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교 특 강1) 아브라함과 그 자손을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2) 사도행전에 복음이 세계로 전파되게 된 과정을 기술하세요.1) 창12:1-3 -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한 가지 약속, 개인적이며 엄청나게 전 세계적이기도 한 약속의 형태로 계시 하셨다. 그 약속은 온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이스라엘 민족공동체를 특별하게 택하셔서 돌보시는 내용(창12장 이후),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역사를 주관하시고 구체적으로 세계선교를 준비하시고 이루시는 내용이다.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내용이다. 이 전에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택하셔서 죄악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로운 인류를 시작케 하셨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인류는 교만하여 바벨탑을 쌓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온 인류를 흩으셨다. 그 이후에 노아의 후손,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부르셨다.창세전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계획하시고 세우시는 목적을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전보다 더욱 선명하게 나타내신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나라를 건립하심에 있어 어떻게 준비하시는지 본문은 말하고 있다.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 본토는 자기가 살고 있는 땅이다. 조국, 고향을 말한다. 친척은 혈육관계이다. 그들과의 완전한 분리를 원하신다. 아버지의 집은 육신의 아버지의 품을 떠나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떠나라고 하셨다. 분리되게 하셨다.왜 떠나라고 하셨나?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 세상과 혼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는 이 혼합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가나안으로 향했지만 하란에서 멈추게 되었고 그 곳에서 죽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나님은 하란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셨다. 번영하고 조상의 사업이 성공하였고 물질이 풍성한 곳이었고 아브라함의 가족과 친구들도 그곳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평생을 먹고 살아도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에 함께 하시 때 하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신다.내 말에 순종할 때 복을 주겠다!내가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니 네가 복이 될 것이다. 이주가 목적이 아니라 큰 민족이 되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큰 민족에 대한 약속을 여러 차례 하셨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이 약속을 받아 드려야 하는 것이다.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말씀 하셨다.하나님이 친히 아브라함의 명성을 돌보시겠다는 것이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의 이름을 열국의 아비, 선지자, 하나님의 방백,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벗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살아있는 동안 부자였고 신분이 상당히 높은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보다 그의 인격과 그가 하나님의 동행하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를 큰 민족으로 세우셨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한 생애의 진가는 여러 대가 흘러야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동시대에는 폄하되었던 인물이 대단한 인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한 여인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향유 옥합을 예수님께 부어드린다. 그것을 본 제자들은 여인아, 왜 이런 짓을 하느냐? 차라리 그것을 팔아 어려운 자들을 돕는 것이 낫지 않느냐? 하면서 그 여인을 책망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인의 중심을 아시고 천하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그 여인을 기념할 것 이라고 말씀 하셨다. 오늘날 예배 가운데 말씀으로 증거 되고 있다.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 문자대로 하면 아브라함이 복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참된 축복은 개인이 이기적으로 누리는 축복이 아니다. 하나님은 한 개인을 축복하시는데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을 축복함으로써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신다. 잘 먹고 잘사는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목마른 자는 다 나아오라고 말씀하시고 와서 생수를 먹으라고 하신다. 육신의 목마름을 말씀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목마름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근원은 가득차서 넘쳐흐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령 충만을 통하여 다른 이들에게 영향자는 그 자신에게 더 해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말씀 하셨다. 본문 이후를 보면 아브라함은 여러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피해를 입은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 피해를 피해 입힌 자들에게 되돌리신다.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호하신다. 예수께서 자신을 핍박하고 죽이는 자들에게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신다. 하나님을 비판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공격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되갚아 주신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까지 들을 때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무르익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아브라함에게 주신 명령과 그에 따른 약속들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역사를 주관하시고 구체적으로 세계 선교를 준비하시고 이루시는 것이다.아브라함이 명령에 순종함에 있어 주어지는 복들을 볼 수 있다.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겠다(영육의 후손이 많아짐)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포괄적인 복)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명예롭게 하심)너를 복이 되게 하겠다(선교사가 되게 하겠다)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 하겠다.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언약은 열방이 받을 복에 대한 약속을 초기 족장에게 거듭 약속하심.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하나님)의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출3:15) 언약을 기억하는 당사자들(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들어가 있는 “하나님”이시라고 강조하신다. 그 이유는 언약을 기억하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이 온 인류가 복 받기위해 이스라엘을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심을 알리기 위해서 이다.아브라함에게 주신 명령과 그에 따른 약속의 의미는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한 가지 약속, 개인적이며 엄청나게 전 세계적 이기도한 약속의 형태로 계시하셨다. 그 약속은 온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열방이 알려주는 선교의 책으로서 각 분야에 대한 자료들이 풍부하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것을 누가가 사도행전 전체를 이 구절을 중심으로 기록했고 이것은 모든 지역이 다 선교의 동일한 대상이라는 것을 뜻한다. 사도행전에서 선교의 역사는 영광스럽게 된 그리스도의 역사로 묘사되어 있다. 사도행전의 선교 활동은 종말적인 사건들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 속에 속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점이다.(오순절의 결과로 나타난 선교의 계속적인 활동) 그리스도 자신이 선교의 주인이지 교회가 선교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크게 강조되어 있다. 사도행전은 평신도 전파자들의 활동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개인적인 전도는 초대 교인들의 단적인 표현이며 바울은 그의 서신서 에서도 많은 신도들의 전도 행위와 협력을 이름을 들어 소개하고 있다. 사도행전은 복음전파에 중요한 역점을 두고 있으면서도 새로 형성된 교회 생활에 매력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그 생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도 주의를 환기 시킨다. 즉, 진정한 복음의 의미를 가르쳐 준다는 것이다.초대교회의 선교는 이방 선교에 대한 명령이 구체적으로 그 실천에 옮겨지기 까지는 오순절 성령 강림 후 온 유대인들과 개종한 이방인들이 복음의 첫 열매가 되었고 스데반 순교 후 신자들의 피난으로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갈릴리 전도가 시작되었으며 사도바울의 소명과 회심사건, 그리고 고넬료의 회개로 인한 예루살렘 교회 안에 이방 선교의 문호가 열림과 동시에 이방 선교에 진출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사건은 성령의 개입과 관여를 통하여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방인 문제였다. 이방인을 할례 없이 받아들일 것인가? 또한 거부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둘러싼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간의 긴장 관계였다. 이것은 할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유대계 기독교인과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할례 문제가 아니고 믿음으로 말미암는들은 기도하여 오순절 날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 제자들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향하여 승천 안에 계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산 증인이 되었다. 그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소아시아, 마케도니아, 유럽, 로마에서 증거 하였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산 증인이 되었다. 많은 교회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표현으로서 이들 지역에 세워졌다.이방인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선교가 본격화 되면서 자연 기독교는 유대교와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구원 사, 구속사가 파괴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겨났다.하나님은 특정한 한 민족이 아니라 모든 나라를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한다. 이런 입장에서 사도행전에서의 바울은 바리새인으로 율법을 잘 지키는 이로, 그리고 이방인들도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나타난다.사도행전에서 바울의 선교는 사울의 박해로 스데반의 순교 이후 외국에 흩어진 기독교인들은 한 결 같이 외국태생의 디아스포라들이었으며, 최초의 이방인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들도 이들이었다. 이들에 의해서 수리아 안디옥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졌고, 제자들이 비로소“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으며, 이 교회에 의해서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마가가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바울이 제일 먼저 찾아 나선 곳은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와 바울의 고향 다소에서 아주 멀지 아니한 갈라디아 중남부 지역 이었다.하나님의 뜻이 나타날 때면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랐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 설립 자체가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것임을 밝히고 있다. 영이28번, 성령이 41번이나 쓰이고 있고 성령 충만 이란 단어도 자주 쓰이고 있다. 주요 인물들이 모두 성령이 충만해서 행동하고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성령께서 일하고 계신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바울은 기도와 금식으로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였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에 박해와 시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기도와 성령 충만 함으로 죽는 순간까지 순례자의 길을 멈추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아침9였다.
주제 :성경의 권위를 공격하는 잘못된 사설이나 신학에 대해 나열하고, 이러한 공격으로부터 어떻게 복음주의 성경 관을 옹호할 수 있는지 논하라.*복음주의자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신실하게 믿고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복음을 믿는 자는 모두 복음주의 자며 복음에 기초한 신학은 모두 복음주의 신학이다.복음주의 신학이 아니면 기독교 신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복음주의는 어떤 신학적 신념들에 기초한 영적 갱신과 부흥 운동이다.기독교의 정통교리를 주장하거나 강조한다고 해서 모두 복음주의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복음주의 신학을 독특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정통주의 성서적 권위 또는 크리스찬 경험에 대한 독점적 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복음의 본질적 요소로 신앙고백으로 그리고 전도와 세계선교에 대한 명령으로 표현하는 열정적 관심이다.종교 개혁적 신학개념과 갱신 및 회심의 정신이 결합되어야 복음주의적이 되는 것이다.부흥과 갱신의 역동성이 복음주의의 본질적 특성이다.근본주의적 복음주의는 교리면 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고 경건 주의적 복음 주의는 감정 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복음주의를 신학적 신념이나 교리로 간주하는 것과 신앙운동과 정신으로 이해하는 것은 모두 복음주의 전통의 양면중 한 면만을 강조하는 것이다.지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현대복음주의는 신학인 동시에 운동이다.복음주의는 종교개혁 신념에 토대를 둔 영적 부흥 및 갱신운동이다.정통 기독교 교리를 신봉하고 복음전도에 헌신적인 것이 복음주의 매력이요장점이다. 현대 복음주의는 활동적이고 대중적이며 실용적인 것이 특색이다.복음주의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지성적 빈곤이다. 복음주의는 폭 넓고 심오한 지성적 노력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비판적 분석과 진지한 성찰보다 문제들을 단순화 하거나 영감과 은사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복음주의의 정체감을 보존하고 지켜 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략은 복음주의 운동의 뿌리를 재발견 하는 것이다.복음주의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부터 그 명칭이 유래된 것이므로 그에 맞게 복음위에 서야한다.또한 복음주의는 종교 개혁, 청교도운동, 경건주의, 부흥 운동 등 그 계보와 역사 속에서 다양한 자원들을 발견하여 새로운 세기를 대비해야한다.이 시대적 요구를 이상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 복음주의다.기독교의 미래는 복음주의 운동 에 달려있다.성경의 권위를 공격하는 잘못된 사설이나 신학으로 자유주의 신학을 들 수 있다.1) 자유주의 신학자(하르낙 헤르만)이 신학 운동은 성경을 오해하고 성경을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 않고 예수님을 도덕수준이 높은 인물로만 알고 하나님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운동이다.2) 양식사학파(디 벨리우스,불트만)특별히 공관복음을 대상으로 하고 그 학설을 전개 하였다.성경을 역사적으로 신임할 만한 책으로 여기지 않으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단지 인간의 작품으로 여기고 연구한다.양식사학파에서 주장하는 이론들은 성립 될 수 없다.초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그 시대에 임박한줄 알았으므로 예수님의 말씀이나 행적 같은 것을 후대에 까지 전할 마음이 없었으며 그것들을 정확하게 보호할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그런 이유로 해서 공관복음은 서로 내용을 달리하게 되어 지금의 형태로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성경의 초자연적인 행적과 초자연적인 말씀들을모두다 후대에 가입된 것으로 간주하고 그 기사들을 믿지 않는다.이처럼 불 신앙적인 편견으로써 성경의 본질적 요소들, 곧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간주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성경에서 어떤 역사적인 불 신임성이나 혹은 불순정성을 발견한 까닭이 아니라 단지 초자연적 성격이 있는 기록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니 그것은 모순된 이론이다.3) 중간주의정통주의에 접근할 입장을 취하면서도 아직까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인하는 분명한 입장은 취하지 않는다.여전히 자유주의 비판기준은 유지하면서 초자연적 기사들도 믿을만한 것은 믿어보자고 하는 신학 입장이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는다.4) 신 정통주의성경을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믿지 않는 학파다.예일대학교수 바로우스에 의하면 가경을 성경으로 인정치 않음에 대하여 유감스러운 뜻을 표시 하였다.그는 가경에도 정경과 같은 가치있는 부분들이있다고 한다.가경은 이단(가현설)을 퍼뜨리기 위하여 저술된 것도 있다.성경을 동일한 사건에 대한 기록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을 보면 그 두 가지 기록이 동일한 성경에 의하여 기록된 것이 아니다 라고 하였다. 또한 성경의 기록이 영감된 것이 아니고 계시를 받은 그 사람(성경기자)들이 영감 되었다고 한다.
질병과 치유상담** 성격 장해의 원인과 치유 방법을 서술하시오 **요즘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보면, 이들의 가정환경을 먼저 떠올리고, 부모의 불화나 좋지 못한 관계를 떠 올리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정신분석적 사고가 일반화 되고 있는 한 경향을 보여 준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친척이나 가족들이 들려주는 어린 시절의 행동과 모습에 대해 사실 거의 기억을 하지 못한다.정신분석은 이러한 기억의 파편을 모아 자기를 열어 보게 한다. 우리의 작은 실언이나 실수는 정신분석 이전에는 하찮은 것으로 여겨졌으나 정신분석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바라보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됨을 알게 되었다.인격이란 어떠한 개인을 특정 짓는 비교적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전반적인 행동경향과 사고 및 감정적 성향을 말한다.인격 장애란 한 개인이 지닌 지속적이고 일정한 행동 양상 때문에 현실에 적응하는 데 있어서 자신에게나 사회적으로 주요한 기능장애를 초래하게 되는 이상성격의 양상이다. 인격 장애자의 인격 장애는 깊이 체질화되어 있고, 확고하여 융통성이 없고, 자신과 환경에 대해 지각하거나 관계 맺음에 있어 비적응적 양상을 보인다. 타인에 대한 배려나 이해심이 없어 대체로 관계되는 사람을 화나게 만들고 결국 관계악화라는 악순환을 되풀이 하며 일과 사랑하는 일에 능력이 부족하다. 인격 장애와 신경증의 다른 점은 환경에 대해 자신을 변화 시키는 자기 수직적 반응의 결과이고 증상을 자아가 용납하지 않는 자아 이질적인 특징이 있어 환자들이 정신과적 도움을 스스로 받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인격 장애자들은 그들의 증상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의 증상이 자신에 맞추어 환경을 바꾸고자 하는 환경 수직적 이고 자신이 용납하는 자아동조적인 특징이 있어 스스로 정신과적 치료를 받고자 하지 않고 의사가 그들의 성격방어를 지적하려 하면, 불안해하며 피하려 한다.성격장해의 원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요인에서 발생된다. 생물학적 요인들은 유전적 요인이 많이 연구되고 있으며, 특히 쌍둥이 연구가 주목된다. 편집성, 분열성, 분열 형 특히 분열 형 인격 장애 환자의 가족에 정신분열증이 많다. 히스테리성, 자기애 적, 반사회적, 경계형의 가족 중에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와 알코올에 매인 사람이 많고, 특히 경계의 인격 장애의 가족에 정서장애가 많다. 히스테리성 인격 장애는 신 체화장애 와 관련이 높다. 강박 성, 수동공격성, 의존성, 회피성 중 강박 성향은 일란성 쌍둥이 간의 일치 율이 이란성 때보다 높고 특히 우울과 관련이 있다. 회피성 인격 장애는 불안 성향이 높다. 어릴 때부터의 기질도 성인의 인격 장애와 관련이 있는데, 예를 들어 어려서 공포심이 많았던 사람은 회피성 인격을 가질 수 있고 나중에 반사회적 및 경계성 인격 장애가 되기 쉽다. 성격 장애의 심리학적 요인들 중, 프로이드는 인격 성향을, 충동과 환경사이의 상호 작용의 결과로 그리고 정신사회적 발달 단계 중 어느 한 단계의 고착된 결과로 보고 구강 적 성격(수동적, 의존적, 과도히 먹는, 물질남용 성향), 학문적 성격(세심, 인색, 정확성, 완고성), 강박 성 성격(완고, 강한 초자아), 자기애 적 성격(공격적, 자기위주)을 구분하여 기술한다. 따라서 인격 장애 환자들을 돕기 위해서는 방어기제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데, 즉 겉으로 드러난 인격 양상의 배후에 있는 진실한 성향과 그것을 방어하고 있는 기제를 분석 할 수 있어야 한다. 편집성 인격 장애 환자의 경우 독립성을 우기지만, 환자의 내적 진실한 모습은 의존성이 강한데 이를 투사로서 감춘다. 분열성 인격 장애는 공상이 주로 사용되고, 히스테리성 인격 장애에서는 해리와 부정이 주로 사용된다. 강박 성 인격 장애는 고립이 주로 사용된다. 건강염려, 분리, 행도 화 등도 흔히 사용되는 방어 기제들이다. 인격 장애의 사회 문화적 요인 중, 인격 장애는 불우한 가족 관계에서 많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어린이의 기질과 부모의 육아 방식이 조화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기 쉽다. 공격성이 장려되는 문화에서는 편집성 및 반사회적 인격 장애가 나타나기 쉽다. 물리적 환경도 문제가 될 수 있는데 밀폐된 환경, 과밀한 환경은 소아를 공격적이며 부산스럽게 만들기 쉽다.상담의 주제로서의 인격 장애는 성경에서 인간의 완전한 인격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묘사 되고 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계시며 하나님의 완전하신 덕을 반영하는 거울이지만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독 인간만 하나님의 형상이요 가장 높고 부요한 신적 계시이다. 창세기 첫 장에서 우리는 인간 창조의 독특성을 발견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다른 동물들을 창조하실 때에는 각기 그 종류대로 만드셨으나, 유독 인간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각 교파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인격 장애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나 그 중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양상은 다음과 같다.편집적 인격 장애는 타인의 행동을 의도적으로 자기를 기죽이려는 행동이나 위협하는 행동으로 해석한다. 늘, 남들이 자신을 괴롭히고 착취하고 해치려 한다고 생각한다. 정당한 이유 없이 의심하고 질투도 심하다. 제한된 정서 반응을 보이며 늘 긴장되어 있고 냉담하고 무정한 면이 있고 자만심을 보이며 유머감각이 결여되어 있다.분열적 인격 장애 환자의 행동은 일반사람들의 눈에도 괴이하거나 이상하게 보인다.(텔레파시 같은 마술적 사고, 관계망상, 착각 등). 히스테리성 인격 장애자들은 흥분을 잘하고 감정적인 사람들로서, 다양하고 극적이고 외향적이며 자기주장 적, 자기 과시적이며 허영심이 많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주의를 끌기위해 과장된 표현을 하지만 실제로는 의존적이며 무능하며 지속적으로 깊은 인간관계를 갖지 못한다. 지나친 고립과 의존성 인격 장애는 자아에 대한 지나친 폐쇄성 혹은 지나친 자아 상실로 인해 고립과 의존을 야기하는 증상이다.(대인관계에 있어서 많은 문제를 야기함)상담자는 인격 장애 양상들을 상담의 주제로 삼게 되는데 인격 장애자들을 상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들의 생활 속에 있는 병적인 방식들은 이미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마치 문제점들이 자기 이외의 주위 세상에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상담과정에서 상담자에게 요구사항이 많으며 그들의 요구가 충족되지 못할 때는 상담자를 비난하거나 상담자에게 분노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상담자가 그들의 행동들을 문제시 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병적인 인간관계와 똑같은 방식으로 상담자와 관계를 형성하려고 한다. 한편 상담자는 약 올리는 환자들에 대해 화가 나서 무의식적으로 또는 교묘한 방법으로 적대감을 나타내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인격 장애 환자들을 향하여 일어날 수 있는 적대감정을 인식하여 환자들이 충동을 행동화 하는 것을 방지하여야 한다.
성경적 성상담 :*사회과학주의 자들이 주장하는 성의 진화론적 이론이 우리현실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사회과학은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 개인의 자질, 성격, 동향을 연구대상으로 하며 인간 상호간의 대립, 인간행동의 조정, 혹은 통제 등을 주요 연구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인간의 철학적 정신문제, 인간의 개별적인 문제, 인간사회의 구조 등을 연구범주로 설정하게 된다. 사회과학의 대상은 인간의 상호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통한 사회적 행동까지 포함하고 있으므로 인간에 의해 형성되고 인간을 규제 할 수 있는 사회 조직과 사회제도까지 포함한다. 사회과학은 사회현실을 중시하며 변화를 현상대로 기술하고 설명을 통하여 학문적인 이론을 구성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과정이 학문하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하여 사회과학적 지식체계 및 이론을 형성하게 된다. 즉, 사회과학 역시 과학이므로 사회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찾는 실용적인 목적을 둔다. 그러나 사회과학은 인간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기 때문에 가치관의 문제가 대두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연과학과 동일한 방법으로 사회현상을 연구하여 규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진화 란 사전적 의미는 생물의 종 및 더 상위의 각 종류가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점차 변화해 온 것을 말하는데 사전의미 그대로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점차 변화해온 것인데 진화에는 정해진 목표가 없고 진화 그 자체가 위대한 실험이다. 아주 간단한 시작으로부터 무수한 생명들이 진화했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인간의 성에는 생물학, 성별, 감정, 행동, 태도, 그리고 가치등과 같은 정신적인 기본요소들이 가득 차 있다. 성은 단순한 관능적인 한 가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거대한 지구와 같은 것 이다. 아직도 성을 거북스럽게 생각하고 그의 존재에 대하여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성은 그 사람의 맛이며 그 사람의 정신이다. 여기서부터 인간의 모든 것이 표현되어지고 영향력이 뻗어나간다. 인간의 참된 성은 자연적으로 발전되는 것이 아니다. 성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만들어 졌지만 또한 우리의 타락한 본성의 부패성을 가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성이라는 좋은 선물은 무수한 방법으로 타락하고 왜곡 되었다. 타락한 인간에게 나면서부터 자리 잡고 있는 거짓된 성은 사회적 태도와 믿음, 문화적 구조, 그리고 생물학적 요인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된다. 인간의 성은 신학적 사회 문화적 그리고 생물학적 요인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거대한 세계이다. 크리스천은 이 증거가 사회 문화적 요인들과 생물학적 요인들을 지적한다고 해서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증거도 인간의 성을 지으신 창조자 하나님의 역할을 빼앗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견해는,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인 인간의 성을 형성하시기 위해 사회 문화적 요인들과 생물학적 요인들을 택하여 사용하셨다는 것이다.한 사람의 신학적 입장과 인간의 성에 대한 사회 문제적, 생물학적 설명들에 주어진 상대적 신용사이의 관계에 주목 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기독교 신학을 가진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들을 설명할 때 생물학적 차이들을 뚜렷이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여성들과 남성들 속에 서로 다른 성 암호들을 새겨 넣기 위해 생물학을 사용하신다고 믿는다. 그러나 똑같은 사람이 동성 간의 성 행위에 대한 가치 판단들을 내릴 때는 환경적 요인을 강조하고 어떠한 유전적 설명도 경시하는 경향 또한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여성에게 하나님의 성직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와는 반대로, 진보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신학과 심리학의 통합과정을 거친 사람들은 정반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들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한 유전적 설명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들은 동성애적 경향과 행위를 다룰 때는 유전적 설명들을 받아들인다. 한 사람이 성에 대한 사회적, 생물학적 설명들에 부여하는 신용에 관해 일관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신학적으로 인간의 성은 창조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반영으로 이해될 수 있다.“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 라”이 구절이 보여주는 것은 남성들과 여성들은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분명하게 구별되지만,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때 이들은 성서적 존재로서 동등하게 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생육하라, 땅을 정복하라,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명령을 받았다.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성적인 존재로 창조하시고 이 창조가 심히 좋았다고 선언하셨다. 성의 수용은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의 한 부분으로 성을 인정하고 이에 감사하는 능력에서 시작 된다.태초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셨듯이 거짓이나 악이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성적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완전한 상태로부터 타락했다. 일탈되어진 것이다. 모든 일류에게 이 타락의 상태가 대대로 유전되었으며, 이 타락의 상태는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온갖 거짓된 성이 포함 되었다. 창세기의 설명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타락이 사회 문화적 삶과 생물학적 삶 모두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타락 이후에 인류는 육체적 죽음과 출산의 고통 그리고 노동을 통한 육체적 수고라는 다양한 생물학적 결과들을 직면하였다.“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 이니라.”사회 문화적 요인들도 타락에 의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 결과 인간관계들이 파괴되었다. 인간관계의 파괴의 증거는 성적인 태도들이 형성되는 가장 기초적인 장소인 가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사회 문화적 구조들과 함께 가정 구조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성을 왜곡해 왔다. 인간의 성을 왜곡 시키는 이러한 가정 구조 속에서는 참된 성을 획득하기란 어렵다. 이러한 타락으로 말미암아 참된 성의 획득은 모든 사람을 향한 갈등과 투쟁을 일어 키게 되었다.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성이 사회 문화적 요인들과 생물학 요인들을 통해 발전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체계들은 여전히 불완전 하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성에 있어서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타고난 유전자 꾸러미에 결핍되어 있는 것들 때문에 고충을 겪는다. 또 다른 사람들은 가정과 공동체 속에서 적절하게 사회화 되지 못함으로 인해 성적인 온전함을 갖지 못한다. 모든 사람들은 어느 정도 수준에서 타락한 세상의 성적 왜곡들을 다루어야 한다.모든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도하신 참된 성은 노력할 가치가 있는 목표이다. 정상적인 유전적 생리적 구조를 가지고 태어난 개인들이 참된 성을 획득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왜냐하면 이들은 부모가 성에 대한 건강한 태도들을 보여주는 가정에서 사 회화되고 공동체의 가치와사회적 가치가 성경의 메시지와 일치하는 속에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거짓된 성은 다양한 형태들을 취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들은 사회 문화적,생물학적, 영적 요인들의 서로 다른 결합에서 생겨난다. 물론 모든 사람은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온전하지 못하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황폐한 성적 파괴로 끝나는 환경들 속에서 살아야 하는 추가적인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 이것은 인간에게 삼중고이다. 이 고통에서 과연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왜곡된 성은 인간다운 삶을 근본적으로 계속해서 파괴한다. 이것이 특별히 사실로 드러나는 것은 성적인 접촉이 상당 기간 치유를 요하는 매우 해롭고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경우이다. 복음의 기쁜 소식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희망과 온전함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원 속에는 성적 고통도 포함한다. 왜냐하면 그분 자신이 상처 입은 치유자이시기 때문이다.지금까지 진행된 분석에 의하면, 성의 발전은 많은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복잡한 과정이다. 성이 사회문화적, 생물학적, 영적 요인들과 연합하므로 그 열매가 나타나는데 죄에 의 해 깨어진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성적 진실을 획득할지 생각해 내는 것은 더욱 복잡하다. 사회과학자들은 우리의 성을 어떻게 이해할까? 그들은 성은 우리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성적 행위에 대한 문화적 정의들을 알아감에 따라 발전한다는 이런바 일종의 진화론적 으로 이해하고 있다. 성이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 환경 속에서 학습되는 것이다. 성관계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는 것은 성적 접촉을 동반하는 육체적 쾌락과 개인적 자기 노출에 의해 빚어지는 결속 때문이다.레이스는 어떤 사회든지 성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을 결정하는 세 가지 요소를 가진다고 주장했다.첫째, 결혼 제도는 성관계를 보호하는 경계선 역할을 한다. 질투심이 많은 배우자는 다른 사람이 경계선을 넘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결혼을 보호한다.둘째, 성별에 따른 역할들도 한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의 표현에 영향을 미친다. 남성은 대개 여성보다 강한 힘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에 비해 성적 권리들을 요구하고 소유하려는 경향이 더 강하다.
사도행전바울의 선교여행제1차 선교여행바나바의 주도하에 바울이 동행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제1차 선교여행은 최초 이방 교회인 안디옥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이 여행은 A.D 47-49년 까지 약 2년간 이루어 졌으며 이동 거리는 무려 2,240여Km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놀라운 사실은 교회 역사상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수리아의 안디옥 교회가 박해를 피해 흩어진 유대인 성도들을 통해 복음을 들은 구브로, 구레네 등지의 헬라계 유대인 평신도들에 의해 세워졌다는 사실이다(행 11:19-30).바울의 행적1.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 받고 바나바와 더불어 출발함(행 13:1-3)2. 항구 도시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상의 그브로 섬 동쪽 끝 살라미에 도착(행13:1-3). 여러 회당에서 복음 전하고 마가 요한과 동행(행 13:5)3. 구브로 섬 서쪽 끝에 위치한 바보에서 복음을 전함. 훼방하던 박수 엘루마 가 소경이소경이 됨(행 13:6-12)4. 바보에서 배를 타고 소아시아 남쪽 해안 도시 버가에 도착함. 여기서 마가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감(행 13:13)5. 버가에서 소아시아 내륙 지방인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이동하여 회당에서 복음을 전함많은 이방인들이 회심하나 유대인 유력자들의 방해와 선동을 피해 이고니온으로 이동함(행 13:14-52)6. 이고니온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나 다시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루스드라로 이동. 그곳에서 앉은뱅이를 고치고 신으로 숭배되나 극구 만류함(행 14:1-8)7.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추격해온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돌에 맞고 실신하여 성밖에버려짐(행 14:19)8.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등 전도한 지역을 돌아보며 성도들을 굳게 함(행 14:23)9. 소아시아 남부 항구도시 앗달리아에서 배를 타고 파송 교회인 수리아의 안디옥으로귀환하여 선교 보고함(행 14:26-28)제2차 선교여행바울에 의해 복음을 듣고 세워진 이방 교회들은 여전히 연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형편에 있었다. 이런 교회들을 돌아보고 양육하기 위해 바울이 실라를 대동하고 출발한 여행이 2차 선교 여행이다. A.D 49년에서 52년까지 3년에 걸쳐 4,500-5,600여Km의 거리를 여행한 바울의 2차 선교 여행에서는 유럽 지역에 복음이 처음으로 들어갔다는 측면에서 선교사적 의미가 크다 하겠다.바울의 행적1. 실라와 함께 수리아의 안디옥 교회에서 다시 선교사로 파송 받음(행 15:40)2. 육로를 이용하여 1차 선교여행지인 길리기아의 더베와 루스드라 교회들을 돌아봄(행15:41)3. 루스드라에서 1차 선교여행 때 복음을 전한 디모데를 조력자로 삼음(행 16:1-5)4. 소아시아 내륙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두루 지나 소아시아 서쪽 끝의 항구 도시드로아에 이르러 환상을 봄(행 16:6-8)5.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 네압볼리를 거쳐 빌립보에 도착함(행 16:9-11)6. 빌립보에서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에게 복음을 전하고, 귀신들려 점치는 여자를 고침이 일로 감옥에 투옥되나 기적적으로 석방됨(행 16:12-40)7. 암비볼리,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함. 이방인들은 복음을 받으나 유대인들의 방해를 받고 밤중에 베뢰아로 떠남(행 17:1-9)8. 베뢰아에서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함. 그러나 데살로니가에서 쫒아온 유대인들을 피해실라와 디모데를 남겨 둔채 아덴으로 향함(행 17:10-15)9. 아덴의 아레오바고 법정에서 철학자들과 변론하고 복음을 전함(행 17:16-34)10.고린도에서 실라, 디모데와 합류하며, 본도 출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도움을받아 18개월 동안 체류하며 전도함(행 17:10-15)11.고린도에서 겐그레아를 거쳐 에베소에 이름. 에베소 교회에서 성도들과 문안한 뒤 배를 타고 가이사랴에 상륙함(행 18:19-21)12.예루살렘을 거쳐 안디옥으로 귀환함(행 18-22)제3차 선교여행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하여 2차에 걸쳐 5년여 동안 무려 6,200여Km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복음을 전한 바울은 2차 선교 여행 후 불과 몇 개월을 지나지 않아 다시금 3차 선교 여행길에 오른다. (A,D. 53년, 52세 정도로 추정됨) 이 여행에서 바울은 거의 5년에 걸쳐 4,500-5,600여Km에 이르는 거리를 여행하며 복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