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 주제 : 우리나라의 관광지 한 곳을 선정하여 선정대상, 선정이유 그리고 선정된 관광지의 현재 문제점과 앞으로 좀 더 나은 관광지로서 발전하기 위한 개선 방안을 제시하시오.1. 우리나라의 관광지 : 울산광역시.2. 선정 이유울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공업도시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울산이라 하면 가장 먼저 중공업, 자동차 등으로만 생각하고 관광지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일 것이다. 울산에는 크게 열두 군데의 관광지를 모아 ‘울산 12경’이라 부르는데 이 과제를 통해 울산의 관광지를 소개하자 한다.울산 12경- 제 1경 ‘가지산 4계’울산 울주군과 경남 밀양시, 경북 청도군에 걸쳐 있는 가지산(1,240m)은 해발 1,000m 이상의 7개 고산으로 이루어진 영남의 알프스 중 울산 산악의 주봉이다. 백두대간의 여맥이 힘껏 솟구쳐 형성한 영남 알프스는 가지산을 비롯해 취서산(1,092m), 신불산(1,209m), 천황산(1,189m), 운문산(1,188m), 고헌산(1,033m), 문복산(1,013m)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균형 잡힌 산세와 웅장함을 자랑하는 가지산은 계절마다 독특한 자태를 뽐낸다.가지산 입구에는 비구니의 수련도량으로 유명한 석남사가 자리 잡고 있으며, 운문산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에는 기암괴석과 억새밭이 어우러져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가지산의 또 다른 묘미는 이야기를 간직한 바위 봉우리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베틀 같은 베틀바위, 딴청을 부리고 있는 딴바위, 탐욕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있는 전설의 쌀바위 등이 있다. 쌀바위는 전국의 암벽 등반가들이 한번쯤 들리는 암벽 코스로도 유명하다.가지산 아래에는 석남골과 청수골이 있는데, 밀양고개에서 석남사를 향해 동쪽으로 전개되는 석남골은 말 그대로 심산유곡이다. 흰반석, 연못, 작은 폭포들이 줄지어 있으며, 이 물줄기는 태화강의 시류가 된다. 가지산 자락에 있는 통나무집이나 가든 등지에서 산채비빔밥, 버섯, 언양 한우불고기등 전통 음식을 맛본 뒤, 탄산유황온천과 휴양림에서 여행대와 관련한 자료들과 울산항을 소개하는 시설을 갖추어 놓아 흥미로움을 더한다. 등대 전망대에 올라서면 시원한 동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투명한 쪽빛 바다에서 눈길을 돌려 북쪽으로 4km 정도 거슬러 가면 길이 1km, 폭 30m 정도의 아담한 진하해수욕장이 있다. 자그마한 섬 명선도와 하얀 모래사장, 얕은 수심, 그리고 물살을 헤치는 윈드서핑이 어우러져 아름다움 풍광을 보여준다.한 폭의 수채화처럼 낭만적인 해안 절경을 따라 간절곶 남쪽으로 여정을 잡으면, 신리, 서생, 나사 등 자그마한 항구와 방파제가 늘어 서 있는 바닷가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제 3경 ‘주전 해안 자갈밭’바다로 열려 있는 도시 울산. 주전에서 강동으로 이어지는 해안가는 울산이 가진 천혜의 자원이다.수면 위로 고개만 살짝 내민 기암괴석들과 전국의 수석 애호가들이 탐을 내는 검푸른 자갈밭이 널려 있다. 콩알만한 것부터 호박만한 크기에 이르기까지 몽돌이 깔린 바닷가 풍경은 다른 해변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다.동북쪽으로 울산의 마지막 자연 마을인 강동의 밤 풍경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근사한 외양의 레스토랑이 해안선을 따라 아름다운 조명을 발하며, 멀리 바다에서는 오징어잡이 어선의 불빛이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동에서 남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주전 해안은 색다른 즐거움이 가득하다.산등성이를 따라 흩뿌려져 있는 어촌 마을은 정겹기만 하고,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푸른 바다와 함께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카페들은 신비로운 색채를 그려낸다. 맨발 등산로, 대규모 꽃단지, 산책로, 장승단지 등 도심 속 휴식공간으로 애용되는 봉대산 공원과 동해안 야경의 진수로 손꼽히는 주전봉수대가 있기에 이곳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문화유적이 가득한 주전 바닷가와 강동에서 감포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소문난 드라이브 코스로 젊은 연인들을 비롯해 가족 여행객들의 눈높이를 한층 올려놓을 것이다. 강동 정자항 주변의 회센터와 주전동 회촌에서 맛보는 생선회는 미식가들의 입맛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제 4나무, 목련, 동백, 매화, 개나리 등이 다양한 꽃 잔치를 연출한다.송림을 벗어나면 탁 트인 해안 절벽이다. 마치 선사 시대의 공룡화석들이 푸른 바닷물에 엎드려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거대한 바위덩어리들이 뭉쳐 있다.불그스레한 바위색이 짙푸른 동해와 묘한 대조를 이루는데, 곧장 마주 보이는 대왕암은 하늘로 솟구치는 용의 모습 그대로다. 댕바위, 혹은 용이 승천하다 떨어졌다 하여 용추암이라고도 하는 이 바위는 신라 문무대왕비가 죽어서 동해의 호국룡이 되어 이 바다에 잠겼다는 전설이 전해내려 온다.- 제 5경 ‘대운산 내원암 계곡’대운산(742m)은 계곡을 빼면 가치가 반감하는 산이다. 대운산과 계곡은 실과 바늘 같은 존재, 아니 그 자체로 암수한몸이다. '애기소 폭포', '구시소' 등의 배어난 폭포와 맑고 청량한 물줄기가 계곡 구석구석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더구나 등산로가 완만해 가족 나들이로 적합한 곳이다.대운산 계곡이 시작되는 지점은 주차장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계곡 속의 작은 연못 '애기소'라 할 수 있다. 짙푸른 물을 가득 채운 10여 평의 소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원하다. 계곡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기역자 모양의 웅장한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하여 소망객의 기도가 이어진다.대운산 계곡은 형형색색의 기암괴석이 많아 수석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어느 한적한 바위에 걸터앉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군 채 물과 바위, 사람이 하나 되는 탁족 삼매경에 빠져보는 것도 지나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적당한 오르내림과 능선의 기복이 있는 이곳 등산로는 단풍나무, 서어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하늘을 뒤덮고 있어 마치 산림욕장에 온 듯한 느낌을 전한다. 터널 같은 호젓한 산길을 따라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만보' 등산로라는 이름처럼 기분 좋은 '느긋함'을 약속한다.대운산 계곡이 지닌 색다른 묘미는 예로부터 영남 제일의 명당으로 알려진 내원암에서 찾을 수 있다. 내원암은 신라 시대 원효대사가 마지막 수낸다.내일의 희망을 위해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울산공단에서 천 년 신라의 역사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신화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유일한 비밀열쇠 '처용암'과 '개운포 성지'가 바로 그것으로 석유화학단지와 온산공단 사이에 위치해 있다.관용과 화해의 상징인 처용은 갈등과 대립을 넘어 조화로운 삶을 모색하는 우리의 전통과 맞닿아있다. 해마다 10월이 되면 울산 최대의 축제인 '처용 문화제'가 개최되는데, 각종 문화 행사 및 체육 대회,예술 공연 등 풍성한 볼거리가 가득하다.처용암 옆에는 수령300년이 넘는 동백나무가 울창한 숲은 이룬 동백섬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 65호로 지정된 이곳의 상록수림은 아름다운 주변 경관과 잘 조화돼 섬의 운치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무룡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장생포 앞 바다 멀리 눈길 닿는 끝에 울산 귀신고래 회유해면이 있다. 세계적 희귀동물인 귀신고래를 보호하고자 울산의 동해안 일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것인데, 고래잡이에 얽힌 장생포 주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곳이다.- 제 7경 ‘반구대’반구대(盤龜臺)는 언양읍 대곡리의 사연호 끝머리에 층을 이룬 바위 모양이 마치 거북이 넙죽 엎드린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반구산(265m)의 끝자락이 뻗어 내려와 우뚝 멎은 곳에 테라스처럼 층층이 쌓인 점판암으로 형성된 기암절벽이 솟아있고, 돌 틈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와 그 아래를 굽이쳐 흐르는 대곡천(大谷川)의 맑은 물이 절묘하게 뒤섞여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연출한다.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이 언양에 유배되었을 때 반구대를 자주 찾아 천혜의 절경을 즐기며 귀양살이의 괴로움을 달랬다 하여 ‘포은대(圃隱臺)’라 불리기도 한다.반구대 인근에는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국보 제285호 반구대암각화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약 1억 년 전에 형성된 공룡발자국과 신라화랑의 호연지기가 느껴지는 국보 제147호 천전리각석이 산책로로 연계되어 역사체험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제 8경 ‘신불산 억새공원’울또한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자연 휴양림에는 노각나무, 들메나무, 서어나무, 박달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뤄 사계절 모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휴양림 내에 위치한 파래소 폭포는 배내골 깊은 계곡과 하얀 물보라가 어우러진 절경으로 울산 12경의 하나이다.산허리를 길게 돌아가면 33m의 거대한 물줄기 사이로 오색 비단을 풀어 놓은 듯 아름다운 무지개가 떠 있는 홍류폭포의 비경도 빼놓을 수 없다. 눈으로 듣고, 소리로 보는 이색 즐거움이 교차한다. 볼 것이 너무 많아 힘든 산행이었다면, 하산 길에는 신불산 입구의 등억온천 단지에 들러 지하 600m의 천연 암반수로 피로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 신경통, 소화기질환, 피부미용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 평소에도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 식수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수질이 뛰어난 온천이다.-제 9경 ‘울산체육공원’2002년 한ㆍ일 월드컵 경기장인 문수축구경기장이 태양을 향하여 비상하는 학처럼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울산체육공원은 스포츠와 문화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문수산과 남암산을 배경으로 자연호수와 울창한 삼림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연출한다. 호수내 대형 고사분수와 수생식물이 무성한 생태학습장, 인라인스케이트장, 자전거용도로, 2002m호반산책로는 도심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입지성과 편리한 교통으로 인해 시민들의 여가활동과 체력단련장으로 사랑받고 있다.호수와 연접한 호반광장은 각종 공연과 전시, 문화행사 등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되는 열린 공간으로 가족 및 친구, 연인들이 함께하는 시민 문화체험의 장이 되고 있다.울산체육공원 맞은편에는 최신 시설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문수국제양궁장이 자리 잡고 있는데 경기가 없는 날에는 일반에게 개방하고 있다.- 제 10경 ‘작괴천’작괘천(酌掛川)은 수석이 청정하고 화강암이 세월의 물살에 깎여 마치 술잔을 주렁주렁 걸어 놓은 듯이 기이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작괘천은 해발 1,083m의 간월산(肝月山)에서 발원하여 109척의 홍류폭포를.
1.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1970년 4월 8일)1970년 4월 8일 오전6시40분 경 서울특별시 마포구 창전동 산1번지에 위치한 와우지구 시민아파트 5층 15동이 무너져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고이며, 부실공사가 원인이었다. 무면허 건설업자는 가파른 산 중턱에 아파트를 지었으며, 건설 허가를 따내기 위해 쓴 뇌물 때문에 공사자재를 아껴야 하였다. 그래서 철근 70개를 넣어야만 튼튼하게 유지될 기둥에 달랑 5개의 철근을 넣었으며, 결국에는 준공 4개월 만에 아파트가 무너져 사망 33명, 부상 40명의 인명피해가 일어나고 말았다. 이후 서울시내 405개 동 시민아파트 전체에 대한 안전진단이 실시되는 등 법석을 떨었지만 부실공사 관행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으며 1990년대에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로 이어졌다. 이렇듯 연이은 사고는 70, 80년대의 하도급 비리와 준공검사의 허점을 드러내었다※ 사고 원인① 시공회사인 (주)대룡건설이 맡은 제3공구 13~16동 아파트에 투입된 총예산은 관급자재로 시멘트 1만 6,614부대, 철근 105만 5,813t(932만 7,026원) 등 2,638만 3,455원이었다. 이 예산은 택지조성비·축대비 등을 제외하면 건축비가 평당 1만 원도 채 안 되는 부실한 공사였다는 사실을 증명한다.② 너무 짧은 공사기간. 와우아파트는 1969년 6월 26일 착공해 6개월 만인 12월 26일 준공했다.③ 와우시민아파트 15동의 설계상 건물 하중은 ㎡당 280㎏인데 무너진 15동의 실제하중은 900여㎏으로 ㎡당 600㎏ 이상 초과되어 있었다. 설계상 하중이 280㎏으로 낮게 정해진 것은 당시 불량 무허가건물 입주자들의 생활이 지금의 시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기 때문이었다.④ 70도 경사진 산비탈에 세워진 와우아파트가 위치한 곳은 와우산 중턱인데다가 계곡을 끼고 있었다. 그러나 공사를 할 때는 이 점을 무시하고 아파트 뒤쪽만이 암반 위에 얹혀 있었을 뿐, 아파트 무게의 3/4을 차지하는 앞쪽에 30 × 7㎝의 기둥 7개만 박아와 복도난간이 무너지면서 시멘트 블록 파편이 날아가 인근 주택가를 덮쳐, 집안에서 가족들과 TV를 보고 있던 주민 김경란(당시 19세, 청량리경찰서 타자수)이 판잣집지붕을 뚫고 날아온 길이 40cm, 넓이 20cm 크기의 콘크리트 더미에 뒤통수를 맞아 그 자리에서 숨지고 그의 가족 3명을 비롯하여 미주아파트 6동 802호 일가족 5명 등 1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가스폭발과 함께 아파트단지가 정전되고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으며, 화재가 발생하여 불길이 번지자 소방차 24대와 고가사다리차 3대, 소방관 69명, 경찰관 35명이 출동, 1시간 만에 진화되었다.사고가 발생한 청량리 미주아파트는 1983년 1월 12일부터 LPG배관을 도시가스와 겸용할 수 있도록 배관 두께와 가스계량기 높이를 개량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경찰은 일단 배관공사 하자로 가스가 새어나와 801호에 차 있다가 원인불명의 불씨에 옮아 붙어 폭발한 것으로 보고 도급업체 관계자 5명을 불러 수사하였다.1월 17일, 경찰은 '801호 실내에 차있던 누출된 가스에 냉장고 계전기 스파크에서 발생한 불길이 닿아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하고, 시공업체 (주)고려연료 대표 곽종철(당시 33세) 등 5명을 중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하였다.다음날, 경찰은 폭발사고가 일어난 6동 801호 주방안의 가스파이프 안전밸브와 배관 연결부분에서 가스가 누출되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통보에 따라 배관공사 현장소장 등 3명을 업무상 중과실 치사상 혐의로 구속했다.3.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1994년 12월 7일)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는 1994년 12월 7일 오후 2시 52분경 서울특별시 마포구 아현1동 도로공원 한국가스공사 아현밸브스테이션 지하실에서 계량기 점검 시 전동밸브 틈새로 다량 방출된 가스가 환기통 주변 모닥불 불씨에 점화되어 폭발한 사고이다.이 사고로 사망자가 12명, 부상자 101명 등의 인명피해와 건물 145동(전파 75, 부분파손 70), 동산 431건, 영업 손실 47점, 차량되어 피해액은 540억 원에 다다른다. 이는 역대 세계 지하철 참사 가운데 사상자 규모에서 3위인 것으로 나타났다.사고가 발생하자 오전 8시 20분에 달서구청 대회의실에 1지휘소 10개소 350명으로 구성된 대구광역시 사고대책본부가 설치되었으며, 이후 5월 3일 에는 사고수습본부로 개편되어 5개 반 160명으로 운영하였다.응급조치사항으로 1995년 4월 28일 11시 30분에 주민 및 교통통제를 위하여 경계구역을 설정하였으며, 15,369명(공무원 5,000명, 소방 2,525명, 경찰 3,379명, 의료진 1,389명, 군인 30명, 기능인력 3,046명)의 인력과 1,025대(중장비 747대, 구조차량 278대)의 중장비가 투입되었다. 또한 의료기관으로 20개의 병·의원이 참여하였다. 5월 1일 에는 상·하수도, 전기, 가스 등 지하시설물과 1995년 5월 12일에는 지하철복공판 등 기존의 시설물 등에 대한 응급복구가 이루어졌으며, 1995년 5월 12일 오전 4시에는 차량 통행이 재개되었다.사상자 조치사항으로 사망자는 9개 병원에 분산 안치되었으며, 병원별 합동분향소 설치, 사망자 1인당 공무원 2명씩 총 20명의 안내공무원을 고정 배치하였다. 그리고 장례 후에는 구청 간부공무원이 시장을 대신하여 상가를 조문하였다. 부상자에 대한 조치로는 경미한 부상자 87명은 단기 치료 후 귀가하였으며, 입원환자 115명은 12개 병원에 분산 수용하였고, 안내공무원 70명을 상근 배치하였다.이 사고로 회사 관계자 9명이 구속되고 도시가스사업법등의 관계 법령의 개정을 가져왔다.※ 사고 원인① 도시가스 사업법에 가스배관은 지하 1m이상 깊게 매설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상인동 가스관은 불과 지하 30cm에 묻혀 있었다. 대형 공사장에서 지하 굴착을 할 경우에는 해당관청의 도로굴착 승인을 득한 후 가스관을 매설한 회사와 연락하여 가스관이 묻힌 위치를 문의한 후 공사를 진행해야 하나 공사 관계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막무가내 식으로 무허가 굴착 작업을 진행하였다.② 관할관청의 담 1대와 승용차 2대는 현수 트러스와 함께 한강으로 추락했고, 붕괴되는 지점에 걸쳐 있던 승용차 2대는 물속으로 빠졌다. 한성운수 소속 16번 버스는 붕괴 부분에 걸쳐있다가 차체가 뒤집어지면서 추락하는 바람에 등교하던 무학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사고를 당하였다. 사고 차량 중 승합차에는 경찰의 날을 맞아 우수 중대로 선정되어 표창을 받기 위해 본대로 가던 의경들이 타고 있었는데, 이들은 사고 발생후 전원 무사하여 헌신적으로 피해자들을 구조했다.무학여자고등학교 학생 (9명)들을 포함한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을 입었던 대참사였다. 이 사고는 해외에도 크게 보도되어 건설업계에 큰 타격을 입혔을 뿐만 아니라 국가 이미지도 크게 실추되었다. 사망자 중에 필리핀 아델아이다 씨등 외국인 1명이 포함 되어 있었다.※ 당시 사진6. 삼풍백화점 붕괴사고(1995년 6월 29일)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경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사건으로, 건물이 무너지면서 1438명의 종업원과 고객들이 다치거나 사망했으며, 주변 삼풍아파트, 서울고등법원, 우면로 등으로 파편이 튀어 주변을 지나던 행인들 중에 부상자가 속출해 수많은 재산상, 인명상 피해를 끼쳤다. 그 후 119 구조대, 경찰, 서울특별시, 정부, 국회까지 나서 범국민적인 구호 및 사후처리가 이어졌다. 사망자는 501명, 부상자는 937명, 실종자는 6명, 피해액은 약 2700여억 원으로 집계됐다.※ 사고 원인① 부지 용도 : 본래 삼풍백화점 부지는 상업용이 아닌 주거용이었다고 한다. 삼풍백화점을 시공할 당시에도 이것이 문제가 되어 건축허가가 나지 않았으나, 뇌물을 주고 용도를 변경해 건축하였다고 한다. 붕괴와 직접적인 관련은 있다고 할 수 없지만, 삼풍백화점과 관련된 비리가 많았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② 과정을 무시한 건설 : 1987년 설계 당시 삼풍백화점은 '삼풍랜드'(상가)라는 명칭으로 서초동 삼풍아파트 대단지의 종합상가로 설계되어 있었다.축 : 본래 4층까지만 설계를 했던 삼풍백화점은 무리하게 5층으로 확장공사를 실시했으며, 더군다나 5층은 다른 용도의 건물에 비해 하중이 비교적 많이 소요되는 식당을 차렸고, 설상가상으로 5층 바닥에 온돌까지 설치했다. 게다가 여기에 그치지 않고 5층에 무게 29톤에 달하는 에어컨을 3대씩이나 설치해 놓았다. 게다가 이 에어컨에 냉각수가 가득 채워지면 무게는 87톤에 이르렀고, 이는 설계 하중의 4배에 해당되었다.원래 삼풍건설산업은 삼풍백화점의 추가하중 고려를 전혀 하지 못하고 하중을 계산했으며, 안 그래도 가늘어진 기둥으로 인하여 붕괴위험이 있는 삼풍백화점은 에어콘과 식당 등 100톤을 웃도는 하중을 견뎌야 하는 지경에 놓인 까닭에 이미 붕괴가 예견되어 있었다. 게다가 5층 식당은 수시로 용도변경을 했기 때문에 건물에 크게 무리가 가는 결과를 초래했다.⑤ 안전무시 : 본래 삼풍백화점의 에어컨은 북관 동쪽 삼풍아파트 7동 방향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삼풍백화점은 삼풍아파트와 불과 30m도 떨어져 있지 않았으며, 이로 인한 소음으로 삼풍아파트에서 주민들의 불만이 제기되었다. 그러자 경영진들은 1993년 8월, 에어컨을 북관 서쪽 우면로 방향으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그 이동 방법이 문제였다. 비용 절감이라는 명목 하에 에어컨을 옮길 때 크레인을 사용하지 않고, 굴림대에 싣고 반대쪽으로 ㄷ자 모양으로 밀고 가는 최악의 실수를 일으켰다.※ 당시 사진7. 부천 LPG 폭발사고(1998년 9월 11일)부천 LPG 폭발사고는 사고 당일인 1998년 9월 11일 오후 2시 14분 쯤 안전점검을 위하여 투입한 질소 가스를 배출시키기 위하여 밴트밸브를 열어놓은 상태에서 탱크로리 가스를 지하 탱크에 충전시키면서 누출된 가스가 명확하지 않은 점화원에 의해 점화되면서 인근 가정용 프로판 충전용기를 가열하여 폭발하면서 탱크로리가 폭발하는 등 2차 및 3차 대형폭발로 이어진 사건이다.1998년 부천 및 익산 충전소 가스폭발사고를 계기로 LPG 충전소의 안전관리 종합평가제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