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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생명은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 인간들은 끝없이 스스로 혹은 세상의 생각 안에서 고민해왔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결론은 나있는가? 대답은 '아니오.' 이다.아마 그것에 대한 해답은 몇 세기가 지나도 끝없이 계속 될 것이다. 이 끝없을 것 같은 근원의 문제를 인류 세기에서 가장 크게 변화시킨 것이 다윈의 진화론이 아닐까? 다윈은 왜 우리가 존재하는지 왜 생물이 존재하는지 가장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진화론 이전의 창조론 세계에서는 더 복잡한 존재가 덜 복잡한 존재를 창조하는 것이라 믿어왔다. 그것의 반대를 이야기한 것이 다윈이었다. 즉 다윈은 덜 복잡한 존재에서 더 복잡한 존재로 발전해 나간다고 주장한 것이다. 난 이 주장에 굉장히 동의하고 있다. 왜냐하면내가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세상은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이 창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씨앗에서 꽃을 피우듯, 부품들이 모여 하나의 제품이 되듯, 모든 순리가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것에 있어서의 창조론의 의견을 동의하지 않는다.다윈의 이론이 많은 이들에게 지지받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마이클 루스의 말처럼 단순한 과학이론을 넘어 우리 자신에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에게 적용된다는 것은 창조론과 비교하여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타자에 의해 창조, 혹은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진화 , 발전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다윈의 의견은 우리 인간이 신에 의한 수동적 존재가 아닌 스스로 발전해가는 능동적 존재라고 인식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발판은 우리 인간이 창조된 특별한 존재, 선택 받았다는 특별 존재사항을 덮고 생명체의 평등을 생각하게 한다. 즉, 모든 생명체가 나무뿌리에서 가지로 뻗어가듯 진화를 통해 발전해나간 평등한 생물들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평등적인 자세가 이전 인간의 이기심을 공존의 자세로 변화시키고 타 생명체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길러주지 않았나 생각해본다.창조론이나 진화론이나 두 가지 모두 인간의 근원을 정확히 결론 내리지는 못한다. 다만 '이러했을 것이다 .'라는 추론적 추측과 거기에서 발견되는 과학, 정신의 산물이나 공식이 조금 있을 뿐이다. 나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창조론이나 지적 설계론에 있어서 호의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한국의 기독교의 진화론에 대한 거부감의 표출은 종교적 목적이 상당하게 가미되어 있으며 과학적인 증명적 이론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적 이라는 말 자체가 상당히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바이지만 일단 내가 밝히고 싶은 것은 종교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사람도 진화론을 상당히 호의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문/어학| 2011.08.22| 1페이지| 1,000원| 조회(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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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과 함께 가라
    와 수도생활그레고리안 성가의 아름다운 소리를 신에게 올리는 수도원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우리가 흔히 볼 수없는 기독교의 수도생활에 대한 면모를 볼 수 있는 좋은 영화다. 원장신부와 음악을 연구하는 벤노 수사, 타실로 수사와 수도원이 아닌 세상을 알지 못하는 순수 청년 아르보 수사는 매일 아름다운 음악을 통해 신에게 찬미를 보낸다. 하지만 그들이 속한 칸토리안 교단은 가톨릭에서 이단으로 파문당해 힘든 수도 생활을 하고 있는 교단이다. 원장신부가 갑작스럽게 죽게 되면서 경제적 악화 등으로 더 이상 수도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그들은 다른 수도원으로 수도생활을 위해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수도생활 속 수도자들의 속세여행 이야기가 시작된다.기독교 역사에서 수도원 제도는 동방의 성 안토니와 후에 나타난 서방의 성 베네딕투스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먼저 나타난 동방 기독교 수도생활의 창시자 성 안토니는 성전에서 '제 집으로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 너의 재물은 하늘에 있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 마태 19:21' 을 듣고 감동을 받아 말씀을 실천하기위해 은둔 수도자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는 철저한 은둔과 금욕 실천으로 초대 기독교의 금욕주의적 수도생활의 모범을 보이기 시작하였고, 파윰을 설립하여 기독교 역사에서 수도원 제도가 공식적으로 시작되게 하였다. 후에 나타난 서방 기독교의 수도 제도는 '수도원 회칙'을 시행했던 성 베네딕 투스의 집단생활의 원칙을 따르며 발전했다. 성 안토니의 수도생활이 은둔형이라면 베네딕투스 수도 회칙을 따르는 수도원은 집단생활과 철저한 수도 규범을 준수하는 집단 수도원 형태였다. 이들은 집단생활을 통해 신학적 전통을 이어갔고 고대문서의 필사와 작업으로 문명의 명맥을 유지하는 것에 큰 힘이 되었다.영화 속 4명의 칸토리안 수도회는 집단 생활을 통한 수도회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벤노 수사는 고대 기독교의 성가를 연구하며 나머지 수도사들도 혼자가 아닌 함께 생활하며 수도생활을 한다. 이들은 현대화 된 문명과 접촉하지 않은 채 그들만의 삶을 꾸려 나가지만 경제적인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결국 규범집을 챙겨 새로운 집을 찾아 이탈리아로 떠나는 그들의 모습 앞에 벤노 수사의 동기였으며 이제는 잘나가는 신학교 교장이 나타난다. 그가 보여주는 예수회는 철저히 세속과 결부된 모습을 보여준다. 규범집을 빼앗으려는 음모 와 피라미드 형태의 가톨릭 계급에서 교황을 향해 잘 보이려는 세속적 승진욕이 나타나는 교회의 모습은 칸토리안 수도사들과 대비 되어 진정 신과 함께 가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하였다.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수도생활에서만 살아갔던 '어린 양' 아르보가 세상에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모습이었다. 음악과 찬미가 삶의 전부였으며 3명의 아저씨들 사이에서 자라났던 아르보에게 나타난 키이라 라는 여자는 그의 삶에 큰 변화를 준 사람이다. 수도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 곳에서 살았던 아르보에게 키이라의 존재는 수도생활을 포기할 만큼 열렬한 열정의 하나였다. 영화는 그런 아르보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현실적이면서 아름답게 그려냈다. 수도사의 탈선으로 그려질 수도 있는 픽션은 누구와 함께 가는 것인지, 그것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며 끝났다. '레몬 세일이라 온 동네가 난린데 한가하게 뒹굴고 있어?'와 같은 위트가 가득했던 이 영화는 수도생활과 그 것을 둘러싼 속세적인 이야기, 그리고 다시 돌아간 신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재미있게 그려냈다.
    인문/어학| 2011.08.22| 1페이지| 1,000원| 조회(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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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실과 메데이아
    미실과 메데이아의 상관관계메데이아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아들인 아이에테스와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의 딸인 이다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메데이아란 이름은 어머니 이다이아와 같이 ‘빈틈없고 교묘한’ 이라는 의미로 그녀의 사랑도 빈틈없고 교묘하며 파란만장하다. 메데이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클뤼타임네스트라’ 와 함께 대표적인 악녀로 통하는 인물인데 클뤼타임네스트라가 자신의 정부와 함께 남편을 죽였다면, 메데이아는 남편의 새 아내와 자신의 아이들까지 죽인 악행을 저지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선덕여왕속의 미실도 메데이아와 비슷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남편인 진지왕을 죽음으로 몰고 가며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자신의 아이를 버리고 권력을 위해 진평왕의 왕비를 살인미수까지 이르게 하는 행위이다. 이를 통하여 보면 메데이아와 미실은 자신의 어떠한 목적을 위해선 살인이라는 최극단의 길까지 들어서는 모습을 보인다.그리스 신화에서 메데이아는 콜기스의 왕 아이에테스의 딸로서 강한 의지와 열정을 지녔고,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보물인 황금양털을 훔치러 온 이아손에게 반해 황금양털을 훔치고, 이아손과 함께 도망친다. 추격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그녀는 동생 압쉬르토스의 사지를 토막내어 바다에 버린다. 추격자들이 시체를 수습하는 동안 메데이아는 이아손과 콜키스를 탈출한다. 이 후 그들은 코린트로 건너가서 두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지만, 테바이의 왕 크레온으로 부터 사위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은 이아손은 메데이아를 배신한다. 이에 분노한 메데이아는 크레온의 딸 글라우케를 살해하고, 두 아들을 죽인 후 남편으로부터 도망친다. 선덕여왕 속의 미실은 신라의 3대에 걸쳐 왕을 모신 사람으로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을 보필하게 된다. 메데이아가 배신이라는 것에 대한 복수의 목적을 지니고 악행을 저지르는 것에 반해 미실은 그녀의 권력을 위해 악행을 저지른다. 자세히 보자면 미실은 자신을 총애했던 진흥왕이 유서에 자신을 비구니로 만드려고 하자 유서를 위조하고 심복등을 통해 왕위를 조작하여 진지왕을 등극시킨다. 그 것에 대한 거래 대가는 왕비가 되는 것이었지만 진지왕이 이를 배신하자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비담’을 버리고 진지왕을 폐위시킨다. 그리고 진평왕을 등극시키는데 일조하고 왕비인 마야부인을 납치 살인하여 왕비에 오르려 하나 마야부인이 살아 돌아옴으로서 그녀의 계획은 실패하게 된다.메데이아와 미실은 모든 악행을 벌일 때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메데이아는 맹목적인 사랑을 위해서 악행을 마다하지 않으며 미실은 권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왕비’라는 자리를 위해 악행을 서슴치 않는다. 그녀들의 인생에서는 비극성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맹목적이었던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들을 그저 악녀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녀들이 행한 여러 가지 행위들은 인륜에서 배반되는 일들이다. 하지만 마지막 그녀들의 인생을 보자면 그녀들에게 비난보다는 동정을 베풀게 된다. 그녀들의 인생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비극을 보여줌으로서 그녀들이 완전하게 원색적으로 비난받지 못할 악녀라는 것을 나타낸다.선덕여왕에서 왜 악녀인 미실이 인기가 많은 캐릭터이며 그에 반해 꿈을 이루는 덕만 공주 (후의 선덕여왕)가 인기가 덜할까? 이것은 현대사회의 꿈에 대한 사람들의 메커니즘이 아닐까? 현대 사회 사람들은 어떠한 인생에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일도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인다. 즉 현재의 경쟁사회는 메데이아와 미실이 누군가를 희생시켰듯이 내가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희생시켜야만 한다. 물론, 두주인공 처럼 살인의 행위는 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또한 덕만 공주는 태생적으로 여왕이 될 태생을 지니고 있었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조력자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성골이라는 명분적인 여지도 충분했다. 허나 미실은 아니었다. 정부 출신이기도 하며 진골이었던 그녀는 그녀의 힘으로 조력자를 얻고 권력을 장악해 갔다. 그러한 모습에서 시청자들이 미실의 욕심 있는 모습에 더욱 애정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과정에서 메데이아와 미실은 쿨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후회와 연민등의 감정이 배제된 채 꿈을 위해서는 다른 건 희생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즉 상처를 받지 않은 듯 냉철하게 장애요소를 배제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현대사회 인간들이 지닌 틈에 부합하게 된다. 현대 인간은 그녀들처럼 목표를 위한 이유 있는 희생에 담담하지 못한다. 한번쯤이라도 후회라던가 연민이라는 감정의 도구를 사용하고 그 것은 아무리 꿈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자국이 남게 된다. 하지만 미실과 메데이아의 행위에서의 그녀들의 모습은 침착하며 차갑기 까지 하다. 죄책감 같은 것들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한 모습 속에서도 우리는 그녀들의 모습에 비난을 가하지 않고 연민으로 그녀들의 최후를 바라본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그녀들의 삶의 꿈이 이루어 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위 ‘당해도 싸.’ 라는 생각보다 꿈을 위한 그녀들의 발버둥에 연민을 갖게 되는 것이다. 메데이아는 도망치고, 미실은 자결하게 된다. 물론 메데이아는 살았지만 그녀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녀 인생에서 맹목적인 것을 모두 동원해도 결국 사랑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실은 ‘모든 권력을 다 가져도 왕비가 아닌 게 싫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녀는 메데이아처럼 어떠한 하나의 목적을 위한 삶을 살기위한 다짐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모든 권력을 다 가지고도 왕비의 자리는 얻지 못하고 자결로 삶을 마감한다.
    인문/어학| 2011.08.22| 3페이지| 1,000원| 조회(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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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복궁 답사 레포트
    경복궁 답사 레포트1. 답사의 初우리에게 경복궁은 이름 자체도 많이 들어보기도 하였고, 익숙한 광화문이라는 정문의 명칭 때문에 서울의 중심 중의 하나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한다. 하지만 과연 내가, 우리가 경복궁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답사를 다녀온 지금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게 된다. (입장 전에 한참동안 멈춰 서서 설명을 들었던) 광화문 복원 공사장 벽의 복궐도를 보면서 경복궁의 규모가 이렇게 넓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의 규모가 적다보니 그저 나의 인식에 경복궁하면 근정전과 경회루 조금 더 나아가면 향원정까지만 기억에 있었다. 하지만 복궐도에는 그 외에도 중요한 부속 건물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어 복궐도 속의 궁궐이 '한 나라의 궁이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모습이었다. 경복궁은 조선시대 궁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린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정문인 광화문부터 느낄 수가 있다. 2010년에 광화문 복원이 완료된다고 하는데 그 이전의 철근과 콘크리트로 지은 '짝퉁 광화문'의 시간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교수님이 말씀해주신 박정희의 한글 친필 현판까지 합해서 말이다. 가장 경복궁다운 것은 경복궁 그대로의 모습을 살려주는 것임을 이제는 문화재청과 정부에서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경복궁에 가해진 만행들은 (일제에 이어 우리 손으로 저지른 잘못된 복원과 전시) 광화문을 지나 궁 내부에 이르러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고궁 박물관 옆의 알 수 없는 집합으로 모여있는 잔디밭위의 석탑들이 그것이다. 근거도 없고 명분도 없어 보이며 자국인인 내가 보아도 생뚱맞은 유물들의 배치는 '정말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나는 이러한 불교적인 요소들이 경복궁에 자리 잡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져 답사 후에 찾아보았는데 조선 물산 공진회라는 것에서 찾을 수 있었다. 조선 물산 공진회는 박람회인데 이것을 빌미로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을 파괴했다고 한다. 그 후에 석탑들을 전시하고 공터에 잔디를 심은 잔디처럼 인위적으로 포장한 풍경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의문을 가지고 생각을 하면서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 모습이었다. 그런 안타까운 현실을 뒤로하고 근정전을 들어서는 초입에 다다랐다. 그 초입에서 교수님이 옆쪽으로 이동해 이곳이 원래 조선 총독부 자리임을 알려주셨다. 김영삼 정부 때 철거된 조선총독부. 너무 튼튼하게 지어져 해체가 아니라 폭파시켜 없애버렸다는 조선 총독부. 그 것의 돔 모양의 지붕이 독립기념관 외부 전시실에 전시 되어있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근정전을 둘러싼 문과 담이 들어선 곳. 조선 총독부는 당연히 철거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이 곳에 그런 건물이 있었다 라는 표식이나 가이드책자의 설명 한 줄이라도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일제의 잔재라고 기억조차 떠올리기 싫은 존재로 여길 수도 있지만, 아픈 과거도 치욕의 과거도 모두 기억해야할 역사임은 분명한 것이다. 아플수록 기억하여 가해자에게 반성의 의미를 주고 다시 이 자리에 근정문의 주춧돌을 세울 수 있게 한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생각해야하는 것이 아닐까.근정전으로 가까워지는 도중 왕도는 계단이 없었다. 궁금하던 참에 교수님이 설명해 주셨는데, 왕은 가마를 타고 지나간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엉뚱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왕들은 아마 비만에 시달렸을 거야, 이 거리도 걷지 않다니!' 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아마'가 아닐 것이다. 정조 대왕을 봐도 우리가 생각하는 (학자 인상) 익히 떠올리는 어진과 같은 모습이 실제로는 아니라고 한다. 역사 프로에서 그를 묘사한 글로 가상해보았을 때 정조는 '이산역의 이서진'이 아니라 충격적이게도 삼국지의 장비같은 모습이었다. 이런 저런 엉뚱하기도 한 생각에 사로잡혀 걷다보니 어느새 너른 마당에 들어섰다. 왕도에 서보니 지붕만 보아도 지위가 높은 건물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모습을 지니고 있다. 행동거지를 조심히 하라고 울퉁불퉁하게 깔았다고 추측하 곳곳을 관찰했다. 창덕궁에서도 보았던 재미있는 의미의 드므와 돌로 만들어낸 각양각색의 동물들이 큰 건물을 보는 재미를 더했다.2. 근정전국가의 중대사적인 행사를 치루는 장소였던 근정전. 근정전은 규모와 잡상의 수만 보아도 격이 높은 건물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창덕궁 개인 답사 시에 한국 건물의 격에 대한 설명을 들어서 이번에 더욱 이해하기 좋았다.) 2단의 높은 월대위에 위치한 근정전의 전면에는 너른 마당이 있는데 그 마당에는 박석이라고 하여 흙 위에 돌을 다듬어 깔아 놓았다. 교수님이 설명해주신 박석이 울퉁불퉁한 이유도 참 재밌었다. 그 이유 외에 또 다른 이유를 찾았는데 울퉁불퉁하게 다듬어져 깔린 돌로 건물주변을 단조롭지 않게 하고 빛이 반사되어도 눈이 부시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는 이유였다. 왕과 왕비 그리고 높은 사람들이 행사를 치룰 때 강한 볕이 내리쬐게 된다면 거울에 햇빛이 반사되듯 일정 각도로 눈이 부시게 하는 일을 만들게 할 텐데 이 것을 미연에 방지한 것이다. 박석 하나에도 세심한 배려를 기한 조상들의 솜씨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근정전의 월대를 올라서는 왕좌와 양옆의 배치를 살펴보았다. 인상 깊었던 것은 통으로 뚫린 천장에 칠조룡 이었다. 교수님 말씀처럼 황제국가가 아니었던 조선에서 정전에 칠조룡을 올린 것이 참으로 놀라웠다. 자금성에서 보았었던 용의 모습과 비슷하게 보여 이유야 어찌되었든 정전에 걸 맞는 장식물이며 권위 있는 모습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가장 재밌었던 모습은 전체적인 왕좌의 모습이었다. 왕의 신비주의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월오봉도의 뒷문이 참 인상적이었다. 경복궁을 많이 가봤지만 어좌 뒤에 그런 비밀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예나 지금이나 높은 위치는 많은 것을 보여주면 안 되는 자리인가 보다. 사극에서는 '주상 전하 납시오'하는 내시의 전언 이후 당당하게 걸어 올라가는 모습을 보였는데 실제로는 뒷문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들어갔다니, 참으로 재밌는 사실이었다.2. 사정전정전을 지나 편전인 사정전 신하들과 업무를 보는 것처럼 그려지는데 이러한 역사적 부분은 제대로 지켜져야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재미를 추구하는 이유도 있는 드라마에 '픽션까지 역사적으로 하라'는 요구는 하지 않는다. 그래도 기본적인 형태는 그대로 재연해야 하지 않을까. 여담이지만 순간 많은 사극들의 비역사성들이 스쳐지나갔다. 살아있는 세종대왕에게 세종이라고 부르는 모습, 허준과 유의태의 나이 등 입이 아플정도로 거론할게 많은 것이 요즘 사극이다. 특히 대장금에 대한 칼럼을 본적이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웠다. 실제로는 숙수들이 음식을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보자면 대령숙수인 임현식이 주연을 해야 하는 셈일지도 모르겠다. 이 칼럼은 쓴 사람은 일본인인 친구가 대장금을 보고 '일본과 중국에서는 남자가 요리를 맡는 경우가 많았는데 조선에서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라고 말해서 칼럼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드라마의 수출은 역사왜곡의 단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유난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드라마라도 사극인 이상은 기본적인 역사적 의식은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인물만 파고 들어서는 안 된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사정전은 왕이 많이 머무르는 건물답게 용이 빠지지 않고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사정전과 가까운 건물들에 회랑을 연결했던 모습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회랑의 모습을 좀처럼 보기 힘들어서 나는 회랑이 발달하지 않은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숨겨져 있는 용도로 존재할 줄이야. 이런 실용적인 회랑이 있었다는 것을 보고 이화원에 있는 기네스에도 올라있다는 회랑도 부럽지 않았다. 궁을 면밀하게 둘러보면 우리 조상들은 참으로 실용적이면서도 단정한 건축을 했던 것 같다. 이러한 세심함은 소소한 아름다움과 직면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주는 것 같다.3. 강녕전과 교태전 그리고 자경전 (침전일원)왕과 왕비의 침전의 일원을 돌아보고 느낀 것은 두건물이 같은 양식을 띄고 있다는 점이다. 창덕궁의 대조전이 용마루가 없다는 것은 이해가 되었지만 정 있다고 한다. 어서 역사학계에서 그 의문점을 풀어주길 바라면서 생각한 것은 우리 조상들은 건물을 지을 때 모습 하나하나에도 의미와 절차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특히 교태전의 화계, 아미산을 지나 자경전에 들어섰을 때 십장생 벽을 보면 느낄 수 있다. 십장생의 모습과 코끼리 등의 모습을 본다면 대비의 침전에 걸맞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경전의 아름다운 꽃담과 그 곁에 기댄 십장생 담은 자경전을 더욱 자경전 답게 하는 멋이 있다.4. 경회루와 수정전복원 공사 때문에 향원정을 가는 길이 나지 않아서 잠시 쉬고 경회루로 향했다. 언젠가는 꼭 저 누각에 올라가 보리라 생각하면서 정면에 도착했다. 커다란 연회를 베풀었던 곳답게 웅장한 크기의 건물 경회루는 못의 경치를 보기에 그만이도록 2층으로 올려지은 것이 특색이다. 원래는 현재 민무늬의 돌기둥에 화려한 조각이 되어있었다고 하는데 중건 시에 민무늬로 중건했다고 한다. 경회루 바로 정면에는 옛 집현전이자 군국기무처로 사용했던 수정전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문이 굳게 닫힌 수정전을 보고 이번 여름에 홀로 경복궁에 와서 운 좋게 수정전에 들어갈 수 있었던 때를 생각했다. (여름 날 방문 때 마침 수정전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여서 수정전 전부를 들어가 둘러보고 앉아서 경회루까지 감상할 수 있었다.) 그때 수정전의 마루에서 창으로 경회루를 바라보는 풍경이 기막힐 정도로 아름다웠었다. 하지만 지금의 수정전은 계절적인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수정전은 경복궁 건물 중에 원형대로 남겨져있는 유일한 건물이라고 한다. 둘레에는 많은 건물들이 즐비했다고 하나 지금은 횡횡하게 홀로 너른 땅을 지키고 서있었다. 집현전의 모습과 그를 통해 들은 세종의 옷을 덮게 된 신하의 이야기.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지만 그 장소에서 들으니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당사자인 신숙주가 후에 세조의 편에 선 숙주 나물같은 인물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떠오르면서 말이다. 수정전에서 답사를 마치면서 경복궁의 답사의 모습들을다.
    인문/어학| 2011.08.02| 4페이지| 1,000원| 조회(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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