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항변권과 그 행사 조건에 대해서 설명하여라.항변권이란 두 사람 간의 계약에 있어서 계약의 일방 당사자가 자신의 채무는 이행하지 않은 채 상대방에 대해서만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때 그 상대방은 일방 당사자의 청구를 거절할 수 있도록 법에서 부여한 권리를말하는 것으로써 그 행사의 조건은 아래와 같다.① 할부거래여야 한다.(일시불은 안됨)② 거래 금액이 신용카드는 20만 원 이상, 일반할부거래는 10만 원 이상이어야 한다.③ 할부기간이 종료되지 않아야 한다.7. 소비자에게 숙고 내지는 냉각기간을 부여하여 다시 한 번 계약에 대한 부분을 꼼꼼하게 생각할 수 있는시간을 주는 것을 철회권(Cooling Off)이라 하며, 소비자가 철회권을 행사하게 되면 계약은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았던 것과 같이 되므로 계약금 등 철회권을 행사하기 전에 소비자가 이미 지급한 것이 있으면 이를 돌려받을 수 있게 한다. 철회권은 거래의 방법에 따라 그 기간이 다른데 할부거래와 전자상거래는 7일, 방문판매와 다단계판매는 14일을 원칙으로 한다.8. 리콜제도(Recall)와 제조물 책임법(Product Liability)에 대해서 간단히 서술하고 둘을 비교하여라.- 리콜제도 : 제조자가 결함 상품을 공개 회수하여 환불, 교환, 수리 등을 제공하는 제도
현대문화와 기호의 세계 강의 필기 입니다. 프로프의 민담 분석- 톰프슨은 모티프를″전통적으로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이야기 안에 존재하는 가장 작은 요소″라고 정의- 모티프가 이러한 힘을 갖기 위해서는′진귀하고 충격적인 것′이 그 안에 들어있어야 하며 그것은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됨첫째, 인물둘째, 행도의 배경 속에 있는 어떤 요소들셋째, 단일한 사건그러나 위와 같은 분류에 따른 모티프의 항목은 거의 4만여 개에 이른다!- 따라서 프로프는 톰프슨과 같은 전통적인 민담 연구가들이′주제′나′모티프′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민담에 잠재해 있는 형식적인 관계망들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민담 연구를획기적으로 바꿈“변하는 것은 인물들의 이름(과 아울러 인물들의 속성)이다.변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행동, 기능이다. 이로부터 우리는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즉, 민담에서는 각양각색의 인물이 동일한 행동을 한다고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우리는 인물의 행동, 기능을 연구하여야 한다.”
- 目 次 -Ⅰ. 序論 ‥‥‥‥‥‥‥‥‥‥‥‥‥‥‥‥‥‥‥‥‥‥‥‥‥‥ 1Ⅱ. 本論 ‥‥‥‥‥‥‥‥‥‥‥‥‥‥‥‥‥‥‥‥‥‥‥‥‥‥ 21. 개요와 연혁 ‥‥‥‥‥‥‥‥‥‥‥‥‥‥‥‥‥‥‥‥‥‥‥‥‥· 22. 명동성당 ‥‥‥‥‥‥‥‥‥‥‥‥‥‥‥‥‥‥‥‥‥‥‥‥‥‥‥ 43. 조적식 구조로서의 명동성당의 특성 ‥‥‥‥‥‥‥‥‥‥‥‥‥‥· 54. 명동성당 보수 과정 ‥‥‥‥‥‥‥‥‥‥‥‥‥‥‥‥‥‥‥‥‥‥ 75. 명동성당 보수 방법 ‥‥‥‥‥‥‥‥‥‥‥‥‥‥‥‥‥‥‥‥‥‥ 96. 명동성당 보수 이력 ‥‥‥‥‥‥‥‥‥‥‥‥‥‥‥‥‥‥‥‥‥‥ 117. 명동성당 답사 사진 ‥‥‥‥‥‥‥‥‥‥‥‥‥‥‥‥‥‥‥‥‥‥ 13Ⅲ. 結論 ‥‥‥‥‥‥‥‥‥‥‥‥‥‥‥‥‥‥‥‥‥‥‥‥‥‥ 18Ⅳ. 參考文獻 ‥‥‥‥‥‥‥‥‥‥‥‥‥‥‥‥‥‥‥‥‥‥‥‥ 20Ⅰ. 서 론2010年 3月 24日, 수업 중 조적식 구조(벽돌구조)에 관하여 배우던 도중 우리나라 내에 존재하는 조적식 구조의 건축물에 관하여 조사 및 분석을 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수업이 끝난 후 머리를 맞댄 우리 셋이 공통적으로 떠올린 우리나라 내의 조적식 구조물은 명동에 위치한 명동성당이었다.명동성당에 관하여 검색하여 보자, 명동성당의 역사가 상당히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그러한 명동성당의 깊은 역사를 직접 답사 한 후, 성당의 조적 구조적 특성과 특히 100년이 넘어도 현재의 명동성당으로 서 있을 수 있게 한 개보수에 관하여 중점적으로 분석하고자 하였다.Ⅱ. 본 론1. 개요와 연혁● 개 요그림 명동성당·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2가 1번지· 건축연대 : 1892년 8월 5일 ~ 1898년 5월 29일· 건축구조 : 지하 1층, 지상2층의 조적식 구조(벽돌)· 건축면적 : 1,398.85㎡ 연면적 :2,182.52㎡· 문화재 : 사적 제 258호(1977년 11월 22일 지정)· 소유자 : (재) 천주교 서울대 교구 유지재단· 설계자 : 위젠느 장 죠르쥬 꼬스트(Eugene Jean Georges Coste?그림 과거의 명동성당1894년 7월 갑오개혁,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미사변)까지 수난의 연속이었던 그 즈음, 종현(지금의 명동) 언덕 부근에 거대한 벽돌집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교회 건물을 구릉위에 세우는 서구인들의 관례 등에 명동의 언덕은 정확히 부합했다.이 일대가 조선왕조 역대 임금들의 어진(초상화)이 모셔진 영희전(지금의 서울 중부 경찰서 자리)을 내려다보는 자리였기 때문에 건축물이 들어서면 안 된다는 풍수 지리적인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져서 난관에 부딪히는 등 수많은 일을 거치고도 6년 후인 1895년 5월 29일 완공되었고, 그 후 80년 만인 1971년에는 호로 지정되었다. 명동성당은 순수한 고딕식 구조건축물로 조선시대 그 당시 양옥을 지을 기능공이 국내에는 없어서 중국에서 벽돌공과 미장이 목수들을 데려와 공사를 진행했다. 20여 종의 모양을 가진 벽돌을 구워내기도 했는데, 색깔도 붉은 것과 회색의 2종류로 만들어 성당의 세세한 부분까지 구분하여 사용, 건물의 아름다움을 살렸다.그러나 6. 25 한국 전쟁 당시 명동성당 외벽 군데군데 총탄자국이 남아 있어 1970년대에 들어 총탄자국을 가리기 위해 외벽에 페인트칠을 한 게 벽돌의 부식진행을 더 빠르게 한 원인이 되었고, 그 후 원래의 벽돌보다 보수한 벽돌의 부식이 더 심각한 상태에서 문화재 보존을 위한 대책이 시급했기에 원래의 모습으로의 복구를 위한 보존공사가 진행 되었으며 현재 공사가 끝났다.그때의 공사 방식은 부식된 벽들을 하나씩 일일이 빼내어 특별히 제작된 벽돌로 갈아 끼우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또 창을 통해서 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빛의 효과로 성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스테인드글라스 보존공사도 부분 적으로 수행되었다.한일 합방, 6.25 한국전쟁, 80년대 민주화 투쟁, 연이어 계속되었던 각종 집회,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 명절 중 하나인 설날에도 낯선 이국땅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외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농성까지 각종 현대사를 지켜본 있다. 이는 정면 입구와 연결되어 있는 종탑이 사내 중심을 향하여 종교시설로서의 중심성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의도는 오늘날까지 그 중심성이 유지되고 있다.또한 평면 형식도 마루를 깔아서 내부에서 신발을 벗는 형식을 도입하였고, 구조의 해결방법에서는 구조적 역할을 담당할 부축벽의 벽돌을 압축력이 떨어지는 전벽돌을 사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전벽돌과 적벽돌을 이용하여 비 고딕적으로서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 당시의 벽돌생산 방식을 이용하여 고딕적 양식을 표현하였다는데 의미가 깊다. 특히 명동성당에 사용되었던 벽돌은 수입이나 대량생산 된 벽돌이 아니라 용상 한강통 연와소의 흙을 파다가 벽돌을 직접 제작하여 내력벽으로 사용한 것으로서 재료에 대한 한계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그림 명동성당의 평면도그림 명동성당의 정면도와 측면도4. 명동성당 보수 과정건축물을 비롯하여 모든 구조물은 경과년도가 지나면서 열화와 노후화로 인해 결함이 생기게 된다. 결함은 곧바로 수선을 하게 되지만 심각한 결함은 건축물의 내구성을 미치지 못하여 그 건축물을 파괴하는데 까지 이르게 된다.이러한 건축물의 결함 현상은 오랜 역사를 견디면서 이 땅에 있던 문화재로서의 건축물일 경우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현재 우리가 조사하고 있는 명동성당의 경우에도 1895년에 완공되었으므로 대략 100년 이상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결함부위를 수리하는 데 있어서, 문화재의 보수 및 보강은 일반 건축물과는 달리 ‘원형 보존’이라는 중요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가능한 한 건설 당시의 구조, 재료상의 기법을 그대로 반영하도록 하고 있고(과거의 방법이므로 현재의 환경에 맞지 않는 기법들도 존재한다. 따라서 이것이 결함의 직, 간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각 부위별로 조사, 기록, 고증, 관리 등의 절차가 있다는 것이 기존의 신축 및 리모델링 건축물과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명동성당도 성당으로서의 역할을 현재도 수행하고 있는 것과 같이 게 되었다. 또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보수 공사가 벽돌 표면의 일부를 떼어내거나 벽돌 반장을 떼어내어 보수하는 방법도 일부 진행되어 구조적인 문제를 야기할 우려를 낳게 하였다.그림 대 풍금또한 파이프 오르간의 설치 등으로 인해 벽체에 부담을 주고 등기구, 파이프 배관, 전선 배관, 화단의 설치로 인한 화단의 우수가 환기구를 막고 이 빗물이 외부에 젖어들어 부식이 또한 촉진되었다.이로 인해 2000년에 명동성당 보수를 위한 세미나가 개최되었고, 2001년 위원회를 결성하여 보수 및 보존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최초의 조적식 구조 건물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는 명동성당인 만큼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 또한 너무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원형의 벽돌을 가급적 유지하면서 구조적 문제를 가져온 부위들을 중심으로 벽돌을 교체하여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보완하기로 하였다. 즉 과거의 잘못되었던 보수공사와 훼손이 심한 부분들을 우선적으로 보수하기로 방향이 잡혔다.2009년 2월 색유리 공사를 끝으로 모든 공사가 완공되었다. 2010년 3월 31일에 우리가 명동성당을 견학하였을 때에는 공사가 이미 끝난 단계였으며 깨끗하게 보수된 상태의 명동성당을 감상할 수 있었다.5. 명동성당 보수 방법1) 보수를 위한 공구 및 기자재 개발명동성당의 외벽 보수용 공구는 벽돌을 파내기 위한 공구와 벽돌을 끼워 넣기 위한 공구 이렇게 두 가지로 구별된다. 벽돌을 넣을 때 모르타르를 충전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위한 공구가 자체적으로 개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모르타르와 물과의 배합관계 등이 어려워 보완이 필요하다. 벽돌을 빼내는 데 쓰이는 도구로는 정이 있고 끼워 넣으면서 모르타르를 충전하기 위한 도구가 많이 사용된다. 그리고 평활도 및 수직 수평을 잡기 위한 도구가 또한 사용되었다.2) 보수방법의 결정여러 차례의 세미나와 외국 기술자 및 위원회의 회의 등을 토대로 보수방법의 기준이 다음과 같이 결정되었다.1. 적벽돌의 강도와 색상 유지- 명동성당이 종교단체인 추이를 본다.8. 벽돌은 가급적 원래의 색상에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맨 앞의 보수작업에 따른 설명과 동일하다. 성당전체의 통일감을 살리기 위해서이다.9. 빼낸 벽돌의 관리를 철저히 한다.10. 본당 건물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주의해서 시공한다.11. 스테인드글라스의 외 창은 스테인드글라스의 디자인과 연계하여 가공한다.12. 이외 여러 가지 내용들은 명동성당 기술위원회에서 정한대로 시공한다.3) 동절기 보수공사공사가 늦어진 관계로 겨울철 공사가 필연적이었고, 원칙을 정하여 영하3도 이하가 될 경우는 공사를 중단하고 그 이상일 경우에만 공사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물을 쓰는 공사이므로(모르타르를 사용하기 때문에) 보양(콘크리트나 모르타르 따위를 잘 보전하여 굳힘)이 필요하게 되었다. 벽돌 보양을 골고루 하기 위해 기존의 보수 방법에 전기담요를 설치하여 전체가 고루 보양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여 적용하였다.6. 명동성당 보수 이력1. 1927년 : 복자제대와 복자상본 및 대풍금 설치2. 1944년 : 노기남 주교의 지시 하에 외국의 원조를 받아 보수공사가 시행3. 1947년, 1958년, 1965년 : 개보수 공사- 성가대용 2층 발코니 설치(1940년대) : 기존 측면부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한 것으로 기존 벽체의 하중 증가 및 고딕 적 건축 분위기의 침해4. 1969년 : 난방공사 및 기존 마루철거, 지하피트 설치 및 인조석으로 개조5. 1970~ 1975년 : 벽돌 위 페인트 도장을 비롯한 대규모 공사 시행- 1972년 지붕 보수공사를 시작했고, 조적벽의 수분흡수로 인한 풍화 및 부분 보수 공사로 발생한 벽돌 벽체의 신, 구 벽체간의 색채 차이를 감추기 위하여 시도된 것으로 추정.이 공사에서 예산과 시공에 대한 여건으로 인하여 벽돌을 뽑아내지 않고 풍화된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것은 3-10mm 정도 기존 표면을 긁어내고 시멘트 모르타르로 미장을 한 후 벽돌 색에 맞추어 페인트칠을 시행, 풍화가 다소 심하게 된 것은 벽돌은 긁어내고 두께 30mm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