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은이태극1진달래 망울 부퍼발 돋움 서성이고쌓이던 눈은 슬어토끼도 잠든 산(山)속삼월(三月)은 어머님 품으로다사로움 더 겨워―.2멀리 흰 산(山) 이마문득 다금 언젤런고구렁에 물 소리가몸에 감겨 스며드는삼월(三月)은 젖먹이로세재롱만이 더 늘어―.▣ 핵심정리* 전개- 첫 수 : 진달래 망울이 보폼하니 부풀어서 발돋움하고 서성이는 것만 같다. 쌓이기만 하던 눈은 어느 새 녹아 사라지고, 토끼도 산 속에서 졸고 있다. 3월은 이래서 어머님의 품 속처럼 더욱 다사롭기만 하다.- 둘째 수 : 눈 쌓인 먼 산의 흰 이마가 문득 다가서 보인 것이 언제던가. 벌써 눈이 녹아 골짜기에 흐르는 물소리가 몸에 스며들 듯이 생생하다. 삼월은 날이 갈수록 젖먹이 아기가 하루하루 그 재롱을 더해가듯 귀엽고 아름답게 변해간다.* 구성 - 2수로 된 연시조(구별 배행)- 제1연 : 진달래 막 피려는 모습- 제2연 : 눈 녹은 고요한 산 속- 제3연 : 어머니 품같이 포근한 삼월- 제4연 : 먼 산에 흰 눈이 쌓였던 것이 문득 언제였던가.- 제5연 :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소리가 몸에 감기듯이 정겹게 들리는- 제6연 : 삼월은 젖먹이처럼 사랑스러운 계절이다* 주제 : 봄을 맞는 기쁨* 출전 : (1956.1)▣ 해설 12수 1편으로 된 연시조다. 1, 2의 번호를 달아 연작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곧 첫 수가 산의 정경을 주제로 독립할 수 있고, 둘째 수는 물소리를 주제로 독립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동시에 이 두 주제는 잠을 깨는 ‘봄의 숨소리’로 집약되어 하나의 연시조로 형성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해설 2자연은 위대한 어머니이다. 자연의 이법 가운데 경이롭지 않은 것이 없지마는 우리를 경탄하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이 새 봄의 절기에 따라 소생하는 것이다. 이태극은 봄의 자연에서 느끼는 설렘과 대견스러움을 섬세하게 표현하였다.‘진달래 망울 부퍼 / 발돋움 서성’인다는 1연은, 붉은 색채로 봄을 실감나게 해주는 진달래의 개화를 기다리는 설렘을 표현한 것이다. 쌓인 눈이 소리 없이 녹고 토끼도 잠든 산의 정경은 어머니의 따스한 품속에 안긴 아기의 잠 같은 평온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산은 봄이 오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구렁을 흐르는 물소리가 선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산의 계곡을 흐르는 물은 대지를 적시는 젖줄과도 같다. 시인이 물소리를 반갑게 느끼는 것은, 단지 물소리로서가 아니라 생명의 소생과 생장을 도와주는 어머니의 젖과도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삼월의 산은 그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로 느껴지는 것이며 대지의 젖줄로 인해 더욱 성장해 갈 것이다.어머니 품에서 잠들었던 젖먹이가 무럭무럭 커서 재롱이 느는 것과 같은 이치로 산의 봄 풍경은 더욱 활달한 생명력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심산 풍경(深山風景)이은상도토리, 서리나무 썩고 마른 고목 등걸,천 년 비바람에 뼈만 앙상 남았어도역사는 내가 아느리라 교만스레 누웠다.풋내기 어린 나무 저리사 우쭐대도숨기신 깊은 뜻이야 나 아니고 누가 알랴.다람쥐 줄을 태우며 교만스레 누웠다.(1937)▣ 핵심정리* 갈래 : 현대시조. 연시조* 제재 : 심산의 풍경* 주제 : 심산 고목 등걸의 초연한 모습* 전개- 첫째 수 : 도토리나무와 서리나무 등의 죽어 마른 등걸들이 천년 비바람에 씻겨 뼈만 남은 듯이 앙상하다. 그러나 이 나무 등걸은 오랜 세월을 살았고, 또 죽어서도 많은 세월을 저렇게 있었기 때문에 많은 역사를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나무 등걸의 자태를 초연하고 의젓하다 못해 교만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둘째 수 : 아직 몇 살 되지 않은 어린 나무들이 싱싱하게 살아 저렇게 우쭐대도, 자연 섭리의 그 깊은 뜻은 고목나무 등걸이 더 잘 알고 있다. 풋내기 나무들처럼 조그만 바람에도 우쭐댈 것도 없는 것이다. 다람쥐가 고목 등걸을 줄 타듯 마구 기어 다니게 가만히 내버려두고, 자기는 태연히, 그래서 오히려 교만해 보이는, 그런 자세로 누워 있다.▣ 해설 12수 1편으로 된 연시조. 고목 등걸의 형상뿐만 아니라, 그 내면까지를 들여다보고, 그 과거에 쌓인 많은 풍상까지를 보고 있다.▣ 해설 2심산의 고목 등걸을 보고, 그가 겪은 세월을 생각하고, 그 세월 속으로 잠겨 간 많은 역사적 현상을 생각할 때, 그 고목 등걸의 내면세계가 뼈만 앙상한 외형처럼 초연하지만도 않은 것을 알 수 있다.이 시조는 에 실려 있고, 작가가 1937년 여름에 제주도를 기행, 50여 수의 시조 을 지었는데, 그때의 것이라고 한다.깊은 산속의 우거진 초목 사이에 오랜 비바람에 씻겨 허옇게 누워있는 고목 등걸을 보고, 그것이 단순히 죽은 물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어린 나무나 다람쥐보다도 역사와 자연 섭리의 깊은 의미를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깨달은 것이다.
가고파 - 내 마음 가 있는 그 벗에게이은상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어린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어디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 동무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가서 한데 어울려 옛날 같이 살고지라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물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다름질하고물들면 뱃장에 누어 별헤다 잠들었지세상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여기 물어보고 저기나 알아 보나내 몫엣 즐거움은 아무데도 없는 것을두고 온 내 보금자리에 되 안기자 되안겨.처자(處子)들 어미되고 동자(童子)들 아비된 사이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워라 아까워.일하여 시름없고 단잠들어 죄없은 몸에그 바다 물소리를 밤낮에 듣는구나벗들아 너희는 복된 자(者)다 부러워라 부러워.옛동무 노젓는 배에 얻어 올라 치를 잡고한바다 물을 따라 나명들명 살까이나.맞잡고 그물을 던지며 노래하자 노래해.거기 아침은 오고 거기 석양은 져도찬 얼음 센 바람은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돌아가 알몸으로 살꺼나 깨끗이도 깨끗이.(1932.1.8)▣ 핵심정리* 갈래 : 현대시조. 연시조* 제재 : 고향* 주제 : 어린 시절의 추억을 통한 애틋한 그리움, 향수▣ 해설 110수로 된 연시조인데, 이제까지는 가곡으로 4수가 알려져 왔고, 후에 작곡가 김동진이 나머지 6수를 마저 작곡하였다. 이은상이 문단에 등장한 지 10년 만에 쓴 작품인 만큼 시상(詩想)과 시어 구사가 이전의 작품과는 달리 자기 세계를 이루고 있다. 시의 소재가 진부하고 되풀이되기 쉬운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제(詩題)에서부터 전편에 흐르는 언어의 생동감은 깊은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이 시조에서 느껴지는 것은 작가의 고향인 마산을 향하여 그리움을 새기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아니라, 바로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시인의 외침이다. 이것은 1930년대 시인의 공통적인 시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유년의 아름다움, 옛날의 시간, 그리고 장소의 평화한 풍경 속에는 그 무엇보다도 고향이 고향다움일 수 없는 일제하의 실향(失鄕), 그것을 시화한 것이며, 이 는 그 가운데서도 백미(白眉)이다.▣ 해설 2작가의 실제 고향인 경남 마산 앞 바다를 생각하며 지은 노래이다. 파랗고 잔잔한 바닷물과 날고 있는 물새들, 그리고 같이 뛰어 놀던 어릴 적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그러나 이 시조는 단순한 향수의 노래하고는 할 수 없다. 시대 배경이 1932년이란 일제 암흑기이다. 이 짙은 향수는 조국을 잃고 방랑하는 실향민들의 향수를 대변해 주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남쪽 바다’라고 한 것은 작가의 고향인 마산을 뜻하는 것이다. 바다도 물새도 마산의 자연 환경이다. 하지만, 이 시조가 작가 개인의 향수 그것만이 아니고, 당시의 현실로 보아 평화와 고향을 잃어버린 모든 동포의 가슴에 넘쳤던 향수어린 비애, 그것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특히 넷째 수의 종장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는, 과거에의 회귀가 아니라 미래에의 전진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다. 고향에 돌아가 옛날의 모든 것과 평화롭게 어울려 살 수 있는 그 시절을 찾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자는 뜻이다. 조국의 광복 없이는 이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황혼(黃昏)이육사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게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저 십이(十二) 성좌(星座)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종소리 저문 삼림(森林) 속 그윽한 수녀(修女)들에게도,시멘트 장판 위 그 많은 수인(囚人)들에게도,의지 가지 없는 그들의 심장(心臟)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고비사막(沙漠)을 걸어가는 낙타(駱駝) 탄 행상대(行商隊)에게나,아프리카 녹음(綠陰) 속 활 쏘는 토인(土人)들에게라도,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지구(地球)의 반(半)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 다오.내 오월(五月)의 골방이 아늑도 하니황혼아, 내일(來日)도 또 저 푸른 커튼을 걷게 하겠지.암암(暗暗)히 사라지는 시냇물 소리 같아서한 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5월의 병상(病床)에서▣ 구성* 제1연 : 자신과 인간의 처지 인식* 제2연 : 인간에 대한 애정의 갈망* 제3∼4연 : 애정의 대상 제시* 제5연 : 아쉬움과 내일의 기대▣ 핵심정리* 성격 : 서정적, 상징적* 어조 : 독백과 기원의 어조* 특징-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함.- 관념을 이미지화하여 표현함.* 표현 : 상징과 비유(의인, 직유)* 제재 : 황혼(黃昏)* 주제- 따뜻한 인간애(人間愛)- 황혼을 통한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 추구)* 출전 : (1935.12)▣ 해설 1이 시는 육사의 실질적인 등단작으로 ‘골방’에 있는 화자가 청자인 ‘황혼’에게 말을 건네는 독특한 화법으로 시상을 전개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화자가 처해 있는 ‘골방’과 ‘황혼’의 함축적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여기서 ‘골방’은 20년대 초 동인으로 대표되는 감상적 낭만주의 시인들이 일률적으로 추구하던 밀실과 같은 현실 도피의 공간이 아니다. 이 ‘골방’은 화자인 시인이 번민과 고뇌의 비극적 자기 인식을 하게 되는 공간이며, ‘황혼’은 식민지 현실 상황의 화자에게 안식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세계이다. 그러기에 화자는 커튼을 걷으며 외부와 차단된 고독감 속에서 안식과 평화의 황혼을 맞아들이려고 하는 것이다.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화자가 처해 있는 배경인 ‘골방’과 ‘황혼’의 함축적 의미를 알아야 한다. ‘골방’은 화자가 처해 있는 밀실(密室)이지만 도피의 공간이 아니고, 번민과 고뇌를 통하여 지구의 반쪽을 내다볼 수 있는 열려진 공간이다. ‘황혼’은 스스로는 사라지면서도 더욱 붉은 빛으로 모든 것을 품안에 안을 수 있는 사랑, 평화, 안식의 시간을 뜻한다.▣ 해설 2시적 발상의 계기는 첫 연과 마지막 연에서 드러난다. 시인은 5월의 어느 날 골방의 커튼을 걷으며 황혼에 젖은 바다와 그 위를 날고 있는 갈매기를 바라본다. 보기에 따라 아주 예사로운 이 정경은 그러나 시인에게 심상치 않은 인생의 기미를 느끼게 해 준다.김영무 교수에 의하면, “황혼은 죽어 가면서 더욱 붉은 빛으로 모든 것을 안아 들이는 크나큰 사랑”이며 그는 자신이 ‘황혼과 같은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자아의 밀실(골방)의 커튼을 열고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날 별과 외로운 수녀, 감옥의 죄인들, 사막의 행상대, 아프리카의 토인 등 모든 외롭고 괴로운 존재들을 부드럽게 안아 뜨거운 입맞춤을 보내는 것이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초연하고도 관조적인 태도로 막연한 인류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모순 속에서 버림받고 ‘의지 가지 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뜨거운 입술을 보내는 점이다. 입맞춤의 대상은 제2, 3, 4연에 열거되고 있는데, 그것들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에서 확실하고 구체적인 것으로 나아간다. 제2연의 ‘모든 것’이 제3연에서는 ‘별들’, ‘수녀들’, ‘수인(囚人)들’로 제시되고, 제4연에서는 ‘행상대’, ‘토인들’, ‘지구의 반쪽’으로 확산되어 그 자체로 하나의 점층 구조를 이루고 있다.이렇게 하여 그는 결국 ‘골방’이라는 좁은 공간으로부터 ‘지구의 반쪽’을 내다보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그의 ‘골방’은 1920년대의 시인들의 시에 흔히 나타나는 ‘밀실’이나 ‘동굴’의 폐쇄적인 공간과는 다른 것이다.그런데 그가 왜 ‘지구’라고 하는 대신 ‘지구의 반쪽’이라는 말을 쓴 것일까? 무엇보다 제4연에 열거된 ‘낙타 탄 행상대’나 ‘활 쏘는 토인들’의 의미를 무심히 보아 넘길 수 없다. 우리는 앞에서 그의 사랑의 대상이 ‘의지 가지 없는’ 사람들이기에 의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가 온통 제국주의의 활극장을 이루고 있을 때, 그들은 아직도 ‘낙타’를 타고 ‘활’을 쏘는, 소위 비문명국으로 남아서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한 사정은 당시의 우리 나라도 비슷하다. 세계가 온통 지배자의 나라와 피지배자의 나라로 양분되다시피 한 사정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지구의 반쪽’의 의미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해설 3이 시의 형태는 5연 20행에, 각 연이 4행씩 조금의 변형도 없는 정형적 형태이다. 이로 미루어 육사의 시 의식이 한시나 시조와 같은 전통적인 시 형태를 현대적으로 수용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연의 시 형태를 시상에 따라 나누면 다음과 같이 3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단락은 1연으로 전제 부분에 해당하며 화자의 독백 형태로 되어 있다. 2단락은 2·3·4연으로 황혼이라는 대상에 대한 화자의 소망을 기원문 형식을 통해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본문 부분이다. 3단락은 5연으로 다시 화자의 독백 형태로 되어 있으며 해결 부분에 해당한다.1연에서는 이 시의 핵심적 이미지인 ‘골방’과 ‘황혼’의 대립적 관계를 보여 주고 있다. ‘커튼’은 황혼의 우주와 골방의 중간 위치에 존재하며 ‘걷고’ ‘맞아들이는’ 화자의 행위에 의해 외부 세계를 그의 내면세계와 연결시켜 주는 통로 구실을 한다. 이에 따라 온 세상으로 번지고 스며들어 끝없이 확대되는 ‘황혼’이 ‘골방’으로 비쳐 들어오게 됨에 따라 ‘골방’의 폐쇄성은 황혼이 펼쳐진 우주로 개방, 확장될 수 있다.2연에서는 존재의 외로움을 인식한 화자가 ‘황혼’의 손에 입을 맞추던 소극적 행위에서 ‘황혼’이 지니고 있는 ‘모든 것에게 / 나의 입술을 보내’는 적극적 행위로 변모하게 된다. 이로써 화자는 골방의 폐쇄성에서 벗어나 황혼만큼 확대되게 된다. 그 모든 것이란 바로 3연에서의 ‘별’·‘수녀’·‘수인’과, 4연에서의 ‘행상대’·‘토인들’로, 2연에서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들이 3·4연에 이르면 확실하고 구체적인 것으로 분명해진다. 이것들은 모두 버림받은 것, 쓸쓸한 것, 외로운 것들로 화자는 그들을 부드럽게 안아 뜨거운 입맞춤을 보낸다. 이렇게 끝없이 확대되는 황혼에 의해 그 외로움이 해소되게 함으로써 화자와 대상 사이에 있는 거리감이 무너지게 되고, 공통된 의미의 동일성으로 화해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화자가 자신이 추구하려는 안식과 평화의 세계를 단지 자신에게만 실현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외로운 것들에게까지 확대시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포용성이 바로 육사의 조국애, 민족애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며, 나아가 그를 조국의 광복을 위해 처절한 역사 현장 속으로 뛰어들게 한 원동력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연보(年譜)이육사‘너는 돌다릿목에서 줘 왔다’던할머니의 핀잔이 참이라고 하자.나는 진정 강언덕 그 마을에버려진 문받이였는지 몰라.그러기에 열여덟 새 봄은버들피리 곡조에 불어 보내고첫사랑이 흘러간 항구의 밤눈물 섞어 마신 술, 피보다 달더라.공명이 마다곤들 언제 말이나 했나바람에 붙여 돌아온 고장도 비고서리 밟고 걸어간 새벽 길 위에간(肝) 잎만이 새하얗게 단풍이 들어거미줄만 발목에 걸린다 해도쇠사슬을 잡아맨 듯 무거워졌다.눈 위에 걸어가면 자욱이 지리라.때로는 설레이며 바람도 불지. 창간호(1939.4)▣ 해설 1이 시는 육사시에서 쉽게 떠올리게 되는 강인한 남성적 어조 대신 화자가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고통과 질곡, 불안 의식 등을 잔잔한 어조로 솔직 담백하게 펼쳐 보여 주는 작품이다. 주지하다시피 육사는 40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던진 시인이자 독립 운동가였다. 국내는 물론 만주와 중국 대륙을 전전하며 항일 독립 운동에 일생을 바친 그는 자그마치 열일곱 번이나 일경에 체포되어 구금, 투옥 생활을 했으며, 결국은 낯선 중국 땅에서 옥사당하고 말았다.이같이 화려한 항일 무장 투쟁 속에서도 그는 한 인간으로서 겪던 고뇌와 좌절을 솔직히 표출한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는데, 그런 특징을 드러내는 작품으로는 와 등을 들 수 있다.▣ 해설 2각 연이 2행으로 된 전 8연의 구성으로, 육사시 특유의 정형성을 보여 주는 이 시는 내용상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1∼4연의 앞 단락은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과 흘러간 세월의 덧없음을 표출하고 있다. ‘너는 돌다릿목에서 줘 왔다던 / 할머니의 핀잔이 참이라고’ 생각하는 화자에게서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던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자는 나아가 ‘강언덕 그 마을에 / 버려진 문받이였는지 모른다’고 인식할 뿐 아니라, ‘열여덟 새 봄은 / 버들피리 곡조에 불어 보’냈다고 하면서, 고통과 슬픔 속에 흘러가 버린 자신의 삶을 슬픈 눈으로 되돌아보기도 한다. 그러던 화자는 마침내 ‘첫사랑이 흘러간 항구의 밤 / 눈물 섞어 마신 술, 피보다 달더라’라며 극한적인 고통과 슬픔을 토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