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제: 나의 생활과 한일관계나는 철이 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미용업을 꿈꾸며 자라왔다. 헤어, 메이크업, 특수분장, 뷰티아트 등 다른 친구들이 열심히 수능을 준비할 때, 나는 수없이 사람들에게 메니큐어를 발라보고, 여자 아이들과 함께 서로 얼굴을 맞대며 분장을 해 보곤 했다. 여러 작업들을 하고나면 나는 꼭 포트폴리오를 구성 한다. 이때 필요 한 것이 디지털 카메라. 난 이 공부를 시작 했을 때 부터 삼성제품을 시작으로 여러 종류의 카메라를 사용해왔다. 내가 찍은 컷 만해도 수백만 컷은 될 것이다. 나는 솔직히 이번 수업을 듣기 전 까지만 해도 한일관계를 많이 생각할 필요가 없는 학생이었다. "일본도 우리 업계에서는 하나의 시장에 불과해"라는 시각뿐이었다. 이 레포트를 쓰기위해 많이 고민했다. 과연 내 생활과 일본이 무슨 관계가 있을 수 있을까. 시장으로 생각 하지 말고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는가. 가장 쉬운 것 부터 찾기 시작했다. 우리의 영토 독도. 독도를 시작으로 나는 일본과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일본 우익 단체에 대해 유심히 보기 시작한다. 내가 아는 우익단체는 “보수 정치 사상가들의 모임”정도다 그런데 일본의 우익단체는 나를 정말 어처구니없게 만드는, 아니 한동안 날 멍 하게 만들어 버렸다. 여기 적는 것 조차 치욕적이지만 우익단체에서 한 말을 써 보자면 "다케시마는 일본의 영토다“. "위안부는 기본적으로 단지 매춘부이다. 매춘부에게 사죄할 필요는 없다" 이 얼마나 황당한 언사란 말인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우익단체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 중 독도 이상으로 버금가는 문제가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자국민들에게 교육시키는 일이었다. 일본 역사 교과서를 보면 위안부 이야기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일본 내부에서는 반대하는 세력도 있지만 왜곡 교과서를 채택하여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선생들도 있다고 한다. 스스로 화를 내며 다른 자료를 찾아보다 이런 질 나쁜 우익단체를 후원하는 기업이 있으니 정말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생활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내가 항상 쓰고 있는 DSLR. 아니, 우리나라의 상당수가 쓰고 있는 회사. 니콘, 캐논,소니 등 난 정말 그간 칭찬일색으로 내가 쓰던 일제 카메라를 포장했던 나의 무지함에 손이 떨릴 정도였다. 이밖에도 영화를 보기위해 항상 찾아갔던 롯데를 비롯하여 굴지의 판매고를 기록하였던 닌텐도, 비싸더라도 질이 좋아 항상 쓰곤 했던 하이테크, 싸지만 질이 좋아 잘 입곤 했던 유니클로 아식스, 고가 화장품메이커인 SK-II, DHC 재미 있는건 해외에서는 SK-II 제품이 우리나라에 비해 가격이 많이 낮다고 한다. 기타 세븐일레븐, 패밀리마트, 구몬학습지, 다이소 등 이 밖에도 너무 많은 기업이 우익단체에 후원해주고 있었다. 기업이 후원한다고 해서 그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다 우익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대부분 후원을 해주는 기업의 총수들이 우익이라는 말이 된다. 소비구조를 생각해 보면 한국소비자가 위 기업의 물건을 구매하면 기업의 이익이 발생할 것이고 그 이익으로 우익단체는 우리 한국역사를 희롱하고 우리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잘 모르고 우익지원 브랜드의 물건을 사고 이런 악순환 고리가 생성 되는 것 이었다. 이 얼마나 우스운 꼴인가. 나는 조상을 모시는 제사를 지낼 때면 정말 큰일이 있지 않고는 다 참석하는 편인데 조상님 얼굴을 어떻게 봬야 할지 너무 창피할 따름이다 나는 이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을 올해 들어 가장 잘한 일이라고 판단하고 싶다. 내가 스스로 우익단체 지원 브랜드를 불매하도록 저지 할 수 는 없겠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많은 주변인들 에게 알려서 내 나름대로 노력을 해 볼 것이다. 끝.
음양오행으로 본 생명과 자연나는 이 과목을 접하면서 음양오행이란 아주 생소한 것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한편으론 매우 궁금하고 알아가고 싶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음양오행이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 이며 필히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을 깨달았다. 음양이란 것은 참 단순하지만 인간의 신체와 자연 모든 만물을 통틀어 음양이 아닌 것이 없기에 음양이란 매우 중요한 것 이었다.심지어 아무 생각 없이 봐왔던 태극기 조차 음양의 의미가 있음을 알고 매우 놀랍고 나 자신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였다. 또한 오행으로 자연을 말할 수가 있었는데 음과 양이 균형을 이루면 목(木)기운 충돌을 하는 것이 화(火)기운 결합 하는 것이 토(土)기운 함께 끌어당기는 것이 금(金)기운 밀어내는 것이 수(水)기운으로 말할수 있었다. 불은 토를 낳고 토는 금을 낳고 금은 수를 낳고 수는 목을 낳는다. 이러한 상생관계와 상극관계의 원리로 아주 작은 미물부터 우주를 통틀어 음양오행을 설명 할수 있었다. 항상 사용하고 있던 일주일 월화수목금토 조차 음양오행의 기본적인 것임에 또 한번 놀랄수가 없었다. 일요일(양),월요일(임)으로 음양과 화수목금토 오행으로 이루어 져 있었던 것 이었다.음양오행을 몸으로 치자면 배꼽위로부터 양이고 배꼽아래는 음이다. 음양의 균형을 유지하는 건강한 신체를 유지할수 있는 방법이다.신체의 구조로 보면 심장,간장,폐장,신장.심포,비장의 육장기가 음이며 위,대장,삼초,담낭,소장의 육부가 양이다. 목,화,토,금,수의 오행은 장기 활동에 중요한 법칙이 되는데 간장과 담낭은 목(木) 심장과 소장은 화(火) 비장과 위는 토(土) 폐와 대장은 금(金) 신장과 방광은 수(水)에 속한다. 이런 음양오행으로 동양 의학에선 사람의 건강과 체질을 알 수 있었고 신체의 균형을 이루어 질병을 치료해 왔다. 음양오행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재미있었던 것 중 하나는 모두가 맛있는 음식이라고 하면 그걸 즐겨먹고 무슨 약이 좋다하면 어떻게 해서든 구해 먹는다. 특히 우리나라 경우엔 더욱 심한 것 같다고 느꼈었는데 어디에 좋더다라 하면 다잡아먹고 또 어디에 그게 많다더라 하면 우르르 다가서 잡아먹고 하지만 이게 절대로 좋은게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약은 물론이고 음식 또한 그 사람의 체질에 맞게 다르게 효과가 나타난다. 즉, 모두가 좋다더라 좋다더라 한다고 자신의 체질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적으로 먹으면 오히려 독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의 입맛이 다른 것도 음양오행으로 설명할 수가 있었는데 같은 음식을 먹어도 어떤 사람은 싱겁고 어떤사람은 짜고 어떤사람은 맵다고 느끼는 것이다. 싱겁다는 사람은 신장,방광이 허해 염분을 필요로 하고 짭다는 사람은 방광이 실해 염분을 필요로 하는 것이고, 맵다는 사람은 폐,대장이 실하여 그런 것이며 고춧가루를 더 원하는 사람은 폐,대장이 허 한사람이다 .이것을 보아 모두가 똑같은 좋은 약 좋은 음식을 먹어도 몇 명은 효과를 얻을수 잇지만 몇 명은 독이 될수도 있고 또는 전혀 무해무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음양오행은 이처럼 신체를 고려해 오장육부의 기능 균형과
공자와 유가의도1) 공자의 삶(기원전 551,552-479)공자의 이름은 구이며, 자는 중니이다. 공자는 4대 성인 가운데 한 사람이며 정치가, 사상가, 역사학자, 교육자이다. 노ㄴ나라 창평향 추읍(지금 곡부)에서 출생하였으며 중국문학의 출발점이자 주류이며 한국, 일본, 싱가폴, 베트남 등 동아시아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나라 때 신격화 되었으나 사마천이 인간으로 이해하기 시작 하였으며, 그러함 속에 공자의 인문 정신의 위대성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공자는 춘추 전국의 혼란시기를 보면서 '아침에 도가 실현되는 소리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혼란을 바로 잡고자 했던 갈망을 보이기도 하였다. 공자는 상식 저편이 아닌 상식 안에서 진리를 찾고자 하였다. 공자는 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난한 생활을 하였으나 어머니가 무당, 맹인 이었다는 설이 있다. 공자는 젊었을 때 창고관리와 정부의 가축을 돌보는 직책을 맡기도 했고, 35세 때 고향을 떠나 51세까지 여러 임금을 만나면서 자신의 사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특히 계손씨의 '팔일무(천자 앞에서만 출 수 있는 춤)'를 보고 고향을 떠나 여러 나라를 전전하게 된다. 그 후 51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지금의 법무장관에 해당하는 '대사구'를 맡게 되지만 56세 때 다시 떠나 68세까지 다른 나라의 70여 임금을 만나며 자신의 사상을 실현하고자 하였지만 뜻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은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고,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는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였다. 공자는 아들과 여러 제자들이 일찍 죽고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사상을 알리려 했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공자는 20세 무렵부터 제자가 있었으며 그 제자들이 무려 3000여명에 달했다. 그 중에 뛰어난 제자들은 성균관에 배향되어 있고, 이러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최초의 사립학교를 세우게 되었고 역사 속에서 다양한 평가를 받게 된다. 5.4신문화운동에서는 전통을 타도하는 것의 핵심이 공자가 되기도 했으며,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도 당시 자본주의적인 편향을 비판하는 것은 곧 공자를 비판하는 것과 같다 라고 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다시 중국이 자신들의 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해외에 공자아카데미를 세우고 있다. 이로써 중국의 세계화브랜드로써 부활하고 있다.2) 논어공자의 사상이 제일 잘 나타나 있는 부분이 '논어'이다. '선생님의 말씀을 의논해서 편찬했다'라는 뜻으로, 송나라 때, '맹자, 중용, 대학'과 합쳐지면서 사서가 된다. 한나라 때 지금의 논어로 다듬어 졌으며, 총 20편으로 각 편의 이름은 처음 나오는 문장에 앞의 두 세글자를 따서 이름이 붙여졌다. 논어는 옛날 우리나라 지식인들도 많이 읽히는 아주 중요한 고전이었으며, 그 안에는 우리가 잘 아는 '살신성의', '극기복례'등의 말들이 많이 나온다.2. 중심사상 - 仁논어에는 '仁'자가 총 106번 등장한다. 공자의 중심사상이 仁이며 이는 '사람 답다'라는 뜻으로써, 중용에는 '인은 사람다움이다'라고 하였고, 맹자에도 이러한 표현이 나온다 그래서 공자의 仁을 '사람답다'라는 말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해석이다. 仁은 사람(人)과 두(二)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형태이다. 사람의 삶에 대한 고민의 해답이 '仁'이었고, 그 사람다움을 실현해 가는 방법이 '道'이다. 자로라는 제자가 공자에게 귀신을 섬기는 법을 묻자 공자가 대답하기를, 사람도 다 못섬기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겠는가 하였고, 또다시 자로가 죽음에 대해 묻자, 삶도 아직 다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는가라고 대답했다. 이로 불때, 공자의 관심이 사람다움에 있었고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관심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공자는 사람을 소인과 군자, 그리고 사람다운 사람과 가장 완성된 형태로써의 성인으로 나누었다.공자의 중심사상 - 仁里仁一唯人者 能好人 能惡人 -오직 사람다운 사람이라야 능히 남을 좋아할 수 있고 능히 남을 미워 할 수도 있다.惠問一仁者必有勇 勇者不必有仁 -사람다운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있지만 용기 있는 사람은 반드시 사람다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仁者無敵 - 사람다운 사람은 맞설 사람이 없다.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瞿 -지혜로운 사람은 혹하지 아니하고 사람다운 사람은 근심하지 아니한다.仁者安仁 知者利仁 -사람다운 사람은 사람다움에 편안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다움을 이롭게 여긴다.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사람다운 사람은 자기가 서고자 하면 오히려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그런 자리에 이르고자 하면 오히려 남을 이르게 해준다.志士仁人 無求生以害人 有殺身以成仁 - 뜻 있는 선비와 사람다운 사람은 삶을 구하기 위해서 사람다움을 해치는 일은 없고, 오직 몸을 죽여서라도 사람다움을 이룬다(살신성의)當仁 不讓於師 - 사람다운 일을 실천함에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 - 사람이면서 사람답지 못하다면 예의를 차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이면서 사람답지 못하다면 음악을 잘 연주해봤자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내면의 사람다움을 강조-->仁 실천의 근본은 부모에 대한 효와 형제사이의 우애와 충서(忠恕)이다.3. 답게하는 정치 -正名, 덕치와 예치공자는 사람다운 사람들이 사는 정치실현을 하고자 하였다. 그 핵심적인 사상이 正名사상과 덕으로써 다스리는 덕치와 예로써 다스리는 예치이다. 공자가 제자와 함께 위나라로 가는데 제자가 묻는다.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 事不成則禮樂不與 禮樂不與 刑罰不 中則民無所揷手足 -名이 바로잡혀 있지 않으면 말이 순하지 못하고, 말이 순하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법이 바르지 못하게 되고, 법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바가 없다.顔淵 : 君君臣臣父父子子 - 임금이 임금다우면 신하가 신하답고, 아버지가 아버지다우면 자식이 자식답다.子曰 道之以政 재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재之以禮 有恥且格 - 정치로써 이끌고 형벌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이 부끄러움이 없고, 덕으로써 이끌고 예로써 다스리면 스스로 부끄러움을 갖게 되고 스스로 바로잡게 된다.顔淵 : 政者正也 子師以正 執敢不正 -정치란 바로잡음을 뜻하며 그대가 스스로 바로 잡아간다면 감히 누가 바로잡지 않겠는다.4. 교육사상주 나라 초기의 귀족의 신분은 세습이었다. 하지만 춘추전국시대 이후부터 신흥지주의 등장으로 당시의 혼란으로 인재들이 필요함에 따라 일반인들도 재주와 학식이 있다면 발탁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공부를 하겠다고 나서게 되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 공자는 신분에 관계없이 일정한 예를 갖추어 오면 모두 가르쳤다. 그러한 점에서 공자는 최초의 사립학교를 세우게 되고 평등교육과 보통교육을 실현해 간다. 공자는 6경6예를 가지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공자가 본래 기르려고 했던 것은 군자로써 본래의 뜻은 '직책이 있는 사람'이지만 공자는 그것을 '덕을 갖춘 사람'로 바꿔나가게 된다. 군자는 기능적인 것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덕이 되는 바탕을 기른다'라는 뜻에서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학문'으로써 참다운 자기를 위한 학문으로 얘기 한다. 공자는 시경과 예기를 강조하면서 감성에 바탕을 둔 교육을 실천해 나갔고 계발식 교육과 이론적인 교육 보다는 실천중심의 교육을 실행하였다.공자는 6경을 편찬하고 그 속에 상고주의와 술이부작의 정신을 국가관에 가지고 있다 하였고 온고이지신을 학문과 교육의 핵심으로 삼았다. 공자의 사상인 유고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봉건제사회의 전제군주제를 합리화 하는데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공자 사상의 가치는 인문정신의 극치라는 점에 있다. 이러한 공자의 사상은 서구의 계몽사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공자로부터 시작된 유교는 인과에 대한 인과응보가 없다. 즉 보상이 없는 세계관이다. 그럼에도 왜 그렇게 살아야 되느냐고 유고지식인들에게 묻는다면, 인간다움의 실현일 뿐이라 하였다. 오로지 스스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당위가 있을 분이라는 인문정신의 극치, 즉 유가사상의 핵심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