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居易 중국 문학사 Problem Based Learning1 백거이의 인생 2 인상적인 구절 3 상품화 방안 1 4 상품화 방안 2 목차 CONTENTS1 백거이의 인생 백거이 (772~846) 자는 낙천 ( 樂天 ): 백락천 호는 취음선생 ( 醉吟先生 ), 향산거사 ( 香山居士 ) 다작시인 : 문집 71 권 , 작품 3,800 여 수 대표작 : 장한가 , 비파행 , 부득고원초송별 등등 선택이유 : 이상을 꿈꾸며 현실적인 삶을 사는 백거이가 현실의 우리와 많이 닮은 듯하여 선택1 백거이의 인생 백거이 연표 772 년 출생 800 년 29 세 진사 급제 장한가 803 년 32 세 친시 합격 807 년 36 세 한림학사 신악부 808 년 37 세 좌습유 신악부 814 년 43 세 좌찬선태부 818 년 47 세 중저우자사 822 년 51 세 항저우 자사 842 년 71 세 형부상서 846 년 74 세 사망02 인상적인 구절 人生如石火 爲樂長苦遲 인생은 부싯돌 불꽃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건만 즐거움은 늘 더디 오는구나 又應追悔不抽簪 사직하지 않은 것을 분명 후회하리라 我年雖未老 歲月亦云邁 내 비록 아직 젊지만 세월 가면 나 또한 늙으리라 豈知閿鄕獄 中有凍死囚 문향의 감옥 안에는 오늘도 얼어 죽는 죄수 있는 걸 어찌 알까 ? 후회 , 회한 , 비판 사랑 , 희망 , 감성 枝枝蓮理生 가지마다 이어진 연리지 되고 싶어요 花非花 霧非霧 꽃이면서 꽃이 아니요 , 안개면서 안개 아니어라 野火燒不盡 , 春風吹又生 쥐불을 놓아도 다 타지 않고 봄바람 불어와 또다시 돋아났네 別是一生人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한 사람 露似眞珠月似弓 이슬은 진주 같고 달은 활과 같아라02 인상적인 구절 隨有隨無且歸去 擬求豊足是何年 窮通與豊約 正在四者間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은퇴하리니 빈궁과 영달 , 풍요와 빈곤 풍족함을 구하자면 끝이 없노라 이 네 가지 사이에 중은이 있소 傍看應寂寞 自覺甚逍遙 各得適其性 如吾今日時 옆에서 보면 쓸쓸할지 모르지만 저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나는 오히려 자유로움을 만끽한다네 오늘의 나처럼 살아갈까 ? 蝸牛角上爭何事 隨富隨貧且歡樂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풍족한 대로 부족한 대로 즐겁게 살자 命無奈我何 强弱剛柔間 운명도 나를 어찌할 수 없으니 강하지도 약하지도 부드럽지도 뻣뻣하지도 않게 처세술 , 삶의 태도상품화 방안 - 식품 03 能飮一杯無 친구여 한 잔 하러 오지 않겠나 희망쿠키 희망쿠키 속에는 백거이 시인의 인상적인 구절이 ! 안에 어떤 구절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재미 ( 랜덤 ) 구절은 주로 희망 , 삶의 태도 관한 것 ! 삶의 태도를 알려줘 조언 을 얻고 희망적 글귀는 긍정 적인 생각하도록 유도 ! 색감과 맛도 반죽에 어떤 색소 ( 천연 ) 를 넣는지에 따라 다양 잘 나가는 맛 : ★ 초코 , 딸기상품화 방안 - 식품 03 能飮一杯無 친구여 한 잔 하러 오지 않겠나 自覺甚逍遙 나는 오히려 자유로움을 만끽한다네 컵과 컵홀더에는 인상적인 구절 ( 가로 / 세로 ) 기분전환 을 위한 즐거운 구절 글씨는 흰색 음료 담기 전 까지는 어떤 구절인지 알 수 없는 재미 ! 글씨는 흰색 But, 컵과 달리 보여서 홀더는 구절 선택 가능 ! 공차 브랜드 이용 컵 컵홀더連理枝霧非霧 花非花勿 慕 富 與 貴 勿 憂 賤 與 貧 , .0 2 ‘ 백거이의 휴지 ( 休止 )’ 입니다 . 친구 추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앞으로 좋은 소식과 정보를 메시지로 받으실 수 있습니다 . 친구추가 일시 ( 한국시간 기준 ): 2017 년 11 월 26 일 11:59 수신거부 : 홈 친구차단 백거이의 휴지 ( 休止 ) 오늘의 휴지 ( 休止 ) 조각 오늘도 휴지처럼 술술 잘 풀리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 强弱剛柔間 강하지도 약하지도 부드럽지도 뻣뻣하지도 않게참고 문헌 책 제목 : 백거이 평전 세속의 욕망과 그 달관의 노래 작가 : 유병례 출판사 : 신서원 출판연도 : 2007 년감사합니다 :D Thank you{nameOfApplication=Show}
과목명 : 부동산 입문학번 :이름 :1. 부동산이란 무엇인가?우리 민법은 ‘토지 및 그 정착물’을 부동산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민법 제 99조). 따라서 우리 민법은 토지뿐만 아니라 토지의 정착물도 독립된 부동산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을 크게 둘로 나누면 토지와 토지의 정착물로 나눌 수 있다.1) 토지토지라 함은 일정 범위의 지면에 정당한 이익이 있는 범위 내에서 상하(지중과 지하)를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토지의 소유권은 정당한 이익이 있는 범위 내에서 토지의 상하에 미친다(민법 제 212조). 그러므로 토지의 구성물(암석, 토사, 지하수 등)은 토지의 지하공간에 포함된 구성물로서 토지와 별개의 독립한 물건이 아니며, 토지의 소유권은 당연히 그 구성물에도 미친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광업법 제 3조에서 열거하는 미채굴의 광물은 국가가 이를 채굴·취득하는 권리(광업권)을 부여하는 권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토지소유자의 소유권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2)토지의 정착물토지의 정착물이라 함은 토지에 고정적으로 부착되어 용이하게 이동될 수 없는 건물, 수목, 교량, 돌담, 도로의 포장 등을 말한다. 그러므로 판자집, 가식중인 수목, 토지나 건물에 충분히 정착되어 있지 않은 기계 등은 정착물이 아니라 동산이다. 토지의 정착물은 토지와는 별개의 독립한 부동산(건물)과 그것이 정착되어 있는 토지의 일부에 포함되는 것(교량, 돌담, 도로의 포장, 도랑 등)이 있다.2. 부동산이 왜 중요한지를 논하라.I. 서론부동산업은 개발공급업, 임대업, 관리업, 중개업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전체 시장규모 약 53조원(2011년 매출액 기준)에서 개발공급업이 약 28조원으로 가장 큰 비중(53%)을 차지하고 있다. 개발공급업 중 주거용 부동산이 약 14조원으로 50%를 점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 부동산산업은 주거용 부동산 개발공급업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이며, 특히 주거용 부동산의 약 80%가 아파트 유형으로 공급되고 있다는 점 을 감안하면, 아파트 개발공급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국내 부동산업의 개념과 함께 부동산이 왜 중요한지 알아보고자 한다.II. 본론1. 부동산업의 특징과 중요성부동산산업은 내수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할 뿐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다양한 타 산업과 연관되어 경제적인 파급효과가 큰 산업이다. 그만큼 국가 경제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산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산업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각 또한 컸다.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인한 부의 불균형 문제에 기인한다. 토지와 주택에 대한 초과수요 조건하에서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부의 격차는 심화되고 부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주택사업자의 경우도 주택을 짓기만 하면 높은 분양가격에 얼마든지 판매가 가능했다. 쉽게 안정적으로 높은 수익을 취하게 됨에 따라 주택업체의 폭리 논란도 끊이질 않았다.이러한 제 문제들로 하여 부동산산업에 대해서는 다양한 규제가 이루어져왔다.부동산투기를 억제하고 부의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등 징벌적 규제, 주택 판매가격을 제한하는 분양가상한제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금까지 부동산산업은 다양한 규제에 영향을 받아왔으며, 사실상 제한된 범위 내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우리나라 주택?부동산시장 환경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의 빠른 진행으로 인구 및 가구구조가 변화하고, 경제도 점차 성장동력이 약해지고 있다. 경제성장이 둔화된다는 것은 새로운 토지와 주택에 대한 수요도 적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와 같이 부동산의 높은 가격상승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오히려 부동산시장 침체로 인한 내수경제 성장 둔화, 자산디플레이션으로 인한 경기침체의 악순환 구조 등 경제 전반에 걸친 부정적 영향이 발생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1)생산적 측면의 중요성먼저 생산측면에서 보면 기업은 토지, 노동, 자본(공장 기계 설비 등 사람이 만든 생산요소)이라는 생산요소를 결합하여 물건을 만든다. 여기서 토지, 공장 등이 부동산이다. 생산요소가 없다면 생산을 할 수 없으니 그 중요성이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게다가 기업이 만드는 제품의 가격은 기업의 생산비용과 관계가 있다. 부동산가격이 올라가면 토지나 공장의 임대료가 올라간다. 또한 노동자들도 월세나 전세가격이 올라가면 월급을 더 많이 받아야 생활이 가능하므로 인건비도 올라가게 된다. 이에 따라 생산비용이 올라가게 되고 제품의 가격도 덩달아 뛸 수밖에 없다. 이렇듯 부동산은 물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2)소비측면에서의 중요성국민들에게 토지나 주택은 인간생활의 3요소인 '의식주'의 한 축인 '주거'를 해결해 주는 수단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부동산은 '부의 효과'라는 경로를 거쳐 '소비'에도 영향을 미친다. 즉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면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부가 늘어난 것으로 인식하고 소비를 늘리게 된다.그런데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 즉 월세나 전세를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부동산가격의 상승은 소비를 줄이게 한다. 월세가 오르고 전세가격이 오르니 세들어 사는 사람은 당연 소비를 줄이게 되고, 또 장차 집을 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모으거나 빌려야 하므로 소비를 줄이게 되는 것이다.3)경제적 측면에서의 중요성이외에도 부동산가격이 급등하여 거품이 발생할 경우 경제정책 측면에서 부동산은 매우 중요하다. 부동산 가격 거품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확산되고 차입에 의한 과도한 부동산투자(투기)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자원이 생산적인 측면으로 가지 못하고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크게 낮아진다. 또한 부동산 가격 거품이 꺼지게 되면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대출을 갚지 못하고 금융기관의 부실이 커지면서 금융시스템이 크게 불안해지고 대출을 갚지 못하면서 사람들의 정상적인 소비생활이 불가능해지면서 소비, 생산도 크게 줄어들어 경기가 전반적으로 침체를 겪게 된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부동산버블 붕괴로 10년이상의 장기불황에서 허덕이다가 최근에야 벗어나고 있다. 이처럼 부동산은 국가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중국 인문고전 X 광고 ’ - 중국 애정고사를 중심으로 ≪ 곽소옥전 ≫ ≪ 이와전 ≫ ≪ 앵앵전 ≫ ≪ 비연전 ≫목차 02 ≪ 이와전 ≫ 2-1 작품 소개 2-2 광고 리메이크 03 ≪ 앵앵전 ≫ 3-1 작품 소개 3-2 광고 리메이크 01 ≪ 곽소옥전 ≫ 1-1 작품 소개 1-2 광고 리메이크 04 ≪ 비연전 ≫ 4-1 작품 소개 4-2 광고 리메이크 05 기대효과≪ 곽소옥전 ≫ 011-1 작품소개 작가 : 장방 장르 : 전기소설 발표시기 : 중당 ( 中唐 ) 등장인물 : 이익 , 곽소옥 주제 : 사대부와 기녀와의 비극적 사랑 줄거리 : 1. 이익과 곽소옥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 . 2. 하지만 관리가 된 이익은 부모의 압력 , 자신의 미래 때문에 명문가 규수와 결혼함 . 3. 소옥은 이익이 그리움에 병이 깊어지고 원한을 품고 죽음 4. 흐에 소옥은 악귀가 되어 이익의 부부를 파탄하게 만들고 이익은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다 죽음 ≪ 곽소옥전 ≫ 1-11-2 광고 리메이크 : 곽소옥전 X 네스카페 1-2 “ 開簾風動竹 , 疑是故人來 ” “ 발을 걷어 올리니 바람이 대나무를 흔들어서 마치 정들었던 사람 오는 것 같은 느낌이로구나 ”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마음≪ 이와전 ≫ 022-1 작품소개 작가 : 백행간 등장인물 : 형양공 , 생 , 이와 , 포주 발표시기 : 당나라 천보연간 주제 : 기생 이와의 사랑과 절개 줄거리 : 1. 생이 이와에게 사랑에 빠져 생활비를 탕진 2. 이와도 생을 사랑하였지만 , 포주의 압력으로 쫒겨남 3.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간신히 생활을 영위 4. 우연히 이와와 재회한 후 다시 둘은 결합 5. 생은 과거에 급제하고 , 이와와 혼인 ≪ 이와전 ≫ 2 -12-2 광고 리메이크 : 이와전 X 메가스터디 2 -2 이와의 독려로 생이 다시 과거 공부를 시작 결국 생은 과거에 급제함 이와 : 생의 공부를 돕는 조력자의 역할≪ 앵앵전 ≫ 033-1 작품소개 작가 : 원진 장르 : 전기소설 등장인물 : 장생 , 최앵앵 , 홍낭 발표시기 : 당대 주제 : 장생과 앵앵의 비극적 사랑 줄거리 : 1. 장생은 앵앵을 좋아하게됨 2. 시녀 홍낭을 통하여 사랑고백 후 대원서상하 를 받음 . 3. 앵앵은 장생의 무례함을 꾸짖고 돌아감 . 4. 하지만 앵앵은 갑자기 장생을 찾아가 사랑을 시작 5. 장생은 과거를 보러 장안으로 올라가 다시 단교함 6. 결혼 후 장생은 다시 앵앵을 만나려 하지만 , 앵앵은 답시를 보낸후 소식이 끊김 . ≪ 앵앵전 ≫ 3 -13-2 광고 리메이크 : 앵앵전 X 듀오 3 -2 장생과 앵앵이 서로에게 쓴 시를 전해주는 시녀 홍낭 장생과 앵앵을 이어주는 조력자 역할 ≒ 그리스 로마 신화의 ‘ 큐피트 ’≪ 비연전 ≫ 044-1 작품소개 작가 : 황보매 장르 : 전기소설 등장인물 : 비연 , 무공업 , 조상 발표시기 : 당대 줄거리 : 1. 무공업 에게는 비연이라는 첩이 있었음 . 2. 이웃에 ‘ 조상 ’ 이라는 청년이 살았음 . 3. 비연은 ‘ 조상 ’ 과 담장사이로 글을 주고받음 . 4. 무공업이 숙직으로 집을 비운사이 둘은 정을 통함 . 5. 둘의 애정행각은 계속되다 마침내 무공업에 발각 . 6. 비연은 기둥에 매달려 매를 맞고 죽게됨 . ≪ 비연전 ≫ 4 -14-2 광고 리메이크 : 비연전 X 공익광고 4 -2 비연전의 주인공 ‘ 비연 ‘ → 중국어로 ‘ 非烟 ’ 非 : [ 동사 ] 그르다고 여기다 . 옳지 않다고 여기다 . 반 대하다 烟 : [ 명사 ] 담배 주인공의 이름 풀이를 이용한 공익광고기대효과 055 기대효과 05 역발상을 이용한 광고 제작 일반적인 광고 : 소재를 이용하여 광고 대상이나 브랜드를 홍보 → 반대로 광고 대상 , 브랜드의 인지도를 이용하여 고전 작품을 홍보 [ ] 중국 인문 고전에 대한 대중의 관심 증대 가능성 제고{nameOfApplication=Show}
과목명 : 중국사학번 :이름 :제목 : 중국사의 유일한 여자황제-측천무후1. 왜 이 주제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는가?비석 중 ‘몰자비’란 아무 것도 쓰지 않은 비석을 말한다. 역대 중국 황제 가운데 유일하게 몰자비의 주인공이 된 사람은 바로 철권 여성 통치자 측천무후(則天武后)다. 당 고종과 함께 건릉에 묻힐 때, 수많은 업적을 비문에 도저히 다 써넣을 수 없었고, 순장한 수많은 부장품들이 도굴될까 두려워 후세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하게 한 것이다.2000년 6월 중국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 고종과 측천무후가 묻힌 건릉에는 12조 원에 이르는 보물이 묻혀 있다고 한다. 당시 경제 수준으로 볼 때 이 정도의 보물을 순장했다면 나라 살림이 어떻게 되었을까 짐작할 만도 하다. 중국 유일의 여성 황제인 그녀는 잔혹한 폭군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혼란기에 나라를 이끈 강한 리더십을 가진 황제였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공략함으로써 치욕적인 역사를 안겨준 인물이었으나, 자국의 영토를 넓히고 국력을 키운 국제 감각이 탁월한 정치가였다.대한민국의 이곳저곳이 정치적 이슈로 온통 시끄럽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국민들의 소리가 광화문을 애워싸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정치적 상황에서 탁월한 여성 정치가이자 리더였던 측천무후의 강점과 업적에 대해 분석해본다면, 지금 우리나라에 주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2. 논지 전개-측천무후의 강점 및 업적명석한 두뇌를 가진 측천무후는 655년 말에 황후가 되자 곧바로 정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추종세력을 이용하여 그녀에게 적대적인 중신들을 차례로 숙청했다. 마침내 659년부터는 아예 동도 낙양으로 천도를 하고 중국 대륙을 실제로 통치하기 시작했다.워낙 천성이 나약하고 오랫동안 중병을 알아 정사를 돌볼 수 없게 된 고종은, 무후에게 전권을 주고 의지했던 것이다. 측천무후는 과단성이 있고 행정수완이 뛰어 났었다. 출신과 지위에 구애받지 않고 유능한 인재들을 발굴해서 중용했기 때문에, 신생 통일제국의 기초를 튼튼하게 확립할 수 있었다. 655-675년 기간 중, 당 나라는 소정방, 설인귀, 이적 등, 무후가 중용을 하여 승진시킨 군사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사해를 평정하게 되었다.측천무후의 업적과 강점은 5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1) 흔들림 없는 일관성 : 측천무후의 모토는 한마디로 ‘초지일관’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번 주장한 것은 흔들림 없이 끝까지 밀고 가는 성격이 국가의 안정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녀는 반대 세력에게는 추호의 용서도 없었지만, 자신에게 굽히는 이들은 철저히 보호해 주었다. 이 원칙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지켰다. 그녀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사후에도 그녀를 추종하는 세력이 일어날 정도로 남성 위주의 중국 귀족체계의 근간을 흔들어 놓았다. 사대부 관료들조차 그녀를 마음속에 섬겼다는 이야기이다.(2) 당근과 채찍의 병용 : 그녀는 무자비함과 너그러움이라는 극단적 양면성을 지닌 데다 이를 십분 활용할 줄 알았다. 자신을 거역하는 자는 설령 친자식이나 인척이라 할지라도 결코 용서가 없었으며, 일벌백계로 처단하는 방법 또한 끔찍하여 모두를 두려움에 떨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자신을 따르는 이에게는 한없이 관대했으며 또한 철저히 보호해주었다.(3)에너지의 집중과 분배 : 67세의 나이로 꿈에 그리던 황제의 자리에 오른 그녀는 낙양을 신도라 개칭하며 조정을 옮기고,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던 동부지방의 인재를 등용하였다. 그리하여 대부분 서부 출신인 관료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인재들을 불러들여 자신에게 충성하는 집단으로 만들었다. 기존 관습과 보수세력을 개혁하고자 한 이 전략에 그녀는 목숨을 걸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그리하여 기존의 가신들과 반대세력을 모두 밀어내고 확실한 안정을 거둘 수 있었다.(4) 뛰어난 정치적 감각 : 그녀는 국제정세에 밝았다. 서역의 반란을 잠재우고 장시 집권체제로 접어들자, 측천무후는 동쪽으로 눈을 돌려 신라 김춘추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유인궤, 소정방, 이적 등을 앞세워 당나라 군사를 한반도에 파견했다. 그리하여 신라와 함께 고구려와 백제를 정벌, 적대적이던 한반도 정세를 우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때 백제의 의자왕과 태자 융, 대신들과 백성 1만 2,000여명이 당나라로 압송되었으며, 당나라는 한반도의 위세를 꺾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5)인재의 등용과 적절한 배치 : 그녀는 사람들을 가려 쓸 줄 알았다. 위원충, 적인걸 등의 공신을 중용하여 정사를 올바르게 펼쳤기에 후일 당나라로 정권이 돌아갔을 때도 국정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을 정도로 나라가 안정되어 있었다. 후세 사가들은 그녀의 치적으로 부패한 관료의 제거, 고른 재화 배분, 문예 부흥 등을 꼽았다. 이처럼 인재를 골라 적소에 배치한 것은 탁월한 정치적 경륜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3. 결론 및 내 삶에 끼치는 영향요즘 젊은 세대는 역사라는 말만으로도 거부반응을 느끼고, 길고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 속 이야기는 지식과 기술 위주의 책 사이에서 인간의 도리를 묻고, 지혜를 알려준다. 각 국가의 모든 역사가 의미 있지만 그 중 중국의 유일한 여자황제인 측천무후에 대해서 알아보았다.황제로 16년간 재위하였지만, 실제로는 50여 년간 집권을 한 중국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자황제 측천무후. 역사의 기술자와 호사가들에 의해 부정적인 면을 지나치게 과장한 한 여인의 제국 사람을 1300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여성시대의 비판적 성찰로서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측천무후에 대해 알아보면서 내가 측천무후에게 감동받은 점은 그가 여자의 몸으로 황제가 되었다는 것도 아니었고, 훌륭한 정치가라는 것도 아니었다.첫째, 그녀는 정말‘강인한 사람’이었다. 즉, 측천무후는 머리가 지혜롭고, 정신이 강인한 사람이었다. 남존여비 사상을 받드는 시대에 여인의 몸으로 황제가 되고자 했을 때 그 반발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숙적의 음모와 시해, 그리고 미움과 거부를 과연 그가 어찌 견디고 대처하는지는 부분을 통해 진정한 리더의 융통성과 내공을 느낄 수 있었고 뿐만 아니라 권력의 힘이 아닌 심성으로 사람을 다스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수업명 :문화중국어중국민족의 전족 풍습에 관한리포트학과:학번:이름 :Index서론1. 중국의 전족을 주제로 정한 배경.2. 중국의 전족이란 무엇인가.본론1. 전족의 과정2. 전족의 기원결론전족을 통해 깨닫게된점 및 느낀점서론(1)중국의 전족을 주제로 정한 배경문화중국어 리포트를 쓰는데 있어 ‘전족’이라는 주제를 선택한 이유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중국문화라 함은 셀수 없을 정도로 수도 없이 다양하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많은 학우들이 기본적으로 설명하는 의식주가 이외에 무엇인가 남다른 주제를 찾고자 하다. 고등학교 역사시간에 중국의 전족에 관한 내용이 정말 인상깊게 되었기 때문이다. 낯선 주제일순 있지만 흔히 아는 주제 가 아닌 흥미롭고 색다른 이번 주제를 통해 중국의 전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궁금증을 해결 해 나갈 것이다.(2)중국 전족은 무엇인가?전족은 얽힐 전(纏)과 발 족(足)으로 이루어 져있는 단어다. 이것은 중국의 풍습 으로 여성의 발을 인위적으로 구부린 뒤 세게 묶어 성장하지 못하게 하여 평생 작은발로 살아가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전족은 어찌 보면 너무나 가혹한 행위일지 모르나, 근대 이전 중국사 천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것은 문신, 할례와 같이 신체 특정 부분을 장기간 혹은 영속적으로 변형시키는 습속인 신체 변형 가공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유대교와 아프리카 부족에서 행해지는 할례라는 풍습은 수위가 높아 자세히 말씀드리지는 못하지만, 이런 악습들은 굉장한 고통을 수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사자가 속한 집단에서의 강요와 당연시로 인해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출처 : (브래태니커 백과사전)옆 사진에 있는 소녀들 모두 전족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린 소녀들이 스스로 그 고통을 감내하고 전족을 하는 것은 아마 없을것 이라고 생각된다. 하는수 없이 이제껏 해온 문화였으니까 하는 생각이 든다.본론(1) 전족의 과정[사진 1][사진 2]전족은 3, 4세의 나이에 어머니나 친족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나이에는 뼈가 아직 굳지 않았기 때문에 뜨거운 닭의 뱃속에 아이 발을 넣어 부드럽게 만든다음, 엄지 발가락을 뺀 모든 발가락을 발 안으로 구부려서 천으로 감은 후 작은 신발을 신긴다. 그리고 7, 8세가 되면 발의 갑골이라는 뼈를 탈구시켜 활처럼 구부려 발 자체를 하이힐 형으로 변형시킨다. 옆에 [사진1]이 바로 그 모양이다. 이 상태로 천을 동여매어 [사진2] 발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발뒤꿈치부터 발가락까지의 길이가 절반 이하, '세 치' (10cm)안팎 정도의 크기로 줄어 든다고 합다. 이런 변형 과정에서 발의 격렬한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열이 나기도 하고 '마비되어',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참고 견디어 내는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초창기 전족은 5촌(약 15cm)였으나, 전족이 널리 유행한 명, 청나라 당시의 중국인들은 전족의 길이로 2.4촌(약 7cm)을 이상적인 형태로 생각했다고 한다. 전족을 지칭하는 말 중에 가장 유명한 말 중에 삼촌금련(三寸金蓮) 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삼촌 길이의 금쪽같은 연꽃으로 전족한 발을 비유하는 말이다.[사진3] 통계적으로 전족은 농촌보다는 도시, 그리고 남방보다는 북부와 중원에 속하는 대도시에서 그 비율이 높다. 그 이유는 전족이 애초에 특권 계층에서 누릴 수 있었고, 농촌의 여성들은 경제 활동에 대한 역할이 많기 때문에 전족을 하기엔 상황적으로 무리가 있었다고 학자들은 파악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흔히 희대의 미인 대명사로 불리는 양귀비[사진3] 와 같은 예쁜 여인들 역시 발이 10cm도 채 되지 않아 발이 작은 것을 최고 미인으로 치는 당시 중국인들에게 예쁨을 받았다고 한다.(2) 전족의 기원전족의 기원에 관해서는 설이 많은걸 알수 있다. 중국 내에서도 상나라(은나라), 춘추전국시대, 수당시대, 송나라 등의 주장이 존재하고 있다. 이중에서 3가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1번은 5대10국 시기 남당이라는 나라의 왕이 궁녀의 발을 가늘게 묶고 춤을 추게 하였다는 데서 기인했다는 설이고, 2번은 당나라 시기 서역 무희들의 발 돋음 선무가 인기를 끌어서 유행하게 되었다는 설 그리고 3번은 돈황 유적에서 벽화에 등장하는 여인이 전족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태평흥국 연호와 함께 적혀있다고 한다. 태평흥국은 송 태종(10c 초반)의 시기이고 3번이 가장 유력한 설이라고 한다. 3번과 관련하여 한 가지 추측은 그 시기 이민족과의 긴장 관계에서 기인된 남송의 사회적 현상으로 정절에 대한 찬양이 일게 되고 전족이 이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전족을 한 여인은 행동에 확실한 제약이 생기기 때문에 전쟁시 도망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 죽음이 그 시기에 정치적, 사회적으로 포장함으로써 전족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 형성을 구축시키고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전족의 역사는 천년 이상이다. 긴 세월만큼 전족에 대한 당시 중국 남성의 애착 또한 있었기에 이런 여성들이 전족 문화를 행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든다..‘삼촌금련’ ‘연옥궁’ ‘홍능’ ‘미인소족’ 이 단어들은 중국 각종 문헌과 작품에 등장하는 전족을 한 작은 발에 대해 쓰였던 용어들이다. 당시 여성들은 전족한 발이 얼마나 작고, 상태가 양호한가에 따라 서로의 세련도와 패션을 구별지었다고 한다. 과거 산시성 에서는 매년 전족 미인 대회가 열렸다고 하는데 이 대회에서 1등을 한 여성은 그 지역에서 가장 부호의 가문에 시집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어찌보면 전족을 하여 발을 작게하는 것이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지위상승과 사회적 인정을 받는 수단이지 않았나 나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은 자신도 그런 아픈 고통을 감수하며 평생 불편하게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딸에게 똑같은 고통을 망설임 없이 주게되는 안타까운 관습까지 남게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