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기구론 보고서한?중?일 협력사무국(Trilateral Cooperation Secretariat)지도교수 김 태황2011년 11월 10일명지대학교 국제통상학과60061242이 기 열■들어가며…….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과연 20년 후 30년 후에는 세계의 어떤 위치에 있을 것이며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인가?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상에 대한 장밋빛 관측과 전망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이는 정태적 분석의 결과물이 많았다. 그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근거가 부족하지 않나 하는 안타까움과, 신뢰성이 가지 않는다는 느낌을 항상 받았다.미국중심으로 돌아가는 현 사회에서 현재의 우리나라 위치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신흥 강국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고, 이에 따라 세계를 주도하는 판도가 바뀔 수 있다는 예측은 이제 놀라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과 기존의 강국(지금은 점차 쇠퇴하는 기미를 보이지만) 일본의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나의 생각은 ‘중국과 일본을 우리가 넘어야 할 산으로 보지 않고, 함께 공생하여 Win-Win할 수 있는 동반자로써 접근하면 어떠할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한다. 이런 생각을 토대로 나는 한?중?일 경제통합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2006년 FTA를 처음 공부하며, 혼자서 살아남는 시대는 끝나고, 서로 협력을 통해 급변하는 세계에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임을 인식했다. 이는 우리나라는 다른 각국과의 FTA체결을 추진하면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경쟁력을 갖춘 중국과 일본과의 협력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본 보고서를 통해서 막연하게 필요성만 느끼고 있었던 한?중?일(이하 3국) 경제통합에 대한 나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또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무척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개요)대한민국은 오랜 역사 속에서 많은 교류를 해오며 공통점이 많은 지역이다. 최근 세계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 3국은 경CS는 3국 정상회의, 외교장관회의 및 각종 정부 간 협의체 운영을 지원하고 협력 사업을 수행한다. 협력 실적 보고서를 작성 및 보고하며 다른 국제기구와의 연락을 유지한다.■)설립 논의 과정●3국 정상회의3국 정상회의는 1999년 11월 ASEAN+3정상회의로 계기로 최초 개최되었다. 2001년까지는 조찬을 겸한 비공식회의로 개최되었으나 2002년부터 정식적인 회의로 진행 되었다. 주최는 3국이 윤번으로 주최하며 순서는 중국, 한국, 일본 순이다.정상회담은 ASEAN+3을 계기로 하여 1999년부터 2009년까지 총 9회 개최되었고, 별도 정상회의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회 개최되었다.- 1999년 11월 필리핀 마닐라 코코넛궁에서 개최된 1차 정상회담 (ASEAN+3계기)김대중 대통령과 주릉지 총리, 오부치 총리가 참석하였다. 이 회담의 성과는 3국간의 역사상 최초 회합을 통해 동북아 지역의 안정과 공동 발전을 향한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 3국 경제협력 문제 공동연구에 합의했다는 점이다.- 2003년 10월 인도네시아 발리 Grand Hyatt호텔에서 개최된 5차 정상회담 (ASEAN+3계기)노무현 대통령, 원쟈바오 총리, 고이즈미 총리가 참석하였다. 본 회담에서는 3국 협력 증진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하여 무역,투자, 환경, 과학기술, 국제문제 등 14개 분야에서의 협력 강화에 합의한다. 또 공동선언 후속조치 이행을 위해 3자위원회를 설치하고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2007년 11월 싱가포르 Grand Hyatt호텔에서 개최된 8차 정상회담 (ASEAN+3계기)노무현 대통령, 원쟈바오 총리, 후쿠다 총리가 참석하였다. 본 회담에서는 ASEAN계기와는 별도로 3국내 정상회의 개최에 합의하고, 3국 협력 제도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3국 협력 사이버사무국(TCCS) 구축 등 13개 성과사업을 채택하였다.1.한·중·일 3국간 협력 증진을 위한행동계획 작성2.3국협력 사이버사무국 설치3.베이징 올림픽 기간 중 사이버 공격 가능성 대비협력4.3 선언하였고 2011년까지 상설사무국을 대한민국에 설치, 동북아 3개국간 협력을 제도적으로 확립하였다.●한·중·일 3자위원회ASEAN+3을 계기로 하는 3국 정상회의 직전에 개최된다. 03.10월 채택된 공동선언상의 협력 활동을 연구·계획·조정·감시하기 위해 3자위원회(3국 외교장관이 수석대표) 설립에 합의하였다. 3자의원회는 정상간 합의사항 이행 현황을 점검하여 ‘실적보고서’를 작성하고, 3국 정상회의에서 보고서를 채택한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5회 개최되었다.●한·중·일 외교장관회의 / 고위급 회의외교장관회의와 고위급회의는 각각 2007년 1월 세부 3자위원회때 우리정부와 중국정부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외교장관회의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회, 고위급회의는 5회 개최되었다.■)조직운영.사무국은 한 명의 사무총장과, 두 명의 부사무총장 및 소수의 직원으로 구성된다. 사무총장은 각 당사자로부터 지명된 3명의 관료 중에서 대한민국, 일본, 중국 순으로 3국 외교장관회의에서 윤번제로 임명되며, 사무국을 대표한다. 사무국으로 임명되지 않은 지명자들이 부사무총장으로 임명된다. 사무국 예산은 각국이 똑같이 부담한다.●임원진- 사무총장:신봉길 前국제경제협력대사(韓) / (임기 2년)- 부사무총장 : 마츠가와 루이 前주한대사관참사관(日) / (임기 2년)마오닝 前외교부 한반도사무실 주임(中) / (임기 2년)- 직원:약 200여명●예산- 사무국 운영 2011년 예산 : 2,010,000달러(각국 670,000달러씩 분담)- 사무실 운영비용 : 933,000,000원(대한민국 부담)●실무 언어 : 영어■Vision 2020TCS가 해야 하는 업무의 내용은 2010년 5월에 발표된 3국협력 Vision 2020을 보면 모든 것이 나타난다.2010년 5월 제주에서 열린 3차 정상회담에서 3국은 정치, 경제, 문화 및 인적 교류 등 제반 분야에서 과거 10년간 3국협력의 실질적 성과가 가시화 되는 것에 대해 만족을 표명하였다.3국은 향후 인적 교류 및 재화, 용통의 문제를 해결하여 장기적으로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의 기여할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공동연구프로그램 및 미래예측프로그램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계속한다.- 표준협력이 불필요한 기술 장벽 제거를 통해 무역을 촉진한다.- 산업, 에너지, 에너지 효율성, 자원, 하이테크, 문화산업, 운송, 보건, 농업, 어업, 관광, 지적재산권 분야의 공조에 협의를 계속한다.- 3국이 역내외의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점을 인정하고 G20을 포함한 APEC 및 다자 포럼의 장에서 강력하고 지속가능한 세계성장을 위해 협력한다.●지속가능개발 및 환경보호 협력3국은 유엔기후변화협약 및 교토의정서를 환영하며, 환경보호 협력강화를 위해 환경교육, 기후변화, 생물보존, 황사, 오염관리, 환경 친화적 사회운동 등의 협력 조치들을 취할 것이다.●인적?문화적 교류협력 확대를 통한 화합과 우의 증진활발한 인적교류 확대?발전을 통해 3국간 우호를 강화하는 목적을 가지고 문화교류 확대를 위해 다양한 문화협력을 강화한다. 인적 왕래 규모를 확대하고 학점인정제도 및 공동 학위과정 등의 교류프로그램을 통해 청년들의 경쟁력 강화에 힘쓸 것이다. 체육(스포츠)의 교류를 장려하여 Vision2020의 실현에 기여한다.●지역 및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향한 공동 노력3국은 북한의 핵문제 및 평화 안보에 기여하기 위해 6자회담을 통해 공동 노력을 지속한다. 마약, 테러, 식품안전, 전염병, AI와 같은 가축질병 및 세계 빈곤과 기아와 같은 문제에 대해 공동으로 노력을 강화한다는 의견을 같이한다.■한?중?일 FTA)3국의 FTA에 대한 논의는 2003년부터 2009년까지 민간공동연구를 시작으로 2009년 3국 정상 회의 때 산관학 공동연구 추진을 합의하며 본격화 되어 2011년 8월까지 6차례의 회의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정치적 문제와 공동체 의식의 부족과 같은 여러 요인이 겹치며 많은 난항을 겪고 있다.3국의 FTA는 3국의 문제에서 벗어나 ASEAN+3 FTA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3국의 FTA가 활발히 추경제기구와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았다. 무엇이 이런 이질감을 들게 하는지 뚜렷하게 알기 힘들지만, 3국의 협력이라는 목표 아래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방대하고, 체계가 아직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정리가 아직 되지 않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TCS는 3국협력이라는 목적 아래에서 자체적으로 특별한 프로젝트를 실시하기 보단, 그동안 TCS라는 기구 없이 진행되었던 여러 분야의 협력과정(정상회담, 각종 고위급 회담, 그 외 여러 분야의 공공?민간 교류)들을 하나의 기구로 통합하여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TCS의 설립과 앞으로의 과제는 1999년부터 진행되어온 3국 협력의 연장선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사무국의 위치가 인천 송도에서 서울로 변경된 것은?TCS의 위치는 본래 인천 송도에 설립될 예정이었으나 결국 서울 종로에 세워졌다. 이렇게 변하게 된 인천 송도에 사무실이 들어서게 될 I-Tower가 아직 완공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시로 종로에 S-Tower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압박과 일본의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으로써는 I-Tower가 완공된다 하더라도 사무국이 다시 인천 송도로 옮겨가지 않고 그대로 굳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나는 TCS의 위치가 서울보다는 인천에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사무국이 설치가 가지는 의미는 그 지역에서 정상회의 1회, 장관급 회의 18회등 연간 53회의 정부 간 회의를 유치할 수 있다는 것과 향후 3국을 넘은 외교중심지로 발전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외에서의 접근성이 뛰어나고 상대적으로 쾌적한 인천이 서울보다는 더 적합하다는 생각을 가진다.만약 이명박 대통령께서 이 문제를 국익을 위한 외교적인 문제로 보지 않고, 단순한 특정계층의 이익을 위해 서울에 사무국을 두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라면 이는 문제가 있는 일이고 이런 일이 일어나는 절대 안 된다.●3국 경제협력의 역사가 생각보다 짧다는 것은 의야대한민국, 일본,없다.
들어가는말....IMF의 금융지원을 받은 국가들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며, 가장 어려운 점은 우리나라 자료로는 부족한 내용을 다수의 영문 자료로 보충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IMF사이트상에서 등장하는 생소하면서 축약까지 되어있는 수많은 용어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컸다.또한 IMF에서 지원하는 범위와 방법이 너무나도 다양해서 이를 선별하여 자료를 이용하는 것이 어려운 작업 중 하나였다. 각종 자연재해에 관련된 지원, 식량 문제에 관한 지원등 IMF가 지원하는 범위는 생각보다 광범위 하였다. 따라서 이 보고서의 내용은 국가 재정의 위기(Fiscal Stress Event)에 따라 IMF에서 예외적으로(Exceptional)지원하게 된 국가에 한정시켜 조사하고자 한다.■IMF의 구제금융 지원 실적 조사 분석1996년부터 2011년까지 IMF의 구제 금융을 받은 나라는 다음과 같다.(표1)번호(No)국가명(Country)지원일(Date)융자유형(Type of Arrangement)모든 금융(Under All Facilities)보충준비금융(under Supplement Reserve Facility)금액(In SDR Millions)쿼터(%)금액(In SDR Millions)쿼터(%)1러시아96.3.26EFF12,070688--98.7.20EFF15,3633563,993932태국97.8.20SBA2,900505--3인도네시아97.11.5SBA7,338490--98.7.15SBA8,338557--98.8.25EFF4,669312--99.3.25EFF5,383259--00.2.4EFF3,638175--4터키99.12.22SBA2,892300--00.12.21SBA8,6769005,78460001.5.15SBA15,0381,560--02,2,4SBA12,8211,330--05,5,11SBA6,662691--5대한민국97.12.4SBA15,5001,9389,9501,2446브라질98.12.2SBA13,0256009,11742001.9.14SBA12,1444009,9513:보완준비자금(이하 SRF)2008년 이전까지는 Charges and Maturities?Proposals for Reform December 12, 2008 활용.2009년부터 2011년 자료는 Assessing Fiscal Stress May 2011과 IMF Lending Arrangements Database를 비교하여 작성함.IMF의 금융지원은 1990년 말 2000년대 초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지역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지역에 특히 많았었다. 1996년부터 2008년까지 약 14개의 국가가 IMF의 금융지원을 받았는데,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약 3년 사이에 12개의 국가가 집중적으로 IMF의 금융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는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에 영향이 크다고 생각이 된다.■대상 국가들의 구제금융 신청 배경 및 극복과정우선 대상국들이 너무 많고, 모든 국가의 배경을 조사하는 것에 무리가 따르므로 대상국가의 재정위기의 시작과 끝 시점 그리고 간략한 주요사항들을 정리 제시한 후 주요국가에 대해서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표2) IMF 금융지원을 받게 된 원인의 위기들.번호국가명위기발생위기종료국가부도 or구조조정위기 첫해에 IMF도움채권수익률 압박1러시아19912001●2태국19971999●3인도네시아19972001●4터키19992000●20022003●20052006●5대한민국19972001●6브라질19981999●20012003●7아르헨티나20002006●8우루과이20022004●20052006●9라이베리아-----10그루지야20082009●11우크라이나20082009●20102011(예상)●12헝가리20082011(예상)●●13아이슬란드20082012(예상)●●14파키스탄20082011(예상)●15아르메니아20092011(예상)●16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20092010●17코스타리카20092010●18도미니카20052010●●19엘살바도르20092011(예상)●20과테말라20092010●21스리랑카20092010●22의 수출가격경쟁력 향상을 야기하여 수출이 늘고 러시아 국내시장에서도 수입대체품목의 생산이 호조를 보이게 된다. 또한 단기국채에 대한 투자를 중지하며 금융자본이 산업계로 흘러간 것도 좋은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국제유가 상승도 러시아 경제에 희소식인데,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러시아 경제는 98년 -5.5%에서 99년 -2%로 성장률 하락세가 진정되게 이른다.IMF의 긴축통화정책과 더불어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를 위해 정부의 재정적자를 GDP 5%에서 2.5%로 축소하게 된다. 대폭적인 대외부채 축소, 세수증대를 통한 제정건실화, 높은 경제성장의 달성 같은 목표를 설정하고 경제운용계획을 발표한다. 이를 위해 조세행정권 강화 밑 적극적인 정치 경제적 구조계획을 추진하게 된다.●인도네시아-구제금융 신청배경인도네시아는 비교적 건실한 경제상황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96년 GDP성장률 8%, 물가상승률도 6%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막대한 외채를 안고 있었는데, 1170억 달러의 외채는 막대한 자원을 팔아 벌어들인 돈의 35%를 외채를 값기 위해 써야 할 만큼 인도네시아에겐 폭탄과 같은 존재였다. 결국 태국에서 시작된 외환위기는 인도네시아의 환율을 상승시키게 되었고, 외채 상황 부담이 더욱 가중되며 인도네시아도 침체의 국면으로 빠지게 된다.또한 정치적인 권력을 이용한 경제왜곡상황은 국가경쟁력을 살리는데 악영향을 끼쳤으며 건실한 경제상황과는 달리 240여개에 달하는 은행이 난립하는 취약한 금융구조는 외환위기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인도네시아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환율 변동 폭을 철폐하고 비거주자 선물환거래 금지하는 등 다양한 조치를 취했으나 실패하고 IMF에 지원을 요청하게 된다.-극복과정IMF는 인도네시아 외환위기의 원인을 거시 경제적 불균형과 구조적 결함에 있다고 판단, 거시경제정책의 변화를 요구하게 된다. 인도네시아는 이 변화의 요구를 받아들여 재정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부가가치세 면제 규정 철폐, 과세표준액과 과세범위를 확대한다. 그리고 투감독하게 영업을 계속하도록 하였다.태국은 공기업의 민영화를 실현하기 위해 에너지, 통신, 운송부문의 공기업을 민영화 하며 공적자금을 이용한 기업구조조정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대한민국-구제금융 신청배경아시아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한국경제의 특징은 정부의 광범위한 시장개입, 성장제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수출주도형 정책에 따른 압축 성장 추구, 중복투자, 과인투자로 인해 외채는 증가하게 되었고, 국제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함에 따라 예상치 못한 외채부담이 증대되었다. 한국의 외채는 85년 467억 달러를 정점으로 감소하다가 93년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된다.92년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기업들도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으나 94~95년 엔고 호황과 반도체 특수는 오히려 구조조정이 아닌 투자를 확대시키는 잘못된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이러한 투자도 역시 차입에 의해 조달되었다.경제 환경 변화로 정부의 지나친 시장개입과 규제, 의욕과잉과 정책미숙으로 인해 경쟁력이 악화되게 되었고, 96년부터 기업 구조조정에 착수했으나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고착화되며 결국 IMF지원을 받게 된다.-극복과정IMF의 고금리정책을 이행하여 단계적으로 이자율을 인하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는 금리인하로 인한 통화증발요인을 억제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높은 물가수준상황에서 통화량이 증가하게 되면 물가상승, 환율상승이라는 악순환이 거듭되므로 국내기업의 극심한 자금경색에도 불구하고 고금리정책을 시행하였으며 지속적으로 소비자 물가, 생산자 물가가 하락하게 되었다.또한 균형예산을 편성하기 위해 세입확대 및 세출삭감등을 추진한다. 그리고 금융부분의 구조조정을 하기 위해 금융개혁법안을 통과시키고 부실 종합금융사들은 IMF와의 합의에 따라 정리되었다. 그리고 기업의 투명성 제고, 계열사 간 상호지급보증 해소, 재무구조 개선,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협력 개선, 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하는 재벌개역 5대 기본방향을 제시하고 실행하였다.자본 자유화를 위해 각종 보조금을 패지하고 외국인 직접투습효과기대.『IMF는 2차분부터 분기별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이에 따라 구제금융의 계속 지원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어서 우크라이나의 경제개혁 속도는 예상외로 빨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임. 다만 문제는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스가격 인상 사례에서 보듯이 국민의 반발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이러한 국민의 반발을 어떻게 완화하면서 소외된 계층은 보호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임.』위의 글은 KOTRA에서 2010년 개제된 IMF.우크라이나에 152억 달러 구제금융지원안 승인이라는 글에서 뽑아온 것인데, 위의 글에서 볼 수 있듯 IMF는 구제 금융을 지원하는 동시에 구제 금융을 받는 국가의 경제정책에 깊이 관여를 하게 된다.그러나 우리나라나 동남아시아의 국가 같은 경우 정부의 경제정책이 미흡하여 IMF구제금융위기가 발생한 면도 없지 않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학습의 효과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IMF의 정책이 100% 옳지만은 않아. 그러나 부작용은 감수해야비록 IMF의 구제금융 지원과 정책이 많은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100% 성공만을 이룬 것은 아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IMF에서 조치한 긴축적 재정정책은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만들었다는 관측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IMF의 금융지원이 꼭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갑론을박도 있다. IMF의 정책을 시행하지 못하는 국내적인 여러 변수들을 IMF가 파악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타나고 있다.그러나 까다로운 조건을 통해 IMF금융지원을 받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일시적 금리상승, 경기악화, 실업률 상승 등의 문제를 단편적으로 IMF 실패로 결론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주관적 소감●국가적 위기는 도미노처럼 나타난다.위의 표1), 표2)자료를 확인하면 IMF의 구제 금융을 받은 시기와 각 국가의 위기 시점이 특정 시기에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90년 말 동남아시아와 한국, 그리고 러시아를 포함하여 한차례 큰 진통이 있었고, 다시 2008년 남아메리카와 유럽지역의 위기가 줄줄
글로벌 경영전략 보고서유니클로의 성장과해외진출지도교수201 년 월 일■목차●사례1:유니클로의 내수시장 전략●사례2:유니클로의 해외시장 진출(한국을 중심으로)●문제1:유니클로가 가지는 비용우위는 무엇인가?●문제2:유니클로가 가지는 차별화우위는 무엇인가?●유니클로의 성공요인과, 한국진출전략은 무엇인가?●문제4:향후 유니클로가 발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가?●부록●참고문헌■사례1:유니클로의 내수시장 전략“일본 유통업체들은 모두 메이커나 도매상에서 상품을 가져다 판매한다. 우리는 상품기획에서 디자인, 생산, 물류는 물론 직접 점포를 내서 판매까지 담당한다. 중요한 것은 '유니클로'는 상품기획만 하고 생산은 중국에 맡긴다는 점이다. 중국의 저렴한 생산원가와 우리의 기획력, 디자인력이 어우러져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내놓게 됐다.”-Uniqlo CEO. ‘야나이 다다시’(柳井正)1991년 )‘패스트 리테일링(Fast Retailing)’이 캐주얼 의류 전문점 ‘유니클로(Uniqlo)'의 체인 전개를 시작했을 때는 그 누구도 성공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니클로'는 일본에서 유행어 대상에 오르내릴 정도로 유명한 브랜드가 되어 버렸다.패션 고가 의류 소비 1위 국민으로서 ‘루이비통(LOUIS VUITTON)’, ‘샤넬(Chanel)’등 서구 고급 브랜드에 사족을 못쓰던 일본인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랜 경기 침체로 인해 일본 소비자들이 실속있고 싼 제품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기회를 가장 잘 활용한 브랜드가 바로 '유니클로'이다. '유니클로'는 초저가전략으로 가계소비가 꽁꽁 얼어붙은 일본 소매시장에서 유일하게 잘 나가는 독보적 존재다. '유니클로'는 미국 캐주얼 브랜드 ‘갭(GAP)'의 복사판으로 불렸지만 낮은 가격과 훌륭한 품질을 앞세워 미국 경쟁업체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경기 침체애 따라 일본기업에서는 )캐주얼 프라이데이(Casual Friday)의 개념을 도입, 확산시키고 있었지만, 이 개념은 획일적이고 통일된 옷차림을 선호하던 일본인들에게관리하기 보다는 여러 단계에 아웃소싱을 하여 많은 유통체널에 의지하는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옷 원래의 가격 외에도 의류 외적인 측면에서의 비용 지출이 발생하였고 단가를 상승시켰다.'유니클로'는 일본의 장기불황 덕을 톡톡히 보며 성장했는데,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깨고 옷 종류는 줄이되 색상을 다양화 하여 대량생산 해서 가격을 싸게 만드는 전략을 선택했다. 평균 1개의 품목당 1천장에서 1만장을 생산하는 것이 일반 업계의 수준이라면, '유니클로'는 최소 수백만장에서 많게는 수천만장단위까지 대량생산을 하여 가격을 혁신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 낮은 가격에도 소재는 탄탄했고 바느질은 곰곰햇기 때문에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가장 인기를 끈 제품은 후리스라는 자켓(그림1)이었는데, 1900엔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되어 1999년에는 850만장, 2000년에 1200만장을 판매하였다. 매출은 2001년 8월 2290억엔을 기록하고, 경상이익 또한 500억엔으로 일본 최대 유통업체인 )‘이토요카도’를 앞지르기도 했다. 많은 경쟁사들이 ‘유니클로’의 낮은 가격을 따라오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유니클로’가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중국으로 공장진출을 했기 때문이다. 유니클로는 중국의 파트너공장을 엄격한 조건으로 선별하여 충분한 기술 지도를 실시하여 매우 우호적이고 깊은 신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파트너 공장에 대해서는 품질 검사를 실시하고 노동환경을 완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02년 기준으로 중국의 50개의 회사와 60개의 공장과 거래를 하고 있다. 상하이에 있는 ‘유니클로’의 중국 현지 사무소 직원들은 매일 공장으로 기술지도를 나가고, 품질검사 실시와 노동환경의 완비를 항상 강조하고 있다. ‘기술 프로젝트’라 불리는 기술지도 프로그램은 염색, 방적, 실뜨기, 봉제, 공장관리등 일본인으로 구성된 베테랑 기술자들이 모인 기술팀이 중국의 공장에서 체계적이고 철저한 기술지도 시스템을 말한다. 이 프로잭트는 국내에서도 주목을 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소비정보를 빠르게 파악하여 패스트패션의 특성을 잘 살리는 관리에 철저히 임하고 있다.유니클로는 마케팅 전략으로는 현지화 (localization) 전략을 사용했으나, 출시되는 제품은 글로벌 접근법 즉, 표준화 (standardization) 또는 국제화(globalization) 전략으로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머물지 않고 2009년 3월에는 유명디자이너인 (그림2))‘Jil Sander’와 제품계약을 맺으며 +J라는 새로운 라인의 상품을 출시하며 차별화를 강조하였다.현재 유니클로는 한국에서 2011년 8월 31일을 기준으로 63개의 매장을 운영중이며 성공적으로 안착하였다고 평가받고 있고 현재 한국에서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유명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유니클로(Uniqlo)의 웹페이지http://www.uniqlo.com/■문제1:유니클로가 가지는 비용우위는 무엇인가?비용우위는 제품과 유통단계에 대한 비용우위가 있다. 유니클로의 경우는 이 두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유니클로는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로 일컬어지고 있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이다. 이러한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은 제품의 유통단계에 대한 통합으로 빠르고 효율적인 판매를 특징으로 하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시대를 열고 있다. 유니클로는 특히 SPA 리테일형에 속하는데, 상품 판매 업무를 담당하는 유통업체에서 상품을 직접 개발하여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유통단계에 대한 비용우위로, 제품에 대한 생산비용절감의 효과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비용우위의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유니클로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60여 곳에 생산공장을 두어 생산원가를 낮추고 공장마다 일본에서 생산관리 전문가를 파견해 품질을 철저히 관리한다. 이것은 일명 ‘기술프로젝트’라고 불리며 공장생산의 전문성을 높이고 있다. 이를 통해 대량 생산으로 원가 비용을 최소화 할 수 클로가 가지는 차별화우위는 무엇인가?차별화는 소비자에게 독특한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소요된 비용이상의 가격 프리미엄을 얻는 것을 말한다.유니클로는 소비자의 수요에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QR시스템과 비즈니스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다. 이를 통해 상품에 대한 스타일링 및 공급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 그리고 모든 마케팅 프로세스 단계에서 일관된 브랜드 이미지 유지를 도모하고 있다. 또한 일반적인 브랜드의 마케팅 프로모션과 달리 아이템별의 그루핑(item grouping)을 통한 VMD(Visual Merchandising)으로 소비자에게 소구한다. 일반적인 브랜드의 마케팅 프로모션과 달리 철저히 매장자체를 마케팅중심으로 하여 전개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템별 그루핑을 통하여 소비자들이 원하는 옷을 한 번에 볼 수 있도록 하였고, 곳곳에 피팅룸을 다수 설치하여 입어볼 수 있게 하였다. 이처럼 유니클로의 창설 당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싼 가격보다 새로운 가게 운영 방식 때문이었다. 이 곳의 점원들은 의류매장인데도 불구하고 대형 할인마트에서 보는 것처럼 앞치마를 둘렀으며, 자기 일만 할 뿐 매장을 찾는 손님에게 말을 걸거나 물건을 사라고 종용하는 법이 없었다. 고객들은 매장을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옷을 고른 다음 계산대에서 값을 치르면 그뿐이었다. 유니클로가 탄생한 계기도 '왜 옷은 생활용품처럼 셀프쇼핑을 할 수 없는가?'라는 단순한 도전정신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유니클로의 제품 차별화로는 베이직한 제품으로 다른 업체와 차별화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유니클로의 베이직함은 포지셔닝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 내 매출액 선두 위치에 있지만 탄생배경이나 기본 전략에 차이를 보이고 있는 스페인의 자라(Zara)와 비교를 해보면, 두 브랜드의 가치사슬 분석에 의하면 유니클로는 판매점에서 제조부문으로의 후방통합을, 자라는 제조업체의 유통부문으로의 전방통합을 추진했다. 또한, 유니클로는 기본형 위주의 소품종 대량생산과 상대적 저가격전략을, 자라는 패션성 강한 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는 예인 것이다. 그리고 상권의 특성과 규모에 맞게 매장 형태와 상품군을 차별화 시켰다. 예를 들어, 젊은 층이 주로 찾는 하라주쿠의 유니클로 전문매장에서는 티셔츠만을 판매한다.최근에는 쌍방향 소통에 가장 효율적인 온라인 매체인 블로그를 이용하여 마케팅 효과를 높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시간, 달력, 날씨, 쇼핑정보 등이 담긴 위젯을 운영해 쇼핑객(9%)과 총매출(31%)이 한꺼번에 늘어나는 효과를 봤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미국의 유명 사탕업체 스키틀즈는 SNS인 ‘트위터’에 오른 회사 관련 콘텐츠를 홈페이지에 그대로 퍼와 큰 홍보효과를 거뒀다. 유니클로의 경우는 새 보온웨어 제품 광고 및 홍보에 홈페이지를 적극 활용하여 마케팅 전략을 극대화 했다. 일본의 세계적 의류업체인 유니클로는 새 보온웨어 제품 광고·홍보에 홈페이지를 적극 활용했다. 네티즌이 추운 곳에서 떨고 있는 영상을 회사 홈페이지에 올리면 보온웨어를 무료로 보내준 것. 이어 옷을 입어본 소감을 영상으로 만들어 올리게끔 유도해 국제적인 화제를 모았다.■문제3:유니클로의 성공요인과, 한국진출전략은 무엇인가?일본 내에서 처음에 성공을 하게 된 요인은 낮은 가격과 훌륭한 품질이다. 당시 일본의 경제는 거품 경기가 급속히 가라앉고 나서 장기 불황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 이러한 경제 상황으로 인해 일본인들의 소비는 굉장히 많이 줄어있었던 상태였다. 하지만 유니클로는 고품질, 중저가의 제품을 판매함으로써 당시 꽉 닫혀있던 일본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열기 시작했다.또한 당시 일본 의류 시장의 유통 채널을 맡고 있던 백화점, 대형마트 등이 점점 쇠퇴해 가고 있었다. 백화점의 경우는 저렴한 제품보다는 고가의 제품을 주로 들여놓기 때문에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면서 판매가 되지 않았고, 대형마트의 경우는 양질의 옷이나 다품종의 옷을 생산하기 보다는 질이 떨어지고 유행에 많이 뒤쳐진 옷을 소품종 대량생산하였기 때문에 비록 가격은 저렴하더라도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또한
■서론.EU는 많은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제적으로 통합이 되었고, 또한 정치적으로도 통합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하지만 많은 국가들의 민족과 그에 따른 삶의 방식,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며 사회적 구조도 많은 차이가 있다. 따라서 EU의 모든 국가를 하나의 내용으로 통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고 하나의 국가를 선택하여 조사하기로 결정했다.EU의 많은 국가들 중 학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라는 없었다. 나라마다 크게 차이는 있지만, 나의 인식 속에는 유럽이라는 한 단어로 EU의 국가들을 일반적으로 생각해왔기 때문에 특정 국가를 선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결론적으로 말하면 나의 선택은 영국이었다. 영국 중에서도 잉글랜드 지방을 중점으로 조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이유는 내가 유럽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몇 안 되는 관심 중 가장 큰 것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이기 때문이다.(참고로 저는 Tottenham Hotspur를 좋아합니다.)조사함에 있어서 학술적인 내용이 포함되긴 하겠으나 그 보다는 실제로 영국에서 유학을 경험했던 2명의 친구들의 증언(따라서 그들이 본내용이 실제의 영국의 제도나 사회성을 완벽히 반영한다고 보기는 힘듦)을 토대로 딱딱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언어로 풀어갈 예정이다.■본론:영국 청년들이 사는 법 - 그들은 우리보다 여유?로운 생활을 즐긴다.본론에 앞서 영국 청년들과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여러 가지의 차이점을 나타낸다. 그 차이는 제도와 사회적인 측면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가치관과 생각에서 파생되는 문화의 차이에서 가장 강하게 발생한다고 판단되었다. 청년들이 행동은 바로 그들의 인식과 태도, 더 나아가 비전에서 비롯되므로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느냐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청년인 본인과 영국 청년들의 일반적인 가치관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이 이 조사의 핵심이라 판단했고, 그 가치관을 찾아내기 위한 조사를 실시하였다.●영국의 학제.영국 학생들이 어떻게 미래를 준해 후기중등교육을 받거나 혹은 문법학교. 종합학교. 퍼블릭학교로 진학을 결정할 수 있다. 대학진학을 위해 그들은 약 3~4과목의 시험을 준비하면 되고 그 과목의 종류는 진학하려는 대학과 학과에 따라 다르다. 영국의 교육시스템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석차는 중요치 않다. 따라서 학생이나 학부모는 등수에 개의치 않는다. 단지 먼저 지원하고 나중에 시험을 치는 선지원 후평가 시스템 하에서 본인이 가고자 하는 대학과 학과에서 요구하는 수준만을 취득하기만 하면 된다.위와 같은 시스템에서 16세에 취직을 하는 학생의 경우는 소득수준이 중하이하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중상층 자녀, 고소득층의 자녀는 후기중등교육을 거쳐서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그들의 인식은 중등교육만을 받고 취직한 학생과 대학졸업 후 취직한 학생의 차이점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시작이 달라도 그들은 불평을 하지 않고 그 차이를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회사의 분위기는 시작은 달라도 회사 생활에서의 능력을 통해 그들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문화가 잘 발달 돼 있다고 할 수 있다.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고등학교 진학시 실업계와 인문/특목고등학교로 나뉜다. 그러나 이 기준은 목표가 지식의 탐구인지 아니면 취직을 준비인지에 대한 선택기준이 아니라 중학교시절의 성적이 기준이라는 점에서 영국의 학제와는 많이 다르다. 이 부분에 대해선 후기부분에 나의 의견을 다시 정리하겠다.●사교육을 찾기 힘든 사회. 대학이 책임지는 취업프로그램을 성실히 이용하는 영국 학생들.)영국에서는 기업, 고용주, 대학에서 핵심적인 역량요소들이 제시되어 왔다. 이 핵심적인 역량요소를 가지고 모델화 시킨 것이 바로 핵심스킬 프로파일이다. 이 핵심스킬 프로파일은 10가지의 기본 요소를 나타내고 있으며 이것은 학생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전시키는 이정표의 역할을 한다.구 분역 량3가지 주요스킬(Three Main Skills)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수리 적용Application of numbersITInformati해보자. 후기중등교육 졸업은 앞둔 학생은 자신이 더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통해 학과를 결정하고 나의 잠재력과 앞으로 취직을 보장할 수 있는 학교를 선택해서 입학을 하게 된다. 그들은 입학을 하기 직전 입학예정자 지도를 통해 앞으로 공부할 방향에 대해 설정을 하고 입학과 동시에 직업진로지도서비스에 의거 구직기술 개발 및 각종 정보를 접할 수 있다.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각종 기업의 체험활동을 자주 참가하며 경험을 쌓고 각종 세미나 교육을 통해 역량을 늘려나갈 것이다. 재학 중엔 꾸준히 전문 진로 상담가와 상담을 하며 직업 정보 및 자신의 역량을 측정할 수 있으며 졸업이 다가오면서 면접기술, 이력서를 쓰는 법 등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며 본격적으로 취직을 준비할 것이다. 혹 졸업 전 취직이 결정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학교에서는 졸업자들에게도 꾸준히 취직의 기회를 재공하기 때문에 졸업 후에도 학교를 통해 취직을 준비할 수 있다. 그들은 봉사활동 및 취미활동,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연스럽게 사회성과 사교성을 발달시키는 학교 외 생활을 할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취직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신뢰하며 성실히 이행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인식이 잡혀있다.●영국의 사회, 문화에서 오는 대학생들의 경제적 부담?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영국은 18세가 되면 법적으로 성인으로 인정받으며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독립이라 함은 따로 떨어져 사는 의미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독립을 한다는 이야기다. 런던 South Bank대학의 Callender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 대학생들의 연 평균 지출은 학비와 생활비를 포함하여 약 1400만 원 정도이며 이중 24%정도를 가족에게 지원받는다고 한다. 나머지 76%는 대부분 학자금 융자 및 은행 융자를 받아서 생활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부채로 남게 된다. )그러나 사실 유럽 대학은 대부분 학생에게 학자금을 정부로부터 대출해주고 졸업 후 소득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이것을 상환해 이유는 EU경제 통합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EU통합으로 영국 외 취업의 길도 더 넓어졌으며 회원국 간의 교류가 많이 늘어났음을 그들도 인정하며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문화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여행을 위한 자금마련은 단기 아르바이트를 주로 이용하며 평균 편의점 알바로 5시간 근무에 한달에서 한달 반 정도 할 경우 마련이 된다고 한다.●영국학생들 자원봉사는 취업을 위한 수단이 아닌 영국 신사정신에 입각한 사회문화.)영국은 역사적으로 가장 일찍 시민사회를 형성하였기 때문에 자원봉사활동도 영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16세기 영국은 국가가 국민 복지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여 국민 보호를 실시하였다.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민간 복지단체도 발생하게 된다. 19세기에는 정부에서 실시하지 못했던 구빈사업을 일반시민이 시작을 함으로써 자원봉사활동의 출발점으로 작용하게 된다.1884년 바네트에 의해서 런던동부 슬럼 지역을 거점으로 시작된 인보관운동은 사회계층간의 간격을 좁히고 물질주의에 지배된 사회에서 인간 가치를 회복 다수의 시민과 슬럼지역 주빈과의 우애관계를 맺게 하여 원조를 스스로 행하도록 지도하였다.이때 슬럼지역 문제를 해결하고자 학생과 교수들을 중심으로 일반시민들의 봉사활동이 발전되었다. 이러한 발전으로 학생들의 편안한 자원봉사환경이 조성되었고, 학생들의 의식 또한 고취시켜 자원봉사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실제로 영국의 학생들은 대학생 자원봉사가 나와 사회의 간격을 좁히는 기회를 마련한다고 얘기한다. 따라서 그들은 봉사활동을 대학졸업 요건이 아닌 자발적인 의미로서 한다. 여진호 학생이 유학당시 낯선 뚱뚱한 동양학생을 보고도 상당히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맙게 느꼈는데, 그들이 능동적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것을 보고 영국 친구들이 진정 신사라고 느꼈다고 한다.●영국대학생들의 스포츠 활동. 가정의 소득과 계급에 연관되어 있어…….)최근 시대의 변화로 많은 변화가 있지만, 영국 학생의 스포츠 활동은 가정의 소득수준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 학제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며 궁금한 점이 있었다. 영국에서 16세까지 의무교육이 끝나면 곧바로 취직을 하는 경우가 40%에 육박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하는데, 16세면 우리나라 나이로 17세이다. 과연 17세의 나이로 취직이 가능하며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소득을 올릴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하지만 의무교육 종료 후에 바로 취직을 해서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부분은 정말 부러운 부분이라 생각한다.우리나라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총 9년의 의무교육을 시행하고 있으며 이 의무교육이 종료가 되면 영국과 마찬가지로 16세가 된다. 과연 우리나라는 16세의 나이로 취직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직장을 잡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실제로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는 단서는 바로 직업훈련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 현대학교와 기술학교에 진학함으로써 직장생활에 필요한 직업교육을 받고 의무교육을 끝마치기 때문에 사실상 그들이 사회에서 직장생활을 하기위해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고 졸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무교육이 끝나더라도 취직에 이용할 수 있는 기술 및 지식을 전혀 얻을 수 없다. 이는 국가가 학생들이 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역할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이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것이 실업계 고등학교인데 우리나라에선 고등학교는 의무교육 대상이 아니다. 결국 우리나라는 청년들이 사회에 진입해서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역할을 학생들 개개인에게 넘기고 있는 것이다.●실업교육의 문제점.우리나라 실업계 교육에는 크게 2가지의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첫째. 학생의 학력부족이다. 우리나라에서 실업계 고등학교는 대학진학을 하지 않고 바로 직업을 가지고 싶어 직업전문 교육을 받고자 하는 학생이 가는 곳이 아니라, 중학교 시절 성적이 떨어져서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 할 수 없는 학생들이 입학하는 경우가 90% 이상이다. 경험에서 나오는 생각이라 편견일 수 있지만, 학원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실업계로 진학
■들어가며....●유로존 회원국 현황표1)국가명도입일국가명도입일오스트리아1999.1.1벨기에1999.1.1키프로스2008.1.1핀란드1999.1.1프랑스1999.1.1독일1999.1.1그리스2001.1.1아일랜드1999.1.1이탈리아1999.1.1룩셈부르크1999.1.1몰타2008.1.1네덜란드1999.1.1포르투갈1999.1.1슬로바키아2009.1.1슬로베니아2007.1.1스페인1999.1.1에스토니아2011.1.1유로존 총 인구323,237,622명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연합 11개 국가는 1998년 통화 단일화에 대한 규범을 마련하여 1999년 1월 1일 공식 유로화가 탄생하게 된다. 11개국으로 시작한 유로화 회원국은 2011년 현재 17개국이 사용하고 있다.그러나 모나코, 산마리노, 안도라, 코소보와 같이 유럽연합 회원이 아니지만, 협정을 하고, 혹은 협정을 하지 않고 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가 11개국 존재한다.이 보고서에서는 유럽연합이 아니면서 유로화를 사용하는 11개국은 제외하고 유럽연합 회원국에 한해서 조사하도록 하겠다.■유로존 회원국들의 유로존 가입 이전 경제 상황회원국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1970년대와 1980년대 유럽은 고실업과 고물가, 그리고 고금리 등 불안한 거시경제 환경을 겪었다. EMS위기, 유럽동맥경화증(Eurosclerosis)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였다. 1990년 년까지도 저성장과 더불어 불안정한 거시경제 환경이 지속되었다.특히 그리스,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의 일부 국가에서는 20%가 넘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이런 인플레이션은 불확실성을 유발하여 장기금리에 반영돼서 금리상승을 촉진한다. 이는 투자비용 증대로 이루어져 결국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효과를 주게 되었다.표2)유로존의 거시 경제적 성과 지표(1989년~1998년)구 분유 로 존미 국GDP성장률(%)2.23.01인당 GDP증가율(%)1.91.8고용 증가율(%)0.61.5노동생산성 증가율(%)1.61.5실업율(%)9.35.8인플레이션(%7.829.329.732.032.7상품 서비스 수입(GDP대%)28.027.627.626.825.426.527.727.929.830.81990년대 유로존의 경제는 경제통합을 위한 구조조정을 통해서 내실을 다지는 단계였다. 사회보장비 지출 감축, 보조금 삭감, 공기업의 민영화 추진을 시행하며 구조조정을 하게 된다. 이런 결과 EU전체의 1990년대의 경제성장률은 2.1%로 세계경제성장률 3.4%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유로존 회원국들의 유로존 가입 이후 경제 상황 분석표3)유로존 국가의 유로화 시행 후의 구체 항목별 지표구 분9*************06070809GDP성장률(%)2.93.81.90.90.82.21.73.12.80.4-4.2인플레이션(%)2.33.43.33.33.02.22.42.83.02.40.6실업률(%)10.29.28.28.68.89.19.08.47.57.59.4상품 서비스 수출(GDP대%)32.936.636.936.135.036.63840.441.341.836.3상품 서비스 수입(GDP대%)31.636.035.333.533.034.436.338.939.540.434.8유로화 출범이후 유로존은 환율안정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거시경제 환경을 구축하였다. 2000년에 이룩한 경제성장률 3.8%는 1990년 3.5%이래로 가장 큰 성장이었다.물가상승률 역시 2000년 이후는 2~3%를 기록하였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낮추어 금리를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고, 기업들의 신규투자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실업률 또한 약간의 오르내림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유로화 출범 이후엔 약1,60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창출되어 감소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이 실업률 하락과 고용증가는 유로화의 출범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다.무역의 경우에 유로화의 사용으로 증가되는 것을 확인 할수 있다. 특히 유로권 국가간의 무역이 크게 증가하였고, 비유로국가와의 무역도 소폭 증가하였다. 유로화의 사용이 무역증진을 가져왔냐 하는 문제는 여러 학설이 존승, 독일의 통일에 따른 정세불안, 미국경제의 우세등의 원인이 있었다. 하지만 유로화 체제하의 경제의 견고성과, 미국간 단기금리차이에 기인하여 상승세를 타게 되었다.1999년 유로-달러 = 100 기준유로화의 시행으로 환리스크가 사라졌다는 것도 큰 특징이다. 1993년 역내 단일시장을 구성했지만, 통화장벽으로 그동안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였으나 단일시장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될 수 있었다.■종합평가●유로존 형성의 가장 큰 이점은 유로화의 국제적 위상 상승이다.유로화는 민간부문의 국제무역결제나 외환거래뿐 아니라 공공부문에서도 미 달러와 함께 국제통화로서의 위상이 증대되었다는 평가이다. 1999년 유로화는 국제채권시장에서 약 22%의 비중을 차지했으나 2006년에 32%로 증가하고, 2007년말에는 48%로 미 달러 36%를 앞질렀다. 또한 외환거래 시장에서도 37%를 차지하여 미 달러를 이어 두 번째의 화폐가 되었다.표4)유로화의 국제적 위상구 분2009년국제채권시장 발행잔고31.4%국제은행 대출잔액20.3%국제은행 예금잔액22.0%일일 외환거래량42.8%유로회원국과 비유로회원국간 상품수출 무역결제11.8~97.3%유로회원국과 비유로회원국간 상품수입 무역결제2.5~86.3%준비자산27.3%또한 EU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거나 특수한 관계에 있는 서유럽, 동유럽, 발칸지역, 북아프리카 등의 지역이 유로화 중심의 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앵커통화로서의 중요성이 더 확대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유로화는 현제 기축통화소러 달러화를 완전히 대체하진 못하지만, 경제규모, 통화가치의 안정성, 네트워크의 이점, 발전된 금융시장의 4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것으로 평가되서 세계경제를 선도할 수 있는 화폐가 되고 있다.●유로존 형성으로 실질적인 경제 안정화와 성장을 이룩하였다.위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유럽은 고질적으로 고실업, 고물가, 고금리등 불안한 경제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유로존의 형성으로 경제성장률이 향상되고, 실업률, 물가등이 안정되는 수치적 결과를 살펴볼 수 있었다.할 수 있게 되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로화는 큰 구조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위에서 계속 살펴본 바 유로화는 유럽경제에 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나, 세가지 정도의 구조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첫째. 회원국간에 대외적 불균형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단일화폐를 사용할 경우 대외불균형의 확대는 자국의 통화가치 하락과 같은 현상을 일으켜 바로 반응할 수 있으나, 유로화 체제 하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잘 일어나지 않아 개별국가가 반응하기 쉽지 않고, 이로 경제정책의 능력이 부족한 국가들은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가지게 되었다. 실제로 유로화 도입이후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는 지속적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고, 스페인, 그리스, 포루투갈은 지속적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유로화의 강세와 함께 국가간 생산격차를 더 크게 벌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것은 곧 국가의 과대채무현상을 일으키게 되었다.둘째.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간의 괴리를 들 수 있다. 유로화의 사용으로 통화정책은 중앙유럽은행이 담당하나, 재정윤영은 개별 회원국에서 하고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97년 이후 안정성장협약을 도입하여 운영하나 이 마저도 국가의 이해관계로 인해 찬반이 나누는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마지막으로 제도적 지원책이 미미하다는 점이다. 특히 EU는 채무지원을 금지하고 있다. 재정정책은 보조성의 원칙에 따라 개별 회원국의 소관이므로 그 결과도 개별 회원국이 져야함을 확실히 하고 있다. 따라서 경기 불안에 따라 유로화 통화정책에 적절한 조정을 하지 못할 경우 위기의 여지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재정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현재 유로존은 그리스발 경제위기로 큰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남부유럽의 경제위기는 유로화의 구조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는데, 취약한 재정구조의 문제는 재적적자를 불러일으켰고, 이로 인해 남부유럽과 아일랜드의 재정적자 비중이 크게 증대되었다. 재정적자의 악화로 그리스 이탈리아는 엄청난 채무부담을 안게 되었다.남마련되있지 않아, 회원국들은 유로화에 대한 불신이 심해지게 되었으며 급기야 유로존을 탈퇴하려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리게 된다.이런 남부유럽 경제위기의 원이이 되는 재정적자, 경상수지 적자에 따른 채무증대는 유로화의 문제와 민접히 연관이 되있어 유로화의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유로화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럽학기제도 도입남부유럽의 경제위기를 통해 독일은 IMF와 같은 유럽통화기금(EMF)를 설립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유로화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 국가를 선별하여 퇴출시키자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도 하였다.그러나 최근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내용은 유럽 학기제를 도입하여 회원국의 예산안이 채택되기전 검사/평가하여 그리스 사태와 같은 사건을 미리 방지하자는 내용으로 2011년부터 시행하게 되었다.유럽학기제■개인적 소감●유로존 형성은 주기적 경제순환의 변화를 가져왔다.이 내용은 위의 그래프에 따른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아 그래프에 따른 나의 생각을 적고자 위의 챕터인 가입 이후의 경제상황에 기술하지 않고 개인적 소감에 기술한다.위의 그래프는 시기에 따른 유로존의 경제순환주기를 나타내고 있다. 1975년부터 90년대 중반까지의 경제순환은 유로화 도입 이후인 90년대 후반부터의 순환주기에 비해 경제가 오르내리는 시간적 거리는 길지만, 진폭이 커 변화할 때 급하게 변화하는 추세였다고 생각한다. 반면 90년대 말부터는 비록 오르내리는 빈도수는 늘어났지만 그 변동폭이 적어진 특징이 있다. 과연 어느쪽이 더 안정적인가에 대해서 정확히 학술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오히려 유로화 채택이후를 더 안정적으로 생각한다. 변화하는 폭이 크면 클수록 대비하는 노력이 더 크게들 것이고, 실제로 느끼는 경기상황도 더 안좋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유로존의 사례를 통해 한-중-일 경제통합으로 시아를 확대.본 수업을 들으며 내가 가장 중점으로 생각한 부분은 유럽 EU의 사례를 통해 앞으로 한-중-일 관계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고, 항상 그 것의 해답을 찾기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