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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은 위대하지 않다 독후감
    신은 위대하지 않다(크리스토퍼 히친스)를 읽고우선 전체적인 흐름을 요약하자면, 한마디로 기독교 등의 일신교를 책의 저자가 제대로 “까”는 내용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저자 개인의 감정적인 표현이 많아 한쪽으로 극도로 치우친 주장으로 인식되어서 오히려 설득력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어떤 느낌이냐고 한다면 ‘무신론의 광신도’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일신교를 감정적으로 ‘까는’ 모습에서, 마치 연애하다가 상대방에게 차인 후에 그 상대방의 온갖 단점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남들에게 흉보는 것과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솔직히 말하자면 특유의 냉소적인 아메리칸식 조크가 번역과정을 통해 번역어투로 바뀌어, 그 결과 문장이 어색해져 오히려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되었다. 그로인해 내가 이 책과 저자에 갖게 된 약간의 부정적인 감정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음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저자가 일신교에 부정적인 감정의 집착을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한 모습에서, 마치 니체의 ‘신은 죽었다’란 표현의 이면에 ‘죽었다’에서 신이 그 이전까지는 살아 있었으며 동시에 신을 생사가 가능한 어떤 것 즉 ‘존재’하는 무언가라는 의미를 내포해 역설적으로 신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인정해버린 것처럼, 저자가 감정적으로 일신교를 비난하는 것 같은 모습이 역설적으로 그의 주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 같다. 보통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 사람의 주장은 어느 정도 걸러듣기 마련인 것이다.신에 대한 믿음의 종류 중, 불가지론자는 아예 일신교 등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닌 무관심이듯,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일신교에 대해 지대한 관심(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간에)이 있음이 틀림없다.그래도 이런저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러 가지 생각의 화두들을 던져주는데 그러한 관점에서 충분히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몇몇 구절들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책 157페이지 中 (...)이 이어 mythology를 해석하기 위해서였으니, 동아시아에서의 신화의 위상이 어땠는지 알만하다. 그나마 신화에 관심이 시작된 19세기도 단순한 학문적인 흥미 때문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목적이 주가 되었다. 당시 동아시아는 서구 문명의 침탈, 외세의 침략 등 민족의 위기상황이었는데 당시 지식층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족 신화를 이용하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민족의 단결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던 셈이다.(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 하나로 뭉쳐 민족위기를 이겨내자! 같은 느낌으로) 특히 중국은 넓은 땅덩어리 안에 기득권층인 한족 외에도 수많은 소수민족이 살아가고 있는데, 이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다민족일체론’을 강조하며 그들의 시조신인 황제, 치우, 그리고 심지어 최근에는 악신이라 여기던 치우까지 자신들의 시조로 끌어들여 소수민족인 묘족에서부터 크게는 한국과 북방민족까지 자신들과 동일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내가 생각하기에 성서나 기독교도 시작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저 하나의 민족 신화에 불구하다. 우리가 단군이야기에서 신이 세상에 내려왔다던가,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여인이 되었다던가, 호랑이가 말을 한다던가 하는 것들을 실제 일어난 사실로서의 역사라고 생각하는가? 그저 하나의 민족 신화로 생각할 뿐이다. 동아시아가 19세기 민족위기 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민족 신화를 이용했듯, 유대민족 또한 디아스포라라는 말처럼 세계 곳곳에 흩어지게 되면서 소수, 약자로서의 위기감, 민족적 뿌리를 잃어버리고 이민족에 섞여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민족 신화를 통해 민족단결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흩어져 있는 유대인(디아스포라)들의 입을 통해 일신교의 기초가 되는 모세5경의 줄거리가 효과적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다. 마치 다양한 매체를 통해 머나먼 그리스의 신화를 우리가 당연한 듯이 알고 있듯이.다만 신화는 신화로 끝나야지 신화를 실제 일어난 역사로 끌어내리는 것은 문제가 실제 역사라고 생각한다던가, 이를 실존 역사로 만들기 위해 행하는 시도에는 수많은 지지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뭔가 좀 아이러니하다.[책 391페이지 中 고대 에피쿠로스가 제기했던 의문들이 여전히 의미가 있었다.그가 악을 막을 의지가 있으나, 그럴 능력이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무능하다. 그가 능력은 있으나 의지가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악의적이다. 그가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는가? 그렇다면 왜 악이 존재하는가?]신의 절대성에 대한 의문에 대한 구절이었는데, 뭐랄까 사람들이 한번쯤은 생각해보는 의문이라 인상이 깊었다. 보통 신의 속성으로 알려진 전지/전능/지극한 선을 모두 갖춘 존재가 정말 존재한다면, 세상에 악은 왜 존재하는가? 종교계는 이러한 의문에 답하기 위해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서’라는 살짝 맥이 빠지는 답안을 만들어 놓긴 했지만 솔직히 확 와 닿지는 않는다. 그 외에도 많은 의문들이 존재한다. 그 중 유명한 질문인 ‘신은 자신이 들지 못하는 돌을 만들 수 있는가?’ 라는 뉘앙스의 질문의 경우, 이를 뼈대만 남겨보면 ‘절대적 존재가 자신의 능력 밖의(더 절대적인) 무언가를 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질문에서 약간의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절대적’이란 단어 뜻의 해석차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절대적’이란 완전무결, 말 그대로 절대적인, 이란 의미였다면 그 단어의 의미 속에 이미 ‘상대적’인 개념이 나올 여지가 없어진다. 전지전능의 신에게 상급신, 하급신의 계급을 나눠버리면 이미 전지전능이 아니게 된 달까? 앞의 질문도 절대적 존재의 신이 자신보다 더 절대적인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느냐는 질문에서 이미 절대적의 상대성(절대적인 것들의 상호 비교. 상대성)이란 모순적 내용이 들어가므로 이 질문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질문 외에도 수없이 많은 신의 존재에 관한 의문이 존재한다.애초에 조로아스터 교 같이 이원론적 구조를 갖지 않는 이상 이 세상에 팽배한 악을 설명하기가 마땅치 않다고 본다. 선신과 악신이 존재해 등 책임소재가 불명확한 일들을 어떻게든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고자 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어서 상당히 인상 깊었다.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란 책의 내용 중에, 진리의 역사는 원시-고대-중세-근대를 지나면서 각각 자연신-신화-유일신-이성이 진리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대목이 있었다. 나는 여기서 원시시대의 자연신앙이 탄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천재지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천재지변을 어떻게든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자연신이 나온 것이다. 우리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것(죽기 전엔 경험 할 수 없는 ‘죽음’이 대표적이다.)에 공포를 느끼며 어떻게든 그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인식하고자 하는데, 이때 그 인식하는 방식의 참 거짓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자기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지부조화’라는 현상이 일어나며, 원시시대에 자연신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특징은 중세의 마녀사냥에서도 그 광기를 여실히 보이는데, 온갖 자잘한 일의 원인을 특정한 누군가에게 돌리며 마녀로 매도해, 무고한 사람하나를 화형에 처하는 일이 당시에는 잦았다고 한다. 보통 이러한 희생양은 그 마을에서 정치적 권력이 약한 사람(고아, 여성, 미망인 등)이 많은데, 혹자는 마녀사냥의 광기가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지속된 원인 중 하나가, 돈 많은 미망인들을 마녀로 몰아가 그 재산을 합법적으로 탈취할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이 단일한 원인은 아니겠지만, 충분히 다양한 원인 중 하나일 법 하다고 생각했다. 최근 읽은 책 중 이러한 희생양 메커니즘을 설명한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이란 책이랑 연관해서 이해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방식의 이야기가 중국 황하 전설 중에도 있는데, 이게 또 상당히 생각해 볼 거리가 많다.황하강 전설 중 서문표의 이야기인데,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이번엔 무당이 직접 가봐라~” 라면서 무당을 수장시켜버렸다. 그래도 나오지 않자 서문표는 “그래도 안 나오네? 마을 장로쯤 되어야 하나보군. 이번엔 장로가 가시오.”라고 하니까 그때서야 기득권층이 울고불고 빌었으며, 그 이후엔 그러한 산 제물을 드리지 않았다고 한다.여기서의 희생양이란 홍수 등의 자연재해로 인한 농민의 분노를 다른 쪽으로 유도하는 일종의 수단인데, 마을이란 공간 안에 존재하는 ‘내부자’와 ‘외부자’라는 두 집단의 파워게임과 같다. 보통 마을의 통치자, 사제(여기선 무당), 권력층들이 마을의 ‘내부자’이고, 처녀나 일반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외부자’에 해당하는데, 내부자인 기득권층이 농민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결국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민란이라도 나면 농민들에게 살해당할 수 있으니.)일종의 눈가림용으로 책임을 특정 한 개인(여기서는 마을처녀)에게 넘겨버린다. 그래서 그 이전까지는 같은 ‘외부자’란 입장에 속했던 마을사람들은, 연고 없는 처녀가 재물로 선택되는 순간 알게 모르게 ‘내부자’에 편입된다. 그렇게 되면 ‘내부자’, ‘외부자’ 집단의 파워게임이 순식간에 기울어지게 되고 처녀 한명이 수의 폭력, ‘집단’ 대 ‘개인’의 무자비한 상황에 놓이게 되어, 울며 겨자 먹기로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서문표이야기는 이러한 상황에서 폭력은 더 큰 폭력에 의해 해결되는 폭력의 논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기득권층이 처녀에게 행했던 폭력은 현령으로서의 지위를 가진 더 큰 서문표가 가하는 폭력에 의해 해결되었다. 일반적인 해피엔딩의 이야기 같으면서도 알게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과연 더 큰 폭력이 아닌 다른 방식의 해법은 없었을까? 만약 그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면, 인류는 크나큰 진보의 도약을 하는 것이라고 개인적으론 생각한다.아, 그리고 이야기가 상당히 딴 곳으로 샜는데, 책에서 나온 뉴올리언스의 홍수에 대한 랍비의 의견(“유대인 정착민을 가자지구에서 몰아냈기 때문에 그런 복수를 당한 것이다!”)은 과학같다.]
    독후감/창작| 2016.06.13| 8페이지| 1,000원| 조회(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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