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언특정 시인이 아닌 미래파라고 불리는 시인들에 대해 발표하게 되어 어느 시인을 선정하고 발표할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미래파 논쟁 이후에 많은 미래파로 불리는 시인들 중에 비평가이자 시인인 권혁웅 시인이 주목했던 3명의 시인 황병승 시인 김민정 시인 장석원 시인을 중심으로 발표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위 시인들은 현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기에 업적이나 생애는 다루지 않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미래파란 어떻게 명명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미래파가 탄생하게 된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미래파가 무엇이며 미래파 논쟁이 우리시에 어떤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 미래파논쟁에 대한 비판이 담긴 하상일 교수의 「황병승 현상과 미래파의 미래」의 내용을 요약하여 제시하겠습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권혁웅 시인의 반론인 문예중앙에 실린 글을 인용하여 이해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미래파와 서정시의 관계에 대한 글인 이재복 교수의 「한국 현대시는 진화하고 있는가」, 미래파와 정치시의 관계에 대해 쓴 이찬 교수의 「‘미래파’와‘정치시’ 그 이후 우리 시대 시의 아포리아」를 간략하게 요약하여 정리하겠습니다.다음으로는 황병승 시인, 김민정 시인, 장석원 시인의 시를 예로 들어 권혁웅 비평가가 말한 미래파의 특징과 시인 특유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고,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미래파 시를 하나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마지막으로 미래파에 대해 발표를 준비하며 여러 가지 공부한 것을 기반으로 느낀 점을 정리하여 학우들과 시에 대한 생각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2. 미래파 논쟁과 그 이후 서정시와 정치시의 관계1) 미래파란?(1) 미래파라는 용어의 사용미래파는 비평가 권혁웅이 『미래파 ? 새로운 시와 시인을 위하여』라는 비평집에서 쓰인 단어인데 이 비평집은 비평이 늘 주제론에만 편향되어 있어 실질적인 작품 생산의 결과를 가늠하기보다는 작품을 낳았다고 생각하는 가상의 정신 작용에만 주목하게 된다며 비평은 감각을 기술해야 한다고 합니다. 즉 시는 낡은 감각을 갱신함으로써만 그 미래를 보장받을 즐거움을 얻기 위한 지적 노력을 함께 기울여야 한다며 글을 정리하였다.이에 권혁웅은 『문예중앙』 봄호를 통해 "미래파라는 말이 최근 자폐적 언어, 환상, 엽기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일군의 시인들을 이르는 용어로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미래파 시인들의 글이 '자폐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난해하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소통 안 되는 자폐적 놀이로 치부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독서를 통해 익힌 자기 세대의 문화 체험에 특별한 코드를 도입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잔혹하고 엽기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적어도 성적 방탕이나 유희의 산물은 아니며, 일상적 사건과 개인적 정념을 특별한 방식으로 풀어낸 '시적 코드의 변환'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1년 반이 넘도록 계속된 미래파에 대한 비판은 길고 지루한 동어 반복적인 것이었다"며 "비난과 공격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진정한 소통을 위한 비평을 탐색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이재복 교수는 「한국 현대시는 진화하고 있는가」를 통해 미래파 논쟁을 바라보면서 ‘새것 콤플렉스’를 연상케 한다고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은 담론 주체들의 욕망이 강하게 내재해 있다고 본다. 즉 미래파라는 명명 주체의 입장에서 기성 혹은 전통은 부정의 대상이고 이에 비해 신세대 혹은 미래는 긍정의 대상이다. 주로 문제가 된 부분은 서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행복한 서정 불행한 서정’은 권혁웅의 논리인데 그는 “주체의 자리가 거의 변하지 않고 한편의 시가 한 사람이며, 말들이 가지런하고, 그로써 드러나는 세계의 모습에 분열이 없는 시”를 행복한 서정시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세계와 어긋난 자리에서 주체의 정념이 생겨나기 떄문에 주체의 자리가 불안정하고 말하는 이의 자리가 온전치 않고, 말들이 주체와 엇갈리고, 그로써 드러나는 세계의 모습에 균열이 있는 시”를 불행한 시로 규정하고 있다. 이재복 교수는 이러한 서정에 대한 문제 제기에 부분적으로 공감하지만 서정은 어느 정도 순환하고 반복될 수밖웠는데 아무도 입술이 없구나 호주에서 호치키스나 배울 걸 수챗구멍에 대고 외로운 신사숙녀 시코쿠)말 할 때 코를 만지는 자는 자기 세계에 갇혀 있는 자요무릎을 긁는 자는 익살꾼이며상대의 얼굴을 꿰뚫는 자는 초월한 자이다, 라고꿈속의 소년이 말했다새 이름을 지어주러 왔니코를 만지며 내가 물었다대답 대신 소년이 건네는 한 장의 사진,시코쿠가 기차에 오르고잘 가 나를 잊지 말아라시코쿠였던 자가 역에 남아 손을 흔든다죽을 때까지 어떠한 이름으로도 불려지지 않으리속삭이는 두려움이여 나를 풍차의 나라로 혹은 정지(일 년 열두 달 내가 움켜쥐고 있던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려 할 때, 금세 밋밋해지던 나의 목소리여 손바닥을 칼로 푹 찌르며 외로운 신사 시코쿠 시코쿠)당신만 죽어 없어진다면 나도 내 자리로 간다!그러나 세계를 이해한다는 건 애초부터 그른 일. 사로잡히다, 라는 건 무슨 뜻일까요아저씨의 세계를 내어주세요꿈속의 소년이 돌아섰다무시무시한 이름인걸무릎을 긁으며 내가 말했다시코쿠가 기차에서 뛰어내리고시코쿠였던 자가 도망친다제발 좀 나를 무시하라!(달이 한 뭉치의 구름으로 피 묻은 얼굴을 쓰윽 닦아내고 컹 컹 컹 무섭게 짖어대는 밤! 치마를 갈가리 찢으며 외로운 여장남자 시코쿠 시코쿠)감추거나 혹은 드러내거나 6은 9도 되어야 했으므로나의 옛 이름은 언제나 우스꽝스러웠다잊지 못할 이여, 가구처럼 있다가 노루처럼 튀어 오르는가지도 오지도 않는 당신이여속삭이는 두려움이여, 나를 풍차의 나라로 혹은 정지.「시코쿠」황병승의 시는 시적주체인 화자가 분열된 상태로 존재한다. 위의 시를 보면 시코쿠 즉 화자가 ‘나’이면서 ‘너’이고 ‘우리의이름’이 된다. 즉 동일함과 특별함을 동시에 획득한 존재이면서 동어반복을 통해 주체가 하나임을 보여준다. ‘가지도 오지도 않는 당신’을 부르는 분열된 자아는 ‘풍차의 나라로 혹은 정지’라는 표현을 통해 이상향을 꿈꾸지만, ‘정지’를 통해 자신에게 중요한 공간은 그곳까지 가는 과정이지, 정지되거나 정립된 공간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모호하기도 한 우리 죽은 아빠」화장대 앞에 앉은 엄마가 달군 다리미로 주름살을 펴고 있습니다 나는 ZIPPO 라이터로 어항 속에서 건져낸 금붕어들의 부레에 불을 붙이고 있습니다 이 썩을 년들아, 나 왔는데 문 안 여냐? 현관 열쇠 구멍 속에 죽은 아빠의 핏발 선 눈알이 낄끽거리고 있습니다 여보, 오늘은 5분 일찍 도착이네요 달군 다리미를 브래지어 속에 감춘 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있습니다 슬라이스 치즈처럼 네모나게 ㅆ?ㄹ린 죽은 아빠의 몸이 조간신문에 찍혀 들어오고 있습니다 엄마가 홀짝홀짝 신문을 펼칠 때마다 헛둘헛둘 죽은 아빠가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이 썩을 년들아, 나 왔는데 인사도 안하냐? 죽은 아ㅃㆍ가 엄마의 볼ㄸㆍ구니를 고기작거려 고김살을 늘리고 있습니다 여보, 또 오셨군요 엄마가 몰래몰래 달군 다리미의 온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죽은 아빠가 내 팬티 속에 손을 넣어 클랙슨을 눌러대고 있습니다 죽은 아빠, 안녕 ? 내가 몰래몰래 ZIPPO 라이터에 오일을 들이붓고 있습니다 여보, 진지 드시죠 엄마가 죽은 아빠의 놋요강에 밥을 퍼 담고 있습니다 죽은 아빠, 물 말아먹어 내가 밥이 담긴 놋요강에 오줌을 누고 있습니다 죽은 아빠가 아이 고소해, 아이 고소해, 후루룩 짭짭 밥을 떠먹고 있습니다 엄마와 나는 금붕어가 물어다 준 진자주색 꽃방석 위에 앉아 회칼을 갈고 있습니다 죽은 아빠가 후다닥 밥숟가락을 집어던지며 화투를 치자고 조르고 있습니다 엄마와 내가 살래살래 고개를 내젓고 있습니다 죽은 아빠가 엄마의 입술과 내 잠지를 한번 더 꿰매버리겠다고 링거 바늘을 찾고 있습니다 엄마와 내가 갈던 회칼로 잇 속을 쑤시고 있습니다 죽은 아빠가 삽날 같은 고드름 수염이 난 음경을 뚝 떼서 엄마와 내게 맡기고 있습니다 진자주색 꽃방석이 방실방실 돌아가고 있습니다 죽은 아빠와 엄마와 내가 송편 빚은 사람들처럼 등허리를 꼬부리고 앉아 있습니다 패를 돌리는 죽은 아빠가 히죽거리며 자꾸만 뒤패를 뒤집어보고 있습니다 여보, 그건 반칙이에요 엄마가 달군 다리미로 죽은 아빠의 손등에 홈 깊은 ’라는 소재를 통해 쓰여진 글이다. 또한 이누야샤의 캐릭터를 소재로 쓴 시가 있는데 단순히 성적인 요소를 더한 2차변용을 통한 작은 이야기를 추구하고 성적 욕구를 즉각 해소한다는 점에서 동물화된다. 이는 오타쿠의 전형이자 포스트모던 사회의 현대인의 전형일수도 있다.(3) 장석원의 시1) 「악마를 위하여」번들번들한 살갗에서 시작된 그것을 나는 모른다.누구의 눈물과 누구의 체액이 나를 슬프게 했는지알고 싶지 않다나의 일부였던 것이 사라지고 있다시원은 어두운 주름이었다그것이 나를 왜곡시키고 나를 해석한다나는 노예이므로 굴종에 쾌감을 느낀다미래에 사랑이 이루어지고 행복엔 날개 돋을까?개좆 같은 진부, 개좆 같은 진보주의미래라구?(? confusion will be my epitaph. I'll be crying......)과거에 묶이는 일이 죄인가몸 바쳐 사랑할 수 있다면 권력의 노예가 되어도 좋다사랑의 노예가 되는 일이 벌 받을 일인가 (사랑이 하룻밤의 꿈이라면 차라리 눈을 감고 뜨지 말 것을) 심봉사라면 눈을 뜨리라 공양미 삼백 석 그것도 자본이란 말인가사랑 앞에서 눈 감는 자 나는 부속품이다 나는 기계의 일부이며 지금 녹슬고 있는 과거의 일부이다무릎 꿇는 자의 행복을 거부하지 않겠다천천히 부서지겠다5월의 아카시아처럼추억을 향해 후진하는 탱크로리, 운전석의 사내, 과거가 조립한 사내, 어디선가 본 듯한, 현재 속의 과거거기에 아무도 없었다어둠 속의 흰 바람그림자 없는 아득한 옛 땅, 이득이 없는 옛날찬란하여 부서지기 쉬웠던어떤 날의 불안, 부란태양의 시절 돌아오지 않는다莫사람 위에 해가 있다, 해 위에 풀이 있다, 풀 위에빨간 피막을 걸치고 뒷걸음치는 석양촛불 꺼지기 전에금지되기 전에황금의 기율 무너지기 전에긴 사랑을 나누어야 할 밤膜사람 위의 해, 해 위의 풀, 풀 옆에길게 눕는 달그림자바람의 손가락 피막을 찢는다漠물 밖에 사람과 해와 풀나무가 녹아내리고, 빌딩이 엉겨붙고, 아스팔트는 물컹거린다점막은 따갑고, 눈은 충혈되고, 입속의 모래가 뜨거워진다모래 혓바닥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