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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문화와 주거건축(사합원과 토루를 중심으로)
    중국의 문화와 주거건축 북경의 사합원과 복건성의 토루를 중심으로목 차 중국의 문화 1. 민간신앙과 주거공간의 구성 2. 중국의 가족구조와 주거공간의 구성 3. 중국 주택의 발전 과정 북경의 사합원 1. 사합원의 의미 2. 사합원의 특징 3. 사합원의 공간구성 4. 사합원의 다양한 구성 복건성의 토루 1. 토루의 형성 배경 2. 토루의 특성 3. 토루의 내부 구조 4. 토루의 종류중국의 문화북경의 토루 복건성의 토루 중국의 문화 1. 민간신앙과 주거공간의 구성 폐쇄된 공간구성의 개념은 둘러싸인 내부가 인간이나 신들을 위한 것이라면 그 외부는 영령들에게 남겨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악귀는 주택으로 들어올 수 없지만 조상의 혼령은 자손의 주택을 방문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 주택의 외부담장은 속된 세계로부터 내부의 복을 지킨다는 의미를 가졌다 . 예를 들어서 영벽은 , 직진하는 성질을 지닌 악귀를 막는다고 여겼다 . 정문과 측문 ( 또는 후문 ), 부적 , 태산석 ( 泰山石 ), 팔괘도 , 무서운 동물상 , 문신 ( 門神 ) 등은 이러한 중국인들의 민간신앙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경의 토루 복건성의 토루 중국의 문화 2. 중국의 가족구조와 주거공간의 구성 중국의 가족구성 : 소가족 , 대가족 , 직계가족 (stem family) - 중국은 전통적으로 대가족제도를 이상으로 여겼음 . ex) 오세동당 ( 五世同堂 ) - 가족적 윤리가 강조됨 . 가장 우선되는 통제권은 부권 ; 어머니는 아버지의 보조적 역할과 자녀양육의 책임을 짐 . 균분상속과 높은 사망률로 대가족 형태를 취하기 어려우며 , 대체로 2 대 , 3 대로 구성 . - 대가족을 유지하면서 큰 규모의 주택을 소유했던 것은 관리와 상인계층 . 대규모의 혈족이 하나의 확대된 가족형태를 이루면서 집단으로 거주하는 경우 ( 화남지방 ).북경의 토루 복건성의 토루 중국의 문화 3. 중국 주택의 발전 과정북경의 사합원중국의 문화 복건성의 토 루 북경의 사합원 사합원의 의미 - 4 동의 건물이 중정을 둘러싼다는 의미중국의 문화 복건성의 토 루 북경의 사합원 - 단층규모의 건물이 커다란 중정을 둘러싸는것이 특징 - 자연의 위험과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내부를 지킨다는 목적 거친 자연을 밖에 두면서 둘러싸인 내부에는 문명을 담는다는 중국인의 심층적인 공간의식 둘러쌈의 공간 : 유교적 교의에 명당개념이 부가되면서 중정을 핵으로 하는 중국 건 축의 공간개념이 완성 2. 사합원의 특징중국의 문화 복건성의 토 루 북경의 사합원 3. 사합원의 공간구성중국의 문화 복건성의 토 루 북경의 사합원 - 중정 ( 마당 ) 화북지방에서는 원자 ( 院子 ) 라고 한다 .중국의 문화 복건성의 토 루 북경의 사합원 - 상방 동 , 서 좌우의 건물은 아들 가족의 거주공간이 된다 .중국의 문화 복건성의 토 루 북경의 사합원 - 정방 4 동의 건물 중에서 가장 안쪽에 있으며 남쪽에 면하는 건물이다 . 최 연장자 , 조부모가 거주한다 . 조당은 정방의 중앙공간으로 써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공간이다 . 가족의 거실로 사용되며 주택의 실질적 , 상징적 중심이 된다 .중국의 문화 복건성의 토 루 북경의 사합원 - 후조방 중 규모 이상의 사합원의 정방 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 부엌이나 가사용 작업실 , 창고가 있다 . 또한 , 여자 하인들 거처 등의 공간이 된다 . 북경의 경우 후조방은 2 층으로 건축 되는 것이 관습적으로 허용되기도 한다 .중국의 문화 복건성의 토 루 북경의 사합원 - 도방 길에 면하는 바깥쪽 건물이며 , 손님과 하인의 거처와 창고 등의 공간이 된다 .중국의 문화 복건성의 토 루 북경의 사합원 4. 사합원의 다양한 구성중국의 문화 복건성의 토 루 북경의 사합원중국의 문화 복건성의 토 루 북경의 사합원 두채가 통합된 대규모 사합원 넓은 대지의 확장된 공간을 갖는 사합원복건성의 토루중국의 문화 북경의 사합원 복건성의 토루중국의 문화 북경의 사합원 복건성의 토루 · 역사적 배경 - 객가족의 이주가 지속된 데에는 중원에 대한 이민족의 진입과 지배가 시작된 이래 그 접적인 피해를 막기 위함보다는 지배체제에 대한 저항의식이 더욱 크게 작용 - 따라서 산간벽지에 거주하면서 주변으로부터 고립되어 스스로 도피하는 것은 일족의 단결심을 높이고 전래의 문화적 전통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임 . - 끊임없는 외부와의 싸움으로 이들의 주택도 결속적이며 집단방어적인 성격을 강하게 지닌 것으로 만들어 지게 되었음 . · 주변 환경과의 조화 - 토루는 건물의 모든 부분이 현지에서 생산되는 자연재료가 사용 - 거주인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자연스러운 형태를 지니며 , 풍토에서 파생되고 또한 것에 순응하는 주택이다 . - 토루가 주변 환경 과의 조화를 염두에 두고 건축된 것 - 풍수사상은 토루가 자리하는 방식과 그 공간 구조에 많은 영향을 미침 1. 토루의 형성 배경중국의 문화 북경의 사합원 복건성의 토루 2. 토루의 특성 - 일족인 대가족을 수용하는 거대한 집합주택임 - 한 변 또는 직경이 40-60 미터에 달하는 방형 또는 원형의 평면을 갖음 - 세 층 내지 다섯 층 높이 건물의 외벽은 전부 토벽으로 구축됨 . - 외벽이 흙으로 구축된 반면 , 벽의 안쪽 즉 내부는 모두 나무로 구축되어 있다 . 따라서 흙구조와 목구조가 결합된 구조체 - 건물의 중앙에는 대가족 전체의 제반 행사에 사용되는 공유공간이 마련 ( 공유공간 ; 조당 , 중정 ) - 내부에는 벽을 따라서 일정한 형식의 생활공간이 정연하게 배열 - 생활공간 내부에서 , 일층에는 부엌 , 식당 등 공적공간 , 이층에는 창고 , 그리고 삼층 이상에는 사적 공간인 와실이 위치 - 학당이나 부속실 등이 외부에 연이어 설치중국의 문화 북경의 사합원 복건성의 토루 3. 토루의 내부 구조중국의 문화 북경의 사합원 복건성의 토루 와 실 와 실 창 고 부엌 / 식당 주마랑중국의 문화 북경의 사합원 복건성의 토루 ◀ 토루 상층부에 있는 와실과 주마랑 일층의 부엌과 식당중국의 문화 북경의 사합원 복건성의 토루 · 공적 공간 - 조당 토루의 핵심인 조당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관혼상제 , 접대 , 회의 등 일족전체의 공적 활동이 행해지는 극히 중요한 장소 일족의 상징적 중심공간으로서 격조있게 계획됨 - 중정 중정은 주변을 둘러싸는 생활공간에 채광 , 통풍 , 환기 등을 부여하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이곳이 일족의 공동생활의 장 일족의 일상적인 여가와 생활을 위해 사용됨중국의 문화 북경의 사합원 복건성의 토루 · 사적 공간 토루에서 공적공간은 평면적으로 전개되는데 반하여 가족의 영역은 공적공간을 둘러싸면서 수직적으로 전개 . - 창고 토루의 2 층에는 창고인 ‘화창 ( 和倉 )’ 이 있음 - 와실 개인의 공간인 와실은 약 10 제곱미터의 면적으로 균등하게 나누어져 있는데 , 가장이나 노인의 경우에는 특별한 배려 없이 같은 크기의 방을 사용 · 연결 공간 ( 주마랑 ) - 상하부로 전개되는 가족의 영역을 연결하는 것은 서너 군데의 목조계단과 폭 1.2 미터 정도의 복도인 주마랑이다 . - 주마랑의 전면에는 난간을 설치하여 안전을 확보하고 , 강한 햇빛과 비로부터 실내를 보호하는데 그 상부에는 눈썹지붕을 매달기도 함 - 주마랑은 명목상으로는 공적공간이지만 실제로는 각 와실이 연장된 공간으로서 해당가족이 전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관례중국의 문화 북경의 사합원 복건성의 토루 부엌과 식당 부엌과 식당은 특별히 공간적으로 구획된 경우는 드물고 한 공간을 통합적으로 사 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공간적 구분이 있는 경우에는 보통 칸막이 벽으로 구분되는데 이 벽에는 요리를 내보내는 작은 창이 뚫려 있어서 기능적으로 서로 연계되도록 한다 . 이곳에서 ‘반청 ( 飯廳 )’ 이라고 부르는 식당은 가족모임의 장소이고 동시에 손님을 맞아 담화 하는 곳이다 .중국의 문화 북경의 사합원 복건성의 토루 · 군체주택 - 거대한 고층의 사합원을 연상시키는 건물 여러 채의 건물이 높이와 크기에 따라서 위계적으로 배열되어 하나의 커다란 건축군을 이루면서 주변의 자연에 순응하는 모습을 취하는 집합주택 4 . 토루의 종류중국의 문화 북경의 사합원 복건성의 토루 · 방형토루 - 방형토루의 평면은 반듯한 모양을 취함 옆으로 약간 긴 사각형의 건물이 많기는 하지만 , 정방형을 취하는 건물도 적지 않다 . 보통 두터운 벽체로 둘러싸인 口자형 건물의 중앙에 중당이 설치되는 것이 보통이다 .중국의 문화 북경의 사합원 복건성의 토루 · 원형토루 - 외부 보통 직경 40-60 미터 , 높이 12-13 미터의 둥근 외벽을 갖는 거대한 원통의 형상 벽의 두께는 아래가 1 미터 이상이고 상부 꼭대기도 60-70 센티미터가 넘는다 . 흙덩어리를 형틀에 쑤셔 넣고 다져서 차곡차곡 쌓아가는 방식으로 구축된 벽체는 다소 거칠지만 박력 있는 모습을 지닌다 . 외벽에 흰색의 회벽칠을 한 경우도 있지만 , 보통은 특별한 마감을 하지 않고 자연의 상태를 그대로 두어 부드럽고 강건한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의 문화 북경의 사합원 복건성의 토루 - 내부 벽의 외부는 흙으로 두텁게 구축되지만 내부는 벽을 따라서 수많은 생활공간 즉 거실과 부엌 , 식당 , 창고 등이 줄을 지어 배열 건물의 중앙에는 커다란 중정이 있고 , 그 중앙에 원형의 건물의 후면부에 위치한 공간이 조당으로서 , 주택의 상징적 • 실질적 중심이 되는 곳이다 . 조당은 중축선상에 놓이며 맞은편에 문청 즉 대문이 위치한다 . 외곽부 건물의 일층은 부엌 , 식당 또는 객실로 , 이층은 식량 등을 보관하는 저장고인 화창으로 , 그리고 삼층 이상은 가족들을 위한 거실로 사용된다 . 원형 토루의 경우 거실은 모두 같은 모양을 취하는데 , 외벽 쪽보다 복도 쪽이 약간 좁은 사다리꼴이다 .{nameOfApplication=Show}
    생활/환경| 2011.12.08| 32페이지| 1,000원| 조회(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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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물에서의 자연채광방식
    자연채광방식자연채광의 종류 직사일광 , 천공광 , 담천광 , 반사광이 있고 직사일광은 광원으로 직접 이용되기에 유해하고 변동이 심하기 때문에 건축물의 채광 계획에서 쓰이는 광원은 직사일광보다 천공광 , 반사광이 쓰인다 . 1) 직사일광 – 태양으로부터 방사되어 지구에 도달하는 빛 2) 천공광 - 맑은 날 태양으로부터 방사되어 지구에 도달한 빛 중 대기층에서 산란 또는 흡수되고 그것이 다시 직접 또는 산란을 반복해서 지표면에 도달한 빛 3) 담천광 – 흐린 날일 때 구름에서 확산 투과 또는 반사되어 지표면에 도달하고 , 이것이 다시 구름에서 반사된 빛4) 반사광 – 직사일광은 시간에 따라 조도의 변동이 심하고 실내가 열적으로 과열되기 때문에 반사광은 실내 조도원으로 사용된다 . 자연채광의 설계에 있어서는 천공의 최소설계기준이나 혹은 천공의 최저상태를 알아야만 하는데 , 이는 천공으로부터 도달하는 태양의 위치 , 대기조건 등에 영향을 받고 있다 . 청천공 : 천공광의 휘도와 색도는 주로 대기의 혼탁도와 태양고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 담천공 : 담천공 상태는 영국이나 스칸디나비아 그리고 북서 태평양 지역 같은 북쪽 기후에서 1 년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주광 계산을 위한 표준천공으로 정의되었으며 , 이 천공은 지평선에서부터 천장까지 약 1:3 의 비로 증가하는 불균일한 밝기 분포를 가지고 있다 .3) 부분 담천공 : 부분 담천공은 내포하고 있는 무한한 변화 가능성 때문에 이 천공 의 휘도를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4) 인공천공 : 모형실험을 통하여 주광의 영향을 예측하고자 하나 실외 조건의 기후 변동이 심하여 연구의 한계가 있으므로 균일 휘도 또는 CIE 휘도 분포를 가지는 표준 담천공의 인공 천공을 활용한다 .자연채광의 방식 채광이랑 실내에 주간의 자연광을 도입하여 바람직한 빛의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 채광방식은 일반적으로 측창채광 , 천창채광 , 정측창채광으로 분류된다 . 1) 측창채광 – 벽면에 대하여 일박적으로 연직인 창에 의한 채광을 말하며 , 이 중 벽의 한 면에만 채광하는 것을 편측채광이라고 한다 . 일반적으로 편측채광은 방구석의 조도가 부족하며 , 조도 분포가 불균형하고 , 방구석의 주광선 방향이 저 각도로 되는 등의 문제점이 있다 . 그러나 편측채광은 건축설계상 무리가 없고 , 문제점 또한 인공조명으로 보완할 수 있다 . 마주보는 두 벽면에 채광하는 측창채광을 양측채광이라 하는데 , 채광량적으로는 유리하지만 주광선이 두 개로 되어 그림자가 나누어짐과 동시에 분위기도 둘로 나누어질 단점이 있다 .2) 천창채광 – 지붕면에 있는 수평 또는 수평에 가까운 창을 천창이라 하고 , 그것에 의한 채광을 천창채광이라 한다 . 천창채광에서는 편측채광의 문제점인 방구석의 저조도 , 조도분포의 불균형 , 방구석의 추광선 방향의 저 각도 등은 해소된다 . 그 대신 시선방향의 시야가 차단되므로 폐쇄된 분위기가 되기 쉽다 . 또한 천창은 평면계획상 하기 힘들고 구조시공과 비처리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 3) 정측창채광 – 지붕면에 있는 수직 또는 수직에 가까운 창에 의한 채광을 말한다 . 측창을 실내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면 , 수직인 창 배치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보통이다 .설비형 자연채광방식 1) 개요 - 경제성을 위주로 설계되어 왔던 건축물들이 이제는 인간성의 회복과 생활환경을 자연과 조화 시키려는 움직임으로 대체되고 있다 .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자연광에 의해서 얻을 수 있는 쾌적성이나 정신적 안정감이 중요시됨으로써 자연채광의 중요성이 더욱 크게 인식되고 있다 . 따라서 건축적인 채광수법으로는 실내에 자연광을 유입할 수 없는 곳에 여러 가지 설비를 이용한 채광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자연광의 유입을 극대화 하려는 노력이 일어나고 있다 . 2) 종류와 적용방법 ① 건물의 일영부에 태양광을 도입하는 방법 ② 건물의 중정이나 아트리움에 태양광을 도입하는 방법 ③ 건물의 내부나 지하실에 태양광을 도입하는 방법 3) 태양광 자동 추미 방식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이용하여 태양광을 자동적으로 추미하는 방식으로 , 건물의 옥상에 자동추미구동장치 ( 반사거울 ) 를 설치하여 거울의 반사광을 흡수부를 통해서 벽면 빛 지상의 소정위치에 조사하는 방식이다 .4) 태양광 수동 추미 방식 이 방식은 태양광의 위치변화를 미리 컴퓨터로 계산하고 , 최적반사각도에 적합하도록 반사거울을 설정함으로써 반사광을 건물의 일영부와 중정 등 소정의 위치에 조사하는 방식이다 .5) 광덕트 방식 채광덕트는 외부의 주광을 덕트를 통해 실내로 유입하는 장치이고 태양광을 직접 도입하기 보다는 천공산란광 즉 , 낮 기간 중 외부조도를 유리면과 같이 반사율이 매 우 높은 덕트 내면으로 도입시켜 덕트 내의 반사를 반복시켜가면서 실내에 채광을 도입하는 방법이다 .6) 광선반 방식 측창의 외부나 내부에 알루미늄이나 은도금금속과 같은 반사율이 높은 재질을 사용하며 외부의 주광을 측창을 통하여 실내에 유입시켜서 실내 시환경을 향상시키고 인공조명으로 사용되는 에너지를 절감하는 장치이다 .7) 광화이버 방식 태양의 위치변화 ( 태양고도각 , 태양방위각 ) 를 시각 파라미터로 하여 연산제어부로 산출하여 추미함으로써 태양광을 콜랙터로 집광하여 광화이버 케이블로 도광하는 장치를 말한다 .8) 선 스쿠프를 이용한 자연채광 홍콩 상하이 은행본점의 신축 계획에서 중요한 목적의 하나는 지상층에 잇는 플라자 에 가능한 매력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었고 , 이를 위하여 선 스쿠프를 이용한 자연채광을 고안하였다 . 건물 외부의 선스쿠프는 1 년 내내 태양을 추적하여 2 층 높이를 지닌 11 층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머리 위를 아무 지장 없이 통과하여 건물 내부열로 향하여 햇빛을 반사하고 있다 . 내부의 거울은 아트리움 윗부분 전체에 걸쳐 만곡한 스크린을 형성하여 트인 곳을 거쳐서 유리 소피트를 투과하여 , 플라자 바닥까지 자연광을 비친다 .{nameOfApplication=Show}
    공학/기술| 2011.12.08| 12페이지| 1,000원| 조회(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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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거와 주택의 흐름에 대한 이해와 이상적인 미래 주거방향
    목 차1. 주거와 주택의 의미2. 주택의 발생과정1) 인간의 집짓기 : 집의 발생2) 주택의 발생 시기3. 초기주택의 형태와 변화1) 구석기 시대 동굴주거2) 신석기 시대의 수혈주거3) 청동기 시대의 주거4) 초기 철기시대의 주거4. 이상적인 미래주거방향1. 주거와 주택의 의미주거 : 머물러 살음. 어떤 곳에 자리 잡고 삶, 또는 그 집을 말한다.주택 :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지은 집. 주택이라는 말은 머무를 주(住)와 집(宅)의 합성어로서 그 뜻은 사람이 들어와 사는 집을 말한다. 이 말은 순수한 우리말인 ‘집’에 대한 한자어로 외래어이며, 같은 한자어인 주거(住居)와 유사하나 주택이 집 그 자체의 건물만을 지칭한다면 주거는 집에서 이루어지는 생활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2. 주택의 발생과정1) 인간의 집짓기 : 집의 발생인간이 집을 짓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역시 추위와 비바람, 눈보라 등의 혹독한 자연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필라레테에 따르면 건축의 본질이란 원래 ‘필요’에 의해 창출되는 것인데, 천상에서 추방당한 아담은 비와 햇빛을 피하기 위하여 자신의 팔로 몸을 가리는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식으로는 충분치 않았으므로 원시 오두막을 짓게 되는데 이로써 아담은 최초의 원시 오두막의 건설자가 된다. 이러한 모습들은 초기에 인간이 왜 집을 짓기 시작하였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원시적인 단계에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나가기 위한 생존의 필요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는 장치로서 집을 만들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필라레테는 집을 짓는다는 것은 인간이 음식을 먹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고 단언한다. 집을 짓는 것은 인공 환경을 통하여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유리한 삶의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나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2) 주택의 발생 시기한반도에서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주택을 짓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시대에 들어서면서 부터이다. 구석기 시대에는 아직까지는 인공 환경을 구축할 줄발생한다. 초기에는 일정 깊이로 땅을 파고, 그 위에 풀잎 등을 이용하여 지붕을 덮는 방식으로 집을 지었는데 이를 움집(또는 수혈주거)이라 부른다. 한반도에서 신석기 시대의 존속연대는 대략 기원전 5000년부터 기원전 1000년 정도까지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인공적인 주택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7000년 정도 이전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신석기 시대에는 이전의 채집경제에서 농경, 목축 등이 초기적으로 발생하는 재배경제 단계로 이전해 나갔는데, 아직 채집이나, 수렵 등이 병행되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따라서 주거지가 발견되는 장소는 강가나 바닷가, 호수 근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시기에는 돌을 갈아 만든 도구와 진흙을 불에 구워 만든 그릇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신석기인들이 구석기인들에 비하여 발달된 도구를 사용하였고, 새로운 요리법과 발전된 저장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3. 초기주택의 형태와 변화주택의 형태를 시대를 따라 끊임없이 변화되어 왔다. 이는 곧 인간이 자신이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환경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조정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석기 시대 초기의 움집은 땅을 일정깊이로 파고, 그 위에 지붕을 덮는 방식이 이용되었는데, 이는 나름대로 혹독한 자연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노력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땅을 파고 집을 지었던 데에는 두 가지 정도의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땅위가 아무리 추워도 땅을 파내려 가면 따뜻해질 수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움집 내부에서 불을 피우는 경우 천장에 불길이 닿지 않게 하려면 일정한 높이가 필요한데, 땅을 팜으로써 천장의 높이를 높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집의 형태에서 자연환경을 극복하기에 적합한 인공 환경을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을 볼 수 있다.이후 주택은 시기에 따라 형태상의 변화를 보이게 되는데, 움집자체도 변화가 이루어지고, 청동기, 철기시대에 이르면 여전히 움집도 사용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형태의 주택이 출현한다 평면으로 변화한다. 평면이 원형에서 네모형으로 변한다는 것은 인간의 도형지각 능력이 상당히 발전하였다는것을 보여주는 것일 뿐 아니라 공간사용상의 효율성도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②청동기, 초기 철기 시대로 오면 고상주거가 출현한다. 이는 오늘날의 원두막과 같은 형태로 추정된다. 진서 사이전 숙신씨조에 ‘여름에는 소거에 살고, 겨울에는 혈거에 산다.’는 기록을 통해 추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계절에 따라 사용하는 주택이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움집은 겨울철의 추위를 막는 데에는 유리한 형식이지만여름철에는 너무 더워서 사용하기 불편했을 것이고 이러한 불편함 때문에 시원하게 지낼수 있는 원두막 형태의 집이 만들어졌을 것이다.③같은 시기에 통나무집(귀틀집)이 출현한다. 통나무집이 생겨났다는 것은 벽이 수직으로만들어졌음을 의미하고, 빗물이 들이치지 않으면서도 채광을 위한 창을 낼 수 있었음을말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벽이 수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지붕을 만들기 위해보가 사용되고, 기둥도 수직으로 설치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므로 오늘날 주택의 기본골격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역시 삼국지 위지동이전변진조에 ‘그 나라에서는 집을 만드는데 목재를 옆으로 길게 뉘여 쌓아 만든다. 그런데그 모습은 마치 죄인을 가두어 두는 감옥과 유사하다.’라는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이와 같이 주택의 초기적 발생과 변화과정을 살펴보면 인공 환경을 이용해서 부적합한 자연환경을 이겨내며, 그것을 생활에 적합하게 조정해 나가는 과정을 잘 알 수 있다. 이는 곧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며, 인공 환경을 통하여 자신의 생활환경을 창조해 가는 과정이다.1) 구석기 시대 동굴주거구석기 시대의 동굴주거는 자연적인 동굴을 인간의 주거로 이용하는 방식으로 비바람을 피하는 거처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아직 집을 지을 줄 모르는 인간은 자연적인 동굴을 거처로 삼아 수렵과 채취생활을 영위한다.2) 신석기 시대의 수혈주거동굴로부터 벗어난 인간은 땅을며, 한곳에 오래 머무는 장치로서 집이 필요해진다.3) 청동기 시대의 주거수혈주거의 모습은 그대로 이지만, 평면은 네모형태의 모습을 갖게 되고, 부분적으로 수직의 기둥이 세워지는 모습을 갖게 된다. 평면에서는 명확한 구획은 아니지만 남성공간과 여성공간의 개념적 분화 현상이 보인다.4) 초기 철기시대의 주거귀틀집이라 부르는 통나무집이 만들어지고, 고상주거가 생겨난다. 벽체가 수직으로 만들어지고, 계절에 따라 다른 형태의 주택이 이용된다. 고상주거나 귀틀집은 오늘날에도 원두막의 형태나 산간의 귀틀집으로 남아있다.5)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이 시대 때의 주거형태는 기둥과 도리·보를 쓴 목조가구식구조였다. 한편 서민주택은 겨울에는 온돌을 만들어 추위를 막았다. 고구려의 가난한 사람들이 만들었던 장갱, 즉 온돌은 점차 남쪽지역으로 전파되어, 삼국시대 말기에는 백제에서도 일반적인 구조가 되었다.또 이때에는 조선시대의 주택이 안채·사랑채 등이 따로따로 건축된 것처럼 기능에 의한 공간분화가 이루어졌다.계급에 따른 집은 다음과 같은 제한을 두고 있었는데 진골계급의 주택, 즉 당시 왕궁 다음에 오는 귀족계급의 주택의 실의 크기는 24척을 넘을 수 없었고, 지붕은 기와지붕을 하되 막새기와를 쓰지 못하였고, 합각(合閣)에는 현어(懸魚)로 장식하지 못하였다. 또 금과 은, 유석으로 장식하지 못하고, 오채(五彩), 즉 청·백·적·흑·황의 다섯 가지 색채로 장식하는 단청(丹靑)을 칠하지 못하였다. 이 밖에도 엄청나게 많은 제한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귀족계급의 주택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화려한 주택이었다.6) 고려시대이 시대의 주택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주택을 계승한 것이었고, 이것이 점차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천되었으리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왜냐하면 주택건축이란 일단 건축되면 상당한 기간 그 건축에서 생활하며, 설사 왕조가 바뀐다고 곧 건축의 형태가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고려의 주택 역시 목조가구식으로 귀족계급은 기와집이었고, 서민계급은 초가에서 생활하였다고家禮》에 따라 사서(士庶)로 하여금 가묘를 세우게 하였다.이로써 조선시대의 주택, 특히 양반집에 건축되었던 사당(祠堂)이 고려말부터 건축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려시대의 주택은 모두 단층으로 건축된 것을 알 수 있다.전국토의 3분의 2가 산지로 된 우리 나라의 경우 음양오행론에 맞추어 조화를 이루도록 단층의 주택을 주로 건축한 것임을 알 수 있고, 또 고려 시대 초기부터도 풍수지리설이 택지선정에 깊은 영향을 주어온 것을 알 수 있다.7) 조선시대조선시대의 집을 짓기 위해서 지상에 집터〔垈地〕를 마련하고, 이 집터 위에 집을 앉히는 배치계획에는 일찍부터 풍수지리에 입각한 바 이는 이미 고려시대의 주택에도 이루어졌던 것으로 생각된다.다음으로 배치와 평면에 영향을 준 것은 기후적인 원인이라 생각한다. 여기에는 춥고 긴 겨울에 거처할 온돌방, 특히 안방과 더운 여름에 거처할 마루방·대청 그리고 부엌이 어떠한 모습으로 결합되느냐에 따라 많은 평면의 변화를 볼 수 있으나, 대체적으로 서민주택의 평면 형태는 우리나라의 다양한 기후지역에 따라 함경도지방형·평안도지방형·중부지방형·서울지방형·남부지방형·제주도형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조선시대 주택의 공간구성은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이 다르고, 또 이 공간들은 서민계급, 중·상류계급은 거의 공통적인 점이 많으나, 서민계급은 신분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중·상류계급보다 열등한 공간구성을 이룬다. 따라서 대표적인 상류주택의 공간구성만을 고찰하고 서민계급과 중류계급은 이에 준하여 생각하도록 한다.-내부 공간① 안채 : 주로 부인들이 거처하는 공간으로 주택의 가장 안쪽에 자리한다. 몸채·내당 등으로 불리며 그 세부구성은 다음과 같다.㉠ 안방 : 안주인의 일상거처실로서 이 방에서 식사도 하고 취침도 한다. 이 방에는 직계존속 이외의 남자 출입은 금지된다.㉡ 대청 : 대청은 우물마루로 된 바닥과 서까래가 노출되는 연등천장을 이루는데, 이는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있어 이들 두 방에 드나드는 전실(前室) 역할을 하며,단다.
    공학/기술| 2011.12.08| 10페이지| 1,500원| 조회(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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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무스주택, 사합원, `ㅁ`자집 비교분석
    DOMUS 주택북경 사합원‘ㅁ’자 집형성배경지리적특징높은 산맥들이 많으며 해안선의 굴곡이 심함산간분지가 고립되어있음대부분의 주요한 도시는 평지나 분지에 위치 -enclosure(둘러쌈)와 축성(대칭성)국토의75%가산지.완만한산봉우리,작은구릉이모인준평원,산간분지기후적특징지중해성 기후를 나타낸다. 겨울에는 온화하며 비가 많이 내리는반면, 여름에는 덥고 건조함북위 4°~53°31'에 걸치는 다양한 기후대여름과 겨울에 기온과강수량의 특징이 뚜렷함지형과 지역에 따라다양한 기후사상적특징인간중심적,과학적,합리적,자연주의적문화세계관, 우주관 -우주의 중심으로서의 주거 (중화사상)유교적 예의 - 남존여비, 장유유서, 남녀유별,종급제, 봉건관료제 (토지분급과 계급)양택풍수 - 방위관음양오행론, 도참사상 - 풍수지리에 영향을 줌남존여비사상 - 안채와 사랑채 분리제도적특징신분제도 - 시민과 노예로 나뉘어짐가족제도 - 대집단가족 (부계대가족제도) - 오세동당(五世同堂)신분제도 - 양반의 주택인 반가와 서민의 주택인민가로 나뉨신분에 따라 부지면적, 주택공간차이, 건축적차이로 드러남가족제도 - 선조숭배, 확대가족사용계층상류층 단독주택도성내의 귀족관리사대부계층주거건축특징?규모의 확장?그리스 페리스타일의 도입?아트리움 중심의 외적 공간과페리스타일 중심의 내적 공간의 분리` ?폐쇄적, 내향적 형상, 축 중심의 위계 공간?형태적 다양성 속의 구성 원리의 일관성?역사적인 지속성: 급격한 변화가 없음?기후적 특성북부지방 : 겨울이 길고 추움(겹집 구조)남북지방 : 여름이 길고 무더움(홑집구조)마루구조와 가옥 구조 형성?계층성신분의 계층에 따라 다른 주거형태?내외사상으로 인한 공간분리주거변천과정?에트루리아 주택에 근원을 두고 발전B.C.6C경 에트루리아에서 아트리움이 있는주택이 형성되기 시작헬레니즘 문화의 영향 (규모확대)B.C.3C이후 두개의 중정을 가지는 주거형식 정착?대규모 도무스와 소규모 도무스로 나눠짐-자 ㄱ자 ㄷ자 ㅁ자로 발전됨공간구성평면구성그리스와 에트루리아의 페리스타일, 아트리움의 영향그 두 개의 합쳐진 공간구성상점 - 건물 입구 쪽에 위치작업장베스티불룸방아트리움 - 중정알레식당타블리눔 - 주인거처페리스타일 - 중정과 열주남존여비사상풍수지리전원 -대문을 들어서 있는 좁고 긴 마당정방(+조당)-상방-도방(도좌방)정방-웃어른상방-아들내외도방-하인과 창고후조방 - 미혼의 딸 또는 하인의 거처수화문 - 방어와 차폐의 기능회랑유교사상-남녀유별,조상숭배(안채-사랑채-사당)안채 - 女사랑채 - 客사당 - 조상숭배행랑채 - 하인, 창고.별당 - 안채 뒷공간특징중정을 중심으로 하는 방들의 배치수직적인 확장위계적 공간 분리내향적폐쇠적 공간구성, 축적 공간구성, 중정 중심의 공간구성, 위계적 공간구성전면 서비스 - 접객 및 의례를 위한 공간 생활공간 - 후면 서비스 의 네 기능으로 구분도좌방, 후조방 서비스중정, 각 실 접객, 의례, 생활공간전당후실(前堂後室) 또는 전조후침남녀상하의 위계적 공간담장에 의해 분리되어,크게 안채, 사랑채로 구분되어지며, 보조공간이라 할 수 있는 행랑채로삼분되어짐부분적으로는 명백한 축이 없이자유로운 비대칭성을 이루는 것 같지만전체적인 채들의 배치를 보면마당을 중심으로, 일정한 축을 기준으로,대칭성을 이룸남녀상하에 따른 공간 분리-위계성유기적 배치열주회랑지중해의 일사를 피하기 위한 공간비를 피하거나 한 여름의 일사를 피하기 위한 공간없 음중정형성배경부정형 공간구성, 자연발생적 성장, 질서 정연하고 밀도 높은 도시조직 (폼페이)이 형성도무스 주택의 근원* B.C 6C 경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아 에투루리아 주택에서 아트리움 공간이 확장* B.C.2C 중반까지 로마의 주거형식 그대로 유지* B.C 3C부터 두개의 중정을 가지는 중정형 주택 정착은(殷)주(周)시대에 중정형(中庭型)이라는 중국 고유의 주거형식이 일반화됐는데, 한대에 이르러 사합원 주택이 오늘날과 같은 형식을 갖추었으며 이것이 중국의 각 지역으로 전해짐.풍수지리설, 음양오행의 원리,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아지어졌다.'一 ‘자 -> ’ㄱ‘자 -> 'ㄷ’자 -> ‘ㅁ’자 로 발전됨.특징부정형 공간구성, 자연발생적 성장, 질서 정연하고 밀도 높은 도시조직 (폼페이)이 형성도무스 주택의 근원* B.C 6C 경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아 에투루리아 주택에서 아트리움 공간이 확장* B.C.2C 중반까지 로마의 주거형식 그대로 유지* B.C 3C부터 두개의 중정을 가지는 중정형 주택 정착화북시방에 한족의 대표적 중정형 주택, 중국 전역에 퍼져 있는 중국주택의 전형중정을 중심으로 여러 채의 건물이 그주변을 둘러싸는 내향적공간구성이특징안마당을 중심으로 방들이 ‘ㅁ'자 모양으로 배열, 지붕이 모두 연결된 집, 정자(井字)집평면의 구성은 지방에 따라서 약간씩 다름역할아트리움과 페리스타일의 2개의 중정을 가지며, 복합적인 용도를 가지는 주택의 중심적 생활공간 이었던 그리스의 페리스타일과는 달리 도무스에서는 휴식과 오락을 위한 정원인 동시에 전시용 공간으로 활용중심마당, 화목과 분경 등으로 장식, 십자형의 벽돌포장길,
    공학/기술| 2011.12.08| 5페이지| 2,000원| 조회(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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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건축 신륵사에 대한 조사
    文 化 遺 蹟 調 査 書調査日時 : 2011. 4. 16. 토명 칭나옹화상 열반성지봉미산 신륵사북내면청송리소 재 지경기 여주군 여주읍 북내면 천송리 282번지소 유 자주소·성명전 화 번 호신륵사. 경기 여주군 여주읍 북내면 천송리 282번지TEL : 031-855-2505 FAX : 031-885-5936E-MAIL: srs2505@parna.com관 리 자주소·성명전 화 번 호신륵사. 경기 여주군 여주읍 북내면 천송리 282번지TEL : 031-855-2505 FAX : 031-885-5936E-MAIL: srs2505@parna.com연 고 자주소·성명전 화 번 호관 련 사 건신륵사 조사당조사당은 신륵사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고려말 3화상이라 불리는 지공·나옹·무학의 덕을 기리고 또 그들의 법력을 숭모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중앙에 목조의 나옹화상 독존을, 좌우에 지공과 무학선사의 영정을 봉안했다. 지공은 인도승으로 나옹의 중국 유학시절 스승이며, 나옹은 원나라 황제의 명에 의해 연경의 광제선사 주지로 부임했다가 후에 공민왕의 왕사가 되기도 했다. 무학은 나옹의 법통을 이어 받은 후법제자이며 조선 태조의 왕사이기도 했다.관 련 인 물나옹선사관 련 유 물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고려) [보물 제 128호]신륵사 조사당(조선) [보물 제 180호]신륵사 다층석탑(조선) [보물 제 225호]다층전탑(고려) [보물 제 226호]보제존자석종(고려) [보물 제 228호]보제존자석종비(고려) [보물 제 229호]대장각기비(고려) [보물 제 230호]보제존자석종 앞 석등(고려) [보물 제 231호]관 리 상 태전반적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연혁 및 사적신라 진평왕 때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전해오고 있다. 그렇지만, 현존하는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유물이 없는 점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생각된다.신륵사는 고려 말에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면서, 조선시대에 이르러 대찰로서의 면모를 지니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보 존 현 황잘 보존되고 있어, 깨끗하고 정갈한 모습 이었다.특기사항?유물현황?전 설?보수실적전설 :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알려진 이 신륵사에는 용마전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미륵보살의 화신인 혜근 스님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를 막았다는 전설이고 또 하나는 고려 고종 때용마가 나타나 난동을 부리는데 인당대사가 나서서 고삐를 잡자말이 순해져 ‘신력으로 말을 제압했다’해서 신륵사라 부른다는것이다.유물 :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 신륵사 조사당, 신륵사 다층석탑, 다층전탑, 보제존자석종, 보제존자석종비, 대장각기비, 보제존자석종 앞석등 등의 유물이 있다.보수실적 :봉미산 신륵사일주문에서 강쪽은 황포나룻터로 복원을 위한공사가 한창이다.극락보전도 보수가 한창이다,건축사적가 치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들이 산속에 위치해 있는 것과 달리 여주 신륵사는 남한강의 푸른 물줄기와 넓은 모래사장, 여주 벌판이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신륵사가 대찰로 성장하게된 것은 고려 공민왕 때 왕사를 지내고 한국 불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승인 나옹선사의 입적의 계기로 신륵사는 대대적인 중창에 들어갔다. 선사가 입적한 후 신륵사 북쪽 언덕에 그의 정골사리를 봉안한 부도로 보제존자 석종(보물 제228호)을 세우고 옆에 보제존자 석종비(보물 제229호)를 두 세웠다. 부도의 앞에는 보물 제231호인 부도앞 석등을 세웠다. 부도는 거의 장식을 하지 않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것에 비해 석등은 섬세한 조각으로 한껏 모양을 내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나옹은 인도의 고승 지공의 제자이며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일조한 무학대사의 스승이기도 한데 이들 3화상의 영정을 모셔놓은곳이 신륵사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조사당(보물 제180호)이다. 정면 1칸 측면 2칸의 이 건물은 대들보가없는 다포 팔작집이라는 데에 건축사적으로 가치가있다. 조사당안에는 나옹선사의 소조상이 모셔져있고 그뒤로 무학,지공,나옹 3화상의 초상화가 걸려있다.여강쪽으로 다가서면 바위위에 나옹선사의 다비처임을 기념하기위해 세운 삼층석탑이 있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키 작은 석탑이다.석탑 옆의 육각누정인 강월헌은 나옹의 당호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본래는 석탑 옆에 있었으나 홍수로 떠내려가고 다시 탑 조금 아래쪽에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었다. 여강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이라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석탑 바로 위에는 다층전탑이있다.탑 전체를 벽돌로 쌓아 올린 다층 전탑에서 연유하여 신륵사를 벽절이라고 부른다. 탑의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수없으나 탑 북쪽에 있는 수리비에는 영조 2년에 세워졌다고 쓰여있는데 이때 탑을 수리하고 비를 세웠을 가능성이 크다. 다층전탑은 기단부만 화강암을 사용했고 탑신부는 모두 벽돌로 쌓았다.탑신부를 쌓은 벽돌은 일정하지 않으나 두면에 반원을 그리고 그안에는 당초문을 새겼다.1383년에는 이색의 아버지 이곡의 뜻을 받들어 나옹이 제자들과 함께 대장각을 건립하고 대장경 1부를 봉안했다고하는 기록도 전하는 대장각기비(보물 제230호)가있다.그뒤 조선시대의 억불 정책으로 신륵사는 사대부들의 유람처 정도로 머물다가 다시 한번 크게 중창의 기회를 잡게되는데 이것이 1472의 일이다. 광주 대모산에 잇던 세종의 영릉을 여주로 이장하면서 원찰을 세우기로하고 당대 권신인 한명회등이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영릉으로부터 멀지않은 곳에 신륵사라 불리는 고찰이 있는데 이를 중수하여 원찰로 삼는 것이 좋을것‘이라고 추천 대대적인 중수를 시작한 것이다. 조선 역대왕중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긴 세종과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위해 대가람의 위용을 갖춘 신륵사는 이듬해 대왕대비 윤씨의 뜻에 따라 사찰명까지 보은사라 개칭하였다. 신륵사가 원찰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전각들이 극락보전과 명부전이다.경내에 들어서서 구룡루가 있다. 나옹선사가 아홉 마리의 용에게 항복을 받고 그들을 제도하기위해 지었다는 전설의 누각이다.구룡루를 뒤로하고 마당 안으로 들어서면 아담한 대리석 석탑이 눈낄을 끈다. 백색의 대리석으로 조성된 이 석탑은 전체적으로 신라나 고려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그 느낌이 독특하다. 특히 상층 기단의 중석에 조각된 용무늬가 매우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있다.다층석탑 뒤의 웅장한 건물이 이절의 주전인 극락보전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인 이 건물은 창건연대가 확실치 않으나 신륵사이 창건과 함께 이르어졌을 것이라 추측되며 현재의 건물은 1800년에 완공된 것이다. 내부에는 목조 아미타삼존불이 봉안되어있고 그 위로 화려한 닫집과 우물천장이 조화을 이룬다. 극락보전 앞에는 적묵당과 심검당이 나란히있다.명부전은 정면 3칸의 아담한 맞배지붕으로 저승세계를 주관하는 분들이 안치되어있다. 중생제도를 위해 성불마저 포기했다는 지장보살을 가운데에 모시고 양쪽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그리고 그 옆으로 명부에있는 시왕이 앉아있다. 사후의 세계를 형상화한 명부전은 망자의 천도를 담당하는곳이기 때문에 원찰의 성격을 띠고있는 사찰이라면 어디든 갖추고 있다.조선시대 억불정책 속에서도 왕릉의 원찰로 위용을 자랑하던 신륵사였지만 전화는 피할수 없엇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페허가 됐다가 1671년 (현종12년)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고 특히 1858년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가 시주하여 크게 중건했다. 인조 반정이후 조선 성리학이 뿌리를 내리고 왕릉 원찰제도가 없어지면서 이름도 다시 신륵사라 개칭했다. 오랜 세월의 흐름속에서 흥망을 고루 격어온 신륵사이지만 저무는 햇살을 받으며 여강을 내려다보는 운치만은 천년의 시간속에 공통된 것이다.Ⅱ. 古 建 築 調 査 書각부 부속건물신륵사 조사당1. 평면 (가로m×세로m)4.4 x 8.82. 칸수 (가로×세로)정면 1칸 X 측면 2칸3. 기 단장대석 기단4. 주 초정평주초 방식5. 기 둥배흘림기둥, 두리기둥6. 주 두내부는 모두 우물반자를 짜서, 대들보가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7. 두 공 성 격공포는 기둥 위는 물론 기둥 사이 평방 위에도 놓아 전체적으로 다포식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것은 조선초기의 다포식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8. 가 구 형 식지붕가구는 오량으로 구성하였는데, 대들보위에 가로재가 정자형으로 놓이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워 마루도리를 받도록 한 특수한 구조이다.9. 창 방 · 평 방기둥의 상면에는 창방(昌枋)으로 결구하고 그 위에 다시 평방(平枋)을 놓았다.10. 처마 및 지붕형태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기와지붕이다. 처마는 부연이 있는 겹처마이다.
    인문/어학| 2011.12.08| 12페이지| 1,500원| 조회(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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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