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차 : 인도 역사는 퓨전이다 1인더스 문명 : 인더스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인더스 문명은 고도로 발달된 도시문화를 탄생시켰다.주요 특징인더스 문명은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임BC 30C ~ 15C 경 발견되었다가 사라짐인더스 문명은 1856년 철도 건설공사 중 우연히 발견됨 : 인부들이 벽돌을 갖다 나르는 것을 보고 영국 감독관이 가 보고 수상하게 여겨 영국에서 철도공사 중단 명령을 내림.1922년부터 본격적으로 고고학적 발굴이 시작됨 : 하라빠 문명을 시작으로인더스 문명은 세계 4대 문명 중 가장 넓다.주요 도시로는 모헨조다로, 하라빠, 돌라비라 유적이며 인더스 강과 가하하크라 강 유역에 분포됨.현재 이 지역들은 매우 매마른 지역이나 당시에는 습윤 지역이 아니었을까 학자들이 추측하고 있다.인더스 문명은 주로 지금의 파키스탄 지역에 있는 인더스 강변 주변에 주로 분포 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인공위성으로 가하하크라 강 하루에서 돌라비라라는 거대한 유적을 발굴함으로써 인더스 문명의 분포범위는 인도 구자라뜨 지방까지로 확대되었다.인더스 문명의 멸망BC 30C에 시작된 인더스 문명은 BC 15C경 멸망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설은, 천재지변, 사막화, 외적의 침입에 의한 멸망 등 이다.천재지변 : 인더스 강과 가하하크라 강변에 위치하여 홍수나 강줄기의 변화로 문명이 파괴되었을 것이라는 설사막화 : 기후가 변화하여, 습윤지역이 건조 지역으로 변하면서 곡물 경작에 이상이 생겨 멸망했을 것이라는 설이다. 인장이라는 돌로 만든 도장의 그림에 보면 악어나 물소 같은 동물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습윤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외적의 침입 : 아리아 인들이 인도에 들어오면서 인더스 문명을 멸망시켰다는 설이다. 하지만 외적의 침입으로 그 큰 문명이 한 번에 망했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어 학자에 따라서는 인더스 문명의 멸망시기와 아리아 인이 인도에 들어온 시기에는 차이다 있다고 본다. 이것은 인의(Samti), 원로회의(Sabha)와 협의하며 부족국가를 이끌어간 것으로 짐작된다.아리아인은 갠지스강 유역에서 농경생활을 하면서 강상무역(갠지스 강을 통한 무역)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 때 가축 중 소가 가장 중요한 재산으로 여겨졌으며 토지에 대한 사유 재산권은 정착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사회제도아리아인들은 도시생활을 하지 않았으며 대표적인 유물도 남기지 못하였다.사회는 부계사회로서 일부일처제를 추구하였다.남아 선호사상이 지배적이어서 여성이 결혼할 때 남성에게 지참금을 가져가는 결혼지참금제도(Dowry)가 출현하였다. 현재까지도 악습이 지속되어 여성들이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삿티제도는 남편이 죽었을 때 화장을 시키는데 부인도 같이 화장하는 제도가 있었다.또한 새로운 사회질서제도인 카스트(Caste)제도와 새로운 언어인 산스끄리뜨어(Sanskrit)가 출현하였다. 힌디어의 오체이다.인도 최초의 통일왕국 : 찬드라 굽따는 갠지스강 유역을 수도로 정하여 인도 대륙 최초의 통일왕조 모리야 왕조를 성립하였다.모리야 왕조의 역대 왕들(MAURYAS)BC 322 ~ BC 301찬드라굽따(Chandragupta)BC 301 ~ BC 269빈두사라(Bindusara)BC 269 ~ BC 232아쇼카(Ashoka)BC 232 ~ BC 225다사라타(Dasaratha)BC 225 ~ BC 215샴프라띠(Samprati)BC 215 ~ BC 202샬리수카(Salisuka)BC 202 ~ BC 195데브다르마(Devedharma)BC 195 ~ BC 187사탐다누(Satamdhanu)BC 187 ~ BC 185브리하드라타(Brihadratha)모리야 왕조의 왕국의 주요 현혁인도 최초 통일 왕국BC 322년 찬드라굽따가 겐지스 중부에서 모리야 왕조를 건립하여 서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동쪽으로는 벵갈만에 이르는 인도 역사상 최초의 통일왕국을 건설함아쇼카왕의 번성모리아 왕국의 3대왕인 아쇼카는 지배영역을 확대하고 남부의 타밀지역을 제외한 전 인도를 통일함그는 불iputra)에 도읍을 정하고 영토를 네팔까지 확장굽따왕조의 제2대왕인 사무드라 굽따(Samudra Gupta, 335 ~ 380)는 왕국의 영토를 인도 중부 갠지스강 유역을 중심으로 동으로는 뱅골과 오리싸, 서쪽으로는 뻔잡지방, 북으로는 캬슈미르, 남쪽으로는 테칸지역 이전까지 확장하여 제국의 기틀을 마련함제국의 전성기(AD 380 ~ 415)찬드라굽따 2세굽따 왕조의 3대 왕인 찬드라 굽따 2세(Chandra Gupta 2, 380 ~ 415)는 혼인동맹정책 등을 바탕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을 추구하며 제국의 전성기를 이룩함이 시기는 문학, 과학, 예술, 종교 등 다방면에서 현격한 발전이 이루어져 고대 인도의 문화 부흥기로 기록됨영토를 남쪽으로는 테칸지역까지 그리고 서쪽으로는 아프간지역까지 확장훈족의 침입(AD 5C 말 경)스칸다굽따제 4대왕인 꾸마르 굽따(Kumar Gupta, 415 ~ 455)때부터 쇠퇴하기 시작중앙아시아에 있던 훈족은 4세기말 인도 서북부 지역을 침입함이에 대항하여 굽따 제국의 제 5대 왕인 스칸다 굽따(AD 455년 ~ AD 467년)는 훈족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지만, 오랜 전쟁으로 인한 경제력과 국방력의 쇠퇴로 결국 중앙집권력이 약화됨굽따 왕조의 멸망(AD 606년)굽따 왕조는 왕실의 내분, 지방토호세력들의 잦은 반란 등으로 인하여 점차 혼란에 빠져들고 AD 6C 중엽에는 제국의 명칭마저도 희미해짐또한 약 1C 동안 흉노족, 쿠샨족, 사산족 등의 외세의 잦은 침입으로 제국의 재정과 군사력의 약화제 7대왕인 나라심하 굽따(Narasimha Gupta, 510 ~ 530)이후 각 지사들이 제국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고 독립군주로 행사하면서 굽따제국은 실질적으로 멸망굽따 왕조와 힌두문화의 완성 : 북인도를 중심으로 모리야 왕조 이후 인도를 다시 통일한 굽따 왕조는 정권유지 차원에서 기득권세력인 브라만을 우대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문학, 과학, 수학, 천문학, 예술을 발전시켜 고대 인도문화, 특히 힌두문화를 부흥시킴에 인도 최초의 이슬람 왕조인 노예왕조(1206 ~ 1290)가 탄생했다. 이 왕조는 아프가니스탄 노예 출신인 쿠투브딘이 세운 왕조이기 때문에 노예왕조라 부른다. 쿠투브딘은 무하메드에게 위임 받아 통치 했었으나 무하메드가 암살 당하고 나자 자신의 왕국으로 정하였다. 이후 지왕조(1290 ~ 1320), 투그라크왕조(1320 ~ 1413), 세이여드왕조(1414 ~ 1451), 로디왕조(1451 ~ 1526)가 계속 등장하였다. 이들 왕조를 델리술탄이라 한다. 델리를 중심으로 건설한 왕조이고 왕을 술탄이라 칭했기 때문이다.무갈 제국의 건설(16C)무갈제국의 건설로 이슬람 문화가 본격적으로 뿌리 내린다.1526년 몽고제국 티무르의 5대손이며 아프가니스탄의 토호세력이었던 바부르가 인도를 침략하여 아그라를 수도로 무갈제국을 건설함16C에는 바부르에 의해 무갈 제국이 건설되었는데 바부르는 처음으로 대포와 같은 화기를 도입하고 새로운 전쟁 기법을 전파하였으며 10배가 넘는 적을 3시간 만에 초토화 시킴으로써 기존의 코끼리를 전투에 이용하던 인도에 커다란 충격을 주게 되었다. 전통 힌두 문화를 많이 말살 시킨다. 덕분에 오늘날 무슬림과 힌두의 갈등 폭력 충돌이 많다.무갈 제국의 전성기(16C ~ 17C)바부르의 3대손 악바르(1542 ~ 1605)는 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힌두들에게 부과된 인두세를 철폐하는 등 이교도에 대한 포용정책을 실시하여 사회통합을 이룩 했다. 이슬람들은 부인을 4명 둘 수 있었는데 두 명은 무슬림, 한 명은 힌두, 한 명은 기독교 부인을 두고, 네 명의 부인에게 맞는 종교 양식에 따라 각각 궁전을 지어 주었다. 힌두 세력들을 많이 포용하여 동맹을 맺고 사회 통합을 이룩하였다. 데칸 이남 지역을 제외한 인도 대륙 대부분과 아프가니스탄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함무갈 제국의 전성기 시절을 이끈 바부르의 3대손 악바르(1542 ~ 1605)는 무갈 제국을 대제국의 위치로 끌어올린 군사 책략가로 전략의 수립과 결정에 있어 상황 판단이 뛰어났으며, 나폴레옹에 체제 확립 -> 공산품 수입국, 원자재 수출국경제의 악순환 체제 정착 (저저축 -> 저투자 -> 저생산)국내 산업기반 쇠퇴 -> 특히 제조업1857년 세포이의 항쟁자신들의 경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도에서 군인들을 모집하게 된다. 이들이 세포이 이다.1875년 중반, 동인도 회사 군인의 85%를 차지했던 세포이(인도인 용병)는 동인도회사의 지배와 수탈에 대항하여 항쟁 주도항쟁은 농민과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면서 미루트에서 시작하여 델리, 아그라 등 북인도 전역으로 확산항쟁 세력은 비조직적인 전략, 공동의 목표 부재, 영국군에 대한 정보 부족 등의 원인으로 영국군에 의해 1858년 진압됨이때 시크 용병들이 영국군의 편에서 힌두와 무슬림 세포이 항쟁 세력을 진압함발단은 새로 지급된 총의 장전시 쓰이는 탄약에 힌두교와 이슬람교에서 종교적으로 금기하던 소와 돼지기름이 발라져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으며, 세포이들은 이에 분노하여 시민들과 합세해서 델리, 비하르 등 인도 북부, 동북부지역으로 진군하며 법원, 경찰서, 세무서 등 관공서를 공격함그러나 영국도 필사적으로 진압하여 작전을 펼쳐 남부 인도에 있던 영국군을 급히 파견하고 뻔잡 지방의 시크교도와 네팔의 병사들을 동원하여 세포이 항쟁을 1858년 말 진압함1858년 영국의 직접 지배 시작세포이의 항쟁은 동인도 회사의 간접 지배에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직접 지배의 계기로 작용하고 영국은 이때부터 인도의 분리통치(Divide and Rule) 정책을 실시함세포이 항쟁 진압 이후 영국은 [인도정부법]을 통과시켜 동인도회사를 철폐하고 황실이 직접 인도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또한 영국은 힌두와 무슬림이 단합해서 저항하는 것을 우려하여 이 때부터 ‘분리통치정책(Divide and Rule Policy)’을 실시했다. 이는 향후 종교를 기반으로 하여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되는 원인 제공.간디 투쟁과 인도 독립 : 영국의 식민치하에 있던 인도는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무저항운동에 힘입어 1947년 8월 15일 화적인 독립을 쟁립함
12주차 : 인도인들은 시간이 나면 무엇을 하는가?인도 영화의 역사1896년 : 봄베이의 왓슨즈 호텔에서 최초로 상영함, 열차의 도착을 처음으로 해서 17미터 짜리 6편이 상영됨, 입장료는 1루피이후 : 프랑스, 영국, 미국, 이탈리아, 덴마크, 독일 영화 등 여러 가지를 상영하였으며, 차츰 연극으로부터 대체할 수 있는 오락이 되어 사람들 사이에 정착되어 감1897년 : 최초의 인도인의 손에 의해 영화가 제작됨, 바뜨바데까르라는 사진작가가 제작함, 봄베이의 한 공원에서 레슬링 경기와 원숭이들의 유쾌한 장난을 소재로 짧은 영화를 만듬1912년 : 다다사헵 팔께가 쵤영을 착수해 1913년에 무성영화로 공개한 ‘하리쉬짠드라 왕’이 사장 오래된 장편영화로 기록됨, 인도 최초의 본격적인 극영화라고 할 수 있음, 팔께는 인도 영화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짐하리슈찬드라왕 : 고전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 소재를 따온 것이며, 힌두교 신화나 에피소드가 실린 ‘마하바라타’’라마야나’를 소유하고 있는 인도는 무궁무진한 영화 소재를 소유하고 있었고, 점차적으로 영화 제작 편수가 늘어가게 됨1931년 : 유성영화 최초제작, 뮤지컬 극영화 형태를 띰,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이행은 힌두어로 제작된 에서 시작됨, 이때부터 인도 영화는 모두 뮤지컬이 됨독립이후 : 영화계는 스타 시스템의 확립과 함께 극영화의 제작 편수는 연간 평균 300편을 넘어서 양적으로는 미국, 일본과 어깨를 겨루는 세계 3대 영화산업국의 하나가 됨, 현재 연간 1000여 편 이상의 영화를 제작하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만들고 있음동부 : 캘커타를 중심으로 뱅골어 영화서부 : 봄베이에 거점을 둔 힌디어, 마하라시트라어, 마라티어, 구자라트어, 콘카니어 영화 -> 볼리우드(봄베이와 할리우드의 합성어)남부 : 마드라스를 중심으로 타밀어, 텔루구어, 캐나다어, 말라알람어 영화인도 영화의 국제적 수준 : 1961년 이래 봄베이 동쪽 푸나의 국립영화학교에서 젊은 영화 예술가를 양성하고 있다. 리얼리즘 또는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 제작되어 국제적 평가를 높였다.1954년 : 비말로이 -> 작품으로 칸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봄베이의 명감독1955년 : 쿠와자 아마드 아바스 -> 작품을 제작하여 호평 받음캘커타의 사타지트라이 -> 작품을 발표하여 뱅골 지방의 가난한 일가를 생생하게 묘사한 리얼리즘 수법으로 세계의 주목을 끌음, , 작품을 제작하여 ‘오프 3부작’이 완성되자 영화 예술가로서의 명성이 절정에 다다름1957년 : 라즈 까뿌르 -> 제작, 감독, 주연을 겸함, 채플린과 비슷한 경향을 가진 희극배우, 작품으로 체코의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음, 작품에서 인기를 얻음과 동시에 감독으로서 인도 영화계를 대표하는 사람이 됨인도 대중 영화의 특색3시간 가량의 상영시간 (중간 휴식 10분)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인도인의 애환과 이상의 반영영화 속의 춤과 노래서구적 모방과 액션이해하기 쉬운 ‘마살라’ 영화마살라 : 힌디어로 ‘향신료, 양념’을 의미함, 즉 영화의 흥행을 위해 춤, 노래, 멜로 드라마, 스턴트, 전투, 카바레 장면, 과장된 유머를 주어진 공식대로 배합한다는 뜻. 춤, 액션, 미녀의 출현이 특징.Ex) 춤주는 무투 : 각종 스펙터클들이 맥락 없이 뒤섞여 있음. 달리는 장면은 벤허같은 블록버스터의 고전이 연상되고, 합창 장면에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연상되고, 격투 장면에서는 홍콩 무협영화가 연상된다.환타지의 제공(오락과 도덕적 교화를 모두 수행)인도인들은 왜 영화에 열광하는 것일까?인도의 영화는 인도인의 삶의 방식만큼이나 독특하다.: 판타지와 화려한 색상, 말하기를 좋아하고, 단순한 것을 좋아하고, 희극적인 요소를 좋아하는 삶과 문화를 그대로 담고 있음: 신화와 전설을 소재로 한 친숙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인도인과 정서적으로 가까워 질 수 있고 전통에 따라 중간에 춤과 노래가 곁들여짐. 인도인들의 삶의 축소판다른 여가 문화가 없다: 대도시 외에 유흥공간이나 오락시설이 없어 축제 아니면 영화만이 그들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영화가 단순하다.: 복잡하거나 심각한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편하게 즐기기 위한 가벼운 대중 영화를 선호: 인도인들은 “인도 영화에서 필요한 것은 1명의 스타와 3가지 춤 그리고 6곡의 노래이다. ”라고 말함대리만족: 가난한 계층의 고단한 삶을 위무하고 3시간 동안 극중 영웅과 감정이입을 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새로운 경쟁력 – 영화산업: 정부는 IT, BT, NT(나노), ST(우주), CT(영화산업)를 집중 육성하고 있음: 수준급 영화관이 우후죽순 건설되고 있음 -> 헐리우드 영화가 절반 이상 상영되고 있다. 영어를 할 줄 알아서 이해가 쉽기 때문에, 영화비가 매우 저렴하다.: 인도와 뉴질랜드가 문화산업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함크리켓의 개요 : 11명으로 구성된 2개조의 팀이 야구 경기와 같이 공격측과 수비측으로 나뉘어 볼을 타격하여 득점을 겨루는 경기로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국가대항은 전국이 들썩일 정도로 열광한다.스포츠 육성 : 올림픽에서 금메달 하나 딸 정도, 국가에서 스포츠에 대한 지원이 없다. 시크교들이 스포츠를 잘 하는데, 시크교들은 터번을 쓰고, 머리를 자르면 안되기 때문에 올림픽에 나갈 수 없다.크리켓의 역사 : 인도에서 크리켓의 전파는 식민지 기간 식민정부와 기독교를 전파하려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통치 및 전도의 수단도입 초기 : 영국 식민 행정부가 유럽 팀을 초청해 영국 주둔군 팀이나 인도 거주 유럽인들의 클럽 간의 게임으로 이루어짐최초 클럽 : 1879년 알리가르 크리켓 클럽, 1887년 파르시 김카나 클럽크리켓은 초기에는 인종 차별적, 계급 차별적 게임으로 등장인도의 전통 문화 파괴와 상관 없음민족주의 진영이나 종교 집단도 반대하지 않음노동자 계급에 지지기반을 두고 있는 축구 보다는 중산 계급의 스포츠 -> 신사들의 스포츠폭력의 안전장치 역할 – 영국에 대한 적대감이나 종교폭력을 줄이는 안전장치 역할 수행1920년대부터 인도에서 크리켓은 토호(영국의 간접 식민지배를 받던 소왕국, 군사권과 외교원은 없지만, 내부 치한권을 갖고 있다.)세력들의 후원을 받기 시작하면서(평화를 위해, 자신들의 기업을 선전하기 위해) 성장, 독립 이후 상업 스포츠로 자리 잡음, 영국의 식민지를 경험한 인도가 영국의 스포츠인 크리켓을 최대, 최고의 스포츠로 받아들임크리켓과 관중정확한 관중 인원의 파악이 어려운 이유: 경기가 하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5일 이상 가는 경우도 있어서 관중 인원 파악이 어려움: 운동장의 공식 수용인원을 초과(편법, 몰래 숨어들어가는 경우, 암표, 뒷돈거래 등): 게임을 관장하는 직원들의 통제불능(대부분 한정된 숫자를 초과해서 판매)크리켓에 열광인 이유: 여가생활 문화 부재: 도시 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적합한 전통 스포츠 부재: 시간적 여유 많음 – 경기장 밖에서 12시간 이상 줄서서 기다림 -> 많은 실업자: 전통사회의 축제와 같은 역할: 대리만족 – 대표 선수들을 자신의 영웅시 -> 심지어 신격화 함인도 무슬림과 크리켓: 크리켓 경기 중 최대 경기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경기임: 힌두와 무슬림 간의 갈등이 발생할 때 인도 무슬림들은 마치 파키스탄인 취급을 받음: 무슬림 크리켓 선수들은 경기에서 이길 경우 좋은 무슬림 취급을 받지만, 질 경우 나쁜 무슬림 취급을 받음: 만약 파키스탄에 인도 팀이 질 경우 무슬림 선수들은 파키스탄에 져준 것이라고 비난을 받으며 힌두 근본주의자들에게 갖은 모욕을 당하기도 함: 2003년 월드컵에서 인도가 호주에게 패하자 일부 흥분한 선수들이 무슬림 국가대표인 카이프와 드라비드 선수의 집을 습격함: 1996년 인도가 파키스탄 팀에 이기자 대표 팀 선수 중 9명을 퇴출시키고 선수들의 보수 절반을 삭감함: 무슬림들은 인도 팀이 파키스탄에 이길 경우 함께 마음 놓고 기뻐하기도 힘든 경우가 있음
4주차 – 카스트 제도란 무엇인가?카스트의 정의 및 기원정의: 카스트는 인도 전통사회의 사회적, 의례적 신분 계급구조를 가리킨다.: 카스트는 정치적, 경제적 계급이 아니다.: 카스트 계급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계급이고, 계급간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폐쇄적 계급구조이다.: 반면 클래스는 후천적으로 주어진 계급이고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개방적 계급이다.기원: 대략 기원전 1500년경에 아리아인들이 인도에 침입해 들어와 인도 토착민인 드라비다인들을 지배하게 되면서 승리자로서 또는 지배자로서의 자신들의 우월한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 승리자와 패배자의 계급구조를 제도화하면서 탄생하기 시작: 최소 기원전 1000년경에 카스트 제도가 완성된 것으로 보고있다.: 카스트 라는 단어는 인도 토착어가 아니라 포르투갈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15C경 포르투갈 사람들이 무역을 위해 인도 서부 해안에 들어와 독특한 사회적 의례적 계급구조가 인도에 있는 것을 발견한다.: 출생에 의해서 계급구조가 결정되는 것을 보고 포르투갈 말로 가문, 혈통, 종족을 뜻하는 카스타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영국인들이 카스타 라는 용어를 영어화 해서 오늘날 카스트로 부르기 시작했다. 인도 사람들은 카스트라고 부르지 않는다.바르나와 자띠의 차이바르나 제도 : 브라만(Brahmin, 사제, 학자계급), 크샤트리야(Kshtria, 지배자, 무사계급, 왕), 바이샤(Vaishya, 상인계급), 슈드라(Shoudra, 농민, 노동자 계급) 네 계급을 바르나 제도라고 한다.: 바르나의 문헌적 의미가 색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 처음에 아리아인들이 인도에 침입해 들어와 승리자인 자신들의 흰 피부색과 패배자인 드라비다인들의 까무잡잡한 피부색을 기준으로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구분하던 계급이 점차 인구가 늘어나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4계급으로 정착한 것으로 추측된다.: 바르나 제도는 인도 전체에 적용되는 광의의 계급 구분을 뜻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특정 카스트 계급에 속한 사람이 어느 지역 출신인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음식은 무엇을 먹는지 등에 대해서 알 수 없다.Ex) 인도 브라민은 채식주의자인줄 알고 있는데 동부지역에 있는 벵갈지역의 브라민은 생선을 먹기도 하고, 히말라야 산자락에 있는 북부 카쉬미르 지역의 브라민은 육식을 하는 경우도 있는 반면, 남부지역의 브라민은 채식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자띠제도 : 바르나 계급 체계가 2000~3000개의 계급으로 세분화된 카스트 계급 체계를 뜻한다. 인도에서 카스트 제도라 함은 바로 이 자띠를 의미한다.: 각 카스트 집단과 구별되는 경계를 가지고 있는 지역적인 집단으로서 다른 카스트 집단들과 일정하게 구별되는 생활방식과 행위규범들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인도에서 카스트 계급간의 사회적, 의례적 관계는 이 자띠에 의해서 이루어진다.Ex) 결혼할 쌔 출신 자띠에 따라 배우자를 선택한다. 즉, 기본적으로 카스트 집단을 폐쇄적인 내혼의 단위여서 한 카스트의 성원은 자기와 같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과 혼인을 해야 한다. 또한 출산이나 성인식, 장례식 등 중요한 통과의례를 치를 때도 대개 같은 카스트의 성원들이 중심이 된다.: 인도에서 그 사람의 전통적 세부직업, 출신지역, 쓰는 언어, 주로 먹는 음식 등을 알 수 있게 해 준다.Ex) 라오라는 성을 가진 자띠는 남인도 안드라 쁘라데쉬 주에 있는 최상층 학자 브라민 계급으로 쓰는 언어는 뗄루구이고 주식은 쌀밥이며 채식주의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야다브라는 자띠는 북인도에서 목축업이나 농사를 짓는 하층 슈드라 카스트이고 사용하는 언어는 힌디이며 주식으로는 짜빠띠를 먹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도인들은 사람들의 성을 듣고 그 사람의 카스트 계급을 짐작할 수 있다.자띠의 특성같은 성을 가진다.출생을 통해서 구성 된다.전통으로 세습된 직업이 있다.다른 자띠들과 집단간의 상하 관계를 형성한다.순수와 불순의 배타적 이데올로기로 차별한다.: 네 바르나와 수많은 자띠(카스트)집단들 간의 위계질서를 구분할 때 가장 본질적인 기준은 순수함과 오염됨 (종교적-의례적 의미)의 정도에 따라 구분한다.순수함의 요소에 속하는 것은 생명유지의 요소라고 믿는 베다경전, 태양, 갠지스강, 소, 소의 부산물들(쇠똥, 소 오줌, 우유 등)등이 있다.반면 오염됨의 요소라 믿는 것은 생명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들(시체, 피, 가죽, 때, 머리카락, 손톱, 침, 땀)등이 있다.: 각 자띠들의 전통적인 직업이 생명유지의 요소를 다루는 직업인지 아니면 생명체로부터 이탈된 것을 다루는 직업인지에 따라 그 해당 자띠의 상하관계를 따지고 결혼, 식생활 등 일상생활에서도 상호 차별을 한다.: 카스트 집단 간의 상하관계를 구별하는 기준은 그 자띠가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직업의 깨끗함과 오염됨의 정도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원칙이다.Ex) 도시 산업사회에서 나타난 새로운 직업인 공장노동자, 자동차 운전사, 은행원, 의사, 변호사, 컴퓨터엔지니어 등은 모든 자띠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따라서 대도시에서는 직업 때문에 나타난 자띠 간의 일상생활에서의 차별은 다소 약한 편이다. 하지만 무엇인가에 따라 인도에서 각 카스트 위계질서가 정해진다. 이러한 원칙은 특히 인도 농촌 지역에서 강하게 나타난다.음식물과 관련된 차별 : 인도에서 음식을 크게 빡까와 까차로 나눈다.빡까 : 우유나 유제품으로 만든 음식을 가리키는데 요즘에는 식물성 기름으로 튀긴 음식도 이 범주에 속한다. Ex) 우유 죽, 버터로 만든 볶음 밥, 튀김 등: 카스트 차별에서 다른 카스트들, 즉 상층 카스트와 하층 카스트가 함께 식사나 음식을 먹어도 상층 카스트가 하층 카스트로부터 오염되지 않는다고 믿는 음식이다.까차 : 하층 카스트와 상층 카스트가 함께 음식을 먹으면 하층 카스트의 오염원으로부터 상층 카스트가 오염된다고 믿는 음식이다. 즉 하층 카스트들의 전통적 직업이 오염을 처리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이들은 항상 오염된 상채에 처해 있는 존재라고 간주된다. 이 음식은 동종의 카스트, 즉 같은 카스트들끼리 먹을 경우만 오염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다시 말하면 상층 카스트가 하층 카스트로부터 오염된다고 믿는 음식이다.: 물이나 수증기로 만든 음식이 이 범주에 속함. Ex) 밥, 국, 북인도 사람들의 주식인 짜빠띠 등자띠 집단 간 차별: 많은 사람들이 모인 파티 장이나 피로연 등에 가 보면 항상 뷔페가 주로 나오는데 음식은 대부분 빡까로 나온다. 왜냐면 다양한 카스트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오염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빡까가 나오는 것이다. 밥도 볶음 밥, 짜빠띠도 기름에 튀겨 만든 뿌리라는 것이 나오거나 우유기름인 기를 바른 것이 나온다. 우리의 음식은 대부분 까차 범주에 들어간다. 중국음식은 튀기고 볶고 해서 많은 음식이 빡까 범주에 들어간다.근대 사회와 카스트의 변화 : 영국 식민기간 인도에 자유와 평등, 합리주의 서구사상이 들어오면서 인도의 전통적인 카스트 계급의식에 변화가 나타났고 동시에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 등이 나타나면서 전통 농촌사회에서 벗어나 도시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가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카스트 제도가 변화를 겪었다.산스크릿타이제이션(문화개작) : 하층 카스트가 상층 카스트, 특히 브라민의 생활방식을 모방하는 것을 뜻한다.Ex) 브라민이 착용하는 흰옷, 채식주의, 금주, 과부재가금지 등의 생활방식을 따라 하는 것이다. 하층 카스트들이 도시로 이주해올 경우 도시 사람들은 수많은 자띠 때문에 그 사람의 고향 사람이 아니고는 그 사람의 정확한 카스트 계급을 모른 경우가 허다하다. 이 때 이 하층 카스트들은 자신이 하층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상층 카스트, 특히 브라민들이 하는 생활방식을 모방하는 것이다.서구화 : 하층 카스트들이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개작하여 상층 카스트들과 별을 모호하게 만들자 상층 카스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고 하층 카스트들의 문화개작으로부터 차별화하기 위해서 받아들인 생활방식이 서구화다.Ex) 유학을 가고, 양복을 입고, 영어를 사용하면서 손 대신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 생활방식을 추구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상층 카스트들은 하층 카스트들과 생활방식에서 차별화를 추구하고자 한다. 대다수 하층 카스트들은 가난하여 유학을 가거나 영어교육을 배울 수 있는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비싼 양복을 입을 처지도 못 된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상층 카스트들과 하층 카스트들간의 생활방식이 구별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농촌보다는 도시에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인도 사람들이 오늘날 영어를 잘한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바로 카스트 변화에 따른 서구화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Hinduism is the way of life of Indians’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인도에서 힌두교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잘 알려주는 말이다. 말 그대로 인도인의 생활 방식 이라는 뜻이다. 힌두교는 인도에서 종교라기보다는 생활 그 차체이다. 인도인의 피를 다른 피로 수혈 시키고 사람을 바꿀 지라도 힌두교는 인도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 종교이기 보다는 인도인의 생활이 된 힌두교는 과연 무엇일까?힌두교는 인더스 문명의 토착신앙과 아리아인의 배다교, 또는 바라문교가 합쳐져 만들어진 종교이다. 힌두교는 모호하고 정형이 없으며, 다방면적이고 모든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이며 동화력이 있다고 여겨진다. 탄생시기가 없고, 창시자가 없다. 일정한 경전이 없고, 주술적인 원시 신앙에서 고등 철학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조직의 통일성이나 강제성이 없고, 일정한 예배시간도 없다. 이단이나 박해의 개면도 없다. 없는 것 투성이인 힌두교에는 중요한 사상이 있다. 바로 다르마(Dharma) 사상이 핵심으로 이는 법, 도리, 규범, 의무라고 하며 이를 잘 지키면 까르마(Karma)라고 하는 업이 잘 쌓이고, 이를 쌓으면 자신의 자아, 본질인 아트만(Atman)을 찾게 되고, 이를 찾으면 목샤(Moksa), 바로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다르마를 잘 지키지 않으면 까르마가 나쁘게 쌓여 아트만을 찾지 못하고, 목샤에 이르지 못하여 윤회(Samsara)에 쳇바퀴에 빠져 다시 탄생한다는 것이다. 힌두교에서는 윤회를 고통이라 하며 해탈은 최상의 것이라고 한다. 해탈에 이르기 위해서는 다르마를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이 핵심 사상이다.힌두교에서는 인생의 4대 가치라 해서 까마(Kama, 쾌락), 아르타(Artha, 축척), 다르마(Dharma, 실천), 목샤(Moksa, 해탈)가 있는데 이 4가지를 인생의 목적으로 여긴다.종교라고 하면 분명 섬기는 신이 있다. 힌두교는 다신교로 많은 신이 있는데 이 중에서 중요한 3신을 모신다. 우주 창조의 신인 브라마는 온화한 느낌을 갖고 있다. 우주의 보존의 신인 비쉬누는 인간세상이 어려울 때마다 화신이 되어 나타난다고 한다. 우주의 파괴의 신인 쉬바신은 우주를 파괴하여 다시 우주를 재창조 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쉬바신에게서 갠지스 강이 탄생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갠지스 강을 마시고, 목욕함으로써 오염된 부정한 요소들이 정화된다고 믿고, 사람이 죽을 경우 화장을 하여 갠지스 강에 뿌리면 완전한 파괴(해탈)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들은 삼위 일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도인들의 대다수는 비쉬누와 쉬바신을 믿고 있고, 브라마를 믿는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라고 한다. 힌두교인 들은 다섯 가지 요소인 불, 물, 바람, 하늘, 땅을 이용하여 창조의 신 브라마가 생명을 창조하고, 비쉬누가 생명을 유지하고 이후에 죽게 되면 쉬바에 의해 파괴 되는데, 이 때 쉬바는 생명을 불, 물, 바람, 땅, 하늘의 요소로 파괴한다. 이를 위해 생명을 불에 태워 재를 갠지스 강에 뿌리고, 바람에도 날리고, 미세하게 하늘로 올라가고, 일부는 땅으로 가라 앉아 파괴된다는 것 이다. 이렇게 하여 쉬바신에 의해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고 믿고 있다.이렇게 힌두교에 특징에 관하여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인도에서 힌두교는 인도인들의 삶 그 자체이다. 인간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 까지 모두 힌두교의 3신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을 정도로 태어나서부터 인도인들은 힌두교와 융화되고 있다. 보통 종교를 갖고 있는 평범한 나의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면 사람들의 삶을 좌지우지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단지 생활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어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하고, 힘을 얻고 마음속으로 의지하고 있는 정도이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매 순간 마다 힌두교가 배어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을 나누는 순간에도 힌두교의 의미가 배어 있는 것 이다. 쾌락조차 힌두교인 것 이다. 이렇게 힌두교는 인도의 전반적인 생활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 까지도 깊게 박혀 자신이 힌두교를 믿고 있지만 믿는다는 사실 조차 인식하지 못 할 정도로 생활이 되어 융합되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얼마 전에 인도를 갔다 온 사람이 찍어 온 사진을 보게 되었다. 바로 갠지스 강에서 엄청난 사람들을 화장하는 모습과, 갠지스 강에 시체를 떠내려 보내는 장면, 또 그 물에서 목욕하는 사람들과 그 물을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강 유역에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할 일을 자연스럽게 하는 모습 이었다. 인도인들에게 갠지스 강은 바로 힌두교 그 자체이며 사람들은 힌두교에서 마시고, 씻고, 볼일보고, 죽은 자를 보내는 것 이다. 힌두교와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는 인도인들. 그들의 삶에는 신이 있고, 그들 자신이 있으며 힌두교가 있다.
14주차 – 중국보다 강해질 수 있는 유일한 사회인도 사회의 변화 모습 - 신 유통 산업의 성장 속도 : 인도 사회의 변화된 모습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신 소매 유통 산업의 성장임, 백화점과 할인점 매출은 2010년까지 각각 연 29%, 51% 수준의 급성장을 지속하리라 예상됨백화점 및 할인점의 이용 고객 프로파일 종합백화점주요고객 : 20대 학생과 주부월평균 소득 : 225만원매장 방문 횟수 : 월 1회 이하평균 구매액 : 67500원으로 의류(60%)를 많이 구매평균 쇼핑 시간 : 1 ~ 2시간쇼핑 시 고려 사항 : 주차, 서비스할인점주요고객 : 30대 주부월평균 소득 : 225만원매장 방문 횟수 : 월 2회평균 구매액 : 57500원으로 식료품(30%)를 많이 구매평균 쇼핑 시간 : 1 ~ 2시간쇼핑 시 고려 사항 : 가격, 제품다양성, 서비스, 시설신 유통 산업의 성장 동인 : 인도 소매 산업은 최근 급성장 추세에 있으며, 이는 크게 5가지 요인에 기인함인구 구조의 긍정적 변화 : 인도의 평균 연령은 24세로 매우 젊으며, 이러한 인구 층의 향후 증대는 이들이 구매 가능 연령에 도달하는 시점에 수요의 고급화와 수요 규모의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됨소비자 소득 수준의 급속 향상 : 인도 중산층의 규모는 급속히 확대되고 있으며 이들의 가처분 소득 또한 늘고 있어 향후 소비 시장 규모의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됨Brand Availability의 증가 : 유통 산업의 급속 성장을 받쳐주는 원인 중의 하나는 신 유통 채널에 적합한 해외의 중, 고가 브랜드들이 최근 많이 등장하고 로컬 브랜드들의 강세 역시 두드러진다는 점소비자 Lifestyle의 변화 : 국제적인 트렌드인 잦은 노출이 인도 시장 내 신 유통 채널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킴현대식 몰의 개발 : 부동산 시장의 활황과 쇼핑몰 개발인도와 중국의 주요 경제 지표 비교21세기를 주도하는 지식 기반 산업의 메카농업사회 -> 산업사회 : 중국농업사회 -> 지식 정보화 사회인도의 IT 산업 등 관련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원 정책, 미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으로부터의 지속적인 수요 증대, 영어의 공용화, 저렴한 인건비, 이공계를 선호하는 사회풍토, 수학과학을 중요시 하는 인도 전통 교육 제도와 풍부한 인적 자원이 있기 때문이다.시장 조사 업체인 AMR 리서치에 따르면 오는 2010년 미국 IT 업무의 15%가 인도에서 처리될 것이며, 2010년 인도의 IT인력은 300만 명을 넘어설 것 이라고 예견하고 있다.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선진 기술과 경영 능력을 겸비한 인도 IT 엔지니어들이 인도로 다시 유턴하면서 이들이 배워온 첨단 지식으로 인도 지식 기반 산업은 더욱 발전하고 있다.미국 실리콘밸리의 IT 엔지니어들 중 약 30%가 인도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인도 뱅갈로드 IT단지에서 종사하는 엔지니어만 15만명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12만 명보다 많은 상황이다.해마다 인도공과대학을 비롯한 230대의 대학과 각종 교육기관에서 12만명의 IT관련 인력이 배출되고 있다.인도의 IT기술은 최근 소재, 생물, 환경, 문화 등의 분야와 융합, 결합하면서 신 산업을 창출해 나가고 있다.최근 고유가 시대를 맞이하여 화석 에너지 고갈을 우려한 상황에서 화석 에너지가 거의 필요 없는 지식 정보화 산업의 미래는 더욱 밝다고 할 수 있다.이것이 제조업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에 비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지식 정보화 산업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인도 경제의 잠재력이 주목 받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