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flow와 Network의 혁신, TAPELESS과목명: 디지털영상 교수명: 교수님 제출일: 00.10.00(화) 제출자: 20000000 bbb- Tapeless 관련 조사 -Tapeless는 디지털 시대의 화두이다. 어떤 방향으로 영상촬영 환경이 바뀔 것인지 정해지지는 않았으나 현재 HD 디지털 기술로 Tapeless가 진행되고 있으며 기존의 Linear적인 Tape매체가 가지고 있던 한계점들을 많은 부분 극복하면서 새롭게 도래하고 있는 Tapeless의 상황은 기존의 체제를 크게 흔들어 놓는 지각변동과도 같은 파장으로, 일선의 사용자들을 긴장하게 하고 있다.Ⅰ. TAPELESS최초 기획에서 최종송출까지의 전통적인 업무흐름(workflow)은 프로그램 제작을 위한 기획단계 이후부터 실질적인 콘텐츠 제작을 위한 단계가 시작되는데, 기존의 흐름은 크게 현장촬영, 편집, 전송 및 공유, 저장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전통적인 업무의 흐름은 각 단계별로 콘텐츠의 이동이 대부분 사람의 손으로 전달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 단계 간 이동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또한 편집에도 테이프 미디어의 특성상 필요한 내용을 검색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하지만 Tapeless 환경의 도래로 인해 방송 프로그램 제작환경에서 누릴 수 있는 이점은 무엇보다도 전체 워크플로우의 신속한 운용일 것이다. 기존에 단계별 이동이 인력 등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 네트워크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접근과 전송이 가능해진다.뉴스제작의 예를 들면, 최초 취재 단계부터 콘텐츠는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매우 빠른 속도로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사람들과의 정보공유가 가능해진다. 또한 개별 장비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IP 접근을 통해 원격지에서 장비의 동작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함으로써 만약의 방송사고 등을 사전에 대비할 수 있게 되며, 이러한 방송사 단위별 네트워크 시스템은 이더넷(Ethernet)을 통해 세계 어디든 네트워크망과의 접속이 가능함으로써 효서도 고용량의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었으며, 물리적으로 그 부피의 한계를 타개할 수 있었던 유용한 매체였다. 하지만 컴퓨터 기술의 발전은 영상과 음향의 방송부문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는데, 자기(紫氣)의 연속적인 기록형태인 Tape으로부터 이제는 PC에서 파일을 다루는 것과 같은 방식의 디지털 기록 매체가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최초의 기록이 디지털화하고, Tapeless 포맷으로 기록된다는 것은, 단지 기록포맷의 단순한 변화가 아닌 전반적인 Workflow를 변모시키는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다. 파일화된 비디오와 오디오 데이터는 이전의 Tape매체를 운용하기 위한 VCR 등의 장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컴퓨터편집이 가능해진다. 이는 파일단위로 생성된 데이터의 활용 면에 있어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데, 화질의 열화 없는 재생산과 네트워크상의 원활한 전송과 공유 등 진정한 ‘One Source에 대한 Multi Use’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기존의 방송국 환경을 떠올리면, 장거리 출장을 필요로 하는 취재에서 기자는 많은 양의 기록매체를 짊어진 채 며칠이고 기록해온 데이터를 방송국에 복귀한 뒤에서 편집에 착수할 수 있다. 이후에도 1차 편집된 자료는 몇 차례의 부가작업(효과, 자막, 번역, 더빙..) 등을 거쳐 방송을 위한 최종물로 준비가 된다.하지만 Tapeless환경 하에서의 데이터는 네트워크망이 구성돼 있기만 하면 어디서든 파일형태로 본사로 전송할 수 있다. 이렇게 전송된 데이터는 손쉽게 재생산이 가능하며 컴퓨터 기반의 편집에 있어서도 신속한 Operation이 가능하다. 보도의 신속성과 속보성을 중시하는 환경에서 특히 그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취재와 편집, 전송이 용이해짐에 따라 천편일률적인 영상이나 데이터로부터 매우 다양하고 전달력 있는 정보들을 접할 수 있게 된다. 방송프로그램 제작시스템의 운용 면에 있어서도 편집, 검색을 위해 소비되는 많은 시간을 Random Access를 통해 상당히 절약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방송프로그램 있을 것이다. 이미 우리가 사는 환경은 부지불식간에 상당히 IT친화적으로 변화되어 왔고 계속 진행 중에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사용자들의 소극적인 태도와 막연한 두려움은 오히려 기술에 의해 끌려가는 형국으로 점철될 수 있다. 사용자의 주도적인 변화수용의 자세와 한발 앞선 행동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IT기반의 Tapeless환경에서 선택의 기준을 간략히 언급하면, 크게 세단계의 과정으로 나눌 수 있는데, 현장촬영 단계에서의 ENG포맷은 충분한 HD화질과 녹화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데이터의 기록매체는 충분한 내구성과 함께 경제적이고 활용도 높은 미디어가 제공돼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전송단계에 있어서는 IP Network, Microwave, Media전달 등 다양한 방법의 전달과 전송의 기회가 마련돼야 하고, 네트워크의 대역폭을 고려한 합리적인 파일의 사이즈가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편집과 송출 그리고 Archieving을 위한 조건들이 만족되어야 하는데, 이에는 일반 PC급에서도 가용한 편집Solution과 다양한 Non-Linear편집프로그램과의 연동, 그리고 합리적인 Stroage 구축비용 등의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이상의 선결조건들을 가지고 현재까지 출시되고 소개되고 있는 Tapeless 포맷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1) Tapeless format의 소개대표적인 카메라/VCR의 제조사들은 IT기반으로의 제작 시스템 전환을 발판으로 지금까지의 Tape기반 제작 장비에서 Tapeless 제작 장비로 Line-up을 옮겨가고 있다. 이러한 Tapeless장비들의 특징으로는 IT기반 저장매체인 하드디스크, 메모리, 광 디스크 등을 사용하여 파일 형태로 저장을 하며, USB, IEEE-1394, Ethernet 등의 Interface를 지원하므로 PC와 같은 IT장비로의 전송을 손쉽게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카메라/VCR 기능에 IT의 장점을 접목하여 Thumbnail기능, Clip에 의한 Random Ac 수 있다.파나소닉의 P2시스템의 특징을 보면, PC카드규격 형태의 메모리 카드를 저장매체로 사용하고 있으며, DVCPRO방식으로 압축된 파일과 MPEG-4의 프락시를 지원한다. 또한 IEEE-1394 Interface와 USB2.0 Interface의 IT Base의 입출력을 갖추고 있다. 메모리카드로 저장된 데이터는 포터블 하드디스크를 활용하여 현장에서 파일을 복사하거나 보관을 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P2뷰어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영상의 프리뷰가 가능하며, 기존의 NLE을 통한 영상의 편집이 가능하다. 비디오는 기본적으로 DVCPRO 25/50/HD 각각 2/4/8 채널을 지원한다. P2메모리카드의 사양을 보면, 현재까지 4GB, 8GB, 16GB의 세 가지 종류가 출시되고 있으며, PC카드 Type-II(PCNCIA) 규격을 따르고 있다. 메모리 카드의 특성상 640Mbps의 빠른 전송률을 자랑하며 50Mbps기준 16GB메모리에 저장 시 약 32분의 기록이 가능하고 10만회 이상의 반복쓰기가 가능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조만간 선보일 포맷 Codec으로 AVC-Intra(50/100Mbps)의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PCNCIA규격을 따르고 있는 P2의 플래시메모리는 하드디스크 같은 보조기억장치보다 실행속도가 훨씬 빠르고 전력소모도 매우 적은 매체로 반도체 메모리의 특성상 충격에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읽고 쓰는 횟수의 제한이 없는 램이나 하드디스크에 비해 플래시메모리는 약 1백만 번 정도의 횟수만 기록 가능하다.(2) Hard Disk Type/Flash Memory Type또 하나의 방식으로, 하드디스크 또는 플래시메모리를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Ikegami사의 Editcam을 들 수 있다. FieldPack2라는 매체를 저장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HD의 경우는 아비드의 DNxHD 포맷을 MXF파일로 저장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WMV를 프락시로 지원하며, 아비드사와의 협력으로 아비드 NLE에서 직접 편집이 가능하다. FieldPack 비해서는 이동성이나 충격내성 등에 있어서는 다소 부족함이 있다.Editcam의 FieldPack2는 영상과 데이터를 운용하는 매체의 특성상 SCSI, IDE 그리고 High-Speed USB와 같은 인터페이스를 통해 보다 빠른 접속속도와 편집장비와의 호환성을 가지고 있다. 방송환경의 특성을 감안한 충격방지장치와 경량화된 사이즈로 개발되었다. 또한 FieldPack2는 하드디스크 뿐만 아니라, 플래시메모리와 같은 매체의 사용도 가능하며 경제성을 고려한 선택의 폭을 넓히고 있다.(3) Optical Disc(광 디스크)블루레이 기반의 광 디스크 미디어에 MPEG2 LONG GOP CODEC을 수록하는 방식으로 Sony사에서 채택하고 있는 포맷이다. 2003년 기존 VCR에 MXF출력이 가능한 e-VTR을 출시하여 MXF에 대한 지원을 하기 시작하여 2004년 광디스크 기반의 XDCAM을 출시하였다. 기가비트 이더넷, I.LINK 인터페이스를 지원하고 있으며, NPEG-2/DVCAM으로 압축된 MXF파일을 지원한다. 프록시 데이터는 MPEG-4형태로 생성이 되며, 아비드, 애플 등의 편집기에서 직접 XDCAM파일 전송이 가능하다.PDZ-1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PC로의 클립전송 및 활용이 손쉽게 가능하다. 저해상도 데이터와 EDL 등의 관리가 가능하며 고해상도 및 프락시 다운로딩, 프리뷰, 그리고 스토리보드 기능이 지원된다. 포맷의 기록매체는 프로페셔널 디스크로 최고 50GB의 용량이 제공되어 50Mbps기준 약 90분의 기록이 가능하다. 매체의 보증 수명은 약 50년이며 1000번 이상의 Re-writing이 가능하다. 듀얼 옵티컬 헤드 사용으로 파일 전송률이 최고 252Mbps까지 확대될 계획이다.XDCAM의 경우는 블루레이 방식의 광 저장 매체를 사용한다. 블루레이는 기존 DVD 등에 사용되는 적색 레이저 기술과는 달리 청색 레이저를 사용하여 더욱 정밀하게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으며, 단층만으로도 최고 25Gbps의 기록용량을 가지고 있어 차세대 대용량 있다.
강좌명: 교수명: 교수님 제출일: 2000년0월00일(수) 국어국문학과 00000000 ooo현행 한글 맞춤법의 몇 가지 문제점― 한글의 표음성과 형태론적 맞춤법의 문제 ―Ⅰ. 서론한글로써 우리말을 적는 규범이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 으로 만들어진 이후 7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다른 사회적인 변화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그 동안 이러한 변화에 맞춤법의 부분적인 개정이 있었다. 몇 번의 과정을 거쳐 확정된 맞춤법은 1989년 1월 19일 ‘한글 맞춤법’ 으로 '문교부 고시 제88-1호'로 공포되었는데, 그 부칙에 따라 1989년 3월 1일부터 시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1998년 6월 즈음해서 현행 ‘한글 맞춤법’ 과 ‘표준어 규정’ 에 대한 개정 시안이 고시되었다. 그러나 10년 정도 지난 이 시점에, 다듬고 고쳐야 할 부분이 조금씩 발견되고 있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국어 규범으로서의 표준어와 맞춤법이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말이 된다.한글은 우리말의 발음을 거의 완벽하게 표기할 수 있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음성언어의 문자언어로의 표음성이 강한 문자였다. 하지만 구한말 제정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우리말 발음을 완벽하게 표기할 수 있었던 것을 버리고, 형태론적 맞춤법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한글의 뛰어난 표음성을 버리게 되면서 한글은 맞춤법에서 약간의 문제점들이 발견되고 있다. 지금부터 몇 가지 예를 보면서 알아보도록 하자.Ⅱ. 본론1. 발음과 표기의 불일치 문제점 및 예시, 해결방안제8항 '계, 례, 몌, 폐, 혜'의 'ㅖ'는 'ㅔ'로 소리나는 경우가 있더라도 'ㅖ'로 적는다. (ㄱ을 취하고, ㄴ을 버림).ㄱ ㄴ ㄱ ㄴ계수 게수 혜택 헤택사례 사레 계집 게집연몌 연메 핑계 핑게다만, 다음 말은 본음대로 적는다.게송(偈頌) 게시판(揭示板) 휴게실(休憩室)제8항은 소리와 표기와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본 항의 '계수, 사례, 연몌, 폐품'은 현실발음과 차이가 있다. 이중모음을 가진 한자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발음으로는 단모음으로 실현된다. 그러나 표기를 '게, 예, 메, 페' 등으로 적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기의 역사성과 독서 능률을 올리기 위해서 '계, 례, 몌, 폐'로 표기함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단서 규정에 '게송, 게시판 휴게실' 등의 '게'를 본음대로 적는다고 하였는데, 이 '揭, 偈, 憩'의 본음은 '계'이며 본음대로 적게 되면 '계송, 계시판, 휴계실'로 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본음대로 적어서는 안 된다.제11항 한자음 '랴, 려, 례, 료, 류, 리'가 단어의 첫머리에 올 적에는 두음 법칙을 따라 '야, 여, 예, 요, 유, 이'로 적는다.(ㄱ을 취하고 ㄴ을 버림.)ㄱ ㄴ ㄱ ㄴ양심(良心) 량심 용궁(龍宮) 룡궁역사(歷史) 력사 유행(流行) 류행예의(禮儀 례의 이발(理髮) 리발다만, 다음과 같은 의존 명사는 본음대로 적는다.리(里) : 몇 리냐?리(理) : 그럴 리가 없다.[붙임 1] 단어의 첫머리 이외의 경우에는 본음대로 적는다.개량(改良) 선량(善良) 수력(水力) 협력(協力)사례(謝禮) 혼례(婚禮) 와룡(臥龍) 쌍룡(雙龍)하류(下流) 급류(急流) 도리(道理) 진리(眞理)다만, 모음이나 'ㄴ' 받침 뒤에 이어지는 '렬', '률'은 '열', '율'로 적는다. (ㄱ을 취하고 ㄴ을 버림.)ㄱ ㄴ ㄱ ㄴ나열(羅列) 나렬 분열(分裂) 분렬치열(齒列) 치렬 선열(先烈) 선렬비열(卑劣) 비렬 진열(陳列) 진렬규율(規律) 규률 선율(旋律) 선률비율(比率) 비률 전율(戰慄) 전률실패율(失敗率) 실패률 백분율(百分率) 백분률[붙임2〕외자로 된 이름을 성에 붙여 쓸 경우에도 본음대로 적을 수 있다.신립(申砬) 최린(崔麟) 채륜(蔡倫) 하륜(河崙)[붙임3] 준말에서 본음으로 소리나는 것은 본음대로 적는다.국련(국제 연합) 대한교련(대한 교육연합회)〔붙임4〕접두사처럼 쓰이는 한자가 붙어서 된 말이나 합성어에서 뒷말의 첫소리가 'ㄴ' 또는 'ㄹ' 소리도 나더라도 두음법칙에 따라 적는다.〔붙임5〕둘 이상의 단어로 이루어진 고유명사를 붙여 쓰는 경우나 십진법에 따라 쓰는 수(數)도 [붙임4]에 준하여 적는다.서울여관, 신흥이발관, 육천육백육십육이 규정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첫째, 이 규정자체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붙임4〕에서 제시했던 것처럼 이름도 단어가 되므로 성과 이름을 붙여서 쓰면 두음법칙이 적용되지만 그러나 외자로 된 이름의 경우에는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관행을 중요시 한 것이다. 즉, 이름을 붙여 쓸 때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는 관용화된 경우와 실제로 'ㄹ'발음이 되는 이름일 경우이다. 이런 경우라면 굳이 외자로 된 이름이 아니더라도 본음대로 적을 수 있다. 결국 외자로 된 이름이라는 단서를 설정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이 항목은 “이름을 성에 붙여 쓸 경우 관용적으로 본음대로 발음하는 경우에는 본음대로 적을 수 있다”라고 고쳐야 한다.그리고, 제11항을 기준으로 보면 그〔붙임1〕인 “단어의 첫머리 이외의 경우에는 본음대로 적는다.”에 해당되는 것들이, 제10, 12항에도 똑같이〔붙임1〕로 나열되어 있다. 그러나 제11항의〔붙임2〕에 해당되는 내용이 다른 항들에는 없다. 요컨대 제10항에도 위의 내용에 해당되는 예들이 있을 수 있다. 김녕(金寧), 김뉴(金紐) 또 제12항에도 같은 식으로 김로(金魯), 이래(李來), 하락(河洛) 등이 해당될 수 있다.또, 제11항의〔붙임3〕에 해당되는 조목이 역시 다른 항들에는 없다. 이것도 제10항에 만약 '전녀총(전국여성단체총연합회)'이나, 제12항에 혹시 '세로총(세계노인회총연맹)'이 있다면, 역시 설정될 수 있는 세목이다. 그 다음 제11항의〔붙임4〕"접두사처럼 쓰이는 한자가 붙어서 된 말이나 합성어에서 뒷말의 첫 소리가 'ㄴ'또는 'ㄹ'소리도 나더라도 두음법칙에 따라 적는다"는 내용으로서, 제10항의〔붙임2〕, 제12항의〔붙임2〕에 각기 해당되므로 균형을 이루었다. 그러나 제11항의〔붙임5]가 제10항에는〔붙임3]으로 설정되어 있는 반면, 제 12항에는 자취가 없다. 제12항에도 이와 같은 조목이 설정될 수도 있다. 가령 '대한노인회', '전국노조연합' 같은 예가 이에 해당될 것이기 때문이다.제51항 부사의 끝음절이 분명히 '이'로만 나는 것은 '-이'로 적고, '히'로만나거나 '이'나 '히'로 나는 것은 '히-'로 적는다.1. '이'로만 나는 것가붓이 깨끗이 나붓이 느긋이 둥긋이따뜻이 반듯이 버젓이 산뜻이 의젓이가까이 고이 날카로이 대수로이 번거로이많이 적이 헛되이겹겹이 번번이 일일이 집집이 틈틈이2. '히'로만 나는 것극히 급히 딱히 속히 작히 족히특히 엄격히 정확히3. '이, 히'로 나는 것솔직히 가만히 간편히 나른히 무단히각별히 소홀히 슬슬히 정결히과감히 꼼꼼히 심히 열심히급급히 답답히 섭섭히공평히 능히 당당히 분명히 상당히 조용히간소히 고요히 도저히맞춤법의 규정이 형태론적 기준에 의하지 않고 다분히 화자들의 발음에 근거한 것은 '이'와 '히'를 구별 하여 적을 수 있는 분명한 형태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한글 맞춤법에서는 발음에 따라 적도록 하고 있는데 문제는 개인의 발음에도 차이가 있어 자신의 발음을 근거로 '이'나 '히'를 붙일 수 없다는 점입니다. 흔히 '-하다'를 붙여 말이 되면 '-히'를 붙인다고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보기들이 많습니다. '깨끗이(깨끗하다), 의젓이(의젓하다), 빠듯이(빠듯하다), 느긋이(느긋하다) 따위인데, 이들은 모두 어간이 ㅅ으로 끝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다'가 붙을 수 있는 말 가운데 어간이 'ㅅ'으로 끝나는 것은 모두 '-이'를 붙입니다. 또 '부사' 뒤에도 '이'가 붙습니다. '가득+이 - 가득이, 일찍+이 - 일찍이, 생긋+이 - 생긋이' 따위입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제51항 부사의 끝음절이 분명히 '이'로만 나는 것은 '-이'로 적고, '히'로만 나거나 '이'나 '히'로 나는 것은 '히-'로 적는다.’ 는 발음상의 분류법으로만 ‘이’와 ‘히’를 구별할 것이 아니라, 표기상의 차이점도 짚고 넘어가야한다. 때문에 ‘제51항’은 “'-하다'가 붙을 수 있는 말 가운데 어간이 'ㅅ'으로 끝나는 것은 모두 '-이'를 붙인다.”라는 조항을 추가해야만 한다.
- 한국의 문자 -“한문에서 훈민정음까지”국어국문학과 0학번Ⅰ. 서론대부분의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이름 아래 살면서도 우리의 글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다. 한국의 문자에 대해서 누군가 묻는다면 그냥 막연하게 “한글!” 이라고만 대답하고 더 이상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반성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본인은 한국의 문자라는 주제를 선택했고 많은 공부를 하였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방대한 양의 자료들이 있었다. 우리 민족 문자생활의 시작인 한자 차용에서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쓰고 있는 훈민정음까지 많은 문자의 변화가 있었다.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Ⅱ. 본론1. 한자(漢字)의 전래우리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한자를 빌려서 문자생활을 해왔다. 정확히 언제부터 한자를 쓰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 기원전 3세기경부터는 한자가 전래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기원전 7세기경에 건립된 고조선은 중국과 지리적으로 접촉하고 있어서 한문화와의 교류가 일찍부터 활발했었다. 고조선이 제(齊)나라, 연(燕)나라, 한(漢)나라와도 무역을 하였다는 것은 조선 반도의 서북부지역에서 발굴되는 연나라 화폐 명도전(明刀錢)이 명확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이러한 무역 과정에서 중국인들로부터 한자가 미약하게 유입되었을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유입이 시작된 것은 한사군(漢四郡)이 설치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기원전 108년 한(漢)나라의 무제(武帝)가 위만조선(衛滿朝鮮)을 멸망시키고 낙랑, 진번, 현토, 임둔에 한사군을 설치하여 통치하였다. 그래서 조선이 한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문자인 한자의 유입도 시작되었을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2. 한자의 음훈(音訓)차용(借用) 표기우리나라는 일찍부터 한자를 받아들여서 써왔다. 하지만 얼마 후에는 한자를 그대로 옮겨다 조선말을 쓸 수가 없었고 한문으로 쓰면 문자와 말이 맞지 않는 불편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불편을 느끼면서 조선어는 음성형태(音聲形찬(大阿?), 아찬(阿?), 일길찬(一吉?), 사찬(沙?), 급벌찬(汲伐?), 대나마(大奈麻), 나마(奈麻), 대사(大舍), 소사(小舍), 길사(吉士), 대오(大烏), 소오(小烏), 조위(造位)인명 : 주몽(侏夢), 유리(瑠璃), 온조(溫祚)지명 : 신라의 국명(國名) - 서라벌(徐羅伐), 서벌(徐伐)신라 尙州의 고명(古名) - 사벌(沙伐)그리고 얼마 후 한자의 음만으로는 조선말의 고유명사를 표기하는데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한자의 뜻을 이용하여 조선말을 읽는 법을 창안하였다. 훈차 표기법은 음차만으로는 도저히 표기할 수 없는 조선말들을 표기할 수 있게 하였고, 음만 고려하기 때문에 하나의 명사를 여러 개의 한자로 표기하는 데서 오는 혼란을 극복하게 하였다. 훈차의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 있다.하곡면의 사포(絲布)라는 지명은 예전에 ‘絲’가 ‘실’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에서 ‘실포’라고 불리게 되었다. 또, 소나(素那)를 ‘金川’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金川’을 뜻으로 읽으면 ‘쇠내’가 되는데 결국 ‘소나’와 비슷한 음으로 발음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大田’이라고 표기하고 이를 ‘한밭’이라고 읽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이와 같이 우리 선조들은 한자를 빌어서 조선말을 표기할 때 한자의 뜻으로 읽는 훈차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훈차는 음차와 함께 쓰이며 음훈차 표기법으로 발전하였다.음훈차 표기법은 매우 왕성하게 사용되었던 표기법이다. 음훈차 표기법은 초기에 고유어만을 문자로 표기하던 것에서 점차 발전하여 관명, 인명, 지명뿐만 아니라 문장을 표현하는 단계까지 발전해갔다. 이두(吏讀)가 나오기 전의 시대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한자차용법의 발전이다. 음훈차 표기법은 처음으로 고유 조선말을 문자로 표기하였고, 조선말의 음성형태, 어음체계, 음절과 어순 그리고 문법적 특성에 맞게 표기하려고 시도하였다. 많이 모자란 점이 있긴 하지만 조선말의 특성을 어느 정도 표현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3. 향찰(鄕札) 체 표기향찰이란 조선어 문장 전체용하는 표기법이다. 이러한 복잡한 체계 때문에 아직까지 해독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4. 이두(吏讀) 체 표기이두는 설총이 만들었다고 중학교 때 배운 기억이 난다. 하지만 설총의 이두 제작 설은 이두가 설총 이전에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오류가 생긴다. 이두는 신라장적(新羅帳籍)에도 사용된 것으로 봐서 매우 일찍부터 사용되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이두는 7세기부터 성립되었다. 그 후 이두는 훈민정음 창제 이전까지 조선어 표기수단이었고,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도 19세기 말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이두란 한자를 국어의 문장 구성법에 따라 나열하고 여기에 형식적 형태소인 조사와 어미를 한자를 빌려 표기한 우리말 표기법이다. 한자를 우리말 어순에 따라 나열했던 서기체(書記體) 표기에 문법 형태소를 첨가함으로써 보다 문맥을 분명하게 한 것이다. (김미형(2005) 우리말의 어제와 오늘) 이두 체는 처음의 음훈차 표기법 단계에서 서기체 단계를 거쳐서 도달한 조선어의 형태적 요소가 첨가된 단계이다. 옛 문헌 기록들이 부족해서 자세한 발전과정을 알 수는 없으나 단편적인 기록들을 봤을 때, 상당한 변화와 개진을 함으로써 더욱더 완전한 표기를 이루어내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한자를 차용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언어생활을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 한자가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생활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한자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내었다. 그래서 문헌 기록이 부족할 경우, 몇몇 글자는 음만 남아있고 뜻이 남아있지 않아서 뜻을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또 음이 남아있지 않고 뜻만 알고 있는 것들도 있다. 일부는 한자의 원래 뜻, 음과 상관없이 새로운 뜻, 음으로 고쳐서 쓰는 것들도 있다. 그리고 한자의 음은 고치지 않고 뜻만 고쳐서 쓰는 경우도 많다. 이와 같은 경우를 봤을 때 우리 선조들은 상당한 창조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5. 구결(口訣) 체 표기구결이란 ‘입겾’의 한자 차용어로, 한문을 읽을 때 이해하기 고 매우 우수한 문자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져야하고 더불어 한글에 관한 풍부한 지식도 갖출 필요가 있다.(1) 창제 동기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동기는 백성을 교화(敎化)시키기 위해서이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단어 뜻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세종은 일반 백성들이 글을 익혀 널리 쓰이도록 하기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이것이 직접적인 이유이고 또 다른 이유들도 있다.첫째로, 조선말을 쉽게 표기할 수 있고 일반 백성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이기 때문이다. 서의 머리글에서는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뜻이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불쌍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로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하는 따름이다.” 라고 하였다. 이처럼 훈민정음은 백성들이 쉽게 익히고 편하게 쓰도록 하기위해서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학자들과 관리들과 같은 지배층들도 편하게 익혀 쓰도록 하기위해 만들었다.둘째로, 이두 표기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함이다. 이두 표기법은 우선 표기법의 어려움과 복잡함 그리고 표기 후의 해석단계에서의 혼란함 때문에 많은 곤란을 겪었다. 또한 한자를 차용해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말의 구미에 맞는 완전한 문자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것들을 극복하게 해준 것이 훈민정음이다.셋째로, 우리 민족의 문자를 소유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중국의 문자인 한자를 들여와 우리말을 표기해왔다. 그래서 의사소통을 함에 있어서 쉽게 하지 못하고 막힘이 많았다. 이를 인지하고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시니 비로소 우리 민족의 문자를 갖게 되었고, 더불어 민족적 자주 의식까지 가지게 되었다.(2) 창제 반대 의견훈민정음은 창제 당시에 일부 학자들의 반대에 부딪치기도 했다. 집현전의 학자였던 최 만리와 몇몇 학자들은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하였다. 1444년 2월 그들은 반대 상소문(上疏文)을였다. 조선시대 때는 세 가지 계층이 있었는데 양반 계층, 서리(胥吏) 계층, 우민(愚民) 계층으로 나눠져 있었다. 여기서 이계층 문자론이란 양반 계층은 한자를 쓰고, 서리 계층은 이두를 쓴다. 하지만 우민 계층은 문자가 필요 없다는 이론이다. 최 만리와 일부 학자들은 양반들만이 정치, 문학, 일상생활에서 글자를 필요로 하고 한자를 쓰는 계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리 계층은 관리로서 행정문서나 관용문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이두를 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민 계층은 일을 하고 놀고, 먹기만 하면 되는 계층으로 글자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훈민정음의 불필요성을 주장했고, 오히려 훈민정음은 한문 학습에 무익하고 손해를 준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두를 쓰는 것은 한문을 흥하게 하므로 도움이 되지만, 훈민정음을 쓰는 것은 한문을 소홀히 하게 되므로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반대파들은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에 강하게 반발했으며 심지어 세종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은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는데 시간을 허비하면서 국사(國事)를 등한시하고 성인(聖人)의 학문인 한문에 힘쓰지 않는다고 힐난하였다. 그리고 훈민정음을 창제함에 있어서 재상과 대신들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급하게 반포하려한 점을 강하게 비난하였다. 당시 지배층의 보수 세력 사이에서는 훈민정음 창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사대주의에 어긋나는 행위로만 바라보았다.(3) 훈민정음 창제 의의(意義)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는 우리 민족의 문자 생활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훈민정음 창제로 인해서 우리 민족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문자 생활에서 훌륭한 도구를 얻었다.첫째로, 훈민정음은 오랜 기간동안 한자와 우리말이 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겪는 불편을 해소해주었다. 한자로는 표기할 수 없던 우리말 음성(音聲)구조에 맞는 문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삼국시대부터 겪어온 문자와 말의 불일치는 훈민정음의 창제로 인해 시원하게 해결되었다.둘째로, 훈민정음의 창제는 우민 계층들의 빛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