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中東)에 대하여[중동의 범위]중동은 지리적으로 고정된 범위가 없다.동서: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 대륙의 모로코, 모리타니아까지남북 : 터키~아라비아 전 지역, 아프리카의 수단, 소말리아까지약 1700만 ㎦, 25개의 나라, 인구는 4억 2천만명이다.중동지역의 총 GDP는 4조 3천억 달러가 넘는다.[중동, 근동, 중근동, 마그레브, 트리폴리타니아, 페니키아, 아모리인, 바빌로니아, 오리엔탈리즘, 가나안]근동(近東)의 의미근동은 19세기 정치상의 낡은 개념이다. 그 유래는 유럽이 아시아를 지배하기 위한 전략적 분류로서, 동방을 "극동, 인도, 근동"으로 구분한 데서 비롯된다. 이후 양쪽 끝에 있는 극동과 근동은 유럽 열강들이 패권을 다투는 경합, 분쟁의 문제지역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유럽 중심주의적인 동방관(오리엔탈리즘)에 기초한 분류 개념이다.근동 지역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터키, 요르단,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 이스라엘 등이 포함된다.중근동(中近東)아프가니스탄, 이란, 구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아우른다. 또한 이 말에는 경합, 분쟁의 문제 지역으로서의 중근동이란 성격이 포함되어 있다.중동(中東)20세기 국제 정치상의 새로운 개념이다. 이 개념은 미국의 해군전략사가 A.T.마한이 1902년에 처음 사용하였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변화하여,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이 카이로에 중동방위사령부를 설치한 이후, 연합국의 군사용어로 정착되었다. 전후에는 U.N이 지역분류의 하나로 사용하였다.범위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여, 오스만제국의 소멸과 함께, 중동에서 발칸 지역이 제외되었다. 대신 1950년대 후반 이후에는 아랍의 통일운동이 고조되어 북아프리카 서부, 특히 마그레브(튀니지아, 알제리아, 모로코)를 포함하게 되었다. 지역 개념도 역사의 산물인 이상, 이 같은 변화와 신축성을 갖는다.중동의 개념은 유럽 중심주의에서 유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이 자기들 지역을 중동이라 부르는 점은 니키아령(領) 시대의 렙티스마그나·오에아·사브라타 등 세 도시를 총칭한 ‘트리폴리(Tripoli:세 도시)’란 말에 연유해서 생겨났다. 그 뒤 트리폴리타니아는 BC 2세기에 로마, 5세기에 반달(4세기에 한때 독립), 6세기에 비잔틴, 7세기에 아랍, 16세기 전반에 한때 에스파냐, 그리고 1551년부터 오스만투르크에 지배된 후 1714∼1835년 독립기를 사이에 두고 1911년 이탈리아군에게 침략되기까지 투르크령(領)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투르크의 원조로 미수라타에 수도를 둔 트리폴리 공화국이 성립되었으나, 키레나이카의 세누시 왕조가 영국을 등에 업고 1919년 이탈리아와 타협함으로써 트리폴리타니아는 세누시 왕조의 지배하에 들어가서 이탈리아의 보호령이 되었다가, 1923년 그 식민지가 되었다. 그 후 세누시 왕조 반대운동이 치열해져 이탈리아 식민지시대부터 민족주의 정당이 성립되었다. 1942년 이탈리아·독일의 군사기지가 되어 1943년 영국군에 의해 해방되기까지 전쟁의 피해를 입었다. 그 후 영국군 군정하에 있다가 1951년 12월 리비아 연합왕국 독립과 더불어 그 구성주(構成州:왕국)가 되었다페니키아(Phoenicia)지중해 동안을 일컫는 고대 지명. 일반적으로 북쪽의 에리우세루스에서 남쪽의 카르멜산 까지를 가리키나 시대에 따라 그 범위는 달라진다. 베리토스(베이루트, Beirut), 시돈(Sidon), 티레(Tyre), 비블로스(Byblos) 등의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한 도시연맹의 형태를 취했으며, 거주민은 주로 해상무역에 종사했다.페니키아는 오늘날의 시리아와 레바논 해안지대, 즉 지중해 동안을 일컫는 고대 지명이다. 일반적으로 북쪽으로는 오늘날 카비르(Kab?r) 강으로 불리는 엘레우세루스(Eleutherus)강에서 남쪽으로는 카르멜(Carmal) 산까지를 가리키나 시대에 따라 그 범위는 달라진다. 하나의 정치 단위로 통일된 적은 없으나 시기마다 세력이 강력한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한 도시연맹의 형태를 취했다. 주요 도시로는 베리투스(Berytus지중해연안과 에게해 연안을 장악했으며, 티레, 시돈, 트리폴리, 아라두스, 비블로스 등의 도시 국가들이 크게 발전했다. B.C. 12세기에 이르러 이집트의 영향력이 매우 약해지면서, 페니키아는 지중해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했으며, 스스로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지중해 연안의 사이프러스, 코카서스, 사르디니아, 이베리아 반도 등을 식민지화 한 것은 물론이며, 뛰어난 항해술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서안과 동인도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해상 교역과 문화 전파를 통한 페니키아의 전성기는 약 400년간 지속되었으며, 이 시기에 오늘날 알파벳의 모태가 되는 페니키아어 알파벳이 발명·보급 되었다. 그러나 B.C. 9세기에 이르러 아시리아 세력이 팽창하면서 페니키아의 독립성은 점차 축소되었으며, 기원전 538년에 이르러서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B.C. 4세기 무렵 그리스가 성장하자 페니키아는 B.C 350년에 시돈이 공격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그리스의 한 속주가 되었다. 특히 티레는 B.C. 333년 ~ 332년에 알렉산더 대왕의 직접 통치를 받았으며, B.C. 64년 페니키아 전역이 로마의 시리아 속주로 편집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그리스의 통치 하에 있었다.페니키아는 중개무역을 중심으로 하는 해상 교역을 통해 지중해 전역을 장악했는데, 그 바탕에는 우수한 조선기술과 항해기술이 있었다. 특히 페니키아의 행해술은 연안항법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천문 관측과 조수간만의 차·조류의 흐름 등에 대한 전문 지식을 토대로 하였다. 또한 조선기술에 있어서도 전투를 목적으로 하는 길고 폭이 좁은 선박과 상선용의 라운드 선박으로 선박의 종류를 이원화 시켰으며, 상선의 경우에는 화물적재능력을 최대화 하기 위해 노(櫓)가 거의 필요 없는, 돛에 의존하는 범선을 주로 사용했다페니키아는 삼나무·소나무 등의 목재, 티레·비블로스·베리투스에서 생산되던 고운 아마포, 고둥의 분비액에서 추출하는 보랏빛 염료와 염색 옷감, 시돈에서 생산되던 자수제품, 포도주, 금속, 유리 공예품, 채. 바빌론 제1왕조를 가리키기도 한다. BC 4000년대 말 이곳 남부에 세운 수메르인(人)의 도시국가에서, 바빌로니아 문명의 기초가 된 수준 높은 도시문명이 피어났다. BC 2350년 무렵 셈계(系) 아카드인(人)의 사르곤 1세가 통일국가를 건설하여, 181년 동안의 아카드시대에 수메르의 문화는 셈족화되어 오리엔트의 각 지방에 전파되었다. 그 뒤 한동안 혼란이 계속되다가, BC 2050년 무렵 수메르인의 우르나무가 우르 제3왕조를 창시하고, 이 왕조는 5대 107년 만에 엘람인(人)에게 멸망된다.BC 1830년경 이신 ·라르사와, 아모리인(人)의 수무아붐(재위 BC 1831~BC 1817)이 개창한 바빌론 제1왕조가 패권을 다투었다. 바빌론 제1왕조의 6대왕 함무라비는 숙적인 이신 ·라르사를 토벌하고 가까운 이웃을 평정, 엘람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또한 중앙집권제도를 확립하고, 수도 바빌론에 성벽을 쌓고 각지의 신전을 재흥하여 마르두크신(神)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를 재편성, 신상(神像)을 안치하였다. 운하를 파고 도로도 정비하여 무역을 융성하게 하였으므로 국력이 충실해져서, 바빌론은 오리엔트의 중심도시로서 번영하였다.또 법전(法典)을 반포하고 역(曆)을 통일하였으며, 아카드어(語)를 국어로 정하여 그 보급에 노력함으로써, 문화적으로도 바빌로니아의 세계가 성립하였다. 그러나 다음 왕 삼수일루나(재위 BC 1686~BC 1648) 때에는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점차로 쇠약해져, BC 1530년 무렵 히타이트인(人)의 침입으로 멸망하였다. 이 시대의 문화를 나타내는 유적 ·유물은, 그 중심이 되는 바빌론이 아시리아시대에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에 의외로 적다. 마리 ·우르 등 도시유적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데, 마리에서 발견된 왕궁터와 2만 수천 매의 점토판(粘土板)은 매우 귀중하다. 조각으로는 수사에서 발견된 함무라비 법전비(法典碑) 상부의 부조(浮彫), 함무라비왕 두상(頭像), 마리에서 출토된 노래하는 여인의 좌상이, 벽화로는 마리 왕궁의 프레것에 대해 18세기 중반 이후 근대 서유럽 모델 수용에 의한 '서양화’개혁이 시도되어 셀림 3세는 보다 체계적인 군제개혁을 시도하였으며 1826년부터의 메흐메트 2세 개혁에서 1839~1876년의 탄지마트 개혁에 의해 군사뿐만 아니라 정치ㆍ사회ㆍ문화의 체계적 '서양화’에 의한 개혁이 진행되어 일정의 성과를 올린다. 그러나 명확한 경제정책이 없어 외채에 의존함으로써 경제적으로 강대국의 종속성이 높아졌다. 근대 서유럽의 내셔널리즘의 영향하에 우선 발칸의 민족독립운동이 일어나 제국의 통합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1876년에는 아시아 최초의 본격적 헌법이 발포되었지만 곧 술탄 아브뒬하미드 2세(Abdulhamid)의 전제가 시작되어 1908년 이른바 청년 터키혁명으로 제2차 입헌제가 실현되었다. 그러나 이 무렵에는 비(非)무슬림의 발칸 여러 민족뿐만 아니라 무슬림 여러 민족의 내셔널리즘도 일어나 2차에 걸친 발칸 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을 거쳐 패전국이 된 오스만제국은 붕괴하고 터키혁명 후 1922년에 술탄제 폐지로 최종적으로 소멸하였다. 터키 공화국은 그 법적 후계국가이다.Orientalism(오리엔탈리즘)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은 원래 유럽의 문화와 예술에서 나타난 동방취미(東方趣味)의 경향을 나타냈던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동양과 서양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성이나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서양의 동양에 대한 고정되고 왜곡된 인식과 태도 등을 총체적으로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개념이 ‘서양의 동양에 대한 인식’이라는 폭넓은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은 1978년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adie Said, 1935~2003)가 발간한 이라는 책이 계기가 되었다. 이 책에서 사이드는 서구 국가들이 비(非)서구 사회를 지배하고 식민화하는 과정에서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태도가 어떻게 만들어져 확산되었는지를 분석했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을 '동양과 닌다.
김광섭, 지역사회복지론[지역사회 실천의 연계를 위한 인적, 물적, 자원의 활용 방안](강원도 홍천지역을 중심으로 서술함)1. 서론현대에 이르러, 빈곤과 장애는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환경의 문제가 주원인임을 인정하는 추세이며, 이제 빈곤과 장애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지역공동체가 함께 고민하여야 할 화두임을 알게 되었다. 이로써, 지역사회복지가 중앙정부에 지나친 의존을 하던 수동적 지역사회실천에서 지역주민들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능동적인 지역사회실천으로 변화하여만 한다는 숙명적인 과제를 우리 모두는 떠안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과제가 이제는 각 지자체는 물론이고, 산하 복지기관에도 숙제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지역자치실천을 지역 내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하여 자력으로 이루어나가고, 지역의 복지 극대화에도 도달하여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 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인적 및 물적 자원들을 조사, 탐구하여 찾아내야만하고, 그 자원들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들에게 적기, 적량, 정확한 전달체계의 연계기능도 갖춤으로써 지역의 자립을 위한 실천의 완성을 이루어나가야 한다.2. 용어의 정의사회제도의 발전과 변화에 따른 문제에 대하여 확인, 진단, 해결책 수립 등을 위하여, 주민의 조직 행동을 끌어내는데 필요한 활동을 이르는 말이며, 도시 농촌의 구분 없이 의도적이며 목적적인 지역사회의 변화를 꾀한다. 이에는 3가지 방법이 있다①지역사회 개발 ②사회 계획 ③사회 행동.자원봉사자, 후원자. 전문 인력 등정부보조금, 기업협찬금, 시민 기부금 등사회복지단체별로 이루어진 각각의 인적, 물적 자원들을 종합하여 지역의 욕구가 발생한 곳에 적기, 적량, 적정의 자원을 공급하는 조직적인 행동. 이는 사회복지사의 기술을 충분히 활용하여, 복지사의 능력을 충분히 반영되도록 지원하여 주는 중요한 모습이다.3. 현재 시행되고 있는 자원의 연계 활동에 대한 문제점오늘날 정부와 지자체, 사회복지실천 단체별로 각각 이루어지는 자원의 연계 모습은, 공급자(지원자)의 입장에서 지역의 구분을 편하게 경계 지어 실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복합적인 욕구가 점점 많아져가는 현실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며, 아울러 2중 3중의 지원 및 연계에 따른 시간과 비용이 낭비되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따라서 적절한 연계란, 적시에, 적정의, 정확한 서비스의 공급이 이루어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제는 연계 사업의 통합과 분류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중앙 집중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연계활동의 비능률적인 모습들을 수정하여 좀 더 신속하고 정확한 연계가 이루어지도록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예를 들면, 장애인 지원을 위한 버스의 운영은 오로지 장애인에게만 국한하고, 노인복지 시설의 차량은 그 목적에만 한정하고, 이주여성을 위한 장치들을 다른 목적의 복지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공급자 위주의 편의적인 사고에서 생겨난 낭비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관내에 산재한 종교시설(교회, 절 등)은 종교인에게만 개방 운영함으로써, 시설의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물적 자원을 현금과 현물에만 국한하지 말고, 건물의 이용, 산림의 관광자원화, 군부대 시설 개방 등으로 확대하여, 그로 인한 수입을 지역사회실천을 위한 기금으로 인정할 경우, 타 지역에서는 이룰 수 없는 많은 물적 자원을 확보함과 동시에 그에 따른 인적 자원의 확보도 가능할 것이다.4. 홍천군의 연계 가능한 인적 자원①농촌지역의 결혼이민여성②농수축협 조합원 및 영농기술자.③군내 기업체 임직원④군내 종교기관⑤군부대 인적자원(강원도만의 특수 현상)⑥은퇴자(전원생활자)⑦자원봉사자5. 홍천군의 연계 가능한 물적 자원①정부 보조금②농업 사업 수입금③임업 사업 수입금④관광사업 수입금⑤지역 내 노인복지시설 연계 수익 사업⑥지역 내 종교시설 연계 수익 사업⑦지역 내 군부대 연계 수익 사업⑧관내 기업 협찬금⑨시민 기부금⑩시민 모금6. 홍천군의 인적 물적 자원 현황과 활용 방안2012년 말 홍천군의 인구는 겨우 7만 명이다. 그러나 인구 계산에서 제외되었던 군부대 장병들을 포함한다면 그 수는 10 만 명이 넘을 것으로 사료된다. 홍천군은 열악한 지자체의 예산과 복지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지역을 위한 복지의 지원은 타 지역에 비하여 열등한 것이 사실이다. 군내 기업체의 수도 적고, 인구도 적고, 오로지 산과 물만 있는 홍천군으로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자원의 재창출을 꾀하지 않는 한, 복지의 후진 지역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홍천군은 자체 지역만의 장점을 적극 활용하여 물적 자원과 인적 자원을 확보하여야만 한다.7. 인적자원 조사의 필요성.(지역사회 자원개발의 일환)지역사회에 산재한 다문화센터, 노인요양시설, 어린이 센터, 장애재활 센터 등의 운영을 위하여 필요한 자원을 확충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서, 정부의 열악한 보조금(Subsidy)의 부족분을 보충하기 위하여 다음의 인력에 대한 경제적 능력 및 구성을 분석 조사할 필요가 있다.1)결혼 이주 여성의 언어 능력 자원이주 여성들이 지역을 위한 사회적 활동에 적극 참여토록 하기 위하여서도 그들의 동참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들의 한국어 능력배양은 자녀 교육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나라에서 이주해 온 이주자들을 모아서 종합 통번역 센터를 운영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하여 얻어지는 경제적 이득은 그들로 하여금 일체감을 느끼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가정의 화목과 성공적인 정착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2)은퇴자 능력 재능 기부 조사은퇴자들을 자원봉사자로 확보함이 중요하다. 베이비부머 세대들 중 전원생활을 위한 귀농이 증가하는 요즈음 홍천지역으로 낙향하는 사람들을 자원봉사자로 확보한다. 그들은 나름대로 사회에서 쌓은 많은 능력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울러 자원봉사자가 됨과 동시에 물적 후원자로서도 충분히 지원할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야말로 지역에 실질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자원이기에, 은퇴자들이 많아질수록, 지역의 자원은 증가한다.3)군부대 인적자원 능력 조사단기간 주재하는 군인들의 주말 자원봉사 활동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충분히 어린이센터의 지도교사로서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대도시의 문화를 지방에 소재한 어린이들에게 전달할 전도사가 될 수도 있다. 향후 전역한 후에도 꾸준히 이 지역에 대한 사랑과 연계되어,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역발전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4)농수축협 조합원 및 영농기술자실질적인 농가소득을 위한 특작물의 재배 기술을 결혼 이주자, 혹은 은퇴 후 귀촌한 사람들에게 농업 기술을 지도해 줌으로써, 지역의 수입 증대에 이바지 할 수 있다. 서로 지도하고, 지도 받으면서 일체감이 형성되어지며, 지역의 인화감 조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로 인하여, 지역이 인정이 넘치는 휴먼카운티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5)군내 종교기관강원도가 관광지임을 이용하여, 군내 종교 시설들을 숙박 관광 자원화(템플스테이 등) 한다. 운영을 위한 인적 지원은 지역 내 거주자들의 희망으로 파트타임의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지역의 복지 증진에 기여한다. 현대인들은 정신적으로 많이 지친 상태이기에, 그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강원도가 자리매김하도록 환경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6)각 동리 자원봉사자 모집홍천군은 10개의 면과 196개의 리로 구성되었다. 각 리마다 이장과는 별도로 자원봉사 책임자를 선정하여, 동리의 장애자, 노인, 어린이, 결혼이주자 등의 복지 대상자들을 관리하도록 한다. 동리의 자원봉사 책임자는 현황보고는 물론이고, 인적 물적 자원의 개발도 담당한다. 이 체제를 이룩함으로써, 우리들은 상명하달식의 중앙 중심적인 복지 실천 체제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으며, 진정 우리들이 원하는 풀뿌리 지역복지의 실천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8. 물적 자원 조사의 필요성(지역사회 자원개발의 일환)강원도 지역만의 특성인 군부대 시설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여, 복지와 연계한 사업까지 이어질 수 있다. 지역 내 군부대 시설을 이용하여, 관광자원으로 개발한다면, 충분히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 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주말은 민간인들도 군부대 내에서 레크레이션을 즐길 수 있으며, 식사와 숙박을 겸할 수도 있다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을 위한 서비스는 주변 지역의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로 지원받을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수입 및 소득은 지역 내 복지에 활용한다. 아울러, 동일한 개념으로 지역에 산재한 노인복지회관, 종교시설(교회, 사찰)등에도 이와 유사한 시스템을 적용하여 운영하면, 굳이 취업을 위하여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갈 필요도 없으며, 지역의 복지는 충분한 물적 자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강원도의 살길은 오로지 관광자원의 상품화에 달려 있으며, 이는 은퇴자들의 귀촌에도 자극을 주어, 더 많은 은퇴자들이 지역 내에 유입하게 되면, 홍천군의 인적 구성의 질도 높아질 것이며, 아울러 지역발전과도 연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