문에 이 Karwoche의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은 이 주간에 어떠한 힘겨운 일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또한 자유석방과 죄수, 수감자에 대한 특혜를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의미한 것은 춤도 축제도 사냥도 사격도 어떠한 소동도 안 된다는 것이지요.4. Gruendonnerstag이 날의 관례는 복음서에서 예수의 십자가 죽음 전날에 대해서 전해지는 것에 기인합니다. 이 날엔 재의 수요일에서 제외된 공공의 참회로써 속죄가 행해지곤 했다고 합니다. 참회는 엉엉 울기도 하고 눈물을 살며시 흘리며 흐느끼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엉엉 운다는 'Greinenden'에서 'Greindonnerstag'으로 변화하였고, 다음으로 'Grundonn계란에 갖가지 치장을 하기 등이 부활절 기간에 자주 등장합니다.부활절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카톨릭 축제입니다. 독일에서 부활절은 대체로 어린이의 축제이며, 그 행사는 사회적인 색채보다 가정적인 색채가 짙습니다. 많은 지역에서 부활절 일요일 저녁에 어린이들을 모닥불 파티에 데리고 갑니다. 이튿날 아침에 어린이들은 쵸콜렛 토끼를 받고 밤 사이에 '부활절 토끼'가 감춘 부활절 달걀 둥지를 찾기 위해 집안과 뜰을 뒤집니다. 또 독일의 여러 곳에선 아직도 고대의 관습이 남아 있는 것을 불 수 있습니다. 예컨대 함부르크에서는 오는 봄을 반기기 위해 모닥불을 피우고, 베스트팔렌과 검은 숲 지방 마을 사람들은 불타는 바퀴를 산언덕으로 굴러 떨어뜨리는데, 이것은 그 바퀴가 불탄 채 언덕 밑바닥까지 가면 풍년이 든다는 고대 신앙에서 나온 전통이라고 합니다.* Ei 와 Osterei (부활절 계란)부활절 계란은 기독교적 의식인데 이것은 바로 부활의 상징입니다. 계란의 껍질은 죽음과 무덤을 의미함으로써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서 살아있는 존재로 나아감을 의미하지요. 옛 관습에 따르면 달걀은 풍요함, 즉 다작과 영원한 삶의 회귀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계란은 단지 봄 뿐만이 아니라 추수날에도 사용됩니다. 계란은 종려나무다발과 수확제의 화환 안에 그리고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사용됩니다. 계란은 또한 영전에 바치는 제물로 인기가 있었고, 사람들이 이미 오래 전 계란껍질을 이용해 집과 교회의 기저에 사용했고 폭풍이 자주 위협하는 해안가에 지어진 집들에서도 계란을 사용했다는 사실에서 계란이 또한 마적인 힘이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계란은 어떤 경우에든지 게르만민족의 풍요한 다작과 힘의 원동력이었다고 합니다. 부활절에 계란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여러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봄의 제물로써 계란 이외의 어떤 다른 것도 계란을 대체할 순 없었지요. 계란은 제물로 바쳐진 살아있는 동물대신에 바쳐졌기 때문에 더 이상 살아있는 동물을 도살할 필요가 없어졌던 것입니다. 고대독일의되지요. 부활절 기간이 약 50일 정도 되는데, 성령강림절은 이의 마지막 일자에 해당됩니다. 녹색 옷을 입거나 치유 및 은총의 상징으로서 물은 성령강림제 기간에 많은 의미를 갖습니다. 많은 곳의 분수대가 치장되고 그 옆에서 축제가 열립니다.Pfingsten이란 명칭은 'Pentecostes'란 단어에서 파생되고 그 단어는 로마가 그리스로부터 넘겨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명칭은 '50번째 날'을 의미합니다. 즉, 부활절 이후 50번째 날이라는 것이죠. 성령강림절은 원래 고대연방의 추수축제였고, 좋은 추수에 대한 추수감사절이었습니다. 부활절과 성령강림제의 기간사이에 Erntefest와 Dankfest가 있었습니다.신연방의 성령강림제는 보편적인 의식 속에선 추수감사제를 의미합니다. 성령강림제는 무엇보다도 여름축제입니다. 성령강림제날 사람은 5월 1일날처럼 비슷한 놀이와 풍속의 형태를 지닙니다. 부분적으로는 5월 축제는 성령강림제날로 연기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숲에서 나무를 가져와 교회와 집을 신록의 가지로 장식을 하고, 민속관습에서 뿌리를 둔 모든 축제들은 야외에서 개최됩니다.* Pfingstgelage (성령강림제의 연회)성령강림제 연회는 성령강림제 때의 민중의 주연(Pfingstbier)과 흡사합니다. 빵 굽는 사람은 특별히 소녀들이 소년들에게 선물할 맛있는 성령강림제빵을 굽습니다. 그러면 소녀들은 그 빵을 소년들에게 선사를 하게 되는데, 빵을 받은 소년은 소녀를 성령강림제 연회에 데리고 가서 춤을 신청해야 한다고 합니다.연회는 예배 후 성령강림제 일요일에 벌어지게 됩니다. 연회에선 음식과 주류 그리고 춤을 마음껏 즐깁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주로 주부들이 약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럼으로써 남자들은 그녀들의 부엌을 약탈하여 그들이 함께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놀이가 이루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많은 마을에서는 성령강림제 연회와 민중의 주연에 쓰여질 은 그릇을 내놓습니다. 성령강림제 연회에선 반드시 소녀들의 기마싸움이 벌어집니다.또한 일요일에 남자들은 합니다.
독일맥주축제옥토버 페스트(Oktoberfest)는 독일 뮌헨에서 매년 15일 동안 개최되는 세계최대의 맥주축제로, 1810년에 당시 바이에른 왕자와 헤레자 공주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축제였다고 해요. 주민들이 천막을 세우고 충성과 존경을 표하자, 이에 대한 답례로 성대한 주민 축제를 열어주었다고 합니다. 이 축제는 5일에 걸쳐 진행이 되었다고 하구요. ?당초 한번에 그칠 계획이었던 이 축제는 농민단체가 이어받아 계속 열리게 된 것이 바로 이 옥토버페스트의 시초라고 합니다. 무척 역사가 깊은 축제죠??? ^0^ 1833년 뢰벤브로이와 호프브로이 등 뮌헨을 대표하는 6대 메이저 맥주회사들이 후원하면서 전 세계적인 축제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지요.매년 열리는 옥토버 페스트는 뮌헨 시장이 첫 잔을 드는 것을 시작으로 10월 첫째주 일요일까지 펼쳐지게 됩니다. 올해의 경우에는 9월 19일 부터 10월 4일 까지 176번째 옥토버 페스트가 열리고 있어요~ 축제 곳곳에 마련된 대형 천막속에서는 민속밴드의 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들도 열리고, 여러 개의 큰 맥주잔을 두 손 가득 들고가는 웨이트리스들도 대표적인 구경거리지요. 매년 750만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전세계에서 몰려와 신나는 맥주 축제를 즐기고 간답니다 ^-^독일에 갈 수 없다면, 우리 맛있는 독일의 대표맥주들과 한국에서 옥토버 페스트를 즐겨보죠!!! 그럼 여러분만의 옥토버 페스트를 위해 독일의 대표 맥주들을 소개! 지금부터 시작합니다~첫번째로 소개할 맥주는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에딩거 둔켈(Erdinger Dunkel)?입니다. 알코올은 5.6%정도로 보통 우리나라에서 마시는 맥주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좀 높죠??? ^^ 에딩커 둔켈을 드시기에 가장 맛있는 온도는 9~12도라고 해요. 이 맥주는 바이에른 궁전의 귀족들이 마시던 것이 1850년대 이후부터 일반인들에게 소개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에딩거 둔켈은 다크 몰트를 사용한 밀맥주로 맛과 향은 초콜릿을 떠오르게 해요~두번째로 소개할 맥주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매니아들을 보유하고 있는 맥주! 호가든(Hoegarrden) 입니다. 호가든은 상면발효의 밀맥주로 흰색을 띄며 효모를 병입해 약간 탁한 느낌이 있습니다. 거기에 감귤류의 껍질을 넣어 약간은 달고 시큼한 향이 난답니다.세번째로 소개할 맥주는 벡스(Beck's)인데요. 벡스는 독일에서 가장 수출량이 많은 맥주 입니다. 인공재료를 배제한 천연재료로 만드는 맥주로 유명하며, 맥주 순수령에 따라 보리, 홉, 물, 효모와 전통 양조 기술로 제조된 정통 독일 라거 맥주 입니다. 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젊음을 대표하는 최고급 품질의 프리미엄 맥주랍니다.
김일성의 선군정치와 북한의 1당독재 그리고 나의 생각.김일성의 선군정치란 군대를 앞세우는 정치의 배경이다. 또한 국방위원장 직함으로 국가를 통치하는 것이다.그리고 선군정치는 당의 총비서라는 직함 대신 국방방위위원장 이라는 직함으로 북녘을 통치한다.선군정치가 가능한 이유는 바로 미제와 일제의 압박에 의한 북한의 맞 견제 이다.미제와 일제가 손잡고 공화국을 압박하니 북녘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군대를 먼저 앞세우고 그다음 인민들을 앞세우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야 미제와 일제가 주춤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에서 군사 분야의 사업을 다른 그 어느 분야의 사업보다도 나라의 제일 중요한 사업으로 내세우고 국방력 발전에 최우선적인 힘을 기울이는 의미의 말이 있는데 이는 당연하다. 남한이 미국과 일본을 손잡고 가만두려고 하지 않으니 북한은 군대가 먼저인 정치를 어쩔 수 없이 택하게 된 것이다.그러다 보니 북녘의 인민들만 고생하고 먹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되는 것 같다. 인민들 보다 군인들의 식사가 우선인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만약 북한의 선군정치가 없어지려면 어떻게 하나 생각을 해보게 된다.우리나라는 관심을 더 갖고 군사적인 문제를 매일 문제 삼으려 하지 말고 북한의 인민의 생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다. 매일 잠수함이 어디를 움직였다 북한군의 행동이 이상하다. 이런 식으로 북한을 계속 주시하며 관찰 한다는 것을 보여주지 말고 오늘은 인민들이 반찬은 무엇 이였습니까? 오늘 인민들은 행복하신지요? 라는 말로 먼저 다가가고 일본과 미국은 더 이상 북한의 군사적인 문제로 정찰 등을 하지 않는다면 북한도 선군정치를 하지 않고 인민을 먼저 생각하는 선인정치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몇 명이서 한명을 괴롭힌다는 것은 정말로 그 사람을 이해 해줄 수 없는 행동인 것 같다.교수님께서 얼마 전에 리포트를 북한의 일당독재에 대해서 조사를 한번 해보시라고 알려주셨다. 북한의 일당독재의 권력 구조와 특징에 대해서 알아보는 도중에 북한의 헌법인 일당독재부분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