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학적 관점에서 본「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R E P O R T과목명범죄사회학담당교수.이름.학과명.학번.차 례01 서론02 영화 줄거리 및 등장인물03 개념적 정의04 사회구조적 관점사회구조적 관점이란?이론의 적용이론 적용의 한계점05 학습이론적 관점학습이론이란?이론의 적용이론 적용의 한계점06 결론01 서론“살아있네”라는 유행어를 전국적으로 전파시킨 윤종빈 감독, 하정우 최민식 주연의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이 영화는 ‘범죄와 전쟁을 치러서라도 근절시키겠다’던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 선언 이후 펼쳐진 소위 ‘깡패 소탕 작전’을 기반으로 하였다. 「범죄와의 전쟁」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당대 시대상을 충실하게 반영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직폭력배를 있는 그대로 그려냈던 것에 있었다.'조폭'이라는 모티프가 영화 스크린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한국 사회가 민주화 체제로 전환하고, 한국영화산업의 '자유화' 흐름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1990년 들어서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조폭물 영화에서는 조폭을 미화하여그려내 청소년들에게 ‘멋있다’라는 이미지를 남기고, 심하면 선망의 대상으로까지 인식하였다. 이러한 풍조는 영화 자체의 질을 저하시키고 자극성만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러한 영화들 속의 조폭은 의리로 똘똘 뭉쳐 강한 의협심을 보이고, 또 불의를 참지 못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이 실제 조폭과는 정반대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영화는 아니지만 드라마 「야인시대」가 대표적인 조폭미화물로서 많은 비판은 받은 바가 있다. 주인공 김두한은 사실 조직폭력배로 정치깡패로까지 활동한 인물이지만 드라마에서의 ‘장군의 아들’이라는 칭호와 함께 뭇 남성들의 호감을 많이 받았다. 또한 윤제균 감독의 「두사부일체(2001)」와 같은 범죄 코미디 장르가 인기를 끌면서 조폭에 대한 반감이 완화되는 현상도나타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조폭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그리는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다. 오히려 공무원들의 비리가 들키자 부양가족이 적다는 핑계로 상관으로부터 가장 먼저 꼬리 자르기를 당한 소시민에 불과했다. 그랬던 그가 본격적으로 조직 폭력 범죄에 가담하게 된 것은 앞서 줄거리 설명에 나와 있듯이 순찰하던 중 마약을 발견하면서 부터였다. 그는 마약을 팔아 생활에 보태기 위해 조직 폭력배 최형배를 찾았고, 그와 대화를 하던 중 같은 경주 최씨 충렬공파 가문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사소한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 최형배가 최익현을 대부로 모시게 되면서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함께 조직을 이끌어나가게 된다.최형배는 조직을 키워나가면서 최익현의 도움을 상당히 받게 된다. 그 덕분에 다른 조직의 나이트클럽을 운영하게 되기도 하고, 감옥에 갇혀도 최익현의 인맥으로 금방 풀려난다. 또한 일본 야쿠자와도 교류를 하면서 호텔 운영권을 따내는 데까지 성공했다. 이처럼 둘은 서로 협력하며 승승장구 해나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둘 사이에는 갈등이 흐르게 된다. 최형배는 자신의 조직에서 제1인자로 있으려는 최익현이 거슬리기 시작했고, 최익현 역시 자신을 견제하는 최형배와 그의 패거리를 불신하게 된다. 결국 최형배 암살 미수 사건을 기점으로 둘은 완전히 갈라지고 만다. 최익현은 최형배의 조직원들에게 위협받으며 쫓겨나고, 그 후 라이벌 세력인 김판호의 조직에까지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조직범죄와 연이 없었던 최익현은 점점 ‘깡패’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03 개념적 정의본 에세이는 범죄를 조직 폭력, 혹은 조직범죄에만 국한시켜 논지를 전개할 것이다. 조직 폭력이란 ‘복수의 폭력배들이 집단을 형성하여 위협 또는 물리력을 행세하거나 혹은 이해관계, 이권분쟁, 불법영업, 입찰경쟁, 불법유통, 불법알선, 공급독점, 절차위반, 청부폭력 등에 개입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일탈행동’이라 정의된다. 또한 우리나라의 판례에서는 ‘형법 제 114조의 범죄단체조직죄와 관련하여 범죄단체라 함은 특정다수인이 일정한 범죄를 수행할 공동목적하에서 이루어진 계속적인 경합체로서 단순한 다수의 집합과는임을 씌웠다. 전자의 경우 범죄자는 스스로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범죄를 저지른 것이고, 후자의 경우 범죄자는 태생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사회구조적 관점은 개인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사회 자체의 탓으로 돌렸다.사회구조적 관점은 다시 여러 가지로 나뉘는데, 여기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이론은 로버트 머튼의 긴장이론이다. 그는 뒤르켐의 아노미 이론, 즉 ‘규범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무규범 상태가 온다’는 개념에서 착안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20c 미국 사회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뒤르켐이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전제로 놓았던 것에 반해, 미국 사회에는 이미 문화적으로 규범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머튼은 약간의 변형을 가했다. 즉, 규범 그 자체가 사람들을 아노미 현상을 빠뜨린 다는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수단을 통해 목표를 이루어야 하는데, 문제는 과연 열심히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수단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기회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가 원하던 목표를 이룰 수는 없다. 바로 이러한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아노미 현상에 빠졌다. 즉 머튼은 범죄의 원인을 미국 사회 그 자체라고 보았다. 규범은 모든 곳에 편재되어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규범을 이루기 위해 수단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은 사회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머튼은 이러한 사회에 대한 개인의 적응 양식을 5가지의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첫 번째 ‘순응형’은 문화적 목표와 제도화된 수단이 모두 주어지는 경우이다. 이때 사람은 사회적 구조에 불만을 표하지 않고 그대로 순응하게 된다. 두 번째 ‘혁신형’은 문화적 목표는 있지만 제도적 수단이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경우로, 사람들은 그 괴리 때문에 아노미 현상에 빠져 일탈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세 번째 ‘의례형’은 제도적 수단을 충분하지만 문화적 목표가 없는 경우로, 머튼에 의하면 공무원, 은행 직원과 같은 경우에 해당된다. 네 번째 ‘도피형’은 문화적 목표도, 제도적 수단도 없어 마약이신의 여동생이 결혼할 때 없는 형편임에도 묵직한 목돈을 쥐어주고, 아무것도 없더라도 가문의 이름 앞에서는 큰 소리를 치는, 어떻게 보면 허례허식에 목매고 있었다. 머튼의 방식으로 얘기하면 그는 평소에 ‘목표’가 매우 컸지만, 그 목표를 위한 ‘수단’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을 갉아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를 종합해보았을 때, 최익현은 개인의 사회 구조에 대한 적응 양식의 유형 다섯 가지 중 문화적 목표는 있지만 제도적 수단이나 기회가 없다면 성공하기 힘든 ‘혁신형’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혁신형에 속한 개인들이 모두 당장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그 초석이 마련된다면 언제든지 범죄에 뛰어들 수 있다. 최익현의 경우에는 바로 ‘마약’이 그를 본격적인 범죄로 끌어들인 계기이자 초석이었던 것이다.결국 머튼의 사회구조적 관점에서 보면 최익현이 범죄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사회 구조가 몰아간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최익현에게는 너무도 높은 목표가 있었지만,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나마 있던 수단마저도 꼬리 자르기로 내쳐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허례허식을 치중하였던 그는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불법적인 수단이 주어지자 바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이론 적용의 한계사회구조적 관점에 의하면 최민식은 혁신형에 속하는 개인이고, 계기가 주어지자 범죄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반례가 많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당시는 빠른 경제 발전으로 희망이 가득차있던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전 세계적인 경제 공황을 맞이해 쇠퇴하던 시기인 만큼 많은 혁신형 개인들이 양산되었을 것이다. 사실상 상류층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서민들은 혁신형에 속하게 되었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설사 계기가 주어지더라도 그것을 참는 개인들도 분명 훨씬 많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단지 최민식이 혁신형에 속한다는 이유만이 그를 범죄의 길로 몰. 결국 사람들의 경험으로부터 구성된 ‘의미’는 영구적인 정의를 구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범죄자를 분석할 때에는 환경 자체가 아니라 그 환경에 부여되는 의미에 주목을 해야 한다. 이러한 미드의 이론을 기반으로 서덜랜드는 범죄행위의 의미 역시 친근한 집단 내의 타인들에 의해 주어진 의미로부터 유도된다고 주장했다.서덜랜드의 차별접촉이론은 아홉 가지 명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중 1번 명제과 2번 명제는 이론의 선언적 논지이며 8번 명제와 9번 명제는 결과적 논지에 해당되므로 제외하고, 나머지 다섯 가지 명제를 중점적인 분석의 틀로써 활용하여 최익현을 바라보고자 한다.◇ 이론의 적용서덜랜드의 3번 명제에 의하면, 범죄행동 학습의 주요 부분은 친밀한 집단 내에서 이러난다. 최익현은 애당초 자신의 가문을 매우 중요시 하는 인물이었고, 같은 가문 사람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친근감을 느끼고 그 속에 동조되려고 노력했다. 그렇기에 같은 가문 사람인 최형배의 조직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는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동화될 수 있었다. 최익현이 최형배와 있을 때 계속해서 “믿을 것은 결국 피붙이밖에 없다”는 말을 반복했던 만큼 최형배에게 상당한 친밀함을 표하고 있었다.서덜랜드는 4번 명제에서 개인은 2가지 내용을 학습 받는다고 하였다. 첫 번째는 ‘매우 복잡한 것에서 매우 단순한 것에 이르는 범죄의 기술’이다. 최익현은 공무원 뒷돈을 받는 정도의 비리만 저질러봤을 뿐 40년 넘게 조직범죄를 접해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던 만큼 이러한 류에 능숙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조직에 속하게 된 이후부터는 최형배에게서 하나하나 배워나간다. “명분이 없다 아입니까”라는 최형배의 말로부터 조직 폭력배 사이에도 암묵적인 룰이 있음을 배우고, 최형배를 따라 불법 도박장이나 나이트클럽 등을 다니며 조직의 사업을 알아가게 된다. 이처럼 최익현은 착실하게 조직범죄를 익혀나가고, 결국에는 자신의 ‘인맥의 힘’으로 오히려 최익현보다 더 뛰어난 수완으로 조직을 성장시켜 나갈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동기, 충동다.
그리스 신화와 비극 중간고사 대체 레포트프로메테우스 신화 비교 분석전통신화와 프로타고라스의 민주주의 신화를 중심으로서론‘먼저 생각하는 자’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일반적으로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에게 불을 주었다가 제우스의 분노를 사 영원히 독수리에게 간을 뜯어 먹히는 벌을 받게 된 신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헤시오도스 버전 이외에 2가지가 더 있다는 것을 알지 못 한다. 바로 아이스퀼로스에 의해 쓰인 프로메테우스 비극 작품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와 플라톤에 의해 쓰인 철학서 『프로타고라스』가 그것이다. 제우스의 벌을 받게 된 이후의 모습을 그리는 아이스퀼로스의 프로메테우스는 논외로 놓고, 헤시오도스의 프로메테우스와 프로타고라스의 프로메테우스를 비교해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같은 신화적 인물을 놓고 서술하고 있음에도 어느 입장에 서서 얘기하는지, 그리고 어떠한 목적과 어조로 얘기하는지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헤시오도스와 프로타고라스의 프로메테우스히세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 나타나는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은 영리하고 꾀가 많아 인간의 입장에서 신을 향해 조롱하고 대항하고 있다. 본래 제우스는 신과 인간의 지위를 분리하기 위한 역할을 프로메테우스에게 맡겼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살코기를 주기 위해 제물을 바칠 때 신을 속여 뼈를 가져가게 하고, 이에 화가 난 제우스가 불을 숨기자 이를 훔쳐다가 인간에게 주었다. 그 덕분에 인간은 신에게 전적으로 종속되지 않고도 그들의 삶을 구가할 수 있게 하였다. 일련의 행동은 제우스를 분노케 하였고, 결국 프로메테우스는 바위산에 묶여 영원히 간을 쪼아먹히는 처벌을 받게 되고, 인간에게는 판도라의 상자를 내려 영원히 불행, 재앙, 질병, 피곤 등에 시달리게 하였다. 또한 마지막에 희망을 남겨두어 인간들로 하여금 헛된 기대, 망상을 품게 만들어 더 고통을 주었다.반면,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작중에서쳐와 인간에게 나눠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들은 짐승과의 싸움에서 졌고, 서로 간에도 부정의하게 행동하여 하나의 국가를 건립 및 유지할 수 없었다. 이는 바로 ‘시민적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제우스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헤르메스로 하여금 ‘염치aids’와 ‘정의dike’를 나눠주도록 하였다. 단, 의학 등의 여타 전문 기술과는 달리 모두에게 똑같이 분배하도록 하였다. 이는 염치와 정의를 가진 사람이 소수라면, 또 다시 그것이 없는 다수가 소수로부터 빼앗아 가려고 하기 때문에 나라가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자에 대한 처벌은 자신의 이름으로 법을 세우라고 명한다.김기영은 헤시오도스가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에 대해 각기 다른 어조로 묘사하고 있음을 그의 논문을 통해 밝힌다. 헤시오도스가 프로메테우스를 묘사한 방식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에게 상당히 부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헤시오도스는 ‘교활’하고 ‘음모’를 꾸미며, ‘간교’하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프로메테우스를 묘사한다. 반면에 제우스에 대해서는 ‘계략을 알고’있고 ‘지략이 뛰어’나다고 묘사한다. 즉, 프로메테우스는 영리하지만 교활한 ‘부정의’이며, 지혜로운 제우수의 ‘정의’에 대해 대항하는 인물인 것이다. 결국 신에게 대항한 대가로 인간은 불을 얻었지만, 불행도 함께 겪게 되었다.반면 프로타고라스가 묘사하는 프로메테우스에는 별다른 수식어가 깃들어 있지 않다. 신의 명령에 따라 충실히 능력을 부여하는 임무를 수행하다 이후 인간을 위해 신의 능력들을 훔쳐오긴 하지만, 그것에 대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가치 평가는 하지 않는다. ‘절도죄로 기소됐’다고 언급한 뒤로는 온전히 제우스와 헤르메스 간의 대화로 이어진다.시대를 지배하는 사고관이처럼 같은 인물을 묘사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내러티브의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바로 ‘무엇을 목적으로 서술하였는가’이다.기원전 8세기경에 살던 헤시오도스는 미토스mythos의 세계에 살던 인물이다. 비슷한 연대에 그려진 호메로그 외적인 것들은 주변인으로서 존재했다. 이런 점에서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언급 역시 그와 인간들을 설명하기 위함보다는 제우스를 설명하기 위함이 더 우선시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헤시오도스의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어조는 부정적이었으며, 제우스의 정의가 프로메테우스의 부정의를 벌하고, 인간들 역시 판도라를 통해 죗값을 치르게 된 것이다.이에 반해 플라톤과 프로타고라스는 기원전 4세기경에 살던 인물이다. 당시 그리스는 미토스와 로고스logos가 공존하며 함께 발전해나가던 시기였다. 여전히 그들의 삶에서 신을 떼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신이 그들의 전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신보다는 논리가 우선시 되는 로고스에 더 가까워졌다.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그의 저서 『역사』를 다음과 같은 문구에서 시작한다.…인간들의 행적들이…망각되고…위대하고도 놀라운 업적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원인을 밝히는데 있다위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역사는 인간에 의해 이끌어져 나가고 인간의 입을 통해 이야기된다. 바로 신이 아닌 인간이 중심에 놓이게 된 것이다. 헤로도토스는 이전의 『일리아스』와는 달리 신을 최대한 배제하고 인간이 직접 만들어 나가는 역사를 그려냈다. 물론 신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지만 어디까지나 주변인 역할에 국한되었다. 즉, 기원전 8세기경과는 완전히 상반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모든 이들이 신적 사고관을 완전히 탈피하지 않았고, 또 로고스와 미토스가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성격도 아니다. 로고스, 즉 학문과 논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미토스, 즉 믿음 역시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어느 것에 더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플라톤이 쓴 『프로타고라스』 역시 이러한 로고스적인 흐름을 함께 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에게 정치적 덕목은 가르쳐질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미토스와 로고스적인 방식을 모두 사용했다. 여전히 미토스가 중심적인 사람들이 많으하였는지를 연구할 때 역시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사고관과 패러다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그런 점에서 『신들의 계보』와 『프로타고라스』에서 나타나는 관점의 차이는 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매우 흥미있는 주제이다. 보통 같은 ‘고대 그리스’로 분류되는 시기임에도디오뉘소스 신화 비교 분석전통신화와 니체의 재해석을 중심으로서론디오뉘소스는 오늘날 ‘술의 신’으로 유명한 신이지만, 처음 헤시오도스에 의해 『신들의 계보』가 쓰였을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 하였다. 『신들의 계보』에서는 제우스의 아들들 중 하나로 언급되며 “필멸의 여인이 불사의 아들을 낳은 것” 정도로만 묘사되어 있다. 그랬던 그가 알려진 것은 디오뉘소스 숭배자, 그리고 오르페우스교 숭배자들이 나타난 이후일 것이다. 그때부터 디오뉘소스는 12신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니체에 의해 예술가의 형이상학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되었다. 이처럼 디오뉘소스는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새로이 태어나면서 많은 의미를 가지는 신이 되었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의 디오뉘소스와 니체에게 있어서의 디오뉘소스를 비교하고자 한다.그리스의 디오뉘소스디오뉘소스는 주신 제우스와 인간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이다. 그는 이집트 시리아 지역과 이탈리아를 떠돌면서 포도주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그리스 북부에 위치한 트라케로 향한다. 바로 그곳에서 ‘마이나데스’ 혹은 ‘바카이’라 불리는 디오뉘소스를 따르는 숭배자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들은 표범을 탄 디오뉘소스를 따라 다니며 술에 취해 강렬한 타악기의 반주와 함께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무아지경에 빠진다. 특히 그들은 살아있는 황소를 찢어 죽여 날고기를 그대로 먹었는데, 이는 “신으로 섬기던 황소의 고기를 날로 먹음으로써 신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신에 동화”되기 위한 그들의 의식이었다. 이러한 축제는 ‘오모파기아’라고 불렸다. 이를 통해 숭배자들은 도취감과 열광을 느꼈다. 그들은 그리스 전역을 돌아다니며 축제를 벌였고, 그들에게 부정적이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이 비정하고 광기가 넘치는 신과 그들의 숭배자들은 악惡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하지만 축제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디오뉘소스와 그에 대한 숭배가 반드시 인간에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디오뉘소스의 축제에서 사람들은 술에 취해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져들었고, 이 덕분에 그들은 현실의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는 디오뉘소스의 숭배자들 중 여성의 비율이 높았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당시 여성은 ‘판도라의 상자’ 신화에서 볼 수 있듯이 남성들에게 부정적이고 억압받는 존재였다. 남성들은 여성을 혐오했지만, 또 성욕을 풀고 자손을 낳기 위해서는 의지해야 하는 이중성에 질겁하며 더욱 그녀들을 사람 이하로 취급하였다. 이렇게 억눌려있던 여성들에게 모든 현실로부터 벗어나는 광란의 디오뉘소스 축제는 그들을 더욱 끌어당겼던 것이다. 이 덕분에 디오뉘소스 축제는 이후 그리스의 평민들에게도 높은 지지를 받게 되었다. 결국 디오뉘소스는 주류가 되지 못 하고 억압받는 인간들을 위한 신이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박희영에 의하면, 디오뉘소스는 “합리성이라는 틀에 갇혀있는 인간의 사유를 해방시켜 주는 해방신 내지 정열의 신으로서 현대인들의 개념 체계 속에 강렬하게 각인”되고 있다. 이러한 속성은 자연스럽게 니체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니체의 디오뉘소스니체는 디오뉘소스를 고대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끌어와 자신의 철학을 펼쳤다. 그는 디오뉘소스, 그리고 아폴론의 메타포적 변형을 통해 그만의 예술적 세계관을 완성시켰다.니체는 ‘음악’을 매우 중요시하였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때로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심지어는 황홀경에 빠져 자기 자신을 잊고, 더 나아가 ‘개별화의 원리’가 지배하는 우리의 세계를 초월하여 음악이 만들어 내는 근원적인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이것에 대해 쇼펜하우어는 ‘세계의지’라고 표현하였다. 즉, 개별화의 원리가 지배적인 세계의 근원에 자리 잡은 세계의지는 바로 ‘음악’에 의해 표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