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복궁을 들어서며< 1915년 경복궁 훼손현장>경복궁은 일본에 의해 많이 훼손 되었다, 경복궁을 보면 탑과 부도 등 불교적인 요소들이 자리잡고있는데 이러한 이유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제가 조선의 전통과 자존심을 말살하기 위해 조선물산공진회라는 박람회를 빌미로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을 파괴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파괴했던 자리에 각 지역의 탑과 부도를 가져와 설치하고, 공터에는 잔디를 설치했던 것이다. 경복궁의 잔디가 경복궁의 무덤이란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또한 일제가 조선 왕의 권위를 훼손하려는 의도로 왕의 집무 공간인 근정전 앞에 고래뼈를 전시하였고, 근정전 옆에 돼지우리와 화장실 정화조 등을 설치해 조선인들의 자존심을 욕보이기도 했다.일제는 1915년 8개년 사업으로 경복궁 근정전 앞에 조선 총독부를 세웠다. 원래 경복궁은 광화문-근정전-사정전-강녕전-교태전이 일직선상에 높은 ‘경복궁 축’에 따라 건설되었다. 하지만 일제는 총독부 건물을 이 직선 상에 놓되 방향은 경복궁 축과 3.5도 틀어서 조선신당이 세워진 남산 쪽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총독부 건물은 경복궁을 지키는 지킴이 노릇을 하면서 조선 신궁을 바라보게 되었고, 결국 경복궁은 총독부를 뒤따라 일본 국가 조상신을 향해 바라보게 된 것이었다. 그런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 된 것에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2. 경복궁 답사내용경복궁은 조선의 중심지였으며, 우리나라 역사 중 가장 강력한 중앙집권체계를 갖춘 조선이었던 만큼 조선시대의 국정을 도맡아 해왔던 장소라 할 수 있다. 경복궁이라는 궁은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고 광화문, 근정전, 경희루,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아미산, 수정전, 향원정, 자경전 등의 건물들을 총칭하는 말이며, 정도전의 주장에 따라 입지가 선택되었고 이름이 지어졌다.경복궁은 1392년에 조선의 개창자인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을 떠나 서울을 새로운 나라의 터전으로 잡은 후 새 왕조의 궁전으로 1394년에 지은 것이다. 그 사이에는 경복궁이 위치하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자연스러움을 중요시 하였는데, 한북정맥과 한남정맥을 연결시키는 것을 경복궁이라 보았다.태조 이성계 때부터 시작하여 거의 세종대왕 때에 완공이 된 웅장한 궁궐이었으며, 조선시대 중앙집권체계의 위용을 단편에 보여주는 크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은 원래규모의 25%정도만 복원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는 대부분이 일본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경복궁은 전체적으로 불에 타버렸으며 고종 때 다시 중건하였다 하고, 그 이후에는 일제시대를 겪으면서 극심한 훼손을 겪어 1990년부터 지금까지 상당한 장기간의 5단계로 나누어 본격적인 복원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유교를 지향하는 조선 왕조에서는 적자라는 정통성을 중요시 하였다. 그래서 태종은 왕이 돼서도 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경복궁에서 생활하지 못하고, 창덕궁에서 지내야 했다. 태종을 자신의 후계자인 세종은 경복궁에서 지낼 수 있도록 ‘적자를 떠나 어진자가 임금이 되어야한다’라는 주장을 세워 자신의 다음 세대에서는 임금이 경복궁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경복궁은 세 개의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① 외조구역 - 광화문~근정문, 영추문~건춘문 사이 공간② 치조구역 - 왕과 신하들이 더불어 통치하는 공간 : 근정전, 사정전, 천추전, 만춘전등③ 연조구역 - 사정전 행각의 향오문 북쪽 침전 공간 : 강년전, 교태전그 외에 향원정, 경회루 등 상원구역이 있다.영제교영제교 사이를 흐르는 물을 ‘금천’이라고 한다. 이 금천은 궁궐의 내부?외부를 나누는 기준점이 된다. 영제교는 도덕적인 면을 추구한다. 궁궐에 들어가는 관리에게 궁궐 밖에서 가졌던 사사로 운 욕심, 이해관계를 물에 흘려보내고 깨끗한 마음으로 궁 안으로 들어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영제교에 서수라는 동물을 설치하여 밑바닥을 노려보게 한 것은, 물길을 타고 잠입할지 모르 는 사악한 것들을 색출하여 궁궐의 법전을 신성한 공간으로 유지시키려고 했던 옛 사람들의 염원을 표을 볼 수 있었고, 둥근 모양과 네모 모양의 주춧돌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공간 구조가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근정전은 한 달에 4번 조참의례라는 의식을 치루는 왕과 신하가 공식적으로 만나는 공간이다.근정전의 마당 이름을 조정이라고 부른다. 마당에 박혀 있는 울퉁불퉁한 돌을 박석이라고 하는데, 이 돌은 두 가지 용도로 사용되었다. 하나는 무더운 날씨에 빛이 박석에 굴절 되어서 시원한 느낌을 주었고, 또한 대신들이 넘어지지 않고 조신하라는 뜻에서 이 돌을 사용하였다고 한다.근정전에는 3개의 길이 있는데, 이것을 삼도라고 부른다. 가운데는 양쪽의 길보다 높게 위치하는데 이 길은 왕과 왕비가 다니는 길이기 때문에 양쪽의 길과 차별을 둔 것이다.품계석의 동쪽은 문과, 서쪽은 무관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양반’이란 용어가 나온 것이라고 한다. ‘양반’은 나중에는 사회신분을 가리키는 용어로 변하였다.삼도의 양편 뜰에는 동, 서로 품석(品石)이 정1품으로부터 정9품에 이르기 까지 각각 12개가 나란히 줄지어 세워졌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군데군데 깨지고 글씨가 지워진 것이 세월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었다. 근정전 위에서 내려다보니, 문무백관들이 양쪽에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상상이 되었다. 과연 권력을 지닌 자의 기분이란 것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종이품 품계석의 뒤편쯤 동쪽에 한군데, 서쪽에 둥그런 쇠고리가 박석에 박혀 있다.고리는 관원들이 조정에 모여 있을 때 햇살이나 빗발을 가려줄 차일을 쳤는데 이것은 그 차일을 치는 줄을 매던 것이다. 하지만 이 차일은 정3품까지에게만 햇빛을 가려주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조선사회는 신분제 사회였으므로 신하들 사이에서도 신분차별이 있었던 것이다.① 월대권위를 강조하는 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월대이다. 월대는 건물 밑에 1미터 이상의 단이다. 월대를 통해서 근정전을 우러러 보게 하는 권위를 강조하는 것이다.② 답도답도는 좌우로 좁은 계단석이 놓이고 그 끝에 큼직하게 소맷돌을 설치하여 큰 계단은봉황이 새겨져 있다. 이 봉황은 임금이 선정을 베풀었을 때 날아 들어오는 상상의 새이다.이런 답도와 소맷돌은 2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와 동일한 답도와 소맷돌이 근정문 입구에도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렇게 많은 수의 답도와 소맷돌의 설치는 그만큼 왕족의 위엄을 상징한다고 생각이 들었다.③ 구정근정전의 양쪽에는 우리가 흔히 향로라고 알고 있는 정이 위치하고 있었다. '정'이란 솥으로서 배가 둥글고 다리가 셋에 귀가 둘 달린 모습이다.중국 하나라 우(禹)왕 때에 이르러서는 전국 아홉 주의 쇠를 모아 솥을 아홉 개 만들었다. 아홉 개의 정은 구주(九洲)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가 최고의 권력자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구정(九鼎)은 왕권과 구주를 상징하며, 더 나아가서는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고 하늘의 복을 받기를 기원하는 상징물로 쓰였다. 하나라에서 은나라로, 은나라에서 주나라로 왕조가 바뀔 때 구정도 함께 전하여 졌다. 정의 이러한 상징성이 우리나라에도 받아들여져서 근정전 앞에 설치된 것이다.또한 왕이 음양오행에 의해 나라를 다스린다라는 상징의 일월오봉동와 왕권을 상징하는 천장의 두 마리 용도 볼 수 있었다.목조 건물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화재이다. 옛 사람들은 그것이 방화이든 실화이든, 아니면 천재지변이든 간에 불이 자주 나는 것은 화마의 농간이라고 믿었다.그래서 건물 앞에 드므를 설치하여 거기에 물을 가득 채워 놓고 침입해 오던 화마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달아나기를 기대했다.계조당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세자가 사용하는 공간이었던 계조당을 둘러 보았다. 계조당은 조정을 잇는다는 뜻으로, 항상 동쪽에 위치하는데 그래서 세자를 동궁 또는 봄을 뜻하는 춘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사정전사정전은 어전회의를 비롯한 최고통치자로서 공식 업무를 처리한 곳이라 한다. 왕에게 보고되는 온갖 업무를 판단하는 곳이며, 왕의 대부분의 공식적인 활동은 이곳에서 이루어 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조선시대에 왕들이 신하들과 국정을 논하였고, 당파를 나누어 신하들이 서로를 헐뜯어가기도 하정사를 봤던 곳이다. 사정전을 들여다보니, 가운데 용상이 있고, 좌우로 신하들이 앉을 수 있도록 한 것 같이 자리가 놓여 있었다. 용상 뒤를 보니 근정전과는 다른 것이 있었는데, 커다란 하얀 천위에 그려진 두 마리의 용 그림이었다. 근정전 용상 뒤에는 오봉산 일월도만 있었는데, 이곳에는 그것은 물론, 용 그림까지 있었다.왕궁을 용궁, 왕의 의자를 용상, 왕의 부채를 용선, 왕의 얼굴을 용안, 왕이 타는 가마를 용가, 왕이 입는 옷을 용포라고 하듯이 용은 왕을 상징하므로 왕이 정사를 보는 동안 머무는 이곳에도 용 그림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또한 운룡도가 있는데 이것은 구름과 용으로 어진 임금과 현명한 신하의 관계를 나타낸다고 한다.사정전 앞에는 창고가 있는데 이곳에는 활자와 신하에게 주는 선물이 보관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 기와무게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는 공포와 궁궐의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설치한 그물인 부시를 볼 수 있었다. 부시는 공포사이에 새집을 방지하여 청결을 유지하고 또한 구렁이가 새를 잡아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사정전 앞의 창고에서는 부시대신 창을 설치하였다.경회루누가 보더라도 시원한 그늘에 앉아서 연못을 바라보며 음악과 함께 술 한 잔 하고 싶은 풍경이 펼쳐져 있다. 연못가에는 수양버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고, 앞의 연못에서는 팔뚝보다 더 굵은 잉어가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었다. 이제까지 둘러보았던 사정전이나 근정전이 정사를 돌보는 정치적 공간이었지만, 경회루는 말 그대로 연회하고 휴식하는, 먹고 마시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건물들보다 유연하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이 경회루에서도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조상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경회루 안에서 밖의 경치를 자연스럽게 보기 위하여 낙양각을 설치하여 사물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시각적 효과를 더 하였다.강녕전‘강녕’이라는 이름은 수(장수), 부(돈), 강녕(건강), 덕, 오종명, 오복 중에 하나로서, 임금이 강녕(편안할 강, 편안할 녕)한다면 그것이
종묘종묘는 내가 정말로 가보고 싶었던 유적지 중 하나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써 종묘의 의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었고, 그래서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내가 알고 있는 내용도 있고 다시 한번 가보았을 때의 느낌이 어떤지 느끼고 싶기도 했지만 알고 있는 것을 눈으로 직접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종묘를 찾아간 때가 평일이어서 그런지 그 앞의 공원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먼저 종묘를 답사하기 전에 종묘가 어떠한 일을 하는 곳인지를 자세히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아서 자료조사를 하였다.종묘제도- 국가 예제의 으뜸인 종묘삼국시대에 중국의 예제가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에는 중앙 집권적인 통치 체제를 만들어 낸 성종대에 나라의 여러 제도를 중국식으로 개편하면서 5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는 사실을 「고려사」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고려시대 후반에 일시 혼란이 있었던 여러 제도를 다시 정비하면서 5례에 대해서도 다시 상세한 내용 규정을 하였는데 세종 때 크게 틀을 잡고 성종 때 「국조오례의」를 편찬함으로써 거의 완성을 보았다.「국조오례의」에 의하면 조선조의 5례는 길례가 역시 첫째를 차지하며 길례는 대사, 중사, 소사로 나뉘는데 대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직과 종묘이며 중사는 풍운뇌우 곧 비, 바람, 구름, 우레를 맡은 천신과 큰 산이나 강의 신, 농사나 누에를 주관하는 신, 문선왕 곧 공자신과 단군이나 고려의 시조신이 대상이 되고 소사는 날씨와 관계된 영성, 사한과 그 밖에 마조, 선목, 칠사 등이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사직과 종묘는 조선시대에 예제의 대상 가운데 가장 중요시한 것이었다.한편 길례 대사의 대상인 사직과 종묘는 조선시대에는 그 장소가 반드시 하나로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사직단은 물론 도성인 한양 곧 지금 서울에 있는 것이 국왕이 직접 제사를 드리는 가장 격이 높은 곳이지만 전국 각 지방 군현에도 반드시 한 곳에 사직단을 마련하여 지방 수령이 일정한 때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또한 종묘는 물론 도성 주로 궁궐에서 치러졌다.이처럼 사직과 종묘는 5례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하게 취급된 예제의 대상이었다. 특히 서울의 사직단과 종묘는 예제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그것은 오히려 궁궐보다 더 높이 존승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조선시대 종묘의 연혁태조 4년에 완성된 종묘는 창건된 위치를 고수하면서 27대에 걸친 많은 왕과 왕비들의 신위를 모신 조선시대의 가장 존중받는 건물로 존재하여 왔다. 그러나 그 사이 외적의 침입으로 건물이 전소되었다가 재건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으며 계속 늘어나는 왕들의 신위 때문에 수 차례 걸쳐 증축을 하여 처음 7칸으로 지었던 정전은 마지막에는 19칸의 긴 건물이 되었고, 영녕전도 처음에 정전 4칸에 협실 각 1칸이던 것이 마지막에는 협실이 각 6칸으로 늘어났다. 또한 정전과 영녕전 주변의 부속 건물들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졌다.종묘에 갔다는 사실에 신난 나머지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사진을 마구 찍었다.종묘의 구성정전- 정전정전은 종묘의 중심 건물이다. 조선시대 초에는 태조의 4대조 신위를 모셨으나, 그 후에는 당시 재위 왕의 4대조와 역대왕 중에서 특히 공적이 있는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하였다. 정전은 원래 종묘라 불렸으나, 영녕전이 세워지면서 태묘라 불리기도 한다.현재 정전에는 서쪽 제1실에서부터 시작하여 태조와 왕비, 성종과 왕비, 중종과 왕비, 선조와 왕비, 인조와 왕비, 효종과 왕비, 현종과 왕비, 숙종과 왕비, 영조와 왕비, 정조와 왕비, 순조와 왕비, 문조와 왕비, 헌종과 왕비, 철종과 왕비, 고종황제와 황후, 순종황제와 황후의 신위까지 모두 19실에 49위가 모셔져 있다.영녕전건축 양식은 단순하지만 우리나라의 단일 건물로서는 가장 긴 건물이며, 전면에 길게 다듬은 돌을 쌓아 만든 넓은 월대를 놓아 사묘 건축으로서의 품위와 장중함을 나타내고 있다.- 영녕전영녕전은 정전에 계속 모시지 않는 왕과 왕비의 신위를 옮겨 모시고 제사하는 별묘이다. 세종 3년 정종의 신위를 종묘에 모실 때 정전의 공간이 부족하여 별도로 건립되었다.음식을 준비하던 곳이다. 이 건물은 태조 4년 종묘를 지을 때 함께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광해군 즉위년에 다시 지었다. 이 건물 앞에는 찬막단이라는 돌로 만든 단이 있는데 이곳에서 정전에 음식차림을 하기 전에 제물을 심사하였다.- 제정제정은 종묘제례에 사용되는 물을 긷던 우물이다.정전의 동쪽에 있는 이 우물은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맑고 시원했다고 한다. 화강암으로 둥근 우물돌을 만들어 말끔하게 주변을 정리하고 우물 주위에 낮은 담을 둘러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았다. 우물 남쪽에 기둥이 4개인 사주문을 세워 드나들 수 있게 하였으며, 흐르는 물은 서쪽으로 배수되도록 처리하였다. 우물의 깊이는 지표에서 약 4m정도이다.어숙실- 어숙실어숙실은 왕이 제례를 올리기 전에 목욕재계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곳이다. 종묘의 정전 동쪽에 자리한 어숙실은 재궁 또는 어재실이라고도 불린다. 담으로 둘러진 이 구역의 북쪽은 어재실, 동쪽은 세자재실, 서쪽은 어목욕청이다. 제례시 왕과 세자는 어숙실 정문으로 들어가 목욕재개하고 서협문으로 나와 정전과 영녕전으로 들어가 제례를 올렸다. 이 건물은 태조 4년에 정전과 함께 지었으나, 임진왜란 중 불에 탄 것을 광해군 즉위년에 다시 지었다. 정전의 규모가 커질 때마다 이 건물은 동쪽으로 옮겨지어졌다.- 망묘루망묘루는 임금이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망묘루라는 이름은 재향시 임금이 종묘의 정전을 바라보며 선왕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언제 어떻게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고 현재 건물 가운데 1칸에 누마루로 되어 있다.망묘루 옆에 있는 연못은 세종 25년에 조성된 것으로 사각형의 못 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데 이는 천원지방 사상에 의한 것이다. 대부분의 궁궐 연못에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으나 여기에는 향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종묘 하마비종묘 하마비는 조선시대에 종묘를 지나는 사람은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존경심의 표시로 말에서 내리라고 세운 비석이다. 1413년 2월 예조의 건의로 종묘에좌 병향으로 정하였다고 한다. 임이란 방위를 나타내는 천간의 하나로 북방을 가리킨다. 병은 임과 정반대의 위치로 남방을 가리킨다. 임좌 병향이란 북쪽에 앉아 남쪽을 향한다는 뜻으로 흔히 말하는 남향을 가리킨다.종묘는 경북궁과 마찬가지로 북쪽에 앉아 남쪽을 바라보는 좌향으로 정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좌향에 대한 최근의 이론에 의하면 고대 중국의 경우 전한 이전에는 서좌 도향을 가장 높은 것으로 여기다가 후한대에 들어오면서 가장 격식이 높은 좌향을 북좌 남향 곧 임좌 병향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전한 이전의 도성의 경우 왕성은 서쪽에 앉아 동쪽을 향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였던 것이 후한 이후부터는 왕성이 북좌 남향하여 북에 앉아 남쪽을 향하여 시가지를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며 그 변화의 배경에는 전한 이전의 가부장적 예제가 후한 이후에 와서는 군신의 예제로 바뀐 것이 작용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후한 이후 중국에서 지배자의 좌향은 북좌 남향 곧 임좌 병향이 하나의 원칙이 되었던 것이며 조선 왕조의 경복궁과 종묘의 좌향 역시 의식적으로 이를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그런데 현존하는 종묘의 좌향은 정확히 임좌 병향을 따르고 있지 않으며 그 입지도 한양의 자연 지형을 충실히 반영하여 선택되어 있다. 태조 3년 종묘의 입지와 좌향을 정할 때에「실록」의 기상에 의하면 “감방의 산을 주맥으로 하고 임좌 병향에 종묘의 터를 정하였다”고 하였다. 감이란 8괘의 하나로 방위로는 정북을 가리키는데 정북쪽의 산은 바로 창덕궁 뒤의 응봉을 말한다. 곧 종묘는 응봉을 주맥으로 하여 그 아래로 지맥을 타고 내려온 자리에 세워졌으며 이렇게 지맥을 잇다 보니 종묘의 위치는 경복궁으로 보아서는 동쪽에 치우친 곳에 자리 잡는 결과가 되었다.반면에 사직단은 경복궁 오른쪽에 근접하게 되었다. 종묘와 사직이 반드시 궁과 거리상으로 대칭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은 없지만 한양 종묘의 입지는 궁의 왼쪽인 동시에 주산의 주맥을 이어야 한다는 또 하나의 조건을 만족시키고자 지세에 따른 택지를 함께 고려이라고 했을까. 이것이 바로 중국적 이념과 우리나라 토착서부터 북좌 남향을 상징하는 임좌 병향이라는 개념을 수용하지만 현실적인 지형 조건으로 보아서는 이를 적절히 변형시켜 현실에 적용하였던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단순한 건축 형태와 장엄한 공간 구성종묘 각 신실의 건축 구성은 지극히 단순 질박하다. 이 단순 질박한 각 실이 옆으로 길게 연속되면서 종묘 정전의 전체 공간 구성은 압도적인 장엄함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이 점은 우리나라의 다른 어떤 건축도 흉내낼 수 없는 종묘만이 갖는 건축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종묘 정전의 각 신실은 건축 구성의 기본 단위이다. 신실은 한 칸으로 되어 있으므로 결국 종묘 정전은 건물 한칸 한칸이 모여서 전체를 이룬다. 한 칸의 구성을 보면 우선 평면에서 제일 뒤에 신위를 모신 감실이 있고 그 앞에 제사 지낼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그 끝에 판문이 설치되어 문 밖으로 다시 툇간 1칸이 있다. 이것은 제사를 지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 구성이며 또한 그 이상 더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는 최대 구성이기도 하다.구조체를 이루는 각 구성 부재는 군더더기 장식을 거의 가미하지 않은 단순한 형태를 취하면서 크고 웅건한 맛을 풍겨서 마치 삼국시대의 전각을 대하는 듯한 고대적 감상을 느끼게 한다.신실 하나하나의 단순한 구성이 모여 장엄한 전체 구조를 이루는데 종묘의 건축적 특성이 있다.2익공의 공포구성(공포는 기능적인 보강과 함께 장식적인 역할), 기둥(배흘림을 가미하여 웅장함을 더함), 초석(방형 대좌 위에 원형의 주좌를 새김)주춧돌은 아랫부분을 반듯하게 방형으로 가공하고 그 위에 다시 반듯한 원형 주좌를 새겨 올렸는데 그 표면은 거칠게 다듬어 놓아서 네모와 원형의 딱딱한 기하학적 구성을 친근하게 감싸준다. 기둥은 보통 굵기가 40센티미터를 약간 넘는 굵은 것이고 높이는 대개 굵기는 8.9배를 오가는데 약간의 배흘림 곧 엔타시스가 가미되어 그 웅건한 맛을 더한다. 기둥 위에 짜여진 공포는 익공식이라고 부르는 비교적 소박한 것으로 기둥과 있다.
성인병과 운동요법.1. 성인병이란?2. 성인병의 종류3. 성인병이 걸리는 원인4. 성인병의 운동요법5. 성인병의 예방법6. 성인병의 특징1. 성인병이란?-성인병은 일반적으로는 40세 이상의 향로기(向老期)에 발병률이 증가하는 병을 총칭한다. 사람에 따라서 개인차는 있으나 나이를 먹으면 노화하기 마련이다. 초로기는 45~56세 사이를, 점로기를 55~65세, 노쇠기는 65세 이상이 보통이다. 노화하면 몸의 각 기능이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지 못하며, 자기 주위의 여러 가지 일들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따라갈 수 없게 된다. 또한 따라가려고 노력을 해도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노화는 다음과 같은 현상을 수반한다. 환경의 변화에 적절하게 반응해나가는 조직 ·기능의 결손,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의 장애, 외계에 대한 적응성의 점진적 결손, 조직 ·기능에서의 저장의 결손 등이다.이와 같이 노화 과정에 많이 나타나거나 늘어나는 질환들, 특히 40대 중반 이후에 현저하게 늘어가는 병들이기 때문에 성인병이라고 한다. 빠르면 40대로 접어들기 전부터 이미 그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40세 이상이 되면 몸안에 죽은 피와 노폐물이 모여서 갖가지 세포가 노쇠현상으로 일어나는 질병이다. 주로 고혈압, 중풍, 관절염, 신경통, 당뇨병, 동맥경화 기타 질병을 말하는데, 50세 이상 환자는 노인병이라고 하고 50세 이하는 성인병이라고 하며 지금은 어린이들에게 나타남으로 현대병이라고도 한다.성인병이란 주로 40대 이후에 나타나는 질환으로 의학적으로 만상퇴행성 질환이라고한다.만성이란 잘낫지않는 고질병을 뜻하며 퇴행성이란 점점 나빠진다는 의미로 질병이 아닌 질환이라는 뜻이다2. 성인병의 종류대표적인것으로는 성인병의 종류로는 고혈압, 동맥경화, 뇌졸중, 당뇨병, 심근경색증, 심부적증, 지방간, 간경변증, 빈혈, 골다공증 등이 있다. 성인병의 종류는 실제로 다양하며, 세부적인 것들은 다음과 같다.1.신체의 기능에 따른 분류1)호흡과 관련된 호흡기계 성인병2)혈액순환과 관련된 순환기계 성인병3)소화와 관련된 소화기계 성인병4)신경과 관련된 신경기계 성인병5)기타2.호흡기계 성인병의종류1)만성 호흡기 질환2)만성 기관지염3)기관지 천식4)폐기종3.순환기계 성인병의종류1)고혈압2)저혈압3)동맥경화4)협심증5)심근경색증6)뇌출혈4.소화기계 성인병의종류1)비만증2)체중부족증3)당뇨병4)위궤양5)십이지장궤양6)위하수7)위무력증8)간경병증9)지방간10)신부전증11)만성신장병5.신경기계통 성인병의종류1)신경통2)류머티즘3)중풍4)갱년기장애5)치매증6)실어증6.기타 성인병의종류1)골다공증2)퇴행성 관절염3)류마토이드 관절염3. 성인병이 걸리는 원인1) Stress-정신적 긴장. 2) 잘 못된 식이요법-고염식,고지방식,고열량식. 3) 운동부족. 4) 과음과 흡연. 5) 의학의 발달로 인한 평균수명의 연장. 6) 기타 유전,노화,공해,약물...성인병은 현대 사회의 변화로 인하여 나타난 현상으로 식생활의 서구화와 인스턴트화, 음식의 기준을 칼로리 위주로 생각을 하며, 각박한 사회생활과 생존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 운동부족, 대기오염, 자동차 배기가스, 수질오염 등으로 인한 환경오염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또한 한국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음주문화와 흡연습관 등이 원인이 될 수 있고, 특히 식생활의 변화로 인하여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어른에게나 있는 여러 성인병들이 점점 많이 나타난다.호메오스타시스(homeostasis)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자기 몸 안의 여러 상태를 외계가 여러 모양으로 변화를 심하게 주어도 영향을 받지 않고 보호해나갈 수 있는 생리적인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노화가 되면 이와 같은 호메오스타시스의 부조리가 일어난다. 실내와 실외의 온도차가 심할 때 체온도 영향을 받아 감기에 잘 걸리는 것도 하나의 예이다. 신진대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소모되는 것과 새로 생산되는 것과의 균형이 취해지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또한 기능이 떨어짐으로써 일으키기 쉬운 병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간기능 감퇴로 결합조직 콘드로이틴의 결핍이 일어난다. 침샘 호르몬 또는 그 외의 각종 호르몬의 부족, 동맥경화로 혈관을 구성하는 민무늬근은 튼튼하지만 오랜 시일의 사용으로 굳어지므로 혈류를 원활하게 하는 유연성이 없어지게 된다. 그 결과 고혈압 ·협심증 ·심근경색 ·뇌출혈 또는 뇌연화증 등의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여러 종류의 암, 폐기종 기관지확장증, 당뇨병으로 췌장기능의 저하로 인슐린 분비가 원활하지 못하여 혈당농도 조절이 어렵게 된다.◆ 고혈압- 원인 : 선천적인 요인 외에도 과다한 염분섭취, 비만증, 고지방혈증 등이 있으며, 정신적 스트레스도 말초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상승의 요인이 된다.◆ 동맥경화- 동맥벽에 지방이 축적되어 여기에 칼슘이 침착, 혈관내벽이 좁아져 혈액순환 장애를 초래 하는 증세.- 원인 : 스트레스, 고지혈증, 고혈압, 비만, 당뇨, 흡연 및 과음, 운동부족 등◆ 뇌졸증- 뇌동맥이 생긴 경화증이나 고혈압으로 혈류 장애를 나타내는 병◆ 당뇨병- 우리몸에 인슈린 부족으로 생기는 병으로, 혈당농도가 높아져 소변으로 포도당이 넘쳐나오는 만성대사성 질환.◆ 심근경색증- 원인 : 심장의 관상동맥경화증이 원인이며, 위험인자로 고혈압, 흡연, 당뇨병, 고지혈증과 비만증 등을 들 수 있다.◆ 심부적증- 몸이 요구하는 혈액의 양만큼 심장이 내보내지 못하는 상태로, 전신에 산소와 영양소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게 된다.◆ 지방간- 원인 : 흔히 알콜의 과다섭취에서 올 수 있으나, 간에 독이 되는 항생제나 약물 과다복용 등으로 간에 기름이 낀 상태.◆ 간 경변증- 원인 : 알콜의 과다섭취, 만성간염이 지속될 경우◆ 빈혈- 철분부족이나 심한 출혈 후에 주로 나타나며, 두통, 현기증, 전신쇠약, 식용부진, 발열 등의 증상을 보인다.◆ 골다공증- 원인 :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폐경기 이후 호르몬 결핍, 칼슘부족, 술.담배, 운동부족 등의 요인이 있다.4. 성인병의 운동요법운동이 성인병에 좋다고 해서 아무 운동이라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웨이트 트레이닝, 100m 달리기, 전력 질주 등과 같은 무산소성 운동은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성인병의 치료와 예방에는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면서 일정 시간 지속할 수 있는 전신성 지구성 유산소 운동이 권장된다. 심폐 지구력 증진 운동이다.빠르게 걷기, 러닝머신, 달리기, 수영, 자전거 타기 같은 것이 그것.이럴 때도 갖춰야 할 절차가 있다. 어깨·허리·다리·관절 등이 최대한 잘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 운동(스트레칭), 본운동, 정리운동 순으로 해야 한다.바람직한 강도는 약간의 호흡 곤란을 느끼면서도 상대방과 대화가 가능한정도. 1주일에 3~5회, 매회 15~45분 정도가 좋다.◇병증별 운동상 주의점당뇨환자는 짧은 시간의 강한 운동은 삼가야 한다. 혈당이 급증하고 케톤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 운동 후에는 발을 꼼꼼히 살펴 손상 부위가 있는지, 물집이 잡히거나 세균 감염 흔적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지혈증이 있는 경우 엄격한 식이요법과 함께 4개월 정도 운동하면 중성지방이 준다. 또 일년 정도 운동을 지속하면 콜레스테롤 수치에 변화가 온다.이렇게 해도 변화가 없다면 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전반적으로는 성인병이 있으면 심장발작·뇌졸중·저혈당 등 위험이 항상 따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때문에 먼저 운동을 해도 좋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는게 올바른 순서이다.5. 성인병의 예방법고혈압 : 술. 담배는 절대로 삼가해야하며, 염분섭취를 최대한 줄인다. 또한 콜레스테롤 식품을 주의하고 비만에 유의한다.동맥경화 :걷기, 달리기, 움직이기를 가리켜 동맥경화 예방의 3대 원칙이라 한다. 적당한 운동으로 여러 가지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으며, 또한 지방의 과잉섭취, 지나친 흡연과 스트레스 해소에 적극 노력해야 한다.
질량 중심 찾기1. 목적평형 장치를 이용하여 질량 중심을 찾아보고, 토크를 구해본다.2. 원리(1) 질량중심질량중심이란 모든 질량이 그 점에 모여 있고, 외부힘이 모두 그 점에 작용하는 것처럼 움직이는 특별한 점이다.그림 (a) 그림 (b)위 그림(a)을 보면 질량이 각각과인 두 입자가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질량이인 입자의 위치를축의 원점으로 잡으면, 계의 질량중심 좌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질량중심(center of mass)그림(b)는 좌표계를 좌측으로 이동시킨 보다 일반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이 때 질량중심의 위치는로 정의된다.Ⅰ. 입자계1) 거리 d만큼 떨어진 두 입자 m1, m2의 경우-입자 m1을 원점으로 잡고, 두 점이 x축 위에 있다고 가정하면, 질량중심은로 정의한다. m2=0이면 중심은 원점이 되고, m1이 영이면, d가 된다. m1=m2이면, 중점 (1/2)d가 된다. m1≠m2이면 두 점 사이에 중점이 위치하게 된다.- 좀 더 일반적인 경우( 좌표계를 왼쪽으로 이동하면)- 입자가 N개 일 때,Ⅱ. 강 체- 연속 분포일 때,(시그마가 아닌 적분으로)-만일, 밀도가 균일하다면, 미소 부피에 대한 미소 질량의 비가 항상 일정하다.그러므로,가 되고,가 된다.Ⅲ. 예 제- 균일한 삼각형 판의 질량 중심 찾기삼각형의 한 변에 대해 평행하게 얇게 나누었다고 생각하여 보자. 대칭성에 의하여 각각의 나누어진 판의 중점에 중심이 위치하게 된다. 그러므로 질량중심은 이러한 중점들을 연결한 선위에 존재하게 된다. 다른 변에 대하여 같은 방법을 적용하면, 무게 중심은 각 꼭지점에서 대변의 중심으로 연결한 선들이 만나는 점이 된다.실제 삼각형이 아닌 다른 균일한 판의 질량 중심을 찾고 싶을 때는 왼쪽 그림과 같이 한점을 천장에 대달게 되면, 매단 선의 연장선 상에 질량 중심이 위치하게 된다. 그 선상에 질량 중심이 위치하지 않으면, 토크가 작용하여, 단진자 운동을 하게 된다. 서로 다른 두 점을 대달아 연장선이 만나는 점에 질량중심이 위치한다.- 반지름이 R인 원판이 제거된, 반지름 2R인 원판의 질량중심제거 되지 않았을 때, 원판의 중심을 Xcm은(m2는 m1을 제외한 판의 질량)Xcm=0이므로균일한 원판인 경우(반지름 제곱에 비례) x1=-R 이므로이 된다.(2) 토크문을 열 때, 수도꼭지를 틀 때, 너트를 조일 때면 항상 회전하는 힘을 가하게 된다. 회전하는 힘은 토크를 발생시킨다. 토크는 단순한 힘과는 다르다. 물체를 운동시키려면 물체에 힘을 작용한다. 이때 힘은 물체를 가속시키게 된다. 반면에 물체를 회전시키려면 물체에 토크를 작용한다. 이때 토크는 회전을 일으키게 된다.토크는 힘이 “지레의 힘”으로 가해질 때 생긴다. 문을 열기 위해서는 문의 평면과 수직을 이루는 방향으로 힘을 가해야 한다. 손잡이를 밀거나 당길 때 지레의 힘을 크게 하기 위해 손잡이는 경첩의 회전축으로부터 되도록 먼 곳에 설치한다.수직 방향으로 힘이 작용할 때 회전축으로부터 힘이 작용하는 점까지의 거리를 지레의 팔이라 한다. 힘이 지레의 팔에 수직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을 때는 힘의 수직 성분만이 토크에 기여할 것이다. 토크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따라서 작용하는 힘은 크고 지레의 팔이 작은 경우와 작용하는 힘은 작고 지레의 팔이 큰 경우에 토크가 같을 수도 있다. 물론 힘과 지레의 팔이 모두 커진다면 더욱 큰 토크가 생긴다.아래 그림과 같이 자의 맨 왼쪽을 기준으로 80cm 되는 곳에 20N의 물체 A를 매달고 또 하나의 물체 B를 10cm 되는 곳에 매달았더니 미터자는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물체 B의 무게는 얼마인가?여러분은 토크의 평형을 이용하여 물체 B의 무게를 계산할 수 있다. 물체 B는 미터자를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시키려고 하고 20N의 물체 A는 시계 방향으로 회전시키려고 한다. 두 토크의 크기가 같을 때 계는 균형을 이룬다.반시계 방향의 토크 = 시계 방향의 토크위 식을 이용하여 물체 B의 무게를 구하면주축이 50cm 되는 곳에 있고, 물체 B는 10cm 되는 곳에 있으므로 물체 B에 대한 지레의 팔은 40cm이다. 20N인 물체 A의 경우 주축으로부터 30cm 떨어져 있으므로 지레의 팔은 30cm이다. 이 값들을 위 식에 대입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는다.■. 지레의 원리먼저 지레의 종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그림에서a : 받침점에서 작용점까지의 거리b : 받침점에서 힘점까지의 거리관계식 : W × a = F × b(1) 1종 지레 : 힘의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작은 힘으로 무거운 물체를 움직일 수 있다.예 : 시소, 지렛대, 가위, 펜치, 장도리(못 뽑는 망치) 등(2) 2종 지레 : 힘의 이득을 볼수있습니다. 작은 힘으로 무거운 물체를 움직일 수 있다.예 : 쪽집게, 외발손수레, 병따개, 작두(3) 3종 지레 : 거리의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즉, 먼 곳에 있는 물체에 힘을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힘의 이득은 볼 수 없습니다. 물체의 무게보다 더 큰 힘을 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무거운 물체에 대해서는 대부분 적용되지 않습니다.예 : 낚시, 팔의 근육과 관절, 젓가락토크라고 하는 것은 회전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바로 위의 3종 지레를 예를 들면, 힘 F는 막대를 반시계방향으로 회전을 시키고, 중력(mg)은 막대를 반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키게 됩니다이와 같이 물체가 한 점이 고정되어 있을 때 힘이 작용하면 회전을 하게 되고 이렇게 회전시키는 힘을 토크라고 합니다.토크의 크기는 회전축에서 힘이 작용하는 점까지의 거리와 힘의크기를 곱한 것이 됩니다.
시험기간이 다가오게 되면 답사를 갈 수 없을 것 같아 미리 가게 되었다. 진작 갔어야 할 것을 종강이 다가올 쯤에 가다니 한심스런 생각이 들었다. 문화유적지, 가까운 곳에 있는 것도 모르면서 먼 곳 까지 갈 순 없다는 생각에 창경궁을 선택하게 되었다. 특히, 창경궁은 종묘와 연결되어있어(현재 창덕궁과의 연결통로는 폐쇄하였다.), 같이 답사를 할 수 있게 되어서 선택을 하게 되었다.창경궁의 입구인 홍화문이다. 임진왜란 때 불탔으며, 1616년에 재건된 홍화문에서는 왠지 기와의 색깔이라든가 전체적인 색감이 400년 가까이 된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느낌을 주었다. 왼쪽의 창경궁 안내도를 보고 대강의 창경궁의 지형을 파악한 뒤, 궁금한 마음에 얼른 들어가 보았다.보물 제385호인 명정문. 저 멀리 명정전이 보인다.보물 제386호인 옥천교. 다른 궐의 어느 것보다 아름다움 모습을 지녀 이 다리만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명정문과 옥천교의 모습에선 5년 전에 답사를 갔었던 경복궁이 떠올랐다. 명정문을 들어서고, 명정전을 보았을 때도 전에 왔었던 곳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복궁과 헷갈렸지만, 좀 더 둘러보고 나니 전혀 그렇지 않단 걸 알았다. 구조가 비슷하긴 하더라도, 규모도 틀릴뿐더러 정궐인 경복궁과 이궁(離宮)인 창경궁을 헷갈려하다니,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명정문을 지나니 24개의 품계석과 명정전의 모습이 보였다.명정전의 앞 돌계단은 2층 구조로 되어있는데, 가이드 분께서 2층 구조는 그만큼 중요한 자리라는 걸 나타내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명정전의 내부에는 일월 오악도와 천장에는 봉황처럼 보이는 새의 형상이 달려있었다.일월오악도. 임금의 존재와 권위 자손만대 왕실과 나라의 무궁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일월오악도(일월곤륜도)는 다른 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조선시대의 독특한 형식을 보여준다.명정전의 천장. 지식검색 결과 봉황이 맞았다. 용이 아닌 봉황이 그려져 있는 게 색달랐으며, 봉황주위의 구름과, 천장의 꽃무늬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명정전의 앞에서. 이궁(離宮)인 만큼, 경복궁의 근정전과는 규모의 차이가 느껴진다. 명정전 역시 임진왜란 이후로 다시 지어진 건물이며, 창경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 큰 행사를 치루던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장소로도 이용하였다고 한다.명정전을 지나 문정전, 빈양문으로 향하게 되었다. 문정전에 들어서니 공사 중 이라는 것을 보고 실망을 금치 못하였다. 문정전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공사로 숭문당, 함인정, 경춘전 등 거의 모든 건물이 공사 중으로 제대로 된 답사가 이루어 지지 못했다. 문정전과 숭문당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며, 장소도 넓지 못한 관계로 사진을 찍지 못하였다. 내부를 구경하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가려는 걸 가이드 분께서 문정전에는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주었다. 그 당시의 노론세력이 어떠했기에 세자를 모함해 죽음까지 이끌고 갔는지, 한여름 더위에 8일 동안 고생했을 세자를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저려왔다.문정전과 명정전은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비를 비하기 위해 지붕(?)이 지어져 있는데 이 사실은 답사당시에 몰랐고, 답사를 쓰는 도중에 알게 되었다. 문정전은 주로 왕의 집무실로 쓰였으며, 숭문당은 임금과 신하의 학문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쓰였다.빈양문의 모습.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 사다리와 인부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경춘전. 조선 제22대 정조와 제24대 헌종이 태어났고 소혜왕후, 인현왕후, 현경 혜빈 홍씨등이 돌아가신 곳으로 여러 왕후들이 거처하였던 곳이라 한다. 공사 중으로 인해 트럭이 왔다갔다 움직이고 있었다.빈양문을 빠져나와보니, 함인정, 경춘전, 환경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함인정. 영조때는 이곳에서 과거에 장원급제한 사람에게 어사화가 꽂힌 모자를 씌워주고 백마를 내리는 의식을 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공사 중이라 편액에 무언가 씌어져 있다. 뒤로 환경전의 모습이 보인다.환경전. 공사 중임에도 한 젊은 연인이 답사를 하러왔다. 환경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중건된 후로, 이괄의 난에 다시 한 번 소실되고 중건되었던 곳으로, 여러 왕과 왕비, 세자, 세자빈이 주로 사용하였으며, 소현세자의 비극과 익종의 재궁을 잃을 뻔한 등의 많은 사연이 담겨있었다.함인정, 경춘전, 환경전을 둘러보고 나니, 통명전과 양화당이 눈에 들어왔다. 통명전과 양화당은 환경전과 마찬가지로 이괄의 난 때 소실되었다가 중건되었다고 한다. 통명전은 보물제 818호로 왕비의 생활공간으로 연회를 열기도 했던 곳으로, 가운데 3칸에 대청마루를 두고, 양 옆에 온돌방을 두어 왕과 왕비의 침실로도 쓰였으며, 뒤쪽으로는 정원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작은 연못이 있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공사 중이라 그런지 확인해 볼 수 없었다. 또한, 통명전은 장희빈이 인현황후를 저주하기 위해서 무녀를 불러들이고, 흉물을 파묻는 등의 행위를 했던 곳이기도 하였다. 양화당은 이름이 그래서 그런지(기를 양 養, 화할 화和) 왠지 밝고 따스한 분위기가 느껴졌다.어르신 두 분께서 통명전 앞에 앉아 쉬고 계시는 모습. 통명전은 다른 건축물들과는 달리 공사 중임에도 내부가 공개되어있었다.공사가 진행 중인 통명전의 앞. 도대체 무슨 공사를 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양화당의 앞에서. 내가 이상한 건지 정말로 밝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내부에는 원래 못 들어가는지 공사 중이라 못 들어가는지 아쉬움이 남았다. 통명전(通明殿)에서 생활하던 내명부(內命婦)의 수장들이 접대 공간으로 사용한 건물로 추정된다는데 추정이 아닌 정확히 어떠한 건물이었는지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영춘헌과 집복헌의 측면 모습. 영춘헌과 집복헌은 들어가 보면 'ㅁ'자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건물자체가 다른 건물들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영춘헌은 정조가 거처하던 곳이었으며, 집복헌은 사도세자와 순조가 태어났던 곳이었다고 한다. 영춘헌과 집복헌은 환경전의 화재 때 같이 불타버려서 2000년 7월까지 복원 공사를 하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최근까지 복원을 하여서 다르게 느껴진 걸까? 역사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하여 답사를 하는 내내 나 자신에게 답답함을 느꼈다.영춘헌과 양화당, 환경전은 여러 가지 체험 문화를 즐길 수 있어, 시기를 맞춰 가면 유익한 답사가 될뿐더러, 아이들에게는 교육적으로도 좋은 경험일 될 수 있을 것이다.영복헌과 집복헌을 들러, 뒤쪽으로 넘어가니 풍기대와 성종태실비, 춘당지, 팔각칠층석탑을 볼 수 있었다. 풍기대는 보물 제 84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추정하는 깃발을 세운 대라고 한다. 그 당시 농업에는 바람의 영향도 중요하기 때문에, 풍기대의 이러한 역할이 컸다고 하는데, 어떻게 풍기대를 이용하여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추정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이러한 것을 만들어낼 생각을 했는지 선조들의 대단함이 느껴졌다. 성종태실비는 원래 경기도 광주 경안면에 있었는데 1930년 5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왕들의 태실을 서삼릉으로 옮기면서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성종의 태를 모신 곳이라는 놀라움 보다는 신기함이 감싸왔다. 성종태실비는 거북이 모양의 받침대가 있는데, 거북이의 모양이 왠지 귀엽고, '태실비'라는 것을 처음 봐서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성종태실비. 거북이의 모습에서 왠지 친근함이 느껴지며, '태실비'라는 게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풍기대의 모습. 돌기둥의 꼭대기에 깃발을 꽂아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추정한다고 한다.(http://cafe.naver.com/jongrojc/65 : 사진출처)춘당지는 두 개로 나뉘어 져 있는데 안쪽의 작은 연못이 본래의 춘당지이고, 아래 쪽의 큰 연못이 왕이 직접 농사를 짓던 밭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 창경궁을 훼손시킬 때, 훼손시키는 것도 모자라 연못을 파서 보트를 타며 놀았다는데 한 나라의 임금이 머무는 궁을 훼손시키며, 그 곳에서 놀기도 하다니 일본인의 잔인함에 치가 떨렸다. 춘당지는 궁내에 있는 연못 중 가장 적막하기도 하며, 고요한 분위기를 내는 것 같았다. 경복궁의 경회루는 고요하며, 들뜬 분위기, 옛 선조께서 유흥을 즐기셨을 법했지만, 춘당지는 연못 가운데 섬하나만 떠있어서 적막하며, 고요한 분위기를 내는 것 같았다. 팔각칠층석탑은 보물로도 지정되어 있으며, 한국에 있는 유일한 중국 석탑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창경궁에 이왕가박물관을 만들 때 만주에서 가지고 온 상인으로부터 매입하여 세운 것이라 하는데, 어쩐지 이전에 보아왔던 석탑들과는 다른 모양을 띄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