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과거의 사건의 원인을 알려고 하지 않아도 그것에 대해 읽거나 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역사연구자나 역사가로 부를 수는 없다. 역사의 연구는 원인에 관한 연구이며 역사가는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존재이다. 역사는 과거의 사건을 인과관계에 따라 전후에 배열함으로써 성립한다. 헤로도토스는 자신의 연구 목적이 ‘그리스인들과 야만인들의 행위에 관한 기억을 보존하는 것과 그들이 싸운 원인을 밝히는 것’ 이라고 적음으로써 원인 연구에 동조했다. 그리고 몽테스키외는 ‘발생하는 모든 것은 원인에 의해 좌우 된다’ 고 주장하며 ‘우리가 이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결과들이 맹목적인 운명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이라고 했다. 역사가들과 역사철학자들은 거의 200여 년 동안 역사적 사건이 원인과 그것을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과학과 사회과학, 역사에서 법칙과 원인에 대한 연구가 줄고 인과적 연구방법에 반대하면서 기능주의적 연구방법에 찬성하는 방향으로 연구동향이 변화하게 된다.원인의 문제에 대한 역사가들의 연구방법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그들은 대체로 동일한 사건에 여러 가지 원인들을 제시한다. 경제학자 마셜은 ‘하나의 원인의 작동만을 고찰하는 것은 가능한 한 반드시 피해야 한다’ 고 말했다. 이는 곧 역사가는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개인적, 장기적, 단기적 원인 등 여러 가지 원인 모두를 고찰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 된 두 번째 특징은 역사가는 그 원인들을 모으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종합시켜 해석을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역사가란 연구를 통해 수집한 원인을 정리하고 그 원인들 사이의 위계질서를 수립시켜 궁극적인 원인을 결정하는 사람이다. 모든 역사적인 논의는 어떤 원인이 우선하는가 하는 문제를 벗어날 수 없다. E.H.카는 앙리 푸앵카레의 ‘과학은 다양성과 복잡성, 통일성과 단순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그리고 이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과정은 인식의 필요조건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를 역사의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역사가는 원인을 다양화하는 동시에 단순화해야한다는 것이다.역사적 사건의 원인 문제에 관한 논쟁으로는 결정론과 우연론의 논쟁이 있다. 결정론은 모든 사건에는 하나 또는 여러 가지의 원인들이 있고 그 하나 또는 여러 가지의 원인들 중에서 무엇인가 달라진 것이 없었다면 그 사건은 다른 식으로는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결정론은 역사의 문제가 아닌 모든 인간의 행위의 문제에 관여하며 원인도 없이 행동하며 그 행동이 결정되어 있지 않은 인간은 사회 밖에 존재하는 개인으로 정의한다. 우연론은 역사는 전체적으로 우연의 계속에 의해 결정되고 가장 뜻밖의 원인에서만 유래하는 사건의 연속이라는 이론이다. 그들은 결정론에 대해 인간의 행위를 인과적 관계에서 설명함으로써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도덕적 판단을 회피한다고 비판한다. 찰스 킹슬리는 자신의 취임 강연에서 ‘인간에게는 신비로운 힘이 있으며 그것 때문에 역사에 있어서 필연적 연쇄란 존재할 수 없다.’ 라고 하며 우연론을 주장했다.E.H.카는 이런 우연론에 대해 우연의 역할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고 말하며 어떤 일에 대해서 불운이라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원인 탐구 회피에 해당된다고 비판했다. 지금까지 우연이라고 간주되어 오던 사건들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원인은 역사과정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을 결정하며 그 해석은 원인에 대한 역사가의 선택과 위계질서 배열을 결정한다. E.H.카가 말하는 진정한 역사가는 무수한 인과적 관계 중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만을 추출하여 합리적으로 설명해야하며 그 밖의 다른 인과적 전후관계들은 우연적 요소로 배제되어야 한다. E.H.카는 역사에서 원인을 현실적(합리적) 원인과 우연적 원인으로 나누었다. 현실적 원인은 언젠가 다른 문제에 적용 가능하기 때문에 유익하고 일반적이며 그것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우연적 원인은 독특하기 때문에 일반화 될 수 없고 교훈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우연적 원인은 어떠한 결론도 가지지 않는다고 한다.E.H.카는 이 글을 통해 우연론을 비판하고 결정론을 지지하고 있다. 그는 무조건적으로 결정론을 주장했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보다는 그들의 주장 중 잘못된 점을 비판하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듯 보인다. 마르크스는 역사에 있어서 우연을 세 가지 측면으로 설명했다. 그 중 한 가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인데 이 것은 사건을 지체시키거나 가속시킬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변경시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E.H.카는 이를 가리켜 ‘존재하지만 지체시키거나 가속시킬 뿐 변경시키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말장난’ 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역사에서의 우연은 단지 우리의 무지의 표지’ 일 뿐이라는 견해도 적절치 못하다고 함으로써 우연론을 비판하는 입장의 잘못된 주장을 바로 잡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 글에서의 핵심적인 견해인 결정론과 우연론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적절한 예시를 제시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스미스의 행동과 클레오파트라의 코, 바야지드의 관절염, 알렉산드로스의 원숭이 등이 그것이다. 그는 그 예시들로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고 이러한 점은 이 글이 적절하게 전개되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