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에서 나타나는 비도덕적 행동과 집단 이기주의 -학창시절에나 어느 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소위 ‘일진’이라는 친구들과 대화를 안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에 자신이 ‘일진’이 아니었다면 그 친구들을 봤을 때, 위화감이 들고 같이 있기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진’과 평범한 학생의 경계에 걸쳐있는 학생들은 ‘일진’과 지내면서 겪은 일은 평범한 학생에게 자신의 무용담을 펼치면서 그런 말을 자주한다. “걔 착한데?” 이게 평범한 학생이 대부분 겪었을 만한 개인은 도덕적이지만 집단은 비도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필자도 그런 경험이 있기에 글의 서두에 이러한 예시를 든 것이다. 본격적으로 말하고 싶은 주제는 스포츠와 집단 이기주의다. 아래에서 스포츠계에서는 어떠한 비도덕적인 현상이 존재하는 지 살펴보도록 하겠다.최근 스포츠계의 가장 큰 쟁점은 구단과 선수간의 갈등이다. 바로 대한민국 최고 인기 종목인 프로야구에서 일어난 갈등이다. 바로 국내 최고의 좌완 투수 류현진의 해외 진출을 허락할 것이냐 아니면 류현진을 잡아 둘 것이냐가 지금 스포츠계의 최대 쟁점이다. 먼저 이 사건에 관련된 내용을 시간 순으로 설명을 하겠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제도에는 9년차부터 FA신분이 돼서 어느 팀과 자유롭게 계약을 할 수가 있다는 조항이 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선수가 7년차부터는 구단에서 허락을 한다면 해외팀과 협상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구단은 해외 팀으로부터 이적료를 받고 선수를 이적 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 국내 최고의 좌완투수인 류현진은 올해를 끝으로 7년차 FA가 되어서 구단의 허락만 있으면 꿈에 그리던 해외, 정확히 말하면 미국 메이저리그로 갈 수가 있게 된다. 선수의 의지뿐만 아니라 국민의 여론마저도 류현진을 해외로 보내야 한다는 의견이 절대적이었고, 야구계의 많은 사람들도 대한민국의 야구를 위해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시간이 흘러가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꼴지’라는 이미지가 박혀버린 한화가 큰 결정을 하게 된다. 바로 한국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김응룡 전 삼성 라이온즈 사장을 감독으로 선임을 한 것이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많은 이슈거리를 낳았지만 그래도 많은 관심사는 류현진을 해외로 보내 줄 것이냐 말 것이냐가 가장 큰 이슈였다. 그의 대답은 “절대 보낼 수 없다.”였다. 이 말만 보면 이게 왜 집단이 비도덕적인지 의아해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시간을 되돌려 보면 위에서 말한 류현진을 수출해야한다는 많은 야구계의 사람들 중 한명이 바로 김응룡 감독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김응룡 감독의 이중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 봐라 봤을 때는 무조건 보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가 어느 집단의 수장으로 오게 되자 그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바로 말을 바꾼 것이다. 한국야구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는 그 분이!물론 그의 입장이 비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개인의 입장과 집단의 입장은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은 스포츠계에서의 일이지만 실제로도 많은 분야, 주위에서도 이런 현상은 많이 발견할 수 가 있다. 그리고 그 현상에 대한 본인만의 해결책을 아래에서 제안할 것이다.어느 단체건 비리가 존재 할 수밖에 없다. 만약에 어느 최상위 조직에 그 조직전체의 비리를 감시하는 단체를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그 단체는 누가 감시할 것인가? 이런 무한대로 계속되는 답변과 똑같은 질문만 계속해서 하게 될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느 단체가 비리가 있는 것이 당연하므로 그것을 인지하고 살아야 할까?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어느 단체건 비도덕적인 것을 인정해야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대답은 ‘아니요’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Be realistic, demand the impossible!” by Che Guevara.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모든 개인과 모든 단체가 도덕적이게 된다는 것은 정말로 이상적인 사회이다. 그것이 이상이라고만 여기면 사회는 그 쪽방 향으로는 한발자국도 움직이기 힘들 것이다. 그와 반대로 이상인줄은 알지만 이상을 위해서 노력한다면 이상에 다가가진 못할 것이라도 그 쪽 방향으로 한발자국씩 나아가다보면 가까워 질 것이다. 그런 이상으로 나아가는 방법 중 하나가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조직이던 같은 성격의 사람들이 모이면 부패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이익을 알고 서로를 챙겨주면 당연히 은폐하고 숨기고 하는 것이 많을 것이고, 사회는 부패할 것이다. 만약에 어느 조직이건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모이면 그 보다는 부패할 확률이 적을 것이다. 즉, 어느 조직이건 보수 세력과 진보세력을 섞어 놓으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도덕적이게 될 것이다. 견제를 위한 도덕은 보기에는 좋지는 않지만 결과에는 좋아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책을 읽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하면서 나에게 모티브를 준 ‘탕평책’의 제시자인 영조의 지혜로움에 감탄하며 이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0 1 시대상황 - 시대상황 0 2 표현주의 - 표현주의 - 멘델존 - 미스 반 데 로에 03 바우하우스 - 바우하우스 설립 - 바우하우스 중기 - 바우하우스 말기 11 장 발터 그로피수으 . 독일 표현주의와 바우하우스 Contents01 독일의 시대상황 1918 년 독일군이 패퇴하고 , 옛 제국의 질서가 와해되면서 하나의 엘리트 전문 예술가가 선도하던 통일된 문화라는 무테시우스의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 . 위대한 산업 국가들의 대단한 기술적인 재간들이 시장에서 경쟁하는 대신에 전쟁터에서 경쟁했던 것이다 . 독일에서 경제적인 혼란에 대한 반작용의 혁명이었으며 , 이는 좌파 우파 라는 정치적 대립의 양극화를 초래했다 . 이러한 배경에서 유토피아적 이상주의가 성장하게 되었다 . 독일 건축가들은 새로운 사회 이미지를 예견하는 도상 계획안을 만드는 일로 되돌아갔다 . 시대상황01 비정치적인 사회주의를 구체화 하려함 인간의 형제애 옹호 , 국경이나 개인의 욕심은 배제 계급구분이 없는 자연스러운 사회 구현 추구 브루노 타우트 (1880~1938 ) 1 . 알프스 건축 (1919) 우주산 , 계단식 피라미드 형태의 중심을 지닌 새로운 집단 종교를 구체화하려함 ‘ 중심 ’ 은 소원해진 현대인의 중심을 잡아주고 하나의 통합된 사회에 의미를 둠 2 . 도시의 왕관 (1919) Lyonel Feininger, ‘Cathedral of Socialism’, from the cover of the first Bauhaus proclamation,1919 Bruno Taut, plate from Alpine Architeklur , 191902 1 표현주의 정의 1910-25 년 사이 , 독일과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의 복잡하고 유영하는 듯한 형태로 나타나는 예술경향 소위 ‘ 비 합리적인 ’ 예술 경향을 설명 (‘ 합리적인 ’ 경향 : 단순성 , 규칙성 , 정지상태 ) ‘ 표현주의 ’ 란 어떤때는 마음 가짐을 , 어떤때는 형태를 지칭하는데 사용되어서 더욱 종잡을 수 없는 용ohn , Einstein Tower, Potsdam, 1920-4 Erich Mendelsohn02 5 Erich Mendelsohn , Hat Factory and Dte Woks, Luckenwalde , 1921-3 산업 프로그램과 표준화 된 구조 시스템이라는 비활성 물에 생기 부여 생산 공정은 유리로 덮은 작업장들을 대칭 평면으로 나란히 배치 , 염색공장은 모자를 연상시키는 표준 단면을 사용 경사진 대각선 콘크리트 보들로 경사진 지붕 윤곽 표현 전체적으로 경사선들이 긴장감을 시사 조적으로 된 외부 피복의 사전 유리장은 모든 부분들이 하나의 역동적이고 필연적인 전체를 이루도록 마무리 함 Erich Mendelsohn02 5 Erich Mendelsohn , Hat Factory and Dte Woks, Luckenwalde , 1921-3 Erich Mendelsohn02 6 멘델존의 양식 1920 년대 멘델존 양식은 자신이 설계한 수많은 백화점 , 영화관 , 별장들로 좀 더 3 차원적으로 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 기계적 유추와 새로운 건축의 특징적 형태들 ( 금속 띠 창 , 떠있는 띠 장식 , 곡선 캔틸레버 계단 등 ) 을 즐겨썼으나 , 개인적인 취향과 내면적인 에너지의 특성이 멘델존의 작품임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 평면과 단면에서 평행한 레이어들과 입면에서 그는 수시로 긴 수평선들을 사용하였는데 멘델존은 이에 대해 ‘ 빠른 생활의 흥분상태에 있는 현대인은 스트레스가 없는 수평선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 라는 주장을 했다 . Erich Mendelsohn02 1 미스 반 데 로에 독일의 아헨에서 석공의 아들로 태어나 1905 년 베를린으로 이주하였다 . 1907 년 주택을 처음 건축하였고 , 1909 년 피터베렌스의 사무소에 들어가 경험을 쌓았다 . 그 전에는 아버지의 석공장과 브루노 폴의 가구사업에서 경험을 쌓았다 . - 아헨에 있는 9 세기의 팔라틴 교회의 엄숙하고 초 시간적인 구조 슁켈의 신 - 고전주의적 엄격성과 기하학적인 정밀성심축 , 최상부에 있는 떠 있는 코니스 면에서는 고전적 구성의 흔적을 지녔다 . 각 층이 아래층보다 조금씩 돌출하로록 함으로써 시각적인 긴장감을 주었다 . 시각적 보정은 건축가의 표현주의적 취향들과 연관될 것이며 , 고전적인 엔타시스를 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 업무 , 조직 , 명쾌성 , 경제성의 건물 밝고 넓은 작업실들은 감독하기 쉬우며 , 업무가 나뉘지 않으면 분할하지 않는다 .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다 . 재료를 콘크리트 , 철재 , 유리다 . Mies van der Rohe02 6 Mies van der Rohe , Brick Villa, 1923 예술가의 어휘가 ( 외부의 ) 영향을 받아들여 성숙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 길잡이 개념을 우선 보여 줄만한 중요한 작품이 있고 다른 발견 ( 개념 ) 들을 구체화하는데 수년이 걸리는데 이 벽돌 별장이 미스의 발전과정에서 길잡이 개념을 보여준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평면은 길이와 두께가 다 른 선들을 연계시켜 , 무한대로 뻗어가는 것 같이 , 원경을 실내 중심부로 끌어들이는 것 같이 보이도록 설계 이 선들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유리로 된 개구부들을설치하기 위해 군데군데 잘린 벽체를 표시한 것이다 . 지붕은 모두 얇은 판으로 만든 평지붕이다 벽면 사이의 공간들은 중첩의 원리로 활성화 되었다 . 주된 축은 없으며 사람이 이동함에 따라 에너지 장이 바뀐다 . 공간적 개념들을 전체 구성을 3 차원으로 활성화하고 , 일부 요소들을 띄우는 식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하기까지 몇 년이 더 걸리게 된다 . 이후 평생동안 그는 계속해서 대칭 축 평면들과 역동적 회전이나 원식적으로 펼친 면들로 된 평면들 사이를 오가게 된다 . Mies van der Rohe02 7 벽돌 효과 ‘ 국제 양식 ’ 의 형성과정에서 비물질화와 매끄러운 평면성을 강조한 것에 비추어 , 1920 년대 중반에 실제로 건설된 미스의 몇몇 작품들이 거칠고 울퉁불퉁한 벽돌 효과에 의존했다 다양한 크기와 깊이로 상호관입하이다 .” 그로피우스는 장인들이 새로운 시대의 요구와 수단을 전수받는다면 , 그들은 진정한 집단적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것이라고 추측했다 . 03바우하우스의 설립 2. 바우하우스의 교과과정 학생들은 직물과 공예를 배우고 이와 병행해 구성과 색채 , 질감 , 그리고 표현 공부를 포함하는 형태구성 기초교육으로 형태 연구가 있었다 . - 이 과목들은 폴 끌레 , 바실리 칸딘스키 , 오스카 슐레머 같은 이젤 그림 화가들이 가르쳤다 기초과정을 이수하면 중급과정을 거치는데 요하네스 이텐의 지도 아래 유럽의 이론적 전통들이 지닌 습성들과 진부한 표현들을 잊어버리고 자연의 재료들과 추상적인 형태들의 실험을 통해 새롭게 시작하도록 조장했다 . 그는 학생각자가 본능적 표현을 일깨워 강요되지 않은 형태를 만들기 바랬다 . 이것은 원시주의 이념이었고 정신의 내면세계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재료의 성질과 합쳐져 심오한 집단적 신념들을 표현하는 형태들을 만들어내게 된다는 것이었다 . 03바우하우스의 설립 3. 바우하우스의 마이스터 ( meister , 장인 ) 요하네스 이텐 ( johannes itten 1888~1967) 스위스출생의 화가 . 바우하우스의 교사들중 유일하게 교육경험을 가진사람이었다 . 신념이 강하고 학생들로부터 신뢰를 받아서 초기 바우하우스 교육의 중심인물이되었다 . 그는 전쟁 전 세대 (‘ 예술에서의 정신에 관하여 ’ 에서 내세운 칸딘스키의 이론들 ) 의 상징주의 개념들을 확장시켰고 어떤 시각적 형태와 어떤 심리상태 사이에는 내면적인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 ∙ 이텐의 기초과정 수업 초기에 나온 작품들은 뚜렷하게 원시적인 정취를 지님 ∙ 서양의 쇠퇴의 따른 우울감과 원시부족들의 유물들이 받은 계시들에 매달리려는 경향을 반영 ∙ 쿠르트 슈비터의 잡동사니 건축물들과 막스 에른스트 , 다다이즘의 아방가르드 작품들의 영향을 받음 ∙ 전체적인 작품분위기는 전쟁으로 인한 절망감이었다 . 이텐의 학생들은 다다이스트 ( 허무주의자 ) 들처럼 , 아마도 아프리카의 가면들과 주물 특정공예 교육을 이수하고 난뒤 전문가 과정으로 들어가며 거기서 건축과 대량생산기술 교육을 받았다 . 그로피우스 이론의 핵심은 실용적인 물건에 감성과 감수성을 불어넣음으로써 그 시대 창 작 품의 기본적인 형태적 특성을 개선할수 있다면 , 단지 실용적일뿐인 설계의 야만성과 소비자중심주의의 저속성을 모두 피할수 있다고 말했다 . 그는 최종 목적은 건물이라는 통합적 예술작품 안에서 모든 예술분야를 통일하고 종합하는 것이었다 . 이것은 단순히 다른 예술작품을 거기에 덧붙이자는 것이 아니라 회화 , 조각 그리고 건축의 기본적인 가치관을 그 시대의 문화를 상징하는 감동적인 구조물로 종합하려는 것이었다 . 바우하우스의 1 대 교장 발터 그로피우스 . 바우하우스의 설립 03바우하우스의 설립 1920 년 그로피우스가 아돌프 좀머펠트 주택을 의뢰받았는데 내부 장식과 비품 설계의 그의 학생들을 썼다 . 이중 마르셀 브로이어가 있었고 그의 목재가구는 그가 뒷날 철제로 만들게 될 몇몇 개념들을 예고했다 . 좀머펠트 주택은 하나의 실험이었으며 전쟁전 그로피우스의 형태 구성적 접근과 중세풍 분위기 , 토속적 이미지 , 그리고 라이트의 미드웨이 가든즈의 영향을 받았음직한 요소들을 결합했다 . 좀머펠트 주택 , 발터 그로피우스 , 1920~1921 03바우하우스의 중기 1923 년 봄 . 이텐과 슐라이어가 퇴임한 것은 바우하우스 연혁에 획을 긋는 최초의 위기였다 . ‘ 생산과 교육 두 기능을 겸비한 기관 ’ 으로서 바우하우스를 정착시킨 그로피우스는 외부의 주문에 의한 제품개발과 생산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 예술성 교육지상주의자였던 이텐이 그 방침에 강하게 반발하다가 결국 퇴임했다 . 이후 재정난으로 인해 폐교 위기를 맞은 바우하우스는 데시우시장의 도움의 손길로 기사회생할수있었다 . 데사우시는 바우하우스를 환영했다 . 1 년안에 대지가 선정되었고 , 그로피우스가 설계하기로 했다 . 이는 그가 모든 예술 분야들을 종합하여 학교의 철학을 표할수있는 좋은 기회였다 . 요하네스 스텐의 퇴임 . 03
CONTENTS Who is BANKSY ? What is GRAFFITI ? He’S works I think of BanksyWho is BANKSY ?BANKSY( 가명 ) 영국출신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 영화 감독 1974 년 브리스톨 출신 외 정확히 알려진바 없음 그래피티를 통해 전쟁 , 공권력 , 환경오염 , 자본주의 등 사회부조리를 비판 영화 ‘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 스텐실 기법 #스텐실 - 형태를 오려 놓고 그 속에 물감을 채워 넣는 기법BANKSY 에게 익명성이란 ? 살아남기위한 방법 . 대중들에게 호기심 자극What is GRAFFITI ?알타미라 , 라스코 동굴벽화 엄밀히 말하면 낙서화1970 년을 전후로하여 미국 뉴욕과 필라델피아 등에서 발생한것 으로 알려짐 이후 미국각지와 유럽에 급속도로 전파됨 그래피티의 대중화에 따른 정부와 미술계의 논쟁 “ 예술인가 , 범죄인가 ”He’S works의인화된 동물들 쥐 , 원숭이 인간행위 반영 인간의 욕구나 심리적 형편 은유아이들과 소녀 아이들의 순박함을 이용해 세상의 폭력과 부당함을 역설권력에 저항 경찰 , 왕실근위병 , 군인 등을 통해 공권력을 비판전쟁과 폭력에 저 항 성격이 극적으로 대비되는 소재를 사용하여 전쟁을 강하게 비판함자본주의 비판 자본주의의 병폐에 대한 역설과 비판패러디 , 기발한 작품I think of Banksy다소 어려운 주제를 유쾌하게 풍자 강하고 도발적인 메세지전달 사회를 비판하는 자세와 적극성 그것에 접근하는 독특한 방식 , 용감함에 매료됨 표현의 창의성 미술의 제도화 , 상품화에 역행 진정한 예술인 우스꽝스러운 그림 속 에 묻어나는 그의 진지함참고 문헌 Banksy wall and piece, 위즈덤피플 , 지은이 : 뱅크시 옮긴이 : 리경 , 해제 : 이태호 창조의 제국 , 지안출판사 , 임근혜 사진 : www.banksy.co.uk Thank you ! “ 재능이 있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으로 되는 것보다 쉬운건 없다 . 가치있는 무언가를 찾기전에 집을 떠나라 .” BANKSY{nameOfApplication=Show}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1377년~1446년 4월 15일)브루넬레스키의 생애 초기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안토니오 마네티와 조르조 바사리의 저작이 유일한 기록이다. 이 기록들에 따르면 필리포의 아버지는 브루넬레스키 디 리포(Brunellesco di Lippo)이고, 어머니는 줄리아나 스피니(Giuliana Spini)이다. 필리포는 세 자녀들 중 둘째였다. 젊은 필리포는 공무원인 그의 아버지의 뒤를 잇게 할 의도로 문학과 수학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예술에 마음을 둔 필리포는 금 세공사, 금속 세공사, 청동 세공사가 포함된 비단업자 길드인 아르테 델라 세타(Arte della Seta)에 등록하게 된다. 그는 1398년 금 세공 장인이 된다. 그가 속해있던 길드와 같은 길드에서 지은 그의 처음으로 중요한 작품인 고아원과 브루넬레스키가 금 세공 장인이 된 것은 시기가 일치하지 않는다.1401년 브루넬레스키는 피렌체에 있는 세례당의 청동 문 세트를 디자인하는 공모전에 응모했다. 다른 젊은 금 세공인인 로렌초 기베르티와 함께 그는 이삭의 희생을 묘사한 금으로 도금된 청동판을 만들어냈다. 기베르티가 이삭의 모습을 나체의 토르소로 묘사한 데 비해 브루넬레스키의 참가작은 '가시 잡아당기는 사람'으로 알려진 고전적인 조각상을 참고했다. 1403년 기베르티가 그의 월등한 숙련된 기법으로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기베르티의 청동판은 청동 주조의 매우 세련된 지식을 보여준다. 이 청동 판은 한 조각으로 되어 있다. 반면에 브루넬레스키의 청동판은 뒷판에 볼트로 죄여진 몇 개의 조각들로 구성된다. 기베르티는 세례당을 위한 두 번째 청동 문의 제작에 착수했는데, 그 아름다움은 100년 뒤에 미켈란젤로가 "분명히 이것은 천국의 문이다"라고 칭송할 정도였다.[건축가로서의 브루넬레스키]그는 르네상스 건축의 문을 연 건축가였다. 여러 면에서 초기 르네상스를 개척하기에 적합한 배경을 가졌다. 피렌체 공화국의 중간 관려였던 아버지에게 시민 인본주의를 배웠다. 모계는 전통 귀족가문이면서 금융가문이었던 스피니(spini)가였는데 귀족 전통에서 고전주의를 금융전통에서 중상주의와 실용정신을 각각 배웠다. 그 스스로는 현장 기술자였으며 시의 건축 자문위원이면서 시의회 의원을 겸했다. 공화정 이상에 충실해서 자신의 건축을 피렌체 시민을 위한 봉사로 생각했다. 이상을 합하면 르네상스 건축이 된다.브루넬레스키와 역사 실용주의그의 건축은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공학기술을 배경으로 한 역사 실용주의로 피렌체 돔(1418~20년경)을 대표작으로 들 수 있다. 1296년에 첫 공사를 시작한 고딕 성당인데 1367년에 돔을 덮기로 하고 프란체스코 탈렌티(Francesco Talenti)의 안으로 확정되었따. 지름이 42미터, 높이가 84미터나 되어서 당시 기술로 짓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설계 경기가 열렸고 기베르티와 경쟁 끝에 브루넬레스키의 안이 뽑혔다.1472년경 피렌체 전경 가운데에 브루넬레스키의 피렌체 돔이 보인다.피린체 돔의 이중 껍질 구조 골격. 속을 파내 무게를 줄이고 성 요한 세레당과 판테온의 구조방식을 섞어서 세웠다.브루넬레스키는 성 요한 세례당과 판테온의 구조를 혼합해서 만든 이중 껍질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25,000톤이나 되는 돔의 자중을 줄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껍질 속을 파내는 것인데 여기서 이중 껍질의 아이디어가 나왔다. 얇아진 두 장의 껍질이 단독으로 서 있으면 구조건으로 불안할 수 있는데 이 문제는 둘을 수평 이음 벽으로 연결하는 성 요한 세례당의 구조를 빌려와 해결했다. 판테온과 같이 층층이 켜를 쌓는 방식으로 시공하면 홍예 틀이 필요 없었다. 이처럼 역사 선례를 차용하는 기준은 오로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유리한 실용성 뿐이었다.둘째, 토스카나 로마네스크를 빌려서 비례 법칙으로 잘 정리하는 경향으로 피렌체 고아원(1419~27)이 대표작이다. 르네상스 건축은 통상적으로 로마 고전주의를 부활시켜 사용했는데 브루넬레스키는 아직 여기에 이르지 못했다. 토스카나 로마네스크에 내재된 로마 전통을 끄집어내어 사용했다. 피렌체 고아원의 전면을 가로지르는 아케이드가 대표적 어휘였다. 반원 아치를 독립 원형기둥이 받치는 형식인데, 엔지니어였던 그의 눈에는 벽체가 아치를 받치는 로마 고전주의 구조가 비효율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피렌체 고아원 정면 아케이드 전경. 브루넬레스키는 아직 로마 고전주의를 직접 사용하지 않은 대신 토스카나 로마네스크에 담긴 로마 전통을 사용했다.피렌체 고아원 평면도. 중세 수도원 평면을 플라톤의 공화국 이상에 맞춰 응용해서 르네상스의 시민 인본주의 구현했다.거시적으로 보면 르네상스 가운데 중세와의 연속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르네상스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중세와의 단절만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연속은 평면에서도 나타났다. 회랑과 교회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시설을 배치하는 로마네스크 수도원 구성을 따랐다. 교회 자리는 또 하나의 회랑으로 처리했으며 탁아소, 기숙사제 학교, 직업학교, 병원, 사회회관, 고아원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수도원 구성을 인본주의 정신으로 재해석한 것이며 플라톤의 [공화국] 이상을 이어 받아 시민 인본주의 정신을 구현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셋째, 자신이 발명한 투시도를 이용해서 만든 휴먼 스케일의 중앙 집중 형 공간으로 파치 예배당이 대표작이다. 사각형 몸통을 소형 돔으로 덮은 구성으로 중세 선형 공간에 대비되어 중앙 집중 형이 최초로 등장한 예이다. 르네상스 전반에 걸쳐 중앙 집중 형이 대표 유형으로 크게 유행하게 되는데 이 건물은 그 가운데 하나인 그릭 크로스로 가는 첫걸음에 해당된다. 또한 실내 공간 전체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데 이는 나를 초점으로 삼아 주변 공간을 재편하려던 투시도를 반영한 결과이다. 척도를 휴먼 스케일로 줄여서 투시도 효과를 높였다.파치 예배당. 사각형 평면 위에 펜던티브 돔을 얹은 단순한 구성으로 르네상스 중앙 집중 형 공간의 문을 연 건물이다.알베르티의 만토바 플랜. 로마 시내에 보르고 레오니와 바티칸 개발 계획을 보여준다.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꽃의 성모마리아)대성당의 붉은색 대형 돔은 역학상의 난점을 훌륭하게 해결한 걸작일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건축 중에서 빛나는 최초의 수확이기도 하였다. 또한 고대 로마의 판테온의 가구기술(架構技術)을 채용하여 돔을 설계하고, 조화를 이룬 당당한 볼륨을 공간에 세우는 데 성공하였다.고딕건축의 수직적 상승성을 배제하고 조화를 이루면서도 장중한 공간을 살린 르네상스 건축은 여기서부터 출발하였다. 고딕의 수직선에 대신하는 수평선의 강조, 간소, 명확, 규칙적인 개개의 형식을 강조하여다. 각부분은 저체속에서도 스스로 명료함을 나타냄과 동시에 또 일관된 조화적 질서를 구성하는 요소를 이루고 있었다. 고전주의 조각기술을 피렌체의 교회건축들에 적용하여 현실적으로 제한된 도시공간에 균형잡힌 부분의 비례와 통일을 달성함으로써 알베르티 등은 궁전이나 교회의 건축설계에 고대양식에 바탕을 둔 구상을 열심히 추구했다. 15세기 후반에 피렌체에서 이룩된 새 양식은 이탈리아 각지에 파급되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피렌체의 돔은 교회나 성당과 같은 건축에 성스러움을 상징하는 고유의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돔양식이 상징성을 드러내는 양식으로 자리잡자 전세계로 퍼져 각종 공공기관이나 교회, 성당에 돔을 흔히 볼 수 있다. 시대를 대표하는 양식이 아무렇게 사용되면 그 진정성이 퇴보 할수도 있다. 예를 들어 청와대같은 경우 돔은 권위적인 양식으로 부각됨을 느낀다.과학기술과 그로인한 구조미를 창출한 피렌체성당의 돔의 진정성있는 가치를 역사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건축을 하여 그 진정성이 퇴색하지 않게됨을 바란다.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년 2월 18일 ~ 1472년 4월 20일)알베르티는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의 철학자이자 건축가이다. 전공 분야는 법학, 고전학, 수학, 희곡, 시학이며, 또 회화나 조각에 있어서는 창작 뿐 아니라 이론의 구축에도 기여하였다. 음악과 운동경기에도 뛰어났고, 제자리에서 사람 키를 뛰어 넘었다고 전해진다.교황 에우제니오 4세 밑에서 고대 건축을 연구하였으며, 1450년 10권을 저술하여 건축가로서의 경험과 미학적인 원리를 세웠다. 그의 이론은 옛 고전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을 출발점으로 하였는데, 그의 설계는 후에 바로크 건축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설계에 의해 지어진 건축물로는 밀라노의 산프란체스코 성당과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노베를라 성당 등이 있다. 저서로 등이 있다.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인문학적 지성으로 무장한 르네상스 전인상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인문학의 거의 전 분야에 정통해서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건축조차도 인문학적 관점으로 정의했다. 여러 면에서 브루넬레스키와 반대되는 이력을 보였지만 한 세대 늦은 알베르티는 자신의 저서를 헌정하는 등 브루넬레스키를 존중하며 그가 문을 열었던 초기 르네상스 건축을 완성시켰다.[건축가로서의 알베르티]알베르티의 중요성은 로마 고전주의를 부활시켜 르네상스에 끌어들인 점에 있다. 미시적으로는 인본주의 거눅을 정의할 구체적인 창작 소재를 찾은 점이, 거시적으로는 르네상스를 피렌체를 넘어 로마로 확장시킨 점이 중요했다. 이 둘을 합하면 르네상스의 핵심 현상 가운데 하나인 ‘로마 고전주의의 부활’이 된다. 찬란한 문화적 자산으로 가득 찬 로마가 중세의 긴 잠에서 깨어나 새 문명에 합류한 것은 실로 엄청난 역사적 전환인데 건축에서는 알베르티가 이 일을 했다.니콜라오 5세 때인 1447~55년에 로마 재건사업에 활발하게 참여했으며 로마의 건축이론서인 [건축 십서]6를 모델로 삼아 같은 이름의 건축 이론서를 남겼다. 고전에 대해 실증적 방법으로 최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한 뒤 인문학적 기준에 따라 분류하고 해석을 가했는데, 시민 인본주의의 전형적인 학문 방식이었다.정식 건축가가 아니어서 보조 건축가를 대동하고 작품 활동을 했지만 이런 인문학적 접근은 건축을 지성 학문의 한 분야로 승격시키는 역할을 했다.
Contents1. 서론1-1 들어가기1-2 건축가 없는 건축을 읽고2. 본론2-1 (토속건축)사례선정 및 선정이유- windcatcher(통풍탑)2-2 (토속건축)사례에 대한 구체적 소개- 이란 바드기르(bad gir)- 이집트 말콰프2-3 현대건축의 적용 및 사례- 증기 냉각탑- 주요현안- 설계시 고려사항- 사례3. 결론* 참고문헌1. 서론1-1 들어가기본 보고서의 내용은 저자 버나드 루도프스키(BERNARD RUDOFSKY)의 ‘건축가 없는 건축’을 읽고 사례를 선정한 후 사례에 대한 조사내용을 기술하고 현대건축에 적용한 사례들과 공법, 기대효과 및 개선점을 작성하였다. 교수님이 요구하는 필수조건을 파트별로 나누지 않고 일관성 있는 내용전달을 위해 본론의 내용을 위와 같이 분류해 놓았다. 사례 선정은 windcatcher로 하였고 본 보고서의 내용은 windcatcher의 토속건축사례와 현대건축 사례 및 적용 위주로 기술되어 있다.1-2 건축가 없는 건축을 읽고책에 소개된 많은 토속건축의 예들은 책을 읽는 동안 많은 물음을 주었고 호기심을 자극했다.‘이게 가능해?’ 라는 의문과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 이름없는 건축가들의 작품(?)들을 보고 인간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암석으로 된 거대한 산을 깍아 그속에 공간을 만든 주거(절삭건축), 넓은 토지에 구멍을 파서 방과 마당을 만들고 옥상은 농토로 만든 중국의 지하도시, 운석이 떨어진 거대한 구덩이를 이용해 만든 원형 극장(무유-우류아의 원형극장)은 자연의 경이로움과 생태건축의 원형을 그대로 나타낸다. 반복개 도로는 통풍이 잘되는 레이스 모양의 덮개로 동양의 거리와 뜰을 유쾌하게 드러냈다,이동 가능한 건축 부분에는 밀짚 지붕을 4명의 사람이 머리로 받고있는 모습이 있다. 우스꽝스러운 장면인데 그것을 이고 대륙을 이동하면서 터를 잡는 유목민들이 대단하고 생각했다.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곡물창고도 성당과 같이 성스러운 공간이었다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곡물창고사진을 보게 돼서 그러로 하기 때문은 아닐까. 발달로 인한 자연의 소멸은 더욱 자연으로 돌아가는 본능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의도하지 않더라도 자연의 지형위에 만들어진 토속건축은 꾸밈없이 다양했고 인간적이었다. 개인주의와 기술의 발달로 토속건축은 사라지고 있지만 선례를 바탕으로 지혜를 찾고자하는 시도를 현대 건축에서 시도하고 있다. 높은 건물빌딩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과 형태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을 가졌지만 어쩌면 토속건축의 뿌리에서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의 풍요와 지속가능성의 씨앗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2. 본론2-1 (토속건축)사례선정 및 선정이유- windcatcher(통풍탑), 자연환기의 중요성친환경 설계의 궁극적인 목표는 진정한 지속 가능성을 달성하고 에너지, 물, 자재를 더 적게 사용하는 구조물을 설계 및 구축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개방하고, 사람의 건강과 환경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친환경 설계는 최초 계획 단계에서 부지개발, 설계, 건축, 관리 및 유지보수, 궁극적으로 제거 및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건축물 수명 주기의 각 단계에 환경적 고려사항을 통합한다. 여기에는 자재, 시스템 및 방법에 대한 무수한 결정이 포함된다. 친환경 설계에는 최적의 해법을 찾기 위해 각 결정을 여러 기준에 대해 평가하는, 여러 전문 분야에 걸친 전체적으로 통합된 접근방식이 내재된다. 지난 20년간 친환경 설계에 대한 이해가 정교하게 증대됨에 따라 채택된 전략이 발전하고 건축물의 정량적 성능이 향상되었다.‘새집 증후군(Sick House Syndrome)’은 더 이상 새로운 말이 아니다. 이미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온 주거환경 관심사다. 전문가들은 오염 물질을 뿜어내는 자재 유통을 막고 시공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집 증후군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새 아파트나 리모델링 주택 입주자는 각종 오염물질에 시달리고 있다. 새집 증후군은 새로 지은 집이나 리모델링, 인테리어공사를 한 집에서 건자재, 가구, 가전용품 등이 인체에 해로운 각종 휘발성 물질을 고려하지 못했다. 산업화되면서 공기는 오염되고 공조시설도 갖추지 못하고 여기에 온돌 문화로 환기는 더욱 어렵게 되었다.우선 주거 문화의 큰 변화가 필요하다. 땅이 좁아서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고층의 공동주택 일변도의 주거 문화는 문제이다. 좀더 인간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주거 환경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공동 주택이든 단독 주택이든 급기 배기의 공조시설을 해야 한다. 서양처럼 공기정화 필터가 있는 급기구를 통하여 냉난방이 되도록 하든지 아니면 자연환기가 가능하도록 설계해야 한다.현재 자연 통풍은 오염된 공기가 그대로 집안으로 들어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따라서 집을 지을 때 자연통풍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집안에 설치하는 공기청정기는 집안의 공기를 그대로 정화하는 것이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새로 집을 지으려는 사람은 설계시 자연통풍을 고려하고 보조적으로 공조시설을 해서 근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다.토속건축의 사례를 보면 조상들은 환기를 필요성을 일찍히 느꼈고 건축설계에 자연환기를 유도하는 설계 또는 장치를 설치함으로써 지혜롭게 대처했다. 에너지와 경제적 낭비를 초래하는 건축설비에 의존하기 보다 옛사람들의 지혜를 현대 건축에 적용해 친환경 건축설계 뿐아니라 효용성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디자인을 배울 필요가 있다.2. 본론2-2 (토속건축)사례에 대한 구체적 소개주택은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지어졌으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거주자에게 알맞은 물리적 피난처를 제공 하는 것이다. 더운 지역에서는 주택의 통풍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건조 기후 지역에서는 기후 완화 장치의 하나로 바람 통로가 있는데, 이것은 지붕 높이 위의 미풍을 모아 사람이 사는 주거 공간으로 내보내는 시설을 말한다. 바람통로는 파키스탄 남동부의 하이데라바드 신드지역과 이란의 바드기르가 있으며 이집트 카이로의 말콰프가 있다. 북아프리카에서 파키스탄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쓰이는 바람 통로의 형태는 다양하다.windcatcher기통이 아니라 바람을 끌어당기는 흡기통이라는 점이다. 굴뚝 위쪽은 사방으로 구멍이 뚫렸는데 이 구멍으로 바람을 낚아챈다. 그렇게 잡혀 들어온 바람은 굴뚝 밑에 물독을 돌아 나오면서 냉각되어 집안을 시원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서 바드기르란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던 시절, 전통가옥의 공기정화와 냉방을 위해 사용되었던 바람 탑이다. 바드기르는 대류현상을 잘 이용한 환기장치이다. 높게 설치된 탑은 이름 그대로 시원한 바람을 잡아서 아래로 보내고 이 공기는 집안의 따뜻한 공기를 역시 이 탑의 반대쪽 환기구를 통해 밖으로 밀어낸다. 바람이 없을 때는 창문만 열어 놓으면 된다. 따뜻한 공기는 상승해서 탑을 통해 빠져나가고 대신 바깥의 시원한 공기가 창문을 통해 쉽게 들어온다. 그 원리를 살펴보자면 이러하다.그림에서는 바드기르에 한 방향으로만 바람의 흐름이 표현되어 있지만 여러방향으로 방향의 대류가 일어날 수 있고 건물 전체의 순환이 일어난다.위의 도식을 설명하자면, 지표면의 뜨거운 공기가 카나트Qanat로 유입되고 이 공기는 대류와 지하수에 의해 냉각된다. 냉각된 공기는 카나트와 연결되어 있는 건물로 유입되고 결과적으로 실내에는 찬 공기가 유입되어 실내가 냉각된다. 순환과정에서 다시 온도가 올라간 공기는 바드기를 통해 밖으로 나간다.또한 높은 건축물은 지표면에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하며(중동 지역에서는 건축물을 통해 인위적으로 그림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바드기르의 두꺼운 벽은 외부의 뜨거운 공기로부터 열을 차단한다.또한 바드기르는 다른 문화에서도 그렇듯이 사회적 지위에 따라 높고 거대해졌다고 한다. 위 사진중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바드기르는 테헤란의 Golestan 궁전의 것이다.위의 과학적 원리는 무척 단순하지만 실효적이며 현대에서도 미국 유타 주의 시온 국립 공원 방문자 센터등에 차용되었다.카나트Qanat란 지하수를 이용한 관개수로를 지칭하는데 건조지대에서는 산지에서 생성된 담수를 조달하는 과정에서 증발로 인한 불표한 손실을 막기위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러한 냉각시스있게 통풍구 혹은 일련의 커다란 구멍이 있는 탑이다. 주택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쪽의 높은 압력과 바람이 불어 가는 쪽의 낮은 압력은 통풍구 바닥의 개구부로 보내지는 공기이동을 확실하게 한다. 비록 그것은 통풍구의 양측 벽에 의해 시원해지더라도, 공기는 방안의 공기보다 더 따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이 땀의 증발을 도우므로 체온을 낮춘다. 직통 통풍장치는 배기되는 공기가 향하게 되는 복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냉방과정을 보조하기 위해 물이 들어 있는 용기들을 방 입구의 개구부에 설치하기도 하고, 물에 젖은 밀짚거적을 증발에 의해 시원해지도록 통풍구의 개구부 위에 걸기도 하고, 똑같은 이유로 젖은 숯쟁반들을 여기저기 통풍구 바닥에 놓기도 한다. 바그다드 집들처럼 바드기르로부터 지하실로 편향된 바람은 방안에서 후덥지근하고 습한 공기로 변하며 대개 75%에 달하는 밤 시간의 습도를 쾌적한 35%로 내려준다. 이러한 사실은 기온의 저하라는 측면에서 보다 안락의 관점에서 보면 더욱 의미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파키스탄 남동부의 하이데라바드 신드지역이 지역에서는 4월부터 6월까지의 한여름 낮 기온이 50도 이상이나 되어 매우 무덥다. 이 지역의 집들에는 각 방마다 바드기르 라는 바람잡이 장치가 부착되어 있다. 이것은 시멘트 와 판자로 만든 간단한 도구로 지붕에 설치하여 실내의 각방에 시원한 바람을 공급하도록 한 수공에어컨으로 일 년 동안 일정한 방향에서 부는 자연풍을 각 방에 들어가게 하는 장치이다. 이 지역에서는 500년 전부터 지붕에 이를 부착시켜 통풍창의 역할을 하게 하였다. 바람은 언제나 좁은 방향에서만 불어오기 때문에 바람잡이인 바드기르는 영구적으로 고정되어 오후의 시원한 바람만을 받아들여 층층마다 구석구석 통하도록 설치한 것 이다.-이집트의 말콰프바드기르와 유사한 바랍잡이인 이집트의 말콰프가 있다. 카이로에 있는 오래된 집들에서 중요한 홀들의 환기는 다음의 방식에 의해서였다. 즉, 바람이 강하고 깨끗한 높은 곳에서 바람을 빨아들이는 장치인 말카프와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