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마케팅#2 인도 시장의 펩시콜라 사례학번 :학부 :이름 :제출일 : 2011년 9월 28일(수)담당 교수님 : 김주헌1. Coca-Cola와 PepsiCo가 해외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진출을 모색하게 된 배경요인들은 무엇인가?우선 책에서도 나와있듯이 두 회사는 미국이 전통적으로 가장 큰 시장이었다. 연간 1인당 소비량이 대략 32상자에 해당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비 수치는 미국의 인구를 고려해봤을 때 매우 큰 수치였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성장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소비를 늘리게 하기보다는 점유율을 확보하는 데서 올 수밖에 없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었다. 이 두 회사는 미국에서 거의 대등한 경쟁관계로 점유율이 코카콜라는 40%, 펩시는 32%였다. 이런 자국 내에서의 경쟁심화로 두 회사는 해외로 시장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또한 미국 내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청량음료의 수요가 줄어든 것도 하나의 배경요인이 되었다. 청량음료가 건강에 좋지 않고 칼로리만 높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이 외에도 전세계적으로 국제화의 흐름에 따라 해외시장 진출이 진행되는 추세였다. 다국적 기업으로의 성장을 도모하며 일반적인 기업들은 원가 절감, 무역장벽의 완화, 새로운 시장의 개척, 투자국의 각종 세금 혜택 등의 다양한 이유를 근거로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세계적 조류에 발맞춰 자국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던 코카콜라와 펩시 역시 해외 진출을 고려하게 되었다.2. Pepsi와 Coca의 개략적인 성과(국내 및 외국 시장)를 정리해 보고, Pepsi가 해외진출에 있어 특별히 신경을 썼던 점은 무엇이며 왜 그랬는지 생각해 보자.코카콜라는 1886년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존 펨버튼 박사 (Dr. John Pemberton)가 코카콜라를 제조, 그의 경리 직원 프랭크 로빈슨이 스펜서체로 쓴 Coca-cola라는 이름을 제안함으로써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반면, 펩시콜라는 코카콜라보다 조금 늦은 1898년 노스케롤라이나주 뉴베른의 약사였더 많은데도 소비자들은 코카콜라만 찾았다. 코카콜라의 '브랜드 파워'에 절망감을 느끼고, 고민하던 끝에 펩시는 불리한 처지를 역이용하기 시작했다. 1975년 텔레비전에 한 편의 광고를 내보냈다. 눈을 가리고 콜라를 마시던 사람이 눈가리개를 벗으며 "어~펩시잖아!"를 외치는 것이었다. 입소문이나 이벤트로 인지도를 높이는 '버즈(buzz) 마케팅'을 사용한 것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코카콜라의 과민 대응에 오히려 펩시의 인지도는 더 높아졌다. 이 광고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코카콜라와 30%가량 차이가 나던 시장점유율은 10%까지 좁아졌다. 펩시는 고무됐다. 70년 만에 1인자 곁에 다가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10%의 격차를 줄이는 것은 더 힘들었다. 따라 해도 2등은 되지만 1등이 되기 위해서는 1등보다 뛰어난 것이 있어야 했다. 새로운 것을 찾았다. 젊은 세대를 집중공략하는 '다음 세대의 선택(the choice of next generation)'을 기치로 삼았다. 이 깃발 속에는 코카콜라를 쉰 세대로 밀어 넣는 '브랜드 포지셔닝'이 담겨 있었다. 펩시는 이 브랜드 포지셔닝으로 기성세대를 집중공략하는 코카콜라와 정면 충돌도 피할 수 있었다. 20년을 쏟아 부은 피땀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펩시를 즐기던 청소년들이 대학을 마치고 사회에 나가면서 코카콜라를 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처지는 거꾸로 됐다. 코카콜라는 '이게 진짜(The real thing)'라는 광고 문구를 내세워 공세를 폈지만 어렸을 때부터 펩시에 길들여진 입맛이 바뀔리 없었다. 이에 힘입어 펩시는 지난 2004년말 매출에서 25%, 총이익에서 10% 코카콜라를 앞섰다. 그리고 CEO자리에 인드라 누이라는 인도계 여성을 앉히면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통해 큰 경영성과를 이뤄냈다.반면에 코카콜라는 ‘언제 어디서나’ 라는 마케팅 개념을 도입했는데, 도입한 사람이 바로 우드러프 사장이었다. 그는 코카콜라가 하나의 제품으로써 그리고 또 눈에 보이는 존재로서 되도록 사람들에게 가까이에 있도록 해야학금 교육사업 지원 등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써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0년대 들어 고이주에타 회장은 코카콜라의 성공비결은 적은 돈으로 수천만의 사람들에게 청량감을 선사한다는 아주 단순한 원칙을 견지하면서 한 우물만 파는 전략 즉, 청량음료시장을 중점적으로 공략하는 전략을 수립, 실천했다. 1980년대 중반 수백만 달러의 비용을 들인 허점투성이 시장조사로, 99년간 지켜온 ‘맛공식’을 바꾼 코카콜라는 신제품 뉴코크 론칭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거센 항의로 전통적 가치가 흔들리는 등 마케팅 역사상 최고의 실패를 저질렀다. 이는 코카콜라 브랜드의 상징적 가치의 영향과 소비자들의 군중심리, 매스컴의 위력을 예측하지 못한 대가였다. 특정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심리적 애착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함부로 전통에 손대거나 망가지지 않은 것을 고치려 하지 말라는 교훈을 남긴 사례다. 소비자들의 이 같은 반응은 코카콜라 사업의 엄청난 성공을 반증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코카콜라와 관련되는 아이템을 모으기 위해 전세계를 여행하는 수집가들이 8천 여명에 달할 정도로 코카콜라는 하나의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해냈다. 올림픽 경기나 월드컵 대회 때마다 코카콜라사는 ‘코카콜라 핀 교환센터’를 마련하여 이들 열성 수집가들에게 핀(뱃지)교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을 정도이다.펩시는 특히 외국에 진출하면서 스타마케팅을 많이 이용하였다. 주로 북극곰과 산타를 등장시킨 코카콜라의 광고와는 달리 여러 스포츠스타와 팝스타 등을 내세워 젊은 감각을 내세우며 젊은 층을 타겟으로 삼았다. 그리고 처음 출시부터 일정한 로고를 계속 사용한 코카콜라와 달리 로고를 꾸준히 바꾸면서 혁신적이고 변화적인 이미지를 창출했다. 그리고 해외 현지화 전략을 적용했다. 꾸준하게 1등 이미지를 고수한 코카콜라와 달리 펩시는 현지 사정에 맞는 디자인과 마케팅 전략을 펼친 것이다.3. Pepsi가 인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너무 많은 양보(인도 측에 대해)를 한 것은 아닐까? 더 좋은 조건을arle Exports가 thumbs Up이라는 청량음료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인도 시장의 60-70%를 점유하고 있던 이 회사의 존재는 또한 펩시에게 큰 장벽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조건을 인도 정부에게 내주면서 계약을 맺은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점은 외국인투자에 대해 인도의 태도가 아주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은 외국계 기업에 대해 적대적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과거에 인도에 들어와 노동력을 착취하고 많은 자본을 앗아갔던 동인도 회사의 지배에 대한 아픈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등의 오랜 지배를 통해 미국의 펩시에도 호의적이지가 않다. 이런 불리한 조건 속에서 많은 청량음료 회사들은 인도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었기 때문에 펩시는 결단을 내려야 했을 것이다. 최대한 인도 정부의 입맛에 맞는 조건을 내세워 인도 진출을 꾀한 것이다.4. Coca-Cola는 1977년에 인도 시장에서 철수했는데 과연 그래야만 했는지 평가해 보자.코카콜라는 정부의 세가지 요구에 대해 반대 입장을 보였기 때문에 인도를 떠났다. 세가지 요구사항이란 자사의 지분율을 100%에서 40%로 낮추라는 것, 콜라 원액 비법을 공개하라는 것, 인도 소비자들이 현지 상표와 친숙해질 수 있도록 복수 상표를 사용하라는 것 등이었다. 코카콜라는 뒤의 두가지 요구사항에 특별히 완강한 반응을 보였다. 자사 제품의 촉진활동에 있어 원액 비법의 신비스러움에 늘 의존해오던 터였고, 새로운 상표가 받아들여지는 순간 수용당할 것을 겁냈기 때문이었다. 인도가 제시했던 조건을 보면 무리한 조건을 내세웠다는 게 눈에 보인다. 코카콜라의 맛의 비법은 극 소수 경영층에게만 알려져 있을 정도로 비밀로 고수하는 것이 코카콜라의 기업 방침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기업방침을 흔드는 조건은 코카콜라 입장에서 매우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또한 코카콜라와 인도의 현지 상표를 같이 넣은 복수 상표를 사용하라는 조건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맛은 코카콜라 맛인데 자외직접투자(인도로 들어오는 외국인 투자)에 대한 제한조치들에 대해 인도 입장에서 평가해 보자.지금까지는 코카콜라와 펩시의 입장에서 인도 정부의 불합리성에 대해 토로했다. 하지만 이젠 인도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또 다르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많은 이민족의 침입을 받은 역사가 있으며 종교와 문화의 다양성이 큰 나라이다. 그런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고 공존하고 있는 인도의 역사에서 동인도 회사는 인도인들에게 많은 아픔을 남겼다. 외국 기업들의 무분별한 노동 착취와 자본 갈취로 인해 인도 입장에서는 얻은 것 없이 주기만 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으로 인해 인도 입장에서는 외국계 기업이 자국 시장을 상대로 들어오는 게 탐탁치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불합리한 조건을 내세우고 외국 자본의 침입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지난 수년간 진행된 무차별적 콜라미사일의 공격에도 쓰러지지 않은 인도는 또한 할리우드 영화가 맥을 못 추는 유일한 국가다. 인도는 전국에 영화관이 1만2천 여 개나 있는 시네마 천국이지만 인구 1천만 명이 넘는 수도 델리에서도 외국영화를 개봉하는 극장은 두어 개에 불과하다. 수도가 그 정도니 나머지 지역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것이다. 젊은이들의 기대 속에 지난해 들어온 ‘리바이스’ 청바지나 ‘베네통’의 수요층도 도시에 사는 소수계층에 국한된다. 대다수의 인도인은 기존 삶의 방식에 작은 변화를 보태며 ‘느릿느릿’ 살아간다. 빠른 변화가 최선이라고 보면 인도는 몹시 답답하다. 그러나 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면 인도가 바깥세상에 주는 메시지는 적지 않다. 옛 소련은 80년대 초, 러시아혁명 이후 모스크바의 집세가 한번도 오르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그 ‘변하지 않음’의 장점은 이어진 옛 소련의 해체와 함께 장점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최근의 경제위기에 이르는 지난 10년 동안 모스크바 시민이 겪었을 급격한 변화도 결코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극단이 아닌 그 무엇, 중용의 미덕이다. 인도는 ‘발전’과 ‘자기문화 보존’의 경계를 아슬아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