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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사회의 인간과 사회를 말하다- 연극 우어 파우스트를 관람하고
    현대 사회의 인간과 사회를 말하다- 연극 우어 파우스트를 관람하고이기적인 현대 사회 인간상의 전형과이를 타개할 일말의 희망현대 사회 인간상의 전형① 메피스토선으로 대표되는 신과 악으로 대표되는 악마 메피스토. 악마인 메피스토는 선에 복속되지 않는, 이른바 악이라고 대변되는 것들을 함축하는 존재이다. 연극에서 메피스토는 이따금 장난기가 다분한- 귀엽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모습을 보여주고, 때때로 그야말로 악마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폭력적인 행위 또한 보여준다. 그의 모습은 정말이지 인간적이다. 메피스토는 비록, 인간이 아닌 악마라고는 하나 가장 흔한 현대 사회 인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캐릭터라 느껴진다. 따라서 메피스토는 악의 대변자보다도 일반적 현대 사회 인간상으로서 자리매김한다. 대개의 현대 사회 인간은 ‘악이 무엇인가. 악만을 일삼아야지!’라며 꼭 악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니나, 자신 중심의 이익을 꾀하며ㅡ이기적으로ㅡ 살아간다. 본래 이기적인 그들의 삶의 외피가 때때로 선해 보일 수도 있고, 악해 보일 수도 있는 것뿐이다. 따라서 현대 사회 인간이 메피스토로 표상 될 수 있을 것 같다. 당초 악을 표방한 메피스토와 달리, 현대 사회 인간은 그 어떤 선과 악의 카테고리도 내걸지 않은 것뿐(그러나 대개 이기적이기 때문에 악의 카테고리에 행위를 일삼는다.)인 것 같다.현대 사회 인간상의 전형② 스튜던트도시로 올라와 파우스트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스튜던트는 학자 파우스트를 찾아온 첫 장면에서 파우스트가 버리고 간 학문적 보고들을 줍고서 힘 들이지 않고 이것들을 차지하려 한다. 또, 파우스트인척 하는 메피스토를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바로 믿어버리는 등 우둔하다. 덧붙여 도시에서의 향락을 스스로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메피스토에게 놀아나 그의 장난감 따위(그는 하수인에도 못 미치는 존재로 보여진다.)가 되고 말며, 지식인은커녕 인간으로서의 지능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스튜던트라 하면 단연 현대 지식인과의 연결 지어 볼 수 있다. 따라서 스튜던트는 현대 사회의 소위 말하는 인텔리, 일정한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이다. 그런데 그다지 이상적인 인텔리의 모습이 아니다. 또한, 스튜던트는 연극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이름조차 불리지 않으며, 메피스토가 강아지 대하듯 부르는 ‘꽃님이’로 지칭된다. 스튜던트의 이름이 공공연하게 나오지 않는 이유는 스튜던트로 대변되는 현대 지식인, 나아가 현대 사회 인간 자체가 극중 인물인 스튜던트에 녹아 있고, 누군가를 꼬집는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스튜던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바로 현대 사회의 인간, 우리 모두가 바로 극 중 스튜던트인 것이다.현대 사회 인간상의 전형③ 파우스트앞서 나는 메피스토가 가장 일반적인 현대 사회 인간ㅡ이기적인 인간ㅡ의 전형이라고 보았는데, 파우스트는 그러한 과정으로 나아가는 인간상으로 보인다. 메피스토를 막을 존재(신)는 온전치 못하여 메피스토를 막기엔 매우 연약하다. 그래서 파우스트와 같은 인간상은 자연스레 부패하게 된다. 그의 부패의 면모는 매우 다양하게 그려졌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레트헨의 마지막 손을 잡지 않고, 메피스토와 나가버리는 장면이다. 나는 매우 또렷하게 그 장면을 기억한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에게 끌려가는 게 아니라, 그레트헨을 한번 바라보곤 구태여 ‘에잇!’하는 체하며 본인의 의지로 그녀를 떠난다. 그레트헨에게 있어서 그는 매우 큰 의미를 지닌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을 버린다.일말의 희망의 여지, 신극 중 신의 모습 흔히 보편적으로 생각되어지는 신의 모습과 매우 멀다. 초인간적이며 고귀하고 기품 있는 신의 모습은커녕, 다리에 장애가 있는지 휠체어를 타고,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는지 어딘지 멍청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신과 대립적 구도에 놓을 수 있는 메피스토는 말끔히 양복을 차려입은데 반해, 신은 짓이긴 슬리퍼에 다 떨어진 옷을 입었으며 볼품없는 용모를 하고 있다. 이러한 외적 모습에서 볼 수 있는 신과 메피스토의 모습은 결코 대등하지 않고, 신보다 메피스토가 오히려 더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신은 메피스토를 저지할 수 있는 마지막 존재이다. 그런데 이러한 신의 지위는 메피스토에 비해 위태로워 보인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에선 이기적인 인간상(메피스토)을 막을 존재가 매우 연약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이기적인 인간상으로 말미암은 타락, 퇴폐 등 온갖 악행이 행해지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암시하는 듯하다.그러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신은 유약하지만, 존재하고 있으며 파우스트가 그레트헨의 손을 잡아주지 않고 그녀를 떠나고 난 이후에 신이 파우스트가 그녀의 손을 잡아주어 미약하게나마 위로하며, 구원적인 행위를 한다. 이는 비록 현대 사회에서 이기적 인간이 난무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타개할 일말의 희망이 신으로써 실체화되어 있는 듯하다.관용 없는 현대 사회, 그 속의 폭력성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은 열정적 사랑에 빠지나 사랑의 결과(아기) 때문에 그레트헨은 비극적 파국을 맞는다.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의 세계의 속성 차이가 그레트헨으로 하여금 변모하게 하고, 변모한 그녀에 있어서 적대적인 관용 없는 사회가 그녀를 파멸을 맞게 한다.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의 세계파우스트의 안정되지 못하는, 정처 없는 삶과 그레트헨의 평온한 삶의 속성 차에 의한 충돌이 일어난다. 말하자면, 그레트헨의 목가적 세계가 파우스트를 매혹했으나, 둘의 이질적인 세계의 속성 때문에 충돌이 일어난다. 충돌로 말미암아 반드시 그레트헨이 비극적 결말을 맞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레트헨 삶은 절대 그 충돌에서 오는 변화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한 결말을 위해서는 둘의 세계의 속성이 서로 동화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그레트헨의 세계에서는 파우스트가 그레트헨과 정식적으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이로써 파우스트는 이전 그레트헨처럼 성실한 소시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도리어 파우스트 세계의 속성이 그레트헨이 순응적 모습을 타파하게 이끈다. 가장 극적으로 순응적 삶에 반하게 되는 일은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의 사랑의 결실인 ‘아이’이다. 그레트헨의 사회에서 결혼 없는 아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아이는 그레트헨의 비극의 원초가 된다.
    인문/어학| 2012.05.04| 3페이지| 1,000원| 조회(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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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 인간 자체에 관한 이미지와 인간의 성(性)에 관한 이미지를 중심으로 작품 속에 내포된 인간상(像)
    작품 속에 내포된 인간상(像)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인간 자체에 관한 이미지와 인간의 성(性)에 관한 이미지를 중심으로나는 과학 또는 과학적인 것이라 하면 왠지 꽤 딱딱하게 느껴진다. 반면 문학 작품이라고 하면 무언가 유들지고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에게 매번 과학과 문학은 적잖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쥘 베른의 작품은 이러한 둘을 너무나도 잘 화합되어져 있어서 나에게 부대끼지 않고 다가왔다. 과학을 문학적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쥘 베른의 능력은 매우 대단하고 드문 능력일 것이란 확신과 그에 대한 경이로움 때문에 쥘 베른의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과학과 문학의 매끄러운 연결고리는 아마도 베른의 우주적인 상상력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는데, [지구에서 달까지]에서 이러한 상상력이 오늘날 예언자적 면모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게 드러났기 때문에 이 작품을 선정하게 되었다. 덧붙여 눈길을 끈 것은 뛰어난 상상력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이미지 중, 특히 인간상(像)이다. 작품에 나타난 인간에 관련된 이미지는 오늘날에도 충분히 공감되거나 논의되어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여서 이에 관해 논해 보고자 한다.작품에서 나타나는 인간에 관한 이미지는 다음과 같이 크게 두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인간 자체에 관한 이미지와 인간의 성(性)에 관한 이미지이다. 인간 자체에 관한 이미지로 인간의 폭력적 성향, 인간의 신성 모독 행위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서 과학의 존재에 대해 살펴보고, 인간의 성에 관한 이미지로 지구-대포의 이미지, 망원경의 이미지, 등장인물의 대립 구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인간 자체에 관한 이미지첫 번째로 인간의 폭력적 성향의 이미지가 드러난다. 베른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첫머리에서 미국인들의 폭력적 성향을 보여준다.(본문 발췌) 여기서 명백한 것은 이 학구적인 클럽이 박애적인 이유로 인류의 절멸과, 문명의 도구인 전쟁 무기의 개량을 목표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 클럽은 저승사자들의 모임이었지만, 그들은 동시에 더없이 품위 있고 예의 바른 사람들이기도 했다. ..(중략).. 그날의 전투 결과를 보고, 사상자 수가 발사된 포탄 수의 열 배에 이르면 그들은 당연히 자랑스러운 기분을 느꼈다.하지만 야유하고 있는 것은 미국인만이 아니라, 프랑스 황제를 포함하여 모든 인간의 폭력성을 비난하고 있다. 이는 다음 본문과 같이 멕시코 침략 구실을 찾으려는 매스턴의 우스꽝스러운 노력에 미국과 프랑스에 대한 베른의 비난이 담겨 있다.그리고 인간의 신성모독 행위에 관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는 신의 섭리를 우회할 인간의 능력으로도 볼 수도 있다. 과거에 신비롭고 금지된, 신의 영역이었던 우주를 침략하는 우주여행은 인간의 신성 모독 행위인 동시에 인간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성공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도 있다. 다음과 같은 본문에서 이러한 인간의 이미지가 여실히 드러난다.(본문 발췌) 매스턴의 기쁨은 한이 없었다. ...(중략)... 블룸스베리 대령에게 다행히 오른팔이 남아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 오른팔이 없었다면 매스턴은 현대판 에로스트라투스처럼 깊은 대포 속에 죽음을 만났을 것이다.여기서 베른은 매스턴을 그리스인 에로스트라투스에 비유한다. 에로스트라투스는 아르테미스 신전에 불을 지른 사람으로 그를 체포해서 범행이유를 묻자, “내 이름을 천고에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요컨대 에로스트라투스는 자신의 이름을 천고에 남기기 위해 신성모독을 저지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바비케인이 과학을 이용해 외계라는 신의 사적 영역으로 볼 수 있는 하늘을 침범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 맥락으로 볼 수 있다.또한 인간에게 있어서의 과학이 어떠한 존재인지 볼 수 있다. 소설에서는 바비케인과 바비케인의 경쟁자인 캡틴 니콜의 대립구도가 나타나는데 이러한 대립의 화해는 우주여행이라는 그들의 공통된 관심으로써 이루어진다. 아르당이 우주여행에 함께 가자고 할 때 그들이 불화를 일으키지 않는 것은 과학 발전이 인간에게 더 높은 선(先)으로서 작용하는 걸 볼 수 있다.인간의 성(性)에 관한 이미지먼저 대포-지구 이미지에서 성적인 이미지를 찾을 수 있다. 대포로서의 지구가 표적으로서의 달을 맞히기 위해 포탄을 발사하기 때문에 지구를 대포의 이미지로 엮을 수 있다. 그리고 대포는 달을 향해 포탄을 발사함으로써 우주를 관통하여 그 공간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하려 한다.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달을 여성 포이베, 디아나, 셀레네로 언급하였는데, 이러한 달 즉, 여성을 향해 포탄을 발사함으로써 우주를 관통하여 그 공간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하려 하기 때문에 우주선 발사를 남성의 공격적 성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더불어 소설 전반에서 여성이 아니라 남성만이 우주선 발사에 관여하는 것 또한 남성이 여성 혹은 여성성을 공략하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본문 발췌) 일동은 지구와 달, 대포 클럽, 미합중국, 달의 여신 포이베와 디아나와 셀레네, 그리고 ‘창공의 평화 사절’을 위해 건배했다. 그 모든 환호 소리가 음파에 실려 거대한 음향관의 위쪽 끝에 우레 소리처럼 도달했고, 스톤힐 주위에 모인 군중은 대포 밑바닥에 있는 열명의 남자와 한마음이 되어 만세를 외쳤다.
    인문/어학| 2012.05.04| 4페이지| 1,000원| 조회(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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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수업을 보고
    연극 수업을 보고연극 ‘수업’ (원작 외젠 이오네스코, 연출 오정원)지금까지 연극 관람 경험지금까지의 관극 경험에는 첫 번째 리포트에서 상세하게 기술한 바 있어서 중복되는 말을 피하고자 한다. 이번에 본 연극 은 다른 극단(극단 노을)에서 이미 본 적이 있는 연극이다. 이 지면을 통하여 두 극단의 을 모두 본 관객으로서 간략히 비교해고자 한다. 극단 노을의 과 극단 오티알의 은 대체로 원작을 토대로 별다른 차이점 없이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비슷하였지만, 다만 약간의 차이점이라고 꼽을 수 있을 만한 것은 극단 노을의 경우, 연극 소품이 꽤 자세히 나타났고, 연출에서의 약간의 차이점도 있었다. 소품이나 무대 장치에 있어서 극단 오티알의 무대에 대해서 이후 좀 더 상세하게 기록하겠지만, 간단히 말해 매우 앙상한 무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극단 노을의 무대는 꽤 상세하고 자세했다. 극단 오티알의 연극에서 등장하지 않는 가상의 소품들이 극단 노을의 연극에서는 대개 등장하였고, 특히 식칼이 가시적인 물체로 나타났다. 그리고 노교수가 학생을 죽이는 부분에서 실제로 학생이 피를 흘리며 피범벅이 되는 모양을 그로테스크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번에 본 극단 오티알의 과 달리 극단 노을의 경우, 노교수가 여학생을 대하는 눈빛이나 태도 등에서 성적 이미지를 발견할 수가 있어서 눈에 띄게 성적 모티프를 상기시켰다. 또한, 극단 노을은 연극 을 공포 연극으로 표방하였고, 극단 오티알에서는 부조리극으로 내세웠다는 데에도 차이가 있었다.무대 상세 서술무대는 매우 초라하고 앙상하기 짝이 없을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간단히 도식화해보면 왼쪽과 같은 모양을 이루고 있다. 무대 왼쪽에 건물 밖과 통할 문으로 이어지는 복도(B)과 무대 오른쪽에 집안 복도로 이어지는 또 다른 공간(C)이 있다. 왼쪽 복도는 주로 연극이 진행되는 무대라고 할 수 있는 공간(A)과 이어지는 좁은 부분으로 관객석인(D)의 바로 옆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관객석은 하얀색 테이프를 사용하여 사각형 모양의 하지만, 생기 있고 힘차다. 그리고 예의 바르고, 명랑하여 발랄함이 보인다. 그러나 극이 진행되면서 이러한 생기 있던 모습은 점점 사그라지며, 동작이나 태도에서 활기를 잃어가며 처음의 활발하고 명랑한 모습을 잃어간다. 첫 모습과는 반대로 차츰 슬프고 침울해지게 된다. 점점 피로로 무력해져서 극의 끝 부분으로 진행되어감에 따라 여학생의 얼굴은 마치 신경 쇠약에 걸린 사람처럼 피로가 만연해 보인다. 말투에서 역시 드러나게 되는데 극의 첫 부분에서는 적극적이고 마치 잡아먹을 듯이 공격적이기까지 한 능동적인 말투에서 차츰 소극적인 말투로 변하며 극의 끝 부분에 가서는 급기야 무력하고 생기 없는 말투로 변하는 양상을 보인다.노교수는 여학생과 정반대된다고 볼 수도 있다. 노교수는 극의 첫 부분에서 지나치게 소심하며, 지나치게 정중한 모습을 보인다. 너무 소심한 나머지는 말을 더듬기도 하며, 목소리도 크지 못하고 약하여 말투에서 소심함이 엿보인다. 하지만 교수답게 매우 정확하다. 때때로 음란한 눈빛을 보이기도 하는데, 금방 사라진다. 극이 진행됨에 따라 노교수의 소심한 모습을 사라지며, 음란한 눈빛은 몹시 분하고 격분한 모양새로 변하게 된다. 극의 첫 부분에서 노교수는 전혀 위험성을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었으나, 극의 끝 부분으로 다가갈수록 점점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이며 여학생을 강압적 태도로 대하는 위험한 인물로 변모한다. 이러한 모습은 가냘프고 연약하게 보이던 말투가 점점 강해지고, 이내 폭발하듯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모습에서 볼 수 있다.하녀는 극의 중간마다 여학생과 노교수 사이에 끼어드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극의 첫 부분에서도 하녀가 개입하는 모습이 드러나는데, 이때 맨 처음 매우 소심하게 그려진 노교수가 하녀에게만큼은 여학생과 달리 처음부터 한결같이 신경질적이고 위압적인 말투로 대하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신분적 측면에서 바라볼 때 고용되어서 집안의 허드렛일을 하는 하녀는 노교수보다 낮은 직위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되고 불구하고 하녀는 노교수의 공격적 태도업을 잘 따라가지 못한다. 이런 모습에 종합 박사는 불가능할 것이니 부분 박사를 시도해 보자고 노교수가 말하는데 그러던 와중 하녀가 들어오며 노교수를 부른다. 하녀는 ‘언어학은 재앙의 지름길이에요.’라면서 절대 언어학은 안 된다고 말한다. 노교수는 자신은 어른이라며 하녀의 말을 무시하고, 하녀는 나간다.곧이어 언어학 수업을 한다. 노교수는 지나치게 쓸데없이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노교수의 수업에 때때로 여학생이 ‘네. 선생님.’ 과 같이 반응하는데, 이러한 모습에 노교수는 매우 불쾌함을 내비친다. 여학생은 갑자기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이가 아파요.’라고 말하는데, 노교수는 별거 아니라면서 수업을 중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교수의 수업은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으로 이루어져 길어진다. 수업이 계속 진행되면서 여학생은 인상을 찌푸리다가 이윽고 울먹이기까지 하며 이의 고통을 호소한다. 이에 노교수는 매우 신경질적으로 ‘화나게 하지 말고. 그럼 나도 책임 못 진다고요.’라고 말하기만 하며 수업을 계속한다. 수업은 계속해서 여학생의 고통 호소-여학생의 호소 무시한 교수의 일방적 수업진행으로 이어지는데, 노교수가 여학생을 향해 강경하게 입을 조용히 하라고 하고 이에 여학생이 반발하자 노교수는 학생의 팔목을 비틀어 버린다. 이윽고 노교수는 식칼을 모든 나라 말로 번역해보자면서 하녀를 부른다.무대 밖에서 하녀와 노교수의 대화가 들리는데, 노교수는 학생이 하나도 못 알아듣는다면서 화를 내고, 하녀는 ‘이러시면 안 돼요. 어쩌시려고? 정말 이러다 큰일 나요.’라고 또다시 충고하지만, 노교수는 알아서 할거라며 식칼을 찾아달라고 신경질을 낸다. 이에 하녀는 직접 찾으라며 나가고 노교수가 직접 가상의 식칼을 들고 나와 여학생 앞에서 휘두른다.이후 노교수는 가히 발작적으로 보이기도 하며 거의 제정신이 아닌 듯 학생 주위를 돌며 계속 가상의 식칼을 휘두른다. 일종의 의식 같기도 하고 춤 같기도 하지만 딱히 과장한다는 느낌을 주진 않는다. 여학생은 매우 병약한 얼굴을 한 채로 관객을 마주 면 노교수의 눈 속에 내비쳐진 일종의 광기, 광기를 암시하는 갑작스러운 (상황과 동떨어진) 행동 등이 있다. 또한, 노교수의 폭력적 광기는 ‘모든 언어는 잘 알아두세요. 죽을 때까지 잊지 말고’라는 말에서도 나타난다. 노교수의 수줍음은 점차 사라지고 목소리는 점점 강해지며 소심한 눈매마저 변한다. 극의 첫 부분에서 보여주던 노교수의 온화함은 공격성으로 바뀐다. 여학생은 처음엔 노교수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예의 바르고 명랑하며 활달한 여학생이었다. 그러나 여학생의 활발했던 동작 점점 둔화를 거듭하며 마치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처럼 변모한다. 적극적이고 부산스럽기까지 한 여학생의 말투는 이후 혀가 얼어붙은 듯 중얼대는데 그친다. 이러한 모습은 여학생이 생명력을 잃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노교수가 여학생의 생명력을 빨아먹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노교수의 공격성은 여학생을 살인할 때 절정에 달하면서 노교수는 여학생의 생명력을 온전히 빼앗는다. 여학생을 살인한 이후 노교수는 매우 당황해 하면서 극의 첫 부분에서의 수줍고 유약한 인물로 되돌아간다.그리고 식칼이 가상의 것으로 나타나는 것에도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노교수는 학생이 현혹되도록 여학생의 주변에서 식칼을 들고 인디언의 의식인 양 일종의 춤을 어렴풋이 춘다. 마치 여학생을 최면에 빠뜨리기라고 할 것처럼. 노교수는 여학생에게 식칼을 고정하고 끊임없이 식칼이라는 말을 반복해 따라 하도록 요구한다. 식칼은 여학생을 죽이는 사건으로 이어지게 하는데, 이 식칼은 연출가의 취향에 따라서 식칼이 가시적인 물체로 나타날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가상의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언어를 이미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살인으로 이어지는 식칼의 이미지는 언어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언어가 살인이라는 폭력성, 부조리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전체적 인상이 연극을 2번이나 보지만 여전히 이제껏 본 연극 중에서 가장 난해한 연극으로 생각된다. 연극에서 노교수가 수업을 통해 폭력, 혼란, 부조리, 강압 등으로 얼룩진 모습하다 이내 죽이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교육은 지식을 맹신하여 이를 강요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지식을 강요하는 과정(교육)에서 폭력이 강하게 수반됨이 나타난다. 또한, 앞서 언어 커뮤니케이션적 측면에 대하여도 말하였는데, 노교수가 여학생과 커뮤니케이션 하려는 것은 지식을 대표로 삼을 수 있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노교수가 자신이 강요하는 지식에 무지몽매한 여학생을 향해 일방적으로 지식을 강요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여학생을 향한 노교수의 태도가 강한 지배욕을 내비치는데 이러한 태도가 지식을 맹신하여, 지식을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 노교수도 지식을 맹목적, 광신적으로 강요하는 교육의 희생자이기도 하다.그리고 하녀와 노교수의 관계는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었다. 하녀는 충고하며 사건의 살인이라는 파국을 맞이할 것을 예상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저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노교수와 학생의 수업에 개입한다. 그리고 개입 장면에서 모습을 보면 어쩌면 노교수보다 하녀가 어떠한 측면에서는 좀 더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한다. 왜냐하면, 노교수의 신경질적이고 위압적 태도에서도 하녀는 시종일관 매우 의연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또한, 특이한 것은 하녀가 매우 상냥한 공범자라는 점이다. 하녀가 직위적 측면에서 노교수에게 주눅이 들지 않는 점, 노교수를 힐난하면서도 노교수의 범죄에 공범자인 점을 토대로 바라보면, 어쩌면 하녀는 노교수의 초자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녀는 노교수의 초자아로서 노교수로부터 살인의 해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초자아(하녀)를 배신한, 지식에의 강요를 받고 있는 자아를 이루고 있는 것 또한, 자기 자신이며 자기 자신을 제거할 수 없으므로 힐난하는 차원에서 책망을 끝내고 ‘그래도 착한 분인데.’라면서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고 끝내는 것 같다.다음 관극시 건의사항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충분히 의미가 있을 만한 고전이며, 간과하지 말아야 할 메시지가 담긴 고전 연극으로서 현대좋았다.
    인문/어학| 2012.05.04| 8페이지| 1,000원| 조회(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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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신》의 음식과 《향수》의 향수를 바탕으로 드러나는 존재의 비극성
    《변신》의 음식과 《향수》의 향수를 바탕으로드러나는 존재의 비극성서론《변신》의 그레고르와 《향수》의 그르누이는 모두 주위 인물과 진실한 소통을 하지 못하고 주위로부터 단절된 존재이며, 그로 말미암아 두 작품은 인간소외를 이야기 전개의 큰 축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둘은 비극성을 안고 있는 존재로 보인다. 이러한 비극성은 특히 《변신》에서는 음식 《향수》에서는 향수를 통하여 충분히 암시된다. 《변신》에서 각 장에 걸쳐 그레고르가 가지는 음식에 대한 태도를 뚜렷이 나타낸다. 그레고르가 음식에 대한 태도를 통해 가족의 행동 변화를 촉구하기도 하고 가족의 행동 변화에 따라서 그레고르의 음식에 대한 태도가 변모하기도 한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음식을 그레고르의 존재를 많이 대변해주는 매체로 볼 수 있다. 또, 《향수》에서 그르누이가 냄새(인간성)의 부재를 향수로 메꾸어 자신을 소외시키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자 하는 것으로 볼 때, 향수를 그르누이의 존재를 대변해주는 매체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변신》에서의 음식과 《향수》에서의 향수를 바탕으로 그레고르와 그르누이의 존재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본론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그레고르와 음식《변신》에서 음식에 대한 그레고르의 태도는 극심한 허기, 달라진 음식의 취향, 음식에 대한 일종의 거부로 이어진다. 이러한 변화는 대개 가족의 태도 변화와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음식은 그레고르와 가족 간 일종의 소통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주로 변신 직후가 그려지는 1장에서 그레고르는 갑작스러운 변신에 개의치 않고 극심한 허기를 나타내며 식욕을 드러낸다.) 식욕은 심리적 및 사회적 통합체로서의 인간 상태를 반영하는 기준이 된다.) 이를 바탕으로 바라보건대, 그레고르가 왕성한 식욕을 드러내는 것은 아직 그에게 있어서 벌레로의 변신을 별것 아닌 일로 여기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가족들의 반응은 이와 사뭇 다르다. 이를테면, 어머니는 ‘다시금 비명을 지르며 식탁에서 뛰어내려, 급히 달려온 아버지의 두 팔 안에 쓰러’지는 등 가족들은 그레고르의 변신을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인다. 이처럼 그레고르와 그 가족들의 반응은 사뭇 다른 것으로 둘의 대립이 예상된다. 또한, 그레고르는 1장에서의 식욕이 여전히 이어져 2장에서 음식을 먹으려는 하는데, 이때 음식 취향에 대한 변화를 보여준다.) 변신 직전까지 ‘즐겨 마셔’온 우유(음식)에 대해 혐오감마저 느끼며 부정하는 행위는 마치 벌레로 변신하기 이전의 삶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변신 전의 삶과 변신 후의 삶이 서로 반(反)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레고르 가족은 모두 변신 이전의 삶의 관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음식 취향에 대한 확연한 변화는 변신 전의 삶을 사는 그레고르 가족과 변신 후의 삶을 사는 그레고르가 서로 반(反)할 수밖에 없고 그로 말미암아 이질적인 둘 중 하나는 비극을 면치 못할 것을 암시한다. 2장에서 그나마 음식의 취향 때문에 여동생(가족)과 일종의 소통을 하였던 그레고르는 3장에 다가가면서 이윽고 완전히 단절된다. 가족으로서의 관계가 완전한 단절과 해체를 거듭하는 모습은 여동생이 그레고르에게 음식을 주는 행위에서도 엿보인다.) 이러한 단절 속에 마침내 그레고르는 3장 말미에 이르러 ‘배가 고픈 것도 느끼지 못하며(p. 59)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p. 74)’게 된다. 그레고르가 음식을 먹지 않는 모습은 1장에서 보여준 왕성한 식욕과는 대조된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식욕의 상실은 ‘누이동생의 그것보다 한결 더 단호(p. 73)’한 ‘그가 없어져 버려야 한다는 데 대한 그의 생각(p. 73)’의 시발(始發)을 잘 드러내며 그레고르 존재의 비극성을 함축하고 있다.)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그르누이와 향수《향수》에서 그르누이는 ‘사랑을 생명을 .(p. 36))’ 존재로 그의 생존은 ‘사랑이 없을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에(p. 36)’ 그의 존재에게 사랑의 결핍은 필연적이다. 또한, 그는 ‘애당초 괴물로 태어(p. 36)’난다. 아이들이란 원초적 상태에 가까워 순수 세계의 사리 분별이 가능한 존재이다. 이러한 아이들이 그르누이의 괴물성을 눈치채고) 그르누이를 두려워하는 까닭은 그가 냄새를 지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냄새의 부재는 괴기스러운 것으로 사랑 결핍의 근원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즉, 냄새의 부재가 사람들과의 소통의 부재를 야기하는 것이다. 이윽고 그르누이 자신도 냄새의 부재를 깨닫고 이를 메우기 위해 향수를 만들고자 하며) 이 향수를 바탕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기 때문에 향수를 일종의 소통 매개체로 볼 수 있다.마침내 최고의 향수를 만드는 데 성공하며) 이 향수로 말미암아 ‘그 자신이 이렇게 되기를 열렬히 바라(p. 361)’온 꿈을 실현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르누이는 이러한 승리를 전혀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 승리를 그저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향수를 증오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단지 향수로 말미암은 것이며 심지어 사람들은 자신들이 향수에 매혹 당하여 그를 사랑한다고 느끼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그르누이를 향한 사람들의 사랑은 실제로는 향수를 향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그르누이를 향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므로 그르누이가 바라온 진정한 소통, 사랑의 의미가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그르누이는 이러한 사람들의 사랑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도망칠 수 있는 따뜻한 구원의 세계(p. 361)’을 찾고자 한다. 이 세계는 그라스에서는 향할 수 없는 세계라서 그르누이는 그라스에서 빠져나와 이후 묘지에서 자신을 스스로 식인 제물로 희생시킨다. 텍스트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타인과의 진실한 소통에 대한 욕망이 그르누이가 자신을 스스로 식인 제물로 바치는 것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을 스스로 식인 제물화하는 것은 그르누이의 일종의 각성(최고의 향수를 만드는 것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려는 시도였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이 호소하고 싶었던 것과는 거리가 먼 것에 대한 깨달음)의 실현으로 의미가 있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 사용된 도구가 향수라는 점에서 불완전하다. 만약 묘지의 사람들이 그르누이의 향수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그르누이를 단죄한다면 이때 단죄는 그르누이로와 사람들이 일종의 진실한 소통의 행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르누이를 잡아먹는 사람들은 그르누이를 단죄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그르누이 자신이 스스로 죄를 벌하는 데 사용된 도구에 지나지 않으므로 소통이라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묘지의 사람들은 진정한 소통, 사랑의 의미가 결여된 사랑인 탓에 그르누이로 하여금 환멸을 느끼게 한 그라스의 사람들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묘지의 사람들이 ‘그들이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p. 379)’을 하긴 하였지만, 이 또한 향수로 초래된 것에 불과하다.결론그레고르와 그르누이는 모두 맨 처음 소외로부터의 탈피, 주위와 진실한 소통을 바라고 있다. 이와 같은 바람이 둘의 일차적 목적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이윽고 둘은 목적은 변모하게 된다. 이차적 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둘의 이차적 목적의 실현은 모두 죽음으로 이어진다. 또한, 그레고르의 이차적 목적은 본디 목적과 매우 상이한 것으로 존재에 대한 포기이지만, 그르누이의 이차적 목적은 본디 목적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 증오를 통한 진실한 소통에 대한 욕망으로 차이가 있다. 이러한 목적들을 달성하고자 하는 모습이 그레고르와 음식, 그르누이와 향수와 관련하여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레고르에게서의 음식과 그르누이에게서의 향수 모두 일종의 소통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음식과 향수의 소통 매개체적인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다. 음식과 향수를 통하여 어느 정도의 소통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단지 어느 정도껏 일뿐이며 이 소통이 진실하지 못하다는 점, 즉 그레고르와 그르누이에게 필요한 혹은 그들이 바라는 진실한 소통을 이끌어 내는 데에는 소용이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그레고르와 그르누이에게 있어서 유일한 소통의 매개체라고 볼 수 있는 음식과 향수가 이미 극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들은 그들 존재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존재의 비극성을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변신·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저, 전영애 역, 민음사, 이 글의 모든 《변신》 텍스트 인용은 위 책에서 발췌.심지어 배가 몹시 고프기까지 했다.(p. 12) 무엇보다 아침을 먹고, 그러고 나서 그다음 것을 생각해보려고 했다.(p. 13)) 식욕 [ appetite , 食慾 ] : 음식물을 섭취하려는 욕구. 공복 때의 일반적인 욕구 상태인 허기와 달리 특정한 음식을 선택하는 욕구를 가리킨다. 필요한 영양소의 섭취라는 관점에서 생명유지로 이어지는 생리적 욕구에 위치한다. 식욕의 생리적 기구는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섭식중추가 통제하며, 혈당치의 상하 등을 감지하여 섭식행동을 중지시킨다든가 개시시키는 조절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식욕에는 생리적 기구 외의 측면도 있다. 보는 눈이나 냄새 등 시각, 후각에서 대뇌에 전달된 정보가 섭식행동을 좌우하며, 고민이나 걱정 등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안고 있는 경우에 식욕은 저하되는 등 심리적·문화적·사회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신체적·심리적·사회적 통합체로서의 인간의 건강 상태를 반영하는 기준이 된다. 《생명과학대사전》, 강영희, 2008.
    인문/어학| 2012.05.04| 4페이지| 1,000원| 조회(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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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울에 비친 현실상(像) 바라보기 - 보르헤스의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中 ‘거울’에 관하여
    거울에 비친 현실상(像) 바라보기 - 보르헤스의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中 ‘거울’에 관하여거울에 비친 현실상(像) 바라보기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에서 중 中 ‘거울’에 관하여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우스 떼르띠우스에서 나타나는 ‘거울’의 이미지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이에 앞서 내가 생각하는 주요한 거울의 속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먼저, 거울은 서로 대조적인 상을 만드는 속성을 지녔다. 거울은 물체를 그대로 비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거울에 비친 상(像)은 서로 반대 방향이다. 둘째, 거울은 무한성을 지닌다. 두 개 이상의 거울을 서로 비추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상을 만들어 낸다. 거울 안에 한번 들어가면 다시 빠져나오기 어려워 미로를 연상케도 하고, 순환, 영원의 이미지로 이어지기도 한다. 셋째, 거울은 허구의 것을 생산하는 속성을 가진다. 거울로 만들어진 상은 실제 물체가 아닌 허구의 것에 지나지 않으며, 거울을 통한 것은 허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내가 우크바르를 발견한 것은 어떤 거울 하나와 백과사전을 접합시킨 덕분이었다. (p.17)’라고 하면서 이 글은 시작된다. ‘그 누구도 우크바르에 가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p.23)’에서 우크바르가 실존하는 국가가 아님을 알 수 있듯 이렇게 실존하지 않는- 누군가가 건설하고자 했던 인공 국가인 우크바르를 화자는 ‘거울’과 ‘백과사전’ 덕분에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도입부는 ‘거울’의 속성으로 말미암아 실재(혹은 실재로 표방되는 현실적인 것)와 허구(혹은 허구로 표방되는 가상적인 것)의 이미지를 대조한다고 느껴진다. 즉, 현실과 이후 글에서 나타나는 ‘틀뢴’이라는 만들어진, 가상의 혹성을 명백히 분리해주는 듯하다. 그리고 ‘거울과 백과사전을 접합시킨 덕분’이란 말에서 거울과 백과사전이 동등하게 열거되는 것으로 보아 ‘거울’과 ‘백과사전’이 서로 비슷한 속성을 하고 있다고 짐작된다. ‘백과사전’은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사전적 의미의 백과사전이 아니라, [영미백과사전]이라는 특정한 ‘백과사전’을 지칭한다. 이 특정한 ‘백과사전’은 이후 [오르비스 떼르띠우스]라는 백과사전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일반적 백과사전과는 달리, ‘틀뢴’을 만들기 위해 먼저 제작된 것이다. 따라서 이 ‘백과사전’은 거울과 마찬가지로 ‘틀뢴’이라는 허구의 것을 생산하는 속성을 지님을 알 수 있다.‘우리들은 일인칭 화자를 바탕으로 한 소설작법에 관해 긴 시간의 논쟁을 벌였었다. 이 화자는 사실을 생략하거나 흐트러뜨리고, 단지 몇 명의 독자들ㅡ손을 꼽을 정도로 적은 수의 독자들ㅡ에게만 경이로울 수도 있고, 하잘것없기도 한 현실을 간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다양한 모순 속에 개입한다. (p.18)’ 여기서 화자는 일인칭 화자가 독자에게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으로 제공할 때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에 대한 의심이므로 허구의 것을 만들어내는 거울의 속성에 대한 의심과 연결된다. 화자는 이렇게 허구에 대한 의심을 곳곳에 암시하며 실재와 허구에 대해 대립시킨다. 덧붙여 ‘복도의 저쪽 끝에서는 거울이 우리를 염탐하고 있었다. (p.18)’로 이어지며 허구에 대한 의심의 장면을 거울이 염탐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거울의 염탐은 나로 하여금 실재와 허구의 거리 차에 더욱 주목하게 하며, 결과적으로 실재와 허구의 대립을 더욱 더 강조하는 듯 하다.‘책은 영어로 씌어 있었고, 1001페이지에 달했다. (p.26)’에서 1001은 정중앙을 중심으로 좌우로 대칭되어 있어서 대칭수, 혹은 거울수라고도 한다. 10 01은 서로 비추는 거울의 모습으로 이어져 무한한 반복, 재생산을 나타내는 거울의 속성을 떠올리게 한다. 1001 페이지로 쓰여진 이 책은 틀뢴에 관한 백과사전인,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이다. 따라서 이러한 거울의 이미지는 역시 틀뢴에 투영될 수 있다.‘거울과 부성(아버지성)은 가증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증식시키고, 마치 그것을 사실인 양 일반화하기 때문이다. (p.20)’ 위의 텍스트는 거울을 통한 것은 사실이 아닌데, 사실인 양 증식되어짐을 말해 준다. 증식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무수히 되풀이되는 순환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미로를 연상케도 한다. 이러한 거울의 속성은 틀뢴의 속성과 연결된다. ‘제2차 와 제3차 들은 첫 번째 것으로부터의 이탈을 지나치게 과장한다. (중략) 이 과정은 순환적이다. (p.41)’에서 보여지는 틀뢴에서의 사물들의 복제는 틀뢴의 순환적 속성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확실히 틀뢴은 미로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미로, 인간에 의해 해독되도록 운명지어진 그런 미로이다. (p.49)’에서 보여지듯, 미로와 같은 이미지 또한 연결된다.‘버클리는 그 상상의 혹성을 체계적으로 다룰 백과사전이 씌어져야 함을 암시했다. (p.44)’를 시작으로 어느 비밀결사체는 가상세계를 만들기 위해 그 가상세계의 백과사전을 제작한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 혹성인 틀뢴이 바로 그 가상세계이다. ‘틀뢴에서는 사물들이 복제되며,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잊어버리면 그것은 스스로 지워져 버리거나 세부 항목들을 상실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p.41)’ 에서 볼 수 있듯이 틀뢴에서는 물질은 부정되고 상상의 객체들이 실재로 바뀌는 상황 등이 일어난다. 이렇듯 틀뢴은 현실 세계(지구)와는 여러 면에서 반대되는 공간이다. 즉, 틀뢴은 지구와 반대되는- 지구를 비추어 보는 거울인 셈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지구를 물체(실상), 틀뢴을 거울에 비친 상(허상)으로 두어 인류 문명의 실상과 허상을 조명해 볼 수 있게 한다.
    인문/어학| 2012.05.04| 3페이지| 1,000원| 조회(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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