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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복신앙의 폐단 - 발표최종본
    리포트기복신앙의 폐단에 관한 연구과 목 명:선교와 문화학 과:목회학석사과정 3-3학 번:이 름:제 출 일:담당교수:목 차Ⅰ. 서 론1. 연구 목적 .............. 12. 연구의 방법 및 범위 ............ 2Ⅱ. 본 론1. 기복주의가 기독교에 끼친 폐단 ........... 31) 기복주의가 개인의 신앙 형성에 미친 영향 .. 3(1) 욕구 충족의 수단으로서의 신 ............... 3(2) 두려움에 근거한 신관 ............ 4(3) 개인주의(이기주의) 42) 기복주의로 인해 생긴 잘못된 물질(헌금과 과련)관 ...... 5(통해 샤머니즘이 한국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로 인해서 한국교회의 신앙이 어떻게 변하였는지, 앞으로는 우리가 어떻게 변화를 꾀하여 기독교의 본질을 신앙의 본질을 지켜가야 할 지에 대한 방향을 알아보고자 한다.2. 연구 방법 및 범위한국교회 내에는 샤머니즘이 우리의 예상보다 많은 부분에 심각한 형태에까지 침입해 있다. 이 샤머니즘이 교회 내에 들어와서 한국교회의 신앙과 결합함으로 인하여 신앙의 본질이 변하게 되었고, 그 영향은 일반 성도들에게 뿐 아니라 목회자들에게까지 이르게 되었다.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샤머니즘(이하 기복신앙)에 대하여 전반적인 범위를 다루기보다는 우리 기독교 내에서 가장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개인의 신앙(특히 기도), 헌금, 목회자들의 설교,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하여 그러한 부분에 나타나는 폐단과 대책에 관하여 중점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 론1. 기복주의가 기독교에 끼친 폐단1) 기복주의가 개인의 신앙 형성에 미친 영향한국 기복신앙에 있어서 가장 모호한 것은 최고신의 개념이다. 기복신앙은 원래 다신론이지만 한국인은 전체의 영계(靈界)를 지배하는 최고신이 있다는 막연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 최고신을 한국인은 하늘님 또는 하느님이라고 불러왔다. 이 하느님이 우주를 지배하는 최고신이며 하느님이 비도 주고 수확도 준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최고신은 다신을 초월한 최고신이 아니라 다신 가운데 있는 일신이며, 일상적이기도 하나 다신을 통솔하는 일신이 아니요, 일신이 변화하는 다신이다.한국 초기 선교에 선교사들은 성서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명확하게 샤머니즘의 하느님과 구분시켜 한국인에게 인식시키지 못하였다. 게일(Gale)이나 클(C.A.Clark)은 하나님을 ‘한 큰 분’(The one great one)이라고 보았다.기복신앙의 하나님을 그대로 기독교의 신으로 대치시킴으로 포교과정에서는 접근이 용이했으나 기독교의 신관과 샤머니즘의 신관이 혼합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초기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조차 이 두 신관의 차이점을 명확특별헌금이라는 명목으로 다양한 감사헌금이 있으며, 부활절ㆍ맥추감사절ㆍ추수감사절ㆍ성탄절 등의 절기헌금이 있다. 이와 함께 선교헌금, 건축헌금, 구제헌금, 일천번제헌금 등 수십 가지의 헌금 봉투가 예배당 안에 구비돼 있다.문제는 이러한 헌금에 언제나 ‘복’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붙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복신앙이다. 마치 복채를 내듯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더 많은 복을 얻기 위해 헌금을 드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십일조가 아닌 십이조, 십삼조 이상을 드리는 등 헌금을 더 많이 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더 많이 받게 된다”는 목회자들의 설교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는 감사의 결과인 헌금을 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과 같다.특히 ‘일천번제 헌금’에 대한 문제도 심각하다. 일천번제 헌금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굳이 찾는다면 열왕기상 3장 4절을 들 수 있다.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일천 번제(燔祭)의 번은 태울 번으로써 숫자적 개념의 수를 의미하지 않는다.즉, 본문의 말씀은 일천의 제물을 불로 태워 드리는 제사였다. 솔로몬은 소 천 마리를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일천번제(一千燔祭)를 일천번제(一千番祭)로 해석하고 있다. 즉, ‘불’을 ‘셈’으로 바꿔 왜곡시켜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3) 기복주의로 변질되는 교회(설교와 기도회)한국 교회의 신앙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보다 정화되는 방향으로 성장하기는커녕 기복신앙 쪽으로 더 왕성해져 온 것이 문제이다. 그것이 언제부터 어떤 요인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까?한국 교회 내에 기복신앙이 두드러지게 된 것은 아마도 1960년대부터인 것 같다. 온 나라가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잘 살아보세” 구호를 외치며 경제 성장을 이룩하자고 할 때였다. 교회 일각에서 “적극적인 사고”라느니 “삼박자 축복” 등을 내용으로 설교하는 교회가 크게 성장을 하면서 그러한 주제의 설교가 온 한국 교회에복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던 우리들(나)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을 베푸신 그 구속의 은혜와 그 크신 사랑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감사하며, 또 다시 죄에 몸담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고 기도하며 날마다 성화되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함인 것이다.물론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성경도 하나님을 복을 주시는 분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창 12:2).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는 것이 복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도 복이라면 신앙인으로서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현재 한국 교회 안에서 ‘기복신앙’이 문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복의 근원인 하나님보다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에서 파생되고, 자신에게만 유익이 되는 복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즉, 성경이 말하는 신앙의 본질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기복신앙의 본질은 ‘복을 사랑하는 것’이다. 물론 성경에서도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복이 등장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족장들의 경우 자손 번성의 복을 받았다. 토지소산의 증가, 가축의 번식 등으로 부유한 삶을 누렸다. 마찬가지로 무속신앙도 물질적인 복을 추구한다. 이런 점에서 성경적인 복과 무속신앙의 복은 차이점이 없다.그러나 기복신앙과 성경이 말하는 복 개념의 차이점은 구원의 유무이다. 성경적 복은 구원을 전제로 하고 있다. 또한 기복신앙은 구원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내세적이거나 윤리적인 면이 있을 수 없다. 반면, 기독교의 복은 윤리적이다. 예수님 또한 현세적 부귀영화의 재물 획득보다 내세를 향한 현세의 고난을 통해 절대적인 윤리를 강조했다.주술적 개념에서도 분명한 차이가 난다. 무속신앙에서는 복을 주는 신을 부를 때 주문을 외운다. 이때 주문은 복을 받는 수단이 된다. 하지만 성경적 복은 어떤 주문을 외우거나 술법을 행하지 않는다. 무속인처럼 인위적으로 대입시키는 것 등이다.(3) 즐거이 드리라‘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남녀마다……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 이러하였더라’‘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을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께 즐거운 마음으로 헌물을 하려면 자원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타의나 압력이나 독촉에 의한 헌물이라면 즐거운 마음이 생길 수 없을 것이다.(4) 복을 주신 대로 드리라‘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드리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으로서 우리들에게 먼저 복을 내려 주시고 그 다음 받은 복에 따라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을 익히게 하신다. 그래서 우리들로 하여금 늘 후히 주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닮게 하시는 것이다. 경배자의 헌물 행위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는 사실과 받은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시인하는 매우 실제적인 믿음 생활의 한 훈련이다.성경에서 말하는 헌금이 어떠한 것인지를 살펴보았다. 헌금은 사실상 돈에 대한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삶에 대한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헌금은 곧 헌신의 표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헌신은 아무렇게나 행해질 수 없다. 우리의 헌신이 참다우려면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를 체험한 자들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헌금이 지닌 헌신의 의미를 깨닫고 율법적이거나 형식적인 헌금 행위를 삼가게 된다.하나님은 만물의 주인 되심과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인문/어학| 2019.12.31| 25페이지| 1,000원| 조회(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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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브리시가문학
    히브리 시가 문학시편 8편 발제1. 들어가는 말찬송가로도 존재하는 시편 8편은 우리에게 익숙한 시이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하나님께서 만든 이 세상,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복하면서 동시에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인간을 사랑하사 우리로 하여금 저 자연을 다스리게 하신 것에 감사하며 찬양한다. 거리를 환하게 물들이는 단풍들이 절경을 이루고, 쌀쌀한 가을바람이 파란하늘과 더불어 향연을 이루는 깊어가는 가을날, 시편 8편을 이해하고 비평해 봄과 동시에 하나님의 뜻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의미 깊은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2. 본문NIVNASB1. For the director of music. According to gittith. A psalm of David. O LORD, our Lord, how majestic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 You have set your glory above the heavens.2.From the lips of children and infants you have ordained praise because of your enemies, to silence the foe and the avenger.3.When I consider your heavens, the work of your fingers, the moon and the stars, which you have set in place,4.what is man that you are mindful of him, the son of man that you care for him?5.You made him a little lower than the heavenly beings and crowned him with glory and honor.6.You made him ruler over the works of your hands; you put everything under his feet:7.all flocks and herd the enemy and the revengeful cease.3.When I consider Thy heavens, the work of Thy fingers, The moon and the stars, which Thou hast ordained;4.What is man, that Thou dost take thought of him? And the son of man, that Thou dost care for him?5.Yet Thou hast made him a little lower than God, And dost crown him with glory and majesty!6.Thou dost make him to rule over the works of Thy hands; Thou hast put all things under his feet,7.All sheep and oxen, And also the beasts of the field,8.The birds of the heavens, and the fish of the sea, Whatever passes through the paths of the seas.9.O LORD, our Lord, How majestic is Thy name in all the earth!위의 표와 같이 NIV 성경과 NASB 성경은 해석상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와 히브리어 원어 성경을 비교 대조한 결과, 본고에서 주석할 해석은 다음과 같다.다윗의 시,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노래.1.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위에 두셨나이다.2.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권능을 세우시니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심리니이다.3.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4.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저를 돌보시나이까5.저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은 시절에 지었거나, 그 이후 그 시절을 회상하며 지었을 것으로 보인다.그렇다면 과연 ‘깃딧’이란 무엇인가? 깃딧의 의미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문맥상 연결되어 있는 영장의 의미가 성가대에서 지휘자라는 점을 가만할 때, 지휘자에게 일러주기 위한 연주방식을 규정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다시 악기의 일종인 ‘기티트 수금’을 가르키거나, 악조 혹은 악곡을 가르키거나, 아니면 일종의 축제 혹은 의식을 가르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본 시가 연주 지휘자의 인도를 받아 연주된 제의 음악 이었음을 역시 알 수 있다.4. 양식비평시편 8편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찬양의 노래”다. 그러나 좀더 정확하게는 ‘창조의 시’로 분류될 수도 있다. 또 이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를 노래한다는 점에서 감사 예배시로 분류되며 성전예배나 장막절과 같은 절기에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는 찬양으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또 이 시에서 복수형의 말 ‘우리’와 단수형의 말 ‘저’가 번갈아가면서 사용된 데에서 예배라는 맹락에 아주 잘 어울렸을 듯 하다. 또한 신약에서 히브리어 기자가 본시의 내용을 메시야 사역과 연관시킨다는 점에서 (히2:6-9)메시야 예언시로서의 성격도 지닌다. 이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찬송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며, 태초에 이루신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메시야를 통한 인간 구원과 그로인한 재창조의 역사와 긴밀한 관련을 지닌다는 점에 기인한 것이다.5.문학비평이시에서 운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요소는 수미상관과 압운이 있다. 먼저 이시는 1절과 9절을 모두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는 구절을 사용하면서 시의 시작과 끝은 동일하게 하는 수미상관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는 시편을 비롯한 많은 고대시가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수사법을 통해 본시는 안정성을 획득하고 반복을 통한 운율을 형성한다.압운이란 둘 혹은 그 이상의 시행의 끝부분이 똑같은 소리를 가질 때를 일컫는 말으로 4절의 ‘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B'.사람의 다스림6절-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7절-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8절-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A'. 하나님의 아름다우신 이름 찬양9절-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7.내용연구①1절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위에 두셨나이다.이 시는 여호와를 주로 고백하여 부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우리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도나이’는 다스리가 통치하다라는 의미의 인 ‘아돈’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이 명칭은 하나남은 모든사람이 섬겨야 할 우주의 주인이심을 부각시킨다. 특히 다윗은 그분을 ‘나의 주여’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 주여’라고 말함으로써 모든 인간이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다음에 살펴볼 것은 ‘주의 이름’인데 이는 여호와 자신과 그분 자신의 계시를 나타낸다. 즉 하나님 자신과 창조를 통해 나타내 보이신 그의 계시는 온 땅에 편만해 있고 하늘을 초월해 있어서 이 땅의 모든 피조물들이 모른 체 할 수 없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아울러,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란 표현은 시인이 하나님이 만드신 궁창의 해와 달, 그리고 하늘에 운행하는 모든 별들을 보고 그 모든 것 위에 새겨진 하나님의 영광을 찬탄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안아 천지창조를 연상시키는듯한 표현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한다는 점에서 이는 천지 창조가 기록된 창세기 제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창조 선언에 대한 인간의 화답시라고 할 수 있다.②2절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권능을 세우시니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심리니이다.여기서는 ‘어린아이와 젖먹이’와 다른 편의 ‘원수와 반역자’사이에 대조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 대조되는 무리 사이에 하나님이 계신다. 여기서 주의 대적에 해당하는 ‘초레레카’는 사방뚜렷하던지 아직 엄마 품에서 젖을 빨고 있는 젖먹이 가지도 하나님의 원수들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의미도 가진다.③3절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흔히 ‘하나님의 손’은 성서에 자주 언급되어 있지만 “손가락” 혹은 “손가락들”이라는 언급은 희미하다. 이는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인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여 진다.하나님과 비교할 때 하늘은 아주 왜소하다. 하나님이 그의 손가락으로 주물러서 그 형태를 만드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하늘은 인간에게 광대하며 인간이 올려다보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과 비교할 때 인간은 아주 왜소하며 그 하늘을 손가락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위상은 다시 한번 드높아진다.한편, 창세기 1장 기사에 의하면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명령, 곧 말씀에 따라 창조된 것으로 보도된다. 즉 하나님은 무한하신 권능과 위엄으로 말씀하셨고 그 말씀의 역사로 인해 만물이 조성된 것이다. 그럼에도 본시가 천지 만물이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지어졌다고 노래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얼마나 섬세하게 이루어졌는지를 나타내기 위한 시적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즉, 이시의 저자는 어느날 밤 하늘에 떠있는 별과 달을 우러러보다가 ,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미천하기 짝이 없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큰 은총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와 감격에 복받쳐 찬양하고 있는것이다. 여기서 ‘본다’라는 단어로 ‘에르에’가 쓰였는데 이는 미완료형으로 동작이 완료되지 않고 계속하여 보고 있음을 나타낸다.④4절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이 절에서 사용된 상반절과 하반절은 히브리 시에서 자주 사용되는 전형적인 동의 대구 구절이다. 즉 ‘사람이 무엇이관대’와 ‘인자가 무엇이관대’가 서로 대응되고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가 대응된다. 즉, 수사의문문을 2회 반복하여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깊은 관심을 감동적으로 노래하는 것이다.여기서 .
    인문/어학| 2019.12.06| 7페이지| 1,000원| 조회(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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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론 평가A+최고예요
    - 목 차 -제 1 장 서론1. 연구의 동기 및 목적제 2 장 에스겔서의 역사적 배경제 3 장 에스겔서의 구조1. 에스겔서 구조 이해에 관한 제 견해들2. 에스겔서 구조를 2단계로 나눈 이유제 4 장 결론참고문헌(Bibliography)제 1 장 서론1. 연구의 동기 및 목적논자는 에스겔서를 읽으면서 에스겔이 유다의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메시지를 전하는 에스겔에게 많은 고난을 준 것을 성경에서 읽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자기 나라, 자기 백성 유다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도구로 사용된 에스겔 개인에게 유다 민족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겪게 될 고통을 에스겔은 선포하였다.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심판이 주는 하나님의 고통도 에스겔은 당하게 된다. 이를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의 도구는 단순히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개인이나 민족에게 단순히 심판에 관한 선포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아픔을 느끼는 심령과 환경을 가지며 전하는 자로 하여금 경험하게 하고 또한 더불어서 그 심판을 주는 하나님 마음의 더 깊은 아픔과 슬픔을 깨달아서 전하는 자의 메시지가 온 인격과 몸을 통하여 정말 실감나게 전하도록 하나님께서 준비시키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논자는 이것을 통하여 선지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간의 온전한 회복된 관계를 이어주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백성에게 임하는 심판을 그와 같은 죄를 짓지않았을지라도 당하는 선지자의 아픔과 고통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연결이 되어진다. 또한 하나님 백성에 대한 심판 뒤의 회복은 에스겔36장 19절에서 24절은 다음과 같다.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여러 나라에 해쳤더니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다. 에스겔이 사역을 시작할 당시 포로 공동체는 고국에서 일어난 사건들로 말미암아 큰 고통을 겪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들의 마음과 모든 기도는 고국의 천지와 친구들 그리고 사랑하는 성전을 향하였다. 에스겔의 메시지는 당시의 유다에 대해서나 성전의 운명과 관련하여 고무적인 내용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메시지는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의 포로 공동체에게는 매우 큰 격려와 희망이 되는 내용이었다.도로시는 에스겔의 시대를 주전 586년 전후로 기간의 폭을 설정했다. 반면 칼빈대의 구약학 김두석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에스겔의 활동시기를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다니엘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제 1차 침공 때 곧 여호야김 왕(18대) 재임시(B.C. 605년경)에 포로로 끌려갔다면 에스겔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제 2차 침공 때인 여호야긴(19대) 왕 재임시(B.C597년경)에 포로로 끌려갔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여러 번에 걸쳐 예루살렘을 침공하고 유다의 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가 바벨론 강가에 두고 집단 포로생활을 하게 했다. 바로 이러한 상황 아래서 여호야긴(19대)왕 때 백성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간 에스겔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긴급하게 하나님의 여러 계시들과 말씀들을 듣고 또 전해야 하는 사명자로 세워졌다. 에스겔은 예레미야와 동시대의 인물로서 예루살렘이 망하기 약 칠 년 전, 그의 나이 삼십 세쯤 되었을 때, 곧 여호야긴 왕이 포로된 지 오 년 째 되는 해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다(B.C. 593-570).김두석 교수는 에스겔의 활동시기를 B.C. 593-570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 의견은 구약 예언서를 비평적인 역사로 다룬 조셉 블레킨숍의 견해를 들어보면 더 명료하게 에스겔의 시대가 김두석 교수와 같음을 알 수 있다.책에서 저자에게로 소급해 가는 일이 지닌 여러 가지 문제점이 에스겔에서는 특히 심각하다. 이 책은 제사장 가문의 에스겔 벤 부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것이라고 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라는 말씀으로 이 말씀의 기준은 에스겔서 1장 2절 말씀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의 시작으로 해서 여호야긴 왕이 스물일곱 해가 되던 때에 마지막 사역이었으므로 B.C 571/570년까지 사역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에스겔은 30세에서 52세 (B.C. 593/592 ~ B.C. 571/570)까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에스겔은 자기 민족 유다가 망할 때의 나이가 액 23/24살 되었을 때다. 그는 한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따라서 그는 엄격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배우고 암송하며 제사장인 아버지 부시가 성전에서 짐승을 잡고 세사를 드리는 일을 보면서 자랐을 것이다. 또한 모세오경을 배우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탁하신 선민의식과 사상으로 택함 받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은혜와 자존감이 어렸을 때부터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 어릴 때의 교육과 사상을 깨버리는 충격을 그는 청년시절에 맞이한다. 그것은 성전이 불타고 하나님의 나라 배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이방나라에 끌려가고 이스라엘 나라는 망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이다.에스겔이 에언 활동을 한 시기는 B.C. 592-570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선지자로 부름 받은 때는 아직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되기(B.C. 586) 약 7년 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때는 이미 바벨론이 B.C. 605년 유브라데 강변의 갈그미스에서 바로 느고가 이끈 애굽을 크게 무찔러 세계의 패권을 쥔 후였고(왕하24:7;렘46:2), 유다도 제 1차 및 제 2차 침략을 당해서 정치, 경제적으로 나라의 중요한 인물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후였습니다(왕하24:1,10-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회개하기는 커녕 더욱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우상 숭배와 부도덕한 행위들을계속했습니다.(2:4;3:7;5:6,7;6:13;9:9;22장; 렘23:10-14) 그리고 유다는 결코 자신들은 멸망하지 않으며(33:2망한 이후 종교개혁의 여파가 지속되지 못했을지라도 그의 사역을 계속했을 것이다. 에스겔 자신은 여호야김 왕시절에 성전의 제사장이 되었거나 최소한 그 시절에 제 사장 훈련을 받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그의 아내는 예루살렘이 황폐화되었을 무렵 죽었던 것 같으나(에스겔24:1,15) 여호야긴이 아멜 마르둑의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왕하25:27; 렘52:31). 전통적으로 그는 일생의 대부분을 바벨론에서 존경받으며 사역하면서 보냈다고 전해 왔다 (에스겔 14:1). 그의 책의 첫 번째 주요 부분(1-24)에서 그는 바벨론의 포로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 가지는 중요성을 해석해주는 냉철한 예언자로 나타난다. 두 번째 부분에는(33-39장) 도덕성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그의 의도와 남은 자들을 영적으로 건강한 공동체로 다시 세우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한 저자는 역사의 무대가 하나님의 계시의 장소임을 나타낸다고 피력하고 한다.히브리 예언자들은 바로 역사의 해석자들이었다. 그들은 역사적 사건을 종교적 의미로 해석하고,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나는 영역으로 보았다.에스겔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것은 역사의 비극적 사건을 통하여 더욱 강조되고 있다. 재삼 전능자의 행위가 근본적으로 자연 가운데 나타난 계시로서 설명되어지지만, 결국 이것은 야훼가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인류에게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예루살렘에 대한 야훼의 진노는 “내 분이 그들에게 다한즉 나 야훼가 열심히 말한 줄을 그들이 알리라”(에스겔5:13)란 구절에서 설명되어진다. 포로생활을 하게 하는 목적도 이스라엘이 나를 야훼인 줄 알게 하는데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그 중 몇 사람을 남겨 칼과 기근과 온역을 벗어나게 하여 그들로 이르는 이방인 중에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자백하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야훼인 줄 알리라(에스겔12:16)그러면서도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심판의 가혹함 가운데 하나님의 귀한 사랑이 나타난다고 한다.논자는 에스겔의 역사적 배경을 연구하는3) 돕의 반격하는 신탁(35:1~15)4) 회복의 날(36:1~38)5) 해골 떼의 환상(37:1~14)6) 두 지팡이의 교훈(37:15~28)7) 곡과 마곡에 대한 예언(38:1~39:29)e. 새로운 땅에 새로운 성전(40:1~48:35)1) 새로운 성전(40:1~43:27)2) 새로운 예배자들(44:1~31)3) 새로운 예배(45:1~46:24)4) 새로운 땅(47:1~48:35)위의 에스겔서의 전체 구조를 통해서 볼 때에 에스겔의 소명뒤에 에스겔의 사역이 뒤따른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에 따른 심판이다. 그리고 나서 열방에 대한 신탁과 회복 그리고 새땅과 새성전, 새로운 예배로 인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마지막 구조에 나타나고 있다. 위의 구조는 5단계로 나누어서 에스겔서를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학자들 중에는 3단계로 나누기도 한다.a.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1-24장)1) 선지자의 부름받음(1-3장)2)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상징적인 행위들(4-5장)3) 이스라엘의 산들에 대한 신탁(6장)4) 종국(7장)5) 예루살렘의 심판에 대한 환상(8-11장)6)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죄에 대한 신탁들(12-24장)가. 두 개의 상징적 행위들(12:1-20)나. 잘 알려진 속담들(12:21-28)다. 거짓 선지자들과 여선지들(13장)라. 우상숭배의 결과들(14장)마. 포도나무 비유(15장)바. 어린 아이와 창녀로서의 예루살렘(16장)사. 두 마리의 독수리의 비유(17장)아. 개인적인 책임(18장)자. 이스라엘의 왕들에 대한 애가 알레고리(19장)차. 나라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재고(20장)카. 하나님의 칼로서의 바벨론(21장)타. 예루살렘의 죄들(22장)파. 두 자매의 비유(23장)하. 가마솥(24:1-14)갸. 에스겔의 아내의 죽음(24:15-27)b. 이방 나라들에 대한 신탁들(25-32장)1) 암몬(25:1-7)2) 모압(25:8-11)3) 에돔(25:12-14)4) 블레셋(25:15-17)5) 두로(26-28장)6) 애굽(29-32장)8:35
    인문/어학| 2019.12.06| 15페이지| 1,000원| 조회(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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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편8편 주해
    1. 시편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2.1. 시편전체의 배경2.1.1. 시편의 명칭시편의 히브리어 제목으로는 Tehillim(찬양)이 적절하다. 찬양(praises)은 시편을 구성하고 있는 시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요 헬라어 역본들은 이것을 mizmor(노래)라는 또 다른 히브리어 단어로 번역한다. 신약 성경 저자들도 이러한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눅20:42; 행1:20). 물론 일반적인 영어 명칭은 “The Psalms(시편)”이며 이것은 헬라어 역본에서 나온 것이다. 또 하나의 잘 알려진 영어 명칭인 Psalter는 70인역으로 알려진 헬라어역 사본인 A.D. 5세기의 알렉산드라이 사본에서 왔다. 이 사본은 시편에 대해 “현악기”라는 의미를 가진 Psalter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단어는 사실 시편의 헬라어 사본에서 “수금(iyre)"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kinnor와 nevel에 대한 번역어로 여러 번 등장하며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이것을 시편의 제목으로 격상시켰다.2.1.2. 히브리 성경 낭에서 시편의 위치인쇄본 성경에서 시편은 시가서 중에서 항상 처음에 나온다. 아마 시편은 고대로부터 성문서를 대표한 것 같다. 눅24:44에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신약 성경에서 시편은 성문서 전체를 대표하는 단어가 된다. 필로의 책에도 ‘율법과 선지자들이 전한 말씀과 찬송과 다른 글들’이란 표현이 나오며, 막카비 2:13에 나타나는 ‘왕들과 선지자들과 다윗의 글들에 대하여’라는 표현은 신약성경의 표현과 유사하다.그러나 고대의 사본들에 의하면 시편은 이따금(북부 전승, 즉 “독일” 전승에서) 성문서의 첫 부분에 있기도 하고, 때로는(남부 전승, 즉 “스페인” 전승에서) 역대기 다음이나(탈무드의 바트라 14절 하에서) 룻기 다음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한다. 이 점에서 영어 성경은 히브리 사본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초기 기독교 전승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2.1.3. 시편의 성격시:18,1989:52106:48150편오경과의비교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일차편집추정B.C.1,010-970년B.C.970-430년B.C.430년2. 본문NIVNASB1. For the director of music. According to gittith. A psalm of David. O LORD, our Lord, how majestic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 You have set your glory above the heavens.2.From the lips of children and infants you have ordained praise because of your enemies, to silence the foe and the avenger.3.When I consider your heavens, the work of your fingers, the moon and the stars, which you have set in place,4.what is man that you are mindful of him, the son of man that you care for him?5.You made him a little lower than the heavenly beings and crowned him with glory and honor.6.You made him ruler over the works of your hands; you put everything under his feet:7.all flocks and herds, and the beasts of the field,8.the birds of the air, and the fish of the sea, all that swim the paths of the seas.9.O LORD, our Lord, how majestic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1.{For the choir director; on the Gitti 결과, 본고에서 주석할 해석은 다음과 같다.다윗의 시,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노래.1.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위에 두셨나이다.2.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권능을 세우시니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심리니이다.3.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4.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저를 돌보시나이까5.저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6.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7.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8.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9.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3.표제.시편 8편의 표제는 다윗의 시,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라 부여되어 있다. 다윗의 시라 함은 이시의 저자를 나타내는 것이고,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라는 것은 연주방식을 규정하는 내용이라 볼 수 있다. 본 시는 저술 배경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앞서 시편 3편에서 논의 했던 것과 같이 ‘미즈모르 레 다위드’에서 ‘레’의 다양한 의미에 대해 논할 여지는 없는 듯하다. 따라서 다윗이 지은 시라고 보는 것이 무방하다. 이런 관점에서 본시 가운데 하늘의 달과 별, 그리고 땅의 우양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 등 하나님의 다양한 창조물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다윗이 목동으로 생활하던 젊은 시절에 지었거나, 그 이후 그 시절을 회상하며 지었을 것으로 보인다.그렇다면 과연 ‘깃딧’이란 무엇인가? 깃딧의 의미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문맥상 연결되어 있는 영장의 의미가 성가대에서 지휘자라는 점을 가만할 때, 지휘자에게 일러주기 위한 연주방식을 규정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다시 악기의 일종인 ‘기티트 수금’을 가르키거나, 악조 혹은 악곡을 가르키거나, 아니면 일종의 축제 혹은 의식을 가르키는 것일지도 모른일치까지 보이고 있는 것이다. 평행법의 의도가 균형을 의도하는 것이며 이것은 단순한 음성학적 운율을 생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의미의 확대에로 나가는 것이라는 의견은 전 세계의 모든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수미쌍관의 의미와도 일치하는 것이다.2.2.3. 형식시편 8편은 시편 전집에서 가장 사랑 받는 시편 중 한 편이다. 신학적으로도 이 시편은 창조와 새 창조, 우주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이 시편의 이상이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짐을 바라보고 있다.형식적인 측면에서 볼 때, 시편 8편은 기본적으로 찬양시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찬양과는 달리 찬양에로의 부름도 없이 시작한다. 이 시편을 열어주는 ‘우리 주 여호와여’라는 칭호도 시편 다른 곳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직접 부른다.4. 양식비평시편 8편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찬양의 노래”다. 그러나 좀더 정확하게는 ‘창조의 시’로 분류될 수도 있다. 또 이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를 노래한다는 점에서 감사 예배시로 분류되며 성전예배나 장막절과 같은 절기에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는 찬양으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또 이 시에서 복수형의 말 ‘우리’와 단수형의 말 ‘저’가 번갈아가면서 사용된 데에서 예배라는 맹락에 아주 잘 어울렸을 듯 하다. 또한 신약에서 히브리어 기자가 본시의 내용을 메시야 사역과 연관시킨다는 점에서 (히2:6-9)메시야 예언시로서의 성격도 지닌다. 이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찬송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며, 태초에 이루신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메시야를 통한 인간 구원과 그로인한 재창조의 역사와 긴밀한 관련을 지닌다는 점에 기인한 것이다.5.문학비평이시에서 운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요소는 수미상관과 압운이 있다. 먼저 이시는 1절과 9절을 모두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는 구절을 사용하면서 시의 시작과 끝은 동일하게 하는 수미상관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는 시편을 비았다.A. 주의 이름의 아름다움(1절)B 주님이 만드신 해 달 별(2-3절)C 사람을 생각하심-권고, 영광(4절-5절)C' 사람을 생각하심-다스림(6절)B' 주님이 만드신 우양 들짐승(7-8절)A' 주의 이름의 아름다움(9절)4. 주 해[시편8편1절]BGT ku,rie o` ku,rioj h`mw/n w`j qaumasto.n to. o;noma, sou evn pa,sh| th/| gh/| o[ti evph,rqh h` megalopre,peia, sou u`pera,nw tw/n ouvranw/n^ªd>Ah÷ hn"iT. rvyOw>) ?~yli'l.A[) yPiUmi WTT`~QE)n:t.miW1절에서 하나님을 찬양한 후, 분위기가 급전하여 주님의 원수와 대적, 그리고 이들과 대조적으로 어린 아이와 젖먹이가 나오기 때문에 2절은 주제 발전의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 갑작스럽고 돌박적으로 느껴진다. 전통적 해석에 따르면, ‘주님에게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모든 시도가 절절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루터는 우리가 이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들은 믿음에 있어서 보다 무식하고 약한 자이다. 신비적인 뜻에서 이들은 겸손하고 자랑할 줄 모르는 모든 자들이며, 심령이 ‘어린 아이’이며, ‘젖먹는 자’이다.많은 주석가들(커크패트릭, 외스털리, 바이저)과 번역들(KJV, NJV, TOB)은 하나님은 어린 아이들의 찬양으로 방어막을 세우신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많은 학자들은 여기에 태고의 혼돈스러운 물을 정복한 모티프가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원수’, ‘권능’, ‘세우다’는 모두 우주 창조 서사시와 연관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에 대해서 주석가들은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그것이 ‘중지하다’라는 뜻을 가진 중간태 ???(샤밧)의 히필동사 변화 형태로 되어 있으므로 ‘중지하게 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파멸이나 사망이 종말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것은 비유적으로 ‘파멸시키다’ 또
    인문/어학| 2019.12.06| 12페이지| 1,000원| 조회(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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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서(열왕기상하요약)
    역사서REPORT(열왕기 상,하 요약)1. 1-11장 요약열왕기상과 열왕기하는 솔로몬 통치(주전 970-930년)로부터 예루살렘 멸망과 유다 백성의 바벨론 포로(주전 587/86)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포괄하고 있다. 4세기 동안의 성서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이 기간은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제1막솔로몬의 통치(왕상 1~11)제2막분열 왕국의 병렬 설명(왕상 12장~왕하17장)제3막살아 남은 남왕국 유다에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왕하 18~25장)솔로몬는 놀랍도록 역설적인 성격을 가진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많은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기도 하며, 대단히 지혜로우면서도 어리석은 사람이다. 솔로몬을 이중인격을 지닌 지킬박사와 하이드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솔로몬은 왕권을 노리고서 움직이지도 않았고, 전성기에 도달했다가 서서히 어둠 속에 빠져 들어가는 면에서 아버지 다윗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솔로몬의 통치 기간 중에 다윗의 기름부음과 같은 예언적인 은사를 받은 적이 없다. 다윗이 정상적인 길에서 벗어나면 예언자들이 그를 책망하나 솔로몬의 악한 행동을 책망하는 예언자는 없다.솔로몬의 40년 통치 기간 동안에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네 번만 말씀하실 뿐이요, 중재자를 통하여 말씀하지는 않는다. 꿈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성전 건축과 관련하여 차분하게 말씀하시며 성전을 봉헌하자 말씀하시며, 솔로몬 왕이 죽은 후에 그의 왕국이 깨뜨려질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솔로몬은 야웨께서 친히 그를 대적하신다.솔로몬의 이야기는 1~8장의 호의적인 부분과 9~11장의 비판적인 부분으로 나뉜다. 두 부분에 나오는 유사한 자료들의 반복은 이 둘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1:1-53. 원기 왕성한 다윗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도니야는 자기가 상속자임을 믿고 "스스로를 높였다" 나단은 아도니야의 야심을 좌절시키고 솔로몬의 왕위 계승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활동을 개시한다.2:1-46. 다윗이 죽기 전에 솔로몬에게 남긴 말이 나와 있으며(2-9절) 이는 아버지 다윗의 말년과 별로 유쾌하지 않은 평행을 이루고 있다.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상대로 하여 사용하시는 심판의 세 가지 도구들은 “점층적인 삼중 반복” 양식의 특징을 보여 준다. 하닷은 솔로몬의 통치 말기에 그의 대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듯하다. 이와는 달리 르손은 “솔로몬의 일평생에 ...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미워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로보암은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함으로써 한층 강한 심판의 도구가 된다. 여로보암은 그 결과가 다음 세대들에게 나타난다.여로보암에게 솔로몬 제국의 붕괴 사실을 예고한 예언자(아히야)가 북쪽 지역의 한 성읍인 실로 출신으로 솔로몬이 북쪽 지역 백성들을 서운하게 대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북쪽 지역 출신 예언자가 솔로몬 왕국의 분열을 선포한 하나님의 대변인이라는 사실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솔로몬을 계승한다. 여기서 솔로몬은 1천 명이나 되는 아내들을 데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오로지 한 아들의 이름만이 알려져 있다. 또한 르호보암이 아버지의 통치가 시작되기 1년 전에 태어났음을 알 수 있는데 아버지의 40년 통치 기간 동안 이 아들에 관한 언급은 하나도 없다.역대하 1~9장에 묘사된 솔로몬솔로몬의 통치는 역대하의 첫 아홉 장에 묘사되어 있다. 열왕기상 1~11장에 기록되어 있는 솔로몬의 생애와 역대하 1~9장에 기록된 솔로몬의 생애를 비교해 보면, 무엇보다도 먼저 후자의 경우에 추가된 내용들보다는 생략된 내용들이 더 눈에 띄는 것을 알 수 있다.역대기는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의 경우와는 달리 솔로몬에 관한 모든 “나쁜” 자료들을 생략한다. 물론 일부 “좋은” 자료들까지도 제거한다. 역대기는 오로지 성전 건축과 관련된 범위 안에서만 솔로몬과 그의 지혜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 결과 열왕기상이 솔로몬에 관한 열한 개의 장들 중에서 네 개의 장을 성전 건축에 할애하는 반면에, 역대기는 아홉 개의 장들 중에서 일곱 개의 장을 성전 건축에 할애한다. 솔로몬의 통치 중에서 항구적으로 중요한 였고 이스라엘을 오므리의 가문으로 칭함을 받을 정도였던 오므리를 덜 중요한 왕으로 그의 통치기록을 짧게 다루고 그의 아들 아합의 내용을 길게 다루고 있다. 엘리야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6개의 사건 중 4개가 아합왕과 직접 관련되어 있고 다섯 번째 사건은 엘리야와 아합의 아들과 그의 계승자인 아하시야 등과 관련되어 있으며 여섯 뻔째 사건은 엘리야와 엘리사를 포함하되 엘리야가 하나님에 의해 올리움을 받고 엘리야가 그 뒤를 잇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17장17장은 세 개의 장면으로 구성된다.(1)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로 피신하고 시냇물과 까마귀를 통해 물과 음식물을 제공한다.(2) 엘리야가 북서쪽으로 이동하여 페니키아 해안 지방에 있는 시돈 근처 사렙다 성읍으로 간다.(3) 하나님께서 자기 종 엘리야를 통해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다.밀가루와 기름이 끊이지 않는 놀라운 기적 앞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과부가 아들이 치료받은 후에 열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콘이 회심이라 부르고 조블링이 인신론적 전환이라 부르는 것을 Brichto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개개인의 사소한 이해관계 안에서 은총을 베푸시는 분임을 인정하면서도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기적들과 그러한 기적들이 계속될 것임을 보증하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18장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이스라엘로 돌아가서 아합을 찾으라고 명한다. 오바댜는 100명의 예언자를 이세벨의 살해 위협으로부터 숨기고 음식물을 제공하여 야웨 경외를 실천하는 선한 사람이다. 이런 그가 아합과 함께 짐승에게 먹일 음식을 구하기 위해 온 땅을 돌아다니던 중 엘리야를 만난다. 엘리야는 오바댜에게 자신이 이스라엘로 돌아왔음을 말해달라는 부탁을 받자 그 청을 거절한다 그는 야웨를 두려워하지만 자신의 생명을 더 염려하는 까닭에 엘리야의 메시지를 아합에게 전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엘리야와 아합의 만남은 간결하게 처리되어 있다. 갈멜산의 대결은 애굽의 마술가들과 대결하는 모세와 아론, 그 뒤를 이어 동생 요람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엘리야는 자신의 종 엘리사에게 하늘에 올라가기 전에 엘리사에게 두 몫을 준다. 이는 여호와의 신이 여호수와에게 임하기 전에 모세가 떠나야 하는 장면과 예수께서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기 전에 떠나야 하는 장면과 유사하다. 두 몫은 장자의 몫을 의미하는 것인데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자신을 그의 유일한 계승자로 인정할 것을 요구했음을 뜻한다. 하나님의 신이 개개인에게 임하되 일시적이고 잠정적으로 그를 지배하던 사사 시대의 모습과는 달리 엘리사의 경우는 하나님의 신이 항구적으로 머문다. 초기 유대교의 한 전승은 엘리사가 표적과 기사를 행함으로 사실 상 자신의 유명한 선구자를 능가했다고 말한다. 첫째, 엘리사가 행한 기적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에 더 가깝다. 둘째, 엘리사가 행한 기적들 중의 일부는 엘리야가 행한 기적들 중 일부와 매우 비슷하다. 셋째, 엘리야는 신약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지만 엘리사는 단 한 번 언급될 뿐이다. 엘리사는 예후를 세우는 일을 하되 예후는 그의 실제적인 통치를 위해 관련된 모든 것을 제거한다. 예후는 바알을 이스라엘로부터 몰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을 자신의 마음에서 몰아내지 않는다. 그의 사후 바알은 제자리로 돌아오고 만다.열왕기하 11-17장 : 여호아하스에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까지11장은 살해당한 유다왕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에 초점을 맞춘다. 아달랴는 두 가지 큰 잘못을 범한다. 철째, 자기 아들이 예후의 손에 죽자 그녀는 다윗의 가문을 쓸어버리고자 한다. 둘째, 그녀가 바알을 숭배하였다. 아달랴는 “야웨는 높으신 분이다”를 의미를 가진다. 자신의 이름과 다르게 동떨어진 삶을 산다. 6년동안 제사장들의 보호를 받고 가르침을 받던 요하스는 12장에서 성전 수리를 감독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백성들이 기부한 모든 돈으로 성전 수리 비용으로 사용할 것을 명하되 예외적으로 송건제와 속죄제의 은은 제사장에게 돌리게 하였다 이는 레위기 6:26이나 7:7과 일치한다. 많은 긍정적인 업적을 즐기는 자이다. 이런 므낫세의 배교적인 행동들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포로로 잡혀가게 하실 것임을 암시하신다. 므낫세는 하나님과 더불어 맺은 언약을 계약에 순종하는 길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는 삶을 대표하는 자이다. 대하 33장은 므낫세가 바벨론으로 포로되었다가 감금되어 있는 동안 회개를 하게 되고 포로로부터 풀려나며 예루살렘 주변의 건축공사를 마무리하고 확고한 야웨 신앙으로 복귀하였다고 보고한다. 여기서 회개하지 않는 열왕기의 므낫세와 회개하는 역대기의 므낫세가 대조를 이루는 모습을 발견한다.열왕기하 22-25장 : 요시야로부터 바벨론 포로기에 이르기까지유다의 왕통치연한브라이트가일하예스/후커딜레요시야31년640-609640/39-609641-610640-609여호아하스3개월609609609여호야김11년609-598609-598608-598609-598여호야긴3개월598/7598/7598-597시드기야11년597-587597-586596-586597-587요시야는 매우 경건한 유다 왕들 중의 하나이다. 그는 종교개혁을 통하여 이방 종교의 풍습들을 제거하고 국가를 새롭게 하고자 한다. 요시야의 통치에 관한 설명은 왕하 22-23장과 대하 34-35장에 나와 있고 약간의 차이가 보인다.열왕기역대기요시야의 개혁을 그의 통치 18년 이후에 한정시키고 그 이전의 시기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다.요시야가 그의 통치 8년째 되던 해에 그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구했으며 12년째 되던 해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케 하였고 18년 째 되던 해에는 그 하나님 야웨의 전을 수리하러 ~사반~보낸지라요시야가 실시한 개혁 조치들을 열일곱 절에 걸쳐서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유월절 준수는 단 세 절만을 할애한다.개혁조치에 대해서는 단지 여섯 절만을 할애하고 유월절 준수는 열아홉 절을 할애한다.이집트의 파라오 느고에 의한 요시야의 죽음을 보고하되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요시야의 죽은 장소를 므깃도로 보고 있다.요시야의 죽음 사건을 확대하여 요시야가하나님의 입에서 나온있다:
    인문/어학| 2013.10.10| 21페이지| 1,000원| 조회(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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