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아름다움이란 무엇이며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쉽지 않은 물음이다.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고 노력해 왔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서양 철학자들은 아름다움을 분석하려고 시도했다.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움을 이상적인 것, 정신적인 것, 기능적인 것 등 세 가지로 나누었으며 플라톤은 ‘조화와 비례로서의 미’와 ‘광휘로서의 미’로 아름다움을 구분했다. 18세기 스코틀랜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미는 사물 그 자체의 성질이 아니며 사람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할 뿐이고 모든 정신은 미를 서로 다르게 지각 한다‘며 미적 주관주의를 제창하기도 했다.아름다움은 자극에 반응하는 감각이다. 아름다움이 인지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본 정의이다. 인간이 어떤 것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느끼는 과정은 시각, 청각 등 감각을 통해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자극 중에는 인간이 긍정적으로 느끼는 유형의 자극이 있고 부정적으로 느끼는 자극이 있는데 이 중 아름다움은 긍정적인 자극에서 발생하는 것이라 본다. 고대 그리스 미학에서 등장하는 ‘황금비’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시각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수적 질서를 발견하여 이를 다른 사물에도 적용하면 그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황금비로 설명하고 있다.21세기, 현대 예술의 기준은 모호해지고 있다. 낸시 랭 같이 명품을 한 가득 사면서 남성의 마초적인 면을 강조한 그녀만의 ‘행위예술’도 예술이라고 취급 받고 있는데, 무엇이 예술이 아닐까? 이런 예술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은커녕 불쾌함을 줄 수 있음에도 말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예술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예술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예술은 죽는 것이다.’예술의 아름다움을 정의하기 힘든 이유는, 사람들의 시각이 시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예술이라고 인정하는 팝아트는 아마 중세시대 즉, 종교적인 작품들을 선호 했을 때에는 인정을 못 받았을 것이다. 이렇게 예술작품은 창조된 시대에는에 와서는 고흐의 격렬한 감정들과 색채들의 조화가 인정을 받게 되었다. 소박한 풍경이나. 평상시에 보는 것들을 밝고 강렬한 색채 이용해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한 그의 작품들은 현대 대중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문학 작품이라든지, 음악이라든지, 아니면 그림이라든지, 보면 우리가 그 작품들을 특별하거나 중요시하게 여기는 이유는 우리가 그 작품에 대해 공감을 하고, 그 작품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클래식이나 성가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물론 자신의 취향에 비해 너무 졸리거나 단순할 수도 있지만 (하지만 클래식이나 성가음악 만큼 완벽하고 조화가 잘된 음악은 없다고 본다.) 그 음악들을 들으면서 불쾌함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 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유는, 아름다움은 그들을 기쁘고, 편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가진 존재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우리는 여러 가지 예술 작품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공감과 교류를 할 수 있다. 특히, 만인의 사랑을 받는 작품들에게서는, 시대나 장소가 다르더라도, 인간의 미적 취향은 기본적으로 다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예술 작품들은 우리 자신들을 보여주고, 우리의 본질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가 몰랐던 것들은 예술작품들을 보거나 들으면서 깨달을 수도 있다. 인간들이 예술 작품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궁극적인 이유는 예술 작품은 바로 자기 자신들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나의 관점에서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 먼저 사전적 의미 그대로 마음속에서 좋은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그것을 ‘창조’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을 것 같다. 음악가가 음악을 만들어 내듯이, 예술가가 예술을 만들어 내듯이, 하나님이 세상 만물을 만들어 내듯이 ‘창조’한다는 것이다. ‘창조’라는 단어는 ‘유’에서 ‘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만이 가능해 모든 시대에나 문화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과 사물에 대해서 가장 정상의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기술하거나, 공자는 우리의 인격이 지닌 내면적 가치로서의 미덕을 강조하며 예술이나 다른 사람의 행위에서 실현되는 사회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했습니다. 이제 아름다움의 본질을 아름다움과 미의 어원, 아름다움의 상대성과 절대성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1. 아름다움의 사전적 의미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사전적 의미로서의 아름다움을 살펴보자면 빛깔 소리 목소리 모양 따위가 마음에 좋은 느낌을 자아낼 만큼 곱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하다. 착하고 인정스럽다라는 뜻인 것입니다.2. 아름다움의 어원 :다음은 아름다움의 어원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말 의 어원을 몇 가지로 나우어 볼 수 있겠는데 이란 의 동명사형으로서 미의 이해 및 인식작용을 말하는 것이며, 이란 형용사로서 가치의 의미를 지닌을 뜻하는 것입니다. 격이란 마땅히 지녀야 할 품위나 분수를 말하는데, 따라서 아름다움은 앎의 정상으로서 생활감정의 종합적인 이해작용인 것입니다. 하지만 간의 지식이 발달하기 이전의 시대에는 사물에 대한 인식의 문제보다는 인간의 생존이나 생명의 유지가 더 시급한 문제였을 것으로 생각되므로 을 모든 열매의 뜻을 담은 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3. 아름다움의 상대성과 절대성 :우리는 흔히 아름답다고 할 때 ‘아름다움이 안에 있는 가 밖에 있는 가’ 혼동한다. 보통 상식적으로 아름다움은 밖에 있다고 생각한다. 밖의 꽃이 아름답고 거리에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처럼 아름다움은 밖에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미인은 둥근 얼굴을 했었지만 지금 미인은 쌍꺼풀 진 눈, 높은 코, 염색한 머리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아름다움의 가치도 바뀐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은 객관적인 대상에만 있지는 않다, 우리들의 마음가짐, 미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식에 따라서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아름답지 않은가비교하느냐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다.그렇게 본다면 행복이나 불행도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좁은 아파트에 살아도 행복했는데 친한 옆집사람이 갑자기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 거리감을 느낀다. 서민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았는데 갑자기 옆에 호화스러운 아파트가 생긴다면 상대적으로 가난을 느끼게 된다. 봉사활동을 하거나 나보다 어려운 사람의 처지를 보면 자신에 대해 안도하기도 한다. 나는 아프지도 않고 극하게 가난하지도 않고, 그럴 때 문득 행복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 불행, 아름다움, 더러움, 선과 악도 정해진 것이 없고 무엇에 비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4. 아름다움의 본질 :사람에게는 몸과 마음이 있다. 몸이 늙어가고 시들어 가지만 정신은 그렇지 않다.우리 영혼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현실은 물질을 중요시 한다. 겉모양을 중요시하고 집착을 하지만 플라톤은 이것을 정신의 그림자라고 보았다. 아름다움이란 그 외적인 것만 생각한다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내적인 것에 관을 가질 때 진정으로 아름다워질 수 있다.우리에게 있어 '아름답다'라는 말은 학문적 지식을 요구하는 어려운 말이 아닌, 누구나 느끼는 대로 쓸 수 있는 지극히 보편화되고 일상적인 언어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며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우리 삶 속의 모든 것들이 아름다울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TV 속의 연예인을 보면서, 길가는 예쁜 여자를 봤을 때 쓸 수 있는 표현이며, 잔잔히 흐르는 강을 보며, 맑고 깨끗한 하늘을 보면서도 쓸 수 있는 표현이다. 또 다정해 보이는 노부부의 편안한 미소를 보면서도 우리는 '아름답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아름답다'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①(빛깔·소리·목소리·모양 따위가) 마음에 좋은 느낌을 자아낼 만큼 곱다(예쁘다). ②(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하다. 착하고 인정스럽다. 이렇게 두 가지 뜻이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②번의 내면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①번에 가까운 외형. 가을. 겨울. 이 계절의 변화는 예전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물론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온실가스)로 인해 그 시기와 환경이 조금은 변하였지만 그래도 시간이 가면 계절이 바뀌고 가을이면 여전히 단풍이 든다. 이것이 자연의 아름다움의 기본법칙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빌딩 사이에 작은 풀이 자연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고, 개발이라는 깃발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아름다운 자연은 그 자리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개발되지 않은 바다, 강, 산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기에 누구나 개발되지 않은 자연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도심 속의 사람들은 주말이면 도시 근교의 자연을 찾아 떠나는 지도 모르겠다. 자연에서의 안식을 위해...자연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그것은 자연과 우리 자신(인간)의 일체 때문이다. 자연풍경의 아름다움과 고요함에는 인간을 자아로 되돌아가게 하는 작용이 있다. 인간은 처음부터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한 존재이기도 하다.2. 아름다움 즉 미란 무엇인가?첫째 미는 단순한 특성이지만 정의를 내리기 쉽지 않은데 이는 사람마다 직관에 따른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둘째 미는 우아함·멋·섬세함 등 다른 특정한 미적 특성 용어로 정의할 수 있는데, 이는 미를 표현할 수 있는 공통된 용어가 너무나 광범위하여, 미적 용어 자체가 몇 개의 다른 집단으로 분리될 수 있다. 우선 같은 형태·크기·색채와 같은 다른 특성으로부터 나타나지만 독립적인 특성을 갖는 섬세함 ·우아함과 같은 말이다. 너무 큰 물건이나 사람을 섬세하다고 말할 수 없고, 너무 작은 경우를 장엄하다고 할 수 없듯이, 우아하다는 말은 그 말에 적합한 움직임을 보여 주는 사람이나 사물에만 사용할 수 있다. 또한 특정한 미적 특성 용어로 미를 정의할 수 있는데, 언어란 유연하기 때문에 새로운 말을 쓰거나 이미 존재하는 말을 새롭게 사용하는 일이 계속 발생하여, 그 결과 특정한 미적 특성을 말하기 위하여 사용 가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