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요리배경일본은 남북한 면적의 1.7배이고 전 국토의 70%가 산간지역으로서 평야가 적은편이고 기후는 전체적으로 온대 온순 기후를 보이나 지역에 따라 기후 차가 크다. 이는 음식에 그대로 반영되어 계절마다 요리의 독특함이 살아 있는 일본만의 요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일본요리의 특색1.계절에 민감하다사계절이 뚜렸한 일본기후는 식생활에 그대로 반영된다.각 계절의 재료를 사용하여 그 계절의 맛을 살리는 음식을 최고의 요리로 친다.자연 그대로의 형태를 보존한다2.눈으로 보는 요리즐기는 섬세한 요리라는 점이다 음식을 담는 그릇, 도기 그릇, 대나무 제품, 나무제품, 다양한 재질,형태의 그릇을 이용하며, 담을 때도 공간미를 충분히 고려하여 색과 모양을 보기 좋게 담는 것이 일본 요리의 특징이다. 높은 예술성을 추구하는 점은 그들 나름의 풍류속에서 자라난 것이라고 할수있다.3. 간사이식, 간토식 요리간사이지방은 전통적인 일본요리가 발달한 곳으로 질과 내용을 중시한다이에 비해 흔히 에도요리라 불리는 간토요리는 간사이요리에 비해 맛이 진하고 조림요리 등에 국물이 거의 없는 편이다전통일본요리혼젠 요리:일본의 정식 관혼상제 요리인 혼젠 요리의 유래는 아즈찌 모모 야마 시대로서, 에도시대에 이르러 상차림이 화려해지고 요리에도 예술성을 띄게 되었다 정식 잔치요리이기는 하나, 격식을 차려야 할 중요한 연회나 혼례 요리 외에는 별로 이용하지 않는 형식이다.가이세키요리:복잡한 혼젠 요리의 격식을 본떠 일반인이 이용하기 편하게 간략화한 요리. 일반적으로 결혼 피로연, 공식연회등 가장 많이 쓰이는 형태이다.우리생활 속의 일식전통적인 일식 이외에도 도시락,초밥, 냄비요리,튀김,스키야키,샤부샤부,데판야키(철판요리) 등의 일본의 음식문화는 이미 우리의 식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특히 초밥 요리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인기를 끌고있다.일본의 의복역사일본의 전통의복을 기모노라고 부른다 한자말 그대로 입는물건, 즉 옷 그자체라는 뜻이지만 최근에는 특히 여성의 전통의상을 지칭하는 말로 변화되었다. 옷감이 얼마나 좋고 그림이나 무늬가 얼마나 멋진가에 따라서 그 가치가 정해진다 기모노의 값은 천차만별로서 최소 5백만원 이상가기 때문에 일본여자들은 기모노를 하나 장만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고 할수있다.기모노의 종류후리소데:기모노 가운데 가장 화려한 옷으로 미혼여성들이 입는 예복이다. 긴소매가 특징으로, 소매의 길이에 따라 나뉘고 주로 성인식, 졸업식, 결혼식 등의 행사에 입는다.호몬기: 후리소데가 너무 거창하고 거북하면 호몬기를 입는다 이름그대로 외출용 가운으로 후리소데를 간소화한 것인데 미혼,기혼의 구별이 없으며 사교용으로 입는다.유가타:기모노가 실크로 만든 의식용 옷이라면 유가타는 면으로 만들어진 잠옷등으로 이용되는 간편한 목면옷이다. 주로 여름에 가볍게 입으면, 여름축제 때나 목욕 후 입는다.일본의 여관이나 호텔에서 유가타를 입는다 유가타는 가격이 저렴하고 무늬가 화려하여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일본의 주거문화일본집의 구조방:일본식 방의 문들은 미닫이식으로 가벼운 나무 틀로 되어 있으며 바닥에는 직사각형의 다다미가 깔려 있으며 다다미에는 실화를 신지 않으며 나무로 된 마루에서만 실내화를 사용한다.목욕탕:일본식 목욕탕은 일반적으로 화장실과 분리되어 별도로 되어있고 직사각형으로서 넓지는 않지만 깊이는 서양식 욕조나 한국욕조보다도 훨씬 더 깊다. 몸을씻고 헹군 다음에 욕조 안에 들어가서 피로와 긴장을 푼다.현대 일본인의 생활 모습일본 사람들은 아파트보다는 개인주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평범한 회사원들이 집을 사려면 한평생 은행 빝을 갚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일본에서는 대규모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드물다. 도쿄의 평균 주택규모는 20평이 채 못되는 수준이며 기업 사장도 20평정도의 집에 산다.현대일본 주거문화의 특징일본 주택은 기본적으로 지진에 잘 견디도록 설계되어 있고 화사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내부 공간과 자연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특징 다섯가지!자연재해 특히 지진을 대비한 주택문화가 발달되어 있다.다다미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지진이 많기 때문에 온돌 같은 난방시설을 설치하기가 어렵다.목욕문화가 발달되어있다.주택 내의 가장 큰 방에는 벽장이 있어 이불 등을 넣을수 있다.고다츠 문화가 발달 되어 있다.참고문헌: 박화진*김병두, 일본어뱅크 2002한영해, ,한울아카데미, 2001
고려시대의 재조명의 필요성1.대중적으로 소외된 고려시대고려시대(高麗時代)는 우리 나라 역사에서 다른 시대와 비교해볼 때 소외된 시대라고 할 수가 있다. 삼국시대(三國時代)는 일찍부터 민족적 동경의 대상으로서 큰 관심과 연구의 과제가 되어 왔다. 그것은 활기에 넘치는 민족의 성장기였으며, 동시에 원시적인 소박성을 벗어난 찬란한 문화·예술의 발전기였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민족부흥의 모범을 삼국시대에서 찾고자 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 조선시대(朝鮮時代)는 주로 비판적인 관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것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라는 비극적결과를 초래한 직접적인 기원이 이 시대에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고려시대는 위의 두 시대의 중간에서 동경의 대상도 비판의 대상도 아닌 채 상대적으로 지극히 적은 관심 속에 지내왔다. 최근에 이르러 점차 관심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다른 시대에 비하면 아직도 현저하게 관심도가 낮다. 그러나 고려가 우리 나라 역사상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고려시대는 우리 나라 역사 발전에서 중요한 도약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려의 사회와 문화는 여러 면에서 새로이 검토되어야 할 대목이 많다고 생각한다.2.고려시대의 배경과 발전과정1. 달라진 고려의 사회 모습(1) 백성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태조 왕건의 뜻에 따라 고려 사회는신라와는 여러 면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2) 학식과 능력에 따라 관리를 뽑는 과거 제도가 실시되어 귀족이 아니어도 누구나 과거를통해 관리가 될 수 있었다.(3) 신라 때보다 세금이 크게 줄어들었고 백성들의 생활을 보호하는 기관도 생겼다.(4) 지방 제도가 정비되었으며 관리가 지방에까지 파견되어 왕명이 전해졌고, 지방의 호족은 향리가 되어 지방관을 도왔다.(5) 고장마다 학교가 세워져 유학의 정신이 널리 보급되었다.2. 문벌 귀족 사회의 형성(1) 고려의 사회는 지방 호족의 중앙 관료화와 문벌 형성을 기초로 문벌 귀족 사회가 성립되었다.(2) 귀족 사회를 이끈 중심 세력인 문벌 귀족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었다. 첫째, 중앙 집권화정책에 의해 지방 호족 세력이 중앙 관리로 진출한 경우이고, 둘째, 개국 공신들이 정치를 주도하면서 주요 세력을 이룬 경우이며 셋째, 유교 정치 이념 채택으로 신라 지식인들이 과거를 통해 정치 세력으로 들어온 경우이다.(3) 고려 사회에서는 지방 호족과 유교적 지식인들이 새로운 지배층으로 등장하게 되어신라에서와 같은 진골 중심 체제에서 벗어나 보다 개방적인 사회로 발전하게 되었다.3.고려의 우수성①활발한 무역(1)예성강의 하류에 있었던 벽란도는 수도인 개경에 가깝고 비교적 물이 깊어 배가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어서 무역항으로 크게 발전하였다.(2) 개경에서도 수백 명의 송나라 상인들이 거주하면서 무역 활동을 하였다.(3) 고려는 요나라(거란), 금나라(여진)와는 육로를 이용해서, 송, 아라비아, 동남 아시아, 일본과는 바닷길을 통해 교역하였다.(4) 아라비아는 동양과 서양의 중간 지역에 자리잡고 있어서 동서 문화 교류에 큰 공헌을 하였다. 아라비아 상인들은 송나라를 거쳐 고려까지 왔는데 이들의 왕래와 소개에 의해 고려라는 이름이 서방 세계까지 알려져 외국에서는 우리 나라를 코리아라고 부르게 되었다.②불교국가고려는 불교가 성하여 불교국가라고도 한다. 유교가 고려의 정치이념인 것에 반해 불교는 정신세계의 지도이념이 되었고, 현실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므로 불교는 고려의 문화ㆍ사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이와같이 불교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왕실ㆍ귀족들의 두터운 보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불교가 국가나 개인의 현세생활에 행복과 이익을 준다고 믿고 열심히 숭상하였다. 고려의 불교가 현세 구복적 이고 호국적인 성격을 띤 것은 이 때문이다. 고려의 이러한 숭불정책은 이미 태조때부터 실시되고 있었다. 태조는 훈요십조 중 1조에서 “고려는 부처님의 도움을 받았으므로 불교를 진흥시켜 선종과 교종의 사원을 창건하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태조는 개경에 법왕사, 왕륜사, 흥국사 등 10개의 사찰을 지었다.또한 불법이 국가를 비보한다는 관념으로 사원이 건립되었고 이와 더불어 각종 불교행사의 실시도 있었다. 신라 시대와 마찬가지로 불교가 나라의 후원을 받으며 크게 성장하였다. 태조는 불교 행사인 연등회), 팔관회)의 개최를 당부하여 불교 국가의 방향을 제시하였고 가무와 음주로 함께 즐기며, 제불과 천지신명에 제사하여 국가와 왕실의 태평을 기원하는 것이었다. 광종 때에도 승과 제도를 두어 급제자에게 법계를 수여하는 한편 왕사ㆍ국사 제도를 두어 왕실의 고문 역할을 맡기는 등 승려를 우대하였다. 대각국사 의천)은 이러한 불교를 숭상하는 분위기에서 왕자이면서도 승려가 되어 불교 사상 통합 운동을 폈다. 그는 해동 천태종을 창시하여 교종(화엄종)을 중심으로 선종을 통합하려 하였는데 교관 겸수, 즉 이론과 참선을 겸해야 바른 수행의 길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으며,교 와 선의 통합을 주장하였다.③화려한귀족문화고려는 귀족사회의 발달로 호화로운 예술문화가 발달하였다. 귀족들은 그들의 사치생활을 충족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예술작품을 만들어 즐겼으므로 예술면에서는 상당한 발달을 가져왔다.귀족 취향의 예술품은 독특한 무늬를 넣어 만든 상감청자와 서화, 음악 등이 있다. 또한 고려청자와 금속공예 등도 호화롭고 정교하였다.그러나 이에 반해 건축과 조각에서는 이전시기보다 퇴보한 감이 있다.고려 후기의 예술은 전기에 비해 다소 쇠퇴한 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풍의 변화와 원나라 예술의 영향으로 조형미술의 형태와 양식에 변화를 가져왔다.3.고려의 화려한 문화재①팔만 대장경몽고의 침략을 부처의 힘으로 막기 위해 만든 것으로 1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만들었습니다. 당시까지 동아시아 지역에 존재하던 모든 불교 경전의 내용을 집대성한 가장 방대한 문헌으로 동아시아 지역 당대 최고의 경전이라 할 수 있다. ‘송나라 대장경을 비롯하여 고려대장경 이전에 중국 및 일본에서 제작된 경전과 비교해 볼 때 고려대장경의 학술적 내용 및 품질 관리에 투입된 심오한 노력은 오늘날과 비교해도 놀라운 수준이다‘라고합니다.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 대장경판은 글자의 모양이 고르고 아름다워 세계최고의 목판 인쇄로 인정 받고 있다고합니다. 글자의 모양이 고르고 아름다워 일찍부터 발달한 우리 나라의 목판 인쇄술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②직지 심체 요절금속 활자로 인쇄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입니다.고려 말에 국사를 지냈던 백운이라는 스님이 선불교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여러 이야기를 모아 만든 책입니다. 이 책은 원래 상하 두 권이었는데 현재는 하권만 남아 있고 그것도 첫 장은 없어진 상태입니다. 이 책은 1886년 초대 주한대리공사로 부임했던 콜랭 드 플랑시(1853~1922)가 수집해 자기 나라로 귀국할 때 가지고 간 것으로 전해집니다 직지심체요절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으로 1377년에 흥덕사에서 간행하였으며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빨리 찾아왔으면 합니다③고려청자고려청자는 귀족들의 사치생활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가지 예술작품을 만들어 즐겼고,이로 인해 예술이 발달하게 되었다.그러나 그 때의 예술이란 귀족취향의 귀족예술이었고, 일반서민생활과는 거리가 있었다.귀족예술을 대표로 한 것이 고려청자였다.
한국의 건국신화과 목담당교수학 과학번/이름건국신화란?건국신화는 인간 세계에 국가라는 제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성립하였는지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명기원신화에 속한다. 그리고 건국신화는 국가단위의 집단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비교적 후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적어도 부족단위의 집단이 모여 그보다 규모가 더 큰 국가단위로 발전해가는 청동기시대 이후에 건국신화가 나타났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건국신화는 국가의 성립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신화적으로 신성화시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건국신화가 피지배자에 대한 지배자의 권위를 정치적으로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한 측면이 이 점에서 나타난다.건국신화의 모티브일반적으로 건국신화에는 몇 가지 중요한 모티브가 있다.(1) 단군신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국가의 시조가 신성(神聖)한 존재라는 점(2) 건국시조가 주몽처럼 어려서 고생하다 나중에 성공하는 영웅적 인물이라는 점이다.(3) 시조의 신적인 성격은 바로 국가와 구성원의 신성성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건국신화의 시조가 국가적인 행사나 기념일에 모든 구성원의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공동체 자체의 신성함을 퇴색시키지 않고 보존하기 위해서이다.한국의 건국신화1.단군신화-한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고조선의 첫 임금. 그에 관한 우리나라의 첫 사서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史)》에 전하며, 천제(天帝)인 환인의 손자이며, 환웅의 아들로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하였다고 전합니다.옛날 환인(桓因)의 서자(장남이 아닌 아들을 지칭) 환웅(桓雄)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므로, 아버지가 환웅의 뜻을 헤아려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가 사람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의 신단수(神壇樹)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善)·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렸다.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 속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일렀다. 곰과 범은 이것을 먹고 근신하기 3.7(21일)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고 범은 못참아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어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배게 해달라고 축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하여 혼인하여서 아이를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壇君王儉)이다. 왕검이 당고(唐高: 중국의 가장 오랜 역사 고전인 상서에 나오는 성군인 三皇五帝 가운데 堯 임금을 말함) 즉위 50년인 경인(庚寅: 당고의 즉위년은 戊辰이며, 즉위 후 50년은 丁巳이고 경인이 아니니 틀린 듯하다)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다.2.주몽신화-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 주몽에 관한 신화입니다.시조 동명왕(東明王)은 성(姓)은 고씨(高氏)요, 이름은 주몽(朱蒙)이다. 이 보다 앞서, 북부여 왕 해부루(解夫婁)가 동부여로 피해 가고, 부루가 죽자 금와(金蛙)가 왕위를 이었다.그 때 한 여자를 태백산(太白山)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만나 물으니, 금와가 이상히 여겨 유화를 집에 두었더니, 햇빛이 비쳐 몸을 피해도 좇아가며 비추었다. 이로 해서 잉태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다섯 되 들이나 되었다. 왕이 버려서 개, 돼지에게 주어도 먹지 않으며, 길에 버리면 소나 말이 피해 가고, 들에 버리면 새와 짐승이 덮어 주었다. 왕이 깨뜨리려 해도 깨어지지 않으니 도로 어미에게 주었다. 어미가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두니, 한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기골이 영특하고 기이하여 7세에 벌써 보통 사람과 다르게 뛰어났다.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면 백발 백중하였다. 속담에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주몽이라 하였다.어느날 왕의 다른 아들들이 여러 장수와 함께 주몽을 장차 해치려 함을 알고, 졸본주에 이르러 도읍하였으나 미처 궁실을 짓지 못하여 비류수(沸流水) 가에 초막을 짓고 국호(國號)를 고구려(高句麗)라 하였다. 고씨(高氏)로 성을 삼았으니, 그 때 나이 12세였다.3.박혁거세 신화-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건국신화입니다.옛날 진한(辰韓) 땅에 여섯 마을이 있었는데, 어느날 고허촌(高墟村) 촌장 소벌공(蘇伐公)이, 양산 밑의 나정(蘿井)이라는 우물 곁에서 흰 말이 무릎을 꿇고 우는 것을 이상히 여겨 가 보았더니, 말은 간 곳 없고 불그스럼한 알이 하나 있었다. 깨 보니 아기가 있어 소벌공이 데려가 정성껏 길렀다. 이 아기는 점점 준수하여져 나이 열세 살에 뛰어난 젊은이가 되었다. 이에 여섯 마을 촌장들이 모여 이 아이를 임금으로 삼고, 박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박(朴)이라 하였으며, 세상을 밝게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름을 혁거세라 하였다고 한다.
년 월 일 요일일본의 관혼상제 (冠婚喪祭)- 인간의 관문 4가지 -과 목일본문화담당교수학 과학번/이름일본인의 관혼상제관혼상제(冠婚喪祭))라 함은 관:관례 성인식,혼:혼사 결혼식,상: 장례식,제: 제사 이다.관혼상제라고함은 인간이 태어나서 겪어야할 관문 4가지를 의미한다.일본의 관혼상제에 대해서 알아보자.관(冠):성인의식성인의 날은,1948년 1월 15일 어른이 된것을 자각하고,스스로 살아가려는 성인을 축하하며 위로하는 날로 정해졋다. 현재는 2000년에 제정된 해피 먼데이법에 의해서 1월 2번재 월요일로 개정되었다.성인의 날에 행하는 성인식에서는, 여성은 후리소데)남성은 정장이나 하카마)를 입고,시장들로부터 축하의 말을 듣는다 각 지방별로 행하므로 그 지방마다 이벤트가 다르다.(왼쪽부터 후리소데 하카마)일본은 성인이 된 젊은이들을 ‘신성인’이라고 부르고 성인식을 국민의 축일로 정했다만 20세가되면 참정권과 술과 도박이 허용된다. 행사는 보통 도도부현단위로 축하 퍼레이드를 하며 부모님,친구들과 기념촬영,파티,성인증 수여, 각종 레크레이션을 한다혼(婚):결혼식신사 결혼식명치 33년 대정천황의 성혼을 기념해 시작된 예식 형태로 3,3,9도라 해 식 진행을 보조하는 두 사람이 세 개의 술잔과 암수 한 쌍의 종이나비가 붙여진 술병을 신랑 앞에 가져오면 신랑이 세 번에 나눠 마신 다음 제녀에게 잔을 돌려준다. 제녀가 이 잔을 신부 앞으로 가져가서 술을 따르면 신부도 세 번에 나눠 마신 후 제녀에게 돌려준다.세 번 반복, 총 아홉 번을 돌려가며 마시는 합환주의식을 따르는 것이 특징이다.합환주는 종족보존과 자손번창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오래 전부터 내려온 의식이다.결혼식 의상신전 결혼식이나 불교식 결혼의 경우 신부는 쯔노카쿠시)라 하여 커다란 수건을 쓴 모양의 전통의상을 입는다. 색깔은 흰색으로 때묻지 않았다는 뜻이다. 신랑은 하오리 하카마를 입게된다.결혼풍습일본 결혼식의 경우에는 친척만 참석하고, 피로연석에도 가?운 사람들만 한정하여 초대하므로 사람들이 많고 붐비지는 않는다. 대신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엽서에 여행지에서의 사진과 함께 ‘저희 결혼했습니다’라는 내용으로 알리는 것이 보통이다.여자는 남편의 성을 쓰게 되는데, 최근에는 여성들 쪽에서 여성 차별이라고 하며자기 성을 쓰는 경우도 있다.상(喪):장례식장의는 유족이나 근친자에 따라 거행되며, 고인을 현세에서 불교세계로 보내는 의식으로 보통 통야의 이튿날 행해진다. 고별식은 성불을 한 고인 생전에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의식으로 장의가 완료된 뒤 거행된다.장례절차는 사망, 通夜(통야)), 장례 및 고별식으로 진행된다. 위독하면 주위에 연락하게 되는데 가족, 친족, 근무처 등 교제가 깊은 사람들이 대상이 된다.임종임을 알리면 마쯔고노미즈라)는 것을 마시게 한다. 임종한 사람의 목을 적시기 위해 하는 것이었으나 현재에는 입술을 적시는 정도로 끝낸다. 새붓이나 붓대롱 같은 것에 솜뭉치를 뭉친 것과 물그릇을 준비하여 입술에 물을 찍어 바르는 것이다. 고인과의 가장 관계 깊었던 순서로 행하는데 보통 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 조부모, 손자 등의 순서이다.사망이 확인되면 유체를 깨끗이 하는데 이를 유깡)이라고 한다. 알콜이나 따뜻한 물로 적신 탈지면 등으로 전신을 닦고 귀, 코, 항문에 탈지면을 넣고 눈과 입을 닫게 한다. 남자는 면도, 여자와 아이는 옅은 화장을 해준다. 장의사가 하며 주위의 사람들도 도와준다. 유깡이 끝나면 시니쇼우조꾸라는 하얀옷을 입히고 삼각두건을 머리에 씌우고, 장갑, 각반, 양말, 조리, 지팡이와 염주를 들려준다. 간략화되어 고인이 좋아하던 옷과 유카타를 입히고, 그위에 장의사가 준비한 옷 등을 놓는다.준비하고 나면 스님을 불러 고인의 머리 맡에서 독경을 하게 하는데,일반적으로 사망한 날 밤에 독경을 한 후 납관을 한다. 납관은 유체를 안치했던 그대로 넣는다. 최근에는 생화를 넣어 장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독경이 끝나면 스님에게 부탁하여 법명을 받아 두는데 이를 가미묘우(刑名))라 한다.원래는 생전에 받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망후 납관까지 아니면 늦어도 장례식 전까지는 받아두는 것이 일반적이며제:祭일본은 대부분 고인에 대한 제사를 절에다 위탁하고 일정한 사례비만 제공한 채 돌아보지 않는 경향이 점점 일반화해가고 있다고 한다. 조금 나은 사람은, 제삿날만이라도 절에 가서 법회에 참석해 예를 갖춘다고 하며, 아주 신심이 깊은 사람은 아예 자기네가 거주하는 방의 한켠에 약식불전과 위패를 만들어 놓고 돌아가신 날 아침 저녁으로 공양을 한다고 합니다.
년 월 일 요일설탕을 과잉섭취 할때의 문제점- 당뇨병,비만,충치를 줄일수 있는법 -과 목식품과영양담당교수학 과학번/이름설탕의 위험성??-설탕의 소비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성인 두 사람 가운데 한 명꼴로 비만 증세를 보이며 아래의 그래프에서 보이듯 성장기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노인성 제2형 당뇨병)이 급상승 중 하는 추세이고 충치문제는 말할 필요도 없을것이다 또 설탕은 고혈압과 각종 순환계 질병의 주범이기도 하고 또 일종의 합법적 중독성 약물이다.이런 상황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우리가 설탕이 많이 함유된 식품을 먹음으로서 우리스스로 기대수명을 깎아 내리고있다.또 우리가 치료할 비만,당뇨병,치과비용 등등은 어떤한 의사는 ‘전세계의 수없이많을잠복당뇨병환자들과 당뇨병환자들을 치료하기위해서 인슐린 주사 공장을 13개나 세워야 할것’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 농담은 절대 웃고 마는 농담이 되어선 안됀다.설탕이 더 위험한이유는 우리가 모르게 우리 생활 곳곳에 숨어 있다는것이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료수,케이크,햄버거,피자 등등 셀수없이 많은 설탕들이 우리의 몸속으로 섭취 되고잇으며 앞으로도 섭취를 할것이다.당뇨병,비만,충치,고혈압,성인병을 줄일수 있는방법-당뇨병 줄이는법①자연 식품이 최고다:당뇨병을 막아주는 식품은 자연 그대로의 복합 탄수화물이다.즉 가공 과정을 거치지 않은 잡곡이 좋다②맥주와 담배를 끊어라 흡연자는 인슐린 저항력이 높아지고 맥주도 마찬가지로 인슐린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마시지 않는게 좋다③운동은 필수:가벼운 산책 자전거 타기 등은 피의 글루코오스 농도를 낮춰주면서 인슐린저항증을 치유해주는효과를 갖고 있다. 활발한 사람이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건이미 증명된 사실이다-비만 줄이는법①설탕 업계의 기만을 없애라: 우리가 먹는 음식을보면 들어보지 못한 이상한 전문용어들이 많은데 설탕의 여러종류를 어렵게 이야기한 것이다 이를 법적으로 규제해야한다②탄산음료를 마시지말아라: 한 캔의 콜라는 이미 설탕 하루 허용치를 넘는 당분을 함유하고 있다 두병째부터는 건강을 해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부모가 제한을 두는게 옳다③적정한 운동:적당한 운동은 지방을 분해하여 에너지를 생성해서 비만을 줄이는 법이다건강에도 굉장히 좋으며 아이들의 신체발달까지 유도할수있다-고혈압 줄이는 방법①계단운동:위의 방법과 마찬가지로 고혈압에는 무리가 갈정도가 아닌 가벼운 운동을하는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부작용없는 치료법 바로 운동이다②신선한 과일을 섭취해라:비타민C가 풍부한 과일이나 야채를 적당히 섭취할 경우 심장마비나 뇌졸중에 걸릴 위험과 고혈압의 위험은 확실히 줄어든다③칼륨이 풍부한 음식을먹어라:바나나,아보카도,브로콜리,셀러리,감자,배추,양배추,상추,각종콩류,아스파라거스,버섯,호밀,귀리,보리,메밀,현미 등을 많이 섭취해라-충치를 줄이는 방법①레몬,오렌지,귤을섭취해라:신과일은 침의 분비를 돕는다. 침은 면역을 담당하는 많은 물질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체를 쉽게 퇴치할 수 있다.침을 통해 박테리아를 배출할 수 있으며 또 침은 유기산의 형성을 막아주는 중탄산염)을가지고 있다 침 속에 들어 있는 면역단백질과 인산염은 플라크)를 녹여내 중화히기도 한다②치즈를 먹어라:플라크의 페하지수가 건강을 해칠 정도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준다.여기에 속하는 것이 치즈다 침의 분비를 자극하는 치즈의 성분에서 찾을수있다-설탕을 줄이는 방법①건강한 아침식사를 해라②하루 섭취하는 당분의 양을 알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