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쿱생협의 노동자와 소유노동의 의미2015274001 장우정Ⅰ. 머리말2012년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으로 협동조합의 설립 요건이 완화되어 5인 이상의 사람이 모이면 누구나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지난 5월 7일 기획재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지금까지 2년 6개월이 지나는 동안 설립된 협동조합은 7,226개로 한 달에 241개꼴로 생긴 셈이다. 그러나 이 중에 몇 개나 되는 협동조합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많은 협동조합들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이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협동조합이 활발히 설립되고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협동조합은 아직 실험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이렇게 우후죽순 생겨난 협동조합과는 달리 실험단계를 지나 성장의 단계에 서있는 협동조합이 있다. 바로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즉 생협이다.이 글에서는 생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한다. 더 구체적으로 아이쿱생협과 아이쿱생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아이쿱생협을 사례로 잡은 이유는 현재 존재하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중에서 가장 높은 매출과 큰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양적으로 가장 크게 성장한 생협이기 때문이다. 양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은 가장 많은 수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아이쿱생협은 노동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현재 ‘소유노동’이라는 실험을 진행 중에 있다. 이 ‘소유노동’이 어떠한 내용인지와 이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먼저 이글에서는 협동조합의 개념과 의미,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 협동조합의 노동자와 이들의 노동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그리고 아이쿱생협의 현황과 아이쿱생협의 노동자에 대해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아이쿱생협이 실험하고 있는 소유노동에 대해 알아본 후 그것이 갖고 있는 의미와 대안에 대해 모색한다.Ⅱ. 협동조합과 노동자 그리고 노동에서의 소외1. 협동조합의 개념과 역사협동조합은 역사적으로 다섯 가지 전통에 전달되었고, 이는 현재 ICA에서 채택한 ‘협동조합 7원칙’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2014: 103).우리나라 생활협동조합의 첫 등장은 1961년 상업은행 노동조합이 만든 소비조합이다.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복지 차원에서 소비조합 운동을 시작했던 것이다(정병호, 2010). 그러나 그 활동은 그리 활발하지 못했다.현재 존재하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첫걸음은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원주지역 사회운동가 박재일 선생이 농민들과 함께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 농산’을 열고 한살림 공동체 소비협동조합을 설립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한살림을 시작으로 아이쿱생협, 두레생협, 행복중심생협(구 한국여성민우회생협) 등 다양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생겨났고 생협은 한국 사회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들은 농민과의 직거래를 시작으로 생협 운동을 시작하였고, 이후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대안을 찾아 나선 소비자들이 있어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또한 생협법이 제정되면서 소비자단체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정은미, 2006).반면, 광우병 파동, 멜라민 파동 등의 사건으로 인해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자 오히려 이들의 독점적인 지위가 위협을 받기도 했다. 웰빙 바람과 친환경 먹거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자본이 친환경 먹거리 사업에 투자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이들은 경쟁이라는 환경에 놓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꾸준히 성장해왔고,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한국의 주요 생협의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요 생협사업연합회 현황(2013년 12월 말 기준)단체명회원조합 수(개)조합원 수(가구)공급액(백만 원)두레생협연합회28142,359101,649아이쿱생협사업연합회77194,856427,900한살림연합21410,211304,452행복중심생협연합회1130,17016,900그 외 지역 생협1211,0357,951합계149788,631858,852자료 출처 : 입문 협동조합(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2015: 150)2. 협 그러나 이들의 대부분은 생협에서 자체적으로 설립한 연구소에서 진행한 연구들이다.생협 노동자의 등장은 지금까지의 조합원 활동과는 완전히 차원을 달리 한 것이다. 조합원 활동이 생활의 연장에서 해온 ‘생활 자체로서의 노동’이었다면, 노동자들의 노동은 기본적으로 임노동, 즉 ‘생활로부터 소외된 노동’이다(김기섭, 2012 : 163).3. 노동에서의 소외맑스는 인간소외의 상황을 크게 종교적 영역에서의 인간소외, 정치적 상황에서의 인간소외, 경제적 영역에서의 인간소외로 대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특히 가장 중요하고 다른 모든 소외의 근원이 되는 소외는 경제적 영역에서의 인간소외, 즉 노동의 소외다(정낙림, 1993: 22).맑스는 소외된 노동을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생산 과정으로부터의 소외’, ‘유적 존재로부터의 소외’, ‘인간으로부터 인간의 소외’ 이 네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다.노동자는 자신의 생명을 집어넣어 만든 대상을 전적으로 소유하지 못하게 되고, 자신이 만든 대상이 더욱 강력해질수록 자신은 더욱 약해지는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이로 인해 노동자는 더 많이 생산할수록, 더 적게 소비해야 하고, 더 많은 가치를 창조할수록 더 가치가 없어지게 된다.또한 소외는 생산의 결과뿐만 아니라 생산의 행위와 생산적 활동 자체의 내부에도 나타난다. 맑스는 생산물로부터의 소외도 이러한 생산 과정에서의 소외의 결과로, 이런 과정과 활동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임금을 얻기 위한 ‘강제 노동’을 억지로 수행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생산 과정으로부터의 소외’가 발생한다고 보았다.위의 두 가지로 인해 ‘유적 존재로부터의 소외’가 발생하게 되는데 노동이 ‘강제 노동’이 되고 임금 획득의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노동은 자유로운 활동이 되지 못하며 노동 생산물의 상실을 통해 자신을 의식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본질적 모습을 상실하여 수단화되게 되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이러한 소외들의008년에 현재의 ‘아이쿱생협연대’가 되었다. 생협연대를 설립한 것은 경영난을 겪던 지역 생협들이 효율적인 경영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은 물류사업을 통합하고, 조직을 분화하여 지역 생협이 적정 규모를 유지해 조합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하였다.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이쿱생협만의 ‘조합비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생협은 출자금 3~5만 원 정도를 납부하면 조합원에 가입할 수 있었는데, 아이쿱생협은 출자금 외에도 조합원들이 매월 조합비를 납부하게 하였다. 이 조합비를 물류비용과 조합운영에 사용함으로써 지역 조합이 물품 판매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조합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여건을 만들어주었다.또한 이 조합비 제도는 물품의 판매에서 발생하는 마진을 최대한 줄일 수 있게 되어 다른 생협 또는 다른 유기농 업체에 비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조합원 가입의 증가와 매출이 더욱 확대되는 효과를 발휘했다.이런 체계를 바탕으로 생협 최초로 인터넷 온라인 주문 시스템을 도입하였는데 이는 매장이 많지 않던 초기에 아이쿱생협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했다. 또한 자체 브랜드 개발, 자체 공방 설립 등을 차례로 진행하여 물품의 차별화를 꾀하고, 안정적으로 물품을 생산?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였다. 이렇게 사업을 성장시키는 와중에도 철저한 물품 관리로 조합원들의 신뢰를 얻었고, 지역조합은 다양한 조합원 활동을 진행하여 조합원들의 참여를 유도했다.이러한 다양한 도전과 활동으로 인해 아이쿱생협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한국의 생협 가운데서 가장 높은 매출액과 공급량을 가지고 있는 아이쿱생협은 단위 생협 80개, 조합원 218,585명, 매출액 4,834억 원, 158여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쿱생협의 주요 성장지표의 변화항목2008년2010년2012년2014년회원 조합(개)70757580조합원(명)47,830118,824170,127218,585연합회 직원(명)6291,0921,4682,328매출액 늘어감에 따라 이들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왔다.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는 자체적으로 매년 노동자들의 실태조사를 진행하거나 간담회를 통해 생협 노동이 나아갈 방향을 고민해왔고, 그 고민의 결과물이 ‘소유노동’으로 귀결되었다.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에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인간소외현상을 ‘소유노동’으로 극복하고 협동조합의 주인으로 노동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이광인, 2012: 2).소유노동이라는 개념은 2008년 ‘생협의 노동과 임금에 관한 연구 모임’이라는 노동자들의 모임을 통해 생겨났는데 이는 노동자들 스스로 만든 자발적인 연구 모임이었다. 이 모임에서 1년 동안 심도 있는 토론과 연구를 통해 소유노동의 체계가 만들어졌고, 이를 경영진과 직원들에게 제안하면서 소유노동의 내용이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현재 소유노동은 아이쿱생협 노동자들 일부에서 실험 중에 있다.아이쿱생협에서 소유노동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출자금을 납입해야 한다. 출자를 함으로써 생협에 단순히 고용되는 것이 아닌 생산수단을 소유하게 된다. 이는 협동조합에서 추구하는 ‘함께 소유하는’ 개념이 노동에까지도 적용된 것이다. 또한 앞서 아이쿱생협의 노동자들이 가장 다른 기업과 달라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직원의 주인의식’을 높여주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그리고 소유노동의 방식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임금체계의 변화도 필요하다. 원래 초기 아이쿱생협의 임금체계는 호봉제였다. 위의 연구모임에서 제기한 아이쿱생협 노동자의 가장 큰 문제가 이 호봉제에 대한 것이었다. 호봉제라는 임금체계는 근무 기간과 직급이 상승됨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방식인데 이는 직원들을 관료주의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구조조정과 경쟁이 치열한 일반기업과는 달리 협동조합은 관료주의에 빠지기가 더 쉽다. 그래서 고민한 결과물이 호봉제의 방식이 아닌 기본급을 연봉제로 변경하는 것이다. 이 기본 연봉은 개인성과에 부서, 팀 단위의 성과가 함께 평가되어 정해진다. 협동조합에서).
여성의 재생산권과 피임약 논쟁- 피임약의 의약품 재분류를 앞두고2015274001 장우정1. 들어가며지난 2012년 6월 17일, 식품의약품안전처(이후 식약처)는 의약품 재분류 안을 발표했다. 그 안에는 피임약도 포함되어있었다. 요지는 그동안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어있던 경구피임약인 사전피임약은 전문의약품으로, 전문의약품이던 사후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하는 내용이었다. 식약처는 변경의 이유로 사전피임약은 피임효과를 위해 장기간 복용해야하고, 여성 호르몬 수치에 영향을 미치고, 혈전증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투여금기 및 신중투여 대상이 넓어 복용 이전에 의사와 상담 및 정기적 검진이 필요하다는 것을 들었다. 그에 반해 사후피임약은 1회 복용이며 임상시험, 학술논문, 시판 후 조사 결과 등을 검토한 결과 부작용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이 재분류는 안전성과 합리성을 고려했으며 약리기전, 효능·효과, 용법·용량, 부작용, 외국 사례 등을 종합한 15단계의 분류세부기준에 따라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덧붙였다.그러나 이러한 재분류안이 발표되자마자 각계의 반발이 이어졌고, 이 재분류안은 무산되었다. 그리고 3년간의 유예기간을 가지면서 나온 연구결과를 토대로 다시 논의하기로 하였다. 식약처는 피임약의 경우 과학적으로도 사전피임약은 전문의약품으로, 긴급피임약은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나 그간의 사용관행, 사회·문화적 여건 등을 고려하여 현 분류체계를 유지하되, 피임약 사용실태 및 부작용에 대한 모니터링 결과를 토대로 재검토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2015년 12월은 식약처가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에 위탁한 피임약 실태조사 연구용역이 마무리되고 3년의 유예가 종료되는 시점이다. 식약처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외부 공청회, 전문가 의견 요청 등을 통해 최종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그래서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다시 피임약과 관련해 의약품재분류안이 나올 것이라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피임약 재분류와 관련해 지난 논의는 어떠했고, 앞으로의여부 등에 대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접근권이란 여성들이 자신의 선택을 실현하기 위하여 필요한 출산조절 정보와 서비스에 충분히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통제권은 임신과 출산뿐 아니라 섹슈얼리티를 포함한 재생산의 모든 영역에서 자기 통제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함을 뜻한다(배은경, 2005: 8). 이렇게 재생산권이란 개인의 혼인상태, 연령, 계급 등과 상관없이 성관계, 피임, 임신, 출산, 임신 종결을 비롯한 재생산활동에 대한 자유권적 권리이자 출산 이후 건전한 양육을 위한 사회적?국가적 책임까지를 포괄하는 사회권적 권리이다(양현아, 2010: 68).그러므로 피임을 포함한 임신과 출산에 관한 모든 논의는 위에서 이야기되는 여성의 재생산권을 중심에 놓고 진행되어야 한다. 이는 먼저 피임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안전한 의료 환경이 제공되어야 하고, 피임을 할 수 있는 여건과 자율성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피임약을 먹는 것은 여성이 주체이므로 여성의 생각과 현실에서의 경험에 대해 충분히 듣고, 논의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3. 피임약 재분류와 관련한 논쟁피임약 재분류와 관련한 논쟁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의견은 달리하지만 의학계와 약학계를 포함하는 의료계와 종교계, 그리고 여성계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이다.(1) 의료1) 의학계대한산부인과의사회(이후 의사회)는 일반 피임약의 10~30배에 달하는 고용량 호르몬 제제의 오남용으로 인한 위험성과 부작용, 현재의 부실한 피임교육, 피임 없는 성관계 증가로 인한 성전파성 질환(성병) 및 불임까지 이를 수 있는 골반염의 확산 가능성 등을 이유로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반대했다. 사후피임약은 계획임신을 위한 정상적인 피임방법을 사용하던 중 불가피하게 실패한 경우나 강간 등의 피치 못할 경우 응급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사후피임약이 아닌 정상적인 피임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했다.의사회에서 이야기한 정상적인 피임방법은 사전 피임이었는데 사전피임약 역시 안전한 복용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는 논의를 중단하고 이 약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책임과 의무를 다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 시민사회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성폭력상담소와 같은 여성단체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등은 사전피임약은 기존대로 일반의약품으로 유지하고, 사후피임약 또한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경실련은 법리적 측면에서 사전피임약의 전문약 전환은 여성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취약 층의 의료보장권을 침해하는 반면, 약리적 측면에서 과학적 타당성은 불분명하고, 전문약 전환에 따른 사회적 비용 발생과 그 부담에 대한 대책 등 사회적 영향에 대한 고려는 미흡하다고 밝혔다. 또한 사후피임약과 관련해서는 ‘응급성’이라는 효과를 위해서도 일반의약품 전환이 바람직하다고 했다.여성의 임신·출산 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는 재분류안을 놓고 보건복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정부가 진정 여성들의 건강을 우려한다면 모든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고 스스로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경구 피임약과 사후 응급 피임약 모두 일반의약품으로 허용하여 피임약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되, 철저한 복약 안내를 의무화하여 여성들이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했다.(4) 소결식약처의 재분류(안)이 발표되자마자 각계에서는 각자의 입장을 쏟아내었고,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정부는 호기롭게 재분류(안)을 발표했으나 반발에 부딪쳐 유예하게 되었다. 피임약 재분류와 관련한 주요 기관의 입장기관사전피임약의전문의약품 전환사후피임약의일반의약품 전환의료계대한산부인과의사회찬성반대대한약사회반대찬성종교계한국천주교주교회의-반대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의회-반대시민사회한국여성민우회반대찬성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반대찬성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반대찬성이러한 논쟁은 지금껏 제기되지 않았던 피임 전반에 대한 토론을 하게 만들었고, 피임약의 안전성에 대한 논의와 함께 피임약 복용의 주체인 여성들의 목소리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었다는 의의를 가진다. 꼭 필요에 의해서, 나 자신을 위하고 가족을 조절하기 위해서 먹어야 되겠다는 정신이 선 다음에 복용한다면 이런 현상(부작용)이 훨씬 적어지리라 봅니다.(「먹는 피임약, 마음 놓고 권하세요. 마음 놓고 잡수세요.」, 『가정의 벗』, 70/8, 재인용).50여년 가까이 여성들이 사전피임약을 이용하였고, 이는 일반의약품으로 약국에서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초기에는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있기도 했으나 지금껏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다른 의약품의 경우와 비교해서 높지 않고, 현재는 초기 도입되었을 당시보다 에티닐에스트라디올(합성에스트로겐의 일종) 함량이 훨씬 낮아져 부작용이 거의 생기지 않을 만큼 완화되었다고 한다. 또한, 정확한 복용을 지켰을 경우 상용되고 있는 피임법 중에서 가장 높은 피임성공률을 보인다. 이는 식약처의 재분류(안)이 발표되기 전 의사들이 주장했던 내용이기도 한다. 의사회는 지금도 사전피임약에 대한 오해를 풀고, 복용률을 높이기위해서도 의사와의 상담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두 번째로 사후피임약은 2001년 노레보정이 수입되면서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 일반적으로 성관계 후 24시간, 48시간, 72시간 이내에 복용 시 피임성공률이 95%, 85%, 58%로, 빨리 복용할수록 더 높은 피임효과를 볼 수 있다(박금자, 2002: 174). 작용기전은 사전 피임약과 동일하나 호르몬 함량은 약 10배 이상 높다. 의사회는 이 높은 호르몬 함량이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하면서 의사와의 상담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약사회는 사후피임약은 일회성 복용이고, 부작용의 대부분은 48시간이내 사라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실일까?세계보건기구 WHO는 사후피임약이 의학적으로 안전하고, 모든 여성에게 동일 용량을 처방하면 되기 때문에 의료인의 진단이 필요하지 않다고 평가한다(윤정원, 2013: 48). 그리고 대부분의 선진국가에서도 사후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후피임약을 복용했던 여성들이 구토, 는 현재 일반의약품으로 일반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쉬운 접근성에도 불구하고 사전피임약 복용률은 2%대로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피임약 복용률은 가장 낮고, 낙태율은 높은 국가에 속한다. 피임약 복용률이 낮으니 낙태율이 높은 것은 당연한 현상일 수 있으나 낙태 허용 범위가 포괄적인 국가들에 비해 낙태가 법으로 엄격히 금지된 우리나라에서 피임약 복용률이 낮고, 낙태율이 높다는 것은 의미 있는 현상이다(김동식, 2014: 76). 이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지난 재분류 논쟁에서 의사회와 약사회는 모두 여성의 프라이버시권을 들어 각자 다른 입장을 내놓았다. 의사회는 피임약 구입은 사적인 문제이므로 노출된 공간인 ‘약국’이 아닌 1대1의 진료실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약사회는 같은 이유로 친밀한 공간인 ‘약국’에서 지역약사와의 상담을 통해 구입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이야기했다.이는 ‘피임약 구매=숨겨야 하는 것’이라는 기본 전제가 깔려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피임약 복용률이 낮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피임을 하지 못한 책임은 여성에게 전가되지만 그러면서도 여성이 적극적으로 피임의 주체가 될 수는 없는 현실이 낮은 피임률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으리라 예상된다.남성이 피임기구 사용을 거부해서 경구피임약을 복용하려고 했던 사례 C가 같이 거주하는 부모님이 피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 봐 결국 피임약을 복용하지 못하고 임신하게 되었듯...(원영, 2006: 128)피임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교육이 전제되거나 여성의 자율적인 결정이 보장되지 않은 현재의 상황에서 식약처의 재분류(안)대로 사전피임약이 전문의약품이 된다면 피임약 복용률은 더욱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또한 전문의약품으로 전환되게 되면 의료비용이 상승하게 되어 저소득층이나 청소년들의 접근은 제한될 것이며, 병원이 많지 않은 농촌지역의 접근도 제한되어 의료보장권이 침해될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병원을 가야한다는 심리적인 압박, 시간적인 부담도 작용
성매매 특별법.... 과연 제대로 가고 있나?들어가며..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2004년 9월 23일, 많은 이들의 우려와 관심속에서 시행된 성매매특별법... 지금 어떻게 자리잡아가고 있을까?성매매특별법이 처음 시행될 때에도 그랬지만 현재에도 그 법률적 성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집장촌의 업소와 종업원이 감소하고 성을 사는 남성이 줄었다는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났다고 하기는 하나 그 대신 유사 성행위업소나 인터넷을 통한 성매매와 성매매여성의 해외진출 등 역기능이 더욱 많이 증가하였다는 것이다.‘2005년 성매매사범 집중단속 결과’에 따르면 경찰에 적발된 만 19세 이상 성매매여성 671명의 종사형태는 인터넷이 230명(34%)으로 1위를 차지했으며, 안마?이발소가 172명(26%), 휴게텔 등의 신종업소 138명(21%), 집장촌 42명(6%), 유흥업소 24명(4%), 기타 65명(9%)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단속이 강화되면서 성매매 여성의 상당수가 집결지를 이탈하여 음성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인터넷을 통한 성매매가 활성화 되자 청소년 성매매가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 청소년의 경우 92.5%가 인터넷 채팅을 통해 성매매를 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인터넷 성매매가 활성화되자 청소년은 더욱더 심하게 성매매에 노출되게 되었다.이렇듯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개선된 점이 거의 없어 보인다. 성매매는 더욱 음성화되었고 이렇게 음성화됨에 따라 성매매 여성의 인권은 더욱 보호하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성매매 여성들이 자신들을 상담하러 온 상담가를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이를 여성단체에서는 ‘세상에 대한 분노’라며 자신들의 눈으로 해석하고 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객관적인 현실을 자신들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성매매를 놓고 보더라도 현재의 주류 여성학을 하는 사람들과 주류 여성단체들은 성매매를 범죄로 규정하고 성매매 여성을 피해자로 규정하여 성매매를 근절시키겠다는 의지를 법적으로 반영한다. 그러권에서도 남성이 월등하게 많아 양성평등적인 입법안을 통과시키기 어려웠다. 남성이 여성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그것이 의도되었건 의도되지 않았건 남성의 편견과 남성중심적인 사고가 반영되기 마련이다. 성매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전에 남성들이 성매매는 승인해야 할 필요악이며 성매매 여성은 제거해야 할 죄악의 상징으로 규정하는 이중규범을 형성하여 성을 구매하는 남성은 옹호하고 성매매 여성은 타락하고 부도덕한 인간이라고 규정하였다. 이에 따라 근대 이후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에 의해서 성매매를 새롭게 규정지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된다.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성매매는 본질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제도이므로 추방되고 폐지되어야 할 대상이라 규정하는 한편, 성매매 성립의 성매매 여성은 옹호한다. 그러나 성매매추방과 성매매여성옹호라는 이분법은 전통적인 이중규범의 다른 형태의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또 다른 형태의 이중규범을 생산하게 된 것은 페미니스트 여성들의 대부분이 상류층이나 중산층 이상의 여성으로 이들의 계급적 편견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이렇듯 지금의 성매매특별법에는 의도되지 않은 계급적 편견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그리고 우리는 성매매나 성매매여성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성매매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성매매가 근본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 상황에서 성매매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느냐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옳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듯 성매매가 근본적으로 옳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사람은 성매매 자체를 반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면 성매매를 무조건적으로 반대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성매매가 뭘까??성매매는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바라보는가에 따라 개념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성매매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논성매매라는 것을 어떤 나쁜 행위를 뜻한다고 해석하면, 이 행위를 성매매로 생각할 수는 없고, 오히려 생물학적으로 정당화되는 패턴 행위, 즉 우정이나 복종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매매가 비난의 뜻을 포함하지 않은 표현이라면 이는 성매매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고, 성매매는 우리들 인간의 역사보다도 더 오랜 역사적 산물이다. 기원전 5세기의 바빌론에서는 종교적인 이름으로 성매매가 이루어졌고, 그리스?로마시대를 거쳐 차츰 상업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후 종교적인 이름으로 성매매는 탄압받아왔고 이에 따라 오늘날과 같이 성매매가 금기시 되게 되었다.성매매의 정의는 사회?경제적 관계의 변화와 함께 인간의 성에 대한 개념에 따라 변화한다. 최근에는 난교, 성적 폭력 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성매매의 기본적인 요소, 즉 교환관계 아래에서의 성 서비스에 초점을 두고 그러한 서비스를 둘러싼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시대에 따라서 다른 형태를 취하고, 그것들은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변수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이런 교환관계 속에서 성매매여성은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매매여성들에게 ‘몸을 판다’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성매매여성들은 ‘성노동을 한다’라고 말한다. 이는 성매매여성이 돈을 얻기 위해 일정기간동안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성매매여성은 그녀의 육체를 파는 것이 아니라 성적서비스형태를 판매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노동자로서 성매매여성과 다른 직종의 노동자나 서비스판매자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즉 성매매여성은 자신의 신체와 자아를 파는 것이 아니며, 그녀의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과 아무손해없이 거래할 수 있는 노동자들이다.성매매 어떻게 보아야 하나?성매매를 둘러싼 논쟁은 크게 도덕주의, 온정주의, 사회주의, 급진주의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도덕주의는 성매매가 도덕적?윤리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에 없어져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들은 성매매와 도덕적 윤리를 분인간의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만은 왜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두어 상품화해서는 안되다고 하는 것인가? 성 또는 사랑을 돈과 거래하는 것은 부도덕하다는 것은 어느 누가 규정할 수 있는 문제일까? 성매매가 본질적으로 부도덕하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깊이 있는 논의를 회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도덕담론은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을 과소평가하고 있고 성매매여성들의 인격을 파괴해왔다.온정주의는 성매매가 가지고 있는 직업적 위험성과 성매매여성들이 받고 있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으로 인해서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매매라는 직업이 갖고 있는 위험성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직업적인 위험성은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건설현장, 탄광촌등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나 직업적인 위험성 때문에 그 직업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그들을 위해 안전장치를 설치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니 성매매를 없애자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성매매여성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위험요소를 제거하자고 주장해야 옳을 것이다. 성매매에서 생겨나는 직업적인 위험성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라 할 수있다. 성매매가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성매매여성을 불법적으로 폭행하고, 성적으로 착취하는 일이 난무하는 것이다. 불법화된 성매매에서는 아무리 성매매여성을 피해자라 주장한다해도 성매매여성의 존재자체가 불법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성매매여성들은 성적, 경제적 착취와 폭력에 시달린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성매매여성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녀들의 직업이 떳떳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불법이기 때문이다. 불법적인 직업에서 불법적인 존재로 살아야 하는 한 그들은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사회주의는 성매매가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기 때문에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성매매를 사회경제적인 상황과 결부시켜 파악한 것으로 성매매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기시작해 오늘날의 부정적인 이미지의 성매매로 변화되어왔을 뿐이다. 인간의 성적욕구와 이에따른 성매매는 경제적인 사회현상이기는 하지만 이를 넘어선 인간의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경제체제가 변한다고 해서 인간의 성적욕구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마지막으로 급진주의는 성매매가 양성불평등의 권력관계를 내포하고 있는 대표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므로 폐지되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주류 여성단체들의 주장이라 생각된다. 이 논의의 출발점은 성매매를 ‘노동’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매매에서 여성은 남성의 성적만족을 위한 하나의 수단 또는 기구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성매매여성들 역시 남성들을 경제적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성매매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수단과 목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거래관계에서 서로를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인격적?도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취업을 할 때 고용자의 인격적인 측면에 관심을 가지는가? 대부분이 아닐 것이다. 경제적인 것에 목적이 있던 자아실현에 목적이 있던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선택을 할 뿐이다.성매매에서 불평등은 다수의 여성들이 다수의 남성에 비해 성적서비를 구매할 수 없다는데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에는 성매매추방이 아니라 여성참정권 획득과 마찬가지로 여성도 성매매고객권을 획득하는데에 있다.다른 대안이 없나??성매매에 대한 각국의 정책은 다양하게 보여진다. 이는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가 있는데 성매매행위자체의 처벌여부에 따라 금지주의, 비범죄주의, 합법적 규제주의로 분류해 볼 수 있다.금지주의는 모든 종류의 성매매 행위를 불법으로 간주하여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세부사항으로 우리나라처럼 성매매여성을 피해자를 보거나 성판매행위만 처벌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들 모두 금지주의에 속한다. 비범죄주의는 법적으로 성매매행위자체를 규제하거나 금지하지 않는다. 합법적으로 호객행위나 광고등을 처벌하는 규정을 두기도 하나 규.
대중가요 속의 여성의 이미지미디어 속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모습과 문제점을 찾아보려고 하려니 무엇을 해야할지 막상 떠오르지가 않았다. 미디어 속에서 여성이 왜곡되어 그려지는 것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영화, 텔레비전, 인터넷.... 고민하다가 결정한 것이 영화였다. 영화에서도 구체적으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여성의 모습을 연구해보려 했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두 편씩 김기덕의 영화를 봤다. 주변사람들이 내가 김기덕 영화를 보더니 점점 이상해져가는 것 같다는 얘기까지 할 정도였다. 빈집을 제외한 김기덕 영화를 다 보고 났을 때 든 느낌은 내가 처음에 의도하려했던 그러한 생각이 아니었다. 그래서 혼란이 왔다. 영화 속에서 상징이라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단순히 영화 평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과 나의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영화를 보고 레포트를 쓰기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영화를 본 시간과 돈이 아깝지만 눈물을 머금고 다른 주제를 선택하기로 했다. 영화문제는 조금 더 고민해서 학사논문 주제로 선택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다시 고민하다가 선택하게된 주제가 대중가요의 가사 속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모습과 남성 과시적인 요인이었다. 자료를 검색하다보니 그런 부류의 가사가 너무 많아서 정말 놀라웠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듣고 흘리던 노래들 속에서 그러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대중 가요는 오늘날 대중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이다. 대중들의 정감에 맞는 곡조와 대중들의 주요 관심사를 다룬 노랫말로 이루어진다. 노랫말은 특정 작사가에 의해 창작되기는 하나 무엇보다 대중의 공감을 얻는 것이 목적이므로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삶의 문제를 대중적 정서와 가치관에 부합되도록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노랫말의 내용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사랑과 이별에 관한 것인데, 이는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관심사라 하겠다. 이러한 대중가요 가운데 남?녀간의 문제, 즉 사랑과 이별을 다룬 것들은 거의가 남?녀의 이분법적 사고로 서로의 역할과 속성을 규정짓고, 강한 성차별 의식을 담고 있다. 이러한 노래들은 여성을 보는 시각과 남성을 보는 시각을 달리하고 있어 오늘날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남녀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어떠한 차별성을 지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먼저 남성 과시적인 내용이 있는 가사들을 중심으로 간추려 보았다.사나이 가는 길에 기죽진 마라 없어도 자존심만 지키면 눈물 따윈 내게 없을 거야(가슴을 활짝 펴라) 잘난 그녀 나를 떠난단 말에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아도 남자답게 그녈 보내줬지 -젝스키스 ‘사나이 가는 길’-시간이 흘러 어느덧 난 나이를 먹고 평범한 가정에 가장이 되어 토끼 같은 자식과 여우같은 마누라 이들을 위해 난 땀을 흘리며 살고 있죠 마치 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는 거죠 그리고 내 아들 역시 걸어갈 길이겠죠 이 한남자의 인생의 길을... -허니패밀리 ‘남자이야기’-왜 항상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모든 걸 이해할거라 믿니 너무 힘들어 나도 너처럼 기대 쉴 수 있는 어깨가 필요해 나도 때론 여자이고 싶을 때가 있어 힘이 드니까 너의 품에 기대어서 소리 없이 울고 싶을 때도 있는걸 알아 그래도 내게 너보다 좀더 큰 내 가슴이 있기에 -김도완 ‘남자는 때론 여자이고 싶다’-아무도 막을 수가 없는 너 누구도 말릴 수가 없는 너 태어나 한 남자로 사는 건 너무나 힘든 과정이지만 지쳐 쓰러져도 일어나 단 하루도 후회하지 않아 이렇게 사는 것이 남자들이 사는 세계 -프리스타일 ‘남자들의 세계-위의 가사들은 대부분 남성다움을 과시하고 있다. 남자로 태어나 힘들다고 말하지만 남자라 괜찮다고 말하고 자신들이 남자로 태어난 것을 과시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대부분의 가사내용이다. 젝스키스의 노래에서는 과도한 남성성의 표현을 볼 수 있으며 허니패밀리에서는 가정에서 가장은 남성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김도완의 노래는 남성이 좀더 큰 가슴을 가지고 있어 여성을 감싸주어야 하고 여성은 남성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존재로 그리고 있다. 프리스타일의 노래에서도 남성들의 세계는 뭔가 특별하다고 말함으로써 자신들을 과시하고 있다. 위의 노래들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많았다. 남자니까, 남자답게 사는 법, 남자다운 남자.... 이렇듯 남성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가사들은 흔히 차별적 사회화에 따른 남성다움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다음으로 여성을 왜곡하고 비하하고 있는 내용의 가사를 담고 있는 노래들이다.아픔을 달래는 여자 고개 숙여 우는 그 여자 이 세상에 약한 것이 여자 여자 여자 -설운도 ‘여자여자여자’-다시는 속지 않으리 마음먹어 보지만 또 다시 사랑에 무너지는 게 여자야 사랑을 위해서라면 모두 다할 수 있는 여자의 착한 본능을 이용하지는 말아 줘 한 여자로 태어나 사랑 받고 사는 게 이렇게 힘들고 어려울 줄 몰랐어 너를 욕하면서도 많이 그리울 거야 사랑이 전부인 나는 여자이니까 -키스 ‘여자이니까’-향긋한 모닝커피와 내 아침을 깨워주는 상큼한 입맞춤.. 아직 달콤한 꿈에 흠뻑 취해서 "조금만 더.." 그러겠지.. 하얀 앞치마 입고 내 아침을 준비하는 너의 모습 나의 삐뚤어진 넥타이까지도 모두 다 너의 몫일 꺼야 -젝스키스 ‘예감’여성을 비하하고 왜곡하는 가사들은 더욱 많았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그런 내용의 가사들은 제외시켰다. 그러한 것들은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그러한 노래의 문제점은 지금껏 여러 곳에서 많은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먼저 첫 번째 곡에서는 여성이 한없이 약한 존재로만 그려진다. 키스의 노래는 내가 지금껏 들어봤던 노래 중에서 최악의 노래였다. 노래의 가사를 여기에다가 다 실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곡에서 여성은 사랑을 위해서는 뭐든지 하고 사랑에만 매달리는 존재로만 그려진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사랑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사랑을 받기만을 기다린다. 떠나간 남자가 자신보다 예쁜 여자를 만날까봐 걱정이 된다는 나래이션이 깔리는 이 노래는 정말 최악 중에서도 최악이다. 마지막으로 젝스키스의 노래는 은연중에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인 지위를 그려내고 있다. 여성은 앞치마를 두르고 아침을 준비하고 남성은 넥타이를 매고 출근한다는...
기로의 선 노동계급한국의 노동계급이 하나의 진정한 계급으로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87년 대투쟁 이후부터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이런 발전을 중단 혹은 후퇴시키려는 중요한 변화가 발생했다. 국가는 노사관계 안정을 위한 새로운 시도를 했고, 자본 역시 노동에 대한 통제를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공세를 폈다. 현재의 노동운동 상황과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변화이다.※ 국가와 자본의 공세이른바 1980년대의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던 3저 호황이 끝이 나고, 한국경제는 일종의 저성장의 위기와 함께 일대 전환기를 맞이한다. 정부는 국면을 신공안정국으로 몰아가면서 전투적 노조집행부를 대거 구속하는 동시에 기업별 노사협상을 강조하고 부분적으로 노동권을 인정하는 등 산업평화를 권장하는 강온양면정책을 구사하게 되었다. 자본의 대응 역시 집합적 양태로 나타난다. 자본가들은 전노협의 결성에 맞서 전국경제단체협의회(경단협)를 결성하고, 동시에 '무노동 무임금‘의 전략을 구사한다. 또한 이른바 국제경쟁력제고라는 명분아래 자동화 등의 도입과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추구하는 이른바 ‘신 경영전략’을 시행하게 된다. 노조의 결성을 인정하는 대신 노사관계에 있어서는 성과급제의 도입하고 직무평가제의 재도입을 포함하는 새로운 인사제도를 도입하여 노사관계의 권위주의적 성격을 완화하려고 하다. 또한 노동과정의 유연성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자동화를 도입하고, 임시직과 시간제노동자들을 더 많이 고용하고 하청제도를 확대발전시켜 유연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그리고 노조를 불가피한 현실로 인정하기 시작하고 노조지도자들을 길들이고, 매수하려 했으며, 법적 제재를 동원하여 노조를 제약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이데올로기적 대응이 더욱 정교해져 각종 미디어를 동원, 국가경쟁과 산업평화, 노동 책임 등을 강조하는 신노사문화를 정착시키고자 하였다.※ 노동운동의 후퇴와 전진1990년 이후 확실히 노조조직률은 저하되고 집단행동 역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비관적으로만 보기에는 더 복잡했다. 조합원수의 감소는 세계화된 경제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노동집약적 ? 소규모 경공업에 한정되어 있었고 대기업 노조의 조합원수는 변함없는 수준을 유지했다. 특히 화이트칼라노조의 약진과 함께 1995년 11월에는 드디어 전국적인 연맹에 기초한 새로운 전국노조조직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결성하게 되고 정치영역에서도 노동세력을 대표하고 조직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민중당, 한겨레 민주당 등이 정치영역으로 들어오게 되지만 3% 미만의 저조한지지 속에 실패하게 된다. 이는 지속적인 안보 이데올로기의 영향과 보수적인 정치문화, 소수정당에 불리한 선거제도, 노조의 정치참여를 금지하는 법적 제재, 노동계의 정치적 차여에 관한 노조지도부 내부의 분열 등 많은 장애물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2000년 1월 30일, 최초의 노동자정당인 민주노동당이 건설 될 때 까지 노동운동 진영은 몇 번의 내분을 거쳐야 했다.※ 총파업1996-1997년 전 세계에 한국노동자의 투쟁성을 알리는 대투쟁이 발생한다. 1996년 12월 26일, 김영삼 정권의 노동법과 안기부법의 날치기 통과에 항의하여 이후 40여 일간 전개됐던 민주노총의 96-97년 총파업투쟁은 한편으로는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전개되어 왔던 총자본과 총노동간의 대립을 총괄하는 투쟁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투쟁의 승패와 관계없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세계화 시대에 다가 올 노동과 자본 간의 피할 수 없는 격돌을 알리는 서곡이었다.고용주에게 파업에 맞대응할 수 있는 임시노동고용권한과 해고권한, 복수노조허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3백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의 참여와 놀라울 정도의 계급연대를 보여주면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었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연대하여 이른바 한국 전쟁이래 최대 규모의 전국단위 파업이 3개월 동안이나 지속되게 된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성공한 것은 그것이 당시 한국 경제가 세계 경제체제에서 계속 흔들리고, 노동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고용주들이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면서 해고위협이 모든 노동자들에게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인들에게 절실한 문제에 관한 투쟁이었고 외부에서 국제노동기구(IL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자유노조연맹(ICFTU)등 강력한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의외로 복수노조 허용이라는 작은 대가를 얻는 대신 ‘무노동 무임금’,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인정금지, 전임노조지도부에 대한 무임금등의 희생을 치룬 채 막을 내리고 말았다.1997년 한국 총파업의 결과는 세계경제체제의 강압적 요구와 그것의 헤게모니적 이데올로기인 신자유주의에 의해 이미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유연성이 경쟁력과 경제적 성공의 동의어가 되는 포스트포드주의 생산체제시대에 한국경제를 더 유연하게 만들 제도적 틀을 요구하는 의견에는 막강한 지적 권위가 실리기 시작했고 반면 자명해 보이는 시장자유의 논리에 반대해서 형평성과 경제정의를 강조하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점차 고루하고 비이성적으로 들리게 됐다.※ 경제위기의 충격1997년 경제위기는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가? 경제위기는 노사정 이른바 3자체제가 일종의 사회조합주의 형태를 이루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노동운동은 극히 약화되고 있었다. 정치적 투쟁보다는 고용안정, 임금삭감의 반대 등 경제투쟁에 집중함으로서 안정화를 선택하고 있는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하였다. 비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다른 신흥공업국가와 달리 사회운동노조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했다. 작업장과 지역조직과의 연계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브라질이나 남아프리카처럼 노조가 지역, 이웃 빈민들과 연대하고 지역의 문제를 ‘이슈화’하는 운동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삼자개입을 저지하는 강력한 국가 법적, 정치적 제약이 있었고,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보다 한국의 실업수준이 매우 낮았으며 비공식 부문의 규모도 매우 작았다는 점 등이 작용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작업장 안의 문제에 집중하고, 소비와 관련된 지역사회의 문제 등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따라서 사회 조합주의적이기 보다는 경제조합주의 지향적이 되었고, 노동계급운동과 중간계급 주도의 사회운동 간의 분리를 낳고, 노동운동의 범위를 더 좁게 만들었다.※ 노동계급의 내적 분화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 노동계급의 뚜렷한 특성은 사회 인구학적 특성과 시장에서의 지위라는 두 측면에서의 동질성이었다. 이전의 노동자들은 가족배경이나 기술수준, 임금, 작업조건, 학력 등에서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차이들이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동질적이었지만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 피고용자들의 고용조건과 임금에서 중대한 차이가 나타났고, 1990년 이후에는 비정규직 고용이 증대되면서 정규직과의 차이가 점차 벌어지고 있는 노동시장에서의 양극화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및 노동복지에서의 차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특히 비정규직에서의 여성노동의 위치)의 이러한 내부분화가 실질적으로 노동운동의 연대를 흐리게 하는 요인들로 작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