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 시대 인류‘Ⅰ. 머리말Ⅱ. 인류의 기원1. 인류의 진화과정1) 직립보행2) 뇌용량 확대2. 인류의 이동Ⅲ. 구석기 인류1. 자연환경2. 인종3. 한반도의 구석기인Ⅳ. 맺음말Ⅴ. 참고문헌Ⅰ. 머리말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하여 살아왔던 시기는 매우 짧지만, 인류는 사실상 지구의 지배자와 같이 행세하고 있다. 향후 수십 년 안에 인류가 행하는 행동에 따라 수백 종의 운명이 달려있는데 이는 인류가 특별하고 높은 존재라는 믿음을 주는 행위처럼 보인다. 하지만 돌아보면 우리의 기원이 아프리카의 나무에서 내려왔고, 500만년이라는 지구 전체의 시기로 보면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는 것을 보면 특별한 존재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인류는 나무에서 내려와 이 땅에 두발로 선 이후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계속하였고 그에 맞추어 살아남기 위한 진화를 계속하였다. 오늘날 사람을 정의하는 주요 특성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로 요약하는데, 그것은 직립 보행 능력, 도구를 만드는 능력, 큰 뇌이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뇌의 확대가 가장 먼저 일어났다는 것이 일반적인 가정이었지만 여러 가지 증거와 연구를 통하여 직립 보행이 맨 먼저 나타났단 주장이 힘을 싣고 있다.본고에서는 인류의 기원서부터 구석기시대까지의 인류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Ⅱ . 인류의 기원1. 인류의 진화과정「종의기원」으로 유명한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인류의 요람이 아프리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윈이 이러한 주장을 펼친 당시에는 초기 인류의 화석은 어디서도 발견된 적이 없었고, 그의 결론은 전적으로 이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당시의 학자들은 열대 아프리카를 식민주의적인 경멸감으로 바라보아 다윈의 견해를 몹시 싫어했다. 그러나 아프리카 대륙에서 수많은 초기 인류의 화석이 발견되면서 이러한 견해는 점차 없어지게 되었다.다윈은 「인간의 유래에서」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해주는 중요한 특징, 즉 대지를 딛고 선 두다리와 기술 능력, 뇌 용량의 증가 등은 한꺼번에 진화했다고 보았는데 그는 직립 보행의 진화가 석기 무초기에 갑작스럽게 일어났다고 보는 견해였다. 이로 인하여 사람과 사람이외의 동물 사이에는 현저한 격차가 벌어지게 되었는데 이러한 가정이 부적절하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고고학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다윈의 동시 진화라는 개념이 옳다면 두 발 보행, 기술, 뇌 용량의 증가라는 증거는 고고학의 기록에서 동시에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분자생물학적인 증거는 약 700만년 전에 최초의 사람종이 출현하였다고 보고있고, 우리조상이 직립보행을 시작한 시기와 석기를 만든 시기 사이에는 거의 500만년 이라는 간격이 있다. 그로인해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서 직립 보행의 기원에 다시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1) 직립보행라에톨리의 발자국 화석은 약 360만년전 원숭이 인간이 우리처럼 직립 보행을 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시간 속에 얼어붙어 있던 이 화석은 매리 리키가 이끈 탐사에서 발견하였다. 영장류 중에서 인간만이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침팬지나 긴팔원숭이도 직립 보행을 할 수 있다. 다만 가끔만 그럴 뿐이다.해부학자인 오웬 러브조이는 “ 두발 보행으로 변한 것은 진화 생물학에서 볼 수 있는 해부학 구조의 가장 놀라운 변화 가운데 하나이다." 라고 말하였다.인류학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인간 진화에서 차지하는 두 발 보행의 중요성은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는 물건을 옮길 수 있도록 손이 자유로워진 점을 강조하는 측면과 다른 하나는 두 발 보행이 에너지 사용에서 훨씬 효율적인 보행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학파이다. 그리고 그로인해 물건을 나르는 능력은 단지 직립 자세의 우연적인 산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첫 번째 가정은 오웬 러브조이가 제안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두 발 보행은 비효율적인 보행 방식이기 때문에 물건을 나를 수 있는 능력을 위해 진화한 것이 분명했다.궁극적으로 보았을 때 진화의 성공은 살아남을 수 있는 자손을 생산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고, 직립보행으로 파생된 물건두 가지의 비판을 받았는데 하나는 일부일처제가 원시적인 기술 수준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흔한 사회 현상이 아니었다는 것과 현재까지 알려진 초기 사람종의 수컷은 암컷보다 몸이 약 두배나 컸다는 사실이다.)두 번째 가정은 피터 로드먼과 헨리 맥헨리 그리고 데이비스가 제안한 것이다. 그 가정에 따르면 두 발 보행은 더 효율적인 보행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에 변화된 환경조건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숲이 줄어들어 삼림 서식지의 음식 자원이 너무 넓은 지역에 흩어지게 되어 종래의 유인원은 효율적으로 따 먹을 수 없었을 것이다.즉 로드먼과 맥헨리는 두 발 보행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자연선택의 원동력을 에너지 효율성에서 찾는 것이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주장은 생물학적인 뒷받침 뿐만 아니라 최초의 사람종이 진화할 때 일어났던 생태 변화와도 맞아떨어진다.2) 뇌용량 확대뇌 의 크기가 클 수록 많은 칼로리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고기뿐만 아니라 견과류나 덩이줄기처럼 칼로리가 많은 음식물로 식성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우리 조상의 뇌용량 증가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음식물에는 뇌의 성장에 꼭 필요한 물질인 지방산도 풍부하게 들어있다. 즉 식단의 확대가 인하여 인류의 지적 성장에 한 영향을 주었다.식성의 변화는 행동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데 호모 에렉투스의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신은 주로 채식을 했다. 그러나 인류는 훨씬 다양한 먹이를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고기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고기는 죽은 동물 시체를 듣어먹거나 직접 사냥해 얻을 수 있었다.많은 칼로리 섭취는 팽창하는 뇌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 주었으며, 그 결과 지능이 발달하게 된 초기인류는 복잡한 계획을 짜고, 위험한 사냥을 할 때 서로 협력하는 등 점점 스스로 고기를 구하는 능력이 발달하게 되었다.불확실한 점은 우리가 진화를 시작한 이래 뇌 크기가 세 배로 늘어난 과정이 점진적으로 일어났나, 아니면 진화상의 특별한 단계에서 갑자기 일어났나라는 점이다. 대부분은 어떠리가 아프리카를 떠나 아주 빠른 속도로 새로운 땅을 향해 퍼져갔다. 이러한 대이주를 일으킨 원동력은 초기 인류가 점점 더 효율적인 육식 동물로 변해 간 데 있었다. 이는 식물이 자라는 범위내에 한정되게 살아갔던 호모 에렉투스가 죽은 고기를 뜯어먹거나 직접적인 사냥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아프리카 탈출을 촉발시킨 큰 동기가 되었다.과학자들은 처음에는 이러한 대이동이 약 100만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아시아에서 발굴된 화석을 다시 연대 측정한 결과, 대이동은 그보다 훨씬 앞선 200만년전으로 이는 호모 에렉투스가 출현한 지 얼마 안된 시점에 일어났던 것으로 보았다.약 200만년 전 아프리카의 건냉하던 기후가 다시 고온 다습한 기후로 변했다. 그로인하여 식량자원의 취득이 용이해졌고 생활권은 확대되었다. 처음에는 호모 에렉투스가 최초로 아프리카를 떠났다는 주장이 상당한 신빙성을 얻었지만, 자바섬에서 발견된 190만년 된 피테칸트로푸스 두비우스의 앞 어금니가 뿌리가 두 개 였던 반면, 호모 에렉투스는 뿌리가 하나 밖에 없는 점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25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탄생하여 자바의 호미니드처럼 앞 어금니 뿌리가 두 개 였던 호모 루돌펜시스가 처음으로 아프리카 땅을 떠난 호미니드 후보자임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Ⅲ . 구석기 인류1. 자연환경구석기 시대는 크게 4차례의 빙하기와 3차례의 간빙기를 거쳤다. 한국 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은 빙하기의 직접적인 흔적은 별로 찾을 수 없고, 빙하주변지역으로 영향을 크게 받고 있었다. 빙하는 높은 산의 봉우리 약 2,000m이상이 되는 곳의 일부에만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는 빙하기와 간빙기에 따른 해수면의 차이에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수면이 낮아지는 빙하기에는 한반도는 요동반도와 함께 산동반도와 육지로 연결되고 발해만에는 커다란 호수가 형성된다. 중국 절강성에서부터 제주도와 한반도 남부를 잇는 연륙현상이 가능하며 한반도 동남부와 대마도, 일본 후쿠오카는 강을 사이에 두고 육비롯한 초기 고인류 화석과 고고 자료가 본격적으로 발견되며 큰 진전이 이루어졌다. 1990년대부터는 사헬란트로푸스, 오로린, 아르디피테쿠스같이 700만년전 무렵에서 약 450만년 전 무렵 사이에 초보적 단계의 두발걷기를 하며 살던 고인류가 발견되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장 이전 인류진화 초기 단계에 이미 다양한 고인류가 등장했고 사라졌음을 알게 되었다. 약 400만년 전에 등장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사람의 고유한 신체적 특징과 구조를 완성시켜 나갔고, 여러종이 명멸했으나 100만년 전 무렵 완전히 사라졌다.최초의 사람(homo)속으로 분류되는 호모 하빌리스는 플라이스토세의 시작과 더불어 약 250만년 전 무렵 출현했다. 도구 사용의 흔적은 340만 년 전부터 나타나지만, 현재까지 발견된 최초의 석기는 이 무렵 만들어진 것이다. 호모 속은 현저히 커진 두뇌용량이 상징하듯 보다 발달한 지능과 도구 제작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호모 에렉투스 단계에서 인류는 약 180만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라시아 각지로 퍼져나갔다.3. 한반도의 구석기인한반도에서 출토된 구석기의 인류로는 덕천인, 승리산인, 역포인, 만달인, 흥수아이 등이 있다.덕천인과 승리산인은 평안남도 덕천시 승리산 동굴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이 둘은 보고자에 의하면 각기 다른 2개의 층에서 발견되었다고 제시되어 있다. 덕천인은 두 개의 어금니가 발견되었는데, 어금니의 크기와 형태 및 발굴된 층위와 지점으로 보아 동일개체의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마모정도가 달라 확신 할 수는 없다. 어금니와 함께 쇠골 뼈도 발견되었으며 쇠골에서 네안데르탈인의 특징이 관찰된다.승리산인은 아래턱뼈가 발견되었는데, 보존상태가 상당히 양호하였다. 남아있는 이빨은 오른쪽의 두 번째 작은 어금니의 뒷조각과 첫 번째 큰 어금니뿐이다. 아래턱뼈의 특성상 승리산인은 신인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에 속하며 후기 홍적세말의 35세 정도의 남자의 것으로 추정된다.역포인은 평양 역포구역 대현동 동굴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역포인은 앞머리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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