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 - 문학과 성근친혼이 가능했던 사회경영대학 경제학부 3학년200410341김태균목 차▣ 서론▣ 본론Ⅰ. 고려 건국설화 속의 근친혼Ⅱ. 고려왕조 안에서의 근친혼Ⅲ. 고려왕조안에서 근친혼의 성행배경Ⅳ. 근친혼에 대한 부정정 시각Ⅴ. 오늘날까지의 근친혼의 변화▣ 결론서론근친혼이 가능했던 사회!지금 근친혼이라고 하면 더러운것, 나쁜 것으로 대부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과거에는 종족번식과 생존을 위해 근친혼이 행해졌었다.또한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는 근친혼이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근친혼은 종족번식과 생존말고도 또 다른 측면인 혈족의 순수성과 특권을 위해 행해졌던 때가 있었다. 당시의 이러한 근친혼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이었고 현재까지의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몇 해 전에 민법의 ‘동성동본불혼’)규정이 위헌 판결을 받아서 지난 수백 년간 우리가 당연시해 온 인식이 무너진 적이 있었다. 동성동본 사이에 혼인을 한다는 것은 넓게 보면 근친혼을 포함하는 말이기도 하다.사실 우리 역사에서 ‘동성동본불혼’이 관습법처럼 굳게 자리잡은 것은 조선이 건국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16세기 이후의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동성사이에 혼인을 하지 목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동성간이나 친척간에 혼인을 하는 형태인 근친혼이 바로 고려의 독특한 사회모습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사실 근친혼은 고려 때에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하였던 혼인형태는 아니다. 과거 종족번식을 위해 근친혼이 성행하였고 신라시대에는 왕족을 구분하는 이름인‘성골’이나‘진골’로 나누기위해서도 근친혼이 이루어 졌다. 그렇기 때문에 고려시대에 갑자기 근친혼이 생긴것이 아니라 이미 신라1천년동안 사람들 사이에서는 익숙한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려시대에 제2대왕인 혜종때 부터 근친혼이 시작되어 이후 공민왕에 이르기까지 고려의 역대 34명의 국왕 가운데 절반이 넘는 27명의 국왕이 종실에서 배우자를 맞이하여 혼인을 하였다. 지내 주었다.먼저 산신에게 제사지냈다. 그런데 산신이 나타나 말했다.“나는 본사 과부로서 이 산을 주관하고 있었다오. 다행히도 오늘 성골 장군 당신을 만났구려. 우리 서로 부부의 인연을 맺어 함께 신의 정치를 해봅시다그려. 당신을 이 산의 대왕으로 모시겠소.”이 말이 끈나자마자 산신과 호경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평나군 사람들은 호경을 대왕으로 추존하는 동시에 사당을 세워 제사지내고, 아홉 사람이 함께 죽은 바위굴 산을 구룡산이라고 이름지었다.그 후 호경은 본처를 잊지 못하여 밤마다 꿈처럼 나타나 아내와 동침했다. 그리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본처는 아들 이름을 강충이라 지었다. 강충은 생김새가 단정하고 준엄하며 재주가 많았다. 성장한 강충은 서강 영안촌 부자집 딸 구치의에게 장가들어 오관산 밑 마가집에서 살았다.그 무련, 신라의 감관 벼슬을 지내고 있던 팔원이라는 사람이 풍수에 밝았다. 그가 마침 부소군에 들렀다. 부소군은 부소산 북쪽에 있었다. 팔원은 부소산의 형세는 수려한데 나무가 없는 것을 보고 강충에게 말했다.“부소군을 산 남쪽으로 옮기고 소나무를 심어 암석이 보이지 않도록 하면 거기에서 삼한을 통일하는 자가 충생할 것이오.”강충은 팡원의 말을 듣고 군 사람들과 함께 부소군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온 산에 소나무를 심고 군 이름을 송악군으로 고쳤다.그 뒤 강충은 상사찬이라는 벼슬을 받고 군 관계일을 보면서 마가갑 저택은 세를 주고 가끔 왕래했다. 강충은 많은 재산을 모으고 두 아들을 두었는데 그중 둘째 아들은 이름이 손호술이었는데, 뒤에 보육으로 개명했다.하루는 보육이 꿈을 꾸었는데, 보육이 곡령에 올라가 세상을 바라보는 꿈이었다. 꿈에 보는 산과 마을이 여간 아름답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산마루에서 산천을 굽어보다가 문득 오줌이 마려웠다. 그는 남쪽을 향하여 오줌을 누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오줌이 그치지 않고 줄기차게 쏟아져 나왔다. 그리하여 오줌은 골짜기를 넘고 들을 덮어 온 세상이 은빛 바다가 되었다. 보육은 신기한 생각이 들어 바 했지만, 어머니가 다른 이복남매 사이나 숙질의 3촌 사이, 삼촌과 조카, 친종·이종·고종과 같은 4촌간에도 혼인을 하는 경우가 고려의 왕실에서는 흔했다.이복남매간에 혼을 한 대표적인 예는 바로 광종과 문종을 들 수 있다.근친혼을 한 국왕들의 경우 27건 가운데 13건은 4촌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어 근친혼의 중심이 여기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국왕은 아니어도 왕족인 종실에서는 서로 간 에 많은 근친혼이 이루어졌다.조선시대 국왕들이 모두 다른 가문과 혼인을 한 것에 비해 고려 국왕은 34명 중 19명이 깉은 왕족 출신과 혼인을 한 근친혼이었고 여기에서 출산한 자녀 수 는 19남 22녀로 모두 41명이었다.왕실에서 이같이 근친혼이 널리 행해졌지만, 그래도 고려왕실에서는 나름대로 꺼리는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종실의 여자, 즉 왕비가 된 공주들은 모두‘왕(王)’씨를 쓴 것이 아니라 어머니나 할머니의 성을 씀으로 해서 근친혼임을 은폐하기도 했기 때문이다.이러한 왕실안에서의 근친혼은 원간섭기 이후 없어지기 시작했는데 그전까지의 대표적 왕들의 근친혼에 대해서 알아 보도록 하겠다.1) 고려 태조 왕건태조 왕건은 근친혼을 하지는 안았지만 근친혼 성행의 시발점이되는 족내혼을 치렀다.족내혼(族內婚:가족, 씨족과 같은 일정한 혈연 집단 속에서 혼인 상대를 구하는 규정)의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왕건은 혼인정책에 따라 무려 6명의 왕비와 23명의 부인을 두었다. 6명의 후비는 대부분 지방의 유력한 호족의 딸들이었다.왕건의 부인들로는 아레와 같다.·신혜왕후 유씨·장희왕후 오씨 - 1남 (무: 2대 혜종)·신명순성황후 유씨 - 5남2녀(태자 태, 요: 3대 정종, 소 : 4대 광종, 문원대왕 정, 증통국사, 낙랑공주,흥방공주)·신정왕후 황보씨 - 1남1녀(대종 욱 : 6대 성종의 부,대목왕후: 광종 비)·신성왕후 김씨 - 1남(안종 욱)·정덕왕후 유씨 - 4남3녀(왕위군, 인애군, 원장태자,조이군,문혜왕후 : 문원대왕 비, 선의왕후 : 대종 비, 공주)·헌)광종이복남매간의 혼인을 한 대표적인 케이스로 광종은 태조의 셋째아들로서 그의 어머니는 태조의 셋째부인인 신명왕후 유씨이며, 광종의 부인인 대목왕후는 태조와 넷째 부인인 신정왕후 황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광종과 대목왕후는 이복남매 사이에 혼인을 한것이다.·대목왕후 황보씨 - 2남 3녀(주:5대 경종, 효화태자,천추전부인,보화궁부인,문덕왕후:성종 비)·경화궁 부인 임씨또한 혜종이 왕규의 위협 때문에 족친 세력을 강화하기위해 자기의 맏딸을 광종의 부인으로 준다. 이밖에도 태조의 왕자와 공주가 혼인한 것은 모두 5쌍이나 된다.4)경종제 5대 경종은 4촌 누나를 5명씩이나 왕비로 삼았다.경종의 부인들로는 다음과 같다·현숙왕후 김씨·헌의왕후 유씨·헌애왕후 황보씨 - 1남(송: 7대 목종)·헌정왕후 황보씨·대명궁 부인 유씨제1비 헌숙왕후 김씨는 경순왕의 딸로 광종이 이복여동생과 혼인을 한 이후 고려왕실에서 처음 맞아들인 이성 후비이다. 헌숙왕후는 경순왕과 태조의 장년 낙랑공주 사이에태어난 딸이다. 그런데 낙랑공주는 광종의 친누이이므로 경종과 헌숙왕후는 고종 4촌관계가 된다. 헌숙왕후는 경종의 제1비이지만 가장 먼저 혼인한 부인은 아니었다. 신라왕족 혈통에다 고모인 낙락공주의 배경이 작용한듯 하다.경젱의 제2비 헌의왕후는 문원대왕 정의 딸이다. 문원대왕은 광종의 친동생이므로 경종과 헌의왕후는 4촌간이다. 제3비 헌애왕태후 황보씨와 제4비 헌정왕후 황보씨는 모두 광종비 대목왕후의 친동생인 대종의 딸이다.마지막 제5비 대명궁부인 유시는 경종의 고모인 흥방궁주가 원장태자에게 출가하여 낳은 딸로 경종과는 고종 4촌지간이었다.이후에도 많은 왕들이 근친혼을 하였다.제 11대왕인 문종은 현종과 원혜태후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부인은 현종과 원성태후 사이에서난 인평왕후와 혼인 하였다. 즉 이둘의 혼인은 이복남매간의 혼인이었다.종합하여 보자면 고려시대에 제2대왕인 혜종때부터 근친혼이 시작되어 이후 공민왕에 이르기까지 고려의 역대 34명의 국왕 가운데 절반이 넘는 27명의 국왕이 의 기반을 튼튼히 하고 순수하게 유지할 목적으로 용의 후손이라는 용종설을 내세웠다. 고려의 왕씨는 조상이 용이기 때문에 겨드랑이에 비늘이 있고, 이 비밀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서 혈족혼을 한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백성의 의식 속에 결국 왕씨는 왕이 되도록 선택받은 성씨이므로 왕씨에 대한 모반은 있을 수 없다는 관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이러한 용종설은 조선후기 유명한 유학자인 이종휘(李種徽)의 저서 『수산집』에서 볼 수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고려의 왕씨는 용종(龍種)이기 때문에 그 겨드랑 밑에 비늘이 있었다고 한다. 고려태조 왕건은 이 비밀이 밖으로 새어나갈 것을 두려워해서 자기의 식구들끼리 혼인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셋째로, 권력 투쟁 하에서 혈통의 순수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위의 용종설과 연계되어 왕가를 창건한 위치에서 왕실의 특권과 혈연적 순수성을 특히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넷째로, 왕위계승원리의 측면에서 왕실을 통합을 위해 근친혼이 행해졌다.왕위계승 자격자의 수효가 많다고 할 때, 그들의 왕위계승에서의 소외는 왕실통합이나 왕권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까닭에 왕위계승에서 소외되어 왕권에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는 전왕의 왕위계승자격자와 그들의 추종세력을 무마하기 위해서 왕위 계승권 재 부여의 의미를 가지는 왕실내 근친혼이 이뤄졌으며 그 결과 새로이 전왕과 인척관계를 맺은 근친은 왕위계승에서 여 타 경쟁자들 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왕위계승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왕실통합을 위한 하나의 제도적인 장치로써 작용하였다. 이는 건국설화에 나온 보육의 꿈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딸을 친동생에게 아내로 준 이제건의 경우를 보고 알 수 있다.마지막으로 배타적 특권을 독점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근친혼은 왕권과 권력의 문제에 깊숙이 관련되어 권력에 대한 특권을 누리고자 하는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이러한 왕실내의 근친혼으로 인하여 귀족뿐만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 까지도 널리 행해지
인적자원관리를 통해 본오케스트라 지휘자 직업 탐구교과목명 : 인적자원관리담당교수 : 김민정교수님소 속 : 경영대학 경제학부학 번 : 200510381이 름 : 고 성작년 겨울에 MBC에서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베토벤 바이러스’를 기억할 것이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강마에는 경력도 없고 실력 또한 형편없는 오합지졸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악기소리를 하나의 아름다운 선율로 융합시켜 성공적인 공연이라는 성과를 얻기 위해 단원들을 훈련?교육시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이다.기업의 크기가 거대하든지 혹은 협소하든지 간에 직원 없이 CEO 혼자 힘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없고, 훌륭한 직원들이 있더라도 CEO가 직무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거나 불성실하거나 도덕적이지 못한 경우에는 불확실성이 높은 현대의 시장에서 생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점은 마치 오케스트라와 흡사하다. 오케스트라도 지휘자 혼자의 힘으로는 아름다운 소리를 얻을 수 없다. 또한 유능한 연주자들이 있음에도 지휘자의 능력이 부족할 경우에는 단원들의 실력이하의 연주를 하게 될 것이며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이처럼 하나의 집단의 목표 및 성과를 성취하기 위해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하는 기업의 입장과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입장은 상당 부분 공통점이 존재 하기 때문에 앞으로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인적자원관리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려면…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자격증이나 나이제한과 같은 구체적인 자격 요건이 규정되어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음악이라는 분야는 다른 분야처럼 학문적인 요소가 압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휘자 개인의 재능과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유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금난새씨도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했지만 입학시험에 떨어져 청강생 자격으로 수강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열심히 노력하여 1년 만에 정식으로 입학이 허락되고 급기야 수석 졸업을 하는 영광까지 안게 되었다.대체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는 과정을 보게 되면 어렸을 때부터 음악과 악기를 다루는 것을 좋아하여 수많은 연습을 통해 이루어 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음악에 많은 관심과 재능이 있기 때문에 주로 예술 고등학교와 대학교도 음악과 관련된 전공(작곡, 지휘, 피아노 등)을 선택하여 학문을 넓혀 졸업하고 좀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시야를 넓히기 위해 오스트리아나 독일 등으로 해외유학을 가는 것이 일반적인 route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왔다고 해서 모두 단번에 훌륭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양인이라는 불리한 입지를 극복하고 세계정상의 오페라단 상임지휘자를 보냈던 정명훈씨 같은 경우도 처음에는 객원지휘자로 시작하였으며 여러 수상경력과 능력을 인정받아 현재의 위치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또한 지휘자는 청음이 중요하다. 지휘자라는 직무는 본인이 직접 악기를 연주하지 않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며 이끌어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청음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라고 표현 할 수 있다. 이 청음이라는 것이 단순히 음을 맞추는 수준이 아닌 음악의 구조 안에서 어떻게 이 음들이 흘러가는지와 오케스트라의 음색과 음향에 대해서 정확히 들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청음은 절대음감이 아닌 이상은 꾸준히 연습하는 길 밖에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투자해야만 한다. 그리고 곡에 대한 상세한 이해와 작곡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구현해 낼 줄 알아야 한다.또한 금난새씨와 정명훈씨 등 모든 지휘자가 그렇듯이 지휘자가 되기 전에 음악가이여만 한다. 악기를 하나도 다룰 줄 모르는 지휘자는 누구를 찾아봐도 없을 정도로 지휘자가 되는 것에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 또한 CEO나 인사전문가와 연계 지어 설명 할 수 있다. 기업의 CEO나 인사전문가가 각 해당 직무의 역할과 특성 등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다면 과연 기업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무리가 있듯, 지휘자 또한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고 다른 소리를 내는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 등의 특성과 역할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부족하다면 이는 음악이 아닌 소리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훌륭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될 수 있지는 않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단원들에게 정확히 전달하지 못한다면 관객을 매료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즉, 지휘자는 단순히 지휘자의 역할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단원들의 개성까지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단원들 내면의 잠재능력을 꺼내서 보편화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단원들의 장점과 단점을 잘 어울러 하나의 아름다운 선율을 내야 한다.이렇듯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기 위한 일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비록 규격화 된 자격요건은 없지만 재능과 노력, 경력 등 음악적인 면에서부터 전달력, 리더쉽 등 경영적, 인사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많은 능력들을 필요로 한다.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업무드러커의 본문을 인용하자면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전혀 성격이 다른 여러 집단을 지휘해야 하는 어려움을 갖고 있다. 물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몇 가지 중요한 도구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악보이다. 동일한 악보가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협력을 얻어내어 목표로 하는 음악을 연주 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의 악보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기업의 사명(비전, 원칙, 철학 등)이다.” 이러한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오케스트라와 기업은 업무를 수행한다.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업무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교육?훈련시키는 주체이며 결과적으로 아름다운 선율이라는 단체의 성과에 이르게 하는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휘자의 가장 큰 업무는 물론 교육훈련이지만 이것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앞서 봤듯이 인사전문가나 CEO의 역할과 매우 흡사하다.먼저,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단원을 모집 및 선발하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오케스트라 단원에서 결원이 생겼을 경우 모집을 실시하게 되는데 지휘자는 모집 테스트, 면접 등에 참가하여 지원자들의 능력과 재능을 평가하여 유능한 지원자를 발굴하여 선발하는데 큰 권한을 갖고 있다.두 번째는, 지휘자 및 오케스트라의 목표와도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교육훈련이다. 이것은 허구적인 요소가 가득한 드라마지만 형편없는 실력에서 시작하여 지휘자와 단원들의 노력으로 인해 훌륭한 연주를 이뤄내는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잘 표현되어 있다. 앞서 말했듯 악기마다 각기 다른 소리와 색깔을 가지고 있고 단원들도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서로 다른 특성들을 하나로 모우고 단원들의 잠재능력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훈련?교육하는 것이 바로 지휘자의 주요업무이며 이를 통해 업무 성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세 번째는, 지휘자는 교육훈련과 관계가 깊은 평가를 수행한다. 비록 기업과 같이 공식적인 평가는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지휘자는 단원들의 능력을 하나하나 눈여겨보며 비공식평가를 하여 단원의 재능이나 가능성을 가늠한다. 이러한 평가로 만족스럽지 않은 단원에게 드라마의 강마에처럼 “똥.덩.어.리”라고는 하진 않겠지만 보완점을 피드백해주며 개선을 위해 도움을 준다. 많은 교육 훈련을 거친 이후에도 개선되지 않고 오케스트라의 실력에 미흡하다 싶으면 해고까지 이를 수 있다. 평가 역시 기업의 CEO나 인사전문가와 비슷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지휘자의 역할은 그들 이상이다. 대부분의 CEO들은 부사장이나 중견 간부급을 감독하는데에 그치는 반면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에 속한 연자주 전원의 활동을 직접 감독하여 평가를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