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실크로드는 기원전 4000~2000년경부터 농업 문명의 출현 이후 적어도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수천 년 동안 서쪽으로 중국의 비단이 이동했다. 도시 문명의 초기 영역의 각각의 부근에 세 개의 서로 다른 경제생태학이 있었다. 양쪽 반구, 곳곳에서 기후, 토양 및 물 공급은 생산적인 농업이 만들어진다. 삼림의 모든 사람 또한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제품에 따라 지역화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야생동물을 사냥하고 식물을 채집하는 전문가가 되었고 그들의 제품, 유용한 돌과 광물을 수집하거나 교환했다. 도시지역은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에 인접하다. 그들은 서로 그들의 음식을 키우거나 가축을 기르거나 도시 경계선 내에 수요의 다른 종류를 공급을 한다. 정주문명을 유지하기위해 밖에 와의 협력이 필요하고 고대 도시들은 그들의 근원에서부터 무역 및 교류를 위한 센터다. 생태 영역이 지원되는 삶의 세 개의 서로 다른 방법 중에서, 농업이 가장 외적의 침입에 안전하다. 게다가, 잘 구조화된 정부는 최소한의 생명 유지를 제공하기 위해 기아에 시달리는 지역에 풍작의 지역에서 식품 수송 수 있다. 또한, 농업 사회에서 시장이 작물에 실패했던 분야로 이송 될 수 있는 곡식을 축적한다. 유라시아 스텝은 평야는 농촌 지역을 벗어나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동물의 무리를 유지하는 스텝의 사람들은 여기저기 자주 이동한다. 이들을 유목인이라 하는데 그들은 휴대용 텐트와 그들의 지역 안에서 지낸다. 스텝의 많은 북부와 건조한 위치로 인해, 작물 재배에 적합하지 않았다. 또 숲이 자랄 수 있는 기간도 짧고 강수량도 제한적이다. 그들은 식물을 키우기보다는 동물을 방목하였고 정착하기보다는 자주 움직였다. 그래서 건강한 말을 필요로 한다. 농업 지대에 있는 사람에 비해, 생계와 목가적인 스텝의 국민들의 삶이 문화적인 영역에서보다 덜 안전하다. 유라시아 육지에서 가장 오래된 농업 제국은 서로에서 다소 멀리 떨어져 있었고, 기원전1000년 끝날 때까지 서로 가끔 작은 접촉을 했다. 스텝의 북쪽 가장자리에, 그리 멀지 않은 북극권에서 타이가 숲으로 알려진 울창한 침엽수림 숲이 있다. 이 환경에서는 농업도 유목도 가능하였다. 타이가 숲의 사람들은 유목민의 수가 많지만, 아무도 그들의 삶이나 그들의 존재조차를 기록 않는다. 그들은 기원전 천년동안 스텝에 갑자기 출연하였다. 그러나 숲이나 스텝민족에 대해서 적은 정보 때문에 그들을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수도 있습니다.사람들은 서로의 제품에 대한 다양한 상호 욕망 있었는데, 그중의 대부분은 그들 가운데 무역과 소통의 다양한 패턴을 형성하는 구체적인 생태학적 틈새에서 왔다. 농업 지대의 도시, 초원에서 유목민 목축업, 그리고 숲의 사냥꾼과 채집 모두 자신의 특화된 자원을 통제하고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를 제작하는 동안, 그들은 또한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른 영역에서 어떤 제품을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 삶의 질을 높인다. 상호 필요와 욕망은 다양한 생태 지역들 사이에서 이러한 상호 작용을 자극하지만, 결과 접점이 반드시 그들 가운데서 좋은 관계를 생성하지 않았습니다. 각 영역 내에서 풍습과 민족의 신념이 달랐고, 종종 갈등이 생겼다. 유라시아 스텝지역에서 처음으로 말이 가축화 되었다. 말은 특히 군사적 이동수단으로 중요했다. 하지만 증기기관이 나타남으로 말의 중요성이 낮아지고 말이 이끄는 전차가 높은 기동력으로 더 중요하게 되었다. 농경민족들은 처음에 말이 어색하였으나 유목민족의 접촉으로 익숙해졌다. 유목민들의 이동하는 문화 때문에 3개의 경제생태지대가 접촉할 수 있게 되었다.이처럼 유목민족은 동서양의 문명을 이어줄 무역상의 역할을 하였고 그것을 이어주는 교역로를 만들었다. 육상 루트 중에 실크는 교역에 주가 되는 물품이었고, 세 개의 루트 중에 실크가 다닌 길이 중요한 무역로가 되어졌다. 흉노, 유목민족들은 말을 타면서 중국을 약탈했고 그 가운데서 월지는 서역과 중국 사이에서 중개 민족역할을 하였다. 흉노를 경계하기 위해 중국은 기마병을 양성해야 했고, 항상 적대적이진 않았던 월지가 무역에 파트너가 되었다. 국경무역을 시작하면서 월지 주변에서 무역을 시작했고, 중국은 유목민족인 흉노에게 조공과공주도 받치면서 일정 기간 동안의 평화를 얻었지만 중국의 한 무제 때 기마병을 양성해 나라가 강해지면서 유목민에게 조공을 받치지 않았고 그러면서 무역이 발전한다. 실크로드의 발전에서 말은 수송속도를 높였고, 군사기술도 높이는 수단이 되었다. 월지-쿠산인들은 유목민의 이동으로 정주민족 문명에 영향을 미쳤다. 그 당시 알렉산더 왕국의 한 부분이었던 박트리아 지역에서 월지는 문화를 융합시켰다. 쿠샨은 정복지의 원주민과 소통을 잘 하고, 정복지의 문화를 받아들임으로써 후반기 200년 동안 가장 부유하고 큰 나라가 되었고, 무역과 동시를 번성시켰다. 1세기에는 월지인들이 북인도로 팽창하면서 해상무역인이 동지중해로도 팽창하면서 인도부분에 새로운 해상 실크로드를 만들었다. 로마가 지중해를 통일함으로서 지중해 무역이 바닷길로 가능해졌고, 로마상인이 안전적으로 무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동쪽 무역을 독점하고 있는 파르티아와 갈등하게 되면서 결국 로마상인은 해양로드를 사용하게 됐다. 나일강에서 로마인들이 자리를 잡아 지중해 무역을 시작했다. 이후 쿠샨지역에서 거래를 하기 시작했고, 동남아 지배자들이 해상실크로드가 활성화 됐을 때 물건 뿐 아니라 문화도 수용하였다. 3세기에는 사막루트가 발전되면서 타린분지를 중심으로 북쪽에 소그드상인들이 남쪽에는 쿠샨상인들이 자리 잡았다. 소그드인들은 중국과 중앙아시아 교류의 중개인 역할을 하였다. 실크로드를 통해 여러 가지 종교도 함께 전파되는데 그 이유는 상업의 이동성과 종교의 전파성이 비슷했고, 종교는 후원과 받침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상업을 통한 수요와 공급은 절대적이며, 여러 민족들의 상업적인 교류를 통해 문화도 전파되었기 때문에 문화이동로가 상업이동로와 같을 수밖에 없었다. 3C경 혼란기임에도 불구하고 무역로가 지탱된 것은 상인공동체 같은 비정부인 종교가 교역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쿠샨의 상업과 불교가 잘 맞아서 중국에까지 전해지게 된 것이다. 중국으로 불교가 전파되면서 중국의 귀족이나 왕족은 고가품을 구매하여 종교기관에 받치는 고가품 수요자가 된다. 이렇게 불교는 고가품의 원격기 무역의 수요와 편의 시설을 제공하다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되었지만 물건에 대한 수요는 변함없었다. 그 당시 서유럽에서는 위계질서가 생기면서 실크가 권위에 상징이 되어서 독특하고 특수한 고가품의 예복을 입음으로서 권위를 나타냈다. 동유럽에서는 제국이 유지되어 보라색 실크가 최고의 권위를 상징하는 색으로서 귀족이나 왕족의 수요증가와 기부가 증가하게 된다.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기업, 조직 및 국가의 퇴보에 대한 반응 8,9장)허쉬만은 8장에서 지금처럼 미국이 존재하고 성장한 것은 항의보다 이탈을 선호한 수백만 번의 결정에 힘입은 것이라 한다. 당시 미국인들은 일단 한번 유럽에서 미개척지 미국으로 이주한다는 대단한 결단을 내렸던 사람들로서 처음 잡은 일자리가 맘에 들지 않으면 주저 없이 들고 있던 삽을 내던지고 서부에서 서부로 이주하여 새로운 땅을 일궜다는 것이다.즉 이들은 현재의 일자리가 맘에 들지 않고 수틀리면 꾹꾹 참든지 현재 상황을 개선하려고 사람들을 조직하여 싸우려 드는 대신에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이탈 옵션을 택했다는 얘기다. 미국이 19세기 중반 들어서 서부해안지역까지 인구가 들어차게 되고 실질적인 미개척지가 사라지게 됐음에도 땅덩어리가 워낙 넓은지라 심리적인 여유는 여전히 남아서 항의 대신에 이탈옵션을 선호하는 전통은 20세기까지 계속 이어지게 됐다. 이는 오늘날 히피족은 미국적 전통에 근거하여 사회질서에 대한 불만이 투쟁보다는 이탈방식으로 반향과 약간의 비정상이 기묘하게 결합되어 눈에 띄는 항의방식에 근접해간다.성공에 관한 전통적인 미국식 사고는 이탈이 국가적 상상력에서 점했던 굳건함을 확인시켜 준다. 이 모든 경우에서 이탈로 인해 기업은 제품 질에 가장 민감한 고객을, 조직은 가장 유능한 회원을 잃게 되므로 항의의 목소리는 치명적으로 약화되면서도 정작 이탈은 별 효과가 없게 된다. 즉 이탈을 행한 개인의 관점에서도 이탈은 만족스럽지 못한 실패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불이익을 당하거나 억압을 당하는 집단들이 사회적 신분상승을 하려면 이탈과 항의의 혼합이 필요할 것이다.이탈의 이데올로기는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강력했다. 미국은 이탈에 근거하여 나라가 세워지고 이를 기반으로 융성했으니 이탈이 근본적이며 또한 유익한 사회적 기제라는 믿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이탈은 그 자체로 어느 정도 반대되는 힘의 출현에 기인한다. 이론대로 하자면 기업이나 정부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면 미국인 들은 또 이탈을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탈의 현상은 상이한 양상을 띄고 있다. 미국 시민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이탈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고 이것은 약간 변형된 형태로 공직자들이 정부로부터의 이탈을 고려할 때 이를 적용 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최상의 국가에서 이탈할 생각을 갖기 힘든 만큼 후자의 경우에도 최상국가의 정부이자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정부와 인연을 끊지 않으려는 지대한 욕망이 있다. 또 강대국의 경우 이들 국가가 지고 있는 특별한 책임과 의무를 고려한다면 일상적 기준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으므로 쉽게 유사한 비교의 기준을 찾기 힘들다. 이탈은 정부성과라는 품질을 회복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위와 같은 이유로 초강대국 정부로부터의 이탈이 유독 잘 일어나지 않는다.이탈과 항의방식의 조합에 관해서도 설명하고 있는데 실제로 어느 한 가지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일어나는데 어느 방식이 우세한지 또한 어떤 방식이 더 우월하게 작용하는 지 상황과 조건을 기반으로 설명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탈방식이 있으면 항의방식을 광범위하고 효과적으로 택할 확률이 급격하게 낮아진다. 이탈을 선택하게 되면 항의를 할 수 없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항의방식은 이탈의 가능성이 사실상 배제된 조건에서만 조직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상당수의 조직에서는 항의와 이탈 중 한 가지가 지배적으로 작동한다. 경쟁적 기업체계에서는 항의보다는 이탈이 지배적이고 가족, 교회, 그리고 국가와 같은 기초적 인간집단에서는 이탈방식을 취하기는 매우 힘들다. 이들 조직에서는 기본적으로 이탈보다는 항의가 주된 방법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또한 충성심의 개념도 중요한데 고객이 이탈을 선택하면 그로 인해 확실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을 마다하고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의 개선 가능성을 믿고 이 가능성을 이탈의 확실성과 맞바꾸려는 의지, 그리고 자신이 고객 자신이 조직에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영향력의 정도에 따라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충성심은 이탈을 궁지에 몰아넣고 항의방식을 활성화 시키는데 물론 조직이 별로 마음에 안 들어도 자신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어도 충성스럽게 남아있을 수 있지만 누군가 어떤 일을 하거나 혹은 어떤 일이 일어나 그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예상을 할 수 없을 때는 충성스럽게 남아있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충성심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상황 하에서 발휘되는 조건을 살펴보고 있다.충성심의 문제는 충성심을 강화시키는 방향의 제도나 고안들이 이탈방식을 희생시키고도 항의방식을 진작시키는 데 별로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가끔 이탈과 함께 항의방식을 억압한다는 점이다. 이탈이나 항의를 통해 환류를 받는 것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조직 관리자층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지만 이들의 단기 이익은 가능한 한 회원들이 떠나가거나 불만의 목소리를 내어 성가시게 굴지 않고 자신들의 입장을 확고하게 하여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폭을 넓히는 것이다.이론적 고찰에 의해서 소비자나 조직회원들의 불만이 이탈보다 항의로 먼저 이어지며, 항의에 의해서 효과가 없으면 이탈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탈을 하기에 앞서 충성심이 이탈을 방지시켜주며, 항의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그리고 조직에 떠날 것인지, 남을 것인지에 관하여 이탈과 항의에 관해서 살펴보면 이탈은 조직의 부정적인 면과 제품질의 저하에 그 조직에서 떠나는 것을 의사를 표현한다. 이렇게 할 경우, 조직은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보지만 장기적으로는 이탈로 인해서 잘못을 빨리 파악하게 하는 경고음 역할을 한다. 항의는 조직을 떠나지 않고 제품질의 저하와 불만에 관하여 경영자에게 지적을 해주면서 기업에 남아 있는 것으로 기업에 입장에서는 단기적인 손실은 없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빠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자극이 되지 못함으로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나친 항의는 경영에 집중을 할 수 없게 만들게 함으로써 경영이 올바르게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시니어의 ‘최후의 한 시간’우선 자본론을 읽다 보면 설명 부분에서 눈 어지러운 설명들이 많아서 이해가 선뜻 되지 않는 감이 있다. 그러나 수식과 같은 것들은 마르크스가 그의 반론에 대한 과학적 신뢰성을 주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잉여가치를 말하는 데 있어서 시니어의 최후의 1시간이 얼마나 엉터리 분석 도구를 가지고 결론을 내렸느냐를 증명하는 것입니다.자본론 9장 3절 시니어의 ‘최후의 한 시간’을 설명하기에 앞서 중요한 개념에 대해 설명하려 한다. 상품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1)고정자본이 존재하는 경우 : 상품의 가치= 고정자본(기계, 공장 등)의 감가 상각액 +유동불변자본(원료, 보조원료비) +유동가변자본(임금) +잉여가치 와 2) 고정자본이 존재하지 않거나, 모든 자본이 한 번의 생산과정에서 생산물의 가치를 형성하는 경우 : 상품의 가치 = 불변자본 + 가변자본 +잉여가치 이다. 상품의 가치는 기존의 생산수단으로부터 이전된 가치와 새로 창조된 가치이라고도 부른다. 여기서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의 개념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노동자는 하루의 노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함으로써, 자기가 받은 임금 을 대체할 뿐 아니라, 자본가를 위해 잉여가치를 제공한다. 또 하루의 노동시간 중 전자에 해당하는 부분을 필요노동시간 또는 필요노동이라고 부르고 후자에 해당하는 부분을 잉여노동시간 또는 잉여노동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자본가의 이윤 또는 잉여가치는 노동자의 잉여노동이 응고한 것에 불과하다. s/v=잉여노동/필요노동. 이것을 ‘잉여가치율’이라고 부르는데, 자본에 의한 노동력의 착취도 또는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도를 표현한다. 간단히 예를 들면면사의 가치(510파운드)= 고정자본의 감가상각(20+6파운드)+유동분변자본(342+10파운드)+임금(52파운드)+잉여가치(80파운드) 일 때, 잉여가치율은 80/52 = 153 11/13% 이다.생산물의 가치구성부분을 생산물의 양이나 노동시간으로 표시하는 방법도 있는데, 자본가는 면사 20kg(가치30원)을 얻게 되는데 이 면사 총량을 그 가치구성부분으로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노동자가 하루 12시간 노동하면서 면사 20kg을 생산했기 때문에, 이 12시간도 다음과 같이 나누어볼 수 있다.면사의 가치30원 = 면화20원 + 방추4원 + 노동력의 가치3원 + 잉여가치3원면사 20kg = 13 1/3kg + 2 2/3kg + 2kg + 2kg노동일 12시간 = 8시간 +1시간 36분 + 1시간 12분 + 1시간 12분그런데 이 단순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왜곡하면 문제가 생긴다. 즉 방적공이 하루 12시간을 노동하면서 첫 8시간으로는 면화의 가치를 생산 또는 대체하고, 그 다음 1시간36분으로는 방추의 가치를, 또 그다음 1시간 12분으로는 임금의 가치를 생산 또는 대체하며, 그리고 오직 나머지 1시간 12분만을 공장주를 위해 잉여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이다.사실상 방적공은 12시간을 노동하면서 면화와 방추의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면사로 ‘이전’시킨 뿐이며, 또한 12시간의 노동을 통해 6원의 가치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면사 20kg의 가치(30원)의 구성부분들을 노동시간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1노동시간은 0.5원의 가치를 표현하기 때문이다.총 노동60시간(면사) =40시간(면화)+8시간(방추)+6시간(노동력)+6시간(잉여가치)이중 면화의 가치 40시간과 방추의 가치 8시간은 방적공이 행한 노동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면화생산자와 방추생산자가 이미 행한 노동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자본가들은 공장을 가동시켜서 재화를 생산하고, 그 재화의 가치를 화폐의 가격으로 바꾸어서 이익을 남긴다. 그렇다면 자본가들이 이익을 남기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떤 것일까? 적은 비용으로 보다 많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최소 비용에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바로 노동력을 최대한 쥐어짜는 방법이다. 또는 공장 가동 시간을 최대한 늘리는 방법이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공장주의 '권한'으로서 일일 노동시간을 대략 '12시간'에 가깝게 잡는다. 하루 12시간 일하라는 자본가의 지시에 '괘씸하게도' 노동자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이 저항이 너무도 거세었었고, 그렇게 거셌던 저항의 결과로 공장주인 자본가들은 '하루에 10 시간 이상 노동을 시킬 수 없도록 하는 법(영국의 공장법)'이 생겨났다. 자본가들은 그렇게 되면 영국 산업은 모든 이윤을 잃게 되고 곧 쇠퇴할 것이라고 반박했는데,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사람이 옥스퍼드대학의 시니어 교수였다. 자본가들은 재화를 생산하기 위해 자본을 소비한다. 그리고 소비된 자본은 재화를 생산하고 나서, 그것을 팔아 잉여가치를 생산함으로써 자본을 늘린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장이 돌아가는 시간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자본가들이 잉여가치를 생산할 수 있을까? 시니어는 이 점에 주목했다. 그의 예는 어떤 공장이 총자본 100,000원으로 80,000원은 고정자본에 투자하고 20,000원은 유동자본에 투자하며, 모든 자본은 연 1회 회전하고, 연간이윤율은 15%이며, 노동자는 매인 11 1/2시간 노동한다고 가정한다. 이 공장의 연간매상액은 (80,000+20,000)+15,000=115,000원일 것이고 이것은 노동자가 매일 11 1/2시간으로 생산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100,000원의 생산에 10시간이 필요하고 15,000원의 생산에 1 1/2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15,000원 중에는 공장과 기계설비의 마멸을 보상하는 감가상각비가 5,000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순 이윤은 10,000원에 불과하고 이것을 생산하는 데는 ‘최후의 1시간’의 노동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노동시간을 1시간 단축한다면 공장의 순 이윤이 사라질 것이고 1 1/2시간 단축하면 총이윤까지도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라는 주장이다. 다시 쉽게 말하자면 처음 8시간 정도는 원료비와 투자한 설비, 부동산들에 대한 자금의 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뒤의 2시간 정도는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과 기계와 자재들의 유지 보수비용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후의 1시간에서 2시간 남짓의 사이야말로 순이익, 말 그대로 잉여가치가 생산되는 시간이다. 이걸 매년으로 잡아보면, 매년 1시간씩 노동량이 줄어든다면 그 자본의 양적 차이는 크다. 순이익이 10시간으로 노동하는 현재의 100% 이상 차이가 난다. 만약 공장주들이 1년 투자액이 1억이라면 회수금액이 천만 원 이상 차이가 나게 된다. 그런데 공장주들은 이 마지막 1시간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순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금액에 도달한다. 이전의 10시간 노동만으로는 투자한 자본을 그대로 뽑아낼 뿐, 아무런 잉여가치를 생산할 수 없다.이에 마르크스는 시니어를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감가상각비 5,000원은 등장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고정자본도 가정에 의해 1년에 모두 마멸되어 상품의 가치에 이전되기 때문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노동자는 외부에서 구입해 온 생산수단의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임금이 10,000원인데 이윤이 10,000원 생겼다면, 하루의 노동 11 1/2시간은 필요노동 5 3/4시간과 잉여노동 5 3/4시간으로 분할된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노동시간을 1시간 단축하더라도 잉여노동은 4 3/4시간으로 단축 될 뿐이다. 이도 좀더 쉽게 말하자면 기계나 원자재들이 재화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이유는 노동자들이 노동을 통해서 재화를 생산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자재나 기계, 설비들에 대한 가치가 독자적으로 나타날 수는 없다. 공장이 돌아가는 시스템은 원자재나, 기계, 설비 등의 불변자본이 노동력이라는 가변자본을 만나 가치가 창출되는 과정이다. 1시간의 노동을 하면 그 1시간의 노동 속에는, 1시간만큼의 불변자본의 가치를 이용해 1시간가량의 노동을 함으로써 1시간 어치의 재화가 생산되는 것이다. 즉, 가변자본인 노동력과, 불변자본인 기계나 설비들에 대해서 모두 한 데 모아놓고 총 자본량의 가치를 분할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노동 없이 불변자본이 스스로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없다. 그것은 노동을 통해서만 가치가 창출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노동 시간 안에 그만큼의 불변 자본의 가치가 들어있는 것이다. 만약 최후의 1시간이 공장주들의 순이익을 창출하는 시간이고, 그 최후의 1시간이 1시간이 아닌 2시간이라면 본래 순이익의 200%를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모든 가치는 노동을 통해서 창출된다. 그 노동 시간 안에 그 시간만큼의 '불변자본의 가치(공장 설비, 기계, 원자재)+가변자본의 가치(노동임금)+기타(시설 유지비 등등)+순이익'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공장주들이 공장을 하루에 1시간을 돌리면 그 1시간만큼의 순이익을 얻는 것이고, 2시간을 돌리면 그 2시간만큼의 순이익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12시간을 돌리면 그 12시간만큼의 순이익을 얻어 순이익률은 10시간일 때 비해 20% 정도 밖에 오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