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적 의사결정 수업에서의 중립성은 필요한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로부터 오는가?필자는 반성적인 의사결정 수업들은 사고과정을 지속적으로 풍부하게 하며, 문제, 아이디어, 가치들이 자유롭게 검토될 수 있는 환경들이며 이러한 반성적인 수업 분위기는 가능한 한 민주적이기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수업 방법이 토론이다. 반성적인 의사결정 수업이라고 얘기하지만 그 대부분이 토론 수업에 대한 것이다. 필자가 말한 반성적 의사결정 수업의 조건을 요약한 결과, 그 속에서의 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이 고무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자의 역할이었다.하지만 이 모든 게 교사가 토론 수업에서 태도의 중립을 유지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어떠한 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계속적으로 주장한다면 초등학령기 아이들의 경우 권위자로서의 교사를 무의식적으로 쫓아갈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설사 그들의 생각이 교사와 대비된다 하더라도 그들은 반박조차 하지 않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까지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 수업은 수 십 명의 아이들을 단 한 명의 아이로 만들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수 십 가지의 생각을 단 하나의 생각으로 만들어버렸으니까 말이다. 극단적인 표현일지 모르나 위의 경우에 이는 과분하지 않다. 그러므로 토론 수업에서의 교사는 중립적 태도를 고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렇다면 여기서 하나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교사의 중립성은 가능한 것일까?'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 물음에 대해 나는 다소 부정적이다. 교사가 한낱 기계에 불과하다면 모를까 생각하고 느끼는 인간인 이상 100%의 중립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그것을 교사에게 바라고, 강요하는 것도 비인간적이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하는 것이다. 100%의 중립을 취할 순 없지만 그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을 것이다. 최대한 수업에서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내 뱉기보다는 학생들이 바람직한 토론 자세를 가질 수 있게 하고, 그들의 생각을 이해와 동시에 발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어렵게 세상 밖으로 나온 그들의 생각을 열심히 들어주는 것이다. 물론, 이 와중에도 교사의 생각이 은연중에 스며들어 학생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 그 때, 교사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 또한 다른 학생들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의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학생들로 하여금 인식시켜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토론 수업시간 뿐만 아니라 평소의 학급 분위기를 그렇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토론 수업에 한정하여 생각하자면 토론 수업 중 교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제 몫을 다 한다면, 그 몫을 하는 동안에 교사의 태도는 어느 새 중립을 향하고 있을 것이다. 제 의견을 내비칠 여유가 그만큼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교사의 노력에 감응하여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토론에 참여할 것이다. 그러다 학생들이 은연중에 스며든 교사의 생각을 감지하였다 하더라도 교사의 그러한 태도를 보다 더 크게 느껴 그들의 생각을 집어 삼킬 만큼 강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이다. 수업에서의 중립성은 이렇게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교사의 노력으로 반이 채워지고, 그 반은 학생들이 또 채우는 것이다. 결국, 교사의 중립성은 혼자서 완전한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중립적인 분위기를 만들어갈 때, 더 효과적인 수업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적 인성을 어떻게 계발할 것인가?인간의 도덕성은 교육에 의해서 많은 부분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덕성을 형성케 하는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는 우리들이 생각해 볼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필자는 심의 검토, 무도덕주의, 자유주의적 중용 그리고 보수적 윤리주의와 자유주의적 윤리주의로 나뉘어지는 윤리주의를 들고 비판하면서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지지를 역설하고 있다.민주주의적으로 교육을 하기 위해 부모의 역할을 인정해주는 것에 대해서 일부분 필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다. 학교 교육에 대한 부모의 권리를 보장해줌으로써 학교의 독재적인 운영과 무분별한 교육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도덕교육에 대한 생각은 조금 차이가 있다. 도덕 교육에 있어서 나는 심의 검토와 자유주의적 윤리주의의 병행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심의 검토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결정을 하기 위한 주의 깊은 심사"라고 규정될 수 있으며, 제도적 차원에서는 "어떤 조치에 대하여 찬성 또는 반대하는 이유들에 대한 다수의 의원들에 의한 심사 및 논의"라고 규정될 수 있다. 그리고 자유주의적 윤리주의는 교육은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될 수 있는 원칙들에 기초하여 아동들에게 도덕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열망과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학생들이 자신들의 도덕적 가치를 스스로 선택하여 완벽한 도덕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도덕 교육은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학생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자유주의적 도덕주의이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심의 검토이다. 이는 단순한 생각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한 생각이 가장 이상적인 도덕 교육을 만들어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물론, 이 둘은 치명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학생들로 하여금 올바른 가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학교에서 아동들에게 확립된 권위보다는 도덕적 원칙들을 존중하도록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문제들이다. 두 문제에 대한 가장 최선의 방법은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주변의 성인들이 올바른 가치를 스스로 선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을 아동들에게 보여준다면 아동들은 자연스레 그를 학습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또 문제가 되는 것은 성인들이 선택하는 것이 무조건 올바른 가치라고 할 수 있는가이다. 모든 성인들이 올바른 가치를 선택하고 그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하지만 세상에 완전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어른들이 먼저 본보기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면 아동들도 함께 노력할 것이고, 훗날에는 어른들의 노력에 부응하는 만큼 스스로 올바른 가치를 선택하고 행동할 것이다. 후자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학교에서 교사나 그 외의 성인들이 확립된 권위보다는 도덕적 원칙들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학생들은 자연스레 그 모습에 도덕적 원칙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또한 스스로 올바른 가치를 선택하는 심의 검토의 자세를 갖춘 아동들은 그러한 안목으로 확립된 권위의 도덕보다는 도덕적 원칙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의 검토와 자유주의적 도덕주의가 함께 함으로 인해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봐도 무관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입장의 병행을 지지하는 바이다.
민주주의에서의 반성적 의사결정을 위한 구체적 노력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의 복지에도 영향을 미칠 많은 결정들을 한다. 의사결정에는 두 가지 단계가 있다.첫째, 시민들은 복잡한 사회문제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지지하기 위한 증거로서 사용하는 정보의 신뢰성을 결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주장들 중에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하고, 타당성을 가진 주장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둘째, 시민들은 복잡한 사회문제를 다루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문제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어떤 공공정책이 지지되어야 하는가' 등과 같은 과제들은 시민들이 효율적으로 활동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이다. 첫째 단계에서 의사결정의 질은 둘째 단계의 의사결정의 질에 도움을 준다고 필자는 말하고 있다.필자가 주장하는 이 두 단계가 민주주의에서의 반성적 의사결정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장 골자적인 단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두 단계에 비추어 우리 사회 속 민주주의에서의 반성적 의사결정을 위한 구체적 노력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대표적으로 두 가지 의문이 든다. 하나는 '시민들은 정보의 신뢰성을 어떻게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을까?'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을 누구나 정보화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주위에는 정보가 흘러넘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정보를 어떻게 걸러낼 수 있을까? 민주주의 속 반성적 의사결정의 어려움, 그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정보의 신뢰성 판단의 난해함이라고 생각한다.개인적 차원에서 가장 기본적이자 중요한 것은 그 흘러넘치는 정보들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들만의 정보 수용의 기준들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 기준은 각자 다를 수 있다. 저마다 어떤 정보가 필요하고, 정보를 대하는 사고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들만의 기준들을 가지고 정보와 닿았을 때, 자신의 기준들로 비판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지, 출처는 믿을 만한 것인지, 나에게 필요한 정보들인지, 다른 정보와 모순되진 않는지 등의 비판적 시각에서 조명한 뒤 취사선택 하여 받아들여도 늦지 않을 것이다.사회적 차원에서는 위의 개인적 노력에 맞춰 정보를 가능한 한 가공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가공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또는 그 밖의 다른 의도들로 인해 정보를 변질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래의 시민 교육을 결정지을 권위를 누가 가져야 하는가?교육은 민주 정치를 위한 무대를 제공할 뿐 아니라 민주 정치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교육의 이 같은 이중적인 역할로 인해 파생되는 정치의 주요 윤리 문제 중의 하나가 위의 논제라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자신의 생각을 기술하고 있다. 위의 논제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정치적 민주주의의 이념을 교육에 접목시켜 교육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민주적인 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는 민주주의 교육, 그것은 교육의 대상이 되는 국민들이 교육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나도 필자의 생각에 대해 많은 부분 일치한다. 교육을 받는 대상인 국민이 그에 대한 아무런 영향력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 교육은 더 이상 교육이 아닌 것이 된다. '이것은 이것이다.', '이러이러 하기 때문에 당신은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식의 명령이자 강요일 뿐인 것이다. 최근 들어 학습자 중심의, 교육이 주목받고 있는 것도 교육이 교사의 것도, 교육 정책을 정하고 행하는 국가의 것도 아닌 학습자의 것이자 학습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교육에 학습자인 국민의 생각이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하지만 '국민의 생각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라는 방법의 문제가 따를 수 있다.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교육에 대한 결정을 한다면 거의 대부분이 다수결이나 투표를 떠올릴 것이다. 투표가 가장 쉽게 행할 수 있고, 가장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적 문제에 대한 중요한 안건을 국민 투표를 통하여 결정한다 하여 투표를 실시했을 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본 안건을 자신의 일처럼 여겨 진지하게 생각해볼 것이며, 자신의 의견이 교육적 개선을 위해 보탬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투표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만약 그냥 대충 해야 하니까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그 투표는 안한 것만 못한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에게 교육의 중요성과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알려야 할 것이다. 자신들이 받는 교육이 어떤 것이며 그들의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교육적 문제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심각성을 알려야 할 것이다. 더불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들의 의견을 수용하겠다는 열린 자세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민주주의 교육의 방법적 측면은 문제없을 것이다.
민주사회에 있어서의 바람직한 시민의 특성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무엇인가?시민교육은 민주사회적 원리들에 대한 이성적인 수행과 어떻게 이런 원리들이 가장 국지적인 사회집단들로부터 전세계의 국민들에 이르기까지 삶의 전면에 적용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정의하고 있다. 동시에 민주사회 시민은 숙련되고 책임감 있는 의사결정자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 국가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위치에서도 결정들을 내리는데 종사하여야 한다. 지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참여하는 의사결정기능, 모든 지식과 태도는 민주사회 시민권의 핵심이다. 그러한 시민들에 의해 요구되어지는 교육의 성격은 기본적인 지식, 민주사회적 이상에 대한 서약, 기본적인 지적기능, 그리고 정치적 기능들이라고 말하고 있다.민주사회 시민의 교육적 요구라는 소주제를 논한 글을 읽으면서 '민주사회에 있어서의 바람직한 시민의 특성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 민주사회에는 다르고도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제 각각 느끼는 방식이 다를 것이고, 사고하는 방식이 다를 것이며, 따라서 살아가는 방식 또한 다를 것이 분명하다. 이들 모두를 바람직한 시민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바람직한 시민상을 세우고, 그에 맞게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노력하는 것만으로 다 이루어질 수 없고, 부족한 것이 많겠지만 최소한 그러한 노력 자체만으로도 그들을 바람직한 시민으로 불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그렇다고 해서 바람직한 시민으로서의 특성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한 것들이 있음으로써 시민들은 길을 잃었을 때 바로잡을 수 있고, 자신의 잘못됨을 수정할 수 있으며, 그러한 과정이 있은 후에 자신의 시민성을 더욱 더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필자는 민주사회의 바람직한 시민성의 특성이 문제해결과정에 적용시킬 수 있는 지식과 기능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광범위한 사회문제들을 해결함에 있어 정보와 지식을 적절하게 적용하고 이들을 함께 결합하는 기능을 말하는 것이다.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 명제 자체에는 동의한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시민의 특성을 다 정리해서 말할 수 없지만 필자가 강조하는 바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다만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에는 확실히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민주사회는 급속하게 다원화 되어 가고 있으며, 다양한 시민들이 존재한다. 그에 따라 다양한 이해관계가 상충하여 많은 사회문제들이 발생한다. 이러한 사회문제들에 관심을 갖고 해결하고자 스스로 노력하는 것은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