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화와 예술프랑스 여성의 사회적 진출프랑스 여성이여 깨어나라!!Ⅰ매년 3월 8일 무슨 날인지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마 대부분 새 학기를 시작하면서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 버렸을 것이다. 이날은 여성들에게 있어서 자유와 평등의 꿈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뜻 깊은 날. 바로 세계 여성의 날이다. 문화어로는 국제부녀절이라고 하는 이날은 여성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업적을 전 세계적으로 기리는 날로 정치적 행사로 시작되어, 현재 세계 대부분의 나라의 문화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내가 프랑스의 여성의 사회적 진출에 관하여 쓰게 된 이유는 나도 한 명의 여성으로서 나의 인권과 평등이 세계적으로 어떻게 사회 속에 스며들었는지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이다.프랑스는 인권의 나라로 지칭 받을 정도로 굉장한 인권 국가고 알려져 있다. 또한 미국의 정치가, 교육자, 철학자이며 자유와 평등으로 건국의 이상이 되었던 1776년 7원 4일 독립선언문의 기초위원인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토마스 제퍼슨)은 “모든 사람은 두개의 조국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 다른 하나는 프랑스이다”)라고 할 정도로 프랑스를 인권의 고향 국가로 상당히 높이 평가했다. 그렇다면 프랑스의 모든 국민이 동시에 인권과 평등을 부여받았는가? 그렇지 않다. 안타깝게도 앙시앵레짐하의 지배아래 여성은 남성의 복종 대상이었을 뿐이다. 즉, 인권 국가인 프랑스는 여성의 인권에 있어서 그리 발전해 있지 않았다.Ⅱ1. 프랑스 여성의 어제와 오늘과거 프랑스의 제도앙시앵레짐은 프랑스어로 ‘옛 제도’를 의미하나 일반적으로 프랑스 대혁명 이전의 제도를 말한다. 16~17세기에 왕권신수설에 바탕을 둔 군주제이다. 앙시앵레짐 아래에서 가족 제도 및 가족문화를 지배한 것은 가부장제도로 이 제도의 가장 큰 피해자인 여성에 대해 알아 볼 필요성이 있다. 앙시앵레짐 하의 여성은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라기보다는 아버지나 남편의 부속물에 불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시대의 여성은 출생에서부이다.프랑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의 발판 ‘68혁명’프랑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은 역사적으로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68혁명’ 또는 ‘5월 혁명’ 으로 불리는 혁명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앞으로 68혁명으로 지칭하겠습니다.) 프랑스 68혁명은 프랑스드골 정부의 실정과 사회의 모순으로 인한 저항운동과 총파업투쟁을 뜻한다. 이 혁명은 교육체계와 사회문화라는 측면에서 “구시대”를 뒤바꿀 수 있는 기회로 보았다. 즉, 68혁명은 현재 가치와 질서에 저항한 사건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처음에는 파리의 몇몇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 행정부와 경찰에 대한 학생봉기로 시작했다. 이에 드골정부는 경찰권을 빼앗기 위해 저항을 진압하고자 했으나 이는 운동의 반발만 더욱 거세게 했으며, 라틴 지구육체경찰과의 가두전투를 이르렀고, 결국 프랑스 전야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켰으나 혁명이 계속해서 진행되지는 못하였으며 결국 68혁명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쳤던 68혁명은 프랑스에서 종교, 애국주의, 권위에 대한 복종 등의 보수적인 가치들을 여성의 평등, 성해방, 인권, 공동체주의와 같은 진보적인 이념들로 대체하여 사회의 주된 가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현재 이러한 경향은 지금의 프랑스를 주도하고 있다.)아래의 표는 프랑스 여성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정리한 것이다. )가족ㆍ여성 관련 법 변천사1792년 9월 혁명 법안9월의 혁명 법안 : 결혼을 똑같이 책임 있고 자유로운 의식적 개인 간의 시민 계약으로 규정.1801년『나폴레옹 법전』: 나폴레옹의 가부장적이고 반여성주의적인 시각이 그대로 반영된 법전.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서, 남성에게 아이를 낳아주기 위해 주어진 존재로 규정됨. 또 이 법전의 213항은 “남편은 자기 아내를 보호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라고 명시해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을 법으로 규정함.1940~1945년 비시정부『나폴레옹 법전』을 계승ㆍ강화해 여성의 역할을 철저히 주부간을 범죄로 인정함으로써 강간자에 대한 형사 처분이 가능해짐.1982년사회보장에 의한 낙태 비용 환불.1983년 루디 법여성이 그들의 성이나 그 성에 전제된 특성만을 이유로 직업에서 배제될 수 없으며(드물게 예외가 있지만), 모든 남녀 노동자들은 똑같이 취급되어야 함.2000년 6월 정치적 동등 법안세계에서 처음으로 인구 3,500명 미만의 시의회 선거와 면의회선거, 단기명 투표로 이루어지는 상원의원선거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선거에서 각 정당의 남녀 후보의 비율을 동일화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이른바 ‘남녀 동등법안’ 입법ㆍ공포.2001년남녀 직업 동등법 공포.2002년자녀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가족 성 관련법 공포.얼핏 보면 프랑스의 여성 역사가 약 200년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 이유는 1792년 9월 혁명의 법안에 따르면 결혼은 똑같이 책임 잇고 자유로운 의식적 개인 간의 시민 계약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1801년 가부장적이고 반여성주의적인 과거 조선시대 남성들의 태도와 비슷한 나폴레옹에 의해 규정된 나폴레옹 법전에 의해 오랜 100여 년간의 가부장제도 하에 여성들의 자유와 평등은 묵살되었다. 실질적인 여성의 사회 진출은 1945년 여성에게 처음으로 참정권이 부여된 후였다. 미국이 1920년, 영국이 1928년인 것에 비하면 매운 늦은 편이지만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1965년만 해도 프랑스에서 결혼한 여자는 미성년자로 간주되어서 본인의 은행 계좌도 남편의 동의 없이는 열지 못했고 직업 활동도 남편의 동의 없이는 할 수 없었던 것보다는 늦게라고 얻을 수 있다는데서 의미를 두어야 한다. 그 당시 대다수의 여성은 집안에서 육아와 가사 활동에만 전념하였고 간혹 자유영업을 하는 남편을 도와 같이 일을 하는 경우에는 월급 없이 무상으로 이하는 식이였다. 참정권 획득 후 20년 뒤인 1965년 민법이 배우자간의 평등권이 명시 되었으며, 결혼한 여성에게 남편 동 제도화 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1983년 루디 법에서는 여성은 단지 성이나 그 성에 전제된 특성만을 이유로 직업에서 배제 될 수 없으며, 모든 남녀 노동자들은 똑같이 취급되어야 함을 정의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양성 후보의 비율을 동일화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남녀동등 법안’이 입법, 공포하는데 까지 발전을 하였다.이와 같은 역사적인 흐름을 통해서 여성의 지위가 처음부터 남자와 동등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동양에서 여성의 지위를 억압했던 것이 유교주의라면 서양에서는 가톨릭이 같은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비록 짧은 시기에 끝이 난 ‘68혁명’을 거치면서 프랑스 여성의 위치는 점점 향상되었으며 과거 자신들의 열악한 환경을 깨닫게 되는 사회변화의 중요한 반환점이 되었다.또 하나의 혁신 『제2의 성』, ‘여성성’의 신화오늘날 여성억압의 원인과 상태를 기술하는 여성해방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운동을 지칭하는 페미니즘(Feminism)이란 용어가 생겨난 곳은 프랑스이다. 페미니즘은 19세기 초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자인 푸리에가 처음 사용했으며, 19세기 후반 여성에게도 남성과 같은 권리인 참정권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널리 통용되었다. 페미니즘의 시초는 자유주의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에 의하면 여성의 사회진출과 성공을 가로막는 관습적, 법적 제한이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의 원인이다. 따라서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기회와 시민권이 주어진다면 여성의 종속은 사라진다고 한다.)‘여성은 여성다워야 한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여성해방의 대표 주자인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여성으로 길들여 질 뿐”이라고 주장했다. 처음으로 근대적 여성 해방론에 대해 거론을 한 것이다. 여기서 그녀는 ‘여성다움’이란 애초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환경과 조건에 의해 강제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 ‘여성은 여성다워야 한다’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생각되는 새로림으로까지 이어져 패션의 대표주자인 코코샤넬은 허리선을 없앤 옷을 디자인하여 당시 여성의 몸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켰다. 계속해서 그녀는 여성 몸을 자유롭게 하는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그 당시엔 불가능했던 여성의 발목을 보이는 옷을 디자인했고 여성이 바지를 입는 등의 지금의 여성복의 패션을 만들게 되었다.)2. 프랑스 여성의 사회진출위와 같이 활발한 여성의 활동으로 프랑스의 모든 여성들이 자유를 얻게 되었다. 이런 사회적인 변화에의 발전으로 여러 가지 사회적 제도도 뒷받침되어 여성의 사회진출에 유날유역할을 하는데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진출에 영향을 끼친 요소들에 대해서 알아보자.프랑스와 우리나라, 누가 주방을 차지하는가?‘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먹이는 아빠. 애기를 안고 슈퍼에 장 보러 가는 아빠. 주말에는 아침을 준비하는 아빠’)근엄하고 무뚝뚝하며 말없이 가정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우리 사회에서의 아버지상과는 거리가 멀어 조금은 어색해 보이는 이런 아빠의 모습은 현대 프랑스에서는 보통 아버지들의 평범한 모습이라고 한다. 굉장히 가정적이고 따뜻한 느낌을 주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서 우리 아버지가 가정적이지 않고 따뜻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문화와는 다르게 여성의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 아버지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다음 제시하는 식사 문화에서 어떻게 다른지 프랑스 남성과 우리나라 남성의 역할을 비교해 보자.프랑스에서 식사 초대를 받았을 경우, 대개 프랑스의 대표음식인 와인 한 병과 작은 꽃다발을 하나 들고 예의를 갖추어 초대된 시간의 5분 정도 지난 후에 도착한다.(프랑스에서는 초대된 시각에서 5~10분 늦게 도착하는 것이 예의. 손님 접대 준비에 바쁜 사람들에게 시간을 주는 배려를 하기 위해라고 한다. 그러면 대부분 아내가 반갑게 문을 열어주고 그 뒤에서 앞치마를 두른 남편이 부엌에서 나온다고 한다. 손님식사 초대를 할 때 대부분은 남자가 음식을 준비하는 경우도 살펴 볼 수 있으며 손님들과 대화중에도 다음 음식을 내오는 등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