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시인으로서의 서정주우리나라의 국민 애송시로 사랑받고 있는 대표적인 시는 김소월의 「진달래꽃」, 한용운의 「님의 침묵」, 그리고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있다. 그 중 서정주는 단군 이래 최대의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으며 그가 작고한 2000년을 ‘이 나라 최고의 시인이 시 쓰기를 그친 해’라며 많은 사람들이 시인 서정주를 칭송하고 있다. 죽은 지 반년 남짓한 시점에 금관문화훈장까지 수여받은 우리 민족의 시인으로 칭송받는 대시인 서정주. 하지만 과연 그가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칭송받을 자격이 있는 것일까. 과연 그의 뛰어난 문학적 능력과 우리 문학사에 기여했던 공들로 그의 친일행적을 덮을 수 있을까.서정주 이외에도 작품으로서 친일적 행위를 드러낸 작가로는 이광수, 최남선, 김동환 등 많은 사람들이 있다. 서정주의 친일문학은 여타 친일문인들에 비해 양적으로 그리 많은 분량은 아닌데 대표적인 친일시인이라 하면 서정주가 떠오르는 이유는 아마도 서정주 시인이 그만큼 문학적 능력으로도 뛰어나며 많은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기에 더욱 배신감이 큰 것이라고 생각된다.중일전쟁 이후 당시 우리나라의 문학계에서는 일본이 동아시아 패권을 장악하면서 식민주의에 대하여 협력과 저항의 양극화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소위 친일파라 불리우는 일본에 협력하는 무리와 침묵과 망명으로 협력하지 않는 무리들로 말이다. 그렇다고 일본어로 시를 썼다고 해서 그들이 친일시인이라고 규명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편협한 언어민족주의일 뿐이다. 또한 일제 말에 사회단체의 참여여부와 창씨개명을 친일의 지표로 삼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친일이고 어떤 것이 당시 시대적 모색에 불과했던 것인지를 가르는 친일문학의 지표는 과연 어떤 것일까.친일문학은 외부로 부터의 강요가 아닌 자발성에 기초한 내적논리를 지니고 있다. 친일문학의 성격은 크게 내선일체론, 대동아 공영론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먼저 내선일체는 일본과 조선이 하나라는 뜻으로 황국신민화라는 미명 아래 신사참배, 지원병 제도, 일본어 상용, 창씨개명 등을 강요한 것으로 조선인이 더 이상 식민지의 백성으로 차별받지 않고 일본인과 같은 대우를 받는 제도로서 찬양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동아공영론은 중일전쟁 이후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가 등장하게 되고 여기서 대동아공영권의 논리로 확대되어 서구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남을 추구하는 것으로 미당 서정주의 친일행적은 대동아공영론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서구의 랭보와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았던 서정주가 동양의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하고 태평양전쟁 이후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우던 일본으로부터 서양의 그늘아래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면서 서정주는 또 다른 일본 제국주의에 몸담게 되면서 그의 친일역사가 시작이 된다.여린 숨을 푹푹 내쉬며내 귓가에서 자그마한 서운녀(西雲女)가일곱 살 사투른 고향 말씨로아이 하늘은 서울이레야,속삭이던 그 하늘이구나마을이랑 파랑 고추를 먹고기름때 절은 하이얀 옷을 입은뜨겁디 뜨거운 가슴을 안은 이들이산비들기 울던 노오란 길을가고 가던 진초록바로 그 하늘이구나아아 애달파라 아직은 감을 수 없는 눈과 눈이여잊을 수 없는 파아란 정해 저물어 밤이 되면별똥은 반짝거려아아 애달파지금 사랑하는 사람들스러져 나날이 하늘은 깊어만 가고여기 있는 건 내 덧없는 몸짓과 말뿐메아리와 파도소리와해맑은 좁은 마당엔꽃 축제 올리는쇠가죽 북소리만 은은해아아 날고프구나 날고 싶어부릉부릉 온 몸을 울려사라진 모든 것파랗게 걸린 저 하늘을힘차게 비상함은내 진작 품어온 바람!그의 친일시 중 하나인 「항공일에」이다. 이 시에서 서정주는 대동아공영론과 동양의 발견이 내면적으로 이어져 있음을 환기시키고 있다. 하늘로 날아가 영미의 적을 쳐부수는 특공대의 비행과 무구한 세계를 상징하는 전근대 동양의 삶으로서의 하늘이 같은 층위에서 제시되고 있으며 대동아공영권의 전쟁 동원으로 직결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에서 많이 쓰이는 ‘하늘’이라는 것은 서구의 근대 속에 취해 살면서 망각하였던 전근대 자연의 세계라고 한다. 또한 서양의 근대로 인하여 보지 못하였던 하늘을 일본이 서양과의 전쟁을 통하여 회복시켜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이 밖에도 이른바 '자살 특공대'로 알려진 무모하기 짝이 없는 자살 놀음을 숭고한 애국행위로 한껏 찬양하고 있는 시「마쓰이 오장 송가」등 당시의 전쟁 동원에 관하여 찬양하는 시들이 있으며 심지어 김환희의 「국화꽃의 비밀」이라는 책에서는 우리나라 국민애송시인 「국화옆에서」까지도 미당 서정주의 친일시라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바로 「국화옆에서」의 국화꽃이 노오란 꽃잎을 가진 황국(黃菊)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한 송이 연꽃을 보고서 끝없는 공간의 확장까지 바라봤던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서정주가 국화라 하면 일본 천황가의 상징이며 황국(黃菊)이라 하면 세계인들이 일본왕실을 떠올리는 상황에서 그의 시에 그것도 일제 식민지 시기에 사용된 노란색 국화의 표현이 일본왕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미당 서정주 본인이 제사장이 되기를 바랐고 신화적인 요소들을 중시하였던 점을 보았을 때 일본 신화 속 아마테라스를 국화에 비유했을 것이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다. 「국화옆에서」의 1연과 2연은 『일본서기』에 묘사된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탄생과정과 매우 유사하며 3연과 4연은 아마테라스 신화가 보여주는 여러 시상들과 역사적 사건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형상화되었을 개연성이 크다고 「국화꽃의 비밀」의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의 인물구조를 통한 당대 사회적 분석Ⅰ. 의 배경Ⅱ. 인물구조를 통한 분석1. 오선영 - 장태연 : 진보적 이념과 전통적 이념2. 오선영 - 신춘호 : ‘춤’을 통한 욕망과 서구화3. 오선영 - 한태석 : 윤리적 일탈로서의 불륜4. 오선영 - 최윤주 : 자본주의 속에서 나타난 여성의 사회진출5. 장태연 - 박은미 : 남성중심적 로맨스Ⅲ. 전통적 가치관으로의 복귀Ⅳ. 참고문헌Ⅰ. 의 배경1950년대,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적으로 변화를 겪게 된다. 미국문화의 도입은 변화의 가장 큰 축이 되었고 미국문화들로 인하여 국민들의 가치관이나 생활패턴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 때의 생활을 나타내줄 수 있는 대표적인 키워드는 ‘자유’이다. 이전의 통속적이고 억압적이며 특히 여성들에게 있어서 수많은 제약이 있었던 과거에 미국문화의 도입을 통하여 ‘자유’라는 매개체로 인하여 여성들, 특히 일정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신지식인이 되어버린 여성들에게는 자유라는 것이 기존의 여성들을 탈바꿈시킬 수 있는 매개라고 생각하였다. 은 이러한 당시 세태와 관념들을 수용한 영화로서 자유가 결혼한 당대 여성지식인들을 ‘자유부인’으로 만들고,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가 도덕적 일상을 넘어서 일탈의 기제로 작용하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표면적으로 1950년대의 공적인 담론에서 비난의 대상이었던 은 지식인 남성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고 여기에 반공주의적, 민족주의적 수사가 결합되어 ‘자유부인’은 ‘중공군 50만 명보다 무서운’ 해독을 끼치는 존재), 아메리카니즘으로 인한 윤리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으로 규정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반응은 ‘남성’의 욕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거시적으로 보면 여성을 통제함으로써 윤리적 혼란을 딛고 전후의 국가 재건의 욕망과도 결부되어 있고) ‘미국적 근대’ 지향의 제국주의 프로젝트에 대한 민족주의자 남성들의 거부감)과도 관련되어 있기도 하다. 이렇게 ‘자유부인’을 받아들이는 남성들의 거시적인 차원의 욕망을 에 대한 연 에 대한 논의들을 의 등장인물들간의 구도를 통하여 살펴볼 것이며 새로운 관점에서의 분석을 통하여 을 되짚어 보도록 하겠다.Ⅱ. 인물구조를 통한 분석1. 오선영 - 장태연 : 진보적 이념과 전통적 이념오선영과 장태연은 이 소설 혹은 영화의 중심 인물들로 오선영은 ‘자유부인’이라는 희화화된 이름이 나타내주는 중심 인물이다. 사회적으로 덕망이 있는 교수의 아내이자 한 가정의 어머니로 초반에는 전통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보수적인 집안의 한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오선영은 근대문물과 자유주의의 도입으로 인하여 자유부인으로의 변화하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반면 장태연은 서구문물의 도입으로 근대화되고 있는 사회 속에서 국어학자라는 전통적인 설정을 통하여 근대화와 대조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속의 대표적인 표상을 보여주고 있다. 식사, 신문읽기, 책보기 근대화된 아내가 바라는 다정함은 거의 갖추지 않은 인물로 봉건사회의 남성들과 같은 윤리의식을 가진 인물이다.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장태연에 비하여 오선영은 신식 문물도입과 진보되던 사회 속에서 그동안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자유부인이라는 모습으로 변모해간다.전후 사회의 키워드였던 자유는 그 범위와 한계를 가늠할 수 없었던 용어였으므로 자유라는 이름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시대였다. 여성지식인들 중 다수는 합법적인 결혼을 하고 경제적인 여유와 남편의 배려로 가정과 사회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자유를 가지게 된다. 출입의 자유를 얻은 부인들은 자유부인이라고 호명되었으며, 자신들을 가정이라는 공간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가정의 범위를 벗어난 사적인 공간을 만들어서 일상의 영역을 확장시키는데) 오선영이 바로 여기에 속하는 것이다.오선영이 자유부인으로서의 대표적인 인물로 부각되면서 보여주는 여성의 사회진출을 성적 방종과 도덕적 타락, 일탈과 동일시함으로서) 에서는 여성의 사회진출의 위험함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으로 보았을 때 여성의 사회적 진출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여성의 사회진출은 전쟁으는 자유부인으로 희화화된 오선영을 아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라는 틀 속에서 진보를 이야기하고 있는 은 그 결론에서 오선영이 가정으로 회귀하면서 지배적인 가부장적 이념을 보여주면서 마무리된다.소설에서는 ‘한글간소화 문제’를 두고 국회의사당에서 연설을 하는 남편의 모습으로 인해, 영화에서는 아이라는 매개체로 인해 오선영은 그동안의 과거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면서 장태연이 표상했던 전통적인 가정으로의 회귀를 끝으로 한다. 결국 전통적 가부장제로의 복귀가 성도덕의 문란과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근절할 수 있는 ‘윤리적인 세계’로 규정되고 있는 것이다.)2. 오선영 - 신춘호 : ‘춤’을 통한 욕망과 서구화오선영은 옆집에 거주하는 신춘호라는 인물과 댄스라는 매개체로 인하여 가까워진다. 댄스는 서구식 풍속의 대표적인 표상으로 오선영이 더욱 근대적이고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인물에 가까워지게 돕는다. 여성지식인들이 가정에 귀속되어 부인이라는 이름을 얻고 더 나아가 민주가정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건설하려는 욕망을 가진 남편들의 배려로 자유를 얻게 된다. 오선영도 지식인 남편을 둔 아내들의 모임인 화교회에 소속되면서 자유부인이라는 이름을 얻고 자신의 모든 행동을 자유와 연관시켜 의미화시킨다. 춤은 민주사회의 필수품이었으며, 화교회 회원으로서 실천해야 하는 첫 번째 일이었다. 춤은 화교회 회원의 당위성을 상징하는 기호였다.) 신춘호는 서구화에 있어서 이미 앞서 나간 인물로 그려지는데 춤이라든지 일상어에서의 영어사용, 개방적인 관념들로 인하여 드러난다. 근대적으로 변화하는 오선영과 이미 근대화가 되어버린 신춘호의 만남은 오선영이 그에게 춤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더욱 가까워진다.신춘호는 트로트의 기본 스텝을 밟기 시작하였다. 오선영 여사는 열심히 스텝을 따라갔다. 스텝을 밟으면서도, 마음은 형용할 수 없는 감격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성의 품에 안겨 보는 것도 감격적인 사실이거니와, 자기 몸에 대해 새로운 가치를 발견했다는 것도 또하나의 감격이었다. 남편은 십년 동안이나선영의 성적 일탈을 부추기는 환상의 매개물이자 성의 자각에 눈을 뜨게 해주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당시의 춤은 과 1950년대 박인수 사건)을 통하여 건전한 사교적인 댄스가 아닌 불순하고 비윤리적인 활동으로 취급받았으며 당시 사회풍토를 오선영과 신춘호의 사이에 빗대어 에서는 풍자하고 있다.3. 오선영 - 한태석 : 윤리적 일탈로서의 불륜여성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오선영은 양품점에서 근무를 하고 양장을 입는 순간부터 근대화된 여성의 표상이 된다. 오선영은 서구 문물도입을 확연히 드러내주는 양품점에서의 직업활동을 통하여 여성으로서의 욕망과 자본주의 속에서 경제적인 욕구를 충족시켜나간다. 자본주의적 교환경제체계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호칭인 마담으로 불리우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오선영의 변화는 짙어지는 화장과 양장으로 시각화된다. 여성의 몸을 가부장적 권력구조와 자본주의의 복잡한 작용이 가시화된 장이라고 할 때, 교양과 품위를 지닌 선영의 몸에는 일정한 사회적 경제적 상징적 가치가 부여되며 결과적으로 질서의 재생산을 위해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양품점 소유주인 한태석은 오선영에게 고가의 선물을 주면서 그 둘의 관계를 진전시켜나간다.한태석의 말은 들을수록 커다란 도량이 엿보였다. 그것이 사나이의 도량이 아닐까 싶었다. 한태석에 비기면.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홀소리 닿소리밖에 모르는 남편은. 어린아이가 아니면 바보 멍텅구리 같기도 하였다.(1권. 105쪽)오선영과 신춘호의 사이에서 댄스를 매개로 한 관계발전과 오선영을 변화시킨 요인이었다면 한태석과 오선영의 관계에서는 한태석을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이라는 매개와 불륜을 통하여 그들의 관계가 극에 치닫는 모습을 보여준다. 봉건적인 가정의 표상이자 가부장적인 남성의 대표인물인 장태연과 한태석을 비교하며 오선영은 한태석이 자신의 욕망을 표출할 수 있는 탈출구로 여기기 시작한다. 유부녀인 오선영과 유부남인 한태석의 관계는 애인이라는 명칭을 통하여 더욱 가까워지고 전통적인 윤리의 틀에서 벗어남을 나타내며 결국은 서오선영 - 최윤주 : 자본주의 속에서 나타난 여성의 사회진출‘자유부인’ 오선영이 봉건적인 가정의 평범한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변화를 제시한 가장 영향력 있는 자로 최윤주라는 인물이 있다. 오선영과는 달리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우고 남편의 외도에도 무심한 반응을 보이는 최윤주는 이미 전후의 급격한 변화를 내면화한 인물이다. 은 이렇듯 전후의 상황을 낯설지만 매혹적인 여성적 소비의 세계로 재현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윤주가 친구들의 화려한 차림새에 대하여 남편의 선의가 아닌 스스로 돈을 벌어 치장한다는 말을 함으로서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졌으며 그것이 가정경제를 돕는다는 명분 외에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는 측면이 있음을 시사한다.오선영과 최윤주를 비교하였을 때 최윤주는 오선영보다 훨씬 몇 발자국 앞서나간 근대적인 여성으로 비춰지며 그녀의 사업을 통한 경제적인 기득권과 오선영보다 먼저,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전후사회 속에서 당시에는 금기시되었던 탈윤리적인 일탈을 일삼는 여성으로서 나타난다.끊임없이 오선영에게 근대적 여성으로서의 자극을 줌으로써 오선영을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내는 최윤주는 간통으로 사회적 망신을 당하고,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어 댄스홀에서 음독자살을 통하여 생을 마감한다. 오선영이 가정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을 남긴 것과 달리 그녀는 죽음에 직면하는 것이다. 이것은 윤주의 경제활동이 선영보다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으로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 구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드러낸다. 최윤주를 자살로 몰아넣음으로써 여성들에게 근대화는 불가능하다는 근대화의 기만성을 드러내며) 최윤주가 강도 높은 처벌에 이르게 된다고 볼 수 있다.5. 장태연 - 박은미 : 남성중심적 로맨스‘자유부인’ 오선영이 집 밖의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하여 신춘호나 한태석과의 만남을 가졌다면 장태연은 타이피스트로 일하고 있는 박은미에게 애정을 느낀다. 서구적인 패션을 하고 있지만 성적(性的)으로 보수적인 박은미의 모습은 지식인 남성의 욕망을 충분히 반영한 것이다.) 오선힌다.
자아와 세계의 소설적 대결에 관한 시론Ⅰ. 서론조동일은 「자아와 세계의 소설적 대결에 관한 시론」을 통하여 문학의 장르 이론을 설명하고 그 중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하여 규정하고자 하였다. 이전의 길거리 잡담을 뜻하는 街談巷語 道聽塗說이나 서구의 romance, novel은 그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으며 그것으로 오늘날의 소설을 규정짓기는 어렵다. 소설이 架空構虛之說에 의하여 진실성을 추구하는 작품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기는 하였으나, 그 견해 또한 미흡하여 소설이 무엇인지에 관한 문제해결의 어려움에 봉착하였는데 조동일은 소설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는 이유를 ‘장르이론의 허약’이라 칭하면서 장르이론을 구축하였다. 지금부터는 ‘바리공주’ 설화와 현대소설 황석영의『바리데기』를 조동일의 장르이론적으로 접근, 분석을 통하여 「자아와 세계의 소설적 대결에 관한 시론」에 대한 고찰을 해보도록 하겠다.Ⅱ. 본론1. ‘자아와 세계의 대립’을 통한 「바리공주」설화의 장르론적 구분조동일은 理氣哲學으로부터 논의를 출발하여 모든 존재를 陰陽理氣의 대립으로 파악하였다. 사람과 만물의 개념 정립으로부터 시작하여 心ㆍ身ㆍ人ㆍ物의 관계를 통하여 자아와 세계의 대결에서 자아에 해당하는 ‘나’라는 주체를 설명하였고, 자아가 그 대상과 합치되는 경지를 말하는 物我一體를 통하여 자아와 상대방의 ‘대립’을 문제 삼으며 상대방을 지칭하는 世, 世間을 ‘世界’로 일반화하였다. 또한 氣는 외부적인 원인이 아닌 그 속에서 대립을 극복한다는 대립의 일반이론에 관한 기본적인 논리를 통하여 格物致知와 함께 모든 것의 논리가 대립의 논리라는 것을 설명하였고 이를 문학작품에 빗대어 최종적으로 ‘자아와 세계의 대립’을 구축하였으며 이것은 조동일 장르이론에 있어서 주축이 된다.그러므로 ‘자아와 세계의 대립’이라는 잣대를 통하여 다음의 ‘바리공주’ 설화가 서정, 교술, 서사, 희곡 중 서사에 속하는 이유를 조동일의 이론으로 접근해 보고 신화, 전설, 민담 중 어느 장르종에 해당되는 가에 대한 논의를 해보도록 하겠다.옛 한국의 어느 왕이 있었는데 혼례를 일년 미루어야 아들을 낳고, 길하다는 예언을 무시하고 결혼한 탓에 아들을 낳지 못하였다. 딸만 계속 낳다가 마침내 일곱째도 딸로 태어나자 버렸다. 바리공주가 태어나자 왕이 공주를 버려, 바리공주는 한 노부부에 의해 구해져 양육되었다. 후에 왕과 왕비가 죽을 병이 들어 점을 쳐 보니 저승의 생명수로만 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여섯 공주 모두가 부모를 위해 저승에 가길 거부했는데 바리공주가 이를 알게 되어, 바리공주는 자신을 버린 부모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저승에 가겠다고 하였다. 바리공주가 저승에 가 약이 있는 곳까지 갔는데, 저승의 수문장이 바리공주와 일곱 해를 살고 일곱 아들을 낳아야 약을 주겠다고 하였다. 바리공주가 그 조건을 채운 뒤 수문장과 일곱 아들과 함께 약을 갖고 이승에 돌아오는데, 궁에서 나오는 왕과 왕비의 상여와 마주쳐, 가져온 영약으로 되살렸다. 왕이 바리공주에게 물어 바리공주의 남편이 된 저승의 수문장은 장승이, 일곱 아들은 칠원성군이 되었고 바리공주는 이러한 연유로 왕에게 자청하여 한국 무당의 조상이 되었다.)위의 ‘바리공주’ 설화가 서사 장르류에 속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자명한 것이나 조동일의 장르이론을 통하여 접근해보도록 하겠다. 서사 장르류로 구분짓기 위해서는 먼저 조동일 식의 서정, 교술, 서사, 희곡에 대한 정의와 차이가 분명해야 할 것이다. 조동일은 작품내적 자아와 작품내적 세계, 작품외적 자아와 작품외적 세계의 존재 유무와 자아 또는 세계 어느 한쪽으로 귀착되었는지, 자아와 세계가 대결하는지의 여부를 통하여 서정, 교술, 서사, 희곡으로 장르를 구분하였는데, 작품외적 세계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는 ‘세계의 자아화’로 설명되는 서정, 작품외적 세계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자아의 세계화’로 설명되는 교술, 작품외적 자아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자아와 세계의 대결인 서사, 작품외적 자아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는 자아와 세계의 대결인 희곡 등이다.‘바리공주’ 설화에서의 가장 큰 서사적 특징은 작품내적 자아인 바리공주와 작품내적 세계에 속하는 그녀를 버린 아버지, 그리고 딸보다 아들을 더 귀하게 여기는 남아선호사상, 약을 구하기 위해 가게 된 저승 등 많은 수의 세계와 대립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리공주’ 설화가 자아와 세계가 대립 한다는 사실로 인하여 서정이나 교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서정이나 교술처럼 자아 또는 세계 중 어느 한쪽으로 귀착되는 모습 또한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바리공주’ 설화는 서사 혹은 희곡으로 볼 수 있으나 작품외적 자아인 작가의 전지적 작가 시점을 통하여 이야기가 진행되며 현재형이 아닌 과거형으로 진행된다는 특성으로 보아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는 희곡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바리공주’ 설화가 신화, 전설, 민담 중 어느 장르종에 속하는지 또한 알아 볼 필요가 있겠다. 신화ㆍ전설ㆍ민담은 서사 장르에 속하여 자아와 세계가 대결하는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각기 독립적인 장르종으로 존재한다. 신화는 자아와 세계가 대결하면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가져 작품 내적인 것이면서 작품 외적인 것이기도 하며 자아와 세계에 두루 통용될 수 있는 포괄적인 질서인 신화적 질서를 구현하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전설은 자아와 세계가 세계의 우위에 입각하여 대결하면서 자아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세계의 경이인 전설적 경이를 보여준다고 하였으며 민담은 세계의 사정에 구애되지 않고 작품외적 세계의 구체적인 모습을 빌지 않는 가공적인 설정을 통하여 자아와 세계가 자아의 우위에 입각하여 대결하면서 자아의 가능성인 민담적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하였다.작품 내적자아와 작품 내적세계의 대립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는지, 아니면 자아와 세계 중 어느 한 편에 우위를 두고 있는지가 조동일의 이론을 통한 신화, 전설, 민담 구분의 잣대가 된다. 전설이 사실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세계의 우위에서 자아와의 대결을 보여준다면 위의 ‘바리공주’ 설화에는 구체적인 사실적 근거가 드러나지도 않을뿐더러 세계의 우위에 입각한 대결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자아인 바리공주가 세계와의 대립 속에서 부모를 살려내는 약을 구해옴으로써 자아의 우위에 입각하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아의 우위에 입각한 민담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야기는 자아의 우위에서 세계와의 대결로 끝이 나지 않고 작품 내적자아인 바리공주와 남성이 왕위를 전승하고 남아를 선호하는 남성중심사회를 보여주는 세계와의 대립 속에서 바리공주가 일곱의 아들을 낳으면서 남성 중심 세계에 종속하게 되면서 자아와 세계가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는 신화의 장르종으로서 위의 설화를 신화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승에서 약을 구해오는 바리공주의 신화적 능력과 장승, 칠원성군, 한국 무당의 조상이라는 신화적 질서를또한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2. 현대소설의 장르론적 분석 : 황석영의『바리데기』‘바리공주’ 신화를 차용하여 환상과 현실은 넘나들며 21세기 현실을 그려낸 소설로서 전쟁과 국경, 인종과 종교, 이승과 저승,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넘어 신자유주의 그늘을 해부하는 동시에, 분열되고 상처받은 인간과 영혼들을 용서하고 구원하는 대서사를 그려낸 소설인 황석영의『바리데기』를 조동일의 ‘자아와 세계의 대결’이라는 이론을 통하여 분석해보고자 한다.조동일은 신화, 전설, 민담에서 온 유형구조를 소설화하는 현상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서술하였다. 소설『바리데기』는 ‘바리공주’ 신화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기 때문에 신화적인 특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조동일은 소설을 자아와 세계의 상호 우위에 입각하여 대결을 하면서 소설적 진실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규명하였다. 작품내적자아인 소설의 주인공 바리는 소설 속에서 수많은 작품내적세계와 대립을 한다. ‘바리공주’ 신화와 마찬가지로 남성중심의 사회라는 세계와의 대립 속에서 누구의 우위라 할 것 없이 우리의 전통적인 사회을 읜 진실성을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리는 전쟁이라는 세계 속에서 버텨내어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주리는 전고 국경을 벗어나 인종과 종교의 세계를 뛰어넘은 사랑을 보여주리는 한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자 작품내적자아인 바리와 남성중심의 사회, 전쟁, 인종, 종교, 사후세계 등의 다수의 작품내적세계의 대결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대결로 인하여 자아가 세계에 대하여 승리를 한다던가, 세계가 자아에 대하여 승리를 한다고 해서 서로가 개조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설『바리데기』는 자아와 세계가 상호 보완적인 ‘바리공주’ 신화와의 차이가 드러난다.
해방이후, 그리고 50년대의 삶Ⅰ. 서론Ⅱ. 본론1. 해방직후1.1. 광복의 기쁨1.2. 미군정 시기의 개막2. 전쟁당시2.1. 피란2.2. 학살3. 전쟁이후Ⅲ. 결론Ⅳ. 참고문헌Ⅰ. 서론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세계경제에서 15위권 내외에 드는 경제대국으로서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 사이에서 중심의 자리에 서기까지는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이 비일비재 했다. 우리나라는 일제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국가로 전락하기도 했으며, 한 민족 간의 뼈아픈 6. 25전쟁의 역사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세대가 공통적으로 겪은 가장 충격적인 공적 사건이 8. 15 해방과 6. 25 전쟁이라 한다. 그 사건들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고통을 받고 무엇 때문에 좌절했는지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감히 알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부터를 해방직후라고 볼 것이며, 6. 25전쟁이 발발한 1950년부터 1953년의 휴전협정에 이르기까지를 전쟁 당시, 그리고 휴전협정의 1953년 이후의 50년대를 전쟁이후로 분류하여 시대적 범주를 정할 것이며, 당시 우리나라 민중들의 삶을 중점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본론1. 해방직후1945년 8월,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군에게 항복을 하였고 우리 민족들의 오랜 투쟁을 통한 결실을 맺어 일제치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던 일제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것이었다.1.1. 광복의 기쁨라디오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1945년 8월 15일 일본천황이 항복방송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국민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고 하루가 지난 8월 16일이 되어서야 광복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거리에는 여기저기 흰 바지 저고리 차림의 아저씨들이 떼를 지어 “좋다! 좋아!”를 연발하면서 춤을 추며 거리를 행진하기도 하였고 온 마을 사람들이 만세를 외치고 아이들은 들어보지도 못했던 애국가를 다함께 부르며 시가행진을 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장기는 태워버리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태극기를 만들었으며 태극기가 없는 사람은 일장기에 청색을 칠하여 태극기를 만들어서 들고 다니기도 하였다고 한다.학교에서는 그 동안 쓰지 못했던 한글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였고 학생들뿐만 아닌 모든 이들이 한국말을 사용하고, 한글을 배우고, 창씨개명으로 바뀌었던 본인의 본래 이름들을 찾아갔다.약 40년간에 걸쳐 일제 치하의 식민지로 고통을 받던 사람들에게 광복은 엄청난 기쁨이었을 것이다. 나라의 말과 본인의 이름을 빼앗기고 새로운 언어를 익혀야 했으며, 일본의 식민지라는 이름하에 힘들게 생활해 왔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 고통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안겨주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1.2. 미군정 시기의 개막광복의 기쁨도 잠시, 가혹한 압제로부터의 돌연한 광복은 과격한 흥분상태를 가져왔고 수많은 정당과 사회단체가 통일적 핵심체 없이 난립하게 되었고) 국내에 있어서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의 대립이 커지고 있었다. 그 때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의 남과 북을 갈라 점령하였으며 ‘신탁통치’라는 명목 하에 군정을 실시하였고 한국은 타의에 의해 분단된 채 상이한 이념과 체제를 수용하기 시작했다.당시 민중의 지도자들은 이념의 고집과 세력 다툼에만 눈이 멀었고 민중들은 “물에까지 스며든 미국냄새”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미국에 대한 반발심을 나타냈다.) 뿐만 아니라 남한에 점령해 있는 미국인들에 대한 불만이 날로 늘어가기 시작했고, 친일파와 마찬가지로 친미파라는 단어가 발생하기도 했고 국민들의 소극적 저항까지 일으키기 시작했다.)우리나라 국민들은 일본에게 해방된 이후에도 주권을 쟁취하지 못하였고 일장기가 휘날리는 총독부에서 일군이 미군에게 정권을 이양하는 모순을 지켜봐야만 했다. 40년이라는 일본 식민지의 굴레에서 벗어나자마자 신탁통치라는 명목 아래 또 다시 미국의 통치를 받게 된 것이다. 그들이 당시 가장 갈망하던 것은 독립이었다.2. 전쟁당시대한민국은 1948년 독자적인 정부를 수립하였고 남한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은 모두 철수하여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또한 미군에게 군사력을 의존한 관계로 전쟁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반해 공산 독재 정권을 수립하고 군사력을 키워 나간 북한은 대남 무력 적화통일을 호시탐탐 노리던 중 1950년 6월 25일 새벽, 소련의 도움을 받은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기습 남침하였고 그로 인해 당시 국민들의 전쟁으로 인한 고통이 시작되었다.2.1. 피란6.25전쟁 당시의 피란을 대개 1차 피란과 2차 피란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차 피란은 정치적 피란, 2차 피란은 생존을 위한 피란으로 보는데 기록을 보면 144만 6,000명의 서울 시민 중에서 40만 명 정도가 수도가 인민군에게 점령되기 전에 남쪽으로 피란을 갔다고 한다.) 1차 피란 당시 생업 도모를 위하여 피난을 가지 않는 길을 택하기도 하고, 미처 피란을 가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반면 북한의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나 금전이나 계층적으로 상당한 우위에 있는 경우 그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 피란을 결심하고 떠났다고 한다. 2차 피란은 국군이 서울에 들어왔다가 다시 후퇴하는 시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인민군의 남하를 피하거나 인민군이 아닌 미군의 폭격을 피해 생존을 위하여 피란을 떠났다. 1차 피란과는 다르게 2차 피란에서는 생존을 목적으로 한 일반 민중이 대부분을 이루었다.피난을 떠난 피난민들의 생활은 아주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열차의 꼭대기도 서슴지 않고 목숨을 걸며 올라탔고 꽁꽁 언 도시락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기도 하였다. 산으로 피란을 떠난 피난민들은 사람이 너무 많아 발디딜 틈이 없었고 판자집이나 토굴같은 움막집을 짓고 생활을 하였다. 여름에는 뙤약볕 아래의 노천교실에서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공부를 하기도 하였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의, 식, 주인데 그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피난민들은 매우 열악한 생활을 하였다.2.2. 학살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일반 민중들이 북한군의 사주를 받았다며 끌려가 학살을 당하는 장면을 여러차례 볼 수가 있다. 이처럼 6.25 당시 아무런 이유 없이 공산군, 혹은 남한군으로 몰려서 떼죽음을 당한 일이 빈번했다. 뿐만 아니라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또한 우리가 전쟁 중에 겪었던 참혹한 우리의 현실 중 하나이다. 이것은 적이 활동하는 지역의 민간인들까지 모두 적으로 간주하여 무차별적으로 살해를 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노근리 학살사건이 있으며 이 밖에도 익산역 폭격, 경북 예천군 산성리 폭격, 경남 사천시 조장리 폭격 등등 상당한 수의 미군에 의한 학살이 이루어졌다. 브루스 커밍스는 그 당시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좌익이라는 미군의 판단 때문에 이러한 양민 학살이 보편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민중들은 그저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숨고 도망치며 발버둥 친 결과가 학살이라는 대가로 왔던 것이다.3. 전쟁이후전쟁이 종결되고 난 후 우리나라의 모습을 현재 우리 세대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의(依)식(食)주(住) 3가지이다. 전쟁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의식주의 해결이 불가능하였다.그 당시 옷차림은 남루하기가 그지 없었다. 전쟁이후라 외국의 구호품과 군복을 검게 물들인 옷으로 거의입고 살았다. 여자들은 검은색 치마와 흰저고리 차림이었고 겨울철엔 솜을 얇게 대고 누빈 바지를 많이 입었다. 물론 부자들은 그보다 나은 옷을 입고 지냈지만... ... ...먹거리도 턱없이 부족하여 춘궁기(봄철 먹을거리가 생산되지 않던시기)엔 나물과 쑥으로 연명하기도 하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먹기도 하여 민가 가까이는 소나무가 귀하던 시절도 있었으며 오죽하면 초근목피(草根木皮풀뿌리나무껍질을먹고삶)란 말이 생겨날정도 였으니... ...집도 마찬가지였다. 겨울피란후(1.4후퇴)돌아오니 우리집만 덩그러니 남아있고 주위에 있던 집들은 다 타고 하나도 없었다. 군인들이(중공군, 북한군, 미군, 국군) 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해 초가집에 불을 지르고 쪼였다고 한다. 시골 초가집들은 시멘트가 없던 시절이라 진흙에 볏집을 썰어넣고 지은 집들이라 불을 때면 갈라진 방틈사이로 연기가 올라오곤 했었다. 물론 도배나 장판도 없이 짚으로 만든 자리를 깔고 살았다. 장날이 되면 장작을 파는 나뭇꾼들의 장터가 따로 열리곤 했다...)
비경제활동인구의 변화I. 서론비경제활동인구가 어떠한 개념인지에 대해서는 교재와 수업을 통하여 알아보았다. 그러나 교재에 제시되어 있는 비경제활동인구는 2001년의 인구이므로 현재 2010년의 자료와는 아마도 큰 차이를 보일 것이라 예상된다. 그러므로 2001년의 비경제활동인구의 추이와 2010년 비경제활동인구의 추이를 분석해보고 그 차이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II. 본론1. 비경제활동인구의 개념비경제활동인구란 만 15세가 넘은 인구 가운데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사람, 즉 일할 수 있는 능력은 있으나 일할 의사가 없거나, 전혀 일할 능력이 없어 노동공급에 기여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며, 주로 집안에서 가사를 맡고 있는 가정주부를 비롯하여 학생, 연로자와 불구자, 각종 불로소득자, 그리고 자발적으로 종교단체나 자선사업 등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포함된다.) 비경제활동인구를 실업자와 유사한 개념으로 오해를 할 수 있으나 비경제활동인구와 실업자와는 확연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실업자는 경제활동인구 중에서 일할 능력과 의사가 있고 구직활동도 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으로 정의된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실업자 산정에서 제외된다. 여기서도 비경제활동인구와 실업자와의 차이를 확인 해 볼 수 있다.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의욕과 능력이다. 이로 인하여 비경제활동인구와 실업자가 구분된다.2. 연도별 비경제활동인구 분석다음은 수업시간에 사용하고 있는 교재에 나타난 2001년 상태별 비경제활동인구자료 중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2001년 상태별 비경제활동인구 (단위 : 1,000명)구분전체가사통학연로심신장애기타전국전체14,3036,8954,1011,4213861,501남자4,6664352,1526802491,150여자9,6376,4601,949741137351이 표에서 확인 할 수 있는 사실은 전체 비경제활동인구 중에서 여자가 차지하는 부분이 약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가사부분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다음은 매일경제신문에 나타난 비경제활동인구에 관한 자료이다.)이 자료를 통하여는 최근 2010년 1월에 고용률은 급하강을 하고있고 비경제활동인구는 증가하고 있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고용률이 떨어졌다는 것은 실업자가 증가했다는 사실로 확인해 볼 수 있다. 지난 1월에 실업자가 121만명으로 급증하고 실업률은 9년여만에 5%대로 치솟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비경제활동인구는 1630만5000명으로 최고치를 달성하였다는 사실을 부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용률이 떨어지고 비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한다는 것은 그만큼 일을 하는 사람의 수가 적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활동인구에는 취업자와 실업자 모두가 포함되나 지난 1월의 자료를 통하여 확인해 본 바에 의하면 실업자와 비경제활동인구가 모두 증가하여 일하는 사람의 수가 적어지고 그것은 경기회복에 득이 되지 못함을 알 수 있다.3. 연도별 비경제활동인구 증가의 요인육안으로 보더라도 확연하게 구분이 가는 부분이 바로 비경제활동인구의 증가수치이다. 현재로부터 약 10년 전인 비경제활동인구 전체의 양을 살펴보면 14,303,000명이다. 그러나 지난 2010년 1월의 자료를 보면 16,305,000명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간단하게 생각해 본다면 그 동안 여성의 사회적 진출의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에 비경제활동인구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여성들이 사회로 진출하여 비경제활동인구가 오히려 감소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난 약 10년 동안 비경제활동인구가 약 2백만명이 증가한 요인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비경제활동인구의 증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경기침체이다.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하나씩은 안고 있을 취업에 대한 걱정은 현 실태를 보여주는 거울이며 이 자료들에 대한 근거로 제시될 수 있다. 확실한 사실은 취업준비 비경제활동인구 중 대졸 이상이 가지는 비중이 꽤나 크다는 사실이다.* 2010년 교육정도별 비경제활동인구) (단위 : 1,000명)초졸이하중졸고졸대졸이상전문대졸대학원졸이상계4,4563,4385,5982,8148521,96216,305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대졸이상, 전문대졸, 대학원졸 이상의 비경제활동인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하여 분석할 수 있는 사실은 고학력자의 일자리 탐색기간이 상대적으로 길다는 사실을 추정해 볼 수 있다.학력뿐만 아니라 연령별로 비경제활동인구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 또한 다양하다. 노동시장의 핵심노동계층이라 할 수 있는 중장년층에서 비경제활동인구로 빠져나오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사유로는 크게 육아, 가사, 재학학업, 취업준비, 그냥 쉼 및 기타로 나누었을 때 그냥 쉰다는 유휴인력의 규모가 가장 컸다. 이것은 취업여건의 악화로 아예 취업을 포기하고 있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비경제활동인구에 있어서 여성의 영향은 크다. 최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과 고용률이 증가하였다. 여성이 가사로 인해 비경제활동인구에 큰 부분을 차지하였던 과거에 비하여 많이 완화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여성 또한 취업준비로 인한 비경제활동인구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