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의와포스트모더니즘-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현상학과 실존 철학의 영향아래 있던 프랑스, 미국 등 서구 철학은 1960년대에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큰 두 물결에 휩싸이게 된다.1. 구조주의(Structuralism)구조주의는 소쉬르의 언어이론, 야콥슨의 음운론, 레비-스트라우스의 무문자 사회관찰을 통한 미개발사회의 신화의 연구방법 등으로부터 시사를 받아 주로 1960년대 프랑스에서 널리 퍼진 사상 운동이다. 어떤 사물의 의미는 개별로서가 아니라 전체 체계 안에서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여, 개인의 행위나 인식 등을 궁극적으로 규정하는 총체적인 구조와 체계에 대한 탐구를 지향한 현대 철학 사상의 한 경향이다. 이 방법의 특징은 현상의 배후에 있으면서 현상을 이루는 구조, 즉 현상 사이의 항존적인 상호의존을 밝히는 구조분석이라 할 수 있다. 구조주의는 매우 폭넓은 지적 분야를 포괄하는 이론으로 언어학, 인류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미학과 정치이론 등의 발달에 매우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다. 곧 구조주의는 단순히 철학의 한 유파라기보다는 하나의 세계관이자 그로부터 비롯된 학문적 방법론으로서의 특징을 지닌다. 대표적인 구조주의자로 정신분석학자인 ‘작 라깡’, 맑스주의자인 ‘아르츄셀’, 사회학자인 ‘로란드 바르데스’를 들 수 있다. 그러나 1970년대 구조주의의 새로운 극복을 시도하는 루카치 그리고 독일의 하인리히 롬바하가 현대 사상을 가름하는 새로운 영역을 열어주고 있다. 언어학에서 먼저 두각된 구조주의는 1960년대에 이르러 문학, 인류학, 철학, 정신분석학 등 모든 인문 사회학 분야에 폭넓게 확산되며 큰 영향을 끼쳤다. 구조주의의 중심적인 개념의 대부분은 언어학과의 연관 속에서 발전해 왔으며, 구조주의자들은 언어와 기호에 대한 탐구로부터 인간의 사회 문화적 행위를 규정하는 구조적 체계와 법칙을 밝히려 했다. 언어는 인간 정신의 구조적 측면을 가장 잘 나타내줄 뿐 아니라, 문화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그 문화권에 사지 생각해 온 것처럼 인간을 어떤 대상성 안에 넣고 객관화시켜 보려하고 그것을 전체로 알고 절대화되어 버리는 것 등은 철학사를 통해서 아는 바이다. 형이상학적인 대상화도 그렇고 또 생산력의 발전과 생산관계가 인간의 전부라고 보는 맑스주의도 그러하다. 이것들이 전체적 인간의 모습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그 대상화 혹은 객관화가 매우 중요한 것이 된다.그러나 그 대상화는 객관화에 어떤 형식 형성체를 만든다. 즉 객관적 현실은 미적으로 반영하는 것에 의하여서만 특수한 ‘현실성’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자기 창조적인 고도의 객관화하는 여건이 주어진다. 다시 말하면 과학과 예술의 관계에 있어서 일상생활 중의 전체적 인간이 변모하여 인간전체가 된다. 이 고도의 객관화 운동은 반영으로 얻어진 대상과 그의 관계가 거기에 맞는 반영형식의 기능에 대응한 동질화를 경험할 때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리고 바로 이 작용이 미적 의식이 된다. 이를테면 수학은 반영된 현실의 내용과 형용에 있어서 이와 같은 동질화가 가장 순수한 형식이라고 한다. 문학에서 보면 사회의식과 창작 사이에 있는 반영형식을 내용의 고집으로 끝내지 말고 사회현상과 창작 사이에 있는 반영형식을 내용의 고집으로 끝내지 말고 사회현상과 창작을 구조화하고 그 기능에 대응하는 동질화의 차원에서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될 때 현실은 작품으로 옮기는 발생적 연관이 주어진다. 즉 상상적 전치도 가능하게 된다. 동시에 동질화의 새로운 창조적 기능도 갖게 된다. 루카치는 문학작품을 단순한 사회 반영으로 생각하는 전통적인 문학사회학을 비판하고 이것을 독립지향의 형이상학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미적 의식이 없다고 한다. 과학적 반영과 미적 반영이 서로 ‘평행관계’로 있지만 이 둘은 같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로 이 평행관계의 기초가 되고 있다. 미적반영은 과학적 반영과는 다른 방식으로 하나의 전체성격을 가져야 한다. 과학적 반영의 경우 언제나 사실 또는 연관 그리고 법칙성의 복잡체가 문제되지만 이 복합체가 객관적으 의하여 선택되는 것이 아니고 강제적인 힘을 가지고 개인을 구속하는 객관적인 사물이다. 이같은 사회적 사실의 사실성(事實性)은 외부적 강제력과 집단 내로의 확산으로 증명된다. 존재양식이란 인구의 분포, 교통로의 수효와 성질, 주거의 양식 등인데, 이것이 사회적 기체(基體)이며, 각종 작용양식의 설명원리가 되는 것이다. 전자를 사회생리학, 후자를 사회형태학이라 부르고, 별도로 철학적 부문으로서 일반사회학을 구별하였다.마르셀 모스는 프랑스의 종교 사회학자겸 인류학자로 뒤르켐학파 확립에 공헌하였다. 그의 학문적 특색은 기존의 종교 ·주술 2원론에 대하여, 더 근원에 있는 신비적인 힘(마나)에 관하여 주장한 점이다.레비스트로스는 프랑스의 인류학자로 문화체계를 이루는 요소들의 구조적 관계라는 관점에서 문화체계를 분석하는 구조주의의 선구자가 되었다. 랑그와 파롤을 신화의 구조를 해명하는데 적용하였다. 영국 ·미국 민족학자의 영향을 받고, 프랑스에서는 M.모스가 남긴 업적과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문화체계를 이루는 요소들의 구조적 관계라는 관점에서 문화체계를 분석하는 구조주의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가 내놓은 새로운 방법은 미국에서 알게 된 야콥슨의 언어학설에서 시사받은 바 크다. 일반적으로 근대 언어학에서는 음운이나 어휘, 신택스의 시스템으로서의 랑그(코드)와, 이 시스템에 입각하여 언어 공동체 성원 간에 교환되는 파롤(메시지)을 구별하여 언어의 구조를 분석하게 되는데, 소쉬르가 언어학에서 구조주의적 인식의 기초를 만들었으며, 그의 언어학적 모델은 다양한 사회 문화 현상들에 폭넓게 적용되었다, 레비스트로스(Cloude Levi-Strauss, 1908~1991)는 이와 같은 생각을 적용하여, 집단 간의 혼인 시스템이나 신화의 구조를 해명하여 문화연구에 새로운 면을 열었다. 1946년 대작 《친족의 기본구조》를 완성하여 인류학계뿐만이 아니라 일반 사상계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다시 말하면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에 구조주의의 인식과 방법을 적용하였고, 구조주의를 현대 사상에서로 탈근대, 해체주의가 전개되면서 장 프랑스아 료타르, 미셀푸코, 자크 데리다 등의 학자들에 의해 전개된다. 이 사조는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특히 문학, 예술 면에서 두드러진 변화를 몰고 왔다. 이것은 1960년에 일어난 문화운동이면서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과 관련되는 한 시대의 이념이기도 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서구에서 근대 혹은 모던(modern) 시대라고 하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주의 시대를 일컫는다.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다. 이 운동은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학생운동 ·여성운동 ·흑인민권운동 ·제3세계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전위예술, 그리고 해체(Deconstruction) 혹은 후기구조주의 사상으로 시작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 점검과 반성을 거쳐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니체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합리주의를 되돌아보며 하나의 논리가 서기 위해 어떻게 반대논리를 억압해왔는지 드러낸다. 서양의 중세와 근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분기점은 자아의 발견이라고 할 때, 인식의 주체, 사유의 주체로서의 자아에 대한 탐구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아주 중요한 영역을 차지한다. 서양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자아 중심의 철학은 자의식의 풍부한 활동성을 강조하고 나아가 창조적 능력과 상상력을 강조하여 창조적 주체, 자유로운 개인을 핵심으로 삼는 근대 자유주의 사상의 한 토대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표방하는 것은 주체에 의해 파악된 객관적 실재가 진리의 기준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회가 이성의 힘에 의해 총체적으로 합리화될 것이라는 모더니즘의 이념의 거부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이성 중심의 세계상이 해체되고 거시적 일반 이론도 거부되며 인식론 상의 기초 이들은 서구에서 상식처 오늘날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전반에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해체 이론은 서구인들의 바로 그러한 인식의 변화를 잘 표출해 주고 있는 중요한 사고 체계이다.데리다는 지배 체제의 독선과 횡포를 가능하게 해준 것은 절대적 진리에의 확신이었다고 하며 그 현존을 부정한다. 그의 해체 이론에 따르면 진리란 당대의 지식과 권력이 담합하여 만들어 놓은 언술행위이고 또다른 진리를 침묵시킨 결과로 얻어지는 것일 뿐 결코 절대적인 존재가 될 순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해체 이론은 진리와 허위의 오랜 경계선을 무너뜨렸다. 데리다는 해체 이론을 통해 이성, 질서, 총체성 등의 존재와 회복을 신뢰하는 헬레니즘적 세계관을 해체하고 비이성, 무질서, 파편성 등을 특성으로 하는 헤브라이즘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해체 이론은 가시적인 투쟁 대상뿐만 아니라 불가시적인 투쟁 대상까지도 찾아내어 붕괴시킬 수 있는, 현대의 고도로 복합적인 시대의 한 효과적인 저항 이론이 된다.푸코는 지식이 권력에 저항해왔다는 계몽주의 이후 발전논리의 허상을 보여주고 지식과 권력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라고 말하였다. 근대 이전의 봉건사회의 권력에서는 죽음 즉 사형의 공포를 무기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질서를 유지했다고 본다. 즉 죽음의 권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왕이 없는 근대는 ‘삶의 권력’이 인간을 지배한다고 보았다. 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인은 스스로 그 사회가 정한 훈련들을 받고 그 사회가 요구하는 규격을 따라 획일화, 규격화하며 질서유지라는 삶의 권력에 종속된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생존할 수 없다고 믿어버린다. 데리다와 푸코 모두 인간에 내재된 본능으로 권력은 위에서의 억압이 아니라 밑으로부터 생겨나는 생산이어서 이성으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들뢰즈는 데리다가 철두철미한 반개념적인 철학을 견지하고 있는데 반해, 철저히 개념 철학에 의존하여 차이가 이 세계의 철학적 원인임을 규명해 나간다.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것을 긍정하고 인정함은 존재가 곧 차이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세운다.
교육사상가“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하여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B.C.384~3221. 생애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의 칼키디케 반도 북동해안에 위치한 스타게이라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마케도니아 궁전의 의사로서 아뮌타스 2세의 시의(侍醫)였을 뿐만 아니라 의학과 자연과학에 관한 저술가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집안의 관례에 따라 해부학 실습을 하고 부친의 일을 도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의 철학 속에 자연과학,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생물학에 대한 관심이 표출되고 있는 것과 또한 그의 철학사상 자체가 구체적 현실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유년시절의 주변환경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18세가 되었을 때 그는 아테네로 가서 플라톤이 설립한 아카데미아에 들어가 20여년을 배우며 연구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플라톤으로부터 사상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자신의 고유한 철학적 입장을 형성하게 되어 그 결과 철학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관하여 스승 플라톤과 견해 차이를 드러내게 되었다. 기원전 342년 마케도니아 필립왕의 아들 알렉산더가 13세일 때 그의 스승으로 초빙되었고 알렉산더가 왕위를 넘겨받아 페르시아 원정을 떠날 무렵에 아테네로 돌아온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더에게 실시한 교육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잘 알려있지 않으나 아마도 알렉산더에게 군주로서 부과된 책무나 통치의 기술에 대해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학구적 정신으로 일관하는 천재적 사색가인 반면에 알렉산더는 실천적 기백이 풍부한 행동인이라는 점에서 서로 다른 기질의 소유자였기에 이들은 스승과 제자라는 일시적 관계를 크게 뛰어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아테네로 돌아온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이온 광장에 학교를 설립하여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교육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곳에서 제자들과 숲 속을 산책하면서 강의하고 토론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파를 소요학파라고 불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이온에 방대한 서적은 물론이고 정도이다. 각각의 학문영역에 대한 그의 논의를 살펴보도록 하겠다.우선 논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연역법과 귀납법에 있어서 ‘최초의 원리’들을 말하는데, 이 원리들은 다른 것들을 증명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제일의 원리이다. 따라서 이 원리는 다른 원리에 의해서 설명되거나 증명될 수 없는 원리이다. 이 최초의 원리에는 모순율과 동일률이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이 두 가지 다 그것이 왜 그런지 증명될 수 없는 원리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너를 사랑한다’라고 하면서 또 동시에 ‘너를 결코 사랑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모순되는 것이 왜 틀린 것인지 증명할 수 없다. 또한 ‘철학은 재미있다’고 말한다면 ‘철학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이 동일률은 모순을 갖지 않으므로 옳지만 왜 옳은 것인지는 증명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모든 논리의 처음 시작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있는 것은 있다고 말하고 없는 것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 논리적 생각하기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논리는 사실을 사실로 보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있는 대로 말하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 용기는 우리를 도덕적으로 옳게 만든다.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가 이런 자기 스스로의 엄격한 사색을 통한 논리학 영역을 창시했다는 것이다. 기원후 6세기 비잔틴 시대부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적 저작 전부를 묶어 이라 부르게 되었다. 오르가논이란 ‘기관’, ‘연장’의 의미를 지니는 말로서 인간이 사고하는 데 필요한 ‘연장’ 내지는 ‘도구’를 뜻한다. 이 명칭 아래 포괄되고 있는 저서로는 , , , , , 이 있다. 이 중 에서는 삼단논법의 형식을 언급하면서 완전한 추리는 모두 삼단논법으로 표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에서는 과학적 진리의 문제를 논하는데 특히 삼단논법이 어떻게 과학에서 사용되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특히 개연성있는 변증법적 추리나 그릇된 추리를 포장하는 궤변적 추리보다는 그 목적과 내용에서 보아 엄 넓은 의미에 있어서 정치학이며 윤리학은 정치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과 은 서로 독립된 주제를 각기 분리하여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각에서 공통된 주제를 보완하고 있다. 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은 선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가치 있는 인간이 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에서 이런 인간들이 사회적 존재로서 시민이 되고 오로지 시민의 공동이익을 목표로 하는 정치만이 올바른 정치라고 본다. 그는 지배자 자신의 이익을 목표로 하는 정치는 그릇된 정치라고 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전제정치, 귀족정치, 공화정치, 참주정치, 과두정치, 중우정치 등을 분석적으로 비교하면서 그에 부수되는 여러 가지 장·단점을 논의한다. 다양한 정치형태가 역사적으로 변천하는 과정을 고찰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의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권력을 분배하고 법에 따라 최고의 주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의 좋은 성품이나 현명함은 자연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교육의 결과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한 사람이 잘 성장해 훌륭한 시민이 되는 것은 좋은 사회적 제도와 도덕적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정치학적 견해를 엿볼 수 있다. 한 개인의 성숙은 그가 살고 있는 그 사회의 정치수준, 사회 발전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억압된 사회에서 민주적이고 용기 있는 개인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권위적인 사회 속에서 자유로운 생각이 펼쳐질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생각을 기초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실현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국가보다는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현실국가를 더 염두에 둔다. 사회 정치적 공동체인 폴리스를 어느 한 체제에 한정해서 고집하지 않고 모든 분야에 중용의 원리가 적용되어 그 장점들이 최대한 활용되는 국가를 주장한다. 그의 국가관은 남들이 권하는 국가가 누구에게나 모델이 될 수 없으며 그 시민들이 자신들의 욕구에 가장 적합한 형태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자신은 민주정치보로 제시하는 질료인, 형상인, 목적인 및 운동인으로 이를 설명한다. 이밖에도 기상현상을 연구한 과 비교해부학과 생리학적 연구를 서술한 , 동물의 유전을 논의하는 과 기계적인 동물 불류방법을 비판한 등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의사였던 아버지와 집안 관례에서 자연과학적 기초를 많이 쌓았는데 그의 풍부한 경험은 이후에도 그의 자연과학에 대한 깊이있는 학문세계에 영향을 미친다.우리가 알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은 본래부터 체계적으로 저술된 것이 아니라 그의 저작을 간행한 안드로니코스가 자연학의 기반 위에 이러한 내용을 확립하려던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정신을 기리기 위해 다음에 배열하여 이라는 ‘to meta ta phy sika’로 명명한 데서 유래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형이상학을 세계의 궁극적 제1원인 내지는 제1원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라 하여 ‘제1철학’이라고 불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그의 스승과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우리가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한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우리가 사물들을 알아가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플라톤은 이데아 세계와 실제적 대상 사이의 극복되지 않는 거리를 인정하는 이원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서는 사물의 본질이란 그 사물 안에 있다는 것이다. 사물의 모습은 이 본질이 드러난 모습이라고 본다. 플라톤의 이데아에서 제시되는 실체는 결코 개별적 현상계를 초월해 있는 것이 아니며 현상계의 개별자들이 바로 실체라는 것이다. 이데아에 해당되는 보편자는 개별자들 속에 내재된 공통된 본질이다. 현상계의 개별자들이 실체이기 때문에 이는 플라톤의 주장에서처럼 영원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 및 발전해가는 그 무엇이다. 이러한 실체의 생성 및 발전을 설명하기 위한 원리로서 그는 형상인, 질료인, 목적인과 운동인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특히 형상인과 질료인으로 모든 개체적 실체는 질료와 형상의 결합체가 되며 자연적 생성의 경우에는 형상이 질료 속에 내재하여 스스로 실현함으로써 일정한 실체문에 소멸하지 않고 영원하다. 능동적 이성은 인간의 개인적인 요소와는 달리 보편적인 것으로 일시적 충동이나 욕망이 아니라 극히 추상적이며 비인격적인 형식의 정신인 것이다. 이렇듯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을 삶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인간의 ‘이성적 본성’인 로고스를 통해 일어나는 개별화는 오로지 정신적 영혼이 인식과 직관을 통해 보편적인 것에 예속될 때에만 가능하다. 생물학적 생동력을 지닌 영혼은 모든 생물에게 독특한 존재를 부여한다. 인간의 영혼은 식물적, 감각적 그리고 지적인 존재의 원리 또는 삶의 원리로 이해될 수 있다. 식물적 영혼으로서의 인간은 육체적 삶을 가능케 한다. 영양을 섭취하고 성장하며 번식하는 것은 동물적 영역이다. 감각적 영혼으로서의 인간은 감각적으로 지각하고 추구하고 지적 영혼으로서의 인간은 인식하고 의욕하게 한다. 영혼의 이러한 세 영역을 총망라하지만 인간에게서 주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인 인식을 추구하는 정신적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적 인간의 존재조건을 사회적 측면에서 보충하고 있다. 그가 에서 강조하는 바 역시 우정이 시민의 선한 삶에 지니는 의미와 역할이다. 인간이란 본성적으로 개별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존재라는 점이다. 인간은 본래부터 교유관계의 욕구나 성적 욕구 같은 사회적 생존의 욕구에 대한 운동인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본성은 오로지 사회를 통해서만 발현될 수 있기 때문에 사회라는 것은 인간에게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회는 법질서에 의한 정의를 전제로 하여 실재하는 것으로서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행복한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선하고 올바른 삶이라는 도덕적 목적을 추구한다. 이 선하고 올바른 삶이 바로 교육의 목표이다.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도덕적 준칙은 중용의 덕으로 가능하며 이러한 판단은 인간의 실천이성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성품은 덕스러운 행위를 습관화해주는 엄격하고 철저한 교육을 통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덕이 인간의 사회적 생존을 가능케 하는 선한 삶의 유일한 다.
논리실증주의 철학현대 철학의 두 줄기 - 현상학 , 논리실증주의1. 메타윤리학의 방법 근거 : 논리실증주의2. 실증성 = 검증가능성 + 논리적 체계 (감각적 경험의 자료+ 학문적으로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논리)3. 형이상학적 이론에는 부정적 ( 실증성 부족하기 때문에 이성의 사유에 의한 사변적 변론적 세계 )4. 초기 논리 실증주의 : 확실한 것만을 가지고 진리를 삼으려고 함. 그 외에는 불확실성5. 논리와 실증을 그 기준으로 함- 논리 : 진리가 가져야 할 형식적 조건(form) , 논증의 타당성 전개 (무모순성 전제) , 논리학의 형식, 기호논리학( 정언, 가언, 선언판단 )- 실증 : 틀을 구성하는 내용 (sense data) 질료, 참된 지식과 진리는 형식적 조건을 채울 수 있는 내용* 모든 철학이론은 모두 형상(형식)과 질료(내용) 중시 - 현상학, 칸트..6. 발생적 연원- 1882-1936 모리츠 슐릭 비엔나 학파 1920년 결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공동연구, 과학을 더 신뢰할 수 있는 방안 연구- 과학철학자 : 과학자이면서 과학의 방법론에 의해 공부-1919 : 비트겐슈타인 저작 을 TEXT 삼아서 연구1953 : 비트겐슈타인 후기작 , 비트겐슈타인은 영국의 화이트헤드, 러셀과 교류비트겐슈타인 - 초기 Picture theory 그림이론1. 엄격한 논리와 실증 , 실증을 더 강조 - 지적영역 제한시킴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을 지키자.)2. 참된 진리 : 사진처럼 거짓말하지 않는다.3. 사진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은 ‘언어’이다.- 사진은 대상과 합치되어야 바른 것 (대응설) : 이상적 언어에서 단어와 면제는 사실에 대응할 것이다.- 언어에도 대응하는 대상 있어야 한다.4. 검증할 수 있는 언어만이 참된 언어이다.- 사진의 기능을 못하는 언어, 찍을 수 없는 인위적 언어 = 사실성 없는 언어- 검증할 수 없는 것은 진리의 범주 속에 두면 안 된다. (사실로써 존재하지 않는 것)* 형이상학자(플라톤)- 말할 수 없는 것을 남발한다. : 진리 말하는 범주에서 이것들을 배제해야.5. 철학자는 올바른 언어와 올바르지 못한 언어를 구별해야 한다.- 언어의 분석에 치중해야 한다. (언어 분석 철학)- 자연언어 외에 전문적인 기호, 표정까지 포괄한다 : 구름이 잔뜩 끼면 비올수도.. 빨간불에서는 건너지 말라는 의미6. 언어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논의 (사실에 입각한 것을 논의해야 함)- 검증성이 가장 중요함 (검증 가능한 언명으로 환원가능하거나 검증 가능한 언명들만이 유의미하다)7. 논리적 원자론 발생 (버트란트 러셀 + 화이트헤드)- 버트란트 러셀이 철학에 있어서 처음 출발하게 된 것은 수학의 정확성에 대한 경탄 때문이었다.- 유의 철학은 수리 철학에 대해 사유하는 도중에 부각된 것 = 논리적 원자론- 논리적 원자론과 특정한 유의 형이상학을 연관시킴으로서 세계를 그의 독특하게 구성된 논리 언어에 부합되는 것으로 가정했다.- 신논리학의 어휘는 대부분 세계안의 특정 대상에 대응한다.- 논리적으로 완벽한 언어에 있어서 한 명제를 구성하고 있는 단어들은 각각 대응하는 사실의 구성요소와 일치할 것이다.8. 한계- 인간의 삶은 과학적 틀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완전한 언어에 대한 이상일뿐, 과학만으로 살 수 없다. 인문학의 역할( 예술, 종교, 문학... 무제약적, 자유분방 )후기 비트겐슈타인 Game theory 게임이론1. 게임에게 있어서 생명은 원칙, 룰이다. - 모든 게임의 규칙들의 공통점 : 유사성, 관계, 계열성 등2. 대상이 없는 추상적인 기호 상징들을 사용함에 있어 원칙이나 룰을 정해서 그에 부합되는 언어들도 참된 언어로 인식되어야 함.- 비트겐슈타인: 언어는 대상을 ‘묘사하는’기능 외에도 여려가지의 기능이 있다고 본다.- 언어는 항상 문맥(context) 속에서 기능을 발휘하며 따라서 문맥에 따른 여러 가지의 목적을 가진다.3. 모든 생활영역에 룰이 존재한다. 인생은 모두 게임이다. ( 운동경기, 학기 성적, 종교생활 )4. 형식적 측면에 초점 : 합당한 룰의 체계가 빈틈없이 잘 짜여져 있는가.- 도구의 기능분담 : 모든 언어의 골격은 논리적이라고 생각.5. 우리가 언어의 올바른 그림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문법적인 허상’에 기인한다.- 사람은 문법의 분석을 통해 언어의 논리적 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단순히 모든 언어는 각각의 피상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비슷하며 그것들의 게임방식도 유사하다고 가정.6. 완전언어에서 일상 언어로 전환- 비트겐슈타인은 분석의 계획에 있어서 논리와 완전한 언어의 구축의 입장에서 언어의 “일상 용법”에 대한 연구로 전환한다.- 러셀과 카르납의 입장에서 탈피하여 일상 언어의 분석에 대해 강조한 무어의 입장을 지지한다.- 일상 언어를 ‘상식’의 기준에 의해 검사 : 언어가 단일 모형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삶과 같이 가변적이라는 입장을 수용.- 언어를 생각함은 곧 어떤 삶의 양상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분석은 언어의 정의나 의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사용에 대한 세심한 기술에 있는 것.- “일상 생활의 사유의 주제만을 다루고 최선의 세밀한 기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1. 시대적 배경(1) 원효 통일신라시대의 불교윤리(2) 지눌 고려시대의 불교윤리2. 원효(1) 생애와 저서(2) 화쟁사상(3) 일심사상(4) 무애사상3. 지눌 사상(1) 생애와 저서(2) 돈오점수(3) 정혜쌍수(4) 신앙결사4. 원효와 지눌의 심체론 비교(1) 一心과 眞心(2) 眞如·生滅과 頓悟·漸修(3) 止觀雙運과 定慧雙修5. 결론1. 시대적 배경(1) 원효 통일신라시대의 불교윤리통일신라는 삼국 불교의 전통을 이어받아 종합·통일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대승불교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한민족 불교로 삼고 거국적인 호국불교로 정착되었다. 삼국시대 불교를 통합하며 온 국민이 불심을 중요하게 여기고 호국적 성격을 띠게 된다. 초기 불교 사상은 삼국간의 전쟁이후 주로 자기 자신의 수행과 성불에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자기 이외 다른 중생의 성불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하였다. 즉 소승불교적 성향이 강했다. 대승불교는 삼국의 통일 전후시기 비로소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다. 그리하여 통일신라의 불교는 나를 포함한 일체 중생을 열반의 피안으로 구제해야 한다는 사상이 지배적이었다.통일신라의 불교는 상류층인 왕실과 귀족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교세를 확장했다. 당시 중국 당나라의 영향으로 화엄종(華嚴宗)·법상종(法相宗)·법성종(法性宗)·계율종(戒律宗)·열반종(涅槃宗)의 5교가 형성되었고 이중에서 화엄종과 법상종이 주도적인 위치를 자치하였다. 특히 화엄종은 신라시대의 가장 큰 종파로서 다른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대승의 사상을 온 신라에 불러일으켰다. 통일신라가 안정기에 들어가면서 경의(經義)와 계율을 중시하는 교학불교가 선행하였다. 신라후기에 가면서 선(禪)사상이 대두되면서 기존 경전중심과 타력 의존적 신앙적인 교종에 비판을 가하게 된다. 선종은 당시 불교에 새로운 체질개선을 요구한 것이다. 즉 기성 교종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의 사색을 통하여 진리를 깨닫기 위해 개인의 정신세계에 몰입하였다. 또 중앙귀족들이 교종에 심취한 반면 선종은 각 지방의 독특한 선풍에 따라 구산선문(九山禪기 위한 의도에서였다. 원효가 살았던 당시 신라 불교계는 교리상의 견해 차이로 이론이 분분하였다.통일을 준비하는 신라의 입장에서는 사상의 통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히 요청되었다. 이에 원효는 여러 쟁론들을 하나로 회통(會通)시켜 ‘화쟁’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은 바로 여러 갈래의 이론을 통합하는 방법을 제시한 저술이다. 여기서 ‘십문’이란 쟁론을 일으키는 불교의 모든 갈래의 이론과 입장을 통칭하는 의미이다. 이 중 특히 중관학파와 유식학파의 대립은 가장 심각했다. 당시 불교계에서 2대 조류는 중관파(中觀派)와 유식파(唯識派)였다. 중관학파의 청변(靑變)에 의하면 망집(妄執)의 부정은 끊임없이 계속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모든 법은 공(空)이요 생(生)함도 없어 본래 고요한 것이다. 원래 사물의 비본질성을 드러내는 반야공(般若空)사상인데 공(空)이란 개념에 사로잡혀 정도(正道)를 벗어나는 결과로 초래하기도 하였으니 이때는 무론(無論)또는 공론(空論)으로 떨어지게 된다. 즉 중관학에서는 현상의 비본래성을 밝히고 그것을 부정하여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것인데 부정을 파(破)하고 또 파하여 철저한 부정에 떨어짐으로써 마침내 허무주의적 경향을 띠게 되었다. 이에 반해 유식학파의 호법(護法)에 의하면 주관적 인식의 대상은 비록 공(空)하지만 인식 그 자체까지는 없다고 할 수 없으므로 모든 법은 유(有)와 무(無)에 통한다고 주장한다. 유식학은 생멸변화하는 현실에서 출발, 생멸변화에 대한 번뇌망상을 타파하면 진여자성(眞如自性)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유식학에서는 인간의 의식구조에 대한 예리한 탐구를 본령으로 하나 자칫 잘못하면 개념에 사로잡혀 유론(有論)에 떨어질 위험이 있다. 이 유식학에서는 모든 교리를 잘 분별하고 정립하기는 하지만 유(有)에 집착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원효 당시의 불교는 이런 중관, 유식의 잘못된 이해로 유·무론에 떨어져 매우 편협하였고 백가의 이쟁(異諍)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3) 일심사(要)는 여러 가지가 하나로 통합됨을 말한다. 그래서 종요의 개념은 개합의 그것과 통한다. 즉 의식과 가치의 다양성과 동일성의 원초적인 뜻이 여기에서 나타난다. 원효의 진리 연구법은 개합의 논리에 섰고 경론의 연구는 종요의 입장에서 전체를 먼저 살리고 개합으로 전개해 나갔던 것이다. 입(立)의 개념은 긍정적 정립이며 파(破)는 부정적 논파의 자세를 뜻한다. 긍정의 여(與)를 원효는 허여(許與)라고 명명하였는데, 그것은 부정의 탈(奪)이라는 불허(不許)와 대칭된다. 불교적 길은 모든 분별과 경계를 넘어서 궁극적으로 일심의 근원으로 귀일하는 데 있다 불도(佛道)에 의해서 국민의 정신을 ‘한마음’으로 귀일케 하기 위하여 긍정과 부정, 허여와 불허의 두 변이 있게 됨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하겠다. 원효는 모든 논쟁이란 결국 마음의 집착에서 생긴다고 보았다. 같고 다름은 서로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상관성의 문제이므로 모든 것의 인식은 의정불이(依正不二)의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同)과 이(異), 유(有)와 무(無)의 대립은 의정불이라는 정신의 세계로 용해될 때 화합과 화평의 길이 열린다. 불교적 길은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을 별개의 독립된 두 극(極)으로 보지 않으면서도 하나로 획일화하지도 않는 비동비이(非同非異)로 묘합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씨앗과 열매와의 관계, 너와 나와의 관계, 옛날과 지금과의 관계 등은 모두 의정불이(依正不二)의 관계이다. 이런 관계는 불일(不一)이면서 불이(不異)하고, 부단(不斷)이지만 동시에 불상(不常)하고 불입(不入)이지만 불출(不出)하고 불생(不生)하면서 또한 불멸(不滅)한 사이를 뜻하는데 원효는 그것을 단적으로 이변비중으로 표현하였다.원효는 ‘환귀일심 이익중생(還歸一心 利益衆生)’을 강조했다. 이는 ‘일심으로 돌아가서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원효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존재의 원천인 일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일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 함께 고려불교의 사상적인 전통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그는 8세에 입산하여 25세에 승과에 합격한 후 청원사에서 『육조단경』을 읽다가 깊은 종교적 체험을 하였다. 이후 선(禪)과 교(敎)가 계합하는 근거를 찾기 위해 3년간 대장경을 열람한다. 그는 이통현의 『화엄론』에서 선·교가 둘이 아님을 확신하고 ‘세존이 입으로 설한 것이 교(敎)요, 조사가 마음에 전한 것이 선(禪)이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수행과 탐구를 통한 체험과 확신을 바탕으로 명종20년(33세)에 팔공산 거조사(居組寺)로 옮겨 정혜결사를 실천에 옮겼다. 이것은 고려불교를 일시하려는 운동으로 재물과 권세에 연연하여 깨달음과 중생구제라는 불교 본래의 목적을 잃고 타락해 가던 당시의 불교계를 질타하고 새로운 수행공동체 건설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선종과 교종, 유가와 도가를 막론하고 높은 뜻을 가지고 티끌 같은 세상을 벗어나 고고하게 세상밖에 노닐면서 오로지 내적 수행의 길을 정진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비록 옛날 함께 약속했던 인연이 없을지라도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뒤에 서명할 것을 하락하였다. 그 수해방법에 있어 참선과 교학을 병행하는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 자신이 곧 부처임을 믿고 이해하는 것을 의지에 돈오(頓悟)의 길로 들어가는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 화두를 들고 선(禪)을 수행하여 직접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간화경절문(看話徑截門) 등 3가지 길을 제시했다.대표적인 저서로는 『수심결(修心訣)』,『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진심직설(眞心直說)』,『법집별행록절요(法集別行錄節要)』등이 있다. 지눌의 불교사상은 고려불교의 문제에 대한 처방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밖으로는 정치적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타락한 궁중불교를 바로잡아야하고 안으로는 선·교 간의 대립과 갈등를 해소해야 했던 것이다. 그는 불교인 모두가 수심(修心)에 투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업무는 수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깨침(頓)과 닦음(修)의 성격과 체계를 밝히는 것툼만 일삼던 불도들을 정혜쌍수하는 관점에서 하나로 융합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눌이 선을 앞세웠다고 해서 단순히 선의 우위만 강조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세존이 입으로 설한 것이 교(敎)요, 조사가 마음에 전한 것이 선(禪)이다’라는 결론처럼 선과 교는 근원에 있어서 다를 리 없음을 주장한다.(4) 신앙결사요세(了世 1163-1245)의 백련결사는 지눌의 정혜결사의 영향을 받고 그에 맞서 일어난 천태종의 법화결사(法華結社)이다. 결사의 사상적 동기는 지눌과 다른 바가 있지만 그 역시 실천수양을 강조한 면에서는 지눌과 유사하였다. 당시 불교계와 사회를 말법관(末法觀)이라는 입장아래 인식한 법화사상(法華思想)과 정토신앙(淨土信仰)을 통하여 당시 실천적인 윤리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와 성격이 수선사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신앙결사운동은 당시 무신란 이후 불교계의 타락을 극복해 나가려는 자기 반성운동이었다.정혜결사와 법화결사는 종지(宗指)나 수행방법에서 좀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같이 당시 교계의 부패와 정치적 오염을 반성하고 전통적인 선(禪)·천태사상(天台思想)을 수정, 보완하여 새로운 사상 운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특히 일반 지식층과 대중을 상대로 한 새로운 불교운동으로서 매우 의미가 컸다. 신앙결사로 나타난 13세기 불교계의 혁신 운동은 원의 간섭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그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새로운 대원관계가 이루어지는 정치적·사회적 변동과 더불어 불교계도 그 영향을 받아 변질되었다. 그리하여 명리(名利)를 버리고 세속에 초월하여 심성을 수양하자는 순수 불교운동은 쇠퇴하고 다시 정치에 직·간접으로 깊이 연루되고 귀족불교로 변질되었다. 그리하여 불교가 고려시대를 통관하여 수행해 온 중생의 제도(濟度) 및 교화에 대한 사회적 기능은 점차 발휘되지 못하였고 시대 모순을 극복하는 새로운 정신세계의 제시도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 불교는 점차 쇠퇴의 길로 들어선다.4. 원효와 지눌의 심체론 비교원효와 지눌의 사상에서
칸트칸트는 기존 합리론이나 경험론의 수용과 해석에 머무르지 않고 비판적 관점에서 독창적으로 자신의 철학체계를 고안한다. 그러한 비판적 사유가 새로운 철학체계를 완성된 것이 1781년에 출간된 『순수이성비판』이며, 여기서는 순수이론적 이성에 대한 고찰로서 진리(眞)의 인식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1788년에 출간된 『실천이성비판』에서는 순수 실천적 이성에 대한 고찰로서 도덕(善)의 실천문제를 논한다. 이론과 실천, 현상세계와 이념세계는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하는 문제는 예술에서의 미적 판단(美)과 자연의 합목적성의 문제로 집약되어 1790년에 출간된 『판단력 비판』에서 논의된다. 이 세 비판서는 인간의 이론적 인식과 도덕적 실천 그리고 감정과 정서를 다룸으로써 眞, 善, 美 또는 인간의 인식과 의지와 감정의 세 영역을 포괄적으로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칸트에게 있어 근대 철학의 근본 문제는 ‘선험적 종합판단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이었고 그것을 규명하기 위해 비판철학의 전체적인 구도를 잡게 된다. 그의 철학적 근본문제의 해결 실마리가 어떻게 풀어가게 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칸트는 철학의 근본문제를 단 하나로 정리하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이다. 그는 철학의 근본문제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세분한다. 첫째,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 물음이고 둘째, ‘인간은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라는 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윤리학적 물음이다. 셋째, ‘인간은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라는 것으로 이론적으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믿고 희망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종교적 물음이다. 첫 번째가 이론적 인식대상이 되는 현상세계의 존재와 그 인식에 관한 논의라면,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실천적 행위의 성립근거와 그 지향점에 대한 윤리적이며 종교적 차원의 논의이다. 이렇게 해서 칸트가 제기하는 철학의 세 가지 물음은 두 가지 차원, 즉 인식대상인 존재와 실천적 당위, 현실과 이념의 차원에 관한 논의로 요약되며판』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진다.우리는 대체로 통일적인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칸트는 현실과 이념, 즉 존재와 당위사이를 오가면서, 그 둘이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둘의 관계에서 성림하면서 그 둘을 매개하는 것을 ‘느낌’, ‘정서’라고 칭한다. 따라서 존재와 당위의 관계에 대한 물음을 그 관계 속의 인간에게 적용하면 앞의 세 물음에 이어 다음과 같은 네 번째 물음이 성립한다. ‘인간은 무엇을 느끼는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존재는 자연세계를 뜻하고 당위는 이념을 실현하는 행위의 자유에 기반한 것이기에 이는 곧 자연과 자유의 관계에 간한 물음이기도 하다. 칸트는 자연과 자유 , 다시 말하면 객관과 주관의 형식적 일치관계를 ‘합목적성’으로 그리고 그 합치에서 발생하는 느낌을 ‘미감적 쾌감’으로 설명한다. 예술과 자연의 합목적성을 논하는『판단력 비판』은 실천적 행위근거로서의 주체의 자유를 논하는 『실천이성비판』에 이어 그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그는 인식하고 실천하고 느끼며 사는 인간 자신을 하나의 통일적 인격으로 이해하기 위한 철학적 노력의 결과라고 불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현상에 대한 선험적 인식의 문제, 도덕과 종교의 문제, 예술미와 자연목적에 관한 문제를 알아보겠다.칸트의 문제의식은 기존 합리론자들의 이론들과 경험론자들의 이론들 모두에 의문을 품는다. 세계에 대한 보편타당한 필연적 인식을 신이 부여한 이성의 본유관념으로 설명할 경우 독단론에 빠진다고 보았고, 또 세계 자체의 경험으로 설명할 경우에는 회의론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는 합리주의적 독단론도 아니고 경험주의적 회의론도 아닌 제 3의 길을 개척하는데 이것이 바로 칸트의 비판철학이다.칸트는 『순수이성비판』서두에서 “우리의 모든 인식이 경험과 더불어 시작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인식의 기원이 모두 경험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즉 경험과 더불어 시작하여 세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종합적 인식이면서도 는 것이다. 칸트의 비판철학의 의미에서 ‘선험적’이라는 개념은 ‘선천적’이라는 개념으로부터 구별될 뿐만 아니라 또한 ‘초월적’이라는 개념과도 구별된다. ‘선험적’이라는 개념은 비경험적 개념이며 ‘선천적’이 경험 그 자체의 가능성 조건을 나타내듯이 그것은 ‘선천적’인 것의 가능성의 조건을 표시한다. ‘선천적’인 것은 ‘선험적’이라는 개념과 경험의 가능성을 위한 전제이듯이 바로 그 선천적이라는 것의 전제이다. ‘초월적’인 의미는 경험과 관련하여 ‘선험적’처럼 경험에 대한 어떤 긍정적인 관계 내지 경험에로 향해져 있는 성질을 전혀 갖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개념에는 경험과 관련하여 그에 대한 부정적인 경향, 즉 경험의 영역의 방기 내지 경험의 한계의 초월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경험의 감각적 영역은 ‘선험적’인 것을 통해서는 논리적-인식론적으로 정초되지만, ‘초월적’인 것에 의해서는 이러한 경험의 감각적 영역이 부정되고 초탈된다.이렇게 하여 처음 언급했었던 근대철학의 근본문제는 그에게 ‘선험적 종합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이 된다. 종합판단은 분석판단에 대비되고 선험적 판단은 경험적 판단에 대비되는 말이다. 분석판단이란 그 판단의 술어가 단순히 주어개념을 분석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으로, 세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주어개념을 설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고 경험판단이란 경험으로부터 귀납적으로 획득된 것이기에 보편타당성을 얻을 수 없는 판단을 뜻한다. 이와 달리 칸트가 그 가능 근거를 밝히고자 한 선험적 종합판단이란 세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식이면서도 단지 세계로부터 경험적으로 귀납된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독단적으로 설정된 신으로부터 기원하는 것도 아니다.선험적 종합인식의 기원을 신이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인식주체인 인간 자신에서 구하는 데에 칸트 비판철학의 핵심이 있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합리론자들이 생각하듯 세계의 존재질서에 대한 이성적 진리를 미리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경험론자들이 생각하듯 백지와 같은 상태에서 세계로부터 주어지는 인상을니다. 인간은 바로 인식주체로서 그 자신의 고유한 틀(형식)에 따라 세계를 보고 이해하고 해석한다. 그리고 인식대상으로서의 세계는 바로 그 형식에 따라 보여지고 이해되고 해석되기에 그 형식은 인식된 대상 세계에 대한 객관적 타당성을 지닌다. 즉, 주관의 인식형식이 바로 인식된 대상 세계의 존재형식이 되는 것이다.선험적 인식근거가 신이나 세계가 아닌 인간 자신이라면, 다양한 인간만큼 다양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칸트의 비판철학은 세계를 보고 사유하는 인간의 인식 형식에 있어서의 상호 주관적 보편성을 강조한다. 각각의 인간에게 보여지고 읽혀진 세계는 서로 다르지만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공통적 세계라고 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곧 인간 모두에게 세계를 보고 읽는 하느의 공통적 틀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판철학은 바로 이러한 인간 인식의 보편적 틀, 즉 인간이라면 누구나 세계를 그렇게 보고 그렇게 사유할 수 밖에 없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틀을 밝히고자 한다. 그것은 개체적 인간 안에 내재된 공통된 틀로서 우리는 그 보편적인 틀에 따라서만 세계를 보고 사유하며 경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보편적 틀은 우리로 하여금 세계에 대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되, 그 자체는 경험에 앞선 것, 즉 선험적인 것이지 경험으로부터 얻어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주관 자체에 기원을 둔다. 『순수이성비판』은 우리의 경험적 세계인식이 이미 그러한 틀에 기반하고 있다는 통찰위에서 우리의 경험적 세계인식을 분석함으로써 그 안에 내재된 선험적 인식을 밝혀나간다.우리의 인식이 직관과 사유의 양 측면을 가진다는 것, 즉 직관능력으로서의 감성과 사유능력으로서의 오성에 기반한다는 것은 경험론이나 합리론이 둘 다 인정한 것이다. 직관은 대상을 보고 듣는 등 오감을 따라 발생하는 감각 또는 지각의 활동이며 사유는 직관된 표상들을 비교, 종합하여 개념을 형성하거나 개념에 따라 판단하는 사유작용을 뜻한다. 비판 철학도 직관과 사유, 감성과 오성의 구분을 같이하들어 한 송이 장미를 보고 냄새 맡는 것은 직관에 해당한다. 직관 속에서 빨간 색 감각자료나 향긋한 향기등을 갖게 된다. 그러나 직관은 단지 그러한 감각 자료를 가질 뿐 아니라 그 감각자료를 객관적 사물의 속성으로 인식한다. 다시 말하면 직관에는 감각된 내용 이외에 감각내용을 정리하는 형식이 요구된다. 그것이 곧 시공간이다. 외적 감각내용을 정리할 때 요구되는 형식이 공간이며 내적 감각내용을 정리하는 형식이 시간이다. 우리는 무엇을 직관하든지 항상 특정한 시간과 공간 안의 것으로 직관하게 되는데 이 시공의 형식은 객관적 사물로부터 이끌어내진 것이 아니라, 사물의 경험 자체가 성립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인식 주관의 직관형식이다. 사물을 직관할 때 시간과 공간의 형식을 배제하거나 그것을 넘어설 수는 없다. 직관이 대상에 대한 것이기에, 시간과 공간은 인간의 직관에 있어 대상화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우리는 대상이 현재 눈앞에 없다고 해도 그에 대해 생각이 가능하다. 능동적으로 표상 또는 개념을 떠올려 그것들을 연결하는 것을 사유라고 한다. 우리가 사유할 때 그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인 한 분명 어떤 양과 질을 가진다는 것, 속성을 지닌 실체라는 것, 특정 원인의 결과로서 다른 것들과의 상호 작용 안에 있다는 것 등등을 미리 전제한다. 즉 우니는 대상을 경험하기도 전에 이미 그 대상의 존재 방식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사유 안에는 단일성, 다수성, 전체성, 실재성, 부정성, 무한성, 실체성, 인과성, 상호작용성, 가능성, 현실성, 필연성 등의 개념틀이 미리 짜여 있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경험하든지 그 틀에 따라 사유하는 것이다. 그 사유의 틀이 되는 개념을 범주라고 한다. 매 순간 다른 모습으로 직각되는 대상에 대해서도 그것을 하나의 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도 이미 우리 안에 ‘하나’라는 단일성의 범주가 있기 때문이며 서로 구분되는 두 경험 내용을 인과적으로 연관된 것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