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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천전투에 대한 조사
    춘천전투가 6·25전쟁의 초기전투에 미친 영향춘천전투란?1950년 6·25 때 국군 제6사단이 춘천지역에서 북한군 제2군단의 침입을 저지한 방어전투.1.춘천 전투의 배경당시 김종오 대령이 이끄는 제6사단은 지휘소를 원주에 두고 우익은 789고지를 경계로 하여 이정일 대령이 이끄는 제8사단과 그리고 우익은 주목리를 사이에 두고 유재흥 준장이 이끄는 제7사단과 각각 연계하고 있었다.이때 사단의 우일선인 함병선 대령이 이끄는 제2연대는 지휘소를 공천에 두고 그 예하의 제3대대는 연대의 오른쪽 제 1선으로 789고지-우준리 간을, 그리고 제1대대는 왼쪽 제 1선으로 873고지-오산동 간을 각각 방수하고 있었으며 제2대대는 연대 예비로서 당포리에 배치하였다.임부택 중령이 이끄는 제7연대는 춘천에 지휘소를 두고 제2대대는 제2연대1대대와 연계하여 양통리까지, 그리고 제3대대는 이에 이어 주목리까지 각각 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는데, 이 중 제11 및 12 양 중대는 연대의 예비인 제1대대와 함께 춘천에 있었다.제7연대는 그 전해인 1949년 2월 20일에 사단으로 예속되어 청주로부터 원주로 약진하여 2개월간의 교육을 마친 후 5월 3일에는 현 진지 춘천으로 진입하여 서종철 중령이 이끄는 제8연대로부터 인수받고 3개월 뒤인 8월 6일에는 신남으로 침습한 1개 대대 규모의 북한군을 포착해 섬멸하는 경험을 쌓기도 하였다.뿐만 아니라 13개월간에 걸친 방어로 해당 지역의 지형을 숙지하게 되고 또한 군관민의 통제가 어느 곳보다도 공고하였다.또한 제7연대는 대대전투훈련을 마쳤으며 우수한 장교의 피교육차출을 기피하는 당시의 풍조를 깨고 대부분의 장교들을 해당학교에 파견하여 보수과정교육을 마치도록 하였다.진지공사에 있어서는 춘천정면은 제7연대가 진입하자마자 전선으로부터 시내가 불과 12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음을 감안하고 공사를 서둘렀는데 육군본부에서는 예산상 공사를 지연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자 자체 인력만으로 해결하기고 결정하고 사단으로부터 공병 1개중대를 지원받아 춘천 시민과 학생들하였으며 진전에는 지붕형 철조강을 쌍선으로 치고 그 중간에는 대인지뢰를 묻었다.2.춘천전투의 작전계획사단장 김종오 대령은 날이 갈수록 빗발쳐 들어오는 북한군의 징후를 심상치 않게 주시하고 있었는데, 6월 19일에 제7연대장 임부택 중령으로부터 『북괴 제 2사단 소속의 전차병 한 명이 귀순하였는데 그의 진술에 의하면 북한군은 6월 23일부터 38도 분계선 접경에서 야외연습을 하기 위하여 일주간의 야간행군으로 전차 40대와 함께 화천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에는 많은 병력과 포가 집결하고 있음을 보았다』는 보고를 하였다.사단장은 1개 포로의 진술만으로는 정보의 정확도가 마약함을 인지하고 연대장에게 다시 확인하여 보고하도록 지시하였다.이에 따라 연대장은 윤수용 소위를 장으로 한 수색대 30명을 화천 및 양구 쪽으로 잠입시켰는데 그들의 귀대보고에 따르면 『화천에 차량 400대 및 양구에 300대가 각각 춘천으로 남하할 태세를 갖추고 줄지어 있음을 목격하였고 그 양쪽에는 대병력이 숙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그리하여 자신이 직접 적정을 살피기로 하고 23일 08:00에 S-2 김동명 대위 및 S-3 이남호 소령을 대동하고 제 3대대 제 9중대 관측소로 올라갔다.여기에서 그는 모진교 북쪽에서 대병력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음을 목격하고 돌아왔는데, 때마침 초도순시차 온 사단장 김종오 대령에게 적정을 보고한 뒤에 조만간 어떠한 사태가 벌어질 것 같다고 덧붙였다.3.전투 과정-6월 25일04:00부터 북한군은 인남리 및 지암리에 격렬한 포격을 퍼부었고 1시간에 걸친 공격준비사격이 끝나고 사정을 연신하는 듯 하더니 운집한 대군이 가랑비와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 속을 뚫고 추전리-청평-고탄리-인남리-지암리의 각 도로를 따라 노도와 같이 침공하기 시작하였다.-6월 26일전날 저녁 19:00에 실시한 대대의 반격으로 북한군은 많은 손실을 본 듯하여 옥산포 일대에 집결하고 있는 것으로 추단되었다.연대장 임부택 중령은 제19연대 2대대가 우두산으로 오자 이에 힘을 얻고 옥산포를 수중에 넣은전포협동으로 세 방면으로 침공하였는데 그들의 전개 양상으로 보아 연대를 원창고개 부근에서 포위차단하려는 기도인 것으로 판단되었다.즉 그들은 주공을 5번도로(춘천-홍천간)로 지향하고 전차 및 포병을 여기에 집중하여 연대의 정면으로 공격하고, 다른 두 개의 무리들은 동서로 분진하여 그 하나는 897고지를 침탈한 다음 계속 남하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북한강을 따라 남하하다가 연대 좌측중복을 찌를 듯이 금병산으로 파고들기 시작하였다.이 무렵 303고지로 철수하고 있던 근무대대장 김근호 대위는 서쪽 3km의 도로(46번 도로)에 긴 차량행렬을 이루면서 가평으로 향하는 적군을 목격하였는데 뒤에 확인된 바에 의하면 이는 적 제 2사단이 서울 동부를 목표로 서남진하는 것이었다.김종수가 이끄는 제2대대는 그들의 주공의 침공을 맞아 이금열 중위가 이끄는 제2포대의 직접 지원 밑에 광파를 사진오퇴하는 치열한사격전을 3시간 동안이나 벌였으나 역부족하여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난전을 하고 있었다.연대장 임부택 중령은 야전지대에서 저항하게 된 불리한 지형조건과 첨예한 화력, 그리고 주보급로를 차단하려는 북한군의 계획을 간파하자 사단장이 강조한 원창고개 선에서의 방어를 결심하고 각 대는 제2, 1근무대대 순으로 선정한 진지를 점령하라고 명령하였다.그런데 북한군의 압력은 예상외로 가속화하여 보급로의 차단이 목전에 다가옴을 느낀 연대장은 사단장 김종오 대령의 승인 밑에 원창선에서 좀 더 물러나서 있기로 하였다.이에 따라 제2대대의 엄호하에 연대주력과 제2포대를 사현으로 집결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연대장은 엄호대대였던 제2대대장 김종수 소령에게 『현 위치(원창고개)를 별명이 있을 때까지 고수하여 북한군을 저지격파하면서 그들의 침공을 최대한 정착시키라』고 명령하였다.원창고개는 표고가 600m이며 요형 횡격실을 이루고 북쪽 산기슭은 급경사인데 수목이 없어 적토지대나 다를 바 없었다. 춘천으로부터 이 고개의 정상까지는 많은 굴곡을 이루고 있어 방자에게는 관측과 사계가 양호한 요역이종수 소령은 주력철수의 엄호를 마치자 적과의 일전을 다짐하면서 전력을 굳히고 때가 도래하기를 고대하였다. 이때 대대의 병사들은 소양강 공방전에서 전투다운 전투도 해보지 못하고 철수만 거듭하여 불평을 터트리고 있었다.북한군의 포격이 점점 열도를 가하기 시작하더니 06:00에 사정이 연신되면서 2개 연대규모가 시야를 메우고 올라왔고 이들을 목격한 대대장은 『진전 200m로 접근할 때까지 사격하지 말라』고 명령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북한군은 북한기를 앞세우고 수파의 물결을 이루며 밀려들어 드디어 최후저지 사격권 내에 들었고 대대장의 사격개시 호령이 떨어지자마자 일제히 전 포구는 불을 토하고 소화기는 교차사격으로 집중 강타하니 전장은 순간에 도륙장으로 화하여 북한군들의 비명은 하늘을 찔렀다.악랄한 독전 밑에 사파가 쓰러지면 오파가 다시 비집고 나오는 연속적인 파상공격으로 돌파를 기도하였으나 끝내 시체만 누증시켰을 뿐으로 침공이 둔좌된 채 피아는 사격전으로 대치하게 되었다. 이윽고 11:00에 1개 대대 규모가 재침하기 시작하여 대대는 다시 전투태세를 갖추고 근접하기를 기다렸다. 바로 이때, 대대장은 제5중대장 김상흥 대위로부터 『적이 백기를 들고 올라옵니다』라는 보고를 접하고 앞으로 나가 보았더니 큰 백기를 흔들면서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는 북한군이 투항하려는 것으로 속단하고 사격을 중지시켰는데 병사들은 처음 보는 그들의 투항에 호 밖으로 튀어나와 빨리 올라오라고 환성을 지르며 맞이할 채비를 하였다.그들은 서서히 웃음을 띠며 20m 앞까지 다가오더니 갑작스럽게 백기를 내던지자마자 어깨에 숨겼던 다발총을 꺼내 난사를 가함으로써 일순간에 백병전이 벌어졌고 피아가 얽힌 혼전으로 양측 모두 사격은 제쳐놓고 총검과 주먹의 대결장이 되었으며 대대장도 적병과 맞붙어 뒹굴다가 연락병이 날쌔게 이를 사살하고 위기일발에서 구출되었다.난전격투 끝에 적을 격퇴하는 데 성공하였는데 비록 병력면에서는 호각을 이루었다고 하지만 그들은 병력이 분산된 데다 전의가 상실된 가운데 독전으로 몰아친 소령은 『이때만 하여도 전투에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백기만 들면 투항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생각하고 그들의 어깨에 걸머진 총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아 완전히 그들의 속임수에 넘어갔던 것이다. 이 사실을 육군본부에 보고하여 이러한 적의 기만에 속지 말도록 전군에 하달한 바 있다』고 술회하였다.원창고개 전투 이후 제2대대는 질서 있는 철수를 하여 13:00에 사현에서 연대 주력에 합하였고 연대장 임부택 중령은 연대 전 병력이 집결하여 철수준비가 완료하자 각 지휘관을 소집하고 다음과 같은 요지의 명령을 하달하였다.4.전투의 결과 및 영향사단은 5일간에 걸친 춘천 및 홍천 동북지구의 서전과 이에 이은 4일간의 지연전에서 북한군 제2군단에게 섬멸적인 타격을 줌으로써 그들이 전도하였던 속전속결의 망상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고 말았다.더욱이 사단이 보유하고 있는 대전차화기가 무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육박전으로 그들의 전차를 파괴하였다는 것은 대서특필할 만한 사실이었다.이번 전투에서 사단이 승전고를 울릴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은 각 연대가 38도 분계선상에서의 충돌을 통한 전투와 후방지역에서의 공비격멸작전을 전개함으로써 얼마간의 전투경험을 가졌기 때문에 병사들의 자질이 우수하였던 것이며, 특히 병력 및 장비가 열세함에도 불구하고 하천선방어와 산악지대의 지형을 최대로 이용하여 방어의 주도권을 장악한데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은 고지대로 우회공격을 하지 않고 탄탄도로를 따라 정면 돌파를 시도 하였으니 그 한 예가 춘천지구전투에서 보리밭으로 밀집함으로써 포병의 좋은 목표물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북한군 정면에서 침공을 되풀이하다가 제 2사단이 와해되고 제 7사단을 전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또 한 가지는 사실보도 아닌 제17연대의 해주 점령 및 제7사단의 의정부 탈환과 북진중이라는 보도는 사단 장병들에게 사기를 고취시키는 청량제가 되기도 하였으니 진지를 고수하고 이어서 38도 분계선으로 반격하여 북상하고자 소양교까지 폭파하지 않고 전기를 만회하려 한 점이다.비록 전세는 역전되었지.
    인문/어학| 2012.11.07| 5페이지| 1,000원| 조회(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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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평리전투
    지평리 전투_Contents 전쟁 상황 지평리 상황 사수의 이유 선택 전술 시간 전개 전력 결과 지평리 전투의 영향 승리의 요인영상전쟁상황 라운드업 작전 중공군 4 차 공세 지평리 고립지평리 상황사수의 이유 교통의 요지 도로와 철도가 가로지르는 지역으로 물자 전송 및 병력 이동의 이점 2. 전략적 요충지 높이 100~400m 에 이르는 8 개 정도의 고지의 둘러 싸여 있어 지리가 5~6km 쯤 되는 사주방어 진지형성 가능 3. 후퇴의 불가피성 23 연대가 지평리에서 철수하여 중공군의 주력이 여주 – 장호원 - 평택으로 진출한다면 제 8 군 주력의 포위 가능성 지평리를 사수 하여 중공군의 공세 저지 결정미 23 연대의 지평리 상황 분석 - 병력적으로 매우 열악한 상황 지평리 고지의 5~6km 사주방어의 어려움 - 중공군의 원거리 통신 취약 ‘ 고지를 내주어도 통합작전 수행에 어려울것 ’ 예상 Freeman 대령의 결정 고지대 포기 선택전술 저지대 집중우리는 고지를 포기하고 저지대에 집중한다 !! 낮은 야산에 지름 1.5km 의 원진을 편성한다 .11 일 밤 집중포격에 이은 대규모 파상공격 포병대의 조명탄과 고 폭 탄 프랑스 군은 중공군을 20m 전방까지 유인 후 착검공격 헬기로 탄약 보급및 중상자 후송 지속적인 파상공세로 UN 군 진지의 모퉁이 점령 근접 항공 사격으로 중공군을 몰아냄 14 일 15 일 미 1 기병사단 크롬베즈특공대 는 주보급로를 다시 열고 중공군의 포위망을 풀어냄UN 군 VS 중공군 화력 인해전술 수동 싸이렌 나팔 , 꽹가리 5,000 여명 병력 50,000 여명 61 명 전사 6,000 여명 119 명 부상 25,000 여명 전력 결과중공군의 4 차 공세를 저지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화력으로 눌러 국군과 유엔군의 전의와 사기를 높임 중국 역사가 천첸 - 지평리 전투로 모든 게 달라졌다 . 그때까지 중공군은 모든 상황이 유리하다고 믿었다 . 최종 승리만 남았다고 생각 했다 . 펑더화이 ( 인민지원군 총사령관 ) 는 큰 충격에 빠졌다 . 지평리 전투의 영향승리의 요인 ( 군사작전 기반 원칙 ) 1. 기동 ( 유리한 상황을 위해 부대와 자원을 결정적 시간과 장소로 이동 ) 사방으로 포위당한 불리한 상황에서 헬리콥터를 이용한 물자 운송 및 환자 후송 으로 기동성 확보 2. 방호 ( 아군의 전투력을 보존하기 위한 조직적인 활동 ) 병력의 열세로 고지점령의 어려움을 저지대에서의 지름 1.5km 의 원진을 구성하여 작전의 통합적 수행 4. 통합 ( 가능한 작전요소들을 상호 결합시켜 저투력의 상승효과를 창출 ) 병력과 곡사포의 부족을 저지대 원진에 통합시킴으로서 병력의 통합과 곡사포의 상호 결합시켜 전투의 상승효과 창출 3. 지휘통제 ( 부여된 임무달성을 위한 계획 , 지시 , 통제하는 일련의 과정 ) Freeman 대령은 ‘ 지평리를 사수한다 .’ 는 임무 달성을 위해 저지대 사수 계획을 수립하고 중상을 입었슴에도 후송가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켜 지휘통제의 혼란을 제거 5. 사기 ( 어떤 상태에서도 대가 부여된 임무를 완수 하고자 하는 의지 ) Freeman 대령은 ‘ 지평리를 사수한다 .’ 는 임무 달성을 위해 중상을 입었슴에도 후송가지 않고 끝까지 임무를 완수 +. 중공군의 패인 지평리 전투의 중공군은 5 개 사단에서 차출된 부대로 6 개 연대가 통합적으로 운용되지 못하고 지휘체계가 분산되어 있어 전투의 비효율을 초레Thank You!{nameOfApplication=Show}
    인문/어학| 2012.11.07| 13페이지| 1,000원| 조회(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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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안보관
    ∙전쟁기념관 견학10월 13일, 전쟁기념관을 견학했다. 전쟁기념관의 전시실에는 호국추모실, 전쟁역사실, 6.25전쟁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방산장비실, 대형장비실이 있었다. 견학순서대로 전쟁 역사실을 먼저 둘러 보았는데, 전쟁역사실에는 각 시대별로 전쟁에 사용된 무기나 갑옷과 같은 장비가 있었고 전쟁을 그려낸 그림과 같은 것들 것 전시되어있었다. 그리고 2층에 위치한 6.25전쟁실과 호국추모실을 둘러보았다. 먼저, 호국추모실에는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전당으로 벽에 부조가 새겨져 있었다. 각 부조의 의미는 전쟁, 평화를 상징했다. 그 중, 호국인물 흉상이 꽤나 인상 깊었다. 6.25전쟁실에는 6.25전쟁의 배경이나, 반격&북진, 중공군 개입과 같은 전쟁의 순차적인 전개를 따라 당시 사용한 물건, 전시품 등이 전시가 되어있었다. 6.25 전쟁실은 3층에도 이어져 있었다. 해외파병실은 우리나라 국군이 해외에 파병에 관한 내용을 전시했다. 전시실을 나와서, 전쟁옥외전시장에는 2차 세계대전, 6.25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에서 피∙아간 사용한 군용장비가 전시되어있었다. 또, 다양한 기념 조형물과 전사자명비가 위치해있었다.어릴 적 전쟁기념관은 가족들끼리 놀러 나온 곳, 초등학교 소풍장소 등으로 기억되어 내게는 익숙한 공간이었다. 또, 전쟁기념관을 통해 접하는 것들에 대한 친숙함은 집안의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할아버지가 군인이셨고, 아버지가 학군단 출신이셨기 때문에 전쟁기념관을 자주 온 탓도 있지만 듣고, 보고 했던 것들이 군에 관련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릴 적 친숙하게 봐왔던 것들과는 사뭇 다른 것이 이번에 보였다. 연평해전 때의 함정이었다. 연평해전이 일어난 것은 2002년으로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이다. 10년이란 세월이 흐르도록 전쟁기념관에 오지 않았던 탓인지 함정이 전시되는 지는 몰랐었다. 사실, 연평해전 함정을 처음보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1학기 때, 학군단을 통해 나라사랑캠프를 갔었을 때 직접 천안함을 보았고, 참수리호도 보았었다. 전쟁기념관내게 새로운 전시품은 아니었으나, 나라의 안보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안보의 위협에 대해.참수리호를 보고 다시금 생각하게 된 것은, 당시의 우리나라의 현실이었다. 2002년 월드컵에 온 시민들은 신이 나있었고, 나라 전체가 응원열기에 가득했었다. 그런 상황에 북의 갑작스런 남침이 이뤄졌고, 뉴스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러나 오늘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2002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면, 아마도 연평해전보다는 뜨거웠던 월드컵의 열기를 더 먼저 기억할 것이다.현재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그리고 국제 경찰국가인 미국, 한반도 바로 옆에 있는 섬나라 일본, 사회주의의 본고장 러시아 등 과거 혹은 현재를 주름잡고 있는 강대국들에 둘러 쌓여있다. 각 국가는 안보에 있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한가지 루머로는, 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한반도가 그 배경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한다. 이처럼 한반도의 군사적 대립은 국제적으로 굉장한 이슈가 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한가지 질문이 든다. 과연 군사적 대립과 무력충돌만 주의하면 될까? 정작, 안보라는 것은 대외적인 군사력 충돌만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그렇지 않다. 국가의 내외로 통합적으로 안보를 이해해야 한다. 국가 외적인 안보는 영토를 지키는 것이고, 내적으로는 국가에 대한 의식이다.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안보의 위협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주 적은 북한이다. 주 적이 존재한다는 것은 국가차원에서 제 1 순위로 경계할 대상이 있다는 것이며, 우리 안보의 위협적인 세력이다. 북한은 아직도 미사일 발사 및 대남도발을 서슴지 않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핵개발을 통해 국제사회에 위협을 가하고 있는 등 우리나라의 안보만을 위협하는 것이 아닌 국제를 무대로 강대국들의 안보도 위협하고 있다.두 번째로, 국제 테러 세력이다. 국제 테러 세력은 ‘알 카에다’ 와 같은 테러 단체를 주로 지칭한다. 이런 테러조직은 현재 우리나라에 직접적인실상 아직은 없다. 그러나, 향후 우리나라의 행보는 현재의 우방국과 행보를 같이 할 것이다. 이중 가장 큰 우방국인 미국은 국제 테러단체의 주 목표가 되고있으며, 우리나라에도 테러단체의 공격이 감행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때문에, 만약의 상황과 위협으로 인식되는 국제 테러 세력은 안보에 위협을 가하는 요인중에 하나가 되겠다.세 번째, 중국의 ‘동북아공정’, 일본의 ‘독도영토 침해’ 와 같이 자국의 국익을 위해 우리나라의 역사나 영토를 침해하는 사례는 우리에게 있어 국가적 안보에 위협을 가하는 요인이다. 일본의 독도 침해는 영토차원에서의 이야기지만, 중국의 동북아공정은 실질적인 영토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안보는 반드시 현재에만 해당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우리영토였다고, 모두다 지켜야 할 영토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 그 자체도 우리가 지켜야 할 국가적인 재산이며, 어쩌면 영토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다. 역사를 국가의 재산으로 보는 것으로, 역사가 있어야 나라가 정립될 수 있고, 우리나라의 정체성과 근본적인 나라의 바탕이 있을 수 있다. 때문에, 동북아공정과 같이 역사를 자국의 국익을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는 명백하게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사항이며, 이에 군사적인 대응은 없을지라도, 뺏기지 않도록 연구하는 차원에서의 대응이 필요하다.앞서 말한 세가지는 대외적인 요인이고 지금부터 서술할 내용은 대내적 요인이 되겠다.대내적 요인 중 안보에 위협요인으로는 종북 좌파세력이 커진 것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해 여러가지 요인들이 작용했는데, 그 중, 정치적인 요인이 있다. 정치적으로 우리나라는 민주사회라고 울부짖고 있으나, 아직은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사례는 흔히 말하는 ‘포퓰리즘’정치를 보면 알 수 있다. 정책이나 공약과 같은 것은 시민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일시적인 경우가 많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자 하는 정치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같은 지나치게 편협한 정당정치로 인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다, 보수다’를 나눌 수 는 없어 보인다. 보수세력은 이름 그대로 우파적인 성격이 강하고 사회 지도층의 입장에서 강한 사람들만 대변하는 반면, 문제가 되는 진보는 ‘진짜 보수’라는 속설이 있을 만큼, 사회의 피지배계층을 대변한다거나, 사회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지 않고 보수세력과의 대립을 이용해 정치적 기득권을 얻으려 한다. 이처럼, 정치는 서로 기득권을 차지하기 위한 방안 일뿐 나라를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들어가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은, 정치적인 배경은 시민들이 정치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이 때, 끼어 든 것이 종북 좌파다. 종북 좌파는 북한의 체제를 옹호하고 따르는 집단으로 북한 식 통일을 지지하고, 사회를 교란시킨다. 이 단체는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안되는 조직이다. 종북 좌파는 과거 베트남전에서 월남사회를 교란시켜 나라를 무너뜨린 월맹세력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정리하자면,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고 서로를 헐뜯는 식의 정치로부터 국민이 멀어지게 만들었고, 이것이 종북 좌파를 키우는 원인이 됐다는 이야기다.물론 종북 좌파가 하루아침에 세력을 부풀린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는 ‘효순이 미선이’, ‘한미 FTA’, ‘광우병’ 과 같은 사회 이슈들이 존재했다. 그런 이슈를 이용해 종북 좌파는 은근슬쩍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고, 현재 국회에도 진출한 것은 대단히 위협적인 사항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회적인 불안요인이 오히려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을 키운 셈이다.그러나, 반드시 이슈를 이용하고, 정치판이 엉망이더라도, 올바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면 대내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을 키울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결국 근본적으로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안보 교육이 올바르게 전달 되지 않은 것이 그 이유가 된다. 안보 교육은 앉아서 책을 읽고, 자료를 보는 것으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 직접 피부로 느끼고, 깨닫고 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안보 교육이 싹튼다고 생각한다. 그 예로는 이스라엘을 들을 수 있다. 이스라엘은 주기적으로 안보교육을 하는데 그 과정이 역에 있는 기념비를 견학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그와 같은 역사의 현장이 존재한다. 용산전쟁기념관을 기점으로 판문점, 통일전망대는 역사교육에 굉장히 유용한 장소다. 결국은 안보교육이 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대내적인 안보위협이 강화되는 것은 올바른 안보관이 정립되지 않은 점 도 있지만, 이외에 나라에 대한 의식이 명확하기 없기 때문인 것도 한 몫 한다. 올바른 안보관은 교육의 문제점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나라에 대한 의식은 교육의 문제이기보다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국민의식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 나라를 지키는 군인을 무시하고, 천대하거나, 나라의 의회에서 일한다는 젊은 정치인이 군의 장군을 무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대응방안앞서 말한 안보위협요인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는, 먼저 북한과 같은 경우 우리나라가 끌려가지 않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 적의 공격에는 즉각 응징함으로써, 북이 우리나라에 위협을 가한다거나, 국제사회적 위협이 되는 행위를 못하도록 해야 한다. 국제 테러세력은 직접적으로 막을 순 없으나, 그에 대해 항상 대비하는 체계를 갖춤으로써, 만약의 상황에도 즉각 병력을 투입해 저지하는 기민함을 보여야 한다. 다음으로 동북아공정과 같은 문화적∙외교적 공격에는 강하게 우리의 입장을 표명하고 지속적으로 연구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어 그 힘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대내적인 위협요인의 근본은 안보교육과 국민의식함양의 방법이 가장 우선시 되야 할 것이다. 사실상 정치적인 요인이나, 사회적 불안, 국가에 대한 불신과 같은 것은 교육과 의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라 생각한다. 국민의식이 높고 올바른 안보관을 가진다면, 국민의 의무에도 충실하게 될 것이고, 나보다는 남을 생각하고, 우리 공동체를 생각하는 태도로 이어질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대내적인 안보(정치, 사회와 같은 부분)는 깊게 들어가면, 결국 우리의 국민의식에 닿아있으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국민성에 달려 있는 것이다.페이지 PAGS5
    인문/어학| 2012.11.07| 5페이지| 1,000원| 조회(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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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요타 조사 보고서
    목 차Ι. 서론Ⅱ. 도요타의 성공 요인1. 생산 측면에서의 성공 요인2. 마케팅 측면에서의 성공 요인3. 고객 측면에서의 성공 요인Ⅲ. 도요타의 실패 요인1. 생산 측면에서의 실패 요인2. 마케팅 측면에서의 실패 요인3. 고객 측면에서의 실패 요인Ⅳ. 향후 전략 및 운영 방안1. 생산 측면에서의 전략2. 마케팅 측면에서의 전략3. 고객 측면에서의 전략Ⅴ. 결론Ι. 서론도요타(Toyota)는 1937년 창업 이래, 2008년 세계점유율 1위를 달성하기까지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해 왔다. 도요타의 생산방식이라 일컬어지는 TPS(Toyota Production System)을 통해 도요타 신화를 이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도요타의 성공은 전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였고, '도요타 시스템 따라하기' 열풍까지 만들곤 하였다. 이 TPS 시스템의 대표적인 기법으로 JIT시스템을 언급할 수 있는 있는데 이를 통해 낭비요소를 제거하고 지속적인 원가 절감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러한 도요타 신화와는 대조적으로 최근 도요타 사상 최대의 리콜사태로 창사 이래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하였다. 2009년 8월 미국에서 ‘렉서스 ES350' 운전 중 가속 페달이 매트에 걸려 급가속 상태가 이어지는 결함으로 4명이 사망하는 사고를 계기로 촉발된 이 사태는 현재까지 1000만대 가량의 차량이 리콜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우리는 도요타가 이룩한 성공요인의 분석을 토대로 도요타의 실패적 요인에 대해서도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대표적인 도요타의 실패요인으로는 글로벌 경쟁 하에서 생존을 위한 무리한 원가절감 속에서 품질 관리 감독 기능을 Toyota 본부가 아닌 현지 직원에게 위임함으로써 전반적인 품질 관리 시스템에 허점이 생기는 문제를 야기하였다. 이러한 생산 관리 측면에서의 문제만이 지금의 리콜 사태와 같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닐 것이다. 생산적인 측면 이외에도 시장(마케팅)측면과 고객관점에서 도요타가 간과한 부분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가격할인 정책에 의존한 판매 전략과 고객의 mixed-model) 평준화 생산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런 일정이 가능해지려면 생산라인이 고도의 유연성을 갖도록 준비교체시간이 짧아야 한다.d. 흐름생산을 위한 셀 레이아웃일반적으로 도요타 생산방식은 유사한 제품을 반복 생산하는 제조환경에 맞는 시스템이다. 자동차, TV, 또는 전자레인지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조립 라인과 같은 흐름공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제품을 비교적 소량씩 생산하는 기업인 경우는 라인공정을 만들지 않고 통상 개별수주형(job shop)공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별 수주형 공정은 기별로 같은 작업을 하는 기계를 모아 하나의 부서로 만드는 형태이다. 도요타 생산방식에서는 가능하면 공정을 흐름생산 공정으로 개선하고자 한다. 이렇게 해야만 작업장마다 소요되는 긴 대기시간과 높은 재공품을 줄이고, 복잡한 자재관리를 피할 수 있게 된다.그래서 도요타 생산방식에서는 보통 다음 그림과 같은 작업 셀(cell) 레이아웃을 만들어 작업을 흐름화 하는데, 그 방법은 제품을 작업순서, 자재, 치 공구, 작업준비 등이 유사한 제품군으로 유형화하여 같은 제품군을 하나의 셀에서 완성하는 식이다.작업 셀은 제품의 다양성을 허용하면서도 소량으로 반복 생산하는 것을 허용한다.e. 유연한 자동화시스템오노는, “단지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는 이상이 생기면 금형이나 기계를 파손하고 다량의 불량품을 만들어 낼 뿐 아니라 작업자가 늘 기계 옆에 붙어서 감시해야 한다”는 점을 발견하고는 “모든 자동기계에는 이상이 있을 때 스스로 판단해서 정지하는 장치를 붙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 생각이 발전해서 작업자는 각기 자기 공정에 문제가 생기면 즉시 라인을 정지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교육을 받고 있다. 라인이 정지되면 그 공정 위에 붙어 있는 표시 등에는 붉은 색 불이 들어오고 엔지니어들은 그 라인을 향해서 일제히 몰려간다. 정지 시간이라야 불과 몇 초 정도이지만 라인을 정지함으로써 그 공정의 문제점이 노출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게 된다. 도요타의 자동화시스템 도입으을 꾀하기 위함이다. 도요타가 실행한 TQC 추진의 중점은 전 직원이 품질의식, 원가의식의 고양과 기능별 관리체제를 확립하고 수요동향에 적합한 신제품의 기획?출시를 원활하게 하는데 있다. 도요타 TQC는 자동차 영업소 및 주요 구매처와 긴밀한 협력체제를 유지하며 철저한 품질제일사상으로 “품질은 공정에서 만들고, 후속공정에서 보증한다”는 철저한 의식으로 문제의식을 고양하고 “개선 또 개선”을 추진을 추진하는 것을 TQC 활동의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다. 또한, 원칙을 그대로 실행하고 품질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규명과 철저한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로써 도요타는 원가 절감만을 강조하지 않고 전체를 강하게, 즉 전체 최적화를 추구함으로써 1조엔 이란 엄청난 비용을 절감하였다. 전체 최적화의 도구로는 많은 것이 있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이 TQC 활동에 의한 시스템적 접근방식으로 꼽을 수 있다.(4) 도요타의 IE(Industrial Engineering) 기법기존에 과학적 관리방법의 초기적인 작업 연구에 있어서는 대체로 생산 현장만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 사실이다. 도요타는 차츰 복잡화해 가는 경영관리에 발을 맞추어 조달, 생산, 판매, 기술, 재무, 인사 등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전사적인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해서 여러 가지 새로운 관리 기술이 전개되고 있는데 이들을 총칭해서 Industrial engineering, 즉 IE 라고 일컫는다.광의의 IE는 사람, 재료, 설비, 에너지가 통합된 모든 시스템을 설계, 개선, 정착화 시키는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도요타는 통합된 모든 시스템을 설계, 개선 및 정착화 시킬 경우에 생기는 결과를 명시하고, 평가하기 위해, 공학적 분석이나 설계원칙과 기법, 아울러 수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기법 등을 사용한다. 그 세부 대상으로는 인간요소가 주체를 이룬 기술, 설계의 과학화, 시스템과 시스템 종사자의 표준화 등이 있다.협의의 IE는 공정 분석, 작업 관리, 표준시간연구 등이 있다. 조사비용으로 투입하게 된다. “판매의 도요타”는 이렇게 철저한 시장조사로부터 시작해서 철저한 고객분석과 적절한 대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 던 별명이었다.?이론과 논리에 충실한 정도 마케팅을 구현도요타가 판매를 위해 벤치마킹한 대상은 GM이었다. 그리고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원칙 에 충실하게 마케팅을 실천하였다. 최고의 회사였던 GM은 포드의 소품종 대량생산과는 조금 차이가 나는 다품종 방식을 채택하여 시장에 출시하였다. 그리고 다양한 가격별로 구분하여 목표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주요 전략이었다. 도요타도 이를 충실히 이행하였다. 철저하게 시장중심으로 회사의 체질을 바꾸어 나갔다. 그 결과 원조인 GM도 구축하지 못 했던 고객지향 시스템인 Full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3. 고객 측면에서의 성공 요인사실상 고객 관점에서의 이해는 생산 프로세스의 의사결정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고객관계관리(CRM)에 의한 통합 마케팅 전략과 ERP 시스템에서의 적용됨을 통하여, 모든 생산관리 부분이 정보를 공유함에 있어 동시다발적인 고객의 니즈(needs)를 이해, 반영할 수 있는 수익창출의 시스템적 발전을 가능하게 한 대세적 흐름은 이를 반영하는 단적인 예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고객 관점에서 도요타의 성공 요인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의 성공적 정착에서 찾을 수 있다. 본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재화의 최종 소비자인 고객뿐만 아니라, 협력, 하청업체, 조직 내부 구성원들에 이르기까지 그 범주가 넓지만, 후술하는 내용에서는 협의의 관점으로서 고객 측면에서 도요타의 성공요인을 후술하도록 하겠다.도요타는 고객만족(CS: Customer Satisfaction) 향상 활동을 위해 사내에 그 핵심조직으로서 고객만족 향상위원회를 1989년 1월 신설하여 중점을 두고 품질, 판매, 서비스 3분야에서의 최고의 고객만족 획득이라는 목적을 위해 활동을 전개하였다. 활동기간은 3년 동안이었으며, 사장을 위원장으로 하여 위원타 생산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 는 토양이 일본 국내임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도요타는 혼다, 닛산 등 경쟁업체에 비해 해외생산 시에도 일본 본사 인력이 대량 해외로 전근하여 가급적 국내와 유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해외생산거점이 급증함 에 따라 송출 인력풀에 한계가 드러나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도요타식 품질관리가 곤란 해졌다. 해외공장 설립 때마다 대량인력이 해외로 전근함에 따라 본사의 각 부문 담당자 가 빈번히 교체되어 도요타 사내 및 부품업체와의 긴밀한 소통이 곤란해졌다.(2) 성장중시 경영전략의 확산?도요타는 2006년 이후 와타나베 시장의 GM추격을 위한 성장중시 경영이 성공을 거둠으 로써 2008년 GM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되자, 이를 더욱 가속화하면서 품질중시 경영은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일본의 저명한 다국적기업 연구자는 도요타가 세계시장에서 렉서스와 같은 고급차 시장과 대중차 시장 중 어디를 공략할지를 혼란스러워 하던 와중에, 현대자동차 등 후발주자를 지나치게 의식, 자사의 귀중한 자산인 품질 경쟁력을 과소평가하고 가격 경쟁력 확보를 중시하게 되었다고 지적하였다.2. 마케팅 측면에서의 실패 요인(1) 부적절한 위기대응도요타는 낮은 원가와 높은 품질로 고객에게 어필하여 신뢰로서 성공한 기업이다. 하지만 렉서스의 가속페달의 기술·설계상의 오류로 대규모의 리콜을 촉발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 신속하지 못해서 그동안 쌓아왔던 기업의 이미지 및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도요타는 고객중시의 마인드로 성공을 하였지만, 리콜사태에 늦장 대응하여 도요타에 충실한 고객들이 떠나가게 되는 요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기존의 높은 품질과 성능으로 어필하였던 도요타를 선호하였던 고객들과 잠재적 고객들이 시장을 떠나가게 만들었다.(2) 무리한 원가절감도요타가 발표한 비용 절감 계획의 핵심내용은 2012년부터 생산되는 신차에 부품가격을 30% 내리라는 것이었다. 이 정도의 납품가다.
    경영/경제| 2012.10.17| 16페이지| 1,000원| 조회(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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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산운용과 투자전략
    투자정책기준을 만들어라. (미래의 투자가 현실화 될 것을 고려하여)김씨의 미래 정보로부터 주목할 부분70세의 고령의 연령이다.(이미 은퇴했을 것으로 예상)활동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한다.의학연구소에 많은 재산(45억의 주식+창고건물)을 투자한다. (최종목표)제약조건(현재조건)현금 45억 (개인지분의 판매로 부터)주식 5억 & 채권 5억창고건물 9억 (현재 임대상태)집 1억※해석 (해석 시 직관적으로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 화폐의 가치 제외)현재 김씨는 노후자금 이상의 자산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라이프사이클 투자전략에 의하면 노후대책과 의학연구소에 대한 투자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자산의 확보가 목표라 할 수 있다. 고려해야 할 사항은 아래와 같다.노후자금90억원의 개인기업지분라이프사이클 투자전략 의 그래프에 따르면,노후생활은 약 57세부터 시작된다. 미래에 설정 되 있는 김씨는 70세로 설정이 되어있으며 향후 15년을 더 산다고 가정했을 때, 약 25년 이상의 노후생활이 예상된다. 간단한 수식으로 어림잡아 계산하면, (25년, 월 210만원 필요)으로 최소 6억 3천만원을 추가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국민연금 제외) 여기에 활동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하면, 약 7억원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그러므로, 미래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 돈은 90억원과 7억원의 노후자금이 필요하다.현재 가지고 있는 자산을 따져보면, 집은 노후에 안정적으로 살 곳으로 정해 투자가능자산에 넣지 않고 창고건물도 의학연구소에 기부해야 하므로 투자가능자산에 포함시키지 않도록 한다. 그러면 남는 것은 현금 45억과 주식과 채권이 각 5억원(10억원) 이 남고 목표 금액은 42억이 된다. 이것은 투자수익률이 35년간 약 130%에 달한다. 매우 큰 수익률이나, 이를 연 수익률로 따지면, 약 연 4%대의 수익률이 나온다. 이것은 물가상승률을 고려했을 때의 수익률을 의미하므로, 현재 물가상승률이 약 3%것을 감안하면, 약 7%의 수익률이 필요하다.투자정책기준투자목표위험인내도김씨의 위험 인내도는 10년 이상의 투자(현재 가지고 있는 자산)에서 위험&투자기간에 따른 포트폴리오에 의하면 ‘위험인내도 적정’으로 판단된다.수익목표(연 7%이상)수익목표는 자본 절상이 목적이며, 연 7%이상일 경우 달성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절대적으로 현재 55억을 제외한 97억원이상이 필요하다. 현재 소득이 있을 경우, 퇴직금을 고려하면 목표치 이상의 수익이 기대된다.투자제약조건나이 및 기간현재 45세로 설정, 투자목표기간인 70세까지 35년이 남았다. 지출보다 수입이 많다. 라이프사이클로 봤을 때, 유동성확보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나이로 봤을 때 위험을 기피하겠지만, 매우 장기적인 투자이기 때문에 위험기피 영향을 상쇄할 수 있다.세금 및 법적 규제세금세금은 현재 소득에서 감하는 것으로 설정하며, 향후 노후자금계산 값이 세금을 포함한 가격이다. 자산 보유에 있어 자산규모가 큰 편이고 장기간 보유하므로 자본이득에 대한 세금을 회피하는 쪽으로 설정한다. (주식 채권직접투자, IRA등 세금이 높지 않은 쪽 선호)법적 규제유동성 확보가 크게 중요하지 않아, 펀드의 경우 개방형 보다 인출이 어렵지만 안정성이 있는 폐쇄형으로 운용한다.위에서 만든 투자정책기준과 일치하는 장기자산배분을 제시하라.(이러한 자산배분을 만들면서 도입한 가정들을 간략히 설명)위험과 투자기간에 따른 포트폴리오(Figure1)에 따르면 김씨의 위험인내도는 적정한 정도로 측정 된다. 때문에 현금 보유와 같은 유동성 확보보다 채권 및 주식으로 구성된 장기간 투자가 적절하다. 이때 자금의 규모가 큰 편이고, 장기간 투자라는 면에서 세금혜택을 받는 방식으로 투자하는 것이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편으로 보인다. 장기간 투자인 만큼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한 투자도 가능하며, 주식투자에 있어 국내주식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주식에도 투자하는 방식으로 국내주식투자에 대한 리스크를 최소화와 높은 수익을 노린다.위의 정책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이와 같은 수익률 위주의 투자방식이 아닌 채권이나, 연금성 자산 및 펀드, 해외 대기업 주식에 투자해서 채권 쿠폰, 연금, 배당금으로 지속적인 수익을 노리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90억원은 기존의 수익률 위주의 투자를 하는 반면 노후자금인 7억원에 대해서는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를 할 수 있다고도 생각 해보았다.※아래표는 다음 투자배분을 %로 나타낸 표다.방안A(안정성 : 쿠폰 및 배당 위주)※7억원만 해당방안B(수익률 위주)현금채권주식해외주식현금채권주식해외주식0%40%30%30%0%10%50%40%Figure SEQ Figure * ARABIC 1*자료라이프사이클 투자전략(그래프), 위험과 투자기간에 따른 포트폴리오자산운용과 투자전략(서은숙 교수님) 강의노트 ‘제 2주 강의.pdf’은퇴 후 생활비계산http://donidang.tistory.com/846소비자물가지수(e-나라지표)http://www.index.go.kr/egams/stts/jsp/potal/stts/PO_STTS_IdxMain.jsp?idx_cd=1060&bbs=INDX_001&clas_div=C&rootKey=1.48.0
    경영/경제| 2012.10.17| 3페이지| 1,500원| 조회(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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