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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과 우리 생활 - 음악 치료와 태교 음악
    요즘 음악은 과거의 흥겨움을 위한 한정된 역할에서 벗어나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도 하고,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발달에 영향을 주기도 하면서 이제 음악의 과거의 영역을 넘어서기 시작했다.나는 이번 과제를 통해 우리 생활 속에서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는 두 가지 형태의 음악의 쓰임인 음악치료와 태교음악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Ⅰ. 음악치료모짜르트도 모르는 음악효과? - 음악치료1990 년대 초반 모짜르트의 음악을 듣기만 해도 머리가 좋아진다는 일명 '모짜르트 효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과학적인 입증에 실패해 반짝 인기에 그쳤지만 음악만 틀어 놓으면 기억력과 창의력이 증진된다니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음악치료 역시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음악은 그저 정서적인 효과에 도움을 줄 뿐이지 의학적인 효과가 있겠냐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론 음악이 과연 치료에 도움이 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음악이 정말 환자를 치료하는 효과를 낼 수 것일까?현대 의학에서 음악치료는 단순히 하나의 증상만을 치료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하여 환자들이 정신기능을 향상시켜 보다 나은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기 위한 방법위주의 치료로 사용된다.음악치료 방식은 초기, 음악 치료사가 환자에게 선정한 음악을 들려주는 수동적인 방식이 사용되었으나 근래에는 즉흥 연주나 창작 같은 능동적인 방법이 더 적극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녹음된 음악보다 직접 연주를 듣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환자가 직접 연주에 참여할 수 있으면 더 좋다고 말한다. 특히 뇌기능에 관련된 질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음악이 큰 도움이 될 수 있고, 또한 음악을 들으면서 수술을 하거나 분만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음악치료는 장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로 자폐아나 사회 부적응자들을 치료하는데 사용된다. 특별한 장애가 없는 정상인의 경우에도 심리치료의 일환으로 심상유도음악(인데 음악 치료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 몸에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제 치료 현장에서 음악은 많이 사용되고 있고 일부 그 효능도 입증되고 있다.음악 치료의 효과를 한마디로 단언하기 어렵다. 모든 음악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영향을 끼치지 않고 개인이 처한 환경과 심리·문화적인 요인, 취향에 따라 효과는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시중에 치료음악, 웰빙음악 등의 이름으로 소개되는 다양한 상품들은 본격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는 도움을 주기 어렵다. 하지만 음악치료 효능에 따른 다양한 치료기술의 발달로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행복해 지는 세상을 꿈꿔 본다. (과학향기 편집부)(참고자료 : 《한겨레신문》, 2005년 9월 5일자.)이처럼 과학적인 증명에 따라 음악치료의 효과는 입증되고 있다. 웰빙 열풍 속에서 약물이나 의학적인 치료 등의 인위적인 방법이 아닌 생활 속에서 즐기는 것이 가능한 음악치료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추세이다.음악치료란?음악치료는 간단하게 뜻을 정의 내리기는 힘든 분야이다. ‘음악’과 ‘치료’라는 상이한 두 가지 용어의 합으로 인해 생겨난 학문이고 그 특성상 여러 가지 치료 대상과 다양한 분야의 치료 목적을 갖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분야의 결합에 의해 생긴 음악치료는 음악을 치료적 인 의도로서 사용하는 새로운 분야의 학문이다. 사람들은 ‘음악을 치료에 이용하는 것’으로 쉽게 음악치료를 정의하지만, 어떠한 음악으로 어떤 대상을 정하여 특정한 방식의 치료에 어떠한 방식으로 적용한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그 이해가 쉽지 않다. 음악이 가진 다양성과 ‘치료’라는 용어가 포함하는 대상과 분야의 다양한 특성 때문에 음악치료는 그 정의를 간단하게 내릴 수 없는 것이다.일반적인 정의는 부르샤(Brucia)의 이론으로 음악치료는 훈련된 치료사가 개입하여 음악적 경험과 치료적 관계를 통해 환자를 역동적으로 변화시키는 체계적인 치료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때문에 음악이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므 음악치료의 주된 형태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음악을 수동적으로 듣는 것 뿐 아니라 능동적으로 노래 부르는 것, 악기 연주, 작곡, 노래 쓰기 등의 많은 음악활동이 사용되어 진다. 또한 음악과 관련된 여러 활동도 사용되어 음악을 듣고 토론하는 것과 음악을 들으며 신체 이완을 하는 것 또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는 것도 음악치료에 포함된다. 이런 활동들은 기준 없이 환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며 진단에 따른 상세한 치료 계획안에서 환자의 치료적 필요에 따라 사용된다.음악치료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것은 치료사와 환자 사이에 형성되는 치료적 관계가 치료 목표를 달성하는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치료사의 존재는 음악치료의 도구로 사용된다. 음악활동과 치료사와의 관계가 바로 음악치료의 주요 매개체인 것이다.음악치료는 구체적인 목표를 두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계속되어지는 과정이지 한번의 만남으로 끝나는 일회적 치료행위가 아니다. 음악치료는 체계적인 과정으로, 치료사는 환자와의 만남을 통해 진단 (Assessment)하고 그 결과에 따라 치료목표(Therapeutic Goals and Objectives)를 설정한다. 그리고 그 치료목표에 따라 구체적 치료계획(Session Plan)을 구성하고 치료에 임하게 된다. 음악치료에 관한 흔한 오해는 특정 질병에 특정 음악이 효과적이라는 일대일 관계성을 만드는 것이다. 이 관계성은 환자 개인의 성향과 기호가 고려되지 않았기에 치료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 효과가 과학적으로 검증 되지도 않기에 사실 관계성이 성립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체계적 과정이 아닌 일회적 처방이라는 점에서 음악치료라 말 할 수 없다음악치료의 이론적 근거여러 형태의 음악 활동은 사람의 행동과 심리상태에 여러 가지 반응을 일으킨다. 박자가 일정하고 리듬이 강한 음악은 춤을 추고 싶게 만들고, 부드러운 멜로디의 느린 서정적 음악은 평화롭고 목가적인 장면을 연상시킨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합창을 할 때 음악은 사람들 사이의 새로 음악은 이와 반대되는 성격을 갖는다. 그러므로 흥분을 지향하는 음악은 노인성 치매 환자를 위한 음악치료에서 신체적 자극과 움직임을 유도할 때 사용할 수 있고, 안정을 지향하는 음악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신체적 이완을 촉진할 필요가 있는 암환자의 통증관리에 사용할 수 있다. 이 때 사용되는 음악은 환자의 기호와 개인적 반응을 충분히 고려하여 선택하여야 한다.③ 사회적 반응박실(Boxille)은 음악을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자연스러운 의사소통과 자기표현 수단이라 생각했다. 언어의 사용능력이 제한된 환자라도 치료사와 함께 연주하면서 분노나 기쁨과 같은 자신의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 감정은 음악을 통해 치료사에게 전달되고 치료사의 음악적 지지는 환자에게 감정적 지지로 인식된다.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자폐아동도 음악적으로 치료사와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음악적 관계는 사회적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음악은 언어로써 표현하기 어려운 무의식의 잠재된 내면의 문제들을 음악으로 표현하게 돕는다. 음악적 표현은 새로운 자아 인식으로 연결되고, 자아 인식과 연결된 자기표현은 정신치료 집단속에서 새로운 사회적 교류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음악치료가 정신과 환자들의 치료에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음악치료의 대상음악치료가 태동되었을 때만 해도 주로 정신질환자와 정신지체아동을 대상으로 시행되었지만 음악치료의 이론이 자리잡히면서 이제는 일반 병원에서의 수술 환자나 화상환자, 그리고 종말기 환자, 그 외 통증환자를 위해, 또는 스트레스 조절을 위해 시행되고 있으며, 일반인을 위해서는 비행 청소년 행동 수정 프로그램, 그리고 가족 치료의 영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장애에 따른 구체적인 음악치료의 효과① 자폐아음악적 경험이 무감동한 자폐아의 정서를 자극하고 멜로디와 박자를 이용하여 기본적인 언어구조를 신체적으로 경험하게 하여 궁극적으로는 말을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고 치료사와의 관계를 통해 사회성을 길러준다.② 정신지체자안전한 상태에서 자신의 감정을 경험하게 되음악은 각 고객의 선호 음악을 중심으로 하여 녹음된 음악(Recorded Music)과 생음악(Live Music)을 적절히 섞어 선택한다. 도한 음악치료 활동에 따라 활발한 음악(Stimulative Music)과 차분한 음악(Sedative Music)을 골고루 사용한다.Ⅱ. 태교음악임신 28주가 지나면 귀가 제 모습을 갖추고,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만이 아니라 소리에 대해서 태아가 반응을 보인다. 소리에 대한 감각이 생긴 아기는 좋아하는 소리와 싫어하는 소리를 가리게 되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등의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태아가 특히 좋아하는 소리는 엄마의 목소리이다. 임산부의 몸 자체가 울림통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엄마의 목소리는 공기 진동만이 아니라 산모의 골격과 신체 조직의 진동을 통해 자궁에 전달되어 외부에서 들리는 다른 어떤 소리보다도 태아에게 강하게 들린다.적당한 크기의 소리는 태아의 청각 기관 발달을 돕는다. 소리의 여러 가지 특성 가운데 태아는 음높이와 음색, 강약을 잘 기억하며 단순하게 반복되는 소리에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 특정한 소리를 반복해서 들려주면 감수성이 형성되어 출산 후에도 그 소리를 특히 좋아하게 된다.태교음악 이란태교음악은 내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인기 관심이 많이 가는 부분이다. 이전에 태교란 것은 좋은 것을 생각하고,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먹고의 개념에서 그쳐있었다. 그러나 현대여성은 태교하면 음악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여성이 임신에서 출산의 과정을 거쳐, 그 아이를 이 세상에서 한 인간으로 살아가게 한다는 것은 위대하고 한편으로는 많은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피할 수 없는 여성들의 몫이기도 하다. 부모는 아이를 가지면 특히 여성은 자신의 몸 안에서 한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하고, 자신의 아이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하기를 소망한다. 음악이 아이의 정서나 두뇌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발표됨에 따라 태아에게 까지도 음악은 중요한 위치가 되었다. 이런 연 있다.
    예체능| 2012.03.03| 11페이지| 2,000원| 조회(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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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의 전래동요
    ( 차 례 )Ⅰ. 서론Ⅱ. 본론- 동요(童謠)란?- 한국의 전래동요(1) 역사적으로 본 전래동요의 개념(2) 구비문학으로서의 전래동요의 개념- 전래동요의 특성- 전래동요의 종류- 전래동요의 교육적 가치Ⅲ. 결론- 전래동요의 의의Ⅰ. 서론전통음악은 오랜 역사 동안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스며들어온 사람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담고 사람들이 슬플 때나 기쁜 일이 있을 때나 또 어려운 일 등 슬픈 일을 당했을 때 단결하고 협동하며 한 민족 공동체라는 의식을 갖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농사짓는 것을 주업으로 삼았던 우리 조상들은 노래를 부르며 힘든 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었으며 아기가 탄생할 때부터 사람이 사망하여 장사를 지낼 때까지 음악과 더불어 생활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우리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우리 전통음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많은 사람들이 전통음악이란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 또는 특별한 분야라고 생각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의 교육은 자국의 사회. 문화적 현실에 기초한 교육활동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민족의 주체성 확립 및 음악의 모국어 학습이라는 차원에서 우리의 얼이 내재되어 있는 전래동요를 접해 보는 활동을 통하여 유아들은 사라져 가는 우리 것의 대한 바른 이해와 애착을 형성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야 전통 음악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통음악 교육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 아직도 많은 어린이들이 서양음악에 비해 전통음악이 생활과 동떨어져 있다고 여기며 흥미를 갖지 못하고 접근을 꺼리고 있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전통음악에 흥미를 갖고 임하도록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깨닫고 어렸을 때부터 전통 음악의 근간이 되는 전래동요를 놀이와 함께 즐겁게 배우고 익힘으로써 전통음악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전통음악의 아름다움과 멋을 체득하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어야하는 것이다.Ⅱ. 본론동요(童謠)란?어린이의 정서에 맞는 언어로 그들의 꿈, 희망, 심리적 상황을 표현한 노래이다 .노랫말뿐만h hand will you have?〉이다. 〈무당벌레야, 무당벌레야 집으로 날아가렴 Ladybird, ladybird fly away home〉, 노래 부르기 노래인 〈런던 다리가 와르르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수수께끼 노래인 〈땅딸보 Humpty-Dumpty〉 같은 노래는 유럽 각지에 유사한 형태로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데 그 뜻을 정확히 번역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 전부터 구전된 듯하다. 또 이러한 동요들은 구전되는 동안에 새로운 말이 첨가되거나 변화되기도 했다. 서양의 전래동요는 15세기 이전 것은 드물고 18세기 것이 가장 많다. 최초로 출판된 동요집은 1744년 런던에서 펴낸 2권으로 된 〈타미 섬의 (예쁜) 노래책 Tommy Thumb's (pretty) Song Book〉이다. 이 책에는 〈꼬마 톰 터커 Little Tom Tucker〉·〈6펜스의 노래 Sing of Six-pence〉·〈누가 수탉 로빈을 죽였나? Who Killed Cock Robin?〉 등이 실려 있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동요집은 1781년 존뉴베리사가 출판한 〈마더 구스 동요집 Mother Goose's Melody : or Sonnets for the Cradle〉이다. 이 책에는 〈잭과 질 Jack and Jill〉·〈딩동댕 종소리 Ding Dong Bell> 를 비롯해 51곡의 노래가 실려 있다.한국에서는 동요가 독특한 한 장르로 형성되어왔으며 어린이뿐 아니라 여러 층에 두루 애창되었다. 한국동요는 크게 전래동요와 창작동요로 나눌 수 있다. 전래동요는 구비문학에 속하여 내용도 유희를 하면서 부르는 것이 대부분이고 입과 귀로 전해지면서 변화되어 공동참여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창작동요는 근대에 들어와 이루어진 것으로 동시·동극·동화 등과 더불어 아동문학의 한 범주에 해당된다. 창작동요는 일단 개인에 의해 창작·발표되면 더 이상 변화되지 않는다. 동요는 민요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노동요(勞動謠)나 의식요(儀式謠)가 없는 것이는 동요에는 〈술래잡기〉·〈자장가〉·〈달아 달아 밝은 달아〉·〈할미꽃〉·〈파랑새〉·〈까까중〉·〈숫자풀이〉·〈두껍아 두껍아〉·〈꼬마야 꼬마야〉 등이 있다.(1) 역사적으로 본 전래동요의 개념① 고대 참요로서의 동요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참요란 민요의 한 가지로 예언이나 은어의 형식으로 나타낸 노래로서 흔히 정치적 변동을 암시한 노래이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유아 문학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이다.② 순수하게 구전되어 왔던 어린이 노래로서의 동요이다.③ 창작된 아동문학으로서의 정형시인 동요이다. 창작 아동문학으로서의 정형시인 동요는 요즘 일반화된 용어로는 창작동요를 지칭하는 말이다. 노랫말에 비중을 둔 창작동요는 동시에서 다루는 경우가 많다.④ 현대 음악용어로서의 동요이다. 이 동요는 논외의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서 다루는 동요 는 어린이 노래로서 전래동요만을 다루기로 한다.(2) 구비문학으로서의 전래동요의 개념① 예로부터 현재까지 전해지는 대중의 작품으로 작자와 시창 자가 없고 입으로 방방곡곡에 전파되면서, 아동의 마음에 맞도록 자생한 노래다.② 어린이 스스로가 그때그때 생각과 느낌을 곡조도 없이 멋대로 부른 것으로 어린이들이 따라 부르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불러서 이웃으로 펴져 나간 것이다.③ 기쁘거나 즐거울 때, 또는 슬프거나 괴로울 때, 그 감정을 밖으로 나타내고 싶어 할 때 감정의 표현이 응축되고 리듬을 얻을 때 자생되는 것이다.④ 지난날의 동요는 동식물이나 천체·기상요가 그 주류였다. 언제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면 서 새나 꽃을 보았을 때, 짐승이나 벌레를 보았을 때, 눈과 비를 내려 주는 하늘의 경이 에 부딪쳤을 때, 이웃 벗들과 따뜻하고 즐겁게 뛰어놀 때, 그들은 떼 지어 몰려다니며 동요를 부르고 즐겨왔다. 어린이들은 입에서 입으로 동요를 불러오는 사이에 그들의 꿈과 사랑과 지혜와 수평민주 의식과 질서를 키워 왔다.전래동요의 특성전래 동요는 지역마다 마을 마다 가락은 같아도 노랫말이 다르며, 내용 전달에 있어서 직접적 표현과 즐거움의 요소가 강하게복이 대부분으로, 1행은 2행으로 2행은 4행으로 발전해간다.둘째, 전래동요에는 계급 의식이 없다. 어린이들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대로 노래한다.그들의 주변에 있는 해나 달이나 별, 풀이나 짐승이나 새, 그리고 가정생활에 이르기까지 무궁한 소재를 아무런 비판이나 어떤 철학도 암시하지 않고 노래 부르는 것이다.셋째, 진(眞) ·선(善) ·미(美)를 이상으로 삼는다. 희로애락은 있되, 증오나 추악이 없는 때 묻지 않은 세계이다. 이와 같이 전래동요는 다른 구비적인 가요와 비슷한 형식을 갖춘 반면에 그 내용은 상이한 것이며, 오랜 세월에 걸쳐 이 고장에서 저 고장으로 전해지면서 이어 내려왔다.전래동요의 종류① 자장가우리나라의 자장가는 민요 중에서도 때와 장소를 가지지 않고 가장 보편적으로 불려졌던 노래이다. 자장가는 어린이들이 직접 부르기보다는 아기를 잠재우는 사람들이 아기를 재우며 아기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불렀다.자장가의 대부분은 아기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축원의 성격을 띤 것이 대부분이다.- 자장자장 우리 애기 -자장자장 우리 애기넘애기는 깨워 주고꽃이불에 재워 주고개똥이불에 재워 주고울애기는 재워주고울애기는 꽃방석에넘애기는 개똥밭에자장자장 우리애기 잘도 잔다.② 자연 현상에 대한 노래- 해야 해야 -해야 해야 붉은 해야김칫물에 밥 말아 먹고장구치고 나오너라.→ 이 노래는 해가 구름에 가려졌을 때 구름을 헤치고 환하게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노 래한 것이다.③ 가족에 대한 노래- 가족 -뒷집영감 심술쟁이 앞집영감 욕보쟁이울아버지 골통쟁이 울어머니 카트랑쟁이우리오빠 욕심쟁이 우리누나 헛말쟁이우리동생 귀염둥이→ 이 노래는 이웃과 가족들의 미운 점을 중심으로 이웃과 가족을 놀리는 노래이다.④ 놀이에 대한 노래- 꼬마야, 꼬마야, 뒤로 돌아라 -꼬마야, 꼬마야, 뒤로 돌아라꼬마야, 꼬마야, 땅을 짚어라꼬마야, 꼬마야, 만세를 불러라꼬마야, 꼬마야, 잘 가거라→ 이 노래는 긴 줄을 이용하여 두 명의 어린이가 줄을 돌리고 다른 여러 명의 어린이가 한 줄로 서.→ 이 노래는 어린이들이 모래 놀이를 하면서 자신의 손 위에 모래를 쌓아 올려 두드리며 모래집을 만들면서 부르던 노래이다. 모래집을 다 만든 후에는 모래집이 망가지지 않도 록 하기 위하여 손을 살짝 빼야 한다.- 기러기 노래 -아침 바람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우리 선생 계실 적에, 엽서 한 장 써 주세요.한 장 말고 두 장이요, 두 장 말고 세 장이요세 장 말고 네 장이요. 네 장 말고 다섯 장이요구리 구리 구리 구리 가위, 바위, 보!→ 이 노래는 두 어린이씩 짝을 지어 서로 상대방의 손뼉을 치거나 간단한 손 움직임을 하면서 부르던 노래이다. 이 노래를 다 부른 후에는 가위, 바위, 보에서 이긴 어린이가 자신의 손가락 중 한 손가락의 끝부분으로 진 어린이의 목 뒤를 살짝 찍은 후 "어느 손" 하고 물으면 목 뒤에 느껴진 감각대로 목 뒤에 닿은 손가락이 어느 손가락인지를 알아 맞추는 놀이를 한다.⑦ 식물에 대한 노래- 참나무 뽕나무 대나무 -참나무허구 뽕나무허구 대나무가 살았는데뽕나무가 방구를 뻥뻥 뀡게참나무가 참으시오 참으시오 형게대나무가 대께놈 대께놈 허드라네.→ 이 노래 역시 나무 이름을 중심으로 재미있는 말놀이를 즐기는 노래이다.⑧ 학습에 대한 노래- 달풀이 노래 -정월이라 초하룻날 혼떤 법떡 먹는 날이월이라 한식날 한식 먹는날삼월이라 삼짓날 제비 오는 날사월이라 초파일날 머리깍고 활동하는 날오월이라 단오날 머리빗고 그네뛰는날유월이라 보름날 유두 먹는 날칠월이라 칠석날 칠석 먹는 날팔월이라 보름날 신곡 차례하는 날구월이라 구일날 구일 먹는 날시월이라 보름날 시제 먹는 날동짓달이라 동짓날 팥죽 먹는 날섣달이라 그믐날 호박범벅 먹는 날→ 이 노래는 음식을 중심으로 1년 12달을 풀이한 노래이다. 특히 어린이들은 명절을 기다 리면서 명절날 먹게 되는 맛있는 음식을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하였다.⑨ 음식에 대한 노래- 인절미 -인절미 떡은팥고물에 콩고물에화장을 하고빨간쟁반 위에가마를 타고어서가자 목구멍으로헤이 꼴딱꿍→ 이 노래는 인절미 떡과 인절미 진다.
    예체능| 2012.03.03| 14페이지| 2,500원| 조회(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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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항 가요의 대명사 <아침이슬>
    저항 가요의 대명사 ( 악보, 출처 : 《오마이뉴스》, 2007년 6월 15일자.)김민기가 작사, 작곡하고, 가수 양희은이 불렀다. 1970년 8월 28일 김민기의 첫 독립 음반으로 발표되었고, 1971년 이듬해에 양희은의 1집 앨범인 에 수록되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 곡이 발표된 후 트로트 중심의 식상한 한국 가요 수준을 한층 더 높여놓았다는 찬사를 받았다.곡을 만들었던 김민기의 의도와는 달리 노래가 발표되던 당시의 억압된 정치상황을 비유하는 듯한 가사로 대중, 특히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으며, 1975년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유신 독재체제가 붕괴한 뒤에도 민주화를 염원하는 대중들의 바람을 전달하는 노래로 널리 사랑받아왔다. 노태우의 6.29 선언 직후 해금되었다.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잘 살린 시적인 가사와 간결하고 명료한 리듬은 이 곡이 시대를 초월한 명곡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게 만든다. 덧붙여 양희은의 곧고도 청아한 목소리가 잘 어우러져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준다. 대표적인 저항 가요라는 명칭과는 달리 이 곡에서 금지곡이라는 느낌을 주는 직접적인 가사는 찾기 어려우며, 사람들의 고달프고 쓸쓸한 심정을 대변하는 자서전 같은 느낌을 준다.포크의 연인 ‘양희은’38년째 음악의 길을 걷고 있는 양희은은 포크송의 대모라고 불린다. 그녀의 가수생활의 초창기에 많은 곡들이 금지곡 판정을 받았지만, 그녀의 노래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며 그녀를 지금까지 가수인생으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처음 그녀가 가수가 된 계기는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학비가 부족해 휴학을 여러 번 거듭한 끝에 8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힘들었던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쉬지 않고 가족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노래를 부르고 일을 했다. 이후에 그녀는 '노래가 삶의 방편이 된다는 게 너무나 힘들고 지긋지긋 했다'라고 회상했지만 노래를 제외하고는 그녀의 인생을 이야기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양희은은 곧고 또렷한 발성으로 사랑이 지나치게 남발되던 트로트 일색의 대중음악의 과양된 화려함을 편안함의 정서로 새롭게 재단하여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양희은의 노래는 대체로 밝은 편이다. ,, 등의 노래는 어느 누구나가 들어도 부담이 없을 정도로 동요적인 느낌이 든다. 편안하고 정겨움의 정서가 그녀의 노래의 가장 큰 매력인 것이다. 하지만 소박함 속에 담긴 곧고 우렁찬, 온몸을 내지르는 듯한 발성에서 나오는 그녀의 열정은 그녀의 목소리가 왜 시대의 대변인이 되었는지를 이해 시켜준다. 분명 그녀의 노래는 달콤하게 입에서 녹는 아이스크림이나 화려한 케이크 같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의 늘 먹는 구수한 된장찌개에 가깝다. 화려함과 거창함으로 대중들의 이목을 반짝 집중시키고 금방 사그라지는 일반적인 대중가요와는 달리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과 같은 존재이다.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위로해 주는 애틋함과 진실함이 그녀의 노래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다.특히 현재 40대 이상 중장년층이 즐길 수 있는 문화가 협소한 상황에서 양희은의 노래는 그들이 문화로서 즐길 수 있는 대안 중 하나이다. 물론 그녀의 노래를 중장년층만 즐기는 것은 아니다.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모든 세대가 공감하며 감상할 수 있는 것이 그녀의 노래이다. 서정적인 노랫말과 담백한 양희은의 목소리는 수년이 흐른 지금 들어도 결코 촌스럽거나 구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누구나가 들어도 이질감 없이 편안하고, 또 질리지 않는 그녀의 노래는 시대를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가수 양희은의 노래부르는 모습)양희은은 이야기한다."노래에도 팔자가 있고, 생명이 있어요. 요즘 나오는 많은 노래들처럼 두 세달 만에 잊혀지는 곡들도 있고,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 움직이는 곡들이 있죠. 노래의 생명력을 부여하는 건 작곡가나 가수가 아닙니다. 자꾸 불러주고 기억해주며 되새김질 해주는 대중에 의해 노래의 생명력이 결정되는 것이죠."우리나라 포크송 역사의 초창기를 장식하며 또, 어두웠던 역사의 한 자락을 솔직하게 묘사했던 그녀는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가수 양희은은 꾸준히 가수 활동을 하고 있으며, 과거의 영광으로 먹고사는 추억의 가수가 아닌 현재의 가수로서 꾸준히 새로운 노래들을 발표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녀는 대중과 함께 노래하고 공감하는 가수로서 노래 행진을 계속 할 것이다.청년 문화의 상징 ‘김민기’(김민기의 모습)우리나라의 포크음악의 대부라고 칭해지는 인물이다. 1970년대 초반 한대수와 더불어 우리나라에 포크음악의 유행을 주도하였다. 1971년 처음 발표되었던 그의 음반의 전 수록곡이 금지곡 판정을 받을 정도로 이 시대의 김민기의 음악은 대중성과 노동성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1970년대 억압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포크음악과 민중들의 저항성이 만나 , 와 같은 노래들이 재해석되면서 김민기의 곡은 민중가요의 모태가 되었다. 김민기의 첫 음반이 완전히 금지된 후, 그의 음악들이 그의 목소리를 통해 발표되는 것이 불가능해 졌고, 따라서 그의 음악들은 양희은의 목소리를 통해 대중들 사이로 전파되었다. 양희은의 음반의 작곡가로서 김민기라는 이름도 올리는 것이 불가능하였지만 이미 대중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과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가사를 통해 김민기 특유의 부드러운 음악적 포용력은 포크음악계의 조용한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대중들의 재해석을 통해 한 시대의 정서를 관통하고 시대적 공감을 불러일으킨 그의 음악은 단순히 김민기라는 한 개인의 노래가 아닌 듣는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종류의 노래라고 볼 수 있다. 시적이고 은유적인 가사가 대중을 통해 노래되면서 사회 비판적인 가사로 변모한 것 또한 사람들을 통한 또 하나의 종류인 노래 인 것이다. 물론, 김민기는 자신의 노래에서 정치적인 의도는 없었다고 이야기 한다. 또 이러한 그의 모호한 태도는 한때 그의 노래의 저항가요로서의 역할을 한때 주춤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사회와 현실에 대한 의식은 분명 존재했다. 그 출발점은 시인 김지하와의 만남이었다. 당시 김지하 등을 중심으로 당대의 지식인 층을 형성하였던 시인, 학자, 화가, 음악가, 영화인들이 모여 한국문화의 전반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모임을 가져오고 있었다. 이 모임의 이름은 폰트라)였다. 김민기도 이 모임에 참가하면서 토론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된다. 이 모임에 참석하는 과정을 통해 그는 지금까지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역사와 사회 현실에 대한 의식을 조금씩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김민기는 친구 이도성 등과 함께 신정동에 야학을 열어 노동자들을 가르쳤고, 인천 도시산업선교회 활동에도 참여하면서 노동자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어 공연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삶에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지금까지 그가 가지고 있었던 소위 지식인적인 사고방식과 정서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한다.이후, 김민기란 이름이 수록되었다는 이유로 그가 작곡한 곡들은 이유없이 금지곡이 되기도 한다. 대학가에서 불리던 노래 대부분이 김민기의 노래인지 아닌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당연히 그의 곡이겠거니 단정 지어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투사로서 인식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는 가명을 통해 노래를 발표하게 된다. 작은 꿈조차도 피워보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억압적인 사회 현실을 노래한 , 아직 사회에 잔존하여 사람들을 괴롭히는 전쟁의 상처가 담긴 , , 할 수 없이 고향을 떠나 생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그린,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늙은이들의 아픔과 회한어린 감성을 노래한 또한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의 합법적인 음악 활동은 불가능 해졌다. 그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이 때 탄생한 은 1970년대 대표적인 노조 탄압사례의 하나인 동일방직 사건을 소재로 하여 노래굿이라는 새로운 양식으로 카세트 테이프에 담아낸 것이었다. 한국교회 사회선교협의회의 후원으로 제작된 이 테이프에 김민기는 자신의 이름을 정확히 명시하였다. 구속을 각오로 하며 음악활동을 한 것이다.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연출가로서의 변모를 꾀하며 ‘극단 학전’을 설립한다. 그리고 그는 락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을 하게 된다.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이다. 은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는다. 원작을 감동을 넘어선 한국적 정서의 뮤지컬을 완성한 것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사는 김민기란 인물이 없이는 거론하기 조차 힘들다. 또한, 현재에 이르러서도 김민기는 대중문화계를 이끌어나가며 추억속의 인물이 아닌 현재 까지도 진행 중인 삶을 살고 있다.1970년대, 억압속의 사회1970년대 당시는 장발 단속, 미니스커트 단속, 통행금지 등 온갖 종류의 금지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경찰이 가위와 자를 들고 다니며 남상들의 머리길이를 단속하고 여성들의 치마길이를 규제하였다. 당시 텔레비전 뉴스를 진행하던 아나운서조차도 장발 단속을 보도하면서 ‘저런 머릿속에서 무슨 건전한 생각이 나오겠냐.’ 고 보도 할 정도로 억압의 정서는 사람들의 의식 깊숙이 존재하고 있었다.이 시기의 대표적인 노래 중 이 있다. 만족감과 즐거움을 느끼기 힘든 현실세계를 벗어나 새로운 이상향으로 대표되는 상징적인 고래를 찾아 떠나자는 내용의 노래이다. 현실의 고통과 억압에서 벗어나 꿈속에서나 가능하던 자유롭고 개방적인 이상사회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노래로 이 있다. 현실세계에 대한 대항의식을 대표하는 이 노래는 저항 가요의 상징으로서 칭해진다. 억압 속에서 고통 받는 민중들을 독려하고 위로하면서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한 발 더 나아가자는 의미로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대표적인 두 곡 모두 현실의 억압에 대한 괴로움을 은유하고, 새로운 이상향을 향한 투쟁을 권유하며 대중들을 일깨운다. 그 밖에도 1970년대 가요로는 , , , 등이 있다. 마찬가지의 내용이 주를 이루는 가요들이 대다수였다.
    예체능| 2010.06.11| 6페이지| 1,000원| 조회(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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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아리랑에 대해
    아리랑은 현재까지도 민족의 노래로 칭해진다. 2002년 월드컵 때에는 응원가로 불려지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에서의 관심을 받기도 하였으며, 지금 현재 시, 소설, 드라마, 영화, 연극, 무용 등 여러 가지 예술분야에 사용되기도 한다.이처럼 시대를 초월하며 민족과 함께해온 아리랑에서는 한국의 정서가 그대로 드러난다. 아리랑은 이러한 특징을 바탕으로 역사 속에서 일반 민중들이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던 애환의 정서를 대변하며 민중들이 공감을 얻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역할을 해왔다.이번 과제에서는 아리랑에 대해 알아보고 그 속에 담긴 한국인의 한의 정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Ⅰ. 아리랑이란?한국의 대표적인 구전민요이다. 어느 시대에 처음 생겨났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현재까지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우리 민족의 정서에 잘 부합하는 가락은 아리랑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널리 애창되는 요인이 되었다. 아리랑은 다른 민요처럼 본래 노동요로서 불려졌다. 집단적으로 불려지는 노동요의 특성으로 인해 서로간의 입을 통한 전승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는 특성 이외에 지역 집단의 뿌리로부터 나오는 집단적인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특성에는 시대성과 사회성이 포함되어 있다. 비록 그 가사가 일상생활에서 개인들이 느끼는 애환에 대한 넋두리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하더라도 거기에 한국의 서민들에게 나오는 민족적인 특징이 엿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기는 힘들 것이다. 일반 백성들이 각기 그들 삶 속에 담긴 애환을 아리랑에 투영시켰다는 점에서 공동체를 대변하는 사회 문화적인 독자성을 잘 드러내 주는 노래가 되었고, 더 나아가 이는 민족적인 동질성을 대표하는 가락이 되었다. 역사 속에서 일반 서민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대변해주는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그 예로는 대원군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경복궁 중건 시기에 대한 민중의 의견이 아리랑의 가사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나, 일제 강점기 속에서 나라를 강탈당한 민족적인 시련기를 겪으며 민족 사이에서 생겨난 의 뜻을 유추해 볼 때 ‘아리’와 ‘랑’으로 분리하여 생각하여야 한다.‘아리’는 ‘메아리’라는 단어에서 ‘메’가 자연 탈락되고 ‘아리’만 남은 형태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아리’는 소리, 울림, 노래 등의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아리랑’이라는 단어의 뜻은 노래, 즉 민요라는 뜻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이러한 학설을 바탕으로 아리랑의 기원에 대한 연구가 193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이를 바탕으로 기원설은 대체로 ‘아리랑’의 최초의 형태가 1930년대에 정립된 ‘아리랑’과 유사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아리랑’의 기원에 대한 몇 가지 설을 알아보고자 한다.① 아리랑(我離娘):'나는 사랑하는 님을 떠난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② 아이농설(我耳聾說):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때 고생하던 민중들이 반가운 말은 못 듣고 괴 로운 말만 듣게 되니 "차라리 귀가 먹었으면 좋겠다."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는 설③ 아랑전설(阿娘傳說):밀양 영남루의 아랑낭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한 노래에서 나왔다는 설④ 알영설(閼英說):신라의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부인을 찬미한 말에서 변했다는 설이밖에도 이병도의 아라(樂浪) 설, 원훈의 아리다(疼痛)설, 정선 설화(1987)에서의 아리오(알리오)설, 이규태의 아린(여진어 차용) 설 등 여러 가지 연구가 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한 근거가 없으니 그저 구음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나 유래했다고 설이 기본적으로 인정된다.? 아리랑의 종류민요 아리랑은 "아리랑 또는 이와 유사한 음성이 후렴에 들어있는 민요의 총칭"으로 남북을 통틀어 약 60여종 3천6백여 수에 이른다. 우리나라에는 강원도에 '강원도 아리랑', '정선아리랑', 함경도에 '함경도 아리랑', '단천 아리랑', 경상도에 '밀양 아리랑', 전라도에 '진도 아리랑', 경기도에 '긴 아리랑' 등이 대표적인 아리랑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밖에 지역에도 각기 다른 종류의 아리랑이 전승되고 있다.각 지역의 독특한 정서를 담은 이들 아리랑 가운데 대표적으로 , , 은 한국며 송도에서 은신하다가 정선(지금의 남면 거칠현동)으로 은거지를 옮기어 살면서 지난날에 모시던 임금님을 사모하고 충절을 맹세하며 과거의 회상과 가족과 고향의 그리움에 곁들여 고난을 겪어야하는 심정을 한시로 읊은 것에서 그 기원이 비롯되었다고 한다.따라서 정선아리랑 속에는 옛 왕조를 그리워하는 심정을 담은 가사가 많다. 하지만 사랑 이야기, 삶의 애환 등을 노래하는 가사도 포함되어있다. 사랑을 노래하는 가사로는「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 잠시 잠깐 님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가 있다. 정선군 북면 여량리 아우라지 나루터가 배경이 되어 그 사이에서 사랑을 나누는 처녀, 총각 간의 심정을 담은 가사이다.또한 정선아리랑에서는 해학과 흥겨움의 골계미가 엿보이는 가사도 보인다.「영감은 할멈 치고 할멈은 아치고 아는 개치고 개는 꼬리치고 / 꼬리는 마당치고 마당 웃전에 수양버들은 / 바람을 휘몰아치는데 / 우리 집에 저 멍텅구리는 낮잠만 자네」② 진도아리랑진도아리랑은 밀양아리랑이나 정선아리랑 보다 독특한 가락을 보이며 가사내용에서도 묘한 흥취가 있어서 다른 아리랑보다 우월하게 평가된다. 민요는 대부분 단순한 구조적인 특성과 함께 서정적인 가락을 가지고 있지만 진도 아리랑은 특유의 장중한 느낌을 보여준다. 진도 아리랑은 많은 아리랑 중에서도 단연 가락이 유려하고 마디마다 이어지는 가락에서의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특징들이 모두 어우러지면서 진도아리랑은 쉽게 접해보지 못한 묘한 특징을 지닌다.진도아리랑의 장단은 세마치장단이며, 선율은 시나위 형으로 중머리장단에 불리어진다. 특히 진도아리랑은 여타 아리랑과는 달리 가사보다는 그 여음의 묘미에서 가장 큰 특색을 보인다. 잦은 중모리 장단으로 부르는 진도 아리랑은 슬프다 싶으면 한없이 슬프고 구성진 가락의 느낌을 가져오고, 즐거운 느낌을 한껏 실으면 한없이 흥겹게 느껴진다. 따라서 슬픔과 기쁨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인간의 감정을 풍부하게 되었다. 이후 서울에서 한 선비가 밀양 부사로 새로 부임해 왔고, 아랑의 혼령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새 부사는 죄인을 붙잡아 벌하여 아랑의 원한을 위로했다. 그때 밀양의 부녀자들이 아랑의 정절을 노래 부르던 것이 ‘아랑가’였는데, 이것이 계승되어 밀양아리랑이 되었다.하지만 다소 무거운 내용의 전설과는 달리 밀양아리랑의 가락은 흥겨운 느낌이 강하다.「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어절씨구 아라리가 났네」로 시작하는 가사와 밀양아리랑의 주를 이루는 빠른 세마치 장단이 함께 어우러져 금방이라도 흥에 겨운 춤이 나올 것 같은 경쾌한 느낌을 보인다.Ⅱ. 아리랑에 담긴 우리의 정서한국인의 삶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리랑에는 한국의 민중들이 느끼는 여러 가지 종류의 정서가 녹아있다. 아리랑은 민중들의 삶을 감싸 안아 삶의 기쁨과 슬픔 모두를 표현하는 상황적인 포용성과 집단사이의 신명을 돋구어주는 역할을 시대를 초월하며 이행해오고 있다.‘만경~ 창파에 배 띄어 놓고~’ 남쪽 지방 섬마을 사람들의 소탈한 흥과 외로움의 한을 담아 함께 부르는 진도아리랑의 음률에 몸을 싣고 흥겹게 춤을 추는 일반 민중들, 높은 추풍령 고개 기슭 산 속에 사는 하소연이 가득 담긴 영동 아리랑 타령, 깊은 산골에서 한가로운 산바람 속에서 한가로운 삶을 살아가는 강원도 사람들의 소박한 흥겨움이 물씬 풍겨나는 강원도 아리랑 등 이 모든 아리랑이 한국의 정서를 노래한다. 이 중 아리랑에서 보이는 대표적인 몇 가지 한국의 정서를 알아보고자 한다.? 한의 정서아리랑의 가장 기본 정서라고 볼 수 있는 한의 정서에서는 주로 여성적 정서에 치우치는 경향이 많다. 가부장적 사회에 태어난 한국 여성들의 운명적인 한으로서 여성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아픔이 노래를 통해 표현 된다. 가부장적 남성이기주의와 제도적인 불합리성으로 인해 여성들은 평생을 억눌린 채 살아야 하였고 그 속에서 억압된 자아를 가장 잘 해소할 분위기는 여성의 억압된 감정 표출을 막았고 이는 아리랑을 통해 표출된다.「시집간지 삼일만에 부뚜막에 장단을 쳤더니 / 시어머니 눈은 까재미 눈이 된다네」 - 정선아리랑이 가사는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의 감정을 익살스러운 어투로 표현하고 있다.「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 이 내야 시집살이 잔말도 많다」 - 진도아리랑위의 가사 역시 하늘에 별의 수에 비교 될 정도의 시집살이의 고됨의 강도를 표현하고 있다. 시집살이의 한스러움을 셀 수 없을 정도의 양을 드러내는 대상에 투영시키면서 그 고통의 깊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시아버지 죽으면 좋했더니 빨래줄이 끊어지니 또 생각난다 /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 시어머니 죽으면 좋했더니 보리방아 묽어놓니 또 생각나네 /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 청주 아리랑이 가사에는 시집살이의 한 속에서 시부모에 대한 원망과 함께 그리움의 정서도 함께 내포되어있다.② 사랑하는 임에 대한 연모의 한또 다른 한의 정서로는 시대,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이라면 겪게 되는 사랑에서 비롯되는 감정 표현이 있다. 이전에도 말할 것 없이 남녀간의 사랑의 감정은 존재하여 왔지만, 쉽게 그러한 정서를 드러내지 못하는 시대의 암묵적인 규율에 의해 이는 아리랑에서 한으로 표현되고 있다.「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 잠시 잠깐 님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 정선아리랑위 가사는 남한강 뗏목의 발원지인 아우라지를 사이에 두고 여량리 처녀와 유천리 총각이 사랑을 나누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위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몰래 만나곤 하던 두 사람은 하루는 싸리골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그 날 갑자기 내린 비로 인해 나룻배가 운행하지 못하게 되자 두 사람은 서로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의 정서를 아리랑을 통해 노래하였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주위환경의 열악한 조건 속에서 서로의 그리워하는 사랑의 감정이 연모의 한
    예체능| 2010.06.11| 7페이지| 1,500원| 조회(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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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의 샹송 (chanson)
    REPORT프랑스의 샹송 [chanson]? 과목 :? 담당교수 :? 학과 :? 학번? 이름:? 제출일 :? E-mail :< 차 례 >1. 샹송이란?2. 샹송의 특징3. 샹송의 역사? 중세시대? 14~15세기? 16세기? 르네상스? La belle epoque 전후의 샹송4. 샹송의 종류? 샹송 포퓔레르 (Chanson populaire)? 샹송 사방트 (Chanson savante)? 샹송 드 제스트 (Chanson de geste)? 콩플랭트 (Complainte)? 로망스 (Romance)? 샹송 리테레르 (Chanson litteraire)? 샹송 레알리스트 (Chanson realiste)? 샹송 팡테지스트 (Chanson fantaisiste)? 샹송 드 샤름 (Chanson de charme)5. 연대별 샹송 가수6. 현대의 샹송? revue의 전성? Chanson realiste의 융성? 레코드와 방송의 보급? 토키의 발명? TV의 급속한 보급1. 샹송이란?중세 · 르네상스의 프랑스 예술 가곡이다. 1500 년 이전의 샹송은 대부분 '샹소니에'라는 대규모 필사본 선집에 실려 있다. 샹송의 기원은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성 샹송은 13세기 트루베르와 함께 가장 큰 인기를 얻었으며, 14세기 중엽의 시인 겸 작곡가 기욤 드 마쇼의 레(lai:시에 의한 노래 형식)까지 이어지는데 이들은 현재 선율만 남아 있다. 단성 샹송은 트루베르보다 조금 일찍 활동했던 트루바두르의 시와 음악의 공용 형식으로 출발하여 복잡한 발전을 겪게 된다. 이러한 형식들은 마침내 반주가 붙은 샹송의 '정형'(formes fixes)으로 단순해졌다.독창에 1개 이상의 반주악기로 구성되는 반주 붙은 샹송은 마쇼부터 15세기말 하이네 반 기제헴과 앙투안 뷔누아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가곡의 주도적인 양식이었다. 거의 모든 반주 붙은 샹송은 발라드, 롱도, 비를레의 3가지 고정형식 가운데 1가지 유형을 취했다. 이 양식은 세련되었으며, 세련된 양식의 이 음악은 높은 예술적 열망과 아르카델(이 두 사람 모두 마드리갈과 샹송도 작곡함)의 샹송에서야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했고, 따라서 이후 샹송의 형식 구도는 본래 가지고 있던 균형잡힌 악구와 반복되는 주제에 융통성을 주었으며 마드리갈처럼 선율 모방을 구조의 기초로 삼는 경향이 강해졌다.16 세기 후반 여러 선율을 서로 얽어 짜는 다성 샹송이 완성된 것은 오를란도 디 라소부터이다. 또한 이때쯤에는 클로드 르 죈의 작품에 잘 나타나는 플레야드파(La Pl:그리스 고전기의 시와 음악을 복원하고자 했던 프랑스의 예술운동 단체) 회원들이 제안한 음악 장르인 정량음악(musique mesurl'antique:가사와 음악을 합일시키고자 했던 시와 음악 장르)의 영향을 받아 보다 동성음악적 양식으로 변한 샹송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1600년 이후에 샹송은 류트 반주에 독창으로 노래하는 새로운 가곡 형식인 에르 드 쿠르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프랑스를 비롯하여 불어 사용 국가 캐나다의 퀘벡, 스위스 등에서 불어로 불려지는 유행가까지 포함하는 것이 일반적인 샹송의 정의이지만 프랑스 샹송과 다른 나라의 샹송과의 차이를 말한다면 프랑스 샹송은 멜로디보다 가사를 더욱 중요시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의 샹송 즉 퀘벡이나 스위스에서 만든 불어 노래는 1980년대 이후 영국과 미국의 영향을 받아 분위기와 내용면에서 팝송에 가깝다.2. 샹송의 특징흔히 샹송은 한 편의 드라마라고 일컬어지듯이, 가사가 이야기로 되어 있는 것이 많은 것도 그 특색의 하나일 것이다. 곡은 쿠플레(couplet)라는 스토리 부분(원곡부분)과 르프랭(refrain)이라는 반복 부분(후렴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일상 대화에서 사용되는 것과 같은 알기 쉬운 말을 쓰고, 때로는 아르고(argot,은어)를 섞어서 엮는다. 세계 각국의 popular song중에서도 샹송에서는 특히 가사가 중요시된다. 따라서 샹송 가수는 단지 멜로디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사의 내용을 전하는 데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대부분의 가수가 음에는 샹송도 외국 popular song의 영향, 특히 영, 미 pop의 영향을 많이 받아, 크레아숑의 의의는 약해지고 말았다.3. 샹송의 역사샹송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어서 2,000년도 훨씬 더 된 옛날부터 프랑스 인은 그들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후 진보적인 교회의 수도사나 사제들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popular song의 형식을 사용하여 보다 친해지기 위한 전도가를 만드는 데 착안했다. 이리하여 성자의 업적을 이야기하고, 신의 은총을 설명한 종교적인 샹송이 태어났다. 그 외의 세속적인 노래도 있었지만 전해 오지는 않은 채 그늘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오늘날에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샹송은 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881년 바랑센의 수도사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중세시대순례자나 음유 시인들이 샹송을 만들어 그것을 퍼뜨리는 역할을 했다. 즉 트루바두르(troubadour)라고 불리는 음유 시인은 남부 프랑스를 중심으로 10세기 말부터 13세기 경까지 많은 활약을 하며 십자군과 영웅들의 이야기, 세속적인 사랑 등을 그려 단선율의 가곡으로 만들어서 불렀다. 트루베르(trouveres)는 이보다 조금 늦게 북부 프랑스에 나타난 음유 시인인데, 주된 레퍼토리는 트루바두르(troubadours)와 같다. 두 부류 모두 작가 겸 가수로서 반드시 자기가 작사, 작곡한 노래를 불렀으며, 고귀한 집안 태생이 많아 성주들도 이들을 기사로서 대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에 비해 종글뢰르(jongleur)는 이를테면 떠돌이 가수로서 반드시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를 필요는 없었고, 시장이라든가 예배당등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 노래하며 다녔다. 때로는 영주에게 고용되는 경우도 있었으며, 이러한 경우 미니스트렐(menestrel)이라 불렀다. 쿠플레와 르프랭으로 이루어지는 샹송의 원칙적인 형태가 완성된 것도 음유 시인의 시대이며,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샹송이라는 말도 이 무렵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주제에 따라 샹송은 다음과 같이 불렸다.? 캉소(ut IV, 1201-53), 아당 드 라 알(Adam de la Hale, 1235경-85) 등이 있다.? 14~15세기14세기에 이르자 다성음악의 기법을 도입, 아루스노바기(期)의 기욤 드 마쇼 등의 다성샹송을 낳고, 비를레 ?롱도 ?발라드 등 여러 음악형식의 정형이 확립되었다.15세기 플랑드르 출신의 기욤 뒤파유, 질 방슈와 등도 이와 같은 정형에 바탕을 두고 궁정적인 전아한 사랑을 노래하였다.? 16세기프랑스 샹송의 성격은 일변하여 서민적인 색채를 많이 띠었다. 곧 정형이 배격되고 자유스러운 형식에 비교적 단선율적 이고 리드미컬하며, 약간 비속한 가사로 서민적인 생활감정을 여유 있게 노래하게 되었다. 클레망 잔느캥, 클로 드 세르미슈 등의 합창샹송, 특히 잔느캥의 《새의 노래》 《전쟁》 등의 의음(擬音)효과를 사용한 표제샹송은 유명하다. 이때의 샹송은 약 25년간 파리에서만 1,500곡이 출판되었다고 하니 그 보급의 폭을 짐작할 수 있다.? 르네상스파리가 명실공히 프랑스의 중심으로 번영하기 시작했으며, 샹송의 주도권은 완전히 민중의 손으로 옮아갔다. 1600년대 초엔 센 강에 놓인 퐁네프(Pont Neuf)가 그 중심지가 되었다. 이 다리 위나 그 주변에는 가게가 늘어서 있었고,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거리의 가수가 노래를 불렀다. 이전의 음유 시인들은 여행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노래는 그 수단에 불과했었음으로, 그들이야말로 노래를 직업으로 하는 최초의 샹송 가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거리의 가수들의 레퍼토리는 주로 시사 풍자의 노래였다. 그들은 당시의 정부 고관이나 귀족들을 신랄하게 비꼬아서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았다. 이처럼 노래로 풍자하는 것을 샹소네(chansonner)라 하고, 그 작자 겸 가수는 샹소니에(chansonnier(e)) 고 불렀다. 이 경우, 옛날부터 전해 오는 멜로디나 남의 곡을 빌어 써도 상관없지만 가사는 반드시 자기가 지어야 하며, 더구나 날카로운 풍자를 내포하고 재치 있는 정신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 chan의 종류샹송은 다루는 테마가 매우 넓으며 노래하는 창법도 다양하기 때문에 특별히 정해진 분류법은 없지만 편의상 그 성립이나 구조, 혹은 다루는 테마 등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분류할 수가 있다.? 샹송 포퓔레르 (Chanson populaire)'민중의 노래'라는 뜻으로, 영어의 popular song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유행가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지만, 샹송의 역사에 있어서는 작자미상의 민요나 이에 준하는 것을 말한다.? 샹송 사방트 (Chanson savante)'학식있는 샹송'이라든가 '고급 샹송'이라는 의미로 chanson populaire와는 반대로 작가가 분명한 것을 말한다. 중세의 궁정을 중심으로 발달하여 사랑의 노래가 많았다. 가사의 형식도 정돈되고 곡도 예술적이어서 chanson populaire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근대 샹송 발달을 촉구시켰다.? 샹송 드 제스트 (Chanson de geste)보통 '무훈시'라고 번역되는 것인데 기사도가 절정을 이루었던 중세 무렵에 발달한 서사시의 일종이며 12세기에 만들어진 4,000행으로 된 chanson de Roland등이 유명하다. 대개 기사나 왕의 무훈을 찬양한 내용을 가졌고, 노래한다기보다는 음송되었다.? 콩플랭트 (Complainte)역시 중세에 프로방스 지방에서 발생한 세속적인 노래의 일종으로, 로맨틱한 비련 이야기나 종교적인 수난과 기적 등을 다룬 가사와 애수를 띤 멜로디로 이루어져 있다. 16세기 경부터 주로 jongleur라고 불리는 음유 시인에 의해 많이 불려 졌다. 이 complainte라는 명칭은 현대에도 전해져 샹송의 제목으로 흔히 쓰이며, '애가' 혹은 '비탄의 노래'라고 번역된다. 등이 그 한 예이다.? 로망스 (Romance)원래 중세의 음유 시인(트루베르나 트루바두르)이 불렀던 장편의 감상적인 '이야기 노래'였으나, 그후 차츰 달콤하고 부드러운 노래를 널리 이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고, 기악곡에도 적용되었다.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많은 작품이 만들어졌는데, 등도인
    예체능| 2010.06.11| 13페이지| 2,000원| 조회(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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