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대학강좌: 사회과학과 사상학기:담당:연구주제: Niccolo Machiavelli 의 삶과 이론의 분석제출자:학과:학번:제출일:목차Ⅰ.서론1.주제의 범위 및 연구목적2.논문의 구성Ⅱ.본론1.Niccolo Machiavelli의 삶(삶의 경혐과 사상의 연결을 중점으로)2.Niccolo Machiavelli의 사상1)사회과학적 의미-군주론과의 연결(1)정치와 도덕의 분리(2)정치와 종교의 분리Ⅲ.결론1.연구 결과 정리 및 문제점과 해결책1)Niccolo Machiavelli의 사상에 대한 견해2)Niccolo Machiavelli의 사상에 대한 문제점과 해결책 고찰Ⅰ.서론1.주제의 범위 및 연구목적이번 연구는 「서양의 지적전통」을 바탕으로 쓴다. 그리고 Niccolo Machiavelli의 삶과 이론에 대해서 쓰고자 한다. 이론은 그의 정치사상을 군주론의 시각으로 쓴다. 그리고 그의 사상에서 사회과학적 의미를 부여할 때는 두 가지로 분류해서 설명한다. 특히 정치와 도덕의 구분 분석에서는 마키아벨리의 현실국가적 사상과 토마스 모어의 이상국가론을 비교하면서 마키아벨리의 사회과학적 사상을 좀 더 알기 쉽고 깊게 분석해본다.이 논문의 목적은 Niccolo Machiavelli의 삶을 분석하여 그의 사상이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분석해보고 그의 사상을 분석, 고찰하여 현실에서도 그의 이론을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없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기 위함이다.2.논문의 구성이 논문의 본론은 Niccolo Machiavelli의 삶과 이론 두 가지를 분류해서 설명한다. Niccolo Machiavelli의 삶은 그의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책을 통해 따라간다. 그리고 그 중간마다 그의 사상의 배경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건, 시기를 분석함으로써 단순히 사상가의 삶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이론과 연관된 적극적인 연대기를 쓴다. Niccolo Machiavelli의 이론을 설명할 때는 정치사상과 사회과학적 의미를 구분했다.첫 번째로 사회과학적 의미를 분석한다. Niccolo Mach인상이 무뚝뚝하고 약간 어정쩡한 말투를 가진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1469년에 태어나 1494년까지 메디치家의 통치하에, 그리고 그 후는 사보나롤라의 통치하에 있는 피란체에서 살았다. 사보나롤라의 몰락은 효율적인 공화제로 이르는 길을 열어 놓았다. 이 시점에서(1498)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외교관으로서 최초의 중요한 직위를 맡게 되었다. 29세의 젊은 나이에(내무, 군사 및 일부 대외문제에 관련된) 제 2 서기국의 서기장이 되었다.)→여기서 정치사상의 발생 요인중 하나를 볼 수 있는데 그 것은 바로 공화제와의 접촉이다. 마키아벨리는 공화제에서 관료로써 지내게 된다. 여기서 그의 관료로써의 임무가 중요하다. 그는 제 2 서기국의 서기장으로써 군사문제를 많이 다루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군사 대결장으로서 유린되던 이탈리아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 조직을 통해 이들과 같은 영토국가의 조직을 확보하고 또 뛰어난 군사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이때의 깨달은 점은 그가 군주론을 쓸데 많이 반영되었다. 그 것을 알 수 있는 점이 바로 26장의 『야만족의 속박에서 이탈리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권고』이다. 여기서 그는 이탈리아가 타국가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군주제의 강력한 무력을 가진 국가로 성장해야 한다고 설명한다.비록 그의 직위는 정책형성에 강력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었으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정치적 과정을 직접 관찰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과정은 나톨리의 군주제나 피렌체의 민주제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었으므로 주의 깊은 관찰자에게는 정치학을 가르쳐주는 참된 학교였다 할 것이다.→서기장이라는 직위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또한 많은 ‘외교’사절로 파견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절로 파견된 중에 그는 잔인하고 호전적인 체자레 보르지아를 만났는데 보르지아는 당시 26세 밖에 안 되었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공병가로 채용하고 있던 중이었다. 후에 마키아벨리는 그의 책 「군주론」에서 보르지아를 주인 때문에 순식간에 한심한 처지로 전락했다. 그래서 그는 포르투나, 즉 운명의 힘을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포르투나의 강력한 힘은 아무리 철저히 대비를 하고 노력을 해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비관적 운명론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포르투나는 결국 여자일 뿐이다. 여자는 강한 남자에게 복종한다” 라고 말한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성차별주의자로 매장당할 발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멋진 비유법이었다. 아무리 불운이 겹쳐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은 결국 성공한다는 것이다. ‘강한 남성적 힘(vir)’은 비르투(virtu), 곧 덕(德)의 속성이다. 덕을 잘 길러서 남보다 우수한 비르투를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의 재목이며, 개인이든 국가든 더 우수한 비르투를 소유할 때 번영할 수 있다라 하였다.) 이러한 ‘vir' 과 ’fortuna'의 관점에서 국가를 바라봄으로써 군주론에서 통치자의 자세에 대해서 더 깊게 설명할 수 있던 계기가 되었다.정리하자면 마키아벨리의 일생은 중간마다 상승세와 하락세가 존재했고 그 가운데 그의 사상을 전개해 나가는데에 중요한 경험을 가졌다. 첫 번째로 공화정 시기의 제 2 서기국의 서기장의 경험이다. 그는 그때 군무 쪽에서 활동하며 강력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선 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두 번째로 제 2 서기국의 서기장 때의 외교활동이다. 그는 외교활동을 통해 각 국의 수많은 지도자를 만났다. 그 중에서 체자레 보르지아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의 잔인하고 호전적인 성격과 놀랄 만큼 빠르게 결단을 내리고, 실행에 옮긴다는 것을 칭찬한다. 그리고 그의 저서 「군주론」에서의 이상적인 군주상으로 체자레 보르지아를 생각했다. 세 번째로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진 후 메디치家의 복권으로 인한 파면이다. 그 때 마키아벨리는 ‘vir' 과 ’fortuna' 의 관점에서 국가를 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2.Niccolo Machiavelli의 사상1)사회과학적 의미(1)정치와 도덕의 분리소위 ‘군주의 귀감’ 식의 문헌, 즉 지배자에 대한 달콤하고 충성스러운 조언이라는 전통을 전적으로 깨는 것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자기가 기술하고자 하는 것이 선량하고 점잖은 처신이란 무엇인가, 사회는 어떻게 지배되어야만 한다든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되풀이 강조하였다. 그는 다만 사회가 현재 어떻게 지배되고 있는가, 사람들은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가 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책의 내용을 분석해 보자 군자는 정치(국가)안정을 위해 권력의지와 수완 능력이 요구되는데 이것은 도덕과 정치를 분리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였다. 군주의 이익이 곧 공동체의 이익이자 국가의 이익이라고 정의했고 이 국가의 이익은 모든 다른 것에 우선한다. 국가의 생존과 국가의 권력 획득은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즉, 군주는 국가의 이익을 위하여 비도덕적인 일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것은 ‘더 큰 도덕을 위한 부도덕’)이라고 표현 할 수 있다.여기서 ‘더 큰 도덕을 위한 부도덕’은 이상국가가 아닌 현실분석을 통한 국가건설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통치자는 도덕적 감정으로 국가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진단하여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그 것이 국가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망설임 없이 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의 사회과학적이고 현실적인 사상을 더 명확히 알기 위하여 이상국가와 비교해본다.저자토마스 모어마키아벨리저서유토피아군주론국가론이상국가론(현실 부정)현실국가론(현실 직시)세계관국가는 고통 받는 인민을 위해 존재함국가는 하나의 예술작품인민은 국가를 구성하는 조각품국가〉인민인간관사회구조 때문에 인간이 악하게 된다.인간은 선하다-절대주의에 대해서 반대함군주가 국가가 되어 능력을 발휘인간은 본래 악하다-국가의 이익을 최대로 할 수 있는절대주의도 긍정마키아벨리는 현실을 직시했다. 사실 그의 군주론도 그 당시의 이탈리아의 정세에 의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가 외세의 무력으로 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고 하나로 통합되기를 진심으로 한히 여기는 것은 공화국을 파멸케 한다. 그렇지 않다면 종교의 결여를 일시적으로 메꾸어 줄 수 있는 군주에 대한 외경심에 의해 공화국이 유지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라는 말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종교를 주로 영적 힘이 아니라 강제력으로 간주하려는 근대 정치이론의 최초의 경우이다.)→즉 마키아벨리는 종교를 영적인 힘이 아닌 사회적 힘으로 인식했다. 그것은 사회통합 요소를 종교가 지닌 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영적인 힘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 종교가 사회적 강제력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인정했다.마키아벨리는 강제력으로서의 종교에 대해서는 전혀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종교적 입장에서 로마 교황권을 비판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로마 교황권이 도덕적 영감의 원천으로서는 완전히 실패했다는 점, 그리고 세속적 권력으로서 이탈리아의 재앙 이외에 아무것도 결과하지 않다는 점에서 비난했다.)→그가 정치사상에서 분리한 것에는 종교도 있다. 정치사상에서의 종교의 분리를 다른 표현으로 말할 수 있다. ‘세속화’가 바로 다른 표현이다. 종교로부터 생활과 사상의 세속화는 종교 일치에 의한 이상국가가 아닌 현실분석을 통한 국가건설을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세속화는 정치를 운명주의적 관점으로 보기보다는 현실주의적 관점으로 바뀌는데 일조 했다. 이를 통해 군주론을 보자면 통치자는 Fortuna(상황변동)를 분석 뿐만 아니라 변덕스러운 정세를 극복하기 위해 Virtu(현실적 실행능력 : 예측)을 가진자로 정의 내릴 수 있다. 즉 통치자는 상황인식을 통해 국가를 진단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측은 정해진 것에 따라 예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운명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반면 마키아벨리가 주장한 진단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정치를 주어진 것을 단순히 행하는 것(doing)이 아닌 만드는 것(making)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Ⅲ.결론1.연구 결과 정리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